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에는 '수명'이라고 사람 목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여러 번 읽어봐도 그저 단순한 동화라고 생각하기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그림동화 가운데 그런 이야기들이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이야기 내용은 이렇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고 온갖 짐승들 수명을 정해주던 때의 일이다. 나귀가 먼저 와서 자신은 얼마나 사는지 물었더니 하느님은 30년을 말씀하셨다. 나귀는 너무 길다고 투덜댔다. 사람들의 부려먹음을 받으며 온갖 고생을 다하는데 그저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늘 손찌검과 발길질뿐이라는 말이었다. 나귀는 그러니 제발 그 긴 시간을 줄여달라고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나귀의 목숨에서 18년을 줄여 준다. 곧이어 개가 찾아왔다. 개의 수명도 30년을 말하자, 개 또한 30년은 너무 길다고 아우성친다. 이렇게 매일 뛰어다니는데, 자기 다리는 그토록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대로 짖지도 못하는데, 물어뜯을 이빨마저 없어지면 그저 구석에 처박혀 그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니 수명을 줄여달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개에게서 12년을 줄여준다. 그 뒤 원숭이가 찾아왔다. 원숭이에게도 30년의 수명을 주신다 하니 놀랍게도 원숭이 또한 지나치게 길다고 투덜댄다. 사람들 앞에서 익살이나 부리니 삶이 즐거울 것 같지만, 사실 익살 뒤에는 아주 큰 슬픔이 감추어져 있다며, 30년 동안 어릿광대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에 하느님은 또 수긍하시고 원숭이에게서 10년을 줄여주신다.

드디어 사람이 하느님 앞에 나타나 자기 수명을 정해달라고 한다. 하느님은 사람에게도 30년을 말하신다. 그랬더니 사람은 너무 짧다고 울부짖었다. "집을 지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심어둔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려 이제야 겨우 어떻게 즐기면서 살아갈까 생각하는 참인데 벌써 죽어야 한다니!" 너무 한다는 말이었다. 하느님은 그 또한 수긍하시며 나귀의 18년을 더 주겠다고 하니, 사람은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다고 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개의 12년을 더 얹어준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곧 하느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원숭이의 10년마저 사람에게 더 얹어 주었다. "그렇지만 더는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사람은 하는 수 없이 70년의 수명을 받고 돌아갔지만, 그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이 동화의 끝은 이렇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70년을 살게 된 것이다. 처음 30년은 가장 처음 주어진 사람의 시간이라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이때는 건강한 몸으로 명랑하고 즐겁게 일하며 삶의 기쁨을 느낀다. 그다음 나귀의 18년이 이어지는데, 이때는 늘 무거운 짐들을 잇달아 등에 짊어져야만 한다. 곡식을 나르고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지만, 그 충성스런 고생의 대가로 얻는 것이라고는 손찌검과 발길질뿐이다. 그 뒤 이어지는 개의 12년은 물어뜯을 이빨도 없이 구석에 앉아 끙끙거리며 보내게 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원숭이의 10년을 살다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 바보 멍청이가 되어 얼빠진 짓이나 저지르다가 아이들 놀림감이 되고 만다.

독일어 원문은 아니고, 영어판은 이렇다


So man lives seventy years. The first thirty are his human years, which are soon gone, then is he healthy, merry, works with pleasure, and is glad of his life. Then follow the ass's eighteen years, when one burden after another is laid on him, he has to carry the corn which feeds others, and blows and kicks are the reward of his faithful services. Then comes the dog's twelve years, when he lies in the corner, and growls and has no longer any teeth to bite with, and when this time is over the monkey's ten years form the end.  Then man is weak-headed and foolish, does silly things, and becomes the jest of children.


