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 위대한 생각 시리즈 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 에밀 졸라의 책이 꽤 여럿 있다. 주로 세계문학전집에 구성된 것인데 사놓기만 했지 읽지를 못했다. 아마 그 책들을 산 데에는 화가들의 삶을 쓴 책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책에서도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로 대변되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한 드레퓌스 사건의 전말과 에밀 졸라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전진하는 진실]은 1901년에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한 팸플릿과 기고문 열세 편을 모은 책인데 이번에 출간된 은행나무 출판사의 [전진하는 진실]은 그 외에 역자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정보와 관련 인물들에 대한 내용과 에밀 졸라의 인터뷰 및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까지 포함하여 600쪽에 가깝게 엮은 책으로 원작보다 독자에겐 더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저 사건의 이름과 에밀 졸라의 영웅담만 알고 있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1894년 드레퓌스 대위가 반유대주의에 근거한 편견으로 인해 반역의 누명을 썼다. 그가 누명을 썼다는 것이 이후 피카르 소령에 의해 밝혀지지만 군부의 결정을 번복하지 못했다. 처음엔 아마 정부의 말을 대부분이 믿었겠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에 양식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다. 상원의 부의장인 오귀스트 쉐레르-케스트네르가 그러하고, 베르나르-라자르, 조르주 클레망소 그리고 에밀 졸라가 그러했다. 처음엔 에밀 졸라도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드레퓌스와는 전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오로지 '진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진실'을 향해 '전진'하였고, 그로 인해 비록 자신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지만은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글을 읽다보면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겹치는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령, 다음의 문단에서 '드레퓌스'를 '세월호'라고만 바꿔도 우리는 졸라의 육성을 지금 이곳에서 듣는 듯하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책의 구석구석이 19세기 말의 프랑스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따라서 에밀 졸라의 일침은 그대로 우리 사회에 박힌다. 그런데 그때 에밀 졸라의 비난을 받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지금 우리 나라의 그 대상들도 아마 귀닫고 눈감고 생각 빼고 욕심만 채우는 중이겠지....

 

나라가 고통받고 있다면 그 책임은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236쪽)라는 직언과 순진한 민중의 머릿속에 손쉽게 확신을 주입하고자 하는 소름끼치는 책략, 역겨운 계산 속에 비롯된 행동인 것입니다(255쪽)라던가 혐오스러운 불의 앞에서 그것을 막을 힘도 바로잡을 힘도 없는 정치가들의 무능력의 소산인 것입니다(371쪽)라는 비난은 그때 거기나 지금 여기나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자신들은 모르는 바보들의 나라인가 싶은 마음이 든다. 하긴 우리가 아는 바보는 다 착한 사람이니 그저 악당이라고 밖엔. 1부-3에 수록된 인터뷰 중 에밀 졸라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는 더 이상 예전의 프랑스가 아닙니다. 건드리는 것마다 썩게 만드는 부패한 정권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확신도 원칙도 없이, 오직 돈에 대한 사랑과 정치적 책략만이 난무하는 그런 정권 말입니다." (418쪽)

 

어떻게 이것을 그때 거기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평행이론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 세월호에 관한 그 어떤 책보다도, 아니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부조리에 대한 직접적인 책보다도 더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 바로 에밀 졸라의 [전진하는 진실]인 것이다.

 

