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지 않은 채, 지나간 책 중에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괜히 생각이 나는 작품이 있다. 읽을 때도 좋았지만 좀 지나고서도 여전히 좋은 책, 읽을 때는 크게 좋은 줄 몰랐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난 후 더 좋아지는 책. 그런 책 위주로 몇 권 소개해 본다.



조르주 페렉,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


이 기묘하고도 긴 제목의 작품은 읽을 땐 뭐야? 싶었는데 두고두고 곱씹게 된다. 제목도 그렇지만 형식은 더 특이하다. 이 작품은 100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인데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싶은데 직접 펼쳐보면 알리라. 조르주 페렉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실험’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한 문장으로 이뤄진 만큼 줄거리는 단순하다.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는 대기업 말단 사원이 임금 인상을 요청하고자 과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과장을 찾아가 약속을 잡고 임금을 올려달라고 말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장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고 과장이 건강 혹은 집안 문제로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다. 이런 때에 임금 인상을 요청했다가 괜히 불벼락만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음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이 말단 사원은 그래서 과연 임금 인상을 요청할 수 있을까? 그의 이 지지부진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종종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에는 씁쓸함과 자괴감, 슬픔 등의 감정이 솟구친다. 고작 임금 인상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이토록 수많은 난관을 만나야 하는 말단 사원의 모습을 통해 ‘회사’라는 공간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말단 사원의 우스꽝스러운 임금 인상 요청기를 읽다 보면 불합리한 직장 생활, 조직 생활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좀 서글퍼진다.




미하일 조센코, <감상소설>


미하일 조센코의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약장수 말투라고 해야 하나. 조센코는 딱딱한 문어보다는 ‘구어’ 위주로 글을 썼으며 작품 내내 ‘작가는~’ ‘독자는~’ 이런 식으로 마치 약장사나 변사가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읊어주듯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은 수다스럽고 장황하기도 하고 ‘작가’와 ‘독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작품에 대한 완벽한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감상소설>은 어느 순간 읽다 보면 이 소박하고도 꾸밈없는 작가의 말투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조센코가 서문에서 밝혔듯 <감상소설>은 ‘별로 잘나지 못한 작은 사람에 대한, 서민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품에는 영웅이 등장하지도 않고 딱히 큰 사건이 펼쳐지지도 않는다. 또한 조센코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가련한 삶에 대한 것’이다. 그런 이들의 삶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풍자적으로 묘사한 <감상소설>은 192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현재의 우리 삶을 묘사한 듯 느껴진다. 단편 속 대부분 등장인물의 꿈은 현실의 우리 삶이 그러하듯 그 어느 것도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그녀의 작품은 ‘아프다’. 읽고 있으면 아프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슴을 후벼 판다고 해야 할까. 이 투박한 언어로 쓰인 거칠고 짧은 소설은 그 어떤 미문의 긴 장편보다 여운이 길다. 왜일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그랬고 <어제>는 더 그렇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을 읽노라면 결국 소설이란 어쩌면 ‘언어의 놀음’ 혹은 ‘말장난’ 보다는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문학에서 ‘어떻게’가 더 중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무엇을’이 더 중요하달까. 이 삭막하고 메마른 이야기, 어떻게 보면 초등학생이 쓴 듯한 투박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는  고국을 떠나 망명자이자 노동자로 살아온 작가의 절절한 삶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노라면 눈물이 뚝 떨어진다.





크리스토프 바타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가 ‘무엇을’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어떻게’에 더 중점을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단순하고 건조한 문장의, 어떻게 보면 뻔하다 싶은 이야기(오리엔탈리즘도 느껴지고 종교적인 신앙의 냄새도 물씬 묻어나오는)를 ‘흠.. 글쎄...’하는 시선으로 삐딱하게 읽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읽고 나니 여운이 정말 길다. 한 번, 아니 두 세 번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그 여백의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베트남에 선교를 간 성직자들의 이야기다. 작품 속에는 처음엔 베트남도 있고 성직자도 있고 왕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읽다 보면 이 모든 게 사라진다. 시간도 공간도 사람도 모두 사라지고 ‘텅 빈 고요함’만이 남는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빈 공간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유진 오닐, <지평선 너머>