사람의 수명이 처음 정해진 것처럼 30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미 나는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면 홀가분한 것도 조금은 있지만 참으로 짧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동화 속, 사람 말처럼 30년은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보낸 시간이 아닌가. 그렇다고 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즐겁게 사느냐 싶은데,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나귀의 18년이 얹어졌듯이 이래저래 먹고 살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고 나귀의 18년처럼 꼬박 18년을 일할 수 있는가 하면, 오늘날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18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빨 빠진 늙은 개처럼 한쪽 구석으로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빨 빠진 늙은 개와 놀림거리가 되는 원숭이로서의 세월에 그런 대접을 받지 않으려고 나귀의 18년 기간 동안 지나치게 아등바등 살아간다. 돈이라도 억척같이 모아놓으면 개나 원숭이 대접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스스로에게 마구 채찍을 휘두른다. 하지만 알다시피 사람의 인생은 결국 어느 순간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야만 한다.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와르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나귀의 18년 동안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때가 오더라도 그것이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평소 자기 삶과 내면을 돌아보는 습관이 배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나귀의 18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정신없이 일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의 삶이 주어졌을 때 ‘내가 이제껏 무얼 하고 살았지? 내 인생은 뭐지?’ 단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나 또한 나귀의 삶을 살고 있다. 딱히 앞날을 크게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그저 멍하니 뭘 하고 사는지 모를 정도로 넋을 놓아버릴 때가 있다. 나귀의 18년 가운데 앞으로 또 얼마나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나도 더 나이 들어 늙었을 때 한쪽 구석에 내몰리더라도, 남들이야 나를 어떻게 보든 나 자신이 스스로를 이빨 빠진 개나 원숭이처럼 여기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스스로를 잘 가다듬어야 할 텐데. 어쩌면 매일 일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잠드는 것보다 그렇게 가다듬고 돌아보는 삶이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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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은총의 일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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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편만으로도 완전히 마음을 빼앗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별 기대 없이 펼쳐 들었다가 전율! 홀딱 반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이라니! 읽는 내내 황홀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새겨두고 싶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내가 왜 그의 작품을 이제야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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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5-04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내용인지 저도 궁금해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잠자냥 2017-05-04 12:08   좋아요 0 | URL
네~ 기대에 부응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어루만지다 -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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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어루만지다’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책일까 궁금한 이들이 많을 듯하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라는 부제가 그 의미를 풀어준다. 고종석은 일찍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탐구해 온 이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40개의 순 우리말을 뽑아 ‘사랑’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탐구하고 있다.

표제어는 ‘입술, 미끈하다, 혀놀림, 발가락, 꽃값, 어둑새벽, 스스럼, 한숨, 간지럼, 그대, 어루만지다, 버금, 엿보다’ 등 단어 자체만으로도 ‘사랑’과 연관이 있을 듯한 것도 있고 ‘켤레, 거품, 바람벽, 서랍, 비탈, 모름지기’ 등 사랑과 이 단어가 과연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말도 있다. 

읽고 나면 새삼 우리말의 뛰어난 표현력과 저자의 담백하고도 깔끔한 글쓰기에 감탄하게 된다. 한국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전작인 <발자국>이나 <히스토리아>에서 보여준 저자의 박식함도 이 책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단어를 설명할 때 언어적 접근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이나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표제어 ‘바람벽’을 설명할 때 예로 든 로맹 가리의 단편 ‘바람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고종석이 적은 줄거리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어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 및 시도 빈번하게 나오는데 예전에 참 좋아했던 시를 잊고 지내다 이렇게 다시 읽어보니 그 느낌이 또 새롭다.

이 책을 통해 고종석의 ‘사랑관’이랄까 이런 걸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는데, 그는 속전속결의 사랑은 절대로 못할 그런 사람 같다. 수줍어하고 설레이고 혼자 좀 뜸도 들이고, 고민도 하고 상대방 때문에 가슴도 앓아보고 그러다 다가서서 서서히 스며드는 그런 사랑을 좀 더 ‘사랑의 본 모습’에 가깝다고 보는 듯하다.

표제어 ‘어둑새벽’을 설명할 때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아내가 있던 시절 다른 여인에게 빠져버렸던 사연하며 이런 걸 이렇게 다 털어놓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아내가 이 챕터를 읽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다 싶더라(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저자와 아내의 사이는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릴 때 문학작품을 읽다보면 뜻을 잘 모르겠는데 어쩐지 성적(性的)인 뉘앙스가 풍기는  단어가 종종 있었다. 그런 단어는 실제로 찾아보기도 했고 문맥상 그런 뜻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때 그랬던 야하고 은밀한 뜻의 단어를 내가 이제는 참 많이 아는구나 싶어져서 어른이 되긴 되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한 우리말을 사전 찾아가며 그 뜻을 헤아려 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한사코 주례 요청을 사양하던 저자가 어느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서 읊었다는 주례사는 퍽 인상적이다. 표제어 ‘버금’을 설명할 때 이 사연이 나온다. 그 인상적인 주례사는 다음과 같다.



