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해석의 공간 마루벌의 그림책 이론서
이성엽 지음 / 마루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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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무거워보이는 제목에 살짝 긴장했었는데 표지에 실린 좋아하는 그림책들이 보여 마음이 편해졌다. 게다가 기존 이론서들에 비해 현저히 얇은 두께와 큼직한 글씨와 여유있는 편집이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표지뿐만 아니라 책에 인용된 그림책들의 정보를 참고문헌 안에 수록해주어 유용했다. 논문 형식의 책들은 인용을 철저히 밝혀주는 점이 좋다. 하지만 늘 어려운 게 문제였다.

 

적지 않은 그림책 이론서들을 읽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페리노들먼의 [그림책론]도 읽고, 아동문학 평론가들의 그림책 이론서들도 한때는 다 찾아읽을 정도였다. 외국의 전문도서의 경우에는 매우 구체적이지만 어려웠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림책들이 많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아동문학 평론가 혹은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책 이론서들은 서평집으로서는 훌륭했지만 이론서로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껏 내게 최고의 그림책 이론 입문서는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와 그림책]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인정받는 그림책들도 있었지만 일본 작가들은 그림책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그런지 그들의 책에는 자국의 그림책에 대한 양이 많다는 점이 살짝 아쉽다면 아쉽달까? 그래서 더더욱 우리 나라 전문가의 이론서를 더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마루벌 출판사는 레오리오니의 그림책은 물론 좋은 그림책들을 많이 출판하는 아동도서출판사이지만 그림책 이론서를 출간하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읽기 시리즈>가 그것인데 이 책 [그림책, 해석의 공간]은 그 세번째에 해당하는 도서이다. 앞선 두 권의 책을 읽지 않아 이 책을 다른 책들과 비교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이 시리즈의 첫 책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이 책이 그림책의 존재 의미인 글텍스트와 그림텍스트의 역할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잘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그림책이론에 대한 입문서로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림책에 대하여 강의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Picture book으로서의 그림책에 대한 정의인데 그것을 좀더 심화하여 '아이코노텍스트 iconotext'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후 글텍스트의 다양한 양상과 그림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그림책 작품을 통해 설명해주어 논문형식의 책에서 경험하기 어렵게 이해가 잘 되는 책이다. 대중적 이론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이 의미있다. 내용면에서 보자면 전혀 모르는 내용도 아니거니와 다 아는 내용도 아닌 지라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특히 그림텍스트에 대한 해석 방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여 이후에 그림책을 볼 때 더 신경을 써서 봐야겠다는 마음도 가지게 되고 더불어 인용된 그림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올라갔다. 책의 저자로서 인용된 도서에까지 신뢰감을 주는 점이 무척 인상깊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밑줄 쳐가며 집중하여 재밌게 읽는데 에필로그 없이 바로 참고 문헌으로 넘어가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7장에서 끝내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뒤에 각 요소들을 통합하여 잘된 그림책들을 소개해준다던가 하는 내용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애정어린 아쉬움이 있다. 이제부턴 그림책 입문서로 마쓰이 다다시의 책과 이 책을 함께 추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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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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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은 이제는 내용을 거의 잊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목과 표지 그리고 내용에 스무 살 나의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서가에서 찾아 읽고 책꽂이에 하나씩 꽂아두기 시작한 것이.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자신이 쓴 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은 독자라면 그의 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지체 없이 감지할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그 강렬한 이야기와 상상이 언제부턴가(아마도 내가 생각하기엔 <퀴즈쇼>부터)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단편집을 읽으며 머리가 아닌 가슴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건 바로, 지금 우리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3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8시, 9시 뉴스들을 떠올렸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사건적이었고, 그만큼 효율적이었고, 그만큼 개연성이 있었다. 이 말은 13편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고 흥미롭게 전개되어 누가 보아도 이건 소설이지만 그 주인공들이 모두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만나는 그 누군가가 「로봇」이었을 수도 있고, 나의 오래 전 연인이 나를 찾아와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러기를 바랄 수도 있었으며, 내 남편이 「조」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실제로 난 「아이스크림」의 이야기처럼 아들의 스틱분유에 들어있던 유충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의 단편이 장편이 주는 매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편에서는 조금은 엉뚱하거나 기괴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하게 되는 망상과 같은 것을 그는 이야기 속에 집어 넣어 기가 막히게 정곡을 찌른다. 가령, 「로봇」을 만나는 순간이나 자신이 「악어」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들 조차도 지금, 우리에겐 숨쉬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내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열정적인 사랑은 인간인 당신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 합니다. 그래야 로봇3원칙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30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보내다 만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는 휴대폰과 돈과 신용카드가 잔뜩 든 지갑까지 남겨둔 채, 심지어 입으려던 바지까지 침대 위에 걸쳐둔 채, 그는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살던 아파트 잔디밭에서 악어 한 마리가 발견됐다. 악어는 입이 벌린 채로 죽어 있었다.

