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연인] 통속을 거부한 ‘커플 실험’/김영민
글과 남자 사이에서 ‘동무’ 선택한 보부아르
그들의 사귐은 ‘말’ 서로의 ‘입’을 서로의 ‘귀’를 지적 반려자로 원했다
한겨레

동무와 연인/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정체를 작가로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스타벅스’ 커피점의 2층 풍경이 아니다.) 글과 남자! 이 20세기 여성주의의 대모는 글과 남자의 사이에서 여자의 길을 선구적으로 뚫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었으며, 그 속에서 남자는 변치않는 고민거리였다. 당대의 누구보다도 먼저 ‘동무’의 가치를 꿰뚫어본 이 비범한 여성도 사랑이 종종 삶의 더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것일까? 뚜렷한 주관을 갖고 행동함으로써 전통적 여성상에 맺힌 남성의 오해를 떨어내려던 보부아르였건만, (그녀가 비웃었던 미국여자들처럼) 사랑했던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리기도 했다.

“사트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며 자유 그 자체였어요!”라며 특유한 동무 관계를 자만했지만, 실상 그는 순수한 의식과 자유만이 아니라 왕성한 성욕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의 못난 외모와 명성 사이의 괴리에 매혹되기도 했고, 사르트르는 오직 오쟁이를 지울 목적으로 매력없는 유부녀들을 탐하기도 했다. 모국어를 사랑했던 사르트르가 건들지 않는 여성이라고는 외국여자들뿐이었는데, 아무튼 이들 동무/연인 사이의 기나긴 갈등에는 사르트르의 쉼없는 바람과 보부아르의 맞바람이 한 몫을 했다. 사르트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무런 철학 없이 연애에 빠졌고, 보부아르는 나름의 연애철학(‘과거에 고착되거나 그것을 내팽개치지 말고 새 미래를 만드는 데 애쓰자’, 는 W. 제임스 식의 실용주의 준칙)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사르트르보다 적게 섹스하고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부아르의 글 역시 가히 대가급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만은 오히려 삶(사람)을 내세웠고, 대신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에게 연인관계는 늘 부차적이었지만, 보부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일차적, 우선적인 사안도 아니라는 자가당착이 그녀의 문제였다.) 스스로 밝히곤 했듯이, 보부아르의 행복은 사르트르와의 ‘상호 이해’에 의해서 보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의 향락은 환영할 만했지만 세상을 향한 지식에 비해 애써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최고의 소망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것”(sola vita!)이었고, 사랑은 그 삶의 귀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보다 더한 삶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초자아)가 없는 시공간을 글로 채우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갔다. 여행 중에도 풍경보다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자동차 본네트를 깔고 앉아 몇 시간씩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느라 동행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는 <말>(1964)에서 고백했듯 우선적으로 책과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아는 여자의 생활은 ‘제2의 성’의 운명처럼 먼저 남자들의 세상 속에 내던져지고 부대끼는 게 우선이었다.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이지만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이 괴리 속에서 연인의 길과 동무의 길은 희비극적으로 어긋난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이 속박도 알리바이도 아닌 여자는 거의 없다는 객관적 사실 속에 이미 그녀의 운명은 깊이 얽혀들어 있었다. 깬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와 그 표상이 마치 맞지 않는 신발처럼 어색하다면,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을 쓰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익명의 개인(남성)을 주제로 그 개인의 의식과 자유를 분석하거나 계급 갈등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여성의 세계를 다 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마저 전형적인 갈등의 요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기의 연인/동무들에게 인간은 새로 창조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함께 미래의 인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남녀를 얽어 옥죄는 낡은 타성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통속한 것일까? 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

그 성취와 가능성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보부아르가 두려워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 인형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적 반려자의 자리였고, 사르트르의 주변에 그 싹이 돋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연인 넬슨 올그렌(N. Algren)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사르트르와의 우정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사르트르처럼 편집병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서도 말과 글은 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년의 보부아르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산하면서 요약한 부분도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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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9-0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쟁이 [명사] 짚으로 만든 작은 섬.
 

