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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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고는 했다. 요즘은 읽고 좀 지나서 리뷰를 쓰게 된다.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서 더 생각이 나는 책이 있고, 처음에는 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잊혀지는 책이 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전자에 속한다.


두 권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양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두 번으로 끝나도 괜찮을 것 같은 사건이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고, 주인공 ‘필립’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어영부영 세월이 그저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지겹기도 했다. 맨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제 끝났다.’하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필립의 인생이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필립은 절름발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조금은 남과 다른 시선을 가질 수는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일, 조용히 앉아서 사색하고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독약이 되기도 했다.

예민한 감수성, 남다른 지각을 갖게 된 그는 타인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타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기도 한다. 예술을 논하는 사람에게 열광적으로 매혹되기도 하지만, 어느 사이 그런 모습이 순전히 허영으로 보여 그를 멀리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종교에 탐닉하다, 종교의 모순을 깨닫고 그림이나 문학 등 예술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런 삶에서도 결국 만족을 못 느끼고 전도유망하다는 회계사를 하기도 하고, 의사에 도전을 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고 부를만한 직업이나 열정적으로 매달릴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이 직업 저 직업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이건 생각보다 재능이 없어서, 이건 생각만큼 재미가 있지 않아서, 이건 알고 보니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전망이 없어서 등등 서른 가까이 되도록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다. 심지어 잘 하지도 못하는 주식투자를 해서 물려받은 유산마저 다 날리고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서도 그렇다. 분명히 이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는 걸 책을 읽는 사람도 알고, 필립 그 자신도 아는데 그렇지 못한 여자 ‘밀드레드’에게 계속 끌린다. 그냥 끌리는 것만이 아니라 필립을 이용하기만 하는 ‘밀드레드’에게 매혹되어 가산을 탕진하고, 삶을 낭비한다.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어느새 그녀를 찾아 그녀 곁에 머물게 된다. 삶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이 빠져 나간다.

이렇듯 <인간의 굴레에서>는 주인공 필립이 온전하게 자기 일을 찾고, 온전하게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고난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일’의 굴레, ‘돈’의 굴레, ‘사랑’의 굴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고 또 돈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성숙하지도 않은 ‘필립’이라는 보통사람이 결국 ‘나’와 똑같음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그의 끝없는 ‘방황’에 심정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난 이 일에도 결국 맞지 않는군.’ ‘이 나이가 되도록 내 길을 찾지 못하다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필립에게서 ‘나’를 보게 되기에 결국 그가 ‘행복한 일’을 찾고, 함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으로, 그의 희망이 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일, 사랑, 돈, 인간관계 등 ‘인간의 굴레’는 끝없이 계속 된다.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 굴레만을 생각한다면 삶이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굴레로 걸어 들어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또 다른 ‘굴레’가 다른 것과는 달리 특별히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굴레’라면 더 이상은 ‘굴레’가 아닐 것이다. 필립이 오랫동안 생각했던 꿈을 포기하고 한 여자와의 소박한 삶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아름답다.

인생의 행운아는 오히려 벌통 속의 벌처럼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 같은 활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 같은 즐거움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복하다. (p.82)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 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 푼 벌면 한 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라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 (p.4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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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이상의 책을 읽다가 멈췄거나 다 읽었는데 서평 작성을 오래 미루면, 서평 작성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다시 읽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

잠자냥 2016-08-09 18: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얼마전 읽은 책 가운데 쓰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미루다 보니 그날의 감흥이 희미해졌어요.. ㅠㅠ ㅋ
 
고양이에 대하여 찰스 부코스키 테마 에세이 삼부작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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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양이는 존재 그 자체`라는 부코스키와 그의 집에 둥지를 틀게 된 떠돌이 고양이 9마리. 그들의 공통점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까. 속박된 삶이 아닌 자유를 누리는 존재들. 고양이 안고 흐뭇해하는 부코스키 사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냥덕후 부코스키의 애정만땅 고양이 헌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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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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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덥다, 소리도 더울 만큼 덥다. 이토록 무더운 여름날엔 오싹오싹 공포물도 좋지만, 나처럼 공포물을 즐길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추리물이 어떨까?


누구나 한번쯤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때가 있을 듯하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를 마칠 그 무렵까지가 최고였다. 그때는 아마 날마다 추리소설(만) 미친 듯이 읽어댔다. 너무나도 유명한 코난 도일의 소설은 물론, 애거사 크리스티, 애드거 앨런 포, 앨러리 퀸, 모리스 르블랑…. 그들이 만들어낸 홈즈, 포와로, 뒤팽, 뤼팽 등의 ‘탐정’에 흠뻑 빠졌다.
 
