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반기하반기에 좋았던 책들을 이미 골랐으므로 이제 와서 2019년에 좋았던 책 리스트를 다시 뽑는 게 무의미한 것 같다. 얼마 전, K문고에서 ‘통곡의 리스트’라고 ‘인문MD가 반드시 팔아야 했지만 실패하고만, 못 판 게 천추의 한이 되어 매일 밤 꿈에 나타나는’ 책 리스트를 골라서 불씨 살리기에 힘쓴 것 같던데, 그래서 나도 나만의 ‘소설 통곡의 리스트’를 골라 보았다. 2018년~2019년 사이에 출간된, 좋은 작품임이 틀림없는데, 잠깐 반짝하거나, 그마저도 되지 않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까운 책이라고나 할까. 물론 내가 교보문고 ‘통곡의 리스트’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 책이 있었던 것만큼, 내 리스트를 보고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외르케니 이슈트반, <장미 박람회>
2019년에 내가 주목하게 된 출판사 중 한 곳이 ‘프시케의숲’이다. 이 출판사는 서보 머그더의 <도어>를 냈는데, 주로 이렇게 우리에게 덜 알려진 동유럽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장미 박람회>도 그중 하나. 재미도 있고, 나름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준다. 인간의 죽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면 어떨까? 이 작품은 지식인, 노동자, 예술가 세 사람의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찍어 방송하는 내용을 소재로 삶과 죽음, 예술의 문제를 질문한다. 중간중간 웃음 터지는 부분도 많은 블랙코미디. 죽음은 단 하나의 진실인데 그걸 담은 예술도 진실일까? <도어>와 <장미 박람회> 말고도 이 출판사의 모리츠 지그몬드, <내 이름은 미시>도 도서관에 신청해서 조금 읽다가(반납기간 다 되어서 일단 반납했는데, 다시 완독할 예정이다). ‘프시케의숲’의 동유럽 소설들, 문학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케이트 쇼팽,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20세기 페미니스트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케이트 쇼팽의 작품이 속속 다시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열린책들에서 <각성>도 나왔다. 이 책에는 웬만한 그이의 단편이 한 권에 실려 있다. 이 책 속 그녀들은 꿈꾸고 사랑하고 관습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관습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마는 일도 잦지만 그럼에도 여기 실린 작품들이 19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급진적이다. 비단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계층, 전쟁 문제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젤다-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과 산문>
이 책! 정말 이대로 이렇게 묻힐 책이 아니다. 그건 젤다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여러분들아, 이 책 읽고 젤다와 그녀의 남편 스콧 피츠제럴드를 다시 보는 계기를 마련하시라! 표지에서 ‘피츠제럴드‘ 이름을 지워버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젤다를 정신병으로 몰아갔을까? 피츠제럴드는 전혀,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젤다의 이 작품들, 그녀의 억눌린 삶 때문에 앞으로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예전처럼 온전히 즐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글렌웨이 웨스콧, <순례자 매-어느 사랑 이야기>
읽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읽고 나서 더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사랑과 부부 및 인간 관계에 대해 곱씹게 되면서 묘하게 여운이 남는다. 어느 부부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아름다운 매 한 마리. 이 기묘한 삼각관계를 통해 사랑의 한계와 비극성, 결혼 제도의 불합리함, 인간 관계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은유와 상징이 넘치는 문장들, 그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모두 독자의 몫. 장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질 것이다.

토베 얀손, <여름의 책>
이 책은 사실 나만의 ‘통곡의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는 아닌데(잘 팔리고 있는 듯), 2019년 하반기에 좋았던 책 리스트를 작성하고 난 뒤에 읽는 바람에, ‘하반기에 좋았던 리스트’에 끼지 못한 불행한 책이다. 충분히 그 리스트에 들어가고도 남을 책이다. ‘무민’의 동화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토베 얀손이 더 궁금해지는 책. 너무나도 맑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와 손녀 소피아가 툭툭 무심하게 나누는 대화들이 정말 압권이다. 큭큭 웃다가도 그 철학적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읽는 내내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지는데, 어느 순간 슬픔이 차오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할머니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니까.

