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통하나요?
우리집 풍경?
"엄마, 잔소리 좀 그만" , "다 너 잘되라고 하지"
한겨레 이종규 기자
[관련기사]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을 가려 하라는 뜻이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말을 막 하는 경향이 강하다. 옆집 아이가 놀러와서 잔을 깨면, 속으로는 화가 날 지언정 겉으로는 “어디 다친 데는 없니?” 하며 너그럽게 대하면서도, 자기 자식이 잔을 깨면 버럭 소리부터 지르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말길이 막히기 십상이다. 대화의 단절은 인간관계의 단절로까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자녀의 말문을 열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엄마랑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웬만큼 ‘머리 굵은’ 자녀를 둔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 사이에 흔히 오가는 말이다. ‘말싸움’으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말이 씨앗이 돼 폭력이나 가출 등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얘기 도중에 자기 방 문을 쾅 닫고 돌아서는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들은 속을 태우기 일쑤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서운한 감정이 복받치는데, 아이는 부모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뭐가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잘못된 대화법에서 원인을 찾는다. 자녀와 말이 통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바뀌어야 말이 바뀐다

말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가 담겨 있다. 상대방을 낮추보면 말도 함부로 하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의 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부모의 그릇된 양육태도라고 지적한다.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or.kr) 김성자 부모교육 전문 강사는 “아이를 내 소유물 또는 분신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볼 때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신만 옳고, 아이는 당연히 자기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얘기다.

▲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강의실에서 엄마들이 부모교육 프로그램의 하나인 ‘부모·자녀의 대화법’ 강의를 듣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야

대화를 잘 하려면 일단 잘 들어야 한다.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소수연 교육연구팀장은 “‘잘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듣고 이해함으로써 부모의 관심을 보여주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원 가기 싫어”라고 얘기했을 때, “학원에 안 가면 어떡해?”라고 반응하기보다는 아이가 몸이 안 좋은지, 학원에 무슨 일이 있는지 등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살피라는 것이다. 김성자 강사도 “‘응, 그렇구나’,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야단맞아 기분 나빴겠구나’ 하는 식으로 아이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이해하면서 들어주면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고 조언했다.

‘나’를 주어로 이야기 하라

“너는 왜 방을 그 모양으로 해놓고 다니니? 좀 치워라.”, “네 방이 지저분해서 엄마가 청소하는 시간이 늘어 속상해.” 아이가 방을 어지럽혔을 때 부모가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방법 두 가지다. 전자는 ‘너’(자녀)를 주어로 한 것이고, 후자는 ‘나’(부모)를 주어로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나’를 주어로 해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소수연 팀장은 “‘너’를 주어로 얘기 하면 상대방은 비난 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상하고, 비난에 대해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착한 아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는 “여태껏 큰 소리 한 번 낼 일이 없을 정도로 말 잘 듣던 우리 아이가 갑자기 반항적인 아이로 바뀌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생겼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소통 교육 전문기관인 SMG 이정숙 대표는 “이런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부모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이미 사춘기 이전부터 부모와의 대화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부모의 ‘일방형 대화’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쌓였던 감정이 사춘기 때 폭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의 저자인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계속 억눌러온 아이들은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원망이 쌓여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고 지적했다.


대화 문제있는 부모 5가지 유형

부모들이 자녀와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뭘까?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에서 대화에 문제가 있는 부모들의 유형을 5가지로 제시한다.

아이 감정에 둔감한 부모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서는 아이가 놀라서 떨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기의 불쾌한 기분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가 여기에 속한다. 퍼즐을 갖고 놀려는 아이에게 “쏟으면 혼날 줄 알아”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이런 부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정을 읽는 훈련이다. 끊임없이 아이의 기분을 살피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먼저 풍부한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

잔소리를 참기 어려워하는 부모

아이 스스로 하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고 ‘양치질해라’, ‘밥 흘리지 말고 먹어라’ 등 아이의 행동을 일일이 체크하는 부모다. 이런 부모라면, 그동안 걱정이 돼서 아이에게 시키지 못했던 심부름을 시키거나 간단한 집안일을 맡겨 보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능하다.

말로 표현을 잘 못하는 부모

아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했을 때, 말로 차근차근 타이르는 대신 손부터 올라가거나 소리부터 지르는 부모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말을 어기는 것을 못견뎌하는 부모

자신의 말에 아이가 이의를 제기하면 발끈하는 부모들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자체를 ‘무례하다’거나 ‘버릇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순종을 강요한다.

자식에게 하소연을 일삼는 부모

“안 그래도 힘든데 너까지 왜 이러니?”와 같은 말을 자주 하는 부모가 여기에 속한다. 자신이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자식에게 늘어놓는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일찌감치 애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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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2일 (금) 12:40   프레시안

청소년 인권, 더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제

[프레시안 성현석/기자]  10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 가면을 쓴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청소년 인권 찾기 선언'이라고 쓰인 종이 플래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중 한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시대가 계속 변해 왔지만, 학교는 여전히 청소년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자 가면을 쓰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앳된 기운이 섞였다.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다. 가면을 쓰고 마이크를 잡은 청소년들은 '바리캉'으로 상징되는 폭력적인 두발 규제, 교사의 지나친 체벌, 원하지 않아도 받아야하는 보충수업, 종교계 사립학교에서 강요하는 종교수업 등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이날 청소년들은 학교가 자신들을 고유한 개성을 가진 주체로 여기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청소년들은 각기 다른 얼굴을 갖고 있지만, 학교는 자신들에게 아무런 개성이 없는 똑같은 모양의 가면을 씌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현재의 학교가 학생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상태로 인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곳임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똑같은 모양의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 5월 10일 청소년들이 교육부 앞에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이날 행사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등의 청소년 단체와 인권운동사랑방, 문화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5.14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준비위원회'가 주최했다. 오는 14일에 예정된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교육부가 있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청소년들로 하여금 직접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인권침해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게끔 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두발규제 반대 촛불집회 이후 1년
  
  지난해 5월 14일 학교의 강제적인 두발규제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촛불시위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이같은 청소년들의 집단 움직임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7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두발 자유는 학생의 기본권이므로 각 학교에서 '강제 이발'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두발 제한이나 단속은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라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은 강제적인 두발 단속을 하지 않도록 하는 지침을 각급 학교에 보냈다.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정책적인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 후 일 년이 지났다. 청소년 인권을 고민하는 이들은 지난해 열린 촛불시위로부터 정확히 일 년이 되는 올해 5월 14일에 '청소년 인권행동의 날' 집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청소년 인권의 실태를 되돌아보는 한편, 청소년 인권에 대한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청소년들이 가면을 쓰고 이야기한 주제는 강제적인 두발 규정부터 체벌과 종교수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는 청소년 인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다양한 지를 잘 보여준다. 14일에 예정된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두발 규제의 철폐에만 초점을 맞췄던 지난해와 달리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들이 겪는 인권침해 전반에 대해 문제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지난해 7월 인권위가 내놓은 강제적인 두발 단속에 대한 권고안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지난해 인권위의 권고안은 사실 절충안에 불과하다.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할지는 오직 청소년 개인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다.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의 단속을 허용한다는 것은 결국 학생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유윤종 씨의 말이다. 유 씨는 14일 행사에서 청소년들의 두발 기본권에 대해 보다 원칙적인 입장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문제제기 잇따라
  
  청소년 인권을 전면에 내건 이들의 움직임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최근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움직임이 연이어 나타났다.
  