추리소설에 대한 열광은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 대한 열광으로까지 이어졌다. ‘추리형식’을 갖춘 영화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봤다. 물론 이런 기호는 훗날 내가 ‘필름 느와르’를 좋아하게 된 데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필름 느와르’는 여전히 좋아하는 장르인데 언제부터인가 ‘추리소설’은 읽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지도 모르고, 웬만한 유명한 ‘추리소설은 다 읽었다’라는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게 되면서 살짝 다시 ‘추리소설’에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존 르 카레의 작품은 장르적으로 추리소설, 미스터리 문학에 속하지만 읽다 보면 흔히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비해 그의 소설은 좀 지루하다 여겨질 정도인데 전통적인 추리소설이 ‘중요한 사건과 이야기’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비해 존 르 카레 소설에서는 중심 이야기와 크게 상관없을 듯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문장의 흐름도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전통적인 추리소설 읽기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지루한 소설’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문체나 묘사, 작품 속 세계관 등에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또한 그렇다. 장장 600여 페이지의 이야기 속에서 중심 사건과 탐정 ‘필립 말로’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만 추려본다면 절반 이상은 잘라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잘라내도 될 것 같은' 그 절반이 이 책이 여타의 추리소설과 ‘다른 위치’를 점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사람이라면 레이먼드 챈들러나, 레이먼드 카버, 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이름을 종종 접했을 것이다. 하루키는 공공연히 이들 작가를 좋아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챈들러의 책을 읽고 나니 하루키가 레이먼드 챈들러를 왜 ‘그는 나의 영웅이다.’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간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챈들러의 ‘필립 말로’에서 뻗어나갔고, 고독한 분위기, 모든 사건이나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건조하면서도 한없이 쓸쓸하고 서정적인 문체 등등 챈들러의 소설이 없었다면 하루키의 소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중 어떤 것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주저 없이 <기나긴 이별 : The Long Good Bye (1954)>을 선택했는데,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쓸쓸하고 황량하지만 어딘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런 정서가 이 책을 지배한다. 조금 마초 같기는 하지만 탐정 ‘필립 말로’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부패와 범죄가 난무하는 쓸쓸하고 냉소적인 대도시- 그곳에서 ‘정의’에 대한 열망을 겉으로는 ‘냉소주의’로 애써 감추고 묵묵히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필립 말로- 그가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 그가 사람과 사물, 도시를 보는 시선 하나하나에서 황량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특히나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탐정’들이 불타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필립 말로는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하고 있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챈들러는 자신의 글 쓰는 재능을 살리고 생활비도 벌 목적으로 싸구려 통속 소설인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쓰기로 결심,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챈들러의 시작은 ‘펄프 픽션’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의 챈들러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비극은 아름다운 것들이 젊어서 죽는다는 데 있지 않아요. 다만 아름다운 것들이 늙고 추잡해지는 데 있는 것이죠. (기나긴 이별, p.545)’ ‘이별을 말하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기나긴 이별, p.601)’ 이런 문장을 쓰는 싸구려 통속소설 작가가 세상에 그리 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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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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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하다. ‘삶이란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하기 보다는 슬픈 것 같아요?’라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어떻게 대답할까? 돈이 많고 건강하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고 이런 것들을 다 가진 사람이라면 사는 게 행복할까?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이라면 사는 게 늘 불행할까? 사람의 평생을 80년이라고 가정한다면 80년 내내 행복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주 어릴 적에 ‘새옹지마’라는 고사 성어를 알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사람 사는 건 좋을 때도 있지만 결국엔 나쁠 때도 늘 뒤따라오는 것 같다고…. 그러니 지금 아무리 좋거나 행복하다 한들 언젠간 그 행복도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고 불행하다 한들 다시 행복의 기운이 찾아올 것이라는….