p76

 

 

  뉴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의 이야기는 무척 사건적이고 그래서 흥미진진하고 또한 대중적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거울에 대한 명상」이 영화화되었고, <검은 꽃>이 영화화될 것이라는 점을 굳이 꼬집지 않더라고 그의 이야기는 현대인 혹은 미래인의 욕구를 여지없이 충족시켜준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단편집에서 굳이 SF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대인 혹은 미래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이야기는 여럿 있었다. 「조」나 「퀴즈쇼」가 주는 서스펜스적인 요소들이 그러하다.

   ‘조’라는 인물은 우리가 영화나 TV에서 흔히 본 그저 그런 형사의 캐릭터이다. 그런 면에서는 백화점의 점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요소들 간의 차이점은 관찰자에게 있다. 우리는 ‘조’는 눈여겨보지만 점원들을 눈여겨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조」의 이야기가 그저 그런 경찰의 이야기가 아니라, 눈여김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며 여기에 작가는 ‘조’라는 인물이 투입하여 그저 그런 삶이 아니라 일종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서스펜스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퀴즈쇼」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는 TV를 통해 혹은 그 밖의 루트로 일주일에도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을 보고 있다. 우리는 쇼를 보면서 주어진 상금에 대하여 그리고 우승자의 기분에 대하여 아주 잠깐 흥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채널을 돌리면서 마주하게 되는 드라마의 이야기 속에 더 오래 빠져든다. 우승자의 사생활 따위에는 큰 호기심을 갖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후엔 수많은 퀴즈쇼 우승자들이 ‘은이’ 혹은 ‘자말’(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으로 보일 것이다.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이번 단편집은 아주 두꺼운 분량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편이라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때로는 50페이지가 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2페이지짜리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김소진의 짧은 소설과 분량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김소진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유머와 슬픔을 준다면, 김영하의 짧은 소설은 비현실적인 내용에서 현실감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순간 멍해지는 느낌을 받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내 든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추구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청탁이 들어오지 않은 채 쓴 단편들도 많이 실렸다고 하는데 그러하기에 더 자유로운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하지만 난 이번에 새롭게 찍어낸 일괄적인 모든 표지들이 작가의 개성과 자유로움과 거리가 멀어 불편했다. 가장 기계적인 느낌을 주어 미래 독자들의 호감을 목적이어서 아직은 미래인이 되지 못한 내게만 유독 그리 느껴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이번 단편집이 김영하라는 작가에게 품은 개인적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문득 몇 해 전 김영하 작가 홈피에 글을 남기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 때의 홈피는 지금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길을 잃지도 않았다. 그 때 난 늘 끝인사로 ‘사랑하는 하루’가 되라고 남기고는 했는데 그는 아마 이미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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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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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잠깐 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이 책이 우리나라 작가의 손에서 쓰여지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 말이다. 그야말로 요 몇 년 우리나라의 뉴스는 알랭 드 보통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뉴스의 상은 커녕 일반적인 뉴스의 모습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던 상태가 아닌가, 때마침 손석희 뉴스가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이며 그의 뉴스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때이니 이 시점에 '뉴스'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작가가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걸까? 아니면 말을 했는데 영향력이 없어서일까? 어쨌든 영향력이 있는 작가 중에는 이런 책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므로 아쉬움을 느낀다. 아, 심지어 이 책은 표지부터 편집까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보통씨의 문장력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다.

