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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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꼬마, 내 둘째 조카에게 요즘 크나큰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꼬마가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지 언니가 그냥 지나치는 말로 “늙으면 죽는 거야.”라고 말을 했는데 “늙으면 죽는 거야? 엄마도 늙어? 아빠도 늙어? 할머니도?”라면서 종일 묻고 다닌다고 한다. “엄마도 지금 늙고 있지”라고 말을 하니 펑펑 울었다나.

‘늙으면 죽는다’는 말은 어쩌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늙으면 죽음에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사람이 꼭 늙어서 죽으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고로, 병으로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으로 등등 늙지 않아도 죽음은 늘 가까이서 머물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아니,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그 순간부터) 삶이다.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살에 대해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까? 삶이 너무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어서(자살에 꼭 큰 명분이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그냥 어느 순간 사는 것이 싫어지면 죽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자살을 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수많은 방법이 끔찍하고 그럴 용기조차 없어 그저 다시 살아가기로 (실은 죽음을 향해 조금 천천히 달려가기를) 마음먹은 적도 수없이 많다.

가장 행복한 죽음의 형태는 어떤 죽음일까? 아무런 고통 없이 자다가 눈을 감는 게 그렇지 않을까? 우리 할아버지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밤에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죽기 전까지 그는 흔한 병조차 없었고, 치매도 그를 피해갔다.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복 받은 사람’ ‘축복받은 죽음’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웃었다. 그때 나는 열일곱이었는데, 내가 만약 어느 날 늙어서 죽어야만 한다면 저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내가 늙어서 죽는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토록 나이를 많이 먹도록 삶을 쥐여 잡고 있는 게 구차해 보이는 십대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죽는다면 그렇게 죽고 싶다. 죽음이 두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늙고 병들어 누군가의 짐이 되어 죽어가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고통 속에 비명횡사하고 싶지도 않다. 좀 더 호사스러운 바람을 해 본다면, 내가 늙어 죽을 때 그 옆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똑같이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정도. 써놓고 보니 참 큰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은 죽음을 함께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더 쓸쓸한 것은 없다. 그들에게 결혼이라는 희극은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 가운데 하나만 살아남아 남편이나 아내의 부재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도 없을 테고, 새로 만난 사람에게 적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꿀 필요도 없을 것이다.(p.73)’
라는 구절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짐 크레이스의 소설 <그리고 죽음 | 원제 Being Dead>은 죽음,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던진다. 작품 속의 주인공 조지프와 셀리스는 시작부터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눈 그 장소에서 30년 전과 똑같이 한 번 더 ‘사랑’을 나누려고 시도하던 중 강도를 만나 무참히 살해당한다. 중년의 사내 조지프는 벌거벗은 몸으로 그리고 그의 아내 셀리스는 반라의 상태로 썩어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렇게 이들을 죽음을 시작으로 그들이 만나서 사랑하고, 부부가 되고, 함께 늙어가는 일생을 보여주고, 그들이 죽기 직전의 하루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조지프와 셀리스의 뒤늦은 부재를 깨닫고 그들을 찾기 위한 산 사람들의 노력을 다른 한 축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의 죽음 앞에 그들의 지나온 인생과, 죽기 직전의 하루,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다.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천국이나 지옥을 믿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천국에 대한 확신도 지옥에 대한 확신도 없다. 정말 그런 곳이 존재할까? 단지 죽는 그 순간부터 육체가 썩기 시작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영혼도 육체와 함께 소멸하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에서도 육체의 죽음, 그 부패의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닷가에서 죽은 그들의 시체를 탐하는 곤충과 조류, 어류 등의 동물들과 그들의 썩은 육체를 자양분 삼아 자라나는 식물들….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 어차피 죽는다면 왜 살아야 하나? 이런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행복한 죽음이라고 볼 수 없는 조지프와 셀리스의 죽음에서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갈지언정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육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죽은 채 발견된다.

조지프와 셀리스가 서로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 곳에서 30년 전과 똑같이 사랑을 나누려다,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다(물론 그들은 몰랐지만)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비록 강도에 의해 난타당해 몸이 이곳저곳 상했지만 그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젊고 평화로워 보였다. 죽음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고, 지금 이 순간도 다가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 어두운 우주에서 주어진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는 하찮은 거류자들, 덜덜 떨면서 예배를 보는 이들과 별을 바라보는 이들은 천국에 대한 기대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꽃처럼 타올랐다 스러지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희생하는 바보들이었다. 아무도 초월할 수 없다.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탄생과 죽음 사이의 공간을 끌어안는 것뿐이다. 열심히 살아라, 넓게 살아라, 높게 살아라.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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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6-12-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과 애도 상실에 대한 책을 모으고 있는데 ... 감사하니다. 서평도 훌륭합니다.