진 리스, <어둠 속의 항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애나를 비롯해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려고 노력하거나 로리처럼 사실상 매춘을 하는 것, 또는 서른을 넘긴 애설이 그러하듯 손톱 손질을 내세운 간접적인 매춘 사업을 하는 것으로 삶을 연명한다. 가난한 하층 계급 여성에게 그 밖의 선택은 없다. 이 척박한 삶이라는 ‘어둠 속의 항해’에서 애나를 그 무엇보다 무섭게 만드는 것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자본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하층계급 여성으로서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애나는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 위로하고,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도 해보고 다짐도 해보지만 그녀가 어둠 속을 항해하는 일은 끝없이 암울해 보이기만 한다. 진 리스가 살았던 세상은 여자에게 곧 ‘어둠’이자 ‘한밤’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가진 것 없는 젊은 여성이 처절하게 버티고 견디는 가혹한 삶, 그 기록이 너무나도 절절하다.

베시 헤드, <권력의 문제>
읽기 수월하지는 않다. 그런데 읽고 나면 다 읽었다는 쾌감과 함께 아, 이래서 책을 읽지! 하는 기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 베시 헤드의 자전적 이야기. 그녀의 실제 삶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작품이 그저 소설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토록 절망적인 아프리카 땅에 산다면 그 누구라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선과 악,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권력들. 신은 과연 그곳에 존재하는가? 이토록 묵직한 질문을 아주 독특한 화법으로 질문한다.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이 책은 서재 이웃인 폴스타프 님이 극찬하기도 해서 몇몇 분이 읽어보려고 도전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지배자의 언어인 프랑스어와 모국어인 아랍어 두 경계에 놓인 ‘베르칸’- 프랑스여인 ‘마리즈’와 프랑스어를 말할 줄 아는 아랍여인 ‘나지아’ 두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언어와 여성의 문제, 알제리 근현대사를 조명한다.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던 우리로서는 이 작품에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듯. 이 책을 읽고 나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과연 진정한 소통, 사랑이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조지 기싱, <이브의 몸값>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리 새롭지 않다. 너무나도 익숙한 주제와 결말이다. 그럼에도 기싱의 산문이 아닌,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쁜 작품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힐리아드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브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상대를 나쁜 남자라고 또는 나쁜 여자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 모두 436파운드라는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인간의 자유를 살 수 있다’고, 아니 한때나마 그럴 수 있다고 믿은 가엾은 청춘들일 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궁핍한 생활로 늘 전전긍긍하며 고통받았던 조지 기싱, 그의 초상을 엿볼 수 있다. 인간에게 돈은 과연 무엇인가, 돈으로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후안 마요르가, <맨 끝줄 소년>
‘맨 끝줄’이란 ‘아무도 거기는 보지 못하는데, 거기서는 모두를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클라우디오와 헤르만은 둘 다 그 자리에서 앉아본 경험이 있고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작가가 되기를 꿈꿔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굉장히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담고 있다. 글쓰기와 실제 삶, 현실과 상상, 작가와 독자, 예술과 현실 등등 미로를 헤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동명의 연극이나 오종의 영화 <인 더 하우스>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


애니 프루, <시핑 뉴스>
예전에 한번 출간된 적이 있어서 이 책은 조용히 묻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예상 가능한 결말이라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애니 프루, 정말 글 잘 쓴다. 인생 실패자, ‘코일’. 그가 어쩌다 보니 척박한 자연환경이 전부인 ‘뉴펀들랜드’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이 남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읽다 보면 온갖 실패와 상처 속에서도 천천히 나아가, 마침내 자기만의 행복을 찾게 되는 이야기에 미소 짓게 된다. 서정적이면서도 우아한 문체가 아름답다. 특히 앞부분에서 코일을 묘사하는 문장은 압권.