후에 프랑스 내각의 수상이 된 조르주 클레망소는 군부와 교회의 전통적 권력에 맞서는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명성을 걸고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에 뛰어든 이들을 가리켜 '지식인들(intellectuels)'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 이름에 걸맞게 에밀 졸라는 자신의 모든 명성을 걸고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 전진하였다. 그는 진실이 밝혀지길 두려워하는 범죄자들에 맞선 정의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명성은 물론 안위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았다. 때문에 드레퓌스의 명예회복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스는 결국 그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에밀 졸라와 당시의 지식인들을 보며 마음이 끓어오르다가 문득 우리에겐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꾸준히 집회를 통해서 그리고 책을 통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걸고 진실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에밀 졸라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미칠 때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지금은 21세기이고 작은 힘들이 모여 큰 힘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힘있는 에밀 졸라를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에겐 한데 모여있는 모두가 에밀 졸라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위대한 생각'이라는 타이틀로 시리즈로 출간되는 두번째 책이고 편집과 내용이 무척 알차고 만족스러운 책이다. 다만 각 권이 모두 취향이 다르므로 한꺼번에 사서 읽기 보다는 한 권 한 권 도서관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살펴보고 살 것을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샤를 보들레르)나 [독서에 관하여](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을 읽다가 취향에 맞지 않아 덮었다. 다음으론 찰스 디킨스의 [밤산책]을 읽을 예정인데 [전진하는 진실]이 19세기말 프랑스의 모습이라면 이 책은 19세기 런던의 사회를 보여준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예전에 기대 잔뜩하고 읽은 윌키 콜린스와의 공저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는 대략 난감했었단 말이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1-27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5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의 잭 매커보이와 레이철 월링, [시인의 계곡]의 레이철 월링과 해리 보슈 그리고 다시 [허수아비]에선 잭 매커보이와 레이철월링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단 하나의 이론은 해리 보슈의 '단발 이론'이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며, 그로 인한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는 자신의 전처 엘리노어에 대한 사랑을 두고 한 말로 나는 읽지 못했지만 [로스트 라이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책 이전에 읽은 [에코 파크]에서도 언뜻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결국 그들은, 서로의 단발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해리보슈와 레이철 월링의 관계가 좋은데 뭐 해리도 레이철도 서로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 관계는 아닌 것으로!

 

[허수아비]에서 레이철은 다시 만난 잭에게 단발 이론을 설명한다. 그녀에겐 고백인 셈이다.

 

"그게 아니라 평생의 사랑을 의미하는 거야. 누구에게나 진정한 사랑은 한 발의 총알처럼 단 한 사람뿐이란 거지. 운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나 그 총알에 일단 가슴이 뚫리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대. 불륜, 이혼, 죽음 등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야. 그게 바로 단발이론이야."

 

"아니, 그 남자는 자기가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하더군. 난 이미 다른 남자한테 한 방 먹은 다음이었거든. 그 남자 앞에 왔던 남자한테 말이야."  (194-195쪽)

 

내가 지금 로맨스 소설을 소개하는 건가 범죄 소설을 소개하는 건가 무척 헷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에코 파크]도 [허수아비]도 로맨스에 더 집중이 된다. 뒤표지에는 두 번 읽을 작품이라느니,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내고 있다는 말은 다소 과장된 것 같지만 범인 웨슬리 카버의 범죄 수법과 그의 별명 허수아비가 만나는 지점은 순간적으로 놀랐다. 처음부터 범인을 안 상태로 읽었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내가 동의하건 안하건 간에 어느 정도는 뒤표지의 수식어들이 옳은 것 같다.

 

 

이 책을 '시인 3부작'이라고 부륵 보단 '레이철 월링3부작'으로 불러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누가 쓴 어떤 역사도 과거를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서문과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알면서도 우리는 누군가의 역사서를 맹목적으로 믿곤 한다. 그런 것에 대한 경계를 저자가 스스로 하는 책은 드물다. 모두들 교주처럼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이 책은 유시민이 쓴 '나의' 한국 현대사이고 서문에 밝혔다시피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이기에 일면 이 글이 한쪽에 치우치면 어쩌나 싶은 우려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그를 늘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가진 생각의 기초는 공감했던 터라 나같은 사람까지는 괜찮아도 혹시라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읽었을 때의 반감을 걱정했다. 이 모든 것은 기우였다. '나의'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는 객관적으로 현대사를 조명했다. 나는 그 안의 일부를 살아왔지만 내가 살지 못한 내 삶 이전의 그의 기록에 많이 공감했다.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지는 것은 내가 가진 평안을 지켜준 이전 세대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아울러 미래 세대를 지켜주는 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역사를 기술하는 그는 단호했다. 이승만과 전두환의 악에 대해서 가차없이 말을 하고 역사 속에서 악인으로 낙인 찍혀야 할 사람들과 의인으로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을 다해 나열한다. 설령 사회적으로 나쁜 평판을 듣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때의 의로움에 대해서는 망설임없이 인정한다. 가령, 노태우 전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점이 그러하다. 나 역시도 남북관계의 물꼬는 김대중 대통령이 텄고 그러하기에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북을 처리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처음 대한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 이후 김일성의 죽음 및 여러 상황 때문에 다시 관계 악화가 된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실패는 지금에 와서 읽어도 무척 안타깝고 두 전직 대통령들이 원망스럽다.

