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7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7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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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우연히 사게 된 [블랙 에코]를 통해 그 이후 마이클 코넬리를 읽고 있는데 모든 책을 읽을 생각은 아닌지라 서가에서 책을 고를 때 무척 고민을 많이 한다. [블랙 에코]와 [콘크리트 블론드]에서 해리보슈의 매력에 퐁당 빠졌고, [블러드 워크]에서 매케일렙을 처음 알게 되었으니 그 둘이 만난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을 보는 순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제목이 길지? 이건 뭔 뜻일까? 밤에 사건이 일어난다는 건가????? 알고보니 이 제목은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거리가 어두운 것은 밤보다 더한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라는 문장. 그 말을 쓴 챈들러도, 그것을 제목으로 둔 코넬리도 참....^^

 

해리 보슈는 데이비드 스토리 사건의 재판 중이고, 매케일렙은 제이 윈스턴의 부탁으로 에드워드 건의 사건 프로파일을 작성 중이다. 일전에 에드워드 건의 사건을 맡은 적이 있는 해리 보슈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프로파일 작성 중에 건의 사건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슈라는 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름은 해리 보슈의 본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범인은 해리 보슈? 이 책 이후에도 해리 보슈 시리즈가 쭉쭉 나왔으니 해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함정에 빠진 것이고, 안타깝게도 그를 함정에 빠트린 결정적인 사람이 매케일렙이 된다. 이 두 사람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분명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말이다.

 

이 소설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고 코넬리를 읽는 사람이라면 지나쳐서는 안될 작품이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긴장감이 좀 덜 생긴 작품이다. 방해꾼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할까? 하지만 테리가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중에 히에로니무스 보슈라는 화가의 작

 

 

 

품과 연관을 짓는 과정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상의 화가인가 싶었는데 알아보니 실존화가였다. 그렇다면 마이클 코넬리는 진작부터 이런 작품을 구상하면서 해리보슈를 창조했다는 말이 되는데, 대단한 작가이다! 인물들간의 망이 모든 작품 이전에 코넬리의 머릿속에서 촘촘히 다 짜있었다는 생각이 들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친절하게도 소설 뒤에 부록으로 인물 관계도를 첨부했는데 그것이 바로 코넬리의 머릿속 같아 보였다.

 

범죄 소설을 읽으면서 문장을 기억하려고 귀퉁이를 접는 경우는 잘 없는데(긴박한 상황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앞서 말한 긴장감이 좀 덜해서 그런지 귀퉁이를 두 군데나 접어두었다.

 

"모든 작용에는 똑같은 힘의 반작용이 작용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다. 이런 진부한 이야기들 많잖아요. 이게 진부한 이야기가 된 건 진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어둠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 몫을 가져가게 돼 있어요. 어쩌면 보슈는 어둠 속에 너무 자주 들어갔던 건지도 모르죠.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건지도." (260쪽)

 

물론 보슈에 대한 것은 오해이지만 그 앞의 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귀 기울이게 된다.

 

매케일렙은 아무 말 없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시냅스들이 척추를 따라 도미노처럼 불이 켜지면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주차위반 딱지가 발견된 건 대단한 성과였다. 이걸로 증명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매케일렙이 방향을 제대로 잡았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살다보면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증거를 손에 쥐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418쪽)

 

오해가 풀리면서 느껴지는 옳은 방향. 그 촉수를 나도 갖고 싶어....

 

 

 