늘 같은 편이 돼라. 세상 모든 사람이 네 배우자에게 등을 돌려도 너만은 배우자 편이 돼라. 자기보다 상대방을 더 위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자기 다음 자리에는 상대방을 두어라.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세상의 으뜸이 되는 것, 상대방에게 으뜸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버금으로 내려앉는 것. 2인 공동의 배타적 이기주의. 그게 내가 생각하는 연애고 사랑이다. (248쪽)



이 책은 결국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사랑’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훑어보고 있지만 아무리 그 단어가 아름답다 하더라도 ‘사랑’을 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잘못되어 있다면 사랑의 의미는 빛바래고 말 것이다. 고종석이 읊은 저 주례사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평생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의 뜻을 간직한 단어들이 풍기는 향기가 더욱 은은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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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5-04 10:56   좋아요 1 | URL
그의 정치적 스탠스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기에 최근 행보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요, 지금 검색해보니 동일인물 맞는 것 같습니다. 같은 녹색당원으로서 왠지 싫은 느낌;;;; 하하하하하하.....

cyrus 2017-05-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벽‘이라는 단어를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 졸업을 앞둔 너에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용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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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엉망진창인 행성에서 살아갈 이들에게 보니것이 말한다. 정의롭게 진실되게 가치있는 삶을 살라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그러면 삶은 저절로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가 된다고. 모든 이들이 이 지구를 졸업할 때까지 유효한 보니것의 조언. 단 그는 유머와 위트와 풍자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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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터리 세대 - 2030세대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타마라 드라우트 지음, 에밀리 문 옮김 / 오픈마인드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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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원제는 <Strapped: Why America's 20- and 30-Somethings Can't Get Ahead>로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빈털터리 세대란 미국의 20대와 30대이다. 이른바 X세대로 불리는 이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세대로, 1965년에서 1981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이 책이 쓰인 2005년을 기준으로 24세에서 34세에 이르는 이들이다. 미국의 일이라 우리와 얼마나 환경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X세대에 대한 구분부터 그들이 처한 현실이 지금 우리나라의 20~30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유럽의 ‘천유로세대’, 일본의 ‘비참세대’ 등등 전 세계의 2030 세대는 일찍이 유례없이 가혹하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살고 있다. 왜? 이 책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거에 비해 좋은 일자리는 많이 줄었고, 실질 임금은 오히려 감소했다. 집값이나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 그에 비해 임금 수준은 턱없이 낮다. 특히 비정규직 등 저임금 시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의 주범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것.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심화, 기술의 진보, 단기 이익 중심의 경영 방침을 내세워 고용 안정을 포기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추구’했으며 때문에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건물 관리부터 접수 업무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업무 대부분을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정부에서 공공연히 말하지만, 일자리가 늘어난 그 면모를 살펴보면 좋은 일자리가 아닌 저임금직만 늘었다. 그러니 모두가 공무원, 공무원으로 몰린다.