 

정치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우리 나라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재기의 과정 역시 데이타와 경험을 통해 잘 보여주어 갑작스럽게 성인이 되자마자 IMF를 맞은 나로서는 전후 인과관계를 잘 몰랐었는데 늦게나마 제대로 알게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 발전을 위해 독재를 선택했다는 설명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어쩌면 그에겐 자신을 합리화할 정당한 명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그 명분이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는 양해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좀더 빨리 마무리 되었고 스스로 물러났더라면 어땠을까, 그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더 호의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점을 지금의 대통령도 거울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난 정권들에서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경제 정책들을 다시 되풀이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안전에 관한 규제는 절대로 풀어야 할 대상이 아님을 큰 사고를 통해 그것도 여러 번 겪었으니 제대로 인식하기를 바랄 뿐이다.

 

영광과 승리로 이루어진 역사는 그의 말처럼 있을 수 없다. 상처와 좌절 그리고 극복의 현대사를 그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하기에 앞으로 펼쳐질 현대사 역시 그렇게 되기를 그는 바랄 것이다. 아니 우리는 바란다. 과거의 잘못된 일은 제대로 사과하고,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또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야만적인 행동은 해서는 안된다. 얼마 전 읽은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그저 별이 남긴 '먼지'일 뿐이다

 

책의 후반부에 그는 이런 글을 적는다.

 

만약 미래의 아이들이 오늘보다 더 훌륭한, 최소한 지금보다 덜 추한 대한민국에서 살게 된다면, 그런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은 바로 이러한 공감과 공명에서 나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한국현대사」 p415

 

공감과 공명,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필요한 시대이다. 마음이 아픈 현대의 우리들에게 이 책을 권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1-01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4-11-01 15:32   좋아요 0 | URL
끝내주는 그 책, 찾아 읽어보겠어요!!
 
말공부 - 2500년 인문고전에서 찾은
조윤제 지음 / 흐름출판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전히 제목의 ‘공부’라는 글자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기술’이라던가 ‘방법’이라고 했더라면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나름의 고민이 있는 터라 ‘말공부’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달변이라고도 하고 유머가 있다고도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나는 말을 적게 하려고 노력한다. 낯가림이라고 둘러대지만 실은 그들과 말을 많이 한 후에 한꺼번에 느껴지는 괴로움이 너무나도 싫기 때문이다. 말은 내뱉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음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아 가벼이 대할 수 없다. 참말로 ‘공부’가 필요한 분야라 하겠다.

 

‘2500년 인문고전에서 찾은’이라는 수식은 알고 보니 중국 고전에 한한 표현이었다. ‘2500년 중국 고전에서 찾은’이라고 써야 옳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책장에서 [장자]나 [사기]를 당장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아직 만나지 못한 [논어]나 [여씨 춘추]같은 고전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으므로 일단 2차 글로서의 역할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넘어가기로 했다. 이는 저자가 인용한 고전 속의 말에 관한 경계를 담은 글이나 좋은 말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글에 공감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자칫 말의 기술에 관한 흔한 자기계발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저자가 원전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한 글이 전체적인 중심을 잘 잡아주어 가벼운 인문 서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논어], [장자], [사기], [한비자]를 비롯하여 오랜 중국의 고전들 속에서 말에 관한 글들을 인용하며 일일이 해석해주고 현실 속의 실제 예나 현대의 책들에 실린 글귀들과 잘 버무려서 열 가지 말의 수칙을 제시한다. <촌철살인>, <언중유골>, <지피지기>, <언어유희>,<우화우언>, <이류이추>, <이심전심>, <일침견혈>, <선행후언>, <일언천금>이 그 열 가지인데 잘 알려진 사자성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모두 새겨 익힐 만한 이야기들이다. 기세를 잡는 가장 강한 방법으로서의 ‘촌철살인’과 상대의 말문을 막는 방법으로서의 ‘일침견혈’ 그리고 반전과 한 방에 효과적인 ‘언어유희’에 대한 글을 읽으며 순발력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고, 상대를 배려하여 돌려 말하는 ‘언중유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지피지기’,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이심전심’, 언행일치와 상통하는 ‘선행후언’ 및 말의 힘을 느끼게 한 ‘일언천금’을 통해서는 말 이전에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인용과 비유의 ‘이류이추’와 스토리텔링의 ‘우화우언’을 통해서는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다 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두 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다. 말을 공부한다는 것이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말이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만큼 공부가 필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달변보다 어려운 것이 ‘참말’이다. 결국 마음을 얻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중혁 공장장은 2013년부터 수필 공장의 일을 줄여보기로 했다. 가장 큰 업무인 '메이드 인 공장' 생산 말고는 주문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 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고, 수필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김중혁 글공장의 주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134쪽)