E. L. 닥터로 <빌리 배스게이트>
이 책은 내가 여러 번 언급했다. 재미있고 잘 썼는데, 이상하게 주목 받지 못하는 저주받은 작품이다. E. L. 닥터로, 작가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무지하게 없는 것 같기도. 범죄와 부패를 먹고 성장하는 소년 빌리를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고발한다. “훨씬 더 큰 갱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빌리의 깨달음이 이 작품의 핵심이 아닐까. 그저 흥미진진한 느와르 소설로만 읽기에는 너무나도 고급진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부’ ‘아이리시맨’ 등 느와르 영화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도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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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0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리스트를. 케이트 쇼팽의 책은 안그래도 잠자냥 님 리뷰 읽고 진즉에 사두었지요. 아직 안읽었지만...
제가 천천히 여기 있는 책들 다 읽도록 할게요, 잠자냥 님. 이런 리스트, 특히나 잠자냥 님의 리스트라면 제가 믿고 따라갑니다.

징구가 그랬듯이요.....

잠자냥 2020-01-03 15:00   좋아요 0 | URL
징구도 사실 다락방 님이 붐을 안 일으키셨다면 아마 이 리스트에 올라갔을 거예요. 그러나! 다락방 님이 읽고 재밌다고 페이퍼 써 주시는 바람에 적어도 알라딘에서는 징구 붐이 잠시 일었던 것 같아, 다행히! 이 리스트에서는 빠졌습니다. ㅎㅎㅎㅎ

케이트 쇼팽도 곧 다락방 님 파워로 붐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자냥 2020-01-03 15:01   좋아요 0 | URL
근데 아마 락방 님은 <빌리 배스게이트>는 싫어하실 거예요. 읽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 전형적 알탕 느와르라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03 15: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잠자냥 님 이 리스트 읽으면서 제가 <빌리 배스게이트>는 읽기 싫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갱, 느와르... 다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1-03 15:06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빌리 배스게이트>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아우 이 책 다락방 님이 읽으면 구절구절 팩트폭격하면서 욕하겠는데? 이런 생각했더랍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03 15:18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그 책은 확실히 패쓰하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1-03 15:23   좋아요 0 | URL
넵 <빌리>는 다락방님께는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욧!

페넬로페 2020-01-0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곡의 리스트‘
도전해보고 싶어요^^
한 권이라도요~~

잠자냥 2020-01-03 15:24   좋아요 1 | URL
네! 한 권이라도 읽고 좋은 책 발견했다고 생각하게 되신다면 무척 기쁘겠습니당! ㅎㅎ

유부만두 2020-01-0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핑뉴스 정말 재밌죠~~~~??!!!!!!

잠자냥 2020-01-03 15:51   좋아요 1 | URL
네,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그런 결말을 참 흥미진진하게 잘도 이끌어가더라고요. 애니 프루, 정말 글 잘 씁니다. 코일에 대한 묘사도 어찌나 잘 썼는지 아직도 그 사람이 제 코앞에 앉아 있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0-01-03 15:55   좋아요 0 | URL
전 영화까지 찾아봤는데 ... 아유, 영환 영 아니었어요. 케이트 블란쳇이 코일의 전부인이라 흥미로웠을뿐. ^^;;;;

잠자냥 2020-01-03 15:56   좋아요 0 | URL
와우 영화도 있었군요! 게다가 전부인 역할에 케이트 블란쳇이라니! 흥미롭습니다! ㅋㅋㅋㅋ 왠지 어울려요. 그러나 영화는 유부만두 님 조언에 따라 걍 패스하기로 ㅋㅋㅋㅋㅋ

slobe00 2020-01-0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기싱 책 한 권 읽었네요^^;
시핑뉴스는 이전에 사 두었으니 그것부터 읽고 이 멋진 리스트 찬찬히 따라가 봐야겠어요~~~