 

20대 때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남녀의 심리에 대하여, 인간 존재의 내면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렇게 그의 글을 읽어오던 중 그의 글이 처음 내가 접했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나 [우리는 사랑일까], [불안] 등에 비해 읽기가 쉬워지면서 좀더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글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반갑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가 대중에게 가깝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한 [뉴스의 시대]를 쓴 것을 만나며 서운함이 많이 가셨다. 님, 이 길로 오시려 그 걸음들을 하신건가요? 이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뉴스의 시대]는 현대 사회에서 뉴스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뉴스를 크게 정치 뉴스, 해외 뉴스, 경제 뉴스, 셀러브리티 뉴스, 재난 뉴스, 소비자 정보 뉴스의 여섯 가지로 나누고 뉴스의 각각의 종류들이 현재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전달과정의 문제는 무엇이고 따라서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다양한 예와 더불어 우리에게 설명한다.

 

올해 우리나라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뉴스 거리가 세월호 침몰 사건이란는 것에는 어떠한 이견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분류로 본다면 그 사건은 재난 뉴스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정치 뉴스로 확대되어 2014년 4월 16일 이후 현재 진행형 뉴스이지만 그것을 끈질기게 보도하며 냄비같은 국민들의 관심을 '의미화'하는 곳은 JTBC 손석희 뉴스 밖에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정치 뉴스에 대하여 말하면서 알랭 드 보통이 쓴 글 중 '뉴스가 제공하는 국가에 대한 소식들이 국가 그 자체는 아니다.(52쪽)'는 문장이 나오는데 어쩌면 많은 뉴스 채널들은 국민들이 뉴스들을 국가 그 자체의 모습으로 본다고 착각하며 그런 뉴스들만 내보내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상당 부분 그것이 통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 속이 상한다. 언론이 국민을 어리석게 보고 국가의 모습을 특정한 모습으로 꾸며대는 것에 우리는 모욕감을 느껴야 하는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고 무릎을 탁 치는 꼴이니 속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뉴스들이 언제쯤이면 정치 뉴스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려나를 생각하면 가지 못할 먼 길처럼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하다.

 

뉴스는 분노에 찬 반응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 뉴스는 우리가 정당한 이유로, 정당한 수준에서, 정당한 시간 동안 화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 건설적인 기획의 일부가 되도록 말이다. (66쪽)

저널리즘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적 삶의 모든 사안을 다루는 망명정부다.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77쪽)

 

개인적으로는 재난 뉴스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가장 크게 공감을 하였는데, 이는 늘 내 마음 속에 간직하는 생각인 '인간은 광활한 우주의 티끌만한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철학자로서의 알랭 드 보통을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사고에 관한 뉴스는, 삶이란 게 이렇게나 취약하고 우리 앞에 몇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게 결코 보장될 수 없다면, 오후 내내 사랑하는 사람과 말다툼을 벌이고 조그만 잘못을 저지른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려 하거나 변변찮은 한직에 있다는 이유로 진정한 재능을 가진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233쪽)

 

