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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의 샹그릴라(香格里拉) 이야기
2005/10/21 오후 4:35 | 기본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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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香格里拉)

샹그릴라(香格里拉)는 영국인 작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유토피아, 무릉도원등과 같은 맥락의 “낙원”을 상기시키는 이상향의 상징어가 되고 있다.

이 샹그릴라(香格里拉)의 어원은 장족언어의 한 갈래인 방언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 가운데 "香"과 "格"는 중디엔(中甸)지역의 옛 장족의 발음이라 한다. 현지 장족의 마음 속에 "香格里拉"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

위에 언급한 책 내용은 식민지의 반란으로 급히 피난하게 된 바스쿨의 영국 영사 콘웨이가 우연히 일행들과 납치되어 히말라야 산중에 있는 라마교 사원인 “상그릴라”에 도착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소설이 출판된 후, 1944년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하여 샹그리라라는 이름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은 현실 속에서 나타났다.

이후, 반세기 동안 실제로 수많은 탐험가, 여행가, 지리학자들이 소설 속에 나온 샹그리라를 찾아 인도, 네팔, 티벳 등지를 뒤졌지만 소설 속에서 묘사한 풍경과 일치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시 반세기 후 중국 운남성 더친/장족 자치주 경내에서 샹그릴라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1997년 9월 14일 중국 정부는 비로소 샹그릴라가 중국 운남성 더칭 장족 자치주 경내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 근래 들어 샹그릴라(香格里拉)의 명칭을 들고 운남성과 사천성의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 운남성이 공식적인 지역명칭을 얻어 종디엔(中甸)이 샹그릴라(香格里拉)의 명칭을 얻게 되었으며, 현재 발간되는 운남성 지도에서는 이제 종디엔(中甸)현이라는 명칭대신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낙원인 샹그릴라(香格里拉)현 이라는 이상향이 지리적으로 우리 현실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샹그릴라("香格里拉")의 비밀, 과연 그곳이?

5년 탐사 끝 티베트서 샹그릴라로 통하는 길 발견.

'샹그릴라’는 1933년 발표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이상향이다. 샹그릴라는 히말라야의 깊은 계곡에 숨어있는 신비한 성역(聖域·현지어로 ‘베율’)에 관한 티베트의 불교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인 탐험가 이언 베이커(41)는 8세기에 제작된 티베트 불경에서 판독한 자료를 토대로 5년간 탐사한 끝에 티베트 동부의 황무지에서 성역 중 한 곳인 페마코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했다.

1998년 11월 8일 베이커와 다른 2명의 미국인 탐험가는 티베트의 창포江에서 인적미답의 폭포에 도달했다.(10인으로 구성된 이번 원정대를 후원한 美지리학회는 나중에 베이커를 ‘밀레니엄 시대의 탐험가’ 6인 중 1명으로 선정했다)

그곳에 있던 암석문은 신비한 계곡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베이커 일행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후 중국정부는 외국 탐험대의 접근을 막기 위해 그 지역을 폐쇄했다.

본 시가는 인민일보 인터넷 한글판(www.einmin.com)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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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4-3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어 공부가 잘 되고 있나요?
학기 중에 공부하시려니 힘드시죠? 그래도 원어를 알고 가르치는 한문이 정말 한문일테니 부지런히 하시기 바랍니다.

해콩 2006-04-30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저 잊어버리는 것 막기 위한 공부랍니다. 현상유지가 목표죠. ㅋㅋ

2006-05-02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5-0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샹그릴라? 샹그리나?
... 언제쯤?

해콩 2006-05-1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무극' 샹그릴라 훼손으로 연이어 질타당해
- (상하이=연합뉴스) 진병태 특파원

장동건이 출연한 첸카이거(陳凱歌) 감독의영화 '무극'이 연이어 풍파를 겪고 있다.

