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손끝으로 전하는 이야기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지혜라 글.그림 / 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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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집에 보림출판사의 <솔거나라> 시리즈는 없는 집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우리만큼 익숙한 전통문화 그림책이다. 이후에 출간된 다른 출판사들의 전통문화 그림책도 좋은 것이 많지만 유독 솔거나라가 사랑을 받는 것은 꾸준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1995년에 [한지돌이]를 시작으로 25권째인 [한땀 한땀 손끝으로 전하는 이야기]까지 20년간 꾸준히 출간되고 있고, 개정과 3D판으로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이 전통문화 그림책의 선두주자로 있게 된 이유가 될 것이다.

 

사실 요즘의 아이가 읽기에 시리즈의 앞번호에 자리한 책들은 그림이 낯선 느낌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출간되는 책들은 <솔거나라>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일반 창작 그림책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림이 예쁘다. 그리고 그 예쁜이들 중 가장 예쁜이가 바로 이 책 [한땀 한땀 손끝으로 전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시리즈의 특성상 전통문화 중 하나를 이야기 형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형태의 그림책이라 우리 전통문화의 하나인 '손바느질'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이미 다른 그림책에서 본 적이 있는 '조각보'이지만 그 완성 과정까지 상세하게 알려준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삼회장 저고리의 바느질 법, 자수 병풍의 자수의 종류, 누비 옷과 굴레에 대한 활용까지 예쁘면서 자세한 그림과 글이 '우리나라 손바느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아이 보다도 엄마인 내가 더 반한 그림책이라 개인적으로는 솔거나라 시리즈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참고 서적을 보니 저자가 어린 독자들에게 바른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 같아 고맙기까지 하다.

 

 

요즘 드라마 <왔다 장보리>가 인기라고 한다. 명절에 시댁에 갔더니 다들 그 드라마 이야기를 하시길래 한 번 보았더니 주인공의 직업이 침선장인 모양이다. 조카들마저 장보리에 빠져있는 것을 보니 새삼 드라마의 파급력에 놀랐지만 이런 때에 이런 그림책을 함께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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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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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이 책의 존재를 알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소재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행여 상상이나 했겠는가, 치킨이 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말이다. '따비음식학'의 첫번째 책이니 향후 어떤 음식들이 전시의 목록에 오를 수 있을지, 우리는 어떤 음식에 대하여 배움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말로 치킨에 이어 라면과 믹스커피가 나올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치킨展을 읽어보았다.

 

 

 

 

우리는 자고로 백숙의 민족이다. 그런 우리에게 언제부턴가 야식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치킨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의아하게 생각해 보았다. 책에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치킨은 흑인들의 소울푸드로 백인들의 흑인들의 소울푸드 중 돈이 되는 프라이드 치킨을 상업화한 것이라 한다. 프라이드 치킨이 흑인을 비하하는 은어라는 점도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은 그야 말로 치생치사! 치킨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탐구한다.

 

나는 이 책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읽었다. 내가 즐겨먹는 치킨의 닭이 믿을만한 것인지, 치킨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어떤 브랜드의 치킨이 가장 양심적인지 등등 철저하게 소비자의 입장에서 읽었다.

 

일단 우리집 코앞에 있어서 배달이 아니라 직접 가서 받아오는 호식이두마리치킨을 비롯한 여러 닭들이 <하림닭>을 강조하는 것의 이면에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는 점에 놀랐다. 나 역시도 하림이라는 이름만 믿고 그저 그 닭이면 좋은 거려니 했는데 기형적으로 성장한 하림닭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신생 기업의 닭을 믿고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소비자로서는 대안이 나와있지 않아 아쉽다. 그냥 비판적으로 계속 그 닭 먹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때 그리고 지금도 롯데마트에는 치킨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 행사하는 때에는 더욱 싸게도 살 수 있고 짜지만 그럭저럭 먹을만도 하다. 직접 사러 가야한다는 점이 문제이지만 근처에 있다면 그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치킨의 가격에 대한 의문이 온 나라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매장인 요즘 수수료의 문제가 점주들에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추측은 했었지만 그야말로 횡포에 가까운 일도 많아 안타깝다. 그렇다고 잘못을 크게 들추지도 못하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지면 매장의 매출도 함께 나빠지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게 더더욱 안타깝다. 해결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달에 따른 비용. 요즘 앱 사용을 하는 터인데,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를 낮췄다고 하니 그걸로 갈아타야겠다. 요기요도 얼른 수수료를 낮추면 좋겠다.

