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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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은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 영화나 문학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풍경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론가 뚝 떨어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나 또한 이런 설정으로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를 보면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어디로 갈까? 하지만 왠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굳이 과거로 가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그 과거가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나 그 이전 시대라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온다.

 

대부분의 나라는 과거에 신분제가 엄격히 존재했다. 조선시대 또한 엄연히 노비와 양반으로 나누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 내가 어느 양반집 종 신분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게다가 돌아가 보니, 그 양반집에 내 조상이 있다. 남자 조상은 양반집 자제인데, 여자 조상은 그 집 노비이다. 이런 설정이라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양반집 자제가 강제로 그 여종을 취할 것이며 그렇게 내 조상의 핏줄은 이어져서 오늘날의 내가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옳지 못한 일을 내가 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고,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런 이야기가 바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에서 펼쳐진다.

 

배경은 물론 내 상상과는 다르다. 주인공 다나가 사는 세계는 노예제가 사라진 1976년의 미국이고, 그 다나가 어느 날 갑자기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곳은 노예제가 존재하는 1819년의 미국 남부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가까운 인생과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귀한 줄 몰랐던 편안함과 안전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체 어떤 여행을 떠났기에 왼팔을 잃은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나의 남편인 케빈이 폭행을 가한 당사자가 아닐까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참 느닷없게도 다나는 한 세기를 넘고 5천 킬로미터를 지나 죽은 조상들을 만나고 온 것이다. 1819년의 루퍼스앨리스가 다나의 조상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여행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루퍼스, 그러니까 다나에게는 남자 조상에 속하는 그 아이에게 있다는 점이다. 처음 다나가 과거로 돌아갔을 때 소년 루퍼스는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강물에 빠져죽을 위기에서 다나가 갑자기 나타나 루퍼스를 살려주고 그 인연으로 루퍼스의 집에서 노예이지만 조금 색다른 존재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흑인인 다나는 1976년에는 자유인이지만, 1819년에는 자유인이라는 신분증명서도, 누군가 자기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백인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도망 노예 취급을 받고, 그렇기에 루퍼스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때 다나는 루퍼스의 집에서 소녀 앨리스를 보게 된다. 루퍼스는 백인 농장주의 하나뿐인 아들이고, 앨리스는 그들이 소유한 노예이다. 다나가 태어나려면 앨리스와 루퍼스 사이에 성적 결합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과 노예 사이이자, 백인과 흑인이다. 이 둘 사이에 일어날 일은 독자는 물론 다나도 예상할 수 있다. 설마 루퍼스가 앨리스를 사랑할까, 설마 앨리스가 백인 주인인 루퍼스를 사랑할까. 그 시대는 이 작품에서도 언급하듯이 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236)이다. 그런데 둘 사이에서 다나의 조상들이 태어나고 그 핏줄이 1976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다나는 한 번의 시간여행으로 내내 1819년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나? 여자 흑인 노예로 목숨을 부지하기 쉬울까 무척 걱정스러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 위험에 처할 때면, 즉 다나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 죽음의 공포는 다나를 1976년 그녀의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온다. 그러니까 루퍼스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가 다나를 과거로 불러가고, 반대로 다나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1976년의 현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사이 시간은 점차 흐른다. 과거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다나가 1819년에서 며칠, 몇 달을 머무르다 현재로 돌아와도 고작 몇 초, 또는 몇 시간, 하루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입은 육체적 상처는 현재로도 이어지기에 루퍼스 와일린, 즉 와일린 농장에서 다나가 채찍으로 맞거나 구타당하면 현재로 돌아와도 그 채찍자국이나 맞은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은 이런 설정을 통해 당연하게도 노예문제와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노예가 아닌 현대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노예인 조상과 그 노예의 주인인 또 다른 조상을 만나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노예 취급을 받는다는 설정은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인종차별과 노예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젠더문제이다. 다나가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소년이었던 루퍼스는 어쩌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단지 피부가 하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루퍼스가 성장하면서도 흑인 노예에게 무고한 존재로 자랄 수 있을까? 혹시 흑인 노예인 앨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애로운 농장주가 되어 노예들을 모두 풀어주고 더 나아가 노예 탈출을 돕는 백인이 되는 걸까 상상해 볼 수도 있지만 실제 루퍼스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평범한 그 시대 백인 농장주가 되어간다. 아버지가 여자 노예를 여럿 강간했듯이 앨리스를 강간하는 점까지 똑 닮아가면서 말이다.