  지난 8일 아침 서울의 동성고등학교 앞에서 이 학교 3학년 오병헌 군이 '빼앗긴 인권을 돌려주십시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벌였다. 오 군은 이 학교 교사들이 제지할 때까지 시위를 진행하면서, 교사들의 과도한 체벌과 강제 보충수업 실시 등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5월 8일 서울 동성고등학교 3학년 오병헌 학생이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일인 시위를 진행했다. ⓒ프레시안

  "고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모금하는 성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었던 적이 있다. 학교 게시판을 통해 이에 대해 질문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학교 운영의 민주화와 학생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막상 학생의 권리에 대해 눈을 뜨고 보니, 학교가 학생 인권의 불모지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로는 학교의 수많은 반인권적 관행들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결국 누군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위를 준비했다." 8일 저녁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오 군이 한 말이다.
  
  학교의 두발 규제에 대해 청소년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19일 서울 양동중학교에서 이 학교 3학년 학생 50여 명이 두발자유와 체벌금지를 요구하는 학내시위를 벌였다. 불과 십여 분만에 끝난 이날 시위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뻔 했지만,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 중 하나가 청소년인권단체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2004년 강의석 사건,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 촉발의 계기
  
  2004년 서울 대광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의석 씨가 학내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비기독교인 학생의 예배 선택권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강 씨는 종교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학교 역시 학생에게 이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 인권 혹은 청소년 인권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제적되면서까지 굽히지 않은 강 씨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하면서, 학생 인권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강 씨는 그해 연말 한 시사주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8일 동성고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한 오병헌 군도 2년 전 강의석 씨가 진행한 투쟁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강 씨의 영향을 받은 게 단지 오 군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인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유예해도 된다는 생각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올해 서울 구로고등학교를 졸업한 전누리 씨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동성고 앞에서의 일인 시위나, 4월 19일 양동중학교 학생들의 시위 등은 학생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태도에 머무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이다.
  
  지난해 '학생 두발 자유' 완전허용한 대만, 이제 한국은?
  
  그리고 이것은 한국만 겪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과 교육 환경이 유사한 대만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지난해 8월 31일 대만 정부는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완전한 두발 자유화 조치를 시행했다. 2000년 민진당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만에서는 과거 국민당 정부 시절의 권위주의적 관행에 대한 청산 작업이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이런 과거사 청산 움직임이 청소년들의 권리의식을 자극했다.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집회가 연이어 벌어졌고, 결국 대만 정부는 청소년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민진당 정부 출범 이후의 대만 사회와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한국은 닮은 점이 많다. 대만과 한국 모두 권위주의가 허물어져 가는 시대에 사춘기를 보낸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조금씩 민감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7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학생인권법을 발의하자 최 의원의 미니홈피에는 이에 호응하는 청소년들의 게시물이 쇄도했다. 최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은 두발 규제를 비롯한 각종 학생 생활 규정상의 인권침해 요소 철폐, 과도한 체벌 금지, 학생에 대한 각종 차별 금지,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보장, 강제로 실시하는 보충수업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한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호응에서 청소년 인권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화두가 돼가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오는 14일에 예정된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집회에서 청소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성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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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5-1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인권법은 두발 규제를 비롯한 각종 학생 생활 규정상의 인권침해 요소 철폐,
과도한 체벌 금지,
학생에 대한 각종 차별 금지,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보장,
강제로 실시하는 보충수업 금지...
학생은 인간이 아니지. 이런 것도 못 누리는 게 인간일까?

해콩 2006-05-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빠진 것 있네요. '야간 자율 학습' 진짜로 자율적으로 실시!ㅋㅋ
인간 아닌 아이들, 인간 만드는 게 우리들의 '일' 맞지요?
그런데 실은...인간 되지 마라, 아직은 인간 될 생각하지 마라. 대학 가면 저절로 인간된다... 하고 있으니.. 슬/퍼/요...

글샘 2006-05-1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알거든요. 공부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닌줄... 공부 그렇게 못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걸... 괜스레 스승의 날이랍시고 찾아온 애들에게 열변을 토했더랬죠.ㅋ

해콩 2006-05-3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 동성고 1인 시위 학생 지원
지난 5월 8일 사랑방과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동성고등학교 3학년 오병헌 학생이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학생은 0교시 강제보충 폐지, 체벌 금지, 두발규정 폐지 등을 요구하였는데요,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동성고등학교에서는 느리지만 많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일단 0교시 수업은 9교시로 옮겨졌고, 6:55이었던 새벽별 등교시간도 1시간 정도 늦춰졌습니다. 체벌을 일삼았던 담임교사는 교체되었고, 두발규정과 관련해서는 학생 설문조사 등을 거쳐 개정 절차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오병헌 학생은 시위 전 사랑방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는데, 사랑방 교육실에서는 학교와 교육청에 대응을 촉구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 학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성고등학교의 사례가 다른 학교의 변화에도 자극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 인권운동사랑방 정기 소식메일 [사람사랑] 2006년 5월 137호
 
 전출처 : 바람구두 > 대추리의 평화를 궁금해하는 결이에게...

공개되길 원치 않을 수도 있었는데 바람구두 아저씨가 임의로 공개해버려서 미안하단 말을 먼저 합니다. 이미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의문 어쩌면 이미 판에 박힌 결론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시선과 달리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그대의 질문이 주는 함의가 크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문제를 우리 모두가 공유해보자는 뜻에서 공개한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길 바랍니다. 일단 망명지를 통해 나름의 고민들이 해결되었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군요. 제가 학교 다닐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고, 그런 점에서 참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중후반엔 학교에서 현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안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키는 것만으로도 학생부실에 끌려가서 한바탕 소란을 벌여야 했습니다.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죠.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뜻을 결집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나아가는 일, 그 첫 출발점은 늘 사람들이 모여서 지혜를 모으는 일로부터 시작되니까요. 그래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집회 ․ 결사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유신헌법은 이런 자유를 부정했습니다. 이른바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인 조치를 통해서 거리 혹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법으로 처벌했던 시대지요.

사실 그대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저로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평택 미군 기지를 확장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한반도를 미국의 전쟁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인 데 그러면 왜 우리 군은(군이 제일 먼저 반대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미군 기지화 작업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제 나름의 의견을 말해보겠습니다.

국가란 절대적인 존재인가?

그대의 질문은 참으로 올바른 상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상식적이라는 것은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교육받고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하게 접해온 수준이란 뜻이며, 그보다 좀더 역사적이고,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거기엔 몇 가지 전제가 있는데, 우선 군의 목적, 존재 이유에 대해 우리 군의 국방목표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라 합니다. 또한 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라고들 하지요.

군대(military power)가 존재하는 이유에서 보면 알 수 있듯 군대가 다른 폭력집단(예를 들어 산적이나 해적, 용병 등)과 다른 것은 국가에 속해있다는 점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먼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할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한반도에 우리 민족이 정착한 선사시대 이래 이 땅에는 수많은 국가 체제들이 만들어졌고, 소멸되었습니다. 고조선으로부터 구한말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즉, 국가란 제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부족 국가 체제 이후에 비로소 등장한 것이고, 한반도에서 근대국가체제가 시작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년)으로 보아도 110여년이 약간 지났을 뿐입니다. 이전까지 존재했던 국가 체제는 민주공화정이 아니었고, 전제 왕정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국가체제에 존재했던 군대는 국민에 충성하는 집단이 아니라 전제군주(왕)에게 충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얼마 전 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는 이런 대목들이 비교적 잘 드러난 것 같더군요.

