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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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해야만 하는 로자. 실제 실화에 더 가깝게 썼다면 어땠을까. 읽는 내내 기분이 개운치 않다. 로자 그녀 또한 나치의 희생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대인에 비하면 편하게 살지 않았나? 심지어 그와중에 사랑까지 하고. 살아남은 자의 변명, 또 다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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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강승현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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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은 남편을 설득해 던컨 왕을 살해하도록 종용하고, 남편이 왕위에 오르자 자신은 왕비가 된다. 그 후로 ‘레이디 맥베스’는 흔히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권력욕 넘치는 여성을 일컫게 되었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레이디 맥베스>에는 바로 그런 여성이 등장한다. ‘카테리나 리보브나 이즈마일로프’가 바로 그녀이다. 그러나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부인’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하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를 뒤에서 은밀히 조종하거나 살인을 종용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직접 나선다. 그것도 여러 차례.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이 강렬한 여인의 일생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폭풍처럼 몰아 써내려 간다.

작품은 ‘우리 지방에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떠올릴 때마다 영혼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인물들이 간혹 나온다. 상인의 부인이었던 카테리나 리보브나 이즈마일로프도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하는데, 언젠가 그녀가 일으켰던 끔찍한 사건 이후 우리 귀족들 사이에서 그녀는 간단히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라고 시작함으로써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그리고 그가 일으킨 일이 ‘끔찍한 사건’임을 예상하게 하고, 이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레스코프가 형사재판소의 말단 기록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경험한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서 소재를 따왔다고 한다. 물론 거기에 레스코프의 상상력이 더해졌으리라.

타고난 미녀는 아니지만 매우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카테리나 리보브나’ 그녀의 나이는 이제 스물넷. 그런데 매력적인 외모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그녀의 인생은 권태로 가득하다. 부유한 상인이지만 쉰 살이 넘은 남편 ‘지노비 보리스이치’와 오래전에 홀아비가 된 아흔 살에 가까운 시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카테리나 부부에게는 아이도 없다. 지노비 보리스이치는 카테리나와 결혼하기 전 20년을 함께 살았던 전 부인에게서도 아이를 얻지 못했다. 아이도 없이, 늙은 두 남자와 사는 권태에 사로잡힌 젊은 아내. 게다가 그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난에도 질린 상태이다. 아이를 낳지도 못하는 주제에 대체 뭐 하러 결혼을 했느냐는 비난. 사실,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얻지 못했다면 문제는 남편에게 있을 가능성이 큰 데도  마치 그녀가 기품이 넘치는 그들 집안에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듯하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침묵과 권태 속에 나날을 보낸다.

큰 변화 없이 소소하게 흘러가는 조용한 삶이 꼭 권태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삶이 알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카테리나에게는 그렇지 못했으니, 그녀의 성격이 원래부터 불같았기 때문이다. 부잣집 남자와 결혼해 조신하게 살아가기 이전, 가난한 처녀 시절 그녀는 꾸밈없이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 일례로 ‘양동이를 들고 강에 나가 나룻가에서 셔츠만 입고 목욕하는 것’을 좋아했고, ‘쪽문 밖으로 지나가는 청년에게 해바라기씨 껍질을 뿌리며 농을’ 걸기를 즐겼다. 그런데 이곳에선 모든 것이 달랐다. 강가에서 셔츠만 입고 목욕은커녕 해바라기씨 껍질을 뿌릴만한 청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카테리나의 권태를 감지한 집안의 하인 세르게이는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젊음과 빛나는 외모를 무기삼아 주인마님인 카테리나에게 폭풍처럼 밀어붙이고 카테리나는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에 불을 붙인 자를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다.

부유하지만 나이 많은 남편과 사랑이나 애정 없이 사는 지루한 삶, 거기에 나타난 젊고 잘생긴 남자. 그와의 애정행각…….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여럿 있다.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레이디 채털리 등등. 그러나 이들과 카테리나는 완전히 다르다. 욕망에 눈뜨고 남편이 아닌 남자와 벌이는 애정행각에 죄의식을 느끼기보다는 그것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라면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린다. 아니, 욕망에 눈뜬다는 표현조차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권태에 짓눌려있던 욕망이 폭발한 것이다. 그 욕망은 고삐가 풀린 채 질주한다. 시아버지를 비롯해 남편이 알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부인의 외도를 알게 되고 “당신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밝혀낼 거야.” 말하는 남편에게 카테리나는 그를 비웃으며 오히려 조롱한다. “당신의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겁쟁이가 아니랍니다. 나는 그런 거 두려워하지 않아요.”(56쪽). 이렇게 거침없는 여성이 있었던가? 한편으로는 통쾌한 생각에 왠지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카테리나는 한술 더 뜬다. 외도 현장을 덮친 남편 앞에 “여기 그 사람이 있다”며 연인을 당당히 소개하는 게 아닌가. 세르게이의 팔을 잡고 남편 앞에 선 카테리나는 말한다. “어디 나하고 이 사람을 심문해 보시죠. 어쩌면 당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것도 모자라 남편이 도망가지 못하게 재빨리 방문을 잠근 뒤 주머니에 열쇠를 집어넣고는 앞섶을 풀어헤친 채 세르게이와 함께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계속 도발한다. “왜? 마음에 안 드시나? 한번 보라니까. 내 사랑하는 양반아, 얼마나 좋은지!” 그러고는 마침내 남편 앞에서 세르게이에게 정열적으로 키스한다. 이 광경을 낱낱이 지켜볼 수밖에 없던 카테리나의 남편은 격노한 끝에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고야 마는데, 그마저도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카테리나는 자신의 권태로웠던 지난날의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남편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잘 들어 세료자! 다른 여자들이 어땠는지 나는 알 바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단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물론 내가 너를 원하기도 했지만, 네가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고, 또 네 술수 때문이란 사실은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세료자 네가 나를 배신하거나, 내 대신 다른 여자를 택한다면, 나는, 결코 살아서는 너와 헤어지지 않을 거야.” (41쪽)