그나저나 통큰 치킨 문제가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치킨 값 비싸다며 롯데의 편을 들어준 것은 저자의 추측대로 그가 서민 코스프레를 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롯데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어떤 브랜드의 치킨이 양심적인가, 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나 BBQ치킨 창업을 위한 치킨 대학이 그것도 비싼 과정이 있다는 사실 등 몰랐던 점을 새롭게 알게된 읽기였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집중하여 읽기에 좋고, 나처럼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킬링 타임용으로 괜찮을 것도 같다. 좀더 무게감을 더 실었더라면 어떨까? 조금은 산만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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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 (책 + 플래시 DVD 1장) 국시꼬랭이 동네 19
이춘희 글, 김동성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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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놀러온 동네 언니가 이 책의 그림을 보고 반해서 국시꼬랭이동네 세트를 그날 구입했다. 이책과 함께 국시꼬랭이를 샀더니 튼튼한 가방도 줬다. 책보 디자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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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사회학
김광기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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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비정상회담'이라는 토크쇼가 있다. 여기에 출연하는 패널들은 모두 외국인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표적인 이방인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는 '터키 유생'이니 '알서방'이니 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만 붙일 법한 수식어들을 붙여가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편을 들어준다. 이쯤되면 이들이 이방인인가, 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방인인가? 엔딩 송으로 MC 전현무가 '정상인듯 정상아닌 정상같은 너~~♬'라고 우스개로 부르지만 그 노래 안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음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방인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호기심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에게 이방인은 오랫동안 카뮈의 소설과 같은 말로 자리했고 더 단순하게는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사회가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었을 때야 비로소 '이방인'은 외국인과 카뮈의 소설을 너머 사회의 한 현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이방인이 바로 나임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이 책은 논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요즘 쏟아지는 대중적 사회학 서적과는 달리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낯선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들 거기에 저자의 수정되거나 반박하는 이론들이 이어지는 형식의 글은 길고 구체적이라 읽는 속도가 더딜 수가 있지만 단언하건대 일단 그 흐름에 익숙해지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져 뒤로 갈수록 쉬이 읽힌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이방인의 속성들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라 그렇기는커녕 현대인들과 아주 밀접한 것들이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이방인을 이해하는 것은 곧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일과 같아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불안하고 위로가 필요한 존재, 유동적인 삶 속에서 부단히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여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이방인이자 현대인의 모습이다.  책을 읽으며 많은 밑줄을 긋고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가며 이방인을 이해하고자 애썼던 흔적들은 어느 새 나를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동경은 대체로 이방인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행했고 보았던 이방인 흉내내기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모두가 이방인인 현대 시대에 진정한 이방인은 사실상 없지만 우리에겐 이방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국적인 것에 대한 허세어린 이방인 행세가 아닌 진정한 이방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우리는 끊임없이 본래의 자아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며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 존재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비정상회담'을 보자면, 출연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타국에서 온 이방인이고 세 명의 MC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만 가면 그 땅에서 그들은 순간 이방인이 된다. 그리고 외국인 한국인 따질 것 없이 모두 '정상아닌 정상인듯 정상같다'.  모두가 이방인인 동시에 이방인이 아니고 비정상인 동시에 정상이다. 매우 복잡하고 모호해 보이는 이 말이 내겐 전혀 복잡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을 읽은 후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인듯'한 말들이 모두 성립한다. 가장 명확한 것은 그들이 모두 현대인이라는 것인데 그들이 가지는 이방성은 타국의 땅에서 그저 단순히 자신의 물리적 고향에 대하여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방인이 없는 사회에서 진정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과 같고 이방인이자 현대인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언제나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야한다는 점, 새길 말이다. 함부로 이방인을 동경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이방인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의 자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읽어볼 만한 구절을 첨부한다. 저자의 문체나 책의 성격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란 매 순간 '초월'하면서 동시에 '내재'하고,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 -p129

 

사회 구성원들이 희생하지 않는 한 어떠한 사회도 존립할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인은 전통사회의 사람들처럼 사회에 대해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희생해야 할 경우라도 한껏 거리를 두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적 희생이고, 기꺼이 마음을 내켜 하지 않는 희생이며, 매우 피상적이기에 속된 말로 무늬만 그럴듯한 희생일 뿐이다. 해서 구성원들이 보이는 그런 유의 희생 같지 않은 희생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코 전통사회와 같이 굳건할 수 없고, 부실하며 불안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실한 사회의 건축자는 기꺼이 희생하려 들지 않는 현대인들 자신이며, 또한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사회가 지닌 불안정의 최대 피해(희생)자 역시 현대인들이다. 마치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부실한 건축물에서 사는 거주자들이 늘 불안에 휩사여 안절부절못하듯 현대인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불안'이라는 또 다른 희생을 떠안은 자가 된다. p247

 

 