현재까지 해리보슈 시리즈 1, 3, 7권을 읽은 상태이다. 현재 13권까지 출간된 상태이니 그 중 또 한 권을 골라봐야 할 텐데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서가 앞에 있을 때의 느낌이 참 좋다. [시인]과 [시인의 계곡]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렇다면, 해리보슈 전에 [시인]을 먼저 읽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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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퇴계의 후손으로 퇴계 선생의 이름을 그 어느 집 아이들 보다 많이 접했지만 사실 어릴 적에도 제대로 된 위인전 한 번을 읽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이라는 말로 접했을 땐 이미 지폐의 레벨에서 느꼈던 느낌이 여전했다. 이이는 젊은 사상이고 뜨는 태양이며, 이황은 고리타분하고 실용적이지 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귀에 딱지 않게 그의 이름을 말하는 이가 없어 그런지 내가 퇴계의 후손이라는 점은 아주 간혹만 되새길 수 있을 뿐이었다. 어른이 되어도 나는 퇴계를 이름 외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후손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굉장히 민망한 노릇이었다. 어릴 적 황희 정승의 "네 말이 옳다. 네 말도 옳다."라는 일화에 감동받아 그의 책을 뒤적거린 적이 있고, 오랫동안 근무한 지역이 다산 정약용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라 그의 평전은 적지 않게 읽었다만 정작 퇴계에 관한 그 어떤 책도 읽은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글항아리에서 [퇴계처럼]이라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른 사 두었고 이번에 기회가 되어 [퇴계 생각]을 읽게 되었지만 읽기 전까지도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라는 기획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책장을 열자마자 그런 긴장은 스르르 풀린다. 특히나 [퇴계처럼]은 퇴계의 가정사를 중심으로 퇴계의 성품을 알려주는 일화를 엮은 내용이 많아 무척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생애 전체를 통틀어 주변 사람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아 현재 전하는 것만도 3154통이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더욱이 그 편지의 내용을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겸허하며 욕심이 없는 학자였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런 그의 성품 때문에 아무래도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라는 강력한 무기에 대적하기에 사단칠정설은 현대인의 관심을 끌기엔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에 그러하다고 하여 그가 당시에도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퇴계처럼]에 이어 읽은 [퇴계 생각]은 예상과는 달리 퇴계의 생각만을 다룬 책이 아니라 퇴계와 생각을 나눈 이들의 생각을 더불어 다룬 책이었다. 영남학파의 대표 학자로 호남의 유림들과 생각과 마음을 스스럼없이 나눈 수많은 예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가 지역과 나이의 차이를 불문하고 좋은 지기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탐하는 마음이 적었기 때문인데 그런 순수한 마음과 학문에 대한 깊은 열정은 한미한 가문에서 홀어머니 아래에서 유명한 스승 한 사람 없이 공부하였음에도 당대의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하였다. 우리가 퇴계를 떠올릴 때 기대승 한 사람만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앎인지 부끄러웠다. 네 명의 임금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사직과 재직을 반복하며 오간 것이 일곱 번이며 늘 궁궐이 아닌 초야에서 학문을 닦길 원했던 이가 퇴계였고 그러한 마음을 존숭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새삼 아름답게 보인 것은 너나없이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하는 요즘 세상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퇴계의 삶과 생각을 말하며 현실을 비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 공감이 더 많이 되었다.

 

[퇴계처럼]이 퇴계의 성장과정과 개인사를 소개하고 주변인들과의 일화들을 통해 자상한 카리스마, 상식에 기반한 융통성있는 지식, 농사일을 중요시한 실천인으로서의 퇴계의 모습을 소개한다면 [퇴계 생각]은 가정과 주변인에서 벗어나 학문적으로 소통한 호남의 유림들과 관계를 통해 퇴계의 사상이 무척 깊고 정밀하며, 식견을 나누는 태도가 무척 세련되고 균형감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구나 뿌옇게 이해한 사단칠정에 대한 퇴계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준다는 점이 무지한 후손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주자학을 처음 연구한 이가 이황이었다는 점은 왜 이리 잘 알려지지가 않았는지 놀랐는데 아마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의미있는 연구였겠지만 아무래도 요즘 시대는 그것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방향이기에 그런 모양이다.

 

올해 퇴계를 알게 되려는 모양이었는지 일전에 초방책방에서 출간된 [도산서원]이라는 책을 선물받고 도산서원에 가고파졌는데 이렇게 [퇴계처럼]과 [퇴계 생각]을 읽게 되니 마음이 괜히 충만해진다. 매화를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도산 서원엔 그가 형님으로 모신 매화가 있다고 하니 매화도 볼겸 내년 봄쯤엔 갈 수 있으려나 막연한 기대를 해 본다.  이 세 권의 책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무척 고마웠다. 따로따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지만 함께여서 더 좋은 세 권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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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시인 20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시
강은교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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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처 찍어두지 못한 박정대의 글

 

 모든 글은 또 어쩌면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창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태천의 글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내가 알고 있는 언어가 만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언어가 만난다.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사실과 내가 알고 있는 언어가 만난다.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사실과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언어가 만난다.

