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 문장
김규회 지음 / 끌리는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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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으로 소설 만나기 - 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 문장 _ 스토리매니악


첫 문장의 중요성은 어느 글에서나 비슷하다. 첫 문장의 강렬한 끌림이 없으면 그 글은 이미 힘을 잃고 마니 말이다. 그러나 소설 장르에서만큼 첫 문장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장르는 없다. 소설에서의 첫 문장의 중요성은 모든 작가가 인정하는 바이고, 나아가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더 없이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특히나 소설은, 첫 문장이 소설의 몰입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을 쓰기 위해 고심한다. 기발한 첫 문장을 고심하거나, 신선한 첫 문장을 고심하기도 하고, 배경 서술을 통해 분위기에 몰입하기 위한 첫 문장을 준비하기도 하며, 충격적인 첫 문장을 내세우는 작가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이후에 전개될 소설로 독자를 유혹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다. 때문에 소설의 첫 문장은 명문인 경우가 많고, 내내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가가 가장 고심하며 쓴 문장이기에 더 그 울림이 커지는 것이다.


나도 좋아하는 문장들이 꽤 있다. 또 읽으면서 '이런 첫 문장이라니..' 하며 감탄한 경우도 많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앗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첫 문장', ' 벌써 30년이 다 돼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첫 문장' 같은 경우도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이처럼 소설의 정수라 하는, 소설의 첫 문장만을 모아 엮은 책이다. 솔직히 책을 들면 꽤 당황스럽다. 소설의 첫 문장이 수록 되어 있고, 이어 작품 소개와 작가 소개, 작가의 다른 작품의 첫 문장이 수록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해 이 구성이 전부다. 이런 구성으로 138명의 소설가, 460여편의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실어 놓았다. 첫 문장과 더불어 엮은이의 첫 문장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 처음엔 꽤나 당황스러웠다. 책 표지에 지은이가 아닌 엮은이라 표기된 이유가 납득되는 순간이랄까.


때문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첫 문장에 이은 소설이 주는 감흥 때문에 그 첫 문장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첫 문장만 뚝 떼어놓고 보면 조그 낯선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일 경우엔 그 낯선 정도가 더하다. 때문에 책이 주는 당황스러움이 꽤나 묵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 책에 첫 문장이 실린 소설을 이미 읽은 경우라면, 책에 실린 첫 문장이 주는 감흥을 다시금 느껴 볼 수 있게 된다.


내 경우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반 정도는 읽어 본 것 같은데, 모르는 소설일 경우보다 읽었던 소설의 첫 문장이 깊게 와 닿았다. 특히 좋아하는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나면 상당히 반갑다. 다시금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흥으로 엉덩이가 들썩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의 호불호는 독서량에 맞닿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을 만나고, 그 첫 문장에 이끌려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성공 아닌가도 싶다.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을 만나고, 그것이 실제 책을 읽는 행위로 이어진다면, 첫 문장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껴보는 계기가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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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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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것과 기억되는 것, 무엇이 더 두려울까? - 기억술사 1 _ 스토리매니악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내용을 떠나, 기억을 잊는다는 것이 참 공포스럽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퇴하거나, 치매로 저항하지 못하는 기억력 상실이라면 어떨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그 답답한 공포는 몸을 부르르 떨리게 만든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너무나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기억. 너무나 괴롭고 자기자신을 좀 먹는 기억이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라는 것은 그 나름대로 다른 의미의 공포다. 누구나 살며 정말 잊고 싶은 기억 한 두가지 쯤은 있다.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그 기억은 살아 있는 내내 자신을 괴롭힐테니 말이다.


이 소설 <기억술사>는 바로 이런 기억의 상반된 공포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다. 꼭 잊고 싶은 것을 지워주는 도시전설 속 괴인 '기억술사', 그 기억술사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 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경험,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어우려졌을 때의 공포, 감성적이지만 슬쩍 한기가 드는 이야기다.


애달픈 호러, 노스탤직 호러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호러라는 장르를 붙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공포라는 감정이 드러나고, 이를 표출하는 장치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소설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굵직한 힘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요즘 대다수의 소설이 그렇듯, 약간의 호러적인 설정, 약간의 미스터리적 장치, 약간의 로맨스적 구성이 잘 버무려져 있다 하겠다.