잠자냥 2020-01-03 16:47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셨군요! ㅎㅎ 천천히 읽으며 좋은 책 발견하시길 바랄게요!

coolcat329 2020-01-0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스트도 참 재미있네요😄 잘 봤습니다

잠자냥 2020-01-03 20:44   좋아요 0 | URL
ㅎㅎ 폴스타프 님 포스팅 보고 <프랑스어의 실종> 읽기로 하셨지요? 재미나게 읽으세요~

Falstaff 2020-01-03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쇼팽이 좋습니까? 지금 막하 고민중이었습니다만.. 저도 <프랑스어의 실종>은 잠자냥님 같은 분의 선독에 이은 훌륭한 백자평이 없었으면 과연 읽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잠자냥 2020-01-03 20:43   좋아요 1 | URL
케이트 쇼팽은 최근 열린책들에서 <각성>도 나왔어요. 단편이 좀 그러하시면 <각성>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각성>은 아직 사놓고 아직 읽기 전이에요. <프랑스어의 실종>은 진짜 여러 의미로 읽기 좋은, 읽을수록 의미가 풍부해지는 책 같습니다.

Falstaff 2020-01-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권력의 문제>가 리스트에 올라 참 기분이 좋습니다. ^^

잠자냥 2020-01-03 20:44   좋아요 1 | URL
네! 이 작품은 참 읽기 어려운 책이기는한데, 그래도 좀 많은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ㅎㅎ

얄라알라 2020-01-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곡의 리스트 쓰신 MD분 블로그까지 들어가서 한참을 놀았는데 재밌더라고요.
소설 통곡의 리스트 중 단 한권도 읽은 책이 없으니, 저는 편식이 심해도 중병수준인가봐요......

잠자냥 2020-01-03 21:5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워낙 책 편식이 심해서 거의 소설만 파는데요, 뭐 ㅎㅎ

얄라알라 2020-01-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베 얀손 책은 그림책으로만 봤었는데, 새롭네요.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0-01-03 21:56   좋아요 0 | URL
네, 단순히 동화 작가로만 알기에는 그이의 진면목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ㅎㅎ

단발머리 2020-01-0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멋진 페이퍼라니요!!
모두 다 ‘읽고 싶어요’에 넣어놓고 차근히 읽어보려고 해요.
믿고 보는 잠자냥님 리스트!
감사해요!!!!!

잠자냥 2020-01-04 10:27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님도 이 목록 안에서 취향에 맞는, 좋은 책 많이 발견하게 되길 바랄게요~!!
 
폭탄파티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상영 옮김 / 문지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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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책을 연상케하는 표지에도 그레이엄 그린 이름만 믿고 구매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조잡한 번역 문장이 작품의 가치를 완전히 떨어뜨린다. 책 정보를 보니 초판 발행 1980년, 중판 발행 2019년이다. 교정교열도 안 보고 다시 찍기만 했는가? 읽는 내내 분개. 그레이엄 그린 때문에 별셋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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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1-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파티

잠자냥 2020-01-0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에 ‘돈기호테’라고 표기된 거 봤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거늘.

Falstaff 2020-01-03 12: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직 문지사가 있네요. 80년대 초반에 문학과 지성사 문 닫았을 때 그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만든 줄판사인줄 알고 (창작과비평사가 창비로 변한 거 처럼) 열심히 사서 읽었던 기억이.... ㅋㅋㅋㅋ

잠자냥 2020-01-03 14:34   좋아요 0 | URL
아 진짜요? 그런 전설이 ㅋㅋㅋㅋㅋㅋ 걍 그때 찍은 책 괜히 한 번 내봤나봐요. ㅋㅋㅋㅋㅋㅋ -_-

coolcat329 2020-01-0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표지부터가 놀랍습니다. 정말 최근에 나온 책인지 찾아봤습니다.