자기 아버지처럼 변해가는 루퍼스.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124)

 

다나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그녀는 루퍼스를 교화할 수 없다. 앨리스를 향한 루퍼스의 집착-루퍼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을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다나의 뿌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루퍼스와 앨리스가 성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다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루퍼스를 다나가 돕지 않는다면, 와일린 농장의 수많은 노예들은(특히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노예들은) 농장주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다나는 자신의 뿌리는 물론, 이 농장의 노예 가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루퍼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계속 가담하거나 루퍼스가 앨리스를 강간하는 일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이 <kindred>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또는 친족이 이어지기 위해 한 남자의 파괴적인 행동을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일은 용인되어도 괜찮은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동조하는,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다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다나가 루퍼스를 두 번째로 구하게 되는 순간은 앨리스에게 지옥이 열리는 순간이나 마찬가지이다. 루퍼스는 앨리스를 강간하려다 앨리스의 남편에게 심하게 구타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그때 다나가 나타나 이 청년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목숨을 건진 루퍼스는 앨리스의 남편은 다른 곳으로 팔아버린다. 루퍼스는 그 후 앨리스를 강제로 취하게 된다. 앨리스는 루퍼스가 끔찍하기만 하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차라리 죽고 싶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아이들 때문에 앨리스는 달아나지도 죽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걸 알기 때문에 아이를 빌미로 루퍼스는 앨리스를 조종한다.

 

한편 루퍼스는 다나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집착한다. 루퍼스에게 다나는 말이 통하고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다. 다나를 강간하는 일만큼은 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면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나가 떠나지 못하도록 온갖 술수는 쓴다. 루퍼스는 자기 통제를 벗어나면 다나에게도 가차 없이 매질을 가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다나를 상처 입히거나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면 선물을 주곤 한다. 그러나 절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루퍼스가 앨리스나 다나를 대하는 태도는 많이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는 소유하고 강간하고 아이를 빌미로 떠나지 못하게 종용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하고 그러면서 잘 대해주는 척하고……. 다나의 모범적인 남편 케빈도 한계를 보인다. 다나를 향한 루퍼스의 감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는 다나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 고작 의심하는 일이 루퍼스가 강간하지는 않았을까이다. 노예가 아닌 오늘날의 여성들 중에서도 남편이나 연인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일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도 똑같이 흑인 여성인 다나와 앨리스 두 사람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흑인이어서, 여성이어서 노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의 삶을 극명하게 고발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작품은 아주 성공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루퍼스를 살리는 일에 계속 애를 쓰는 다나의 선택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뿌리가 끊이지 않기 위해, 다른 흑인 가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여성, 앨리스의 고통은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 어차피 개인의 역사가, 한 집안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동조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가족이 해체되더라도, 자신의 뿌리가 뒤흔들리더라도 루퍼스라는 악의 씨앗을 잘라버리는 일을 시도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래서 앨리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되는 일이 일어났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쉬움과 답답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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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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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원인을 두려움에서 찾는 시선이 신선하다. 두려움, 분노, 혐오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와 그 해결법으로 제시하는 사랑까지, 혐오 문제를 감정에 초점을 맞춰 철학적으로 접근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이해와 공감하기 쉬운 내용들. 마사 누스바움에 처음 다가가는 이들에게 알맞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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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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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SF스럽지 않은 SF. 노예제 시대로 돌아간 흑인 여성을 통해 인종, 젠더 문제를 질문한다. 젠더문제가 더 눈에 들어오는데, 자기 연민 쩌는 쓰레기 루퍼스 때문에 읽는 내내 암 생길 거 같았다. 아무리 애증이라지만 다나의 행동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고... 좀더 혁명적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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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는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어요. SF 는 저는 자꾸 뒤로 미루게 되더라고요.

잠자냥 2020-10-17 17:39   좋아요 0 | URL
아마 구판으로 갖고 계실 거 같아요. 전 이 리커버판으로 이제야 읽었는데 휴... 넘 답답하더라고요. 암 유발 ㅜㅡㅜ
 