완전히 망각된 고향을 내 실존을 위해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은 고향을 잃은 자들의 책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결국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것, 하이데거가 말한 "이상한" 자가 되는 것, '실향성(낯섬)'을 담지한 자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고향을 부단히 찾고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본연의 나의 모습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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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며 - 2000년에 1887년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3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김혜진 옮김 / 아고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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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현재를 두고 113년 후인 2127년의 사회를 얼마나 예측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공상만화에서 길다란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그것을 그저 상상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금세 그것은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에드워드 벨러미가 1887년의 시각으로 113년 후인 2000년을 예측한 것이 모두 맞았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비효율적인 여성의 복식이나 생활 방식을 비롯한 몇몇 부분은 예측이 정확해서 놀랐다. 하지만 진정 놀라야 할 부분은 그가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시작된 유토피아 사회를 구축하는 능력이 무척 세심하고 견고하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구축한 사회, 정치, 예술, 교육 등 전반적인 이상사회의 요소들을 확인할 때마다 작가의 역량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여느 소설가와 달리 에드워드 벨러미는 소설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을 밝힌다.  가르치는 느낌을 적게 주기 위해 소설이라는 양식을 빌렸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그렇다고 이 소설이 폄하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로서도 충분히 흥미롭고 가치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출간 당시 [톰 소여의 모험]이나 [벤허]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고, SF문학의 효시가 된 작품이라고 하니 소설로서 인정받았다. 실제로 웨스턴이 잠이 들고 잠이 깨는 것은 해리 포터가 1과 1/2 역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므로, 우리의 판타지는 모두 조금씩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돌아보며]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유한 계급의 귀공자 웨스턴은 역시 유한 계급의 아가씨 이디스와 결혼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집이 제때에 완성되지 못해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이다. 집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건 1887년이나 2014년이나 같은 문제이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한 짜증은 불면으로 이어지고 평소처럼 최면술에 의지해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보니 2000년의 세상이고 이때의 세상은 그가 살았던 1887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의 말처럼 변화는 때때로(어쩌면 때때로 보다는 자주) 급작스럽게 일어나왔으며 113년의 시간동안 세상은 그 급변을 다시 한 번 맞이했고, 그 사회에서 구성원은 자본가든 노동자든, 남자든 여자든 불만을 갖지 않는다. 유토피아, 그 사회가 바로 소설 속의 2000년이다.

 

2000년 9월이면 국가적으로는 IMF 외환위기 중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가난한 연애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유토피아는 커녕 돈 나올 구멍은 없고 돈 들어갈 일만 많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그린 2000년은 너무나 완벽하여 읽으면서 무척 재밌었다. 113년 후의 세상을 이토록 이상적으로 그릴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려낸 사회가 이상적일수록 당시의 사회는 그만큼 더 부조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지금 누군가가 113년 후의 이상사회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이 소설보다 더 멋지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에드워드 벨러미가 그려낸 이상사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입장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 말만 듣자면 굉장히 갑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소설에서 말하는 국가 관리 시스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목조목 인간적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45세까지 의무 산업 복무 기간이 있으며, 직업의 선택은 성장기에 충분한 관찰과 고려를 통해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은 현재 취업 준비 대란을 겪는 젊은 세대들에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입대 전에 설렌다고 하니 요즘 젊은이들과 마음이 상반된다. 또한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급여 차별이 없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는 능력이 없는 사람도 그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가치관 때문이라는 설명에서는 무릎을 쳤다. '평등'과 '복지'에 대한 작가의 혜안에 놀랐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그 신용 금액을 어떻게 정해주나요? 무슨 권리로 한 개인이 자기 몫을 주장합니까? 재화를 분배하는 근거는요?
"인간성이죠. 자기 몫을 주장할 권리는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몫을 가져간다는 뜻입니까?"

"물론이죠."    (84쪽)

 

요즘 관심사병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에드워드 벨러미가 구축한 유토피아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탁상공론으로 만들어 놓은 매뉴얼보다 더 가치있다. 한 사람이 머리를 써도 이런 답을 마련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머리를 어디로 쓰는 것일까? 소설 속 2000년 미국에도 대통령은 존재했다. 다만 그 대통령은 국민들을 돕기 위한 그 목적 외에는 역할이 없으며 따라서 그 대통령은 의무 산업 복무를 모두 거쳐야 하고, 따로 관리되는 여성 산업 군대의 고위직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만 맡긴다고 한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휘가 위험하다는 발상이다.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상당부분 공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 걸쳐 꼼꼼하게 구축한 에드워드 벨러미의 이상 사회 2000년은 1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지 않았지만 그가 조목조목 기술한 원칙들은 깊은 감명을 준다.

 

악취가 나는 군중 속에서 그저 자기 혼자만 향수를 뿌렸다고 해서 그가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요? (204쪽)

 

아마 1887년의 유한계급과 2014년의 부유층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 밖에는 뒤돌아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적게 노동하고 많이 가지는 시스템의 부조리가 그때나 지금이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씁쓸하다 못해 화가 나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쯤은 꿈꿔보게 된다. 흘린 땀방울이 정직하게 돌아오는 시대는 올 것인가? 세상의 수많은 잣대들을 없애고 '인간성' 만으로 서로가 대등한 관계가 올 것인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어느 시대에건 유한 계급에게 읽히길 바라게 된다.

 

그나저나, 웨스턴은 다시 1887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게 된다면 이상 사회를 맛 본 자로서 1887년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유한 계급이기에 다시 원래대로 노동자들이야 불행하건 말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게 될까? 약혼녀 이디스와는 순조롭게 결혼하게 될까? 2000년에 만나 설레임을 갖게 된 이디스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무거운 내용과 주제와 더불어 소설적 재미가 더한 이 책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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