사실은 한 번을 더 읽고 나서야 리뷰를 쓸 수 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중간에 책을 읽다가 잃어버리고서야 다시 읽게 되어 신간 평가단 리뷰 마감일이 다 되어서야 겨우 한 번을 읽게 되었다. 이 리뷰를 쓰고 나면 다시 한 번 읽을 생각이다. 많은 밑줄들이 그어 있는 책이라 그리고 오랜만에 읽는 보통의 책이라 곱씹어 보고 싶다.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닌가라고 품었던 의문들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책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볼 참이다. 그렇다고 리뷰를 다시 쓸 것 같지는 않다. 역시나 글은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같은 책은 두 번 세 번 읽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지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쓰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읽으면서 던지는 질문들과 해답들은 그저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련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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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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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나도 책을 읽다가 영화로 어떻게 나왔나 하도 궁금해져서 딱 읽은 부분만큼만 영화를 봤는데 확실히 속도가 빨라서 얼마 못 보고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조만간 나머지 부분을 영화로 확인하고 싶다.

 

읽으면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변호가 마이클 할러는 분명히 해리보슈 형사나 테리 매케일렙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그 둘은 다소 비슷한 면이 있는데 말이다.

 

돈생돈사의 속물 변호인으로 대박 고객만을 선호하며 유죄인 고객들의 형량을 낮게 해 주는 것을 커리어의 최선으로 보는 변호사 미키 할러,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의뢰인은 바로 '무고한 사람'이었고 자신은 아직까지 그런 사람의 의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루이스 룰렛의 변호를 맡으면서 알게 된 자신의 큰 실수를 발견하면서 '범죄자 제자리에 돌려놓기'를 은밀히 진행하는 만큼 그가 영 속물은 아니다. 전처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보아도 그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몇몇 장면이 매우 영상적으로 느껴졌는데 첫번째가 레지나 캄포의 얼굴을 보면서 마사 렌테리아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보다는 소설 속에서 더 묘사가 잘 되었다.

 

 

웨이트리스가 가고 나는 다시 파일에 집중했다. 우선 파일 밑에서 레기 캄포의 사진을 꺼내 상하지 않은 왼쪽부터 살펴보았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파일로 사진을 가리고 얼굴의 성한 부분만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정확히 꼬집어낼 수는 없지만 또다시 너무나도 낯이 익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알고 있거나 안면이 있는 여자와 닮은 거이다. 하지만 그게 누구지?

 

그 해답을 알기 위해 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커피를 홀짝거리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결국 나는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캄포의 ㅅ얼굴 사진 가운데를 길게 접어 한쪽으로는 훼손된 오른쪽 얼굴이, 그리고 다른 쪽으로는 깨끗한 왼쪽 얼굴이 자리 잡도록 만든 다음, 사진을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세면대로 달려가 접은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세면대에 상체를 구부리고는 사진의 금을 거울에 대고 레기 캄포의 성한 얼굴 전부가 드러나도록 해보앗다. 나는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본 다음에야 그 얼굴이 왜 그렇게 낯익었는지 알아냈다.

"마사 렌테리아."나는 중얼거렸다. (191-192쪽)

 

 

두번째 장면은 미키 할러가 지저스 메넨데스를 찾아가 사진을 들이미는 장면이었는데 영화는 좀더 빨리 범인의 얼굴을 보여줘서 긴장감은 덜했고, 긴박감은 더했다.

 

 

 

 

 

 범인이 범인임을 자백하는 것도 영화가 훨씬 직접적이다. 그러니 사건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면 소설을 읽을 것을 권한다. 그런 다음 정리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 영화만 보는 것보다는 혹은 영화를 먼저 보는 것 보다는 이해의 폭이 더 넓어져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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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람 권정생 - 발자취를 따라 쓴 권정생 일대기
이기영 지음 / 단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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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람, 권정생

 


                     임길택
 

어느 고을 조그마한 마을에
한 사람 살고 있네.
지붕이 낮아
새들조차도 지나치고야 마는 집에
목소리 작은 사람 하나
살고 있네.