잠자냥 2020-01-03 20:45   좋아요 0 | URL
최근에 나왔더라고요.... ㅜㅜ 근데 옛날책 걍 찍어낸 거 같아요 ㅜㅡㅠ
 
여름의 책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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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맑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와 손녀 소피아가 툭툭 무심하게 나누는 대화들이 정말 압권이다. 큭큭 웃다가도 그 철학적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읽는 내내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지는데, 어느 순간 슬픔이 차오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할머니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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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9-12-30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아름다워요. 마치 저녁 들녁에서 노을의 색체에 동화되는 느낌.

잠자냥 2019-12-30 09:41   좋아요 0 | URL
네, 동의합니다.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책이에요.
 
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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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를 본 지 몇 달 뒤에 읽어 보는 시나리오. 영화와 다른 부분들이 종종 보여 흥미롭다. 그러나 그 부분들이 삭제되었기에 영화가 더 빛난 것 같다.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 동기인, 정희진의 글은 역시나 강렬하게 머리와 가슴을 울린다. ‘사랑은 윤리적인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행위’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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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상반기에 좋았던 책에 이어 7월 이후 현재까지 읽은 책 중 특별히 좋았던 책을 ‘신간’ 위주로 골라본다.

소설


1. 밀크맨
상반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이었다면, 올 하반기에는 단연코 <밀크맨>이다. 몇 년 만에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작품. 500쪽 남짓한 분량에 이 세계의 거의 모든 문제를 담고 있다. 주인공이 사는 이런 세상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내가 사는 세계도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독창성과 보편성을 두루 갖춘 수작. 중간 중간 터지는 블랙유머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2. 천사는 침묵했다
아주 오래 전 작품이지만 올해 번역되어 나온 이 책. 하인리히 뵐을 모르는 이들이 처음 만나기에 좋은 작품은 아닐까. 이 작품은 전후 독일의 무너질 대로 무너진 사회상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이어진다. 두 남녀가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는 작은 공간, 폐허와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음을 아주 조금 확인하고 체온과 입김을 나눠가지면서 잠드는 장면은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이 빚어내는 힘없는 이들을 향한 연민 어린 시선. 뵐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3. 숨겨진 삶
문장을 꼭꼭 씹으면서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책이 있다. 실비 제르맹의 <숨겨진 삶>이 그렇다. 저마다 숨겨진 비밀을 안고 상처도 껴안은 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인간의 삶에 먹먹해진다. 그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겠지. 이 모든 얽히고설킨 사연을 알게 된 뒤 다시 훑어보는 이 작품은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들, 아무것도 아닌 듯이 흩어져 존재했던 조각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들을 숨기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 구조에 감탄하게 된다.

4. 카시지
한 소녀가 사라진다. 스스로 사라졌을까, 살해당했을까? 소녀의 실종을 둘러싸고 전쟁으로 망가진 영혼, 이 세계의 일상적인 폭력과 악의 형태가 날줄과 씨줄 엮듯이 펼쳐진다. 비뚤어진 인간의 어리석음과 결핍, 욕망, 그로 인한 파국 등등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은 빼어난 수작.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도 자기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 가련한 인간. 그의 비밀 앞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츠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이 책을 덮고도 한동안 이 복잡한 기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5. 포도주병 공장 야유회
이 작품은 중반까지는 포도주병 공장에서 일하는 두 여성의 애증 섞인 관계를 묘사하며, 주변 인물을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온갖 인물들이 벌이는 소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독자를 낄낄 웃게 만든다. 그러나 중반 이후로 완전히 그 방향을 달리한다. 섬뜩할 정도이다. 그레이엄 그린이 이 작품을 일컬어 “충격적일만큼 우스우면서 공포스러운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그렇다. 다 읽고 나면 맨 앞으로 돌아가서 두 여성이 아무렇지 않게 나눈 대화가 얼마나 의미심장했는지 깨닫고는 작가의 절묘한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6. 방랑자들
인간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흔히 ‘머무르는 상태’를 뜻하는 ‘안주한다’라는 말을 좋은 의미로는 쓰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재에 안주하는 삶은 정체되었고, 더는 발전하거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상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움직여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나고, 받아들여서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방랑자들>에는 그런 수많은 이들의 삶이 그려진다. 떠나고 돌아오고 여행지에서 길을 잃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 <방랑자>들은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 변화를 꿈꾸는 인간의 삶을 예찬한다. 여행 떠날 때 가방에 넣고 어느 페이지든 펼쳐 읽기 좋은 책.