유진 오닐의 희곡이 보통 그렇듯 <지평선 너머>에도 한 가족이 나온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 곁의 다정하지만 유약한 어머니, 그리고 두 아들. 두 아들은 기질상 서로 굉장히 다르다. 큰 아들은 큰 농장을 경영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일꾼’ 스타일로 건강하고 굳세고, 단순하며 현실적이다. 반면 둘째 아들은 현실적인 삶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몽상가로 책 속의 삶, ‘지평선 너머’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이 두 아들 사이에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여자로 인해 형제의 삶, 더 나아가 가족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지평선 너머>는 유진 오닐의 다른 희곡들처럼 역시 쓸쓸하고 허망하다.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생이란 ‘지평선 너머’ 무언가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삶이지만, 사실 지평선 너머에도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차라리 그 지평선 너머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게,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그 순간이 차라리 더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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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지혜 -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B.러셀 지음, 이명숙 외 옮김 / 서광사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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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철학/문화적 전통의 연속성을 러셀의 관점으로 돌아본다. 서양철학 전반을 훑어볼 수 있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철학사를 이미 조금은 아는 사람이 읽기에 적당하달까. 그럼에도 러셀의 명료한 문체와 온갖 그림이 곁들여 있어 다른 철학서보다는 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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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여 안녕 창비세계문학 46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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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처럼 담담하게 1930년대 베를린의 인간 군상을 그린다. 그 시선은 따스하고 연민이 서려있다. ‘나‘에겐 자유로운 공간이었을 베를린을 결국 떠날 때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든다. 어딘가에서 또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모두 퀴어죠. 정말 너무나 퀴어죠‘ 구절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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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추구와 발견
파트리크 쥐스킨트.헬무트 디틀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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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사실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 <향수>와 <좀머씨 이야기> 이 정도만 읽고 나랑은 좀 안 맞는 작가네... 하고는 그 뒤로 거의 이 작가 작품은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보고는 이 책이 문득 읽고 싶어졌다. 제목이 멋져 보여서 그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다. 무지 슬픈 신화인데도,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그리스로마 신화는 다 잊혀져도 이 이야기는 잘 잊혀지지 않는다. 명백히 비극이고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구구절절 보여주는 신화인데도 그냥 좋았다. 죽은 아내를 찾기 위해 지옥으로 찾아가서 결국 지옥의 신들을 감동시키고 죽은 아내를 다시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오르페우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의심이 들어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신들의 말을 거역하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다시 저승으로 끌려들어가는 에우리디케의 모습. 다시 아내와 함께 이승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마음 속에 든 의심때문에 한순간에 잃어버린 오르페우스의 모습에서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데도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오르페우스와 같은 짓을 너무나도 많이 한다. 그렇게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알면서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랑의 추구와 발견>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의 현대적 재현이다.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 어느날, 문득 사랑에 빠져버린 미미와 비너스. 서로의 눈에 서로만 보이던 완벽하게 충실했던 시간들이 사라지고 7년 뒤에 그들은 각각 겉으로는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결국 헤어진, 그래서 더 이상은 사랑하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남남인 존재로. 이들이 처음 만나서 나누는 대화들이 의미심장한데, 다음과 같다.

미미 :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틀림없지?
비너스 :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절대 아니에요. 전 테크닉도 없고 성량도 풍부하지 않고, 고음도 저음도 제대로...
미미 : 고음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사람은 만나지 못한 지 벌써 오래됐어. 물론 저음도 마찬가지고...
비너스 : .... 게다가 전 너무 감정적이에요.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너무 감정에만 치우치조. 목소리는 그걸 못 따라가고...
미미 : 젊은 여자가 옛날 카스토라토를 위해 만들어진 곡을 무조건 노래할 필요는 없지.
비너스 : 스스로 믿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서 노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일생일대의 위대한 사랑 같은 거요. 죽음을 뛰어넘고, 어쩌면 죽음까지도 굴복시키는 그런 사랑 말이에요.
미미 : 왜 안 된다는 거지?
비너스 : 왜냐하면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물론 과거에도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고요. 그런 사랑은 단지 환상에 불과해요.  
미미 : 환상이라고?
비너스 : (매우 격정적으로) 당신은 그 정도로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요? .... 그렇게 영원히....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저승까지도 쫓아갈 정도의 사랑 말이에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찾아간 것 같은 그런 사랑이오.
미미 : (미소 띤 얼굴로) 당신은 그런 사랑을 믿지 못하나?
비너스 : 난 믿지 않아요!
미미 : 그 말은 못 믿겠는데. 당신은 내가 뭘 믿고 있는지 알거야. 난 그걸 믿어....

처음 그들이 초창기에 나눈 대화에서 비너스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찾아간 것 같은 사랑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그건 단지 환상일 뿐이라고. 그런 사랑은 없다고. 반면 미미는 그런 비너스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미소를 보내며, 둘의 관계에 어떤 확신 같은 것을 한다. 의미심장하게.

미미 : 어디 가려고?
비너스 : 집에요
미미 : 지금 집에 있잖아.

비너스가 깜짝 놀라 미미를 쳐다본다. 미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민다.

미미 : 여기서 나랑 같이 살아!
비너스 : 음.... 그렇지만....
미미 : 여기 있어. 다시는 어디에도 가지 말고!