제 서재 마이페이퍼에 댓글을 써도 올라가질 않네요.

[더좋은샘] -'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 밑에... ㅠㅠ


이게 무슨 조화인지....

세 번이나 댓글을 썼는데 다 날아갔다는...

님들... 우찌된 영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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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8-3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는 것은 제대로 보이는뎁쇼. 댓글 1,2,3 말이죠. 잘 보입니다요.

해콩 2006-08-3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보이는 건 문제 없는데 제 서재에 제가 쓴 댓글은 올라가질 않는답니다.
어제 한 번, 오늘 두 번... 세 번이나... --;
좀 전에 알라딘측 답변으로는 재부팅하면 괜찮을 거라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재부팅하고 글 쓴 거였거든요.. (이것도 날아가려나?)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시도를... 일상으로 돌아오니 글쓰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다시 게을러져서.. ^^;

잘 계시죠? ^^

해콩 2006-08-3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무사하군요. 그럼 다시 한 번 시도를? ... 집에 가서!! 건강하세요~

BRINY 2006-08-3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거기에 댓글 썼는데, 3번이나 도전했는데 다 날라갔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도 안되고 집에와서 해도 안되요.

BRINY 2006-08-3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는 댓글 달리는데 왜 거기만?

해콩 2006-08-3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이상한 거죠, 그쵸? @.,@
아직 학교랍니다. 아이들 수행평가 채점했어요. ^^; 능력없는 교사라 여지껏..
이제 집에 갈랍니다. 집에서 함 도전해봐야지. 안녕히 주무3

해콩 2006-09-01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오늘 아침도 여전히 그 곳만 댓글이 달리지 않아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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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1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너무 외로워마세요~~ 토닥토닥~~
 

‘윤두서 머리통 자화상’ 수수께끼 풀렸다 [한겨레]

 

그림 밑바탕에 색칠도 드러나 “미완성 인물상 아니다” 몸체 그린 방식은 아직 못밝혀

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8세기초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국보 240호·해남 윤씨 종가 소장)은 그림을 둘러싼 숱한 수수께끼로도 이름높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 이 절세의 초상화는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통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뛰어난 사대부 지식인이던 공재가 당대 유교적 미의식을 정면으로 벗어나면서까지 엽기적 자화상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가. 왜 이 걸작은 미완성 그림처럼 남았을까.