카테리나의 이 극악무도한 잔인함에는 세르게이조차 몸서리친다. 카테리나는 자신의 욕망에 걸림돌이 된다면 연인인 세르게이에게도 불행이 닥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카테리나가 내뱉은 위와 같은 말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외도 상대에게 사랑만을 갈구하면서 끌려 다니던 가련한 비운의 여주인공들과 사뭇 다르다. 당당히 ‘내가 너를 원했다’고 말할 줄 아는 한편으로는 ‘너는 나를 유혹했고, 네 술수’라고 명확히 언급한다. 술수임을 알아도 나는 그 욕망에, 젊고 잘생긴 남자를 끌어안는 것을 ‘내가’ 선택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배신한다면 결코 살아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이라니. 참으로 대단한 여자 아닌가.

그러나 이처럼 거칠 것 없이 잔인하고 당당한, 그 여자도 결국 한계를 보이고 만다. 아무리 욕망을 채우고자 몸을 던진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이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 만 것이다. 그의 ‘술수’인지 알았어도 이제 세르게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의 지은이가 레스코프, 그러니까 ‘남자’임을 상기해야만 했다. 단순히 욕망을 채우는 상대였더라면, 아니 그러다 보니 사랑하게 되었더라도, 그놈의 배신을 알았더라면 웬만한 여자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이를 갈면서 돌아섰을 것이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세르게이에게 돌렸을 것이다. 레스코프가 여성 작가였다면 그렇게 썼을 텐데, 남성이라 그런지 복수의 칼을 세르게이에게 돌리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무시무시하게 강렬한 캐릭터를 일구어놓고도 막판에 조금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그런 느낌은 이 책에 함께 실린 또 다른 작품 <쌈닭>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들었다. 레이디 맥베스 ‘카테리나’ 못지않게 당당하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강렬한 캐릭터 ‘돔나 플라토노브나’- 그런 인상 깊은 인물을 창조하고도 그런 허무한 결말을 짓다니, 오호 레스코프여 오호 통재라.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레스코프가 빚어낸 이 두 여성은 너무도 강렬해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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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ue76 2020-04-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여주의 대사가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오는군요. 강렬합니다!

잠자냥 2020-04-07 20:40   좋아요 0 | URL
저것보다 더 시원한 대사들이 많습니다~ 한 번 꼭 읽어보세요. ㅎㅎ

유부만두 2020-04-0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만 봤는데요, 일꾼 세르게이가 영 매력적이지 않아서 (더럽고 냄새나겠다는 생각만....) 여주인공이 훨씬 더 우위에 선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영화에선 일련의 사건들이 별 특별하지 않게 반복, 처리 되어서 지루했어요.

잠자냥 2020-04-08 12: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더럽고 냄새날 거 같은 느낌 알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사실 책에서도 그래요. 그깟 세르게이 따위... 에휴.
 
검은색 - 무색의 섬광들 민음사 철학 에세이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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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검은색부터 시작해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검은색’에 관한 이토록 깊고 너른 사유라니 그저 놀랍다. 알랭 바디우를 잘 몰라도 누구나 친숙하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에세이. 짧지만 깊고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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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강승현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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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에도 거칠 것이 없는 카테리나.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강렬한 캐릭터라니. 그럼에도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사뭇 아쉽구나. 그놈을 끌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아무튼 읽으면 읽을수록 반하게 되는 레스코프. 레스코프 선집 어디서든 다 번역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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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4-0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개봉했을 때 읽어봤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결말이 더 좋더라구요 책 결말은 잠자냥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잠자냥 2020-04-04 22:50   좋아요 1 | URL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저도 꼭 한 번 봐야겠어요. ㅎㅎ

camiue76 2020-04-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잠자냥님은 레스코프까지 섭렵하셨군요. 대단하세요. ^^ 저는 영화를 먼저 접했는데(우울하고 독특했어요)
이 리뷰 읽고 책도 읽어보는 것으로.

잠자냥 2020-04-06 11:22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가 왜 레스코프를 많이 읽지 않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던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ㅎㅎ 영화와 결말이 다르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영화도 보기로 했습니다. ^^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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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도 디카페인 커피가 나오길 바랐는데, 드디어! 카페인 없이 얼마나 맛과 풍미까지 살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일반 커피 마시는 것과 큰 차이를 모를 정도. 디카페인 맞아? 의심이 들 만큼 맛도 풍미도 살아있다. 고소하고 묵직한 맛. 앞으로 계속 구매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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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4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4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4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