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새 구두를 사오실 때 창비세계문학 52
바진 지음, 박난영 옮김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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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따뜻하고 연민어린 시선, 불완전한 체재 안에서 억압받는 개인 삶에 대한 의문, 지식인들의 허위, 자유와 평등을 찾는 이들의 투쟁 등이 담긴 단편 모음. 단 지나치게 선명한 주제의식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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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친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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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하고 아주 잘 통하는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문학이야기를 한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이 있을까. 술은 꼭 샴페인인 아니더라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즐거움과 짜릿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술을 찾게 될 것이다. 샴페인이든 와인이든 맥주든 소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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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대에 시공사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성곤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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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읽어봤으리라. 나 또한 그렇다. 아주 오래 전 학교 숙제였나? 의무감처럼 <노인과 바다>를 읽고 대체 이게 뭐가 좋다는 걸까? 하고 갸우뚱한 기억이 난다. 물론 그와는 반대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자발적으로 읽고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괜히 마음 아파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런 작품을 읽었던 건 모두 10대 때다. 지금 다시 헤밍웨이를 읽는다면 아마도 그때와는 무척 다를 것이다.

몇 해 전인가 헤밍웨이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출판사마다 헤밍웨이 작품을 번역해서 쏟아냈다. 그 덕분에 이제는 그의 얼굴이 인쇄된 책을 여러 버전으로 만나기가 쉬워졌다. 읽은 지도 꽤 오래되었겠다, 새롭게 곳곳에서 번역되어 나왔으니 그 옛날 해적판보다는 당연히 번역의 질도 좋아졌겠지 싶어 헤밍웨이를 다시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헤밍웨이는 내게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는 않아서 그랬는지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러다 읽은 책이 시공사에서 나온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중 1권인 <우리들의 시대에 : In Our Time (1924년)>이다(시공사 책을 또 사고 말았어!). 시공사라 꺼려졌는데도 결국 이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안에 담긴 작품들은 일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는 점, 게다가 '단편'이지 않은가! 잘 쓴 단편 하나가 열 장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헤밍웨이의 단편에 대한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헤밍웨이를 분명 읽었는데, 헤밍웨이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딱 이렇다. <우리들의 시대에>에 실린 작품은 단편 하나하나로 봐도 탁월하지만 단편 여러 개가 모여 장편을 이룬 일종의 연작 소설로 보면 더 빼어나다. '닉'이라 불리는 한 어린아이가 이 세계의 폭력성을 마주하면서 성장해가고 그로 인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길 잃은' 세대가 되어 그렇게 점점 허무의 세계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과정을 헤밍웨이는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모두 엮여있는 몇 개의 단편들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에>에 실린 단편들은 헤밍웨이 장편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전쟁과 같은 엄청난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인간, 그로 인한 허무주의, (여자를 배제한) 남자들만의 연대 혹은 우정, 부자지간의 관계, 자연이나 낚시에 대한 사랑(그로 인한 치유 혹은 구원) 등등. 그의 장편에서 엿볼 수 있던 주제 혹은 관심사들이 스물다섯에 써낸 이 단편들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건조하고 수식이 없는 헤밍웨이의 문장처럼 짧지만 강렬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굉장히 허무한데 그 허무함이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운도 오래 간다. (게다가 내게는) '단편은 이렇게 쓰는 거야!'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빌려보지 않고 사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읽다가 빵 터진 부분....


아래 인용된 문장을 보자. 남자에게도 역시 결혼은 안 좋다고 주장하는 헤밍웨이...... ㅋㅋㅋ


 "관계를 끝장내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 빌이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건 문제 될 게 없어. 여자를 좋아하되, 네 인생을 망치지는 마."
 "그래." 닉이 대답했다.
 "결혼하면 여자 가족과도 한 가족이 되는 거야. 장인, 장모를 생각해봐."
 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언제나 근처에 있고,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거기서 장모가 마지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잔소리를 하는 걸 상상해봐."
 닉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빠져나온 게 백번 잘한 거야." 빌이 말했다. "마지는 자기 부류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정착할 거야. 물과 기름은 절대 섞일 수 없어. 내가 아이다와 결혼해도 똑같은 처지가 되겠지. 그녀는 내가 그렇게 되는 걸 좋아하겠지만." ('사흘간의 폭풍' 중, <우리들의 시대에>, 57쪽)