7. 눈먼 암살자
이 작품은 처음엔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꼬장꼬장하고 어딘가 뒤틀린 듯한 노파 아이리스의 회상으로만 이어진다면 막힘없이 읽어나갈 텐데, 문제는 중간 중간 삽입된 로라의 ‘눈먼 암살자’와 그 안에서도 그가 들려주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때문이다. 게다가 틈틈이 기사 형식으로 그 무렵의 중요한 사건들이 나열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이 이야기들이 과연 어떤 관련이 있을지 유추하느라 머리를 바삐 굴려야 한다. 그런데, 작품을 술술 읽어나가는 데 큰 장애가 되는 이 복잡한 구조는 사실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를 진심으로 찬탄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1권 중반을 넘어가면서 대부분의 독자는 진심으로 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작가의 천재적인 솜씨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8. 도어
마을 사람들의 집안일을 도와주며 혼자 고독한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여인, ‘에메렌츠’- 그녀는 하반기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로 꼽을 수 있다. <도어>의 화자이자 작가의 분신 또는 서보 머그더 그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 ‘나’는 ‘에메렌츠’와의 20여 년 동안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고, 그 기억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써나간다. 독자는 에메렌츠의 수수께끼 같은 과거를 좇는 일과 두 여성의 관계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기꺼이 즐겁고 행복한, 기적 같은 일이 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늘 여러 의미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임을 이 작품은 여실히 보여준다.

9. 미지의 걸작
짧은 작품이지만 발자크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이야기, ‘영생의 묘약’과 ‘미지의 걸작’에서는 평생 손에 잡히지 않는 성공, 상류층이라는 신분 등 자신이 애초에 지니지 못했던, 그래서 결핍을 느꼈던, 때문에 더 간절히 바라고 욕망하게 되는, 그러나 끝끝내 가질 수 없었던 그 신기루와도 같은 것을 추구했던 발자크의 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어떤 문장은 마치 시(詩)처럼 읽히기도 한다. 특히 ‘미지의 걸작’은 회화와 화가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진정한 걸작’을 쓰고자 평생을 바친 발자크 그 자신의 이야기, 즉 소설가와 문학의 이야기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10. 결혼, 죽음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단편 버전이라고나 할까. 계층별 결혼과 죽음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다. 이 짧은 단편들에서도 인간의 위선과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결혼’은 이른바 ‘적령기’가 있어서 대부분 주인공들이 젊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에 비해 ‘죽음’에서는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나이가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에서는 한껏 냉소적이던 졸라가 ‘죽음’에서는 좀 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여준다. 삶 자체가 버텨나가기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다. 거장의 날카롭고도 통찰력 깊은 시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



비소설

1. 나보코프 문학 강의
나포코프를 문학 과외 선생님으로 초대한 느낌이랄까. 여기 실린 7개 작품을 다 읽었다면 강의가 더 재미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롭다. 나보코프가 출제한 <보바리 부인> 관련 시험 문제를 풀다 보면 아니, 내가 대체 이 작품을 읽었단 말인가!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심지어 당신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의 방, 아니 그 가족의 집 구조를 세밀하게 그릴 수 있는가? 주인공이 변신한 ‘벌레’는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을까? 이 책은 이렇게 ‘문학 작품 제대로 읽기’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지적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장담한다. 이 책을 읽으면 문학 보는 눈이 완전히 새로워질 것이라고.