잠자냥 2016-12-14 1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죽음과 애도 상실에 대한 책을 모으고 계시다니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실 것도 같은데,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도 꽤 훌륭합니다.
 
군주론 펭귄클래식 30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기돈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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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통찰력은 빼어나다. 그러나 군주는 그것을 한껏 ‘이용‘해서 대중을 지배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도덕에 어긋나는 수단도 용납할 수 있다는데, 그의 사상을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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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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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레이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온화하고 조용한 지성인을 대표하는 그런 남자. 결혼 생활 15년, 딸 하나와 부인을 둔 평범하고 모범적인 그런 가장이기도 했다. 적어도 친구 잭의 소개로 '앤'이라는 여자를 만나기 까지는. '앤'이라는 여자를 만난 후 그는 자기가 살아온 15년 결혼 생활이 그저 '자신의 자아를 구속하는 상실의 세월'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앤을 만나고 그는 '마치 오래 끊긴 어떤 통신선이 20년 전의 자아에게 갑자기 회복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 했고 아내 바버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슈트케이스 하나만 달랑 들고 새로운 연인 '앤'에게 간다. 15년 간의 무미건조했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사랑에 대한 황홀함으로 가득한 새로운 결혼 생활을 '앤'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전 부인 바버라의 계략으로 인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의 현재 부인인 '앤'이 출연했던 영화를 관람하면서 '앤'이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장면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 그레이엄이 자신의 현재 부인 '앤'이 출연한 영화를 본 적도 없었던 것은 그는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앤'이 젊은 시절 출연했던 B급 상업 영화는 더더욱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고. 그런데 앤의 과거나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그레이엄의 현재를 다 알고 있는 그레이엄의 전 부인 '바버라'는 이런 점들을 교묘히 이용, 딸이 아빠와 보고 싶어하는 영화라며 그 영화를 (더 정확하게는 영화 속 '앤'의 정사장면을) 그레이엄이 목격하게끔 조종한다.

그때부터 이 남자는 질투와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모르던 '앤'의 과거 캐기에 온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이 깊으면 질투와 망상도 심해지는 것일까? 그레이엄의 경우 얼마나 앤을 사랑하는지는 그가 그의 친구 잭에게 앤을 생각하는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절절하게 드러난다.

그레이엄은 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식사가 끝나고 식탁을 치울 때, "갑자기 난 그녀의 접시에 그녀가 남긴 것을 죄다 먹어 치우는 거야. 그래, 흔히 그것은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닌데- 기름 덩어리와 변색된 채소와 소시지 연골 따위인데- 난 그저 맛있게 먹어 치워"라고 말한다. 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녀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싶어한다.

이런 구절도 보인다.

앤이 업무로 출타하면, 그는 자신이 성적으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가 곁에 없을 때, 그는 움츠러들었고 따분해했으며 더욱 멍청해졌고 조금은 두려웠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 남편감은 못 되고, 바버라에게나 적합한 남편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앤이 돌아 왔을 때,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유심히 그녀를 살펴보고 있었다. 때때로 이 소심한 열정은 필사적이고 광적인 집념이 되었다. 그는 그녀의 손이 단 물건들을 질투했다. 그는 그녀 없이 보낸 세월을 경멸했다. 그는 단 하루라도, 그녀가 되지 못한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그렇게 그녀없이 보낸 세월을 슬퍼하고 경멸해하고 아까워 하던 그의 감정은 그녀의 과거의 한 장면을 목격한 뒤 겉잡을 수 없는 질투로 변하기 시작한다. 역사학자 답게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면서 앤이 만난 남자, 영화를 같이 찍으면서 관계를 가질 법했던 남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들의 뒷조사까지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과대 망상은 점덤 더 커져간다. 앤도 미쳐 기억 못하는 그녀의 출연작들을 구해와서는 수십번도 더 리플레이 해서 반복해 보면서, 저 남자와도 관계를 가졌겠지, 저 남자와는 어떤 식으로 했을까 등등 끊임없이 망상을 하고 또 그것을 실제로 앤에게 확인하는 작업까지 하기 시작한다. 서서히 그들이 아늑하고 평화롭던 저녁은 늘 눈물과 슬픔과 괴로움으로 가득찬 저녁으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한다. 앤은 그렇게 그레이엄에게 과거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도 그래도 그가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가 원래의 다정하고 온화한 그레이엄으로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그레이엄은 결정적으로 앤을 소개해준 친구 잭(잭은 소설가임)을 초대한 저녁 파티에서 앤과 잭의 어쩐지 은밀해 보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실제로 잭과 앤은 앤이 그레이엄을 만나기 전에 잠시 연인 사이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앤은 그레이엄과의 결혼 후에는 결혼 전의 모든 관계를 끝냈고 그레이엄에게만 충실했음) 그레이엄은 그 후 잭에 대한 수집에 불타기 시작한다. 잭이 쓴 모든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남녀 주인공들이 벌이는 정사장면을 모두 앤과 잭의 이야기라고 단정 내리고 그 장면 장면들을 책에서 찢어내어 따로 보관하기 시작한다. 질투에 눈이 멀어, 부인이 과거에 사로잡혀 행복한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스스로를 가련한 오셀로라고 부르는 그레이엄. 그는 그래서 어떻게 될까? 그의 질투는 끔찍한 파국을 불러오고 만다.