지금으로부터 1,600여 년 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를 빼버리고 크게 보면, 왕국이 범죄집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범죄집단도 조그만 왕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범죄 집단은, 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에서, 협약에 따라 약탈품을 나눠 가지는 결사체에 의해 묶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만약 이 악행집단이 부도덕한 무리들로부터 많은 지원자를 획득하여 영토를 획득한 후 거점을 구축하고, 도시들을 탈취하여 사람들을 복속시킨다면, 그 집단은 공개적으로 그 자신을 왕국이라고 사칭하고, 침략의 비난이 아니고 정당성을 획득하여 그 왕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된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로잡힌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재치있고, 사려깊은 대답을 보자. 왕이 그에게 자신에게 대항할 때의 네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해적이 대답하기를 '세상을 정복할 때의 당신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그마한 배로 그것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복자라고 불립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와 해적 집단 사이에는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고 도덕적인 차이는 없었습니다. 두 집단은 모두 성공을 위해 내적 조화와 조직에 의존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취하고 파괴하는 그들의 능력에 의해 성공여부를 평가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안식처를 ‘인간의 도시’나 ‘땅 위의 도시’(즉, 국가)에서 찾지 말고 신의 도시, 즉 우주적이고 초월적 가치의 국가에서 찾으라고 조언(신국론[神國論, De civitate Dei])하였습니다. 그는 이에 덧붙여 “그러나 당분간 우리는 양쪽의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삶과 역사에서 국가와 전쟁, 그리고 부당함의 회색빛 그늘 속에서 순수성을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신의 도시를 알기는 하되 ‘때’가 되기 전에 마치 우리가 완전히 그 도시의 시민인양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국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국가이성(國家理性, reason of state)이란 말로 설명하곤 합니다. 국가는 국가의 생존 강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국가권력이 법이나 도덕·종교보다도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고, 국가는 이와 같은 권력을 유지하는데 국가이성은 이런 권력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 높은 목적 합리성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또한 국가는 그 존재 이유를 국가 자체 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말이 조금 어려울 겁니다.

조금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SF영화에 간혹 등장하는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지닌 슈퍼컴퓨터가 있습니다. 대개 그런 컴퓨터는 마치 로봇처럼 나름의 규칙 - Three Laws of Robotics,  1.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되고, 게으름을 피워 인간이 해를 입도록 해서도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로봇은 첫 번째 법칙과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면 간혹 슈퍼컴퓨터가 작동 오류를 일으키거나 너무 위험해서 사람들이 컴퓨터의 작동을 중지시키려고 하는데 이런 행동을 자신을 제거하려는 것으로 판단해서 도리어 인간을 공격하는 겁니다. 국가의 목적 합리적 행위란 것은 국가의 생존강화를 목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경우에 따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 할 수 있는 도덕적, 궁극적, 또는 최선의 목적을 수정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 합리적 행위, 목적 합리성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순수에 몰입하게 되는 위험에 제동을 거는 현실적인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면에 이런 목적 합리성이 타락하게 되면, 애초에 국가가 만들어진 그 목적 자체보다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 도구,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기술합리성 또는 도구적 합리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흔한 사례로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경찰이나 군대, 법률 등(알튀세르 같은 이는 이를 ‘억압적 국가장치 RSA’라고 말합니다.)는 국민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효율적인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한 인간을, 가족과 형제를 단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가스실로 보내면서도 이것이 국가의 명령, 상부의 명령이므로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충실히 따랐습니다. 어째서 그런 일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현대 국가 체제에서 국민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은 흔히 공무원이라고 하는 관료들에게 있습니다. 국가공무원, 경찰공무원, 직업군인, 교육공무원, 행정 관료들이 그들이죠. 현대의 권력은 왕의 선언이나 의회에서의 토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행정이란 이름을 빌어 집행되고, 행사됩니다. 이번 평택 대추리에서 행해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진압도 겉으로는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을 빌어 진행되었습니다.

이렇듯 관료제는 군사 영역과 시민 영역에 있어서도 변함없이 적용됩니다. 베버(M. Weber)에 따르면 현대의 고위 관리들조차도 ‘관직'을 위해 투쟁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출세와 승진이겠지요. 관료제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안정적인 행정서비스, 예측 가능한 정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관료제란 이런 점에서 매우 확실한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관료는 즉 공식적인 채용(공채), 전문 훈련과 분업, 고정된 관할 영역, 문서에 의한 절차와 서열에 따른 하위직과 상급직에 따른 업무의 분할 등으로 매우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인간미(양심에 따른 판단을 비롯해 인간적인 융통성 등)을 결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채용된 관리들이 우리의 모든 일상적 욕구와 문제를 결정합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시민적인 행정 관리와 군의 명령권자인 장교는 두 부류 모두 관료주의적인 집단이란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경찰, 군대, 법률은 인간적인 양심과 판단을 대신해 관료로서 명령에 충실하였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관료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화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조밀하게 통제하고 있는 관료적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1980년 광주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감행했던 것을 비판받아 왔던 우리 군대가 또다시 평택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지난 80년대 때부터 얼마 전 농민 2명의 죽음을 불러왔던 폭력진압 문제에 대해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경찰이 또다시 그런 시위진압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헤게모니 추출도구,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국가는 단순히 이런 억압적 국가장치들만을 통해서 국민을 통치하지는 않습니다. 알튀세르는 억압적 국가장치와 달리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국가(혹은 지배계급)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를 활용한다고 말합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사회적 제도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언론, 영화, TV, 광고를 비롯해서 학교, 교회 혹은 그 밖에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접하게 되는 각종 소규모 단체를 비롯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국가(혹은 지배계급)은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해 상징조작, 매스컴에 의한 대중조작, 선전이나 홍보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여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 맞는 선택을 하기 보다는 국가(혹은 지배계급)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르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앞서 저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독재체제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지혜를 모으지 못하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독재체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좀더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좀더 복잡하지만 더욱 효과적인 방식을 동원합니다. 바로 그것은 이번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이전문제와 같은 사안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지요. 왜 독도 문제는 많은 친구들이 알고 있지만, 평택 문제에 대해서는 친구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같은 나라의 한 지역에서 3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연행되어 가는 심각한 사건,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안보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하는 사건에 대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이런 문제를 잘 보이는 메인 화면에 배치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지 않는 걸까요? 대추리에 군 병력이 투입되었을 무렵인 5월 5일 어린이날 공중쇼를 보이다가 추락해 사망한 공군 조종사 이야기를(물론 저는 이 분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메인 화면에 넣고,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치 않았음을, 어린 아들이 헌화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보여주면서도 군이 연로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힘들게 지은 대추리 분교에 진입해 강제 진압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과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 것이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악인 국가와 시민의 계약

