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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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파트너로 지낸 연인을 잃은 한 중년 남자의 하루, 그 단 하루를 따라가면서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고독과 상실, 남겨진 이의 쓸쓸함 등 삶의 온갖 단면을 그려냈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스스로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다던데, 나도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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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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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난 뒤 이 책을 다시,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운 좋게도 이 책이 나오고 얼마 뒤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 영화를 몇 회 상영해주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놓친 영화들 가운데 꼭 스크린으로 만나보고 싶은, 아니 그래야만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몇 년이고 기다린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영화는 스크린에서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 한들 어쩔 수 없다. 그게 그 영화와 나의 운명일 테니까.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 영화 좀 본다 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보고도 남았을 만한 고전 영화 중 하나.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이제까지 아끼고 아꼈다. 스크린에서 보게 될 날이 있을 거야! 그때까지 기다릴 거야! 하면서. 그리고 그 기다림은 마침내 찾아왔고,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원작 시나리오와 함께 영화가 동시에 2017년 여름에 내게 찾아왔다. 영화는 사실 8월 15일을 즈음해서 그럴 만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에 특별전을 상영했을 것이다. ‘히로시마’니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먼저 읽었다. 아주 오래 전 뒤라스의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 <연인>을 읽었을 때처럼 또 한 번 놀랐다. 뒤라스의 글쓰기 재능은 어디까지인가? 이 여자의 대범함, 이 여자의 솔직함, 이 여자의 상처를, 고통을, 그저 상처가 아닌 작품으로 승화하는 능력. 이 여자의 통찰력, 그리고 이 여자의 상상력. 여러 의미에서 놀랐다.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의 놀라움은 <연인>을 읽었을 때와는 또 조금 달랐다. 시나리오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히로시마, 전쟁, 원자폭탄 이야기를 이렇게도 전할 수 있구나. 아름다운데도 그 참혹함은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글로만 먼저 읽었을 때도 이 짧고 건조한 시나리오에서 통렬한 아픔을 느꼈다. <히로시마 내 사랑> 속의 ‘그녀’- 그녀의 이야기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충격으로 전율하고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그런 ‘그녀’가 이 세상에 어디 한두 명일까? 그러다가 ‘그녀’의 비밀, 베일이 완전히 벗겨지는 순간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건조한 문체와 뚝뚝 끊어지는 대화, 절대로 친절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 속에서도 읽는 이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히로시마의 그 유명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남자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그러자 그녀는 말한다. ‘난 전부 다 봤어요. 전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남자와 전부 다 봤다고 말하는 여자. 그런데 남자는 일본인이고 여자는 서양, 정확히는 프랑스 여인이다. 그녀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던 날, 히로시마는커녕, 일본에 있지 않았다. 남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본인임에도 그 또한 히로시마를 직접 겪지는 않았다. 그때 그는 다른 곳, 그러니까 ‘전쟁터’에 나가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수년이 흐른 뒤에 히로시마에서 이렇게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육체- 건조한 육체는 서로 뒤엉켜있다. 뒤라스의 시나리오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한창 사랑을 나누는 중이거나 죽음에 가까운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몸, 처음에는 재 가루, 이슬, 원자폭탄으로 인한 죽음의 너울로 뒤덮였다가 그 다음에는 정사 후 땀으로 뒤덮인 몸이 보인다.’  뒤라스의 말대로 ‘지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등등 최대한 거리가 먼 두 사람에게 히로시마는 에로티시즘, 사랑, 불행의 보편적인 소재들이 가차 없는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공통의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윽고 여자의 입에서 히로시마 말고도 또 다른 도시의 이름이 등장한다. ‘느베르’- 프랑스 루아르 강 근처의 한 작은 마을. 그녀는 그곳 출신이다. 히로시마와 느베르. 일본 남자와 프랑스 여자. 그 둘이 만났다. 그래서?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한참 세월이 흐른 히로시마. 그녀는 평화를 기리는 영화를 찍기 위해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다. 그녀는 왜, 히로시마에, 히로시마라 부르는 그 남자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모두 그녀가 온 곳 ‘느베르’와 관련이 있다. 느베르와 히로시마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녀에게서 ‘느베르’를 읽지 못한다면, 읽어내지 못한다면 히로시마도, 그녀도, 그리고 느베르도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녀는 ‘느베르’에서의 기억 때문에 자신이 히로시마를 보지 못했어도 전/부 다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그 남자를 히로시마라 부르며 짧은 순간이지만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뒤라스의 이 매혹적인 원작을 읽은 뒤 마침내 레네의 영화를 만났다. 뒤라스가 너무나 친절할 정도로 모든 장면과 인물 묘사까지 세세하게 그렸기에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텍스트를 스크린에 매우 충실하게, 그러나 그 나름의 또 다른 독창성을 담아내어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원자폭탄과 전쟁의 폐허, 인간의 광기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듯하고, 짧지만 강렬한 어느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하는 듯한, 이 강렬하고도 묘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이 빼어나게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그러나 또 다른 의미로는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히로시마 내 사랑>은 뒤라스의 시나리오도 레네의 영화도 무엇이 더 좋고 덜 좋고를 논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전쟁의 고통과 참혹함을 이야기한다고 상투적으로 말하지는 않겠다. 그토록 닳고 닳은 표현으로 이 작품을 말하기에는 뒤라스의 시나리오가, 그리고 레네의 영화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저 히로시마와 느베르, 그와 그녀, 또는 나와 당신의 일상이 전쟁으로 어떻게 일그러지고 또 그것이 제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이 지구의 수많은 그 또는 그녀들의 삶이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하나의 버섯구름이 어떻게 개개의 인간에서 비구름이 되어 내리는지 조용히 전해줄 뿐이라고. 느베르가 히로시마를 불렀듯이 느베르가 히로시마를 기억하여 고통스러워하듯이, 그러나 망각 속으로 히로시마가 서서히 사라지듯이 인간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담담히 전해줄 뿐이라고.