이렇게 구구절절 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흔히 질투가 사랑의 묘약이라는 둥, 양념이라는 둥, 질투 없는 사랑은 맹물 같다며 사랑하는 사람의 질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에서 여자가 자신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남자에게 술이 취해 "제발 나 좀 질투해 달라" 했더니 남자가 오바하면서 그 다음날부터 여자 주변의 모든 남자들에게 장난 아니게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무척이나 좋아하던 여자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구나'하면서 뿌듯해하고. 적당한 질투 같은 것은 정말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요소는 일부러 하려고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안 하려고 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거기서 문제가 일어난다. 이 책에서도 전하고 싶은 말도 그게 아닐까? 평범하고 온화하던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질투에 눈이 멀어 어떻게 파괴적으로 변모해 가는가를 보여주면서, '인간은 본래 세 개의 두뇌를 타고났다. 구조가 크게 다른데도, 이 셋이 함께 기능하고 서로 교통해야만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세 두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본질적으로 파충류의 두뇌다. 두 번째 것은 하등 포유류에서 상속받은 것이고, 세 번째 것은 고등 포유류에서 발달한 것으로, 세 번째 것으로.... 인간은 참다운 인간이 되었다'는 책의 서문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결국 그레이엄은 포유류의 뇌가 파충류의 뇌에 잡아 먹혀버렸다고 할 수 있으리라.

책을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무섭기도 했다. 자신의 진짜 사랑을 드디어 만났다면서 행복해하던 그가 질투와 망상에 사로잡혀 그 행복한 일상을 스스로 파괴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편집증 적으로 아내의 과거를 캐내고, 아내의 과거와 얽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남자들에게 질투를 하고, 망상 속에서 시름시름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는 사랑의 종속 된 감정일 뿐이다. 그것을 망각하고 질투가 사랑을 넘보려 할 때, 사랑이 질투에 종속되어 갈 때 그 사랑은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닐까. 질투가 파충류의 두뇌에 속하는 것이라면 사랑은 아마 고등 포유류의 두뇌에 속하는 감정일 것이다. 세 번째 것으로 인간은 참다운 인간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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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6-12-0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신 듯합니다. 품절이군요. ㅠㅠ

잠자냥 2016-12-08 16:53   좋아요 0 | URL
네! 안타깝게도 품절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사고 싶은데; ㅋ 회원 중고가는 비싸네요;; 음.

단발머리 2016-12-0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리뷰 읽었더니.. 줄거리를 알고 있는데도 더더 읽고 싶네요.
아, 줄리언 반스라니~~~ 기대됩니다ㅎㅎ

잠자냥 2016-12-08 17: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손톱 막 물어뜯으면서요. ㅎㅎ
열린책들에서 이 책 다시 내주면 좋겠습니다. 사고 싶은데 말이지요.
 
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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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과 또 다른 이들의 삶을 위해 살다간 이들의 기록. 그들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가치, 정의, 자유, 권력에 대한 항거를 추구하며 살아갔다. 그런 이들의 삶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반성과 질문도 절로 들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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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동서문화사 월드북 164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최홍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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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헛되고도 헛되도다!‘ 지루한 일일 드라마를 꾸역꾸역 끝까지 보는 느낌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역겹다. 새커리가 그나마 숭고하게 그린 ‘도빈‘도 내가 보기엔 한낱 위선자일뿐. 하긴 ‘허영의 시장‘에 사는 인간 모두 그렇게 이기적이고 위선자이라는 말일까. 빅토리아 시대 작품은 한동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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