앞서 국가와 국가이성이란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아마 학교에서 국가의 3요소란 것에 대해 배웠을 겁니다. 근대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 중 어느 하나만 빠지더라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많은 이들이 종종 망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이 셋 중 어느 하나만 빠져도 국가가 존립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현대국가체제에서 국가(혹은 군대)가 충성(忠誠)을 바치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국민입니다. 어째서 국민인가? 그 이유는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서 한반도에 명멸했던 여러 국가들에 대해 말했는데 전제왕정 국가에서의 권력은 모두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군대는 당연히 왕에게 충성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충성이란 국가가 아닌 국민에 대한 충성이고, 국민은 각각의 시민권을 지닌 개인에 의해 구성됩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사회계약론(로크, 흡스, 루소 등)’이라고 합니다. 사회계약론이란 기본적으로 서구의 자유주의에서 온 말로 전제왕정에 저항하는 시민(부르주아지)들은 천부인권(天賦人權)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만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좀더 합리적으로 누리기 위해(시민의 최소한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서) 국가라는 개인의 자유와는 상반된 존재를 필요악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시민들 개개인은 모두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위탁하고, 복종하는 대신 국가는 시민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켜준다는 내용의 계약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원론적인 것으로 들어갔습니다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국가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우리들 개개인은 역사 이래로 투쟁해 획득한 시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대립하고, 타협한다는 것, 그러나 국가(와 지배계급)는 이런 시민들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민 만들기와 한국전쟁

어째서 국가(군대)는 평택 대추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국민)들이 원하는 것과 다른 조치를 취하며, 군대를 동원해 강제 집행하는 걸까요? 그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잘 아다 시피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 국가 주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이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회복한 국권을 통해 수립한 국가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전 새롭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선택해서 구입한 물건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자신이 선택한 학교가 아니라 추첨방식에 의해 어느 학교 소속 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그 학교에 대해 처음부터 정을 가지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처음 입학한 학교는 여러 가지로 낯설고, 자신이 아직 그 고등학교의 학생이란 사실이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 배정을 받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과 소풍과 수학여행도 가고, 또 우리 학교 출신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어려운 일을 해나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새로 입학한 학교의 학생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쳐 XX고등학교, @@고등학교 출신이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란 신생고등학교의 국민이 된 당시 우리 웃어른들도 아마 그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제 막 생긴 학교의 신입생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학교의 기풍과 전통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많은 의견을 내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 내 분위기는 매우 시끌벅적하겠지요.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분위기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잘 알다시피 한반도는 소련과 미국이란 다른 체제를 가진 두 세력에 의해 각기 다른 체제를 가진 국가가 세워집니다. 남한은 미국이란 체제를 본받고, 미국의 이해에 따라 세워진 국가체제이고, 북한은 소련이란 체제를 본받고, 소련의 이해에 따라 세워진 국가체제입니다. 국가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죠. 해방 직후 대한민국 국가 수립기에 있었던 여러 혼란들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해방된 나라의 국가체제를 결정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지 않았던 것, 남북한이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분단된 국가체제를 만들게 되는 것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 제주4.3, 여순사건 등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이란 고등학교(국가)는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국민)들을 처벌하여 퇴학(처형)시키거나 정학(수감)을 주거나 반성문(전향)을 쓰게 하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는 모범생(서북청년단 등)들을 동원해 은근히 겁을 주거나(실제로는 이보다 더한 일들을 저질렀지요) 학교에서 강제로 떠나게 했습니다(단독정부 수립 움직임[분단]이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에서 서로 수많은 사람들이 월북하거나 월남하게 됩니다). 앞서 어느 학교의 학생으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만, 국가도 이와 흡사한 과정을 거쳐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을 학자들은 ‘국민만들기(Nation Building)’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행해진 국민만들기 과정은 매우 혹독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남한 체제와 북한 체제가 정면 무력 승부로 나섰던 한국 전쟁이었습니다.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와 피난사회

서구의 정치사상가 중 어떤 이는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전쟁이란 혹독한 과정을 통해 국가는 국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국민국가라는 체제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겁니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양국의 지배집단으로 하여금 국가형성(state-building)과 국민형성(nation-building)과 국가 정당성을 창출하는 근거로 이용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전쟁 기간 중 한국인(남북한)들이 보여준 태도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막 생긴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스스로의 학교에 대해 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흡사한 심정이었을 텐데, 거기에 양쪽 체제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면 죽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은 인간으로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남한 정부는 국민을 버리고 자신들만 한강 이남으로 도망간 상황이었지요. 전쟁 당시 남한 정부는 온전한 ‘국민국가’, ‘주권국가’의 지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국가는 국민을 책임지지 않았(못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는 인민군에게, 국군이 들어왔을 때는 국군에게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일종의 ‘건국신화’가 되었고, 국민들 내면에 국가의 정당성을 부여해주거나 혹은 이를 거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웃어른들은 전쟁이란 극한상황에서 남과 북 어느 한쪽을 택해야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피난(Exodus)’은 한국전쟁의 거의 모든 시기를 통해 남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을 강요받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런 피난은 북한에 의한 ‘인민의 지배’를 긍정하는 것도, 남한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지배를 긍정한 결과이기 보다는 당장의 이익 추구와 목숨 보존에 치중한 경향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경험한 극적인 체험은 현재까지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안위와 일신의 보존만을 추구하는 경향, 즉 피난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떨어야 했던 극성스러움과 극악스러움이 온존해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마치 여름 한 철 피서지에 놀러갔을 때, 앞으로 계속해서 얼굴 볼 사람들이 아니니 자신의 자리보존과 이해를 위해 타인의 불편이나 공중도덕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의 좀더 극적인 버전이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온 셈이란 겁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의 병폐와 사회적 속성은 여전히 피난사회, 피난지에서 일신의 안위와 보존만을 따지는 것과 일치합니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국가 안보는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가 되고,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라는 공동체 유지와 보존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조직은 군대 조직과 같이 되고, 국민은 군인이 되고, 국가의 법은 군대에서 통용되는 명령”과 동일시되어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북한 양측의 점령 정책은 이와 같이 군사적 목적에 종속되었고, 국가의 모든 통치 행위는 곧 전투행위로 간주되어 각료회의나 민주적 대의 기구의 심의와 논의 없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양 국가 모두에서 국가는 신(神)과 같은 절대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적’과 ‘나’의 이분법을 강요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특정한 정치 이념, 즉 이데올로기를 견지하도록 강요하고 사람들을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구분한 다음 자신의 편에 선 사람은 용서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으로 취급한다. <김동춘, 전쟁과 사회, 본문 193쪽>

이렇듯 “과도하게 정치화된 전쟁 상황에서 국가의 신격화, 신앙 대상화 현상”은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반공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하나의 신앙처럼 되며, 국민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들 “국가가 표방하는 정치의 신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근대 유럽의 종교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도 이단의 결과는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을 거친 후 미국의 체제를 본받고, 미국에 의해 탄생했고, 미국에 의해 보전된 남한에는 국가와 이승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세력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가 토대를 튼튼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국가의 통치자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지속되는 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호전성은 남한 정권을, 남한의 호전성은 북한 정권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서로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 상대방이 필요한 공범자들, “적대적 공범자들”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국민적 집단히스테리