오래 전에 읽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이 있다. 중국의 주자청(주쯔칭)의 글인데, 담백하고 소박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뜻밖의 감동을 준다. 멀리 공부하러 떠나는 자식이 걱정되어 역까지 배웅 나온 아버지가 이것저것 챙겨주다가 귤을 사주려고 비대한 몸으로 철길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 정확히는 그 뒷모습이 자식의 눈으로 그려진다. 다 큰 자식은 주자청 본인이었을 텐데, 이것저것 챙겨주는 아버지의 보살핌이 부담스럽고 못마땅하던 아들은 그 뒷모습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허물어지고 만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수필은 꽤 인상 깊었다. 다른 것이 아닌 다 늙은 부모의 ‘뒷모습’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아버지의 뒷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를 인간으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 1학년 때였나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외박을 하고 밤 새워 술을 마시고는 첫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던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 6시를 조금 넘었을까. 아버지 또한 나를 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무단 외박에, 술이 덜 깬 몰골에, 다른 사람들은 새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게다가 하필이면 출근하는 아버지를 맞닥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녀오세요....’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찍 오는구나.’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길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바쁜 아침이라 꾸중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뜻밖의 덤덤한 아버지의 태도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혼이 나지 않아서 이상한 기분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밥벌이를 하러 나가는 한 중년 남자의 고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날 그 뒷모습만큼은 내 부모로서가 아닌,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또렷하게 남은 것을 보면, 인간의 뒷모습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는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서 ‘나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92쪽)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진 속 사람들은 정면을 바라보는 일이 드물다. 레이터 자체가 피사체를 향해 직접적인 시선을 던지지도 않는다. 그는 주로 거울과 유리창에 비친 형상을 담거나 인물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담거나, 유리창이라는 매개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피사체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그의 시선이 차갑거나 불안하지 않다. 길모퉁이의 세세한 풍경을, 삶을, 사람을 사울 레이터는 그만의 방식으로 느긋하게 읽어 나간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사진작가는 여기 또 한 사람 있다. 에두아르 부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그의 사진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많이 포착하고 있다. <뒷모습>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그런 사진들만 추려낸 것이라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50장이 넘는 이 빼어난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에두아르 부바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인간의 뒷모습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런 순간이나 피사체를 담고자 애써왔음을 절로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사진에 시(時)와 같은 글귀를 덧붙인 미셸 투르니에는 ‘뒤쪽이 진실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뒷모습을 예찬한다.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다. (....) 뒤쪽은 진실이다.’(<뒷모습>, 5쪽) 이 책은 50 여개의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을 통해 바로 그 등 뒤의 진실을 탐색한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부바의 사진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다정하게 속삭이고 또 때로는 웃음을 주며, 어느 땐 숭고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사진 하나하나에 덧붙인 미셸 투르니에의 글귀들은 더욱 감칠맛이 난다. 기도하느라 수그린 등을 보며 투르니에는 ‘신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랑보다 두려움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둥글게 등을 구부리고, 그 왜소함 속으로 빠져든다.’ 말하고, 패션쇼 의상 모델인 여자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에서는 옷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자기를 희생하고 완전한 헌신을 약속했기에 모질게 혹사당한 몸이 되었던 여자의 고통을 엿본다. 그리고 그 몸이 문득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제 존재와 매력을 회복하는 것을 여자의 뒷모습에서 포착한다.

바다에 텀벙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하는 커플의 뒷모습을 보며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투르니에가 생각하기에 부자들은 그럴 때 망설임 없이 수영을 한다. ‘수영복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한다. 그래서 ‘아주 큰 부자들은 완전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수영도 할 줄 아니까.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부끄럼을 타고,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스커트를 걷어 올린 채.’ 에두아르 부바가 어떤 시선과 느낌으로 바다 앞에서 서성이는 남녀를 카메라에 담았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이 해석에 왠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바와 투르니에의 시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노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청춘을 찾으려는 건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묻고, 친구와 다정히 어깨동무한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우정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정에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정의와 지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분위기에서 우정이 피어난다. 우정에는 비밀과 배타적 결속이 있어서 타인들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을 통해서 그 구체적 본질’을 드러낸다. 한편, 바다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뒷모습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그의 소설 <마왕>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죽은 고기 뭉치요 지방질 창고인 어른들의 엉덩이와 반대로 아이들의 활기찬 엉덩이는 언제나 깨어나 팔딱거리고 때로는 야위고 빈약해 보이지만 어느새 쾌활해져서 천진하게 낙천적, 얼굴처럼 표현적.(미셸 투르니에, <마왕>)


루브르 박물관의 조각상 뒷모습 사진에서 투르니에는 엉덩이를 찬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찬미해도 모자랄 것이 엉덩이다. 인간이 지닌 것 중에서도 가장 부드럽고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믿음 가득한, 발에 걷어차이고, 매를 맞아도 보잘것없는 몸 바침이 운명인, 그 모든 것이 찾아와 은신하는 이 두 쪽의 둥그런 물건을 만약 조물주께서 깜빡 잊고 남자 여자에게 달아주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이겠는가’ 그러고 보니, 인간에게 엉덩이가 없다면 정말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부바와 투르니에는 이렇게 독자가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하게 해주면서 인간의 뒷모습을 비롯해 조각상, 샹송과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파리의 뒷모습, 창턱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덩치 큰 고양이의 뒷모습 등등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아름다움과 때로는 그 빛과 그늘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부바가 투르니에의 글귀를 읽었다면 아마도, 오, 그게 바로 내 시선이었어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렇군요, 하고 동의와 찬탄을 보냈으리라. 그럴 만큼 사진가와 작가의 궁합은 찰떡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 모음인 <예찬>에도 부바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1974년 4월에 일본으로 함께 떠났는데, ‘일본 기행 수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그들이 함께 보고 느낀 일본 풍경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그 글에서도 투르니에는 부바를 예찬하는 일을 잊지 않고 이렇게 쓰고 있다. ‘부바가 손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서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의 흐린 불빛과 진동 속에서도 훌륭한 사진을 찍어낼 수 있을 만큼 실력자다.’(미셸 투르니에, <예찬>, 234쪽)