그녀는 '느베르' 그는 '히로시마'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장면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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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요코미쓰 리이치 단편집 [큰글씨책]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코미쓰 리이치 지음, 인현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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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한다는 신감각파 작가 요코미쓰 리이치. 몇 편만 읽어봐도 그 무렵 일본 소설과는 꽤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상의 <날개>는 요코미쓰 리이치의 <새>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읽다가 너무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왠지 씁쓸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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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매그레 반장 시리즈가 다시 나오는 것 같다. 매그레 시리즈가 기약없이 출판을 중단한 것은 19권까지 나오고 나서이다. 열린책들은 애초에 이 시리즈를 내놓을 당시 조르주 심농 버즈북까지 만들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면서 전 시리즈를 다 발간하겠다고 독자에게 약속했다. 그 버즈북에 따르면 '<조르주 심농: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를 통해 소개되어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은 이 시리즈는 첫 4권 출간을 시작으로 이후 매달 2권씩, 모두 75권에 달하는 대장정을 이어 갈 예정이다.' 라고 당당히 밝혔다.


이 시리즈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 대단한 계획을 정말 지지했다. 근데 어느날 문득, 출간을 중단해버렸다. 이땅의 열악한 출판 시장을 감안하면 출판 중단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중간에 조금은 무책임하게 멈춰버린 그 행태가 못마땅한 건 사실이었다.


그 뒤로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알라딘 중고 서점 장르 서적 코너에서나 뭐랄까 조금은 쓸쓸한 자태로 간간이 만나볼 수 있었다. 철지난,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늦여름의 바닷가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매그레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반장이 돌아왔다. 아주 옷을 싹 갈아입고서. 단행본으로 한 두 권 그냥 나오는 것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니다. 다시 돌아온 매그레 반장은 시리즈 20번과 21번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19권에서 멈춰버렸던 그 시리즈의 뒤를 엄연히 잇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리즈'에 방점을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표지가 싹 달라졌다. 판본은 어떤지 실물을 보지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판본은 달라지지 않았다. 19권까지의 시리즈나 새로 출간되는 책이나 모두 188*128mm (B6) 사이즈다.


그런데 가격은 올랐다.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거의 매 시리즈가 200페이지 안팎의 가벼운 분량이다. 그때보다 세월이 지났으니 물가도 올랐고 책값도 당연히 올라야 한다는 논리일까?? 글쎄.... 도서정가제 시행시 출판사들은 가격을 합리적으로 내리는 방안도 고려한다더니만, 그런 출판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큰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100쪽 남짓의 가벼운 책들도 죄다 양장본으로 만들어서 무조건 만 원 이상씩 받아먹는다.