다시 앞서의 이야기들과 함께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국가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우리들 개개인은 역사 이래로 투쟁해 획득한 시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대립하고, 타협한다는 것, 그러나 국가(와 지배계급)는 이런 시민들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정부는 국가 형성 과정, 정부 수립 과정부터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국민의 의지보다는 미국의 의사, 미국의 이해관계에 더 무게를 두어왔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의 의미는 신과 같은 위치까지 올라가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국가안보와 국가가 표방하는 정치적 판단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종교재판의 이단자인양 비판되고 처벌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내면화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모든 악은 단 한 마디 ‘빨갱이’로 규정됩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평택 대추리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마치 우리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출현한 게릴라라도 되는 양 처단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정신병리학적인 집단 히스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측 모두 차분하고 이성적인 접근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런 역사적 결과가 현재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반대 혹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민들(그들도 분명히 국가가 보호해줘야 할 국민임에도 불구하고)을 군 병력을 동원해 강제로 몰아내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또 한 가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이란 국가체제를 지켜준(당시 소련과 경쟁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한) 미국의 이해를 남한의 이해와 동일하게 판단하고, 미국의 사고, 이해, 입장을 내면화한(자신의 입장과 동일한 입장인 양 생각하는, 또 실제로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도 하는) 지배세력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미국의 무력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영토에 그들이 이번엔 소련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좀더 공격적인 군사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재배치하는 일조차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런 문제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역할, 또한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수호한다는 측면에서도 당연히 국민의 의견을 묻고 반영해야 하는데 그런 적법한 절차들을 무시하고 진행되었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의 실상에 대하여

평택기지 이전문제를 요약해보자면,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되어있는 기존의 미군기지들을 통·폐합해서 현재 166만평에 달하는 평택기지를 450만평으로 확장하고, 춘천의 캠프페이지를 비롯한 전국의 미 2사단 소속 미군기지를 평택 한곳으로 모은다는 계획입니다.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총 16개 기지를 환수하고 춘천 캠프페이지 등 3개 기지의 병력과 시설을 분산 배치해 모두 7,0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다는 입장인 거죠. 이와 관련해서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시행한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라서 평택기지조성비용을 전국에 분포한 미군기지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충당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머물면서 일으킨 각종 범죄는 물론, 그간 자신들이 주둔해 있던 기지의 토양을 극심하게 오염시켜서 회복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군이 주둔했던 땅(22개 기지)에서는 암을 유발시키는 벤젠 등 유독성화학물질인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이 지하수에 스며들어 기준치의1,830배가 검출되었습니다. 또한 정부는 비용절감과 함께 기존의 미군 기지를 매각하여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지난해 3월 폐쇄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소유권이나 부지 활용권은 고사하고 아직까지 부지매입비용 산출작업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국방부까지 나서서 이 땅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사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지요.

언제까지 우리 땅에 우리 세금을 지불하면서 한반도의 이익과 평화보다는 미국의 이익과 미국의 세계전략에 충성하는 미군을 붙잡아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이익과 한반도의 이익이 부합되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우리의 의지에 따르는 군대가 아니라 미국의 군대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 유사시 미국은 한국 정부와 아무런 상의절차 없이도(통보만 있을 뿐) 주한미군을 이용해 인접한 국가들을 공격하거나 북한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지난 YS정권 당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기 일보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동안 어떤 의미에서는 주변의 다른 강국들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공격받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공격받는 이유가 우리가 그 나라에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매우 잔인한 전쟁을 치렀고, 그때의 경험으로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돌려받으므로, 또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놀고 있는 미군기지를 반환하라고 시위해 왔으므로 당연히 환영할 일이 아닌가? 돌려받는 땅이 더 많으므로 도리어 이익이 아니냐고 합니다. 다음은 국방부 홍보실 브리핑 자료입니다.

○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시피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은 한ㆍ미간의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입니다.
○ 이 사업은 1882년 청나라 군대의 주둔 이후 일본군, 미군으로  이어진 수도 서울 중심부의 외국군대 주둔 역사를 청산함으로써 국민적 자존심 회복차원에서 지난 88년부터 우리가 미측에 요구한 사업입니다.
○ 이후, 지난 ’90년에 한ㆍ미간에 합의한 후 일부 추진 중에 이전 비용 문제 등으로 우리가 중단을 요구하였고, 03년이 되어서야 한ㆍ미 정상이 재추진키로 합의한 것입니다.
○ 이러한 합의에 의해 최종적으로 362만평을 미측에 신규 제공하는 대신, 전국에 산재해 있는 35개 기지, 7개 훈련장 등 총 5,167만평의 미군기지를 돌려받아 순수하게 4,805만평을 되돌려 받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그동안 서울ㆍ부산 등 도심 한복판에 있던 미군기지를 이전 및 통폐합함으로써 주민불편을 해소하고 지역개발을 촉진하는 등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현재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단체들도 당시에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 요구하였는데, 이제 와서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며,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어떤 항의 시위에도 꿈쩍 않던 미군이 용산기지를 반환하는 이면엔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자신들이 더 이상 그 땅이 필요치 않게 되었고, 그 와중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방만한 형태로 군 기지를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고, 그런 기지를 유지하는데 있어 기지 사용료를 받기는커녕 유지비용까지 우리 정부가 상당수 대어주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그들 자신도 불필요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정부(노태우 정부 때부터 협상하기 시작)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쉽게 양보하고, 굴종적 자세로 협상에 임한 탓도 크지요(미군은 지속적으로 감축될 예정이며 현재 평택의 미군기지 중 상당수는 미군의 위락시설 부지로 이용될 예정입니다). 사실 미군이 용산기지를 반환하고, 주한미군이 용산과 의정부에서 떠나 평택으로 집결하는 까닭은 대북방어 문제는 한국군에 떠맡기고, 새로운 군사전략, 주한미군의 공세적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를 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는 기동타격군으로서 전 세계 분쟁지역으로 손쉽게 오가기 위해 오산비행장과 평택항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즉,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재 주한미군의 속성은 변화하고 있으며, 주둔이 지닌 의미는 더 이상 대북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고 강제하는 군사력이란 겁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003년 3월 16일 대북방어는 한국이 부담하고, 미군이 맡고 있던 한국 내 10대 군사임무도 2008년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주한미군은 평택기지를 확장해서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거점기지로 사용하려 합니다. 그간 대한민국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나 주한미군 재배치(GPR)가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1월 19일 반기문 장관과 미국의 라이스 장관은 워싱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평택 대추리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가?

“왜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다고 그 땅(평택 미군기지 확장 땅)을 내놓는가? 구체적으로 그래야만 될 항복문서나 국가간 체결문서가 있는 건가? 우리정부가 안 내놓는다고 하면 안 되는가?”란 질문을 했는데, 일부의 원인은 앞서의 글에서 대략적이나마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저보다 오늘(5.13)자 <프레시안>에 실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임종인 씨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재검토해야 한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협상을 잘못했고 그 다음 정부들도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미국과의 재협상이 불가능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용산기지이전협정 제2조 5항에 따르면 "양 당사국은 이전의 시행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에는 상호 협의하고 이전계획에 필요한 조정을 가할 수 있다." 제2조 2항에는 "필요한 경우에는 양 당사국의 상호 합의에 의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전"도 가능하다고 돼 있다. 미 2사단 이전협정인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LPP) 개정안에도 같은 조항이 들어 있다.
주한미군은 재배치되는 것만이 아니라 대거 줄어든다. 2004년 10월 4일 주한미군은 2008년까지 1만2500명을 줄이기로 확정했다. 이렇게 되면 2008년 말 주한미군은 2만4500명이 된다. 더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2006년 4월 23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의 추가감군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윌리엄 팰런 미 태평양사령관과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도 미 상하원에 그렇게 보고했다.
그런데도 주한미군 감군은 평택기지 확장 면적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주한미군이 3분의 1 이상 줄어드는 것은 용산기지이전협정이나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 개정안의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팽성지역 285만 평을 다 주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군사정권이 쓰던 강압적인 방법이나 공안사건으로 몰아서는 평택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의 반대여론을 미국과의 재협상에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의 재협상은 근거도 충분하고 논리도 부족함이 없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나는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력과 감축 규모를 고려할 때 285만 평의 절반만 제공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국방부가 강제수용한 땅에는 주한미군의 골프장 부지도 포함되어 있다. 미군이 전용하던 성남골프장(28만 평) 대체부지다. 주한미군을 위한 각종 위락시설 부지도 많다.
이런 사유들을 모두 묶어 국방부는 미국과 재협상해야 한다. 재협상을 통해, 다시는 내 땅을 떠나지 않겠다는 평택 농민들,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염려도 덜어야 한다. 정부는 강제수용을 중단하고 생존과 평화를 바라는 평택 주민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분의 글 말고도 사실 이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그것도 올해 중으로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문제 역시 우리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이고, 최근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에 대해 국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비롯해, 효순, 미선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광화문 촛불집회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평택 대추리 문제를 같은 시민 된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마치 반미 집단의 일인 양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한 정부가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며 우리의 진정한 국익을 위해 관철시키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앞서 나름대로 길게 늘어놓긴 했으나 그와 같은 분석만으로 해소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사안도 아니지요. 우리 국익을 위해서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저는 일면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럽이든, 일본이든 혹은 미국이 견제하고자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미국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미국의 힘이 강성하므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체념과 마찬가지로 일면의 진실일 뿐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그늘 아래 한반도가 평화로울 거라는 환상처럼 단지 일면의 진실에만 집착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 어떤 강대국도 100년, 200년의 영화를 지속하지 못했다는 진리와 함께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국가의 국민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평택 대추리,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를 생각해볼 때