(클로즈 업) 비너스가 미미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미미의 손에 이끌려 침대로 되돌아온다. (근접) 두 사람이 포옹을 한다.

비너스 :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거죠. 항상 그리고 영원히?
미미 : 항상 그리고 영원히!


'항상, 그리고 영원히'를 꿈꿨던 사랑이 7년 뒤에 끝이 나고, 미미가 작곡해 준 노래를 통해 대단한 성악가로 성공한 비너스. 그와는 달리 미미는 떠나간 사랑의 잔영에 늘 괴로워하며 피폐하게 살아간다. 비너스의 경우 성공과 또 다른 남자 해리까지 곁에 두고 있는 상태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아무것도 할 의욕을 보이지 않는 미미에게 그의 친구는 이런 식으로 미미와 비너스의 사랑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다.

테오 : 처음부터 그랬어, 미미! 사실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거든, 그녀는 자네한테 맞지 않았고, 자네 역시 그 여자한테 맞지가 않았어.

미미 : 테오, 그녀는 내 인생의 하나뿐인 위대한 사랑이야. 우린 7년간을...

테오 : (말을 중단시키며) 두 사람은 늘 싸우기만 했어... 난 자네가 그녀의 무식함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다 지켜봤다고.

미미 :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녀는 아주 지적인 여자야. 물론 머릿 속에 든 게 별로 없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영혼은 안 그래. 아무튼 가슴으로 느끼는 것에서는 자네 부인 머리보다 더 지적이야.


항상 싸우는 관계, 늘 서로를 괴롭히고 상처주고 했던 관계, 사실 비너스의 경우 미미의 성격으로 인해 늘 자기 자신이 괴롭힘 당하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그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해리라는 아주 평범한 남자를 만나기는 하지만.... 그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한다. 늘 공허해 하고, 마음 속 머리 속으로는 끊임없이 미미와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작사 작곡 해준 노래들을 부르며 그를 그리워하고,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미미와 함께 산책한 거리를 밤마다 배회하고, 해리 곁에서 평온해 하는 척 하지만 늘 미미가 연락해 오는 핸드폰 속 음성 녹음에 더 신경이 곤두설 뿐이다. 그러다 결국, 미미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삶이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 같이 있어야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미미. 그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지만 왜 이런 깨달음은 항상 늦는 것일까? 비너스가 이런 깨달음을 얻고 그에게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미미는 자신과 비너스가 7년이나 살았던 집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며 친구 테오와 그의 아내 헬레나의 별장이 있는 곳에 와서 결국 자살을 하고 만 뒤다. 이 부분에서 미미는 비너스 이전에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가 있었던 것을 암시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테오에게 "도저히 이 집에서 살 수가 없어, 집안 모두가 비너스의 냄새로 가득하다고" 라고 했더니 테오는 역시 냉랭하게 "이 집에 들락 거린 여자가 비너스 말고 한 두 명인가? 그런데 왜 유독 비너스 냄새만 난다고 하는 거야?" 그 말에 미미는 "다른 여자들은 다 떠났지만 비너스의 냄새는 온 방을 가득 채운다"며 비너스가 떠난 뒤에도 언제나 그곳에 그녀가 머물고 있음을 말한다. 위대한 사랑의 존재를 늘 의심했던 비너스와 달리 그녀가 자기에게 생애 단 한번의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미미는 알았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미가 별장으로 떠나기 전에 챙기는 물건 중 파란색 칫솔이 있는데, 이 칫솔은 미미와 비너스가 함께 여행다니면서 하나로 같이 쓰던 칫솔이라는 것. 미미가 먼저 닦고 비너스가 닦고 이런 식으로.. 그리그 이 파란 칫솔은 결국 미미가 자살을 하면서 비너스에게 남긴 유서와 함께 남겨진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고?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서 저승으로 간 것처럼 죽은 미미를 찾아 비너스가 그를 찾아 저승으로 가게 된다. 절대로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와 같은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비너스가, 어느 순간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의 명백한 현대적 재현이라는 점에서 저승에서 만난 그들이 행복해하는 것도 잠시... 결국 오르페우스의 의심이 그 둘이 함께 다시 영원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처럼, 이 둘 역시 그렇게 된다. 함께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다시 묵묵히 걸어가던 두 사람. 그들은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내레이션 : ..... 이제 두 사람은 기분 나쁜 말, 상처 주는 말, 애매모호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느니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왜냐하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그 끔찍한 선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뒤를 돌아봄으로써 순식간에 사랑과 행복을 전부 잃어버린 그 끔찍한 일을.