 

 

 

일전에 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하나 생각나 다시 적어 본다. 

 

내가 시인을 사랑하는 것은 시인의 시가 나를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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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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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이클 코넬리를 알자마자 그의 첫 해리 보슈 시리즈인 [블랙 에코]를 읽고는 작가의 작품에 빠진 터여서 얼마 전 몇 권을 사고 늦어지는 배송 사이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콘크리트 블론드]이다. 역자도 후기에서 제목만 보고 '뭐지?'했다지만 나 역시도 이게 콘크리트에 시체를 묻고 화장을 한 수법을 말하는 것일 줄은 몰랐다. 아마 알았다면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리 보슈 형사의 이야기는 일단 집어들면 빠져드는 법! 졸린 눈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이 이야기는 [블랙 에코]에서도 언급되었던 해리 보슈가 좌천 당하게 된 사건인 인형사 사건의 민사 재판에서 시작하고 '콘크리트 블론드' 사건은 그 재판 도중에 벌어진다. 아니 처치는 이미 죽어서 해리 보슈는 재판을 받고 있건만 여전히 인형사와 유사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까닭은 뭐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콘크리트 블론드]의 내용이다.

 

해리 보슈 형사를 창조하면서 애시당초 '인형사' 사건을 첫 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이 사건을 어느 정도 배경으로 깔고 그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다루는 점이 마이클 코넬리를 인정하게 만든다. 아, 이렇게 자신있구나 이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도 무척 마초적이고 섹시한 탐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해리 보슈가 좀더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그 이유를 이 책의 표지에서 발견하였다.

 

통찰력 없는 스릴러 주인공이야 어디 있겠냐만 해리 보슈의 매력은 '애수'였다. 마초는 마초인데 애수가 있다...이야~~해리 보슈 이 사람!!! 다 가졌네!

 

해리 보슈에 대한 감탄은 이쯤하고 그렇다고 스릴러 소설에서 사건을 시시콜콜 나열할 수도 없고 마이클 코넬리의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로서 필립 말로를 존경하는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ㅋㅋ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제멋대로야.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이 일 마무리되면 나도 사립 탐정이나 해볼까. 필립 말로처럼."  (201쪽)

 

지난 번 작품에서도 필립 말로를 이야기에 담은 것 같은데 다음 작품에서도 그러려나 은근히 기대된다.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존경심과 그에게 비견해도 손색없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울러 역자가 여러 번 쓴 '더럽게'라는 표현도 맘에 든다. (가령, '보슈는 속으로 허풍도 더럽게 떤다고 생각하곤 했다.'와 같이).

 

해리 보슈의 작품을 모두 읽을 생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읽을 셈이다. [블랙 에코]가 1, [콘크리트 블론드]가 3이니 2였던 [블랙 아이스]를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다음에 읽을 작품이 4인 [라스트 코요테]가 될지 12번인 [에코 파크]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진 않을 거다. 애수의 형사 해리 보슈를 떠나 보낼 준비가 난 안되었으니까. 실비아 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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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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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제목이 무척이나 유치하다. 마치 초등학생이 작가에게 보내는 이메일 제목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다. 사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에는 제목과 표지가 쏟아져나오는 메타북들 중에 단연 이 책을 선택할만큼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저자 역시 내가 아는 이가 아니라 굳이 읽으려 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다. 도서관에 가면 책들이 죄다 겉껍질이 벗겨진 채 꽂혀 있는데 그 속살을 만나고나서야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빨간 표지가 살짝 공포심(?)을 일으켰나보다. 책을 빌려 집에서 읽으며 뭐라 꼭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가독성있게 편집이 잘된 것 같아 편집자의 이름(천경호, 성기승, 배은희)을 확인하기도 했다. 서문이 좋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책장을 덮고 쓰다듬기도 했다. 읽는 순간부터 마냥 맘에 들은 것이다 이 책이.