'기억' 이라는, 추상적이라 더 감상적인 느낌이 드는 이 단어가 이야기를 좀 더 신비스럽게 만들고, 몽롱한 분위기 안에 가벼운 호러적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써, 캐릭터들이 어떻게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하게 만드는 유용한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미지의 정체인 기억술사에게 다가가기 위한 기본 설정이 좀 아쉬운 감은 있지만, 이야기 내내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의 분위기에 잘 빠져들 수 있다면, 다양한 장르의 재미가 어우러진 소설로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존재를 안고 조여드는 긴장감을 맛볼 수도 있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둥둥 떠다니는 몽롱한 기운을 느낄 수도 있으며, 그 과정을 따라가며 느끼는 미스터리적 풀이의 만족감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좋게 보면 다양한 장르의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다 하겠지만, 그 분위기에 젖어들지 못하면, 이도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다.


모호한 지점에 서서, 신비스런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소설이었다. 시리즈 도서인데, 이제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을 즐기기에는 충분했지 싶다. 뒤의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은, 온전히 주인공들의 다음 이야기, 기억술사의 정체에 대한 또 다른 결말이 궁금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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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앤 허니 - 여자가 살지 못하는 곳에선 아무도 살지 못한다
루피 카우르 지음, 황소연 옮김 / 천문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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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감정의 강 - 밀크 앤 허니 _ 스토리매니악


봄이 되면 시가 땡긴다. 이유는 모르겠다. 계절적으로 가을이 어울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게는 봄이 시의 계절이다. 요즘 많은 시를 접하며 나름 감정의 바다에 빠져 산다. 그러다 조금은 충격을 주는 감정의 강을 만났다. 인도에서 출생하고 캐나다에서 성장한 한 여성의 시집, 젖과 꿀이라는 성서적인면서도 에로틱한 제목을 달고, 한 여성으로써 느낀 다양한 감정을 거침 없이 쏟아내는 시집이다.


여자로써의 삶이 투명하게 드러난 시들이다. 때로는 경험한 이야기, 때로는 목격한 여성의 삶의 모습들을 직설적인 언어로 뿌려 놓았다. 쉬운 언어라 그 직설이 더 날카롭게 다가오고, 그런 직설을 거침 없이 쏟아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여성이라는 성에 둘러쳐진 편견과 오해, 그리고 사회의 굴레를 과감하게 뚫고 나오는 시도이고,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던져내는 대담한 시도다.


대다수는 감추려고만 하는 이야기, 또는 쉬쉬하며 넘어가는 이야기들을 시라는 형식에 담아 세상에 내놓은 시도에 세계의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하고 응원을 보내는 것 같다. 나 또한 시를 읽어 나가며 감정적인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그녀의 시들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이 시집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공감보다는 충격이라는 단어의 비중이 좀 더 크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동성이 아닌 이성이기에 그녀의 여성의로써의 감정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음을 변명으로 삼을 수 있겠다. 그녀의 감정을 통해 상상되는 또는 느껴지는 형체를 생각하면서 드는 감정은 온전한 공감보다는 충격이 먼저 다가오게 된다. 같은 여성의 경우가 느끼는 그녀의 시와 이성이 느끼는 그녀의 시가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그녀의 시가 주는 울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시가 시의 형식적인 면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문학적 입장에서 그의 시를 보자면 공격할 부분은 많다. 그러나 문학이 형식으로만 정의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녀의 시들이, 평범한 문장처럼 보이고 그냥 내뱉는 독백 같아 보여도, 많은 독자들에게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시로써 존재하게 된다.


어쩌면 시가 가져야 하는 문학적 분석의 틀을 벗어났기에 그의 직설적 감정들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날 것 그래도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시를 읽으면 그 직접적인 감정의 충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먹먹하게, 때로는 가슴을 쿵쿵 두드릴 정도의 감정들을 흠뻑 맞게 된다.


좋은 시집이다 아니다를 떠나, 다른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시집이다. 거창하게 여성을 향한 분석적 수사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한 여성의, 여성으로써 많은 아픔을 겪은 한 여성의, 감정의 배설을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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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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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실제하는.. -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_ 스토리매니악


내 중국 문학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협소하다. 읽어본 작품도 얼마 되지 않고 아는 작품도 많지 않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중국문학은 과거를 보거나 미래를 보거나 또는 전혀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를 본다기 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중국 문화 고유의 것이든 아니면 현재의 정치 체제에서의 한계이든, 또는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내가 본 문학작품들은 그랬다는 것이다.


