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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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흔한 사랑이야기려니 했다.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고 문장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젖어들다보니 어느 순간 먹먹해져왔다. 그러다 ‘아, 아름답다!‘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겐 여름이 있었고 그 여름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여름의 뜨거움과 여름이 사라진 뒤의 서늘함을 섬세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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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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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불가해성과 우연성.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 인생은 종잡을 수도, 알 수도 없는 것. 그러나 한 번쯤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그는 속삭인다. 마지막 문장은 존 치버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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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뽑은 2016년 올해의 책 (2016년 출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책을 받았을 때는 이토록 얇은 두께에, 양장본으로 만들어서 만 원 가까운 값을 받고 있는 것에 놀람. -_- 하지만 내용이 좋으니 참는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 그러고 나서 여자 남자 모두 읽어야할 책. '남자와 여자는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진다.' 쉽고 재치있으면서도 핵심만 콕 찝어 여성의 권리, 더 나아가 양성평등을 이야기한다.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라고 말하는 여자들은 특히 꼭 더 읽어보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롤>


빼어난 수작, 참 잘 썼다. 영화를 보고 나니 책이 한결 더 잘 썼다는 느낌이 든다. 뭐랄까 좀 더 스릴러스러운 면모도 있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무래도 책에서 더 잘 드러난 느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단지, 스릴러 또는 잔혹한 단편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로맨스도 꽤 잘 쓰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재발견 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의미 깊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는 힘이 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곧 그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행위이다. 솔닛은 마치 셰에라자데처럼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것들로 이야기를 엮어가며 이야기의 힘을 전한다. 책장을 덮을 즈음 삶을 사랑하게 되고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하게끔 된다. 참 괜찮은 책이다. 이웃 가운데 어떤 분은 이 책을 비추천으로 꼽은 걸 보니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서문을 읽은 순간 이 책에 반했다.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때는 존경심마저 든다. 페미니즘은 인간이 만든 운동이라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부족한 페미니스트로 당당히 살겠다는 그녀의 선언에 진심으로 공감, 응원을 보낸다. 알라딘에서도 올해의 책에 꼽힘. 올해 출판 키워드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 책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히는 듯한데, 왜 현실에서 여혐/남혐은 이토록 심한가.


찰스 부코스키, <호밀빵 햄 샌드위치>


집, 학교, 가족, 친구, 일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저 한 사람. 술과 담배, 책, 글쓰며 숨어 있을 작은 공간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자했던 안티히어로 치나스키의 웃기고도 슬픈 성장담. 이런저런 구절에 공감이 꽤 가는 작품. 예전에는 왜 찰스 부코스키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 작품으로 조금은 그 심정이 이해된다. 찰스 부코스키 '시'말고 '소설'을 좀 더 많이 만나고 싶다....만 번역된 소설은 이제 다 읽어버렸다 -_-;



조르주 바사니, <금테안경>


존경받던 의사에서 한 순간 가십 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중년 남자, 이웃과 가족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 미래가 찬란했던 한 젊은이, 그 또한 영원한 국외자가 되고 만다. 한 사람은 동성애자이기에 또 다른 사람은 유대인이기에. 이 영원한 이방인들의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우정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독하고 서글픈 분위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에 반해서 조르주 바사니 전집 마련함.....이라고 해봤자 전3권. ㅋ



윌리엄 트레버, <비 온 뒤>


사그라들고 바스라들고 언제가 흩어져버릴 것들에 대한 따스하면서도 애잔한 시선. 윌리엄 트레버가 보는 방식으로 사람을 본다면 이 세상에 안쓰럽고 불쌍하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가을 11월쯤 읽으면왠지 더 다가올 듯하다. 그리고 이상한 점 하나. 난 왜 정영목 번역본은 늘 별로일까…. 현대문학에서 나온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이 더 좋았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독서에 대한 또다른 우화. 폐지더미 속에서 찾아낸 온갖 책들. 그 안에서 주인공 '한탸'는 아무리 고독해도 '텍스트'가 있기에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텍스트 없는 세계, 이제 '백지'앞에 서야 할 그에겐 오직 '절망'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탸의 이 희망과 절망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 <산월기>


중국 고전을 빌려와 오늘날에도 통할 이야기로 잘 빚어냈다.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인간심리와 인생의 복잡다단성을 깊이있게 표현했다. 잘 다듬어진 문장과 통찰력 넘치는 시선이 빛난다. 덕분에 공자와 자로 등 중국 고전에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식민지 조선을 그린 단편도 빼어나다.