어쨌거나 앞서부터 지루하게 끌어온 이야기들의 결론을 이제 내야 할 때인 듯싶습니다.
평택 문제는 우리에게 크게 세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줍니다. 첫째. 국가는 개인, 시민에게 무엇인가? 둘째. 미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셋째. 국익이란 이름 아래 자국의 국가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혼동하거나 일치시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고민거리에 대해 일부는 앞서의 글에서 제 나름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해서 보여드렸다고 생각하고, 이전의 글들을 읽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현재 평택의 주민들이 벌이는 시위를 땅값을 좀더 보상받기 위한 투쟁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있습니다. 기실 이런 시각은 정부와 언론에서 부추긴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국방부의 대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면 “반대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추리 및 도두리 지역의 보상금은 평균 6억원 수준, 이중 보상금 총액 10억원 이상이 21명, 팽성대책위 주요 핵심 간부들의 보상금 최고 액수는 27억 9천만원, 지도부의 평균 보상금은 19억 2천만 원에 이르는 등 사실상 백만장자가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일부분에서는 이전의 주장들과 달리 최근의 언론이나 여론의 동향을 살펴보면 이제 평택 주민들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분리해서 바라보려고 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평택 주민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동정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평택 문제를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스스로 양심의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전자이든 후자이든 평택 주민들을 타자(他者)화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정부의 발표대로 이들이 정말 땅 부자이고, 정말 그 정도 보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이 모두 자기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만 있을까요? 또 이 분들 가운데 자기 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자기의 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착을 과연 우리 정부는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사실은 이들과 그다지 처지가 다르지 않은 분들이란 사실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닐 겁니다.

3년이 넘는 주민들의 투쟁 과정 속에서 한·미 두 나라 정부가 평택의 주민들과 진지하게 상의한 적이 없습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을 이어가는지, 그 이유와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단지 특별법을 만들고, 땅을 뺏고, 농민들을 감옥에 가두고,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겠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죠.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 89번지에 사는 오정순(59)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도 고생을 해가지고 지금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요. 그래서 지금은 일을 못해요. 새벽에 다섯 시부터 일어나 애들 셋 데리고 나가서 일 할라고 생각해봐요. 들판에다 다라 속에 애들 놓고 그렇게 일하면서 빨랫줄에 빨래 마를 날이 없었어요. 밤 열두 시까지 빨래하고 그 이튿날 일 나갔어요.
지금 이렇게 앉아서 생각하면 이 몸뚱이 다 망가지도록까지 일한 거예요. 그러니 이 땅에 애착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어디 가서 살라고 이걸 내놓으라고 하느냐고. 그리고 지네들이 미국놈들한테 전쟁마당 제공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더 원통한 거여. 우리가 어떻게 가꾼 땅인데 이 땅을 달라 그러냐고요. 우리는 진짜 못 나가. 이 땅 가져가려면은 우리들을 다 동네에다 묻고 가져가야 돼.
우리 동네는 지금 아무 걱정할 게 없어. 미군기지만 안 들어온다면은. 노인양반들 여기서 사는 데 아무 불편 없고. 여기는 소작농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어디 가서 사느냐고. 이제 나이 60~70 먹었는디 다른 데 가면은 어디 소작논 주어요? 지난번에 국방부 사람이 그러는 거야. “직장 해주면 되지 않느냐” 해서, “당신네들 60~70 먹은 노인네들 갖다가 직장 줄라느냐”고, “돈 얼마썩 줄라고 직장 얘기하느냐”고 그러니까 답변을 않더라고.

농촌에 산다고, 우리가 세금 잘 내고 거시기하니깐 정부에서 우리를 너무 깜본 거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대할 수는 없어 우리 농민들한테. 우리 농민들을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거야. 텔레비전도 보지만 농촌 사람들 사기쳐서 붙잡혀가는 거 봤어요? 우리는 법이 뭔지도 몰라요.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 살 때 지덜이 와서 치다보기를 했나 도와주기를 했나 물 한 모금을 떠다줬나. 그런 것도 아닌데 지네들은 법 찾고. 우리가 법을 어긴 적이 있가니?
애들이, 학생들이 데모하고 그럴 때에, “아 쟤네들 왜 저래여. 부모들이 저거 갈키느라고 얼마나 욕보고 그랬는데 왜 저렇게 맨날 투쟁을 하나” 그랬거든. 그런데 우리가 당하고 보니까, 그 학생들도 그렇게 생겨서나 그렇게 투쟁을 했는가 보다 하지.

평택으로 기지 확장 이전한다면서 정부가 한 일은 편지 하나 달랑 보낸 것이라고 하는데, 국방부 브리핑 자료를 살펴보면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모처럼 조성된 대화의 물꼬를 국방부가 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2년여 동안 반대 대책위 주민들과 공식ㆍ비공식 대화를 38회”나 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려 했던 것일까요. 국방부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을 이끌고 있는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평택 주민들의 모임인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팽성 대책위)에 전화조차 걸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에 국방부는 협의매수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범대위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관망파’를 대화상대로 골랐습니다. 이 분들은 국방부 관계자와 만나 “지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매우 상식적이고 온건한 요구였겠지요. 지난 2005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개발사업지역 세입자 등 주거빈곤층 주거권 보장 개선방안을 위한 실태조사’를 보면 “국가가 진행하는 사업으로 주민들의 생활 여건이 이전보다 나빠져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는 데, 국방부는 관망파 농민들을 설득하는데도 실패했습니다.