지난 9일 중국 건설부 부부장 치우바오싱(仇保興)이 항저우(抗州)에서 있은 한 국제토론회에서 영화 무극이 윈난(雲南)성 샹그릴라(香格里 拉)의 산상호수인 벽고천지(碧沽天池)에서 촬영하면서 환경을 심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한데 이어 이번에는 국가환경보호총국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보호총국은 12일 위난성의 환경보호총국에 의뢰해 영화 제작팀이 샹그릴라의 환경을 얼마나 훼손했는지를 정밀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무극의 제작자인 천홍(陳紅)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샹그릴라에서의 촬영은 윈난성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성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윈난성의 환경보호당국은 이 사건을 중시, 환경전문가를 샹그릴라로 파견해 정밀 조사할 계획이어서 조사결과에 따라 영화제작팀이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치우바오싱 건설부 부부장은 당시 벽고천지는 해발 4천m의 고산지대에 있는 호수로 물이 맑고 깨끗할 뿐아니라 주변에 보기드문 두견화가 분포해있는 원시림과 초지로 덮여있었으나 무극 영화 팀이 온 이후 재난을 당해 도시락통과 술병, 비닐봉투, 비옷 등 쓰레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팀이 호수 주변에 100여개의 말뚝을 박고 땅을 갈아 길을 냈으며 퇴락한 목조다리가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무극'이 도마위에 오르면서 지금까지 영화제작과정에서 환경오염 사례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신조협려'는 제작당시 쓰촨(四川)성의 지우자이거우(九寨溝)에서 촬영하면서 진주폭포의 사방의 푸른 이끼를 산산조각내고 신선지(神仙池)에 인공구조물을 만들어 지우자이거우 산림당국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또 칭런제(情人結)라는 영화는 하얼빈공업대학의 국가일급보호건축물안에 세트를 만들고 이 건축물의 구조를 변경하기조차 했다.

'무극'의 샹그릴라 파괴를 계기로 영화제작자들의 무의식이 다시 한번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신이시여, 이게 인간의 솜씨입니까?
<인도 스케치여행1> 아그라의 '타지마할'

 

▲ '타지마할'의 전경이다. 손으로 붓으로는 그릴 수 없어 컴퓨터를 사용했다.
ⓒ 강인춘
인도! 일생에 있어 한 번도 가기 어려운 나라를 어쩌자고 나는 세 번씩이나 갔다 왔을까? 알 수 없는 어떤 마력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렸던 것은 아니었던가? 아니면 전생에 코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ha)와 어떤 가느다란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사실 나는 내 생애에 있어 인도로의 여행길에 올라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왜냐면 우선 나는 노오란 색 일색의 인도 음식을 싫어했고, 더구나 카레 같은 음식은 한국에서도 아예 비위에 맞지 않아 먹지 않았다. 특히나 그 음식에서 풍기는 향은 더더욱 내 속을 메스껍게 했다.

인도는 한 마디로 불결했다. 길거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똥, 공중화장실이 없는 도시. 비위생적인 음식들 그리고 항시 풍겨져나오는 역겹고 퀘퀘한 냄새. 문명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여행 기간 내내 이런 고역으로 전신이 괴로웠다. 그러나 10여일의 인도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는 나는 내 자신이 인도에 천천히 동화되어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전형적인 인도의 여인.
ⓒ 강인춘
사람이 산다는 근본을 이곳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인간의 본성을 이 땅에서 잠깐이나마 깨우쳤기 때문일까? 죽음이란 한낱 허무에 불과한 것이고, 그리고 인간은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를 어렴풋이 믿었기 때문일까?

세 번째 인도를 다녀온 지 3,4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여건만 된다면, 그리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서슴지 않고 '쌕' 하나만 달랑 메고 인도로 갈 것이다.
비록 그 길이 견디기 힘든 고행의 연속이었지만 난 기꺼이 가리라.

아그라의 타지마할! 그렇다. 인도의 많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건축물(묘지)의 이름이다. 세상의 그 어떤 왕궁도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는 없다. 인도의 옛 무술제국, '샤자 한' 황제가 그의 부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통탄하며 지은 무덤이다. 그녀가 15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자 황제는 그녀의 유언대로 묘지를 지었다.

2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장인, 1천마리 이상의 코끼리가 동원되어 무려 18년간에 걸쳐 지은 건축물이다. 이 묘지를 짓기 위해 국고는 바닥이 났고, 멀리 이집트와 가까이 미얀마 등등에서 가져온 보석을 이 건축물을 치장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로는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장인들의 손목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이만저만한 독재가 아닐 수 없다. 일개 국가의 황제 아낙을 위해 묘지를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로 지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전설 같기만 하다. 건물의 본당 지하에는 '샤자한'과 그의 부인의 시신이 묻혀 있었다.