다시 유치한 리뷰의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이 책은 우리가 (특정) 책에 관하여 가진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부제로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첫 장부터 포르노 소설이 나올 줄은 몰랐다.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결정적인 사상서적이었다니! 이후 위대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과학책을 편 과학자들에 대한 비판, 고전이라 불리기엔 너무나 헛점이 많고 매력이 없는 플라톤의 [변명]과 공자의 [논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갖다붙인 우생학의 자식들, 책을 학살한 역사를 통해 되돌아보는 현재 우리의 독서 운동까지 작심하고 쓴 이 글들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내용의 흥미로움을 넘어선 작가의 '똑똑함'이었다. 똑똑하다는 말을 아들이 아닌 인문학 작가에게 할 줄은 나도 몰랐지만 강창래 작가는 그 많은 책들을 읽고 이토록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어쩌면 이렇게 매력적으로 쓸 수 있담? 이 시점에서 자꾸만 묻게 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작가님처럼 똑똑해질 수 있을까요?"

 

책은 크게 위에서 요약한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지만 이 책에 인용되거나 거론된 책은 상상을 초월한다.(참고문헌 목록으로 10페이지가 할애되었다.) 그 많은 책들 외에도 아마 작가는 더 많은 책을 읽었으리라.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책의 주제가 그러하듯 작가는 비판적 책읽기를 습관처럼 하고 있으며 어느 한 생각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읽는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지 알게 된다.

 

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그것들에 대해 '잘 알려면' 거의 학문을 연구하듯 해야 한다.), 그 당시에는 아예 몰랐기 때문에 어떤 것을 사야 할 지 선택하는 일부터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변명]이, 어떤 [논어]가 '진짜'란 말인가. 어쩔 수 없이 그럴듯해 보이는 책들을 선택해서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평소 습관대로 각각 네댓 권씩을 샀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은 여러 권을 비교하면서 읽어야 비판적인 독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65쪽)

 

불현듯 그동안 나는 '아예 모르면서'도 아무 책이나 느낌 가는대로 읽고 그 책을 믿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글 전반에 흐르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기류는 이런 저자의 독서 습관 덕분이고, 그런 저자의 독서 습관이 매력적인 글쓰기의 밑천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서문에서 밝힌 '독서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작가가 마지막 장에 '책의 학살'이라는 타이틀로 쓴 내용이야말로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앞의 책들은 그럼 일종의 양념이 되려나? '나 요러요러한 책들을 읽고 요러요러한 생각을 했는데 니들은 몰랐지? 책은 이렇게도 읽을 수 있는거야.' 정도의?^^) 여러 협회에서 지정하는 권장목록들로 인해 그 외의 책들은 소외당한 채 도서관이라는 감옥에서 세월의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는 그 안타까움 말이다. 다양한 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읽고 서로 공유하며 책과 삶에 생명을 불러일으키길 작가는 바라는 게 아닐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 마음과 닿지 않을까?

 

책을 파괴하는 이유를 거꾸로 새겨보라. 이들은 지금 불태우는 책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에 대해 대단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347쪽)

현대의 도서관에서는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책일수록 빠르게 손상된다. 그런 책들과 달리 인기가 없는 책들은 도서관이라는 감옥에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365쪽)

 

책을 적게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깊게 읽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와서야 책을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읽는 것에 마음을 연지라 내 속의 어떤 갈등을 건드려준 것 같다. 때로는 나의 얕은 지식에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선생님처럼 바른 독서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책을 읽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한다. 책에서 어떤 답을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생각을 드러내고 그것을 함께 하는 일의 중요성도 느낀다. 요즘 리뷰 쓰는 것에 대한 회의가 생길 무렵 이 책을 읽어 격려를 받았다. 즐겁게 책 일고 신 나게 쓰기! 저도 작가님처럼 똑똑해 질래요! (아, 초등학생이 작가에게 보내는 이메일의 마지막 인사말 같구나!)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239쪽)

 

앞으로 나는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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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7-1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239쪽)

맞아요~~~ 그리고 이 리뷰는 제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네요.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어요.

그렇게혜윰 2014-07-12 10:11   좋아요 0 | URL
남이야 뭐라든 어쨌든 이렇게 꾸준히 리뷰를 쓰는 것도 일종의 생산이니까 말이에요,,,,, 이 책 괜찮아요. 전 빌려서 봤는데 다음에 책 나오시면 사서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