국방부는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은 한․미간의 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책사업이란 대부분이 정부가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짜고, 그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식이었지요. 부안에 핵폐기장을 만들  때도 그랬고, 천성산 터널 공사도 그랬고, 새만금도 그랬지요. 정말 그곳에 거주하며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묻거나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일부 전문가들, 관료들, 정치인들끼리 결정한 뒤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택시 팽성읍에는 대추리가 두 곳 있다고 합니다. 50년 전 주민들이 살았던 대추리는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없어졌고, 주민들은 쫓겨난 후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으면서 대추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지요. 하지만 주민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해 미군 부대 안의 옛 마을 자리를 '원 대추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2006년 이 곳의 주민들은 또 다시 대추리라는 이름을 잃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 평택 대추리엔 농촌이면 어디에나 있는 마을을 상징하는 큰 나무가 없다고 합니다. 일정 시대 때 쫓겨나고, 미군 공군기지 조성되면서 다시 추방당하듯 쫓겨난 사란들이 갯벌을 메워가며 이를 악물고 농사지어서 50년 세월을 거친 분들입니다. 이제 겨우 살만 해지니까, 다시 땅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대추분교 이야기는 전해 들어서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어느 분이 잘 써 논 글이 있어서 다시 인용해 봅니다.

거기에 학교가 없었어. 3Km 떨어진 계성초교로 통학했대. 원래 뻘밭이었으니 애들이 길 다니기가 원체 힘들어야지. 대추리/도두리 사람들, 그전에도 땅 뺏기고 온 사람들이니 살림 어려운 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와중에 주민들이 쌀 걷어서 땅 사서 학교부지 만들어 교육청에 기증한 거야. 학교 세워달라고. 1969년 3월 1일 계성초등학교 대추분교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지. 사람들이 대추분교에 모인 이유가 그거야. 나라에서 애들 학교도 안 만들어줘서 올곧이 주민 힘으로 만든 학교. 그래서 거기 모인 거야.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스팔트 킨트들인 우리들이 농부들이 생각하는 땅의 소중함, 땅이 곧 생명인 분들의 감각과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되긴 어려울 듯합니다. 이제 조만간 FTA란 광풍이 또다시 밀어닥칠 것이고, 우리네 농촌엔 다시 한 번 살벌한 폭풍이 들이닥치겠지요. 물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경제 규모, 산업적 측면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합니다. 아마 순전히 산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자면 FTA가 꼭 우리에게 손실만 입히진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보아 FTA로 이득을 얻을 사람들이 그 이득을 FTA로 손실을 입게 될 사람들을 위해 혹은 국가가 거둬들인 이들을 위해 부의 분배를 이뤄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엔 돈이나 가치, 효율이란 것만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들도 있는 법입니다.

어떤 이들은 현재의 시위문화(폭력시위)를 문제 삼습니다. 물론, 저도 평화시위, 시위문화를 지지합니다만, 더 큰 폭력(국가폭력, 공권력에 의한 폭력)에는 눈을 내리 감으면서도 그에 비해서는 강도가 훨씬 약한 시위 도중의 폭력에 대해서는 질겁하며 그 사람들을 이 땅에서 내몰아야 할 것처럼 야단입니다. 언제나 길 위에서 우리들과 함께 해주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끝으로 이 글을 줄일까 합니다.

미군기지 확장 문제는 대단한 이슈입니다. 누가 봐도 미군의 군사전략 아닌가요. 신속한 기동력, 정밀한 타격 아닌가요.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을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라는 게 눈에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화약고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재산권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권까지 빼앗기는 것 아닌가요. 팽성읍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지를 반대하기 전에 평화를 사랑하는 운동입니다. 지금은 평택주민들의 시련으로 비치고 있지만 이는 한반도 평화가 달린 문제입니다. 여태껏 팽성읍 내부에서 논의하고 결속력을 다졌다면 이제 세상에 널리 알려서 '우리 일'로 만들어야 할 때인 겁니다. 이 싸움에서 진다고 생각해봐요. 한미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 같아요? 더 종속될 겁니다. 지금의 시련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데 세상은 평택 언저리 작은 마을의 외침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순박한 주민들이 짊어지고 갈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후에는 모두가 같이 짊어지자는 겁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면 조금씩 나눠지자는 말입니다.

이제, 저는 그 짐을 조금 나눠지기 위해 광화문으로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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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오늘 어느 고등학생에게 받은 질문...

바람구두아저씨

학교 체육대회를 하고 일찍 와서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내일은 스승의 날이라고 친구들 모이기로 하여 오늘 숙제를 다 끝낼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참고로 이번 숙제가 고민 되었는데 거의 모든것이 망명지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현재의 주요 사안 하나를 정해 파악하여 나름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5분정도 발제를 하고 친구들의 질문을 받고 질문대처능력도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친구들의 질문이 없으며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하여 가상 시나리오 쓰듯 질문자가 없을 때를 대비해 친한 친구에게 가상 질문지를 만들어 주어 작전을 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독도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그때는 친구들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의견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지지난주 어머니께 어떤 내용을 다루면 좋겠느냐고 도움을 구했더니 “평택”이라고 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발표이야기가 나와 주제를 이야기했더니 중요한건 지금 평택에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친구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활발한 토론이 형성되지 못하여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또 하나의 사실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후한 점수를 얻을 기회가 되리라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민중의 소리에 들어가서 몇 개의 동영상을 보여주셨지만(어머니께서는 무엇보다 대추분교가 무너지는 장면을 몇 번 틀어 보셨습니다.) 그 때는 시험기간이라 대충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저러시냐며...아버지께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보수적이십니다. 자이툰 파병에 대해서도 어머니와는 약간의 각도를 달리하고 계시던 분이시니 집에서 받아 보는 다른 시각의 조간 신문 읽는 듯한 두분이십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아버지께서도 이미 정해진 사안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지만 착잡하신가 봅니다.
어머니께서는 도움되는 스크랩이나 프린트는 해서 제게 주시지만 저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의미이시고 “니가 알아서 먹어라”“공부는 내가 하나 니가 하지.” 주의십니다. 며칠전에는 맥을 잡았느냐며 망명지에 들어가 보면 도움되는 이야기들이 많을 거라 하셨습니다.
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저씨.
평택 미군 기지를 확장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한반도를 미국의 전쟁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라는데 그러면 왜 우리군은( 군이 제일 먼저 반대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미군 기지화 작업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군병력을 투입하여 국방부가 강제 행정대집행을했던 저의는 무엇입니까? 약자여서 어쩔 수 없이 행해야만 되는 극단의 제스츄어입니까?
미군기지화하면 우려되는 제시안들이 결국 나라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인데(시위도 그렇고) 그러면 군에서 먼저 반대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왜 군이 나서서 더 더욱 설쳐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 주실수 없으십니까?

 

또 하나
미국에서는 자기네 땅이 아닌데 그 많은 땅을 요구하고, 요구한다고 왜 정부에서는 그 땅을 내 놓습니까? 우리나라가 꼭 땅을 내 놓아야 되는 그래야 되는 항복 문서라도 있는 겁니까? 미국이 그 많은 토지를 내어 놓으라한다고 해서 정부에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 땅을 내어 주어야만 되는 오래전에(휴전 협정시에나.) 체결된 문서 같은 게 있습니까? 그런 것에 기인한 것입니까? 국가간에 체결된 그런 게 있습니까?
왜 더 많은 땅을 내어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안 내 놓겠다고 하면 안 되는겁니까?
그것도 궁금합니다.