호기심으로 병풍처럼 세워져 있는 대리석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어른 키보다도 더 큰 넓이의 대리석 판에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새겨놓은 조각 무늬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일순간의 실수로 살짝만 건드렸다 하면 대리석 판 전체가 망가져 버린다. 도저히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는 상상키 어려운 것들이었다. 신들조차 혀를 내밀 정도가 아니였을까? 나는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하면서 그 조각품 속에 빠지고 말았다.

▲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의상이 컬러풀해서 시선을 끌었다.
ⓒ 강인춘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마음 속을 태우고 있었다. '타지마할'을 꼭 내 손으로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서너 해가 지났어도 생각뿐이지 결코 연필을 들 수가 없었다. 그 찬란한 자태를 나 같이 무디고 경박한 손으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 '타지마할'앞에서의 필자.
ⓒ 강인춘
'타지마할'을 그냥 쉽게 사실적으로 그린다고 하자. 그게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차라리 사진을 찍는 게 났지. 그럼 혼을 불어 넣어 그려보자. 하지만 그것 역시 뜻대로는 안 되었다. 내 혼은 이미 속세에 팍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역시 신의 경지에서, 아니면 무아지경 속에서 그려야 할 것 같다.

오늘 여기에 그린 단 한 점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는 수백 차례나 종이를 버렸고, 그리고 찢었다. 파스텔로, 수채화로, 오일페인트로 온갖 재료로 다 도전했다. 그러나 '타지마할'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은 포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며칠 동안을 밤새도록 사투를 벌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그린 '타지마할'의 전경. 그 위대한 장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찬란하고, 환상적인 건축물을 한낱 보잘 것 없는 종이 쪼가리에 옮긴다는 것 자체가 바로 넌센스라는 것을 왜 지금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나 자신을 또 한 번 깨닫는다.

▲ 버스에서 내리면 언제나 아이들이 떼거지로 몰려든다.
ⓒ 강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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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유배지의 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儁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한 점의 겨울마음 송이송이 둥글다

성품은 그윽하고 담박하여 차갑고 우뚝 솟았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떠났는데

맑은 물 해탈한 신선을 진실로 보노라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 1661-1번지에 추사 적거지가 있다. 제주시 95번 도로를 타고 마라도 방면으로 가다가 멀리 산방산이 덩어리째 보이면 오른쪽 안내표지를 따라 작은 마을 입구에 추사의 수선화가 피어있다. 금석학자, 서예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조선 헌종 6년(1840년)에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도에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년)에 풀려나기까지 9년간 거주했던 곳이다.


추사적거지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 악명 높은 제주도의 바람 속에 유배지의 수선화를 보러 달려 온 길. 집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다. 비바람 속에 수선화는 피었을까. 유배지의 수선화.

 



 

 

 

 

 

 

 

 

 

 

 

 

 

 

 

 



수선화는 현무암 돌담아래 일렬로 피었다. 흰꽃 잎 사이에 노란 꽃술이 도톰하게 돋을새김모양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한점을 일컬어 <겨울마음>이라 표현한 추사의 마음은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는 <세한도>의 뜻과 맞닿아 있다. 전날 롯데호텔 정원의 잘 다듬어진 매화나무 군락지에서 이제 막 꽃잎을 열기 시작하는 그것을 보고 적잖은 실망을 했다. 매화가 꽃의 으뜸이라면 그 나머지는 꽃도 아니라는 매화사상을 품고 있던 나에게 특급호텔의 반듯한 구획지처럼 사람의 손으로 줄 맞추어 피어나는 매화꽃을 보자니 자꾸만 플라스틱 인조꽃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물질이 지닌 본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인가. 타의에 의해 꽃잎을 피우는 매화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만 거기에는 매화의 고품(高品)은 온데간데 없고 껍데기만 남긴 절체곤충의 조각난 박피같은 뻣뻣한 인위만 남아 있었다.