<뒷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진과 글은 ‘잊혀진 천사’이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어른들. 그 덩치 큰 어른들 틈에서 천사 날개를 단 아이가 자기도 보려고 애를 쓴다. 회색 빛 어른들 사이에서 흰 날개를 지닌 이 아이의 뒷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그래서 정말 천사가 내려온 느낌을 자아낸다. 투르니에는 그 사진에 이렇게 덧붙인다. ‘저들 어른들은 대체 무얼 보고 있기에 저토록 심각한 것일까? 그 무슨 속된 구경거리에 저토록 절박하게 팔려 있기에 저들은 단 하나, 중요한 것을, 잊힌 채 무시당하고 뒷전이 된 이 어린 천사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여러 번 어리석은 즐거움을 좇아 무작정 달리곤 하는가, 우리를 기다리는 천사가 등 뒤에 와 있는데.’





<뒷모습>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진과 글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뒤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남겨두고도 잊고 만다. 마치 등 뒤에 천사가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104쪽)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뒷모습>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또는 그냥 지나친 뒷모습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주는 깨달음을 전하면서 바쁜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어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잊혀진 천사’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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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너무 좋고요 잠자냥님, 올려주신 잊혀진 천사의 사진도 정말 좋네요.

잠자냥 2020-10-16 10:56   좋아요 1 | URL
언젠가 다락방 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ㅎㅎㅎㅎ (근데 안젤리나 졸리 뒷모습이였고.... 두둥!)

다락방 2020-10-16 11:05   좋아요 2 | URL
제가 이 글 진지해서 태클 걸려다 참았었는데요 사실 엉덩이 말입니다... 엉덩이요. 제 뒷모습은 엉덩이만 보일거에요. 아주 큽니다. 유전이에요.... 하아-

잠자냥 2020-10-16 11: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셸 투르니에가 예찬할지도!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10-16 11:49   좋아요 0 | URL
앗 어떡해요, 조 아래 쿨캣 님이 사람의 외양을 엉덩이로 평가한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16 11:52   좋아요 0 | URL
아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0-10-16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와의 에피소드 ...제 얘기인줄 알았습니다. ㅠ
뒷모습은 정직하다는 투르니에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저는 남녀 불문하고 사람의 외양을 뒷태 그 중에서도 엉덩이로 평가합니다. 얼굴 가슴 이런거 안보고 엉덩이가 멋지면 속으로 열광하는데요.투르니에가 엉덩이 찬미자라니! 좋아집니다.
아침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0-10-16 11:50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알고 보니 아버지와의 그런 에피소드 다들 하나쯤 있는 거 아니에요? ㅋㅋㅋㅋ 그 아침에 정말 자기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지지 않던가요? ㅎㅎㅎㅎㅎ
쿨캣 님도 엉덩이 찬미자이군요! 투르니에와 쿨캣님이 열띠게 엉덩이 이야기하는 모습 상상해 보니 재미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0-10-16 11:58   좋아요 0 | URL
마누라가 제 엉덩이 탁 올라붙은 거 하나 보고 결혼했다더니, 그게 진심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이 듭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0-10-16 12:26   좋아요 0 | URL
오 폴스타프 님 소싯적 엉덩이가 그랬다는 거군요! ㅋㅋㅋㅋㅋ 투르니에에게 묘사해 보라고 하고 싶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0-16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진짜로 궁금한 건, 김화영이 어떻게 후기를 썼을까, 하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이 양반이 저한테 찍혀도 좀 많이 찍힌 거 같네요. 유명한 불문학자니까 번역수준이야 뭐 최상이겠지만, 아 글쎄, 사람이 성의가 너무 없는 거 같아서리.... ㅋㅋㅋㅋㅋ 하긴 뭐 번역만 잘 하면 됐지 성의까지야....
그래서 트루니에를 좋아하지만 여태 이 책 사기를 주저했습지요.