헤밍웨이 님하, 그래서 결혼을 무려 네 번!!!!!! 이나 하셨나효. ㅋㅋㅋ 이 모순쟁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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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른 짝을 만나서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17-02-24 09: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네 그것도 그렇네요. ㅋㅋㅋ
 
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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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 자연스레 딱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나쓰메 소세키는 사람을 싫어했던 게 틀림없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우울한 작품만 골라 읽었던 터라 이번에는 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만나보자 싶었다. <도련님>을 읽노라니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고독하거나 이런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람’이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를 우울하지 않은 어조로 풀어놓아 살짝 다르게 느껴지지만 <도련님> 또한 ‘인간이란 경멸스러운 존재’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작품이다. 경멸감이 아니더라도 뭐랄까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란 순수함을 간직하고 정직하게,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애를 쓰는 존재라기보다는 그 순수함을 쉽게 잃어버리고 오히려 그런 점을 간직한 사람을 보면 파괴하지 못해 안달 난 존재라고 보는 듯하다.

인간이 이럴진대 사람이 모인 사회라는 공간은 더 말해 무엇 할까. 시골 중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한 ‘나’가 겪는 짧은 기간의 이야기를 담은 <도련님>에서는 그런 오합지졸 인간 군상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시골이라는 한적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더 관심이 많고 겉으로는 품위와 순수 고결함을 지향하지만 그 속내는 썩을 대로 썩었다. 그런 이들이 오히려 도쿄에서 온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라고 비아냥대며 그들 사회에 걸맞은 인물로 만들고자 애를 쓴다.

고집불통에 단순하고 강직한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싫고 못마땅할 뿐이다. 어느 날은 좋은 사람인 듯한데 뒤돌아서 보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 같고 뒤죽박죽이다. 그렇게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자니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껴주던 하녀 ‘기요’만 생각날 뿐이다. 기요는 겉과 속이 다르지도 않고 늘 한결같다. 집에서도 싫어하던 자기를 변함없이 아껴주었다.

세상이 다 ‘기요’와 ‘도련님’같은 사람들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언제나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자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다. ‘도련님’이 시골 학교에서 유일하게 호감을 품었던 인물인 ‘끝물 호박’은 결국 그런 이들의 농간에 사랑하는 여자도 빼앗기고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인물은 역시 ‘도련님’이나 ‘기요’, ‘끝물 호박’ 같은 사람인데 그들의 결말은 영 순탄하지 않으니 입맛이 쓰다. 역시, 현실이나 소설이나 마찬가지구나 싶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읽으며 웃었던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은 읽으면서 몇 번 웃음이 팍 터졌다. 도련님이 사람을 비꼬는 방식도 재미있고 강직하지만 어딘가 삐뚤어진 듯한 태도에서 나오는 거친 독설도 시원했다. 게다가 남보고 뭐라고 비꼬는 도련님, 그도 어딘지 엉성해서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그렇게 묘사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살짝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과 같은 장면도 많아 ‘하이고 이놈아, 너부터 잘해!’ 하는 말이 슬며시 올라오기도 했고.

시골 학교의 중학생이라면 마냥 순진하고 순박할 것이라는 관념을 깨는 묘사도 좋았다. 인간을 만들어 준다는 ‘학교’가 결국 사람을 망치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도 그렇고. 사실 그렇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이들이 교사랍시고 남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인데 도대체 뭘 배울 게 있을까 싶다. 돌아보면 오히려 학교에서 인간의 안 좋은 버릇은 더 배운 것 같다.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그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기 시작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에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몰염치함이나 뻔뻔함 등에 관심을 두다가 후기로 갈수록 점점 인간 내면의 질투, 시기, 사랑 등 근원적 욕망에서 비롯된 윤리적 문제에 집착했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뭔가 우울한 기운이 가득한 그의 작품이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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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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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페크는이 작품을 1920년에 썼다! 지금 읽어도 혁명적인 작품이다. 로봇이라는 아이디어도 놀랍지만, 로봇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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