게다가 열린책들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도 그렇고, 세계문학시리즈도 그렇고 툭하면 판본을 바꾸고 표지 갈이를 한다. 내 책꽂이에 꽂힌 열린책들의 책들은 유독 그 모양새가 뒤죽박죽이다. 그런 와중에 다시 돌아온 매그레 시리즈마저 표지가 예전 시리즈와 완전히 달라졌으니 반가운 마음보다 화딱지가 나는 마음이 크다. 시리즈로 책 사 모으는 충성스러운 독자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행태라고나 할까....


돌아온 반장님은 반가우나, 그 옷차림은 영 마뜩잖구나.....


반장님, 누가 옷을 그렇게 갈아입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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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8-2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 매그레 시리즈 19권까지는 벨기에 문화원인가 지원을 받아 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부분부터는 추정인데, 아마 그 뒤에 벨기에 문화원 지원이 끊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기존의 표지와는 다르게 그 리고 가격까지 조정을 해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봅니다.

잠자냥 2017-08-23 15:52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런 사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재는재로 2017-08-23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그레19권 메그레까지 다읽고나니 책이않팔려 후속편이안나온다는소식이 근데나왔는데 전권은만원이하 작은크기인데이책들은 가격이

잠자냥 2017-08-23 17: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히려 가격이 조금 올라서 나왔으니.... 뭔가 좀 모순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munsun09 2017-08-2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많이 설레네요.

잠자냥 2017-08-23 22:03   좋아요 1 | URL
ㅎㅎ 재미나게 읽으시길 바랄게요!

chacona 2017-08-31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출판인 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완전도서정가제를 위해 독자들을 설득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강맑실 회장의 사계절 출판사 1400여 종의 책 중에 도서 재정가 한 것은 단 6권, 모두 아동도서고
역시 출판인 협회 공동회장인 윤철호 회장의 사회평론사는 8백여 종 중 단 한 권도 없습니다.
그 중에 도서정가제 이전 할인을 예상하고 거품가격을 넣은 책들 즉 2014년 이전 책들도 적지 않을 텐데 말이죠.

도서정가제 이후 가장 열 받는것 중에 하나는
가격 이외에도
출판사에서 수지타산 핑계로 기존에 나왔던 시리즈 계획 엎어버리는 건데...
민음사의 문명 이야기, 펭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모두 몇 권 나오다 엎어졌죠.
책 산 사람들만 바보 된 꼴이랍니다.

그럼에도 도서정가제의 순기능 운운하는 사람들 보면 한숨부터 나오네요.

잠자냥 2017-08-31 09:28   좋아요 0 | URL
네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누굴 위한 도서정가제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소비자를 위한 정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부터만 해도 도서정가제 이후로 책 사기가 참 많이 부담스러워졌거든요.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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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는 참 이상한 공간이다.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의 공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선후배, 교수 학생이라는 서열 중심의 권력관계를 통해 대부분의 생활들이 통제된다. 후배는 선배에게 복종해야 하며, 학생은 교수에게 복종해야 하며.... 그러다보니 정작 선배나 교수에게 할말이 있어도 그냥 참아버리기 일쑤이며 혹시라도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왕따가 되고 만다.

이런 고질적인 서열문화의 병폐는 ‘학문’과 결탁하면 더 심각해진다. 절대로 후배는 선배의 학문적 업적을 비판해서도 안 되고, 제자는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비판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더 심각해진다. 석사 논문을 따기 위해서 일단 지도교수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그렇다. 그 지도교수가 지정해주는 몇 개의 주제들을 벗어나서도 안 되고, 논조부터 참고할 서적들까지 교수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형편에 청출어람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석사, 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이 대학에서 시간 강사 자리라도 찾을 심산이면 이런 눈치 보기는 더 심해 질 수밖에 없다. 학문의 고질적 병폐. 그중에서 가장 심한 장유유서와 인맥주의 문화로 인한 스승에 대한 제자의 비판 불가침-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우리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스승 비판 / 전공불가침의 법칙 / 논문 형식의 실험 / 이성의 세계에서 추방된 주제들 / 생존 인물에 대한 탐구 /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 / 김우창 혹은 학제성 / 참을 수 없는 생태의 비생태성 / 문화비평에 ‘문화’와 ‘비평’이 없다 /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 / 근대성 콤플렉스'의 주제들로 나눠져 비교적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다. 물론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물음에는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공불가침의 법칙은 예를 들면 이렇다. 국문학을 전공한자가 사회학적인 주제에 관해 신문이나 칼럼 기고를 했다 치자, 그것이 또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글이라면 보통 사회학 관련 분야의 학자들에게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또는 “국문학 전공자가!”라며 일축해버리는 경향을 말한다. 비단 같은 전공 내에서도 그렇다. 동양철학 전공자가 서양철학 전공자의 학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 혹은 그 반대 등등의 현상에 거의 모든 학계의 반응은 “전공자도 아니면서, 전문가도 아니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나불댄다”라는 식. 이런 현상으로 학문 간의 자유로운 경계 넘기를 통한 풍부한 질적 논의는 이루어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논문 형식도 그렇다. 석사 논문을 보자. 대부분 지도 교수들이 즐겨 쓰는 논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된말로 ‘내용이 부실하면 형식이라도 제대로 갖춰라, 그러면 통과된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에세이 수준의 논문 형식은 논문이 아니라며 신변잡기식 칼럼 란으로 실려 버리는 현상들. 형식주의와 체면중심 겉치레 중심의 문화가 '논문 형식' 지키기에서도 꾸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자간, 장평, 글자 포인트 하나하나까지 맞추느라 진땀 뺀 기억을 돌이켜 보면 나 또한 정말 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생존 인물에 대한 연구가 금기처럼 되어 있는 현실도 그렇다. 일찌감치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에서 인물 비평을 시작한 것에 대해 학계에서 인물 비판이라고 들고 일어선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한 인물의 학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인격적 비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 인물 건드리는 행위가 반역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과연 살아있는 학문적 업적이 나올 수 있을까?