잠자냥 2020-10-16 12:27   좋아요 0 | URL
크하하, 김화영 후기는 예전에 폴스타프 님이 예상하신 딱 그대로입니다. 정말 어쩜 그렇게 예상을 한치도 안 벗어나던지.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역자 후기는 걍 대충 읽고 넘겼어요. 뭔가 오글거림;;

coolcat329 2020-10-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레기‘ 맞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죠. 그 시절 생각하면 책 한 권도 안 읽고 돈쓰고 술먹고 토하고 ㅠㅜ 에휴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시절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0-10-16 12:28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한때 다 그런 시절이 있는 거죠. 제가 그 시절 술 먹고 토한 양만 따져도.... 음음. ㅋㅋㅋㅋㅋㅋ

hnine 2020-10-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모습을 보고 있는사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글이 좋아 아까 읽고 지금 다시 한번 읽고 갑니다.
아버님과의 일화는 제 마음도 흔들어놓아요.

잠자냥 2020-10-16 21:32   좋아요 0 | URL
와 두 번이나 읽어주시다니, 더없는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noomy 2020-10-2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넘 좋아요~ 좋아요 두 번 안되나요? ^^;;

잠자냥 2020-10-27 10:26   좋아요 0 | URL
과찬 감사합니다. ^_^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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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어도어 드라이저 <아메리카의 비극>이 새 번역으로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그에 앞서 책꽂이에서 몇 년째 잠자고 있는 <시스터 캐리>부터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650쪽이 넘는 꽤 묵직한 두께이다. 그래서 계속 읽기를 미뤘던 것 같다. 세상에는 재미난 책이 많으니까, 이것부터 읽자, 이것부터 읽자 하다 보니 <시스터 캐리>는 지금까지 밀리기만 했다.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재미나다. 진작 읽을 걸 그랬다. 예전에 ‘재미 100% 보장 세계문학고전’이라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분명 그 목록에 추가했으리라.

<시스터 캐리>는 한마디로 가난한 처녀의 도시 상경기이다. 가족들이 애칭으로 ‘시스터 캐리’라고 부르는 열여덟 살 아가씨 ‘캐럴라인 미버’가 고향인 컬럼비아시티를 벗어나 부푼 꿈을 안고 대도시인 시카고로 떠나면서 작품은 시작한다. 캐리가 기차에 올랐을 때 지닌 것이라고는 작은 트렁크와 어깨에 멘 가짜 악어가죽 가방, 점심을 넣은 작은 종이 상자, 노란 가죽 손지갑뿐이다. 지갑에는 기차표와 시카고에 사는 언니의 주소가 적힌 쪽지, 그리고 사 달러가 들었을 뿐이다. 때는 1889년 8월. 캐리는 ‘무지와 젊음의 환상으로 가득 찬, 수줍으면서도 밝은 처녀’이다. 이런 소개만으로도 앞으로의 전개가 예상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순박한 시골 아가씨가 도시로 가서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것, 온갖 유혹과 세파에 시달리다 끝내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한 마음이 든다. 실제로 작가는 이윽고 이렇게 말한다.


열여덟에 고향을 떠난 처녀는 둘 중 하나기 되기 마련이다. 도움의 손길을 만나 잘되거나, 아니면 미덕에 대한 대도시의 기준을 금세 받아들여 타락하거나, 그런 환경에서 균형을 잡고 중도를 걸을 가망은 전혀 없다. 도시는 나름의 교활한 간계들을 갖추고 있어서 아주 약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유혹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곳에는 최고의 교양을 갖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온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 유혹하는 커다란 힘이 있다. (12쪽)


이런 아가씨가 어린 데다가 꽤 예쁘장한 외모를 지녔다면, 더 쉽게 도시의 먹잇감이 된다. 지적인 면에서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캐리는 예쁘장한 외모와 다 자라면 제법 태가 날 몸매를 지녔다. 아니나 다를까, 캐리에게 한 사나이가 접근한다. 그의 이름은 ‘드루에’- 시카고에서 제법 잘나가는 회사 영업사원인 그는 젊고 잘생기고 호방한 성격을 지녔다. 기차에서 캐리를 보고는 넉살좋게 말을 걸어온다. 캐리는 짐짓 경계하면서도 멀끔하고 부유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허물어져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시카고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장면에서도 독자는 캐리를 걱정하게 된다. 오, 캐리, 그놈은 사기꾼에 바람둥이일지도 몰라, 절대 그 겉모습에 속지 마. 오, 순박한 아가씨가 이렇게 도시의 먹잇감이 되는구나, 쯧쯧…….