2. 사건
자발적 임신 중단이 불법이던 시절에 목숨을 걸고 임신 중단을 선택해야만 했던 아니 에르노. 읽는 내내 그녀의 절망과 고통이 생생히 전해온다. 흔히 태아의 생명과 살 권리를 말하며 낙태를 반대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미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위해 산 사람의 삶과 목숨을 송두리째 걸어야만 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까? 게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온갖 낙인은 누가 찍는가? 임신이 여성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 왜 임신의 책임은 여성에게만 짐 지우는가? 아니 에르노의 이 고통스러운, 그러나 진실 가득한 문장은 낙태에 관한 그 어떤 책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3.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손택 일기의 첫 권에 해당했던 <다시 태어나다>가 빌둥스로만(Bildungsroman), 즉 일종의 성장 소설에 해당한다면 두 번째 일기인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는 손택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성년기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작가로서의 위대한 성공 과정을 그리면서 그 무렵 손택이 어울렸던 각계각층의 작가, 예술가, 지식인과의 만남을 담고 있다. 또한 어린 시절 꿈꾼 그대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는 여력, 이 모든 걸 얻었음에도 ‘여전히 열렬히 배우는 학도’로서의 모습을 담담하지만 열정적으로 보여준다. 손택의 글과 날카로운 지성,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에는 아낌없이 몸을 던져 행동하며 살고자 노력했던 모습을 사랑한 이들에게 이 일기는 여전히 축복으로 다가온다.

4. 공간의 종류들
쓸쓸하고 애잔한 페렉 특유의 빛나는 글.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를 채워가면서 공간을 채우고 있었을 어린 페렉,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보며 공상을 즐겼을 어린 페렉, 온전한 추억들로 가득한 다락방 속의 어린 페렉..... ‘안정되고, 고정되고 범할 수 없고, 손대지 않았고, 변함없고, 뿌리 깊은 장소’들이 존재하기를 바랐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유년을 살았던 페렉. 그런 한 인간의 글쓰기를 통한 영원한 기억과 복원- 그것이 바로 <공간의 종류들>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공간’을 집요하게 기록한 에세이로만 읽히지 않는다. 잃어버린 유년 또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그 불안정한 삶의 형태를 기록해두고자 하는 인간의 절박한 몸짓으로 읽혀 가슴 깊이 남는다.

5. 나, 시몬 베유
자발적 임신중단법을 합법으로 이끌어낸 시몬 베유의 자서전. 이 책은 그녀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시작해서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겪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대학에 진학하고, 교정행정국 판사가 되고, 프랑스 보건부 장관에 올라 임신중단 법안을 통과시키고, 유럽의회 최초 선출직 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숨 가쁜 삶이 펼쳐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늘의 그이가 있기까지 ‘공부하고 일해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라’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강제수용소에서의 참혹한 기억이 ‘타인의 존재를 모욕하는 것’에 민감한 투사를 만들어 냈음을 알게 된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일어나 자기만의 성공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온다.