저도 처음엔 돈 많이 주는데 농사 힘들게 짓는 것보다 좋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땅을 딛고 사신 분들의 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야기를 예로 들어 주셨습니다. 터의 양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습니다. 뼈가 아파도 꼭 내어줘야 되는 일에는 얼마든지 내어 주어야 되는 일이지만 죽쑤서 개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니냐했습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렇게 의식화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더니.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거라고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열사의 아들은 열사가 되지 못해도 열사의 부모는 다 열사가 되는 것이라고. 학생 운동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을 한번 보라고, 처음에는 무지했겠지만 당하다 보니 깨우치고 발버둥치다보니 억울하게 죽을 수 없으니 생각도 바뀌고 열사가 되는 거라고. 지금 평택의 주민들도 그러한 경우라고 뼈를 묻은, 뼈를 묻을 터를 내 놓고 가라는데 너 같으며 얼씨구 웬 횡재? 하며 좋다 돈 받고 가겠냐?
그리고 야.야. 너는 얼씨구 좋다 하면서 가겠지? 했습니다.(물론 어머니께서 하신 그 의미는 압니다.)

공개게시판을 이용해야 되는지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 어머니께서도 저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하시고) 어머니께서 저 대신 아저씨께 여쭤봐 주셨으면싶기도 했지만 어제는 아저씨 요즘 바쁘시다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만 둘까 하다가 가장 시원하게 대답해 주실것도 같고 저의 숙제여서...


이것도 조금 궁금합니다. 시위 문화에 대해서 말들을 합니다.
과격시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데 사실 저는 시위하는 걸 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자기 방어의 목적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각목과 죽창을 들지 않고 침묵 시위 같은 방법은 어려운 것입니까?
그런 상황에 접하면 그렇게 과격하게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건지 이것도 조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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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로 온 것이라 개인 신상이 드러날지 모를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약간 손을 봤습니다.
참말로 기특하고 대견하단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제가 학회 세미나 마치고 들어오니 밤 11시가 다 되었네요.
내일 아침에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도 이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친구의 고민을 함께 해주실 분은 친절한 댓글 달아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제가 요새 잡지 마감을 해야 할 때인데, 다른 바쁜 일들로 원고 교정엔 손도 못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내일 밤새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한한 광화문에 반드시 나갈 생각인데, 어쩌면 매우 늦게나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시 광화문에 나가실 분들 가운데 나중에라도 절 보고 싶은 분은 문자나 이곳에 댓글달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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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행사가 많은데도 학교 측에선 애매한 일정만 알려주었다. 그리곤 교사들을 상대로 의견조사를 하는데 이런 식이다.

스승의 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첫 번째 조사: 1안 소풍/ 2안 체육대회

이 조사는 결국 스승의 날, 학교 행사를 잡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학교처럼 휴업을 선택할 수 있는 교사들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한 파쇼적인 것이었다. 직접 확인한 바 없지만 15일도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라는 부산시교육청의 공문이 내려왔다는데 사실이라면 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웃기시는 행정이고..  이 조사 결과에 따라 소풍과 체육대회 날짜가 확정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담임인 나로서는 솔직히 이건 둘 다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스승의 날, 아이들과 소풍을 간다? 체육대회를 한다? 비담임샘들에게는 그 날 수업을 하느니 차라리 직접적으로 아이들과 맞닥뜨릴 일 없이 이렇게 운영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워서 좋다고 했지만 그건 담임의 희생을 볼모로 하는 것이라 왠지 억울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교사들 대부분은 이 조사가 진행될 때  스승의 날 휴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선택'은 최소한 세 가지 밖에 없는 줄 알았다. 정상수업을 하던가/ 소풍을 가던가/체육대회를 하던가. 암뭏든 결과는 체육대회를 하자는 의견이 제일 많았단다.

그런데 서울 쪽에서는 거의 휴무로 결정하는 분위기가 되고 부산의 많은 학교에서도 '휴무' 발표가 이어지자 샘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다른 학교는 쉰다는데 우리 학교는 왜 교사들의 의견을 조사'도' 안 하는데?  결국 이 불만은 부장회의에서 '학교 일정은 학교장의 결정사항'이라고 생각하는 그 분께 전달되었고 다시 두 번째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스승의 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두 번째 조사: 1안 체육대회/ 2안 휴무

직원회의 시간에 '그 분'께서 보무도 당당하게 일어서시어 '수업하기 싫어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이 아니'라며 샘들의 신중한 판단(?)을 역설했지만  보나마나 아이들이나 샘들 모두 당연히 2안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스승의 날은 학부모, 아이들, 그리고 교사들 모두에게 부담, 그 자체인 것이다. 아! '그 분'은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세 번째 조사가 있었다. (원래 이 날 학교 일정에 대해서는 학교장에게 결정권이 있으나 특별히 우리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주시는 거라고 했다.) 체육대회는 11일로, 소풍은 12일로 결정하기로 하되

스승의 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세 번째 조사: 1안 오전수업/ 2안 휴무

이 역시 생각해보나마나 물어보나마나의 결과일텐데 왜 자꾸 의견조사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1안에 찬성한 교사가 19명. 2안에 찬성한 교사가 50명. 결과가 나오자 언제나 正道를 따른다고 자부하시는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학교 일정은 교장이나 교사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학운위'를 통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교사들은 누구도 학교일정을 잡기위해 학운위를 열었던 기억이 없다.  지난 해 여름/겨울 방학 때 실시했던 직원연수도 그저 우리(사실 누구인지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몇몇 분들...)얼렁뚱당 날을 잡았고 계획을 세웠다. 교사들은 참여할건지 말건지 의사만 밝혔고. 교직원연수도 아이들의 수업결손을 초래하는 것임에도 학운위를 통과해야한다는 말,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스승의 날 휴무를 결정하는 것이 학운위결정사항이었다면 애초에 두 번째, 세 번째 조사는 왜 했단 말이야. 귀찮게시리...

결국 체육대회가 있던 11일, 11시에 학운위를 열었다.(왜 굳이 체육대회가 있는 날로 날짜를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운영위원 말고도 학부모님들이 대거 왕림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학부모님들의 의견은 똑같았다. 진정한 스승의 날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선생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가 한 자리에서 축하해야한다는 것, 다른 학교가 스승의 날 휴무를 하는 이유는 어떤 의혹을 배제하려는 부정적인 모습이므로 오히려 더 당당하고 깨끗하게 진행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건 '교사들의 용기'의 문제라고 했다. 이미 대다수의 학교에서 휴무 결정을 하였고 우리 학교 50명의 교사들도 휴무를 원하며 이건 다른 날도 아닌 '스승의 날'에 관한 것이니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주십사 이야기해도, 수업결손을 막기 위해서는 방학을 하루 줄이고 그날 휴무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해도 학부모들의 생각은 누군가 그 자리에 말뚝을 박고 묶어놓은 듯,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그 분'께서는 계속 '투표로 결정하자'고 보채셨다.

투표 결과는 4:6이었고 결국 우리는 월요일 등교한다.

 궁금하다. 학부모님들은 정말 이 결과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 분들의 생각을 꽁꽁 묶어둔 걸까? 생각이 묶일 수 밖에 없었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결과는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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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5-1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징그러운 교장과 근무하시는군요.
짐승을 보고 열받지 마세요. 짐승은 그 업보를 스스로 짊어지고 퇴장할 것입니다.

해콩 2006-05-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은 뭐 매사에 이런 식이니까 어느 정도 예상한 동선이라해도 제가 궁금한 건 비밀투표에도 학부모님들이 그렇게 결정하셔야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자신의 의견(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을 발화하면서 이미 신념화 되어버리는 걸까요? 이건 누가 봐도 한 사람의 '폼'을 봐주기 위한 들러리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