 

이 다음에 다시
토끼며 소며 민들레 들
모두 만나 볼 수 있을까
어머니도 어느 모퉁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잠결에 해 보다가
생쥐에게 들키기도 하건만
변명을 안 해도 이해해 주는 동무라
맘이 놓이네.

 

장마가 져야 물소리 생겨나는
마른 개울 옆을 끼고
그 개울 너머 빌뱅이 언덕
해묵은 무덤들 누워 있듯이
숨소리 낮게 쉬며쉬며
한 사람이 살고 있네.

 

온몸에 차오르는 열 어쩌지 못해
물그릇 하나 옆에 두고
몇며칠 혼자 누워 있을 적
한밤중 놀러 왔던 달님
소리 없이 그냥 가다는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그러나 몸 가누어야지
몸 가누어
온누리 남북 아이들
서로 만나는 발자국 소리 들어야지
서로 나누는 이야기 소리 들어야지.

 

이 조그마한 꿈 하나로
서른 넘기고
마흔 넘기고
쉰 넘기고
예순 마저 훌쩍 건너온 사람.

 

바람 소리 자고 난 뒤에
더 큰 바람 소리 듣고
불 꺼진 잿더미에서
따뜻이 불을 쬐는 사람.

 

눈물이 되어 버린 사람
울림이 되어 버린 사람.

 

어느 사이
그이 사는 좁은 창 틈으로
세상의 슬픔들 가만히 스며들어
꽃이 되네.

 

꽃이 되어
그이 곁에 눕네.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 시가 동화작가 임길택이 폐암 투병 중 죽음을 앞둔 두 달 전에 권정생의 환갑에 헌정한 시라는 그 사연을 책의 말미에 읽으며 또한번 울컥했다. 아, 이들은 서로를 참 사랑하였구나!

 

시인의 낭독회에서 한 시인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이라며 <권정생의 유언>을 낭독해주었다. 그 일부가 이 책에도 소개되기는 한다만 그때 시인의 목소리로 들은 그 유언은 슬프지 않았고 아름다웠다. 선생님 말씀대로 '용감하게 죽겠다'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을 몇 안되는 작품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그분의 삶으로 걸어들어갈수록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분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분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 이런 작가가 있었다는 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40년을 소변 주머니를 몸 바깥으로 차며 곧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그림자처럼 데리고 살았으나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사람, 농사를 짓고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중한 일로 여기었으나 자신의 몸이 병약하여 그리하지 못해 늘 마음 아팠고 미안해했던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르게 꾸려가고자 했던 사람, 그런 권정생이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온몸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워한 것이었을 터이다.

 

책을 읽으며 [강아지똥]을 탄생시킨 그분의 철학인 '거꾸로'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한다. 똥이 꽃보다 더 아름답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그 말씀을 귀히 여길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비약적인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인 지경이라 그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노력해야겠다 싶다. 사실 나와 경험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분의 책 중 일부만을 좋아하고 다른 책들은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쩌면 독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의무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오덕, 이원수, 정호경, 이현주와의 인연 그리고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처음으로 다 알게 된 이 경험이 소중하다.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병약한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고, 해학적 삶의 태도를 가졌다하니 희망과 중심과 해학이 고스란히 담겼을 그의 작품을 읽고 읽어주고 간직하는 노력을 해 보아야겠다.

 

 

세상 보는 눈을 달리했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다르게'는 남들과 같지 않다는 '차이'에 불과하지만 '거꾸로'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내보이며 기존의 것을 반대로 뒤집는 것이다. 그래서 권정생이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되었다고 하는 말에는 세상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이 담긴다. 돈과 권력을 쥔 부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거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이 권정생이 '거꾸로'보는 세상이다. -122쪽

 

전쟁이 '바로 지금' 오늘의 문제가 되었을 때 권정생 동화는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동화를 읽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외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새로운 이야기를 낳는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며 이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정생은 안동 조탑리 작은 마을에 사는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어주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고 내일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이어지게 될 것이다. - 253,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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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1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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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9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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