한국 미술사학계의 첨예한 논란거리였던 공재의 ‘머리통 자화상’에 얽힌 비밀이 최근 상당부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지금도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그림이었다. 자화상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단지 이런 부분들이 후대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윤두서 자화상>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밝혀냈다. 연구팀은 박물관이 최근 펴낸 <미술자료>74호에 ‘윤두서 자화상의 표현기법 및 안료 분석’이란 글을 싣고 상세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우선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져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공재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사가 오주석이 지난 96년 조선총독부 자료인 <조선사료집진속>(1937년 간행)에서 상체 윤곽이 보이는 당시 공재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은 “원래 윤두서 자화상은 밑그림 그릴 때 쓰는 유탄(버드나무 숯)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원래 자화상에 있던 공재의 상체 그림이 후대 표구과정에서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라진 몸체를 그린 방식을 놓고 벌어졌던 학계의 논란또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림 화면 앞 표면에 몸체를 그렸다는 오주석의 주장에 대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옛 자화상 사진에 보이는 옷주름은 뒷면에 윤곽선을 그린 이른바 배선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양보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자화상의 사진은 그림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찍었기 때문에 뒷면 옷주름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렇다면 박물관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보인다. 박물관쪽은 현존 <자화상>의 화면 앞쪽을 현미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화폭 앞 표면에 어깨 부분 옷깃, 옷주름 등을 그린 듯한 부분적인 선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외선 사진에서 확인된 것처럼 몸체의 형상을 이루는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 통상 적외선 조사는 안료 등으로 가려진 먹선, 즉 채색화의 밑그림이나 먹글씨를 확인하는데 주로 쓰인다. 선이 연속되도록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먹의 탄소 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해 먹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화상 전면에 보이는 일부 선의 흔적보다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난 몸체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한 만큼 앞 표면의 윤곽선이 적외선 사진의 윤곽선으로 찍혔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보면 그림 뒷면에서 선을 그려 비쳐보이게 하는 얼개로 몸체를 나타냈다는 이태호 교수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단정은 어렵다. 이 그림이 액자로 표구되면서 배접(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 뒷면에 다른 종이를 포개 덧대는 것)된 탓에 현재 뒷면을 드러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몸체의 선들이 앞면에 그려진 유탄 혹은 먹선의 흔적인지, 그림 뒷면에 그린 윤곽선인지는 그림 뒷면을 제대로 조사한 뒤에야 규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하지만 연백과 진사 안료를 써서 그린 양쪽 귀의 윤곽이 현미경 관찰로 얼굴 가장 자리에서 발견되어 공재 윤두서가 귀를 그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입증됐다. X선 촬영을 통한 안료 분석 결과 선으로만 그렸다고 여겼던 자화상의 안면과 몸체, 탕건과 귀부분 등도 화면의 뒷면에 은은하게 채색하는 배채법으로 색칠되어 있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논란의 대상인 몸체의 도포는 전체가 흰색으로 은은하게 배채가 되어있었다. 뒷면에 칠한 색감을 투명하게 비치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종이는 젖은 상태의 종이를 여러장 겹쳐 두드려 한장의 종이로 만드는 이른바 도침(搗砧)가공이 이뤄진 종이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결국 미완성처럼 보였던 공재 윤두서의 초상은 사실상 완성품으로 봐도 손색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인물상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미술부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지워진 줄 알았던 자화상의 상체 부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점과 배채 채색 사실을 확인한 점이 큰 성과”라며 “액자로 표구하면서 배접지가 붙어 배채법을 쓴 몸체의 색감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체를 앞 화면에 그렸는지 화면 뒤에 그렸는지의 논란은 앞으로 그림을 다시 표구하기 전까지는 풀리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분석결과로는 뒤에서 그렸을 가능성에 근접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초본으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미완성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윤두서 자화상>은 그의 후손들이 60년대 말려져 있던 것을 펼쳐서 액자에 표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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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남에서 보았던 그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대단하군요.. 가져갈게요^^

바람돌이 2006-08-0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갈게요. ^^

해콩 2006-08-0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어서들, 많이들 퍼가3

水巖 2006-08-09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서재에 들렸다가 처음 방문하는군요,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라 초면에 처음 들려서 퍼 갑니다. 감사합니다.

해콩 2006-08-0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수암님... 얼마든지 퍼가세요~ 그런데 국립박물관에 가면 이 그림 원본을 볼 수 있나요?

水巖 2006-08-0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것은 개관특별전때인 2005년에 전시하고 원 보관자인 해남 윤씨 종가로 갔다고 보는데요. 이 기사도 조금은 과장된듯 싶군요.
현미경으로 관찰로 귀를 발견했다고 하였는데 1985년판 '한국의 미' 20권에 나온 자화상에는 흐릿하게나마 귀 부분이 보이던데요.

2006-08-10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6-08-1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긁어오려했는데 이미 하셨군요 ^^* 가져가겠습니당.

가넷 2006-08-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께요..^^;

BRINY 2006-08-1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1정 연수에는 미술사가 오주석과 친분 있는 강사들이 대거 강의를 맡으셨는데, 어제도 바로 저 그림 보면서 유탄으로 그려진 부분이 표구할 때 잘못해서 다 지워졌다라는 설명으로 들었었는데...

해콩 2006-08-1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 그랬구나.. 재미있었겠당... 브리니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연수는 이제 막바지죠? 더운데 우리 모두 수고가 많아요, 그쵸? 맘에 드는 강의는 있으셨나요? 저는.. 있어요. 지금 그 선생님이 내주 과제 열심히 하는 중!! ^^ 건강 조심조심 나머지 연수 잘 마치세요~

BRINY 2006-08-1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직 빼고는 다 맘에 드는 편이여요. 귀동냥한 참고도서 또 보관함에 넣고 있어요. 해콩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 마지막까지 즐겁게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