하지만, 미미와 비너스는 결국 인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들이 입을 여는 순간 다시 서로를 의심하고 상처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왜 이승으로 가는 길이 빨리 안 보이지? 비너스, 당신 정말 길 알고 있는 거야? 항상 당신이 가자고 한 길을 따라가면 이상한 길이 나오고는 했잖아. 길 모르지? 이런 비난의 말, 의심의 말. 비너스때문에 여행지에 가서 길을 헤맸던 과거의 일을 끄집어 내서 다시 비너스를 상처주는 미미. 게다가 비너스는 미미가 저승에서 신과 사랑을 나눈 사실을 끄집어 내며(저승에서 미미를 유혹하기 위해 비너스로 변신한 신이 미미와 섹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미는 절망 상태에서 그 신이 비너스라고 착각하고 관계를 가졌고.) 트집 잡기 시작한다. 이런 말다툼 속에서도 비너스는 절대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미미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나도 어이없이 비너스의 등 뒤에서 따라가던 미미가 비너스의 엉덩이가 예전에 비해 볼품없어졌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

미미 : 맞아. 그랬었지. 그런데 당신 지금 보니 살이 좀 빠졌군... 거기 엉덩이 말이야.
비너스 : 그래요. 당신 걱정하느라 그렇게 됐어요.
미미 : 그건 별로 좋지 않은데. 그럼 아마 당신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일지도...
비너스 : (상처 받았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요.... 내 엉덩이가?
미미 : 부정적인 의미로 말한 게 아니야, 내 사랑. 내 말은 보통 여자의 나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때, 나이가 들수록 살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보통 전체적으로 조금씩 처지는 걸 보고 알 수 있다는....
비너스 : 그래서 지금 내 엉덩이가 처졌다는 말이에요?
미미 : 그런 뜻이 아니야, 난 단지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 당신은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엉덩이를 가졌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비너스가 흥분해서 모든 경고와 목적들을 잊어버리고 미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비너스 : (날카롭게) 내 엉덩이가 더 이상 당신한테 어울리지 않으면. 그냥.....

미미가 손으로 비너스의 옛날 엉덩이 모양을 만들려는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미미를 다시 하데스로 끌어당긴다.

비너스 : (깜짝 놀라서) 미미....!
미미 : (슬프게) ..... 기억나 당신? 그때 젖은 모래 속에 앉아 있던 때 말이야.....
비너스 : (비명을 지른다) 미미, 가면 안돼요....!

절망 속에서 그녀가 자꾸 멀어져 가는 미미를 향해 손을 내민다.

미미 : (멀리서) 동그랗게 솟아 있던 당신의 그 작은 엉덩이는 정말 이 세상......
비너스 : 미미! 미미!

결국 그들은 그렇게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저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통해서 스스로 박탈해 버리는 것이다. '신화처럼 위대했던 사랑도 별것 아닌 사소한 의견 차이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미미에게서 영원히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가 버린다'는 책의 구절처럼. 오르페우스 신화와 달리 이 책에서는 '엉덩이 발언'으로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을지 모른다는 비너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단 한번 미미가 비너스를 만나게 될 기회를 얻게 된다. 미미가 찾아간 그때 이미 비너스는 70을 넘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있다. 자기 삶에 단한번 위대한 사랑이 왔던 것만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미 죽은 미미의 집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이 책을 이렇게 구구절절, 본문까지 삽입하면서 길게 적고 있는 이유는 사실 미미와 비너스가 하는 행동들이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오류와 실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완벽하지 않고, 이기적인 동물이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저런 실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자기 일생에 보기 드물게 찾아오는 위대한 사랑을 놓치게 되는 어리석은 일을 속수무책으로 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적어도, 이 구절을 읽는 분들은 그런 무수한 오류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그렇다. 의심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상처주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 사랑의 보편적인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단 한번의 위대한 사랑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생애 다시 오지 않을 위대한 사랑, 그런 사람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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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1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근황이 정말 궁금해요. 은둔형 작가라서 신작 소식이 나온다면 열린책들 출판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

잠자냥 2016-12-22 09: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우리나라에서 또 워낙 인기가 많아서 더 그렇겠지요.
 
신생 대산세계문학총서 136
시마자키 도손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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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문학은 얼마나 진실한가? 조카와 근친상간을 범한 도손은 그 일을 <신생>에 담았다. 죄를 참회하고 조카를 구원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자기변명, 나르시시즘의 극치로만 보인다. 세쓰코는 도손의 문학을 위해 철저히 짓밟힌 셈이다. 이 문학은 그래서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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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7-01-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 이 책 골랐다가 잠자냥님 얘기 듣고 그냥 놨습니다. ㅎㅎ

잠자냥 2017-01-11 13:04   좋아요 0 | URL
쓰기는 잘 썼습니다.... 근데 이 책이 590쪽인데 변명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ㅋㅋ 전 도서관에 구매신청해서 빌려 읽었는데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