이제 수선화는 소박한 것으로부터 고품을 보여주고 있다. 유담(幽澹)이란 요란하고 화려한 것을 멀리하고 은은하고 그윽한 성품을 말한다. 나로부터 외면당한 롯데호텔 정원의 매화꽃은 덧없고 교언영색으로 치장한 무식한 정원 구석에서 졸렬한 자태를 쓸쓸히 보여 줄뿐이다. 꽃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마음은 꽃으로 치유한다. 수선화를 보러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를 찾아온 마음이란 무엇인가? 추사는 말한다. 그것은 ‘해탈선(解脫仙)’이라고.

 

해탈한 신선이라.... 추사의 굽힐 줄 모르는 콧대높은 자존심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과 총명함을 부정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추사의 자신감은 그를 오만방자함으로 이끌었다. 지나친 자신감의 이면에 있는 당당함의 경계를 넘는 교만이다. 그에게 겸양의 미덕을 요구하는 일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완고하고 거만했던 추사에게 9년간의 유배는 ‘인간으로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학문적 성취를 지적 능력으로만 삼았던 그에게 수선화는 말한다.


品於幽澹冷儁邊 품어유담냉준변.


홀연히 추위를 견디며 그윽한 성품을 잃지 않는 수선화. 유배지의 수선화가 추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홀연히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여행객은 자꾸만 수선화 여린 꽃망울을 손으로 만져본다. 손가락에 묻어나는 수선화 향기는 있을 듯 없을 듯하다.


천재의 안테나에 주파수가 잡힌 수선화는 그에게 <세한도>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길로 안내했다. 날이 추워도 잣나무, 소나무처럼 푸르리라. 사실, 세한도처럼 사는 삶은 고단하다. 누군들 안락한 호텔방의 달콤한 꿈을 원하지 않던가. 하지만 인생이란 얄궂어서 종종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춥다. 으스스한 몸을 추스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툰드라기후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과 오늘 헤어진다. 삶이란 매양 변덕꾸러기다.

 
그러니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먹지 않으면 누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이다. 험난하고 궂은 세상. 누가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나는 스스로 일어나야하고 스스로 꽃을 피워야 한다. 100% 자의에 올인한 삶. 타자적인 것으로부터 자아로 돌아오는 것. 유배지의 수선화는 그러므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세한도>의 쓸쓸함은 거기에 사람의 자취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으니 사람을 배제한 것일까. 유배지에서 의문은 비안개처럼 계속 일어선다. 그래서 그 후 추사는 대정읍의 신선이 되었을까. 수선화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한 시대를 뛰어넘어 한 획을 긋고 사라져간 사람들. 그들의 숨결을 비바람 속에 수선화는 담고 있는지 자꾸만 바람결에 몸을 눕히지 않으려 서로 기댄다. 

 

유배지의 수선화를 보러 먼 길을 달려갔다.

제주도를 찾아간 이유가 순전히 추사의 수선화를 보러가기 위함이었다면 추사 선생은 후대의 철없는 여행객을 귀여워해주실까.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수선화를 만지며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애꿎은 바람 탓이라고 돌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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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aerin2/140011901045
출처 : 꿈꾸는 사람이 되자...
월영교의 아름다운 모습(이종하교수)
 
 
   月映橋는 안동댐과 댐하류 역조정지댐사이 호수에 있다.
   이 그림은 月映橋 입구에서 담은 것으로
   다리 가운데 있는 月映亭(팔각정)이 물안개에 휩싸여 있다.

   2003년 4월25일에 개통된 이다리는
   길이 387m, 너비 3.6m의 나무다리로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인도교이다.
   다리 한가운데는 月映亭(팔각정)이 있다.
   이그림은 月映橋 입구 바로우측에서 담은 것으로
   다리와 月映亭(팔각정),주변산들이 물안개와 더불어 호수에 드리워져 있다.

   月映橋는 이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컬레 미투리모양을 이다리 모습에 담았다 한다.
   이그림은 月映橋 입구좌측 조금위에서
   담은 것으로 호수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다리교각 가운데로 띠를 형성하고
   月映亭(팔각정)과 다리의 그림자가 호수에 잠겨있다.

   다리 한가운데 있는 月映亭(팔각정)의 전경.

   이그림은 月映橋하류에서 본 전경으로
   호수에는 달대신 아침해가 드리워져있고
   물안개는 바로 피어 오르지 못하고 다리교각을 감싸고 있다.

[출처 - 마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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