최윤필, <가만한 당신>


누구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과 또 다른 이들의 삶을 위해 살다간 이들의 기록. 그들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가치, 정의, 자유, 권력에 대한 항거를 추구하며 살아갔다. 그런 이들의 삶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반성과 질문도 절로 들게 해준다. 책 표지 안쪽 작가 사진 보고 깜놀. 인상이 무척 선하다.



2016년 올해의 워스트 -_-;;


오쿠이즈미 히카루,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지금 생각해도 분하다. 작가 얼굴 떠오르니까 한대 치고 싶..;

애초에 일본에서 중딩 대상으로 나온 책이다!!!!!!





주노 디아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정녕 이 작가가 떠오르는 작가란 말인가!!!! 그저 탄식-

이렇게 너를 그냥 헌책방에 팔아버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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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0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6-12-30 14:03   좋아요 1 | URL
올 한해 서재 활동 시작하면서 좋은 분들과 책 이야기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17-01-0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읽어볼 책으로 좌악... 보관해놨습니다.
근데 한국 장편소설도 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요 몇년 소홀했던지라 통 모르겠더라고요. ㅠㅠ
좋아하시는 한국 작가라도.... 좀 어떻게.... ㅎㅎㅎ
올 한해 건강하시고 하여간 좋은 일 만드세요!!

잠자냥 2017-01-04 16:54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한국 현대 문학을 잘 안 읽어서요;; 장편은 더 안 읽습니다. ^^;;
좋아하는 한국 작가라고 해도 이태준, 손창섭에서 그치고요. ㅎㅎ 네네... 그 이후로는 없습니다-

그나마 드물게 읽은 작품 가운데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는 좀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작품은 영화화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아무 소식 없는 것 같네요. 암튼 이 작품은 안 읽어보셨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폴스타프 님도 새해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랄게요! 소주 200병! ㅋㅋ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M.T. 키케로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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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읽기엔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아름답다. 정치가이자 웅변가로 더 유명한 키케로. 이 책에서는 아름다운 문장을 쓴 문학가이자 철학가로서의 키케로를 만날 수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생각은 어쩌면 현대인보다 아름다웠던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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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남혜현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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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에서 만나 이제는 친구가 된 이가 있다. 나이가 동갑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된 그 친구와 나는 비록 부서가 달랐지만 ‘입사동기’랄까 이런 공통사항 때문에 어느덧 점심시간에 같이 산책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햇살 좋은 봄날 산책을 하며 벤치에 앉아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대부분 ‘대학 때가 좋았죠.’ 이런 종류였다. 봄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회사의 갑갑함에 몸이 아플 것 같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얼토당토않은 첫 월급 액수에 놀라던 그때의 나와 그 친구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를 했으니 고작 스물셋 혹은 스물넷이었던 우리에게 나이 서른을 넘은 대리, 과장, 차장급 사람들의 삶은 무료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저 나이가 되어도 이런 답답하고, 비전도 없어 보이고, 어쩐지 고인 물 같은 느낌이 드는 이런 회사에서 멍청하게 하루하루를 죽여가면서 세월을 보내고 싶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그 회사를 퇴사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이런 갑갑한 회사에 다시 올까요?’ 그런 이야기들-

한자리에 자리를 잡으면 듬직하게 오래 앉아있는 성미의 그 친구와 나는 어쨌든 그 회사에서 3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침에 외국어를 배우겠다는 일념에 새벽같이 만나 학원을 같이 다니고, 건강도 챙겨야겠다며 새벽에 스쿼시를 함께 배우러 다녔다. 그때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보통 새벽 6시 혹은 5시이랬다. 종로 근처 외국어 학원에서 함께 강의를 듣고 그리 멀지 않은 회사까지 함께 걸어오는 이른 아침 출근길은 어쩐지 무척 뿌듯했다. ‘아, 열심히 살고 있구나’ 이런 기분들.

3년이 넘어 더는 그 회사를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우리는 또 비슷한 시기에 그곳을 떠났다. 같은 회사에 있었지만, 서로 할 줄 아는 부분은 달랐던 그 친구와 나는 각각의 ‘밥 벌어먹는 재주’를 살려 서로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인연의 끊은 계속 이어져 이제는 ‘회사동료’였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편안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외국어 관련 출판사에서 일하던 그 친구는 필요성을 느껴 어느날 훌쩍 어학연수를 떠났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홀로, 불현듯 외국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10개월 가까이 지나서 그 친구가 돌아왔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백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 친구와 나는 자주 만났다. 한가한 평일 오후 홍대나 광화문 근처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수다를 떨었다.