문화비평에 관한 부분이나 대중적 글쓰기의 장에 와서는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문화’에 대한 말빨만을 세우는 논객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는데, 진정 ‘문화’에 대한 ‘비평’은 사라졌다. 보통 개성적인 혹은 특이한 말투나 문체들을 앞세워 영화나 대중 문화에 대한 '똥침 놓기' 정도의 수준으로 그치고 만다. 문화 비평이 진정한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행동이 따라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 ‘문화 비평’은 논객들의 말빨 세우기에 그치고 있다는 점.

과연, 단지 쉽게 쓰는 것만이 능사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결코 예전 같으면 건드리지 못했을 학문적 영역도 쉽게 대중에게 읽히고, 팔려나갈 책으로 둔갑해서 이런 책들이 서점가를 우후죽순으로 뒤덮고 있다. 하지만 쉽게 대중적인 글쓰기 = 학문의 얕은 탐구에 대한 면죄부처럼 남발되고 있는 경향에 대한 비꼼은 이런 종류의 책 양산에 한몫하고 있는 몇몇 학자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듯 하다.

금기를 깬 자 그 자신이 금기가 된다는 이 책의 구절처럼 스승비판 불가침의 금기를 깨려다 학계의 왕따가 되고만 이명원의 예를 보면, 한국 땅에서는 진짜 올곧게 학문*만*하기란 참 힘든가 싶기도 하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이 참에 싹 접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말 못하고 내용보다는 논문 형식에 절절 매면서 골머리 썩을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 또 강사자리 하나 남을까 하여 되지도 않는 인맥을 눈치 보며 만들 생각을 하면. 그저 이렇게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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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8-23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웠다는 넘들, 학계가 저런데 인터넷 블로그계, SNS계는 어떻겠나요? 허접한 비논리/무논리, 뜬구름 잡기식의 공허한 글에 대해 지적하고 열폭질에 대해 비판하면,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고 비아냥대기나 합니다. 그들의 반박이란 게 고작 내가 내 맘대로 쓰는데 뭔 오지랖질이냐, 걍 내비둬, 니나 잘햐, 이딴 식입니다. ㅎㅎㅎ 우리 한국 찌질이들은 다 똑같다고 봅니다. 아래나 위나 찌질이인 건 마찬가지란 것이죠.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72년쯤밖에 안 됐으니까 당연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를 과소평가하는 경우도 많지만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그 수준에서 놀아야죠 뭐~ ㅎ

갈 길이 멉니다. (← 이 문장은 댓글을 입력하려는 순간, 메이저 리그 야구 텍사스 레인저스 대 LA 에인절스 경기 중계 캐스터가 “갈 길이 멉니다” 하더라고요. 왠지 딱 맞아떨어지는 ‘멘트’인 것 같아서 적어넣었어요. ㅋ)

잠자냥 2017-08-23 13: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qualia 님 글을 RSS 리더기로 잘 구독하고 있는데,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암튼 qualia 님 서재에서 하시는 말씀 구구절절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댓글도 그렇고요. ㅎㅎ

2017-08-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