그런 예상은 얼마쯤 맞아간다. ‘제대로 무장하지도 못한 주제에 도시를 굴복시켜 제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발밑에 공손히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하겠다’는 꿈을 꾸며 도시 정찰에 나선 캐리. 그녀는 시카고 언니 집에서 형부와 함께 살게 되지만 한눈에 봐도 그들 생활은 궁핍하고, 형부는 캐리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 하루 빨리 캐리가 일자리를 얻어 생활비를 보태도록, 제 밥값을 하도록 줄곧 눈치를 준다. 궁핍에서 비롯된 언니 부부의 금욕적인 생활은 도시에서의 활기차고 호화로운 생활을 꿈꾸던 캐리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된다. 게다가 캐리는 도시의 실생활이 자신이 꿈꾸던 것과 크게 다름을 며칠 만에 알아차리게 된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남다른 기술도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장 노동자로서 기계 부품처럼 쉴 새 없이 단순 노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고 받는 돈은 고작 주급 사 달러 오십센트, 언니에게 생활비를 주면 그녀 손에 남는 것은 오십센트 뿐. 그럼에도 첫 급여를 받기도 전에 어디다 쓸 지 순식간에 정하고는 마음속으로 주저 없이 돈을 물 쓰듯 써버린다.

도시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 돈을 벌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는 즐거움에 찬 생활도 잠시. 고달픈 노동 속에 생기를 잃어가던 캐리는 덜컥 병이 나고, 며칠 앓고 나니, 일자리도 잃어버린다. 형부의 눈치 속에 아픈 몸을 이끌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서지만 도시는 이 어린 아가씨에게 더없이 차갑기만 하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던 끝에 거리에서 우연히 드루에를 만나게 된다. 드루에는 캐리가 공장에서 일할 때 보았던 볼품없고 저속한 남자들에 비해, 아니, 비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캐리가 꿈꾸던 도시의 이상적인 모습을 다 갖춘 남자였다. 깔끔한 옷차림, 밝고 여유로운 태도, 자신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까지..... 게다가 그는 캐리가 안쓰러운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화려한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잘 먹이고, 캐리가 사고 싶던 옷과 구두 등을 선물하고, 빌려주는 것이라면서 돈까지 준다. 캐리는 그가 제공하는 안락함과 편안함, 부유한 분위기에 서서히 젖어들게 되고, 마침내 언니 집을 떠나 드루에와 동거에 들어간다.

이런 캐리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절로 조마조마해진다. 오, 이런 어리석은 아가씨 캐리,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 무엇이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해. 이 잘생긴 바람둥이가 노리는 것은 바로 너의 젊은 육체, 예쁘장한 외모 그런 것들이라고. 그것이 사라지면, 아니 그것을 갖고 나면 그는 너를 뻥 차버릴 거야! 정신 차리라고 이 불쌍한 여자야, 하고 말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이런 수순으로 전개되지만 완벽하게 그런 예상대로 흐르지는 않는다. 허영과 속물적인 욕망도 있고, 삶의 강렬한 쾌락에 빨리 눈 떴고, 물질적인 것을 얻고자 하는 야심도 있는 캐리이지만 그녀는 완전한 허영덩어리는 아니며, 제법 총명하다. 게다가 드루에도 아주 나쁜 놈은 아니다. ‘여자들을 쫓아다니기는 해도 해를 끼칠 뜻은 전혀’ 없다. 그는 여자에게 다가가서 자기의 매력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을 즐길 뿐이다. 타고난 욕망에 이끌렸고 이를 주된 기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허영심이 넘치고 뽐내기를 좋아했으며 캐리처럼 좋은 옷에 속아 넘어간다. 캐리도 드루에도 천성적으로 악하지 않은 이들이라 두 사람은 그럭저럭 함께 동거생활을 잘 꾸려나간다. 그런 여기에 ‘허스트우드’라는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면서부터 문제가 벌어진다. 이 두 남자와 캐리 사이에 기묘한 삼각관계가 펼쳐지면서 ‘시스터 캐리’의 인생은 예상 가능하면서도 뜻밖의 모습으로 전개된다(여기까지가 이 작품의 100여 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이렇게 살짝 예상을 어긋나는 전개에 있다.