대화 내용은 보통 이렇다. ‘그때 우리는 무엇 때문에,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몰라’ 이런 이야기들. 새벽같이 만나서 학원을 다니고, 건강을 챙긴다며 스쿼시를 배우러 다니고 이런 시간의 의미 없음을 이야기 한다. 우리도 나름 순진하게 ‘사회의 제도권’ 안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계발’이라는 것을 하면서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하며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혀를 찬다.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던 그 시절의 우리 모습이 사실은 ‘무얼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고 ‘사회가 원하는 규격화 된 사람’이 되기 위한 부끄러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와 나는 그때의 우리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민망해했다.

덧붙이자면, ‘회사’라는 공간이 사람의 자율성을, 사람의 아름다운 삶을 얼마나 좀 먹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돈을 주기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이 시켜도, 회사 규칙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에도 다 따라야 한다는 그런 폭압적인 광경에 아연실색한다. 그렇게 돌아보면 그 친구와 내가 만난 그 첫 직장이 ‘고인 물 같이’ 조용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다른 곳에 비해 강압적인 상사도, 야근문화도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야근이라고 해봐야, 8시만 되면 불을 끄려고 당직 직원이 돌아다닌 곳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기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그곳을 나가 다른 직장을 전전하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조금 덜 받아도 좋으니 인간의 자율성을 덜 침해하고, 야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는 없는 걸까 우리의 결론은 늘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런 지옥 같은 생활’로 돌아가기 싫어서 할 수 있는 한 백수 생활을 지속하곤 했다. 물론 우리는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가진 갑부 집 자식들도 아니고, 가족일지라도 타인에게 손 벌리고 사는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성미라 어쨌든 다시 그 ‘지옥과 같은 전쟁터’로 나아가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곤 했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재주가 특출 나지도, 용기가 남보다 많은 이들도 아니라 백수로 자유롭게 지내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그 ‘지옥’으로 들어갈 것을 그 친구도 나도 늘 인지했다. 다만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래도 우리가 좀 더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중편 <산다는 것은 : ‘원제 : 나의 인생’>을 읽으며 그 친구와 내가 나눈 어느 오후의 대화들이 떠올랐다. 체호프가 담담히 조용하게 써 내려간 <산다는 것은>에서 주인공 미하일은 행복해지기 위해 귀족인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육체노동’을 하는 ‘도장공’이 된다. 지식노동을 하는 귀족들의 위선과 허울에 환멸을 느끼고 육체노동자들의 단순하고 건강한 삶에 매료된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농부’가 되는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하층민의 무례함, 무식함, 그들 사이의 위선, 난폭함 등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들이 사는 곳이고,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계급이나 위선과 난폭함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미하일은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는 일을 선택하고, 그렇게 조용히 늙어간다. 처음에는 귀족이었던 이가 육체노동을 한다며 손가락질 하고 비웃던 이들 모두가 마침내 그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은 미하일의 선택이었고 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미하일처럼 수많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하고 그 안에서 좌절도 겪어야 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하는가 보다. 그런 순간을 지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 잘하는 일, 행복해 지는 일을 발견하게 되는가 보다. ‘나는 어떤 것도 그저 흔적 없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아주 작은 걸음조차도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는 미하일의 말처럼 친구와 나의 그 모든 시간도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의미가 있으리라. 이십대 시절의 그 시행착오들도 그렇고. 적어도 그 시절을 통해 우리가 ‘사회가 바라는 규격화 된 인간형’에는 아무리 끼워 맞추려 해도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깨달음은 얻지 않았는가. 살아가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친구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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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잠자냥이 부럽습니다. 두 분 모두 행복해지는 날이 찾아올 겁니다.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돼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잠자냥 2016-12-28 11:07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
올해 처음 서재 활동하면서 서재의 달인도 되니 기분이 꽤 좋더군요. 그런데 cyrus 님은 그 서재의 달인을 무려 몇 년이나 계속 하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ㅎㅎ cyrus 님도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6-12-28 18:53   좋아요 0 | URL
그냥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쓰다보니 좋은 결실을 얻었습니다. 잠자냥님처럼 꾸준히 기록을 남기는 분들의 서재를 구경하면 늘 자극을 받습니다. 그리고 많은 걸 배우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