'다빙' 이라는 중국문학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작가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작가로 보인다. 그에 대한 소개를 보면 중국인들에게는 그의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이야기 세계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것이 현재의 중국과 겹치며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들었다.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를 표제작으로 하는 이 소설집에도 그의 소개에 나타난 것처럼 다양한 시각 혹은 이야기의 다양성으로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한 권으로 그의 이야기 세계가 얼마나 다양한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야기 또한 중국의 현재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그의 이야기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다. 처음엔 그에 대한 정보 없이, 이 책에 대한 최소한의 소개만 알고 읽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소설이 마치 실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는 감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읽은 후에 찾아본 정보에서 이 책이 그리 생생함을 갖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중국 대륙을 떠돌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실제 자신이 경험하거나 들었던 이야기, 즉 현실에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로 엮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 에세이 같기도 한 생생함을 지닌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소설은 분명 현실에 기반하여 이야기가 덧붙여 지는 것이 맞지만, 나는 덧붙여 지는 판타지의 풍성함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적어도 다빙의 소설은 현실에 좀 더 집착하는 면이 보인다. 이야기적 상상력을 한껏 뽐내기 보다는 자신이 본, 들은, 경험한 중국의 현실과 인물들을 담담히 소설적 형식 안에 되살려 내고 있다. 이런 면이 중국의 현실, 중국의 문화, 중국이 가진 독특한 이야기 촉매로써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써는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바꿔 말하자면, 그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울릴 만큼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접점이 덜해서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일본, 유럽, 영미권의 소설에 비한다면, 지극히 적은 문학적 접촉, 또 문화적 접촉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한계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소득이라면 이 작품집을 통해, 그가 보는 현재의 중국의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바링허우 세대가 가진 갈등, 생각, 그로인해 변해가는 중국의 현실, 젊음이 갖고 있는 절망과 희망 등, 변해가는 중국의 민낯을 조금은 엿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좀 더 만나보고 싶은 작가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접해보면서, 그가 가진 이야기의 힘과 그 원천, 나아가 그가 중국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가 경험한 강호의 세계에, 나도 도포 자락 휘날리며 참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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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이비 포켓 좀 말려줘 아이비 포켓 시리즈
케일럽 크리스프 지음, 이원열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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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요오오오물~ - 누가 아이비 포켓 좀 말려줘 _ 스토리매니악


캐릭터가 사랑스러워 읽게 되는 소설이 있다. 캐릭터에 홀딱 빠져 다른 소설적 요소들은 뽀나스로 생각하게 되는... 그런 소설을 만나면 꽤 즐겁다. 원래 캐릭터가 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소설을 좋아하는 취향적인 면도 있지만, 캐릭터 소설이 가진 매력 자체가 워낙 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이 바로 사랑스러워 더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를 가진 소설이다. '아이비 포켓' 이라는 블링블링한 이름을 가진 열두 살 소녀의 기상천외한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녀라는 조금은 우울한 신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유머가 깃든 독설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거침없는 행동으로 여러 위기들을 헤쳐나가기도 하고, 절친을 위해 우울해 할 줄도 안다. 때로는 악당 같은 모습이 되었다가도 어떤 때에는 영웅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다.


그 통통 튀는 매력을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팔팔한 캐릭터를 앞에 떡 세워놓고, 코미디, 미스터리, 판타지, 스릴러, 호러, 액션을 짬뽕해 놓은 이야기를 뒤에 턱 세워놓았다. 잘못 섞으면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겠지만, 탄탄한 이야기 짜임새에 다양한 장르의 장점만을 쏙쏙 빼먹은 듯한 구성이 짬뽕의 한계를 넘어 매력적인 판타지 세계를 구축해 놓았다. 다양한 장르의 펼쳐놓고, 천방지축 캐릭터가 그 위를 통통 튀며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아이비 포켓이라는 인물과 얽힌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비밀을 한꺼풀 두꺼풀 벗겨 나가는 재미가 있다. 관을 만드는 스낵스비 부부, 의지가 되는 사서 카니지 양, 아름다운 귀족 상속녀 에스텔, 그녀의 오빠 서배스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리베카, 아이비를 괴롭혔던 올웨이스 양과 록들, 멀티다와 트리니티 공작 부인의 유령에 이르기까지, 이 기괴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조합과 배경이, 미스터리한 전체 분위기와 맞물려 책 한 장 한 장에 매력을 더한다.


중간중간 곁들여진 삽화도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하게 만들어준다. 마치 팀버튼 스타일의 캐릭터와 이미지를 보는 듯한데, 이야기와 정말 잘 어울린다. 삽화가 소설의 문장을 방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에는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이비 포켓의 명확한 이미지와 코믹스러운 캐릭터들의 모습들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상당히 후한 평가를 내리게 되는데 이는 내 취향과 관련이 깊다. 소설 속의 캐릭터, 소설 속의 배경 이야기, 구성되어 있는 세계, 거기에 삽화까지, 상당히 내 취향이다. 아, 약간 유아틱한 이야기 구성까지 말이다. 시리즈 소설이라는 것이 꽤나 감사할 지경이다.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지 않을까? 살짝 아동틱한 이야기를 못참아 내는 성격만 아니라면, 누구나 즐겨 읽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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