6.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알고리즘은 공정하고 객관적일 것 같다. 그러나 구글 같은 검색사이트들은 ‘공공’ 검색엔진이 아닌, 기업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 때문에 자연스레 헤게모니 집단을 위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여기서 성차별 인종차별이 교묘히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맥락과 정보가 형성되는 과정에 개입된 판단과 결과들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는 맥락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 “정보는 동기와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나 사건 또는 당면한 문제 등이 얽힌 사회적인 배경과 연관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터넷에서 ‘고급 정보’를 취득하는 능력이며, 동시에 광고를 구별하고 상업적 이익을 위해 유포되는 정보를 알아내는 능력임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7. 레이먼드 카버
이 책의 지은이는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의 역자이기도 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를 우리말로 옮긴이가 이번에는 저자가 되어 카버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아마도 그는 카버의 작품을 좋아하고, 또 그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으리라. 실제로 이 책은 카버와 그의 작품을 아끼는 독자의 진지하고도 정성어린 헌사로 읽힌다. 지은이는 카버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문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곳곳을 돌아보면서 그의 좌절과 고통, 사랑과 이별, 성공과 실패, 삶과 문학을 더듬어 간다. 평생을 고단하게 살고 그러는 가운데 쓰고, 무너지고, 그러다 다시 일어서서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안락함과 명성을 얻고 누릴 즈음 세상을 떠난 카버. 그의 삶을 쫓는 이 애정 어린 글들을 읽노라면 카버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어지고 카버가 살았던 그 공간까지 찾아가 거닐고 싶어진다. 

8.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
처음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때문에 눈이 간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내용도 매우 알차다. 책에 대한 애정 가득한 예쁜 그림과 글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중간 중간에 있는 책 관련 퀴즈를 푸는 재미도 쏠쏠하고. 아무튼 아직도 이렇게나 읽지 않은,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니 좌절하게 되고, 저자가 소개한 세계 곳곳 서점과 도서관에 빠짐없이 가보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 책의 목표는 당신의 책더미를 세 배로 늘리는 것이다.’인데, 아마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책더미는 3배로 늘고도 남을 것 같다.

9. 참 괜찮은 눈이 온다
개천, 서울 변두리, 단칸방, 철거촌 등 한지혜 그녀가 살아온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이 가르쳐준 세상을 보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이 몸소 살고, 겪고, 버티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었던 삶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라 진실이 문장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철거 현장. 부서진 담장 사이에서 꽃무더기를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벽들을 바라보며 벽속에 꽃을 가두고 있는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상징일지, 아니면 모든 벽도 저마다 꽃을 품고 있다는 낭만적인 상징일지 그 둘 모두를 헤아릴 줄 아는 시선을 키워 온 사람. 그런 그가 작가로서 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빛과 어둠’이 모두 담긴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10.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저자 매슈 대니얼스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실려 있다. 아프리카에 100여개가 넘는 우물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꼬마, 모기장을 만들어 세네갈 가구의 80퍼센트를 살린 엄마와 딸, 히잡을 벗고 춤추는 동영상을 매주 올리는 여성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운전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여성 등등. ‘나’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많은 이들이 평등하게, 자유로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이들이 일으킨 큰 변화를 지켜보노라면 그들의 용기와 행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되면서 나 또한 그런 세상의 변화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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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2019-1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책들 많이 알아가요!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특히 좋네요. 꼭 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19-12-24 17:48   좋아요 0 | URL
네~ 연말연시에 좋은 책 많이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120퍼센트 2019-12-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마음속에 담아갑니다~소개해주신 책들 다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19-12-25 00:40   좋아요 0 | URL
넵! 즐거운 독서 되시길!

ider427 2019-12-2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소설도 사랑해주세요

잠자냥 2019-12-25 00:40   좋아요 0 | URL
세계에 읽을 책이 더 많아서요.

블랙겟타 2020-01-0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잠자냥님 여기에 소개해주신 책들, 차차 읽어봐야겠어요.
올해는 글로도, 댓글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잠자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잠자냥 2020-01-01 13:41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블랙겟타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akdbdn 2020-02-07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 책들 소개감사합니다😊 혹시 인스타나 블로그하시나요~? 하시면 팔로해서 꾸준히 추천해주신 책들 알림받고싶어요!!👍🏻👍🏻

잠자냥 2020-02-07 10: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블로그나 인스타는 모두 하기는 하는데, 둘 다 책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요. ^^;; 책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이 서재를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_^ (알라딘 북플 친구 추가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

Kakdbdn 2020-02-07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