<시스터 캐리>가 처음 출간된 1900년 무렵, 이 작품은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부도덕한 면이 과연 무엇인지, 캐리가 정말 도덕적이지 않은 인물인가, 자기의 욕망을 이루고자 가차 없이 사람을(남자들을) 이용하고 차 버리는, 팜므파탈이자, 타락의 여신으로 그려지는가 궁금해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캐리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어서 조금 뜻밖이었다. 작품이 외설스러운가 싶었는데, 그 또한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야한(?) 장면이라면 키스 정도이다. 하하하, 그것 참. 드루에와 함께 살게 되는 장면에서도 이렇다 할 섹스신 하나 없다(그래서 조금 아쉽?). 알고 보니, 도덕의 기준이 요즘과 아주 달랐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캐리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남자와 동거한다는 설정 자체가 부도덕이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오늘날은 좋아하는 남녀가 함께 사는 것쯤은 흔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캐리가 부유하게 살고자, 온갖 수단으로 돈을 벌고 그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니다. 남자의 돈을 받고, 남자로부터 선물을 받고, 남자가 제공하는 집에 살면서 안락함을 누리는 것, 그 자체로 ‘비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캐리는 드루에에게 그런 것들을 받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주저한다. 캐리가 정말 속물인 데다가 뻔뻔하고 아주 이기적인 여자였다면,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게다가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캐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드루에 뿐만 아니라, 이런 태도는 허스트우드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드루에, 허스트우드와 함께 하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캐리는 외모가 훨씬 좋아지고, 태도도 바뀌고 옷차림도 달라진다. 이제 도시의 온 남자들이 그녀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캐리는 그것으로 얼마쯤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뿐이다. 혼자 힘으로 서야 할 때가 왔을 때 그녀는 남자들의 ‘경우에 어긋나는 특별한 호의를 원치’ 않는다. 일자리가 필요했지만 ‘거짓된 주장이나 호의로 그녀를 사려고 하는 남자는 결코 원치’ 않게 된다. 캐리는 ‘정직하게 생활비를 벌고’ 싶다(322쪽). 더욱이 드루에나 허스트우드 등과의 관계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여기에서는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그녀에게 다가왔고, 그녀를 얻고자,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모든 것을 제 스스로 쏟아 붓지 않았는가?


저는 제 앞으로 100만 달러를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온갖 사치를 할 수 있도록 해드릴 수 있습니다. 저한테 요구만 하시면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돈 자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의 소원이라면 뭐든지 이루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딱 삼십 분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589쪽)


오히려 캐리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남자들이 캐리를 허영덩어리에 속물로 봤던 게 틀림없다. 돈으로 사랑을 포장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캐리는 부유함이 상징하는 것들을 동경하고 그 세계에 속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캐리는 100%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서 그렇지 못한 면모를 봤을 때 그들이 더 안달이 나고, 조바심 냈던 것은 아닐까. 100여 년 전에 캐리는 결혼하지 않은 채 남자와 동거했다는 이유로 부도덕의 표본처럼 평가받았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대부분의 인간은 캐리 정도의 허영과 욕망, 성공이나 돈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것은 허스트우드나 드루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시스터 캐리>는 19세기 시카고와 뉴욕을 배경으로 자본과 돈이 주는 환상과 그것을 끊임없이 욕망하고 그로 말미암아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여러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의 해설에서는 도시에서 온갖 사건을 겪은 ‘캐리’가 끝내 어떤 성장이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고 평하고 있던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캐리는 냉혹한 도시, 그 허영과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궁핍을 겪고, 안락함도 누리면서 몇 년 사이에 인생의 우여곡절을 제 나름으로 경험한다. 그런 가운데 좋은 옷과 우아한 환경, 그런 세계에 한없이 이끌렸던 여인이 그 세계의 공허함을 엿보게 된다. 남자들의 부질없는 말에 더는 흔들리지 않고, 남자들은 변할 수도 있고 실패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아첨을 해도 캐리에게는 이제 소용이 없다. 그녀를 움직이려면 돈이 아닌, 그녀가 갖지 못한 우월함, 더 타고난 우월함이 있어야 한다. 드루에도, 허스트우드도 아닌 ‘에임스’를 보며 ‘이 사람은 행복해질 수도 있을 거야. 혼자 힘으로. 강한 사람이니까.’ 생각하게 되고 그가 속한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는 캐리는 그런 의미에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책과는 담을 쌓았던 캐리가 도시에서 올라와서는 그나마 통속적인 대중소설을 읽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고리오 영감>을 읽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 있다. 그럼에도 캐리는 아직 이 도시의, 자본주의 사회의 헛된 약속이 주는 공허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발을 흔든다. 그 모습조차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노예가 되어 욕망과 허영의 불꽃을 좇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 있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인간의 모습. <시스터 캐리>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때로는 가혹하리만치 냉철하게 또 때로는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세상에는 한번 살아보고 싶은 삶이 수없이 많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한 번에 한가지씩밖에는 누릴 수가 없습니다. 멀리 있는 것을 향해 아무리 손을 내밀어 봐도 소용이 없지요.” (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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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10-1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찐한 장면은 안나오지 말입니다-.-;;

잠자냥 2020-10-12 10:26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아쉽습니다. -.-;;