굳이 삶을 행복과 슬픔, 두 가지 중 하나로 정의하라 한다면 난 그런 것 같다. 산다는 건 기본적으로 슬픈 가운데 가끔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니까 삶은 슬프다(하지만 죽음이 꼭 슬픔인가? 하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의미로 죽음을 '해방'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어가는 과정이 모두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등바등 살아봐야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은 슬프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한들 그 사람도 ‘지금’ 결국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그 죽어가는 길 사이사이에 행복과 웃음이 찾아온다. 흐린 날이 있지만 반짝반짝 해가 비치는 날도 있는 것처럼. 삶은 그래서 그런 순간을 되도록 많이 간직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아닐까. 그래서 죽음이 임박한 순간 자기 삶을 되돌아 볼 때 햇빛이 비치던 때가 더 많았다고 기억한다면 그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늘 그렇게 빛나는 때를 찾는 것도 어렵다. 하루 24시간 일년 열 두 달 환하게 빛나기만 한다면 그 빛의 소중함도 모를 뿐,더러 너무 눈부셔 그늘로 도망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평온한 삶이란 기본적으로는 슬프지만 찬 이슬 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베어 나오는 쪽에 몸과 마음을 두고 있는 상태는 아닐까 싶다. 내게는 체호프의 작품이 딱 그런 느낌이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다 보면 ‘삶이란 사실 무척 슬픈 거란다. 살기 힘들지?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산다는 건 정말 고달픈 일이거든. 하지만 늘 그렇게 힘들기만 한 건 아니야. 가끔 좋은 일도 생기지. 그렇다고 그 좋은 일만 목이 빠져라 기다릴 수는 없어.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고 찾아와도 정작 본인은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거든. 그러니까 그저 담담한 상태로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거야. 그래야지 불행이 찾아왔을 때도 크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행복이 찾아왔다가 사라질 때도 크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는 이 작품 외에 ‘굽은 거울’ ‘어느 관리의 죽음’ ‘마스크’ ‘애수’ ‘하찮은 것’ 등 17편 정도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맨 끝에 실려 있는데 나는 이 작품부터 읽었다. 예전에 본 영화 <더 리더>에서 마이클이 한나에게 이 작품을 읽어주는데 한나가 무척 좋아한 기억이 나서 먼저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고 나니 한나가 왜 그렇게 이 작품을 좋아했는지, 왜 이 작품에 몰입했는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슬프고 애잔한 작품이었다.

바닷가 휴양지에서 구로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점차 그 여인에게 빠져 휴양지에서 하룻밤 정도 상대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부인 ‘안나’와 그런 사이가 된다. 구로프도 그렇지만 안나 역시 결혼한 사람이다. 휴양지에서의 하룻밤 정도로 생각한 사이였는데 현실로 돌아와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둘 모두 깨닫는다. 환상, 꿈 혹은 신기루처럼 여겨졌던 휴양지에서의 생활이 현실 생활의 그것보다 더 값어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은 비밀스러운 둘만의 생활을 계속 위태롭게 유지한다. 남들이 보는 진짜 삶은 따로 있지만 구로프와 안나에게는 둘이 은밀히 만나는 작은 호텔방이, 그 호텔방에서의 짧은 시간이 진짜 삶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구로프도 안나도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둘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정말 의미 없는 매일 밤이고, 흥미도 가치도 없는 나날들이다! 미친 듯한 카드놀이, 폭식, 폭음, 끝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들. 쓸데없는 일과 시시한 대화로 좋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날개도 잘린 삶. 실없는 농담뿐이다. 정신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듯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고 외치던 구로프의 삶이 안나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삶은 둘만 알 뿐이고 그 둘 모두 누군가에게 미친 듯이 자신들의 진짜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구로프는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구로프 자신의 진짜 삶은 호텔 방 안에 깊숙하게 숨겨둔 채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진짜 삶 또한 언제 어떻게 부서질지 모른다. 그런 불안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남들보다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없는 농담 같았던 시시했던 그의 인생에 안나라는 볕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이점은 안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진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안나와 구로프의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눈물겹기도 하다. 그늘진 방에 슬며시 들어온 햇볕을 붙잡아 두기 위한 노력…. 현실은 무겁고 고단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비록 인생은 슬프고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따뜻한 쪽에 몸을 많이 두고 있으면 행복하다 여길만한 그런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체호프의 작품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우울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묘하게도 절망하거나 낙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비루한 현실 속에서 돈을 벌고자 한때는 농담처럼 가벼운 단편을 써댔던 체호프. 슬플 때도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있음을 알고 있던 그였기에 이런 작품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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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8-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 소설집이라고는 단 두 권 읽어 본 게 다인데 (김애경씨 것과 레이먼드 카버 것) 두 작품 다 전체적으로 너무 우울해서 유명하다는 단편 소설집은 다 우울하고 나랑 안 맞는군 하며 단 두 권으로 밑도 끝도 없는 결론을 내렸는데 체호프 좋군요. 잠자냥님께서 묘하게도 절망하거나 낙심되지 않는다고 하시니 조만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잠자냥 2016-08-03 14:27   좋아요 1 | URL
저는 단편을 좋아해서 단편 작품을 많이 읽었는데요. ㅎㅎ 현대 단편 작가들 가운데 체호프에게 빚지지 않은 작가들은 없을 것 같네요. ㅎ 우울한 작품을 쓰는 작가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모두 말입니다. 체호프 작품 중에도 우울하고 슬픈 것도 많지만 유머러스한 작품도 분명 있답니다. 그나저나 레이먼드 카버는 정말 너무 우울하잖아요? ㅋㅋ
 
또 고양이 - 사계절 게으르게 행복하게
미스캣 지음, 허유영 옮김 / 학고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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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도 귀엽고 글도 따뜻하고 귀엽다. 보는 내내 우리 냥이들 행동이 떠올라서 마구 웃음 짓게 된다. 고양이 좋아하는 이들에겐 고양이처럼 딱 힐링되는 책이다.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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