미국의 2030세대는 사회에 진출할 때부터 이미 수 만 달러의 빚을 안고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학교육비’ 때문이다. 높은 대학교육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대학생 때부터 학자금 대출 서비스를 받고, 사회에 나올 때부터 빚을 떠안고 출발을 한다. 게다가 그렇게 나와 봤자 학력인플레이션이 높아, 석사 이상의 경우에나 조금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또 빚을 지며 석사까지 마치고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나온 사회에서도 좋은 일자리는 그다지 없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으니 자동적으로 건강보험이나 퇴직연금 등을 기대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고용시장으로 편입된다. 게다가 집값은 또 오죽 비싼가? 괜찮은 일자리가 많은 대도시는 그만큼 살인적인 집값을 자랑하니 사회에 진출한 2030세대는 대학 학자금 대출 빚에 살인적인 집값에 월급을 받으면 바로 통장이 비어버리는 ‘빈털터리 세대’가 되어버린다.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여기에 결혼을 해서 애라도 낳으면 자녀교육비 때문에 빚잔치는 더더욱 커진다. 아이를 낳을 경우 파산의 위험은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러니 독립을 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부메랑키즈’ 현상과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계속해서 확산된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미 대학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육박, 대학생 때부터 학자금 대출로 빚쟁이가 되고, 그렇게 빚을 지며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도 학력인플레이션 때문에 일자리는 모자른다. 신경제의 영향으로 좋은 일자리보다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훨씬 많다. 집값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 포기는 물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든다. 모두가 공무원으로 몰린다. 얼마 전 공무원 시험에 줄곧 낙방한 뒤 끝내 자살한 어느 청년의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자신이 누릴 몫은 스스로 찾아라’고 말한다. 어떻게?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정치적인 ‘한 표’의 행사부터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들 X세대는 정치에 매우 무관심하다. 정치가 ‘나’와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국가 정책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들 부모세대 ‘베이비붐’ 세대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국의 X세대들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시절 성년기를 보냈고, 클린턴 시절에 고용시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젊은 세대들은 오늘날 집을 사고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을 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이 옳은가를 묻기보다는 자신의 자립능력에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한다’는데 이는 '레이건 효과'로 ‘레이건은 집권 기간 내내 정부는 골칫거리, 세금삭감과 자유시장이 성장의 엔진, 개인의 책임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이념을 젊은 세대의 의식에 주입했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책은 10년 전에 쓰였지만 그때의 한국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암울하다. 빚에 쪼들리고, 늘 텅텅 빈 월급봉투를 매만지면서 ‘나는 대체 왜 이럴까?’ ‘내가 왜 이렇게 못났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들. 2030 더 나아가 40대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능력위주의 무한 경쟁, 자율경쟁’ 이라는 슬로건이 정부의 사회적 책임은 뒤로 한 채 스스로 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 모든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의 '무모한 투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후보자의 정치공약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직감이나 부모의 신념 혹은 충동에 따라 표를 던지는 행위’ ‘성격이나 외모가 마음에 들어 표를 던지기도 하고, 선거 광고나 심야 토론회를 보고, 또는 부모님이나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선뜻 표를 내주는 행위’ 등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세대’에게 이로운 공약을 내 세우는 사람,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이를 선택하라’고 거듭 촉구한다.

우리나라 또한 부동산 가격폭등의 수혜자도 결국 기성세대이며(부자 부모를 못만난 대부분의 2030세대는 부동산은커녕 전월세 방 한 칸이라도 얻는 것에 허덕이지 않은가), 국민연금제도 또한 기성세대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좋은 일자리는 기성세대가 차지하고 있는 등 대부분의 국가 정책은 2030세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보다 앞선 세대를 위해 집행되고 있다. 왜?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무지가 악을 계속 부르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이 시점.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이를 선택하라’는 저자의 말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끝으로, 이 책에서 좀 생뚱맞았던 것은 마지막 8장이다. ‘한국 실정에 맞는 대안을 제시’한다며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을 덧붙였다(8장을 쓴 사람은 저자와 다른 사람으로, ‘500만원으로 45억 원을 만든 뒤, 다시 제로에서 25억 원을 만들어낸 분석투자의 귀재, 브라운스톤이라는 사람이다. 어떤 글을 써놨을지는 뻔하다). 진짜 왜 붙였나 싶다. ‘새로운 투자법을 배우고’ ‘개인경쟁력’을 키우라니. 이 책 저자가 이 사실을 알면 완전 100000% 분노했을 거 같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을 분은 8장은 꼭 제하고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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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후보들마다 장단점이 하나씩 있습니다. 단점, 즉 네거티브가 눈에 띄면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이를 선택하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찝찝한 말입니다. 장점만 보게 되면, 정말 심각한 단점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박사모가 그런 함정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잠자냥 2017-04-27 12: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럴 수도 있겠군요. ㅎㅎ 어쨌든 여기서(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란 젊은 세대를 뜻하는 말이니.... 그들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후보에게 한 표 행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