Falstaff 2020-10-12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이 작품은 저한테 좀 사연이 있는 책이군요. ㅋㅋㅋㅋ 81년인가 학원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다가, 십여 년 쯤 지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드라이저 이야기가 나와 한 번 이 책 얘기했다가, 아이고, 맞은 편에 앉은 분이 글쎄 <시스터 캐리>로 논문을 쓰신 모교 영문과 대선배로 밝혀졌습니다. 코피 줄줄.... ㅋㅋㅋ 그래도 Theodore Dreiser, [th] 발음 겁나 강조하면서, 자네가 드라이저를 읽어봤다는 게 참 기특하네, 어깨 툭툭 두드림을 당했습지요. ㅋㅋㅋㅋㅋㅋ
그 양반 아직 살아 있는지 몰라......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10-12 10:28   좋아요 0 | URL
81년에 이 책을 읽으신 이분! ㅋㅋㅋㅋㅋ 기특하십니다. ㅋㅋㅋㅋ 어깨 툭툭 두드림 당할만 하네요. ㅋㅋㅋㅋㅋ
띠어도어 ㅋㅋㅋ

coolcat329 2020-10-12 14: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상상을 안 할 수 없네요

단발머리 2020-10-1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소개해주신 간략한 줄거리도 괜찮지만 잠자냥님께 이런 칭찬을 받은 작품이라면...
그냥 지나칠수 없습니다!!!

잠자냥 2020-10-12 10:28   좋아요 0 | URL
한 번 꼭 읽어보세요. 일단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0-10-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책 사야겠네요. 너무 읽어보고 싶어요. 두꺼운 책이며 야한 장면은 없다니 조금 저어되지만, 그래도 사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자냥 2020-10-12 10:43   좋아요 0 | URL
아, 그러게 말이에요. 전 캐리가 드루에랑 한 살림 차리던 날 드디어 나오는가 꼴깍 침을 삼켰는데...... 거참 -_-

다락방 2020-10-12 10:31   좋아요 1 | URL
드라이저 왜그랬을까요? 제가 한 수 가르쳐줘야 할까요? 19금 쓰는 법..... ( ˝)

잠자냥 2020-10-12 10:42   좋아요 0 | URL
이게 아마 캐리가 드루에랑 동거한다는 설정만으로 부도적한 작품이라고 온갖 비난을 받아서리... 그런 장면을 쓰고도 삭제한 건 아닐까 눈물을 머금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님이 이 책을 읽고 그 부분만 다시 재창작....ㅋㅋㅋ

Falstaff 2020-10-12 11: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아메리카의 비극>에서는 잘 생기기만 했지 한심한 청춘인 크라이드가 청순한 숫처녀 여공 로버타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가 버리는 게 나오는데요, 그 책에서도 야한 장면은 절대 안 나옵니다. 시절이 시절이라 독자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줘야지요. ㅋㅋㅋㅋㅋ
드라이저가 무척 많은 형제 자매 속에서 자랐는데, 아빠가 (화재로) 사업을 말아먹으면서 무지하게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그래 형제들은 주로 교도소를 들낙거렸고, 자매들은 매춘부가 되기도 했답니다. 창녀가 된 누이를 모델로 해서 작품을 쓴 것이 바로 <시스터 캐리>라고, <아메리카의 비극> 해설에 적혀 있더군요.

다락방 2020-10-12 11:19   좋아요 0 | URL
아 사람 사는 모습이야 한 부모 밑에서도 제각각인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누이는 매춘부가 됐는데 드라이저는 작가라니... 마음이 좀 거시기하네요.....

레삭매냐 2020-10-1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스터 캐리, 옆지기에게 듣고서는
예전부터 호시탐탐 중고서점에서
노리고 있는데 당최 나오질 않네요.

물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펴지도
못하고 강제반납당한 추억도 쿨럭...

잠자냥 2020-10-12 10:31   좋아요 2 | URL
오, 옆지기 님이 재미나게 읽으신 모양이군요?
전 이 책 읽고 별로면 중고에 내다팔려고 생각했는데, 그냥 갖고 있기로 했습니다. ㅎㅎㅎ

레샥매냐 님은 아마 이 책 읽으시면 시어도어 드라이저 전작 읽기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최근 나온 을유문화사판 <아메리카의 비극>부터 시작하시고 이 책으로 옮겨가는 수순은 어떨지-

레삭매냐 2020-10-12 11:18   좋아요 1 | URL
넵, 추천해 주신 대로 <아메리카의 비극>
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시스터 캐리>는 과 숙제로 만났었다고
하더라구요 ㅋㅋ 스무 고개 하는 그런
느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