 

그러지 마요. 제겐 소설가 김중혁만큼이나 에세이스트 김중혁도 소중하니까요. 굳이 자신을 소설가의 틀에 가두지 말아주세요....라고 혼잣말을 건넨다. 공장 탐방기 중간 즈음에 자신의 글공장을 소개한 작가의 작업 과정을 직접 설명을 듣고 나서 이렇게 글로 다시 만나니 더욱 그의 글이 소중하다.

 

 비단 김중혁 글공장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공장에 하층민의 삶의 이미지를 투영해왔다. 그의 아버지가 공부 안하면 공장 보내버린다는 말은 마치 평강 공주에게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는 말처럼 일반적으로는 모욕적인 말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당차게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간다고 했던 평강 공주가 온달 장군을 만들었듯이 김중혁 작가는 공장에 취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공장들을 방문하여 그 작업 과정에 한층 가까이 들어간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의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평강 공주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을 해냈다.

 

 

 

 

그가 탐방한 공장은 김중혁 글공장을 제외하면 제지 공장, 콘돔 공장, 브래지어 공장, 간장 공장, 가방 공장, 지구본 공장, 초콜릿 공장, 도자기 공장, 엘피 공장, 악기 공장, 대장간, 화장품 공장, 맥주 공장, 라면 공장의 14곳이다. 처음 초콜릿 공장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에세이스트로서의 김중혁 작가를 만난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런데 한 편 한 편의 탐방기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장인 정신'이다. 어느 한 제품 하나 사람의 손길과 애정이 담기지 않은 물건이 없으며, 그것들이 많이 들어간 물건일수록 비싸지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는 많은 공산품들을 너무나 저렴하게 구매하고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손길과 애정이 덜 들어간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귀하게 만든 물건을 귀하게 쓰는 것이 값싸게 구입해서 부담없이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령, 피아노를 반려 동물처럼 대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공장 탐방기를 읽으며 그 진지한 공장의 작업 세계를 엿보고 작가와 함께 사색하고 그의 글과 그림의 맛에 빠져드는 일만큼이나 나를 붙들어맨 것은 도대체 그 공장이 어디인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14곳의 공장 중에 본문에 회사 이름이 나온 하이트 맥주와 엘피팩토리 그리고 농심 라면 공장을 제외하고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마침 몇년 전에 구입한 지구본의 회사인 서전 지구 뿐이었다. 스마트 폰으로 찍어서 정보를 보여주길래 그 자리에서 구입하고선 나중에 LED별자리 되는 것으로 구매할 것을 하는 후회를 하며 동시에 이런 기술력에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선명히 다시 살아났다. 글을 읽으니 그들의 기술력이 자랑스러워졌다. 콘돔이나 브래지어 공장의 경우는 그 공장을 탐방하기 전 붉어진 작가님의 얼굴만큼이나 지하철에서 부끄러움이 솟아나 결국 집에서 혼자 읽었지만 종류를 가리지 않고(아마 심혈을 기울여 골랐을 것이라는 뜻과 상통한다 ) 다양한 공장들을 만나게 해 주어서 고맙다. 기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이후 내 머릿속에서의 공장은 기계적이고 획일화되고 생각이나 느낌이라고는 존재할 수 없었던 곳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좋은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의 경우 예술의 경지에 근접하지 않았는가 하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우리의 삶도 공장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에 좌우될 것 같다. 좋은 공장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부디 인간 공장이 망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공장이란 곳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호의와 선의'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다. 또한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기도 하다. '절박한 필요'가 '호의와 선의'를 이길 때 음식물에다 이상한 물질을 때려 넣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다. '호의와 선의'가 '절박한 필요'를 이길 때, 안타깝지만 공장은 망한다. (21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