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나는 매달 초와 15일 이후에 각각 한 번씩 책을 사는 것 같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알라딘 굿즈가 매달 초, 15일 이후에 각각 업데이트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굿즈 땜에 책을 사니??? 엉?) 암튼 7월 중순부터 8월 14일까지 구매한 책. 이중에는 벌써 읽은 책도 있고, 책꽂이에서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책도 있다.


산 책


켄 리우,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종이 동물원> 읽고 반한 켄 리우의 또 다른 단편집. 미출간 단편 중 12편을 엄선해서 엮었다고 한다. 특히 이중에는 한글에서 영감을 얻은 ‘매듭 묶기’라는 작품도 있다는데 무척 궁금하다. <종이 동물원>을 읽어 보니, 켄 리우는 한자 등 ‘글자’에 관심이 많고, 그걸 작품 안에 녹여서 완전히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한글로는 무슨 이야기를 펼치려나? (그럼 빨리 읽어 사놓기만 하지 말고)



엔도 슈사쿠, <바보>
구매해서 벌써 읽고 100자평에 리뷰까지 남긴 책. <침묵>이나 <깊은 강>으로 유명한 엔도 슈사쿠. 그는 죽을 때 관속에 <침묵>과 <깊은 강>을 넣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깊은 강>에 비하면 울림이 아주 큰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몇 번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지리도 못나고 어리숙한 나폴레옹의 후예 ‘가스통 보나파르트’의 행적을 뒤쫓다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리라.



유리 바블로비치 카자코프,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이 책, 사자마자 읽을 것 같았지만 아직 안 읽었네. 내가 또 러시아 작가라면 깜빡 죽잖아요? 이 책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집이라는데, 이곳에서 나온 첫 번째 작품인 빅토르 펠레빈의 <아이퍽10>도 궁금하다(아마 사볼 듯). 앞으로 나올 다른 작품집도 그렇고. 유리 카자코프는 러시아에서 산문 쓰는 시인이라 불리며 서정성과 섬세한 문체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단다. 국내 첫 번역서로 1954년~1977년까지 발표한 대표작 14편이 담겨 있다고. 어떤가, 궁금하지 않은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판사와 형리>
<뒤렌마트 희곡선> 읽고 반한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그의 전작 읽기에 도전!-물론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이 책은 특히 이웃 폴스타프 님도 극찬한 바, 더 관심이 갔다. 게다가 추리/미스터리 소설이란다!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책에는 ‘판사와 형리’, ‘혐의’ 두 작품이 실려 있다. 두 작품 모두 괴물이 되어버린 범죄자를 쫓는 노회한 수사관을 그리고 있다고. 사실 출간된 지 좀 된 책이라 중고로 나오는 거 노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알라딘 직배송 중고로 뜨는 게 없어서 그냥 샀다.

하오징팡, <인간의 피안>
사실 관심 밖의 책이었는데, 알라딘 100자평 리뷰대회에 포함된 책이라 한 번 사서 읽어 보았다(100자평 이벤트에서는 떨어짐). 생각보다는 흥미로웠던 책. 분신, 복제인간, AI 등 인간과 똑같은 존재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영생병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영화화하기로 했다는데, 영화로 만들어져도 흥미로울 듯. 다만 이 작가는 중국에서도 상을 주는 등 자국에서 인정받고 있어서 그런지, SF라는 형식으로 중국의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게 없어서 아쉽더라.

비 윌슨, <식사에 대한 생각>
이것도 100자평 리뷰대회에 포함된 책이라 구매해서 봤다. 그래도 이 책은 궁금했던 터라, 겸사겸사 사봄. 이 책으로 100자평 이벤트 당첨! 적립금 15만원 받았다. 역시 마음에 있던 책을 사서 읽어야 진심으로 글이 써지는 것인가? 이 책에 대한 나의 100자평은 다음과 같다. -음식은 넘쳐나는데 정작 허기진 오늘날 식문화를 파헤쳐 ‘자신만의 달콤하고 푸른 잔디’를 찾아내는 법까지 명민하게 제시한다. 단순히 식문화뿐만이 아니라 풍요 속의 빈곤인 현대인의 삶도 돌아보게 되는 책.


에마 미첼, <야생의 위로>
이 책도 100자평 리뷰대회 도전용으로 샀다. 사실 내 취향의 책은 아니다. 이것 말고도 아니 에르노 <빈옷장>, 루시아 벌린, <내 인생은 열린 책> 등에 도전했는데, <빈옷장>이나 <내 인생은 열린 책>은 애초부터 사뒀던 책이라 딱히 100자평 리뷰 대회 응모용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암튼 <야생의 위로>는 25년 동안 우울증 앓던 지은이가 자연을 거닐면서 치유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읽다 보면 정말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난 이 책 보면서 새, 꽃, 나무 등 내가 문외한인 분야에서 좀 깨우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토르 에벤 스바네스, <물범 사냥>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이는 노르웨이 작가 토르 에벤 스바네스. 이 낯선 저자의 책을 덜컥 사는 데는 그리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성과 동물을 대비시키며 약자로 산다는 것의 공포’를 이야기한다는 소개만으로도 충분했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세상이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펼쳐 보이는 세상’이라니, 대략 그려질 내용이 짐작 가지만, 그럼에도 꼭 내 눈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출판사가 믿음이 간다. 동물과 관련해 좋은 책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책공장더불어’에서 나온 책이다.

토마스 핀천, <브이.>
읽기 참 난해하지만, 어쩐지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작가 토마스 핀천. 그의 전설적인(?) 책 <브이.>가 출간되었으니 꼭 사야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 책은 ‘서구 문명의 몰락과 인류 문명의 위기를 포스트모던한 시각과 기법으로 묘사해’ 1963년에 출간, 그해 최우수 첫 작품에 수여되는 윌리엄 포크너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독서가들을 흥분시키고도 남을 책이다. 단, 사기는 샀지만 내가 이거 언제 읽을지는 아무도 몰라.


 

그랜트 스나이더, <책 좀 빌려줄래?>
곳곳에서 터지는 엄청난(?) 상찬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에서는 딱히 사서 볼만 한 책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서점에서 쓱쓱 읽어도 될 그런 책이랄까. 그럼에도 구매한 까닭은 그놈의 굿즈죠 뭐. 이 책 사면 주는 피너츠 유리컵, 피너츠 보냉백이 더 탐이 나서 그만 이 책을 지르고 말았습죠. 일러스트가 무척 사랑스럽고 귀엽다는데 내 취향으로는 딱히 그 의견에 동의하긴 어려웠다.... 암튼 이 책보다는 굿즈로 받은 유리컵과 보냉백에 더 만족했다는 후문이.....;

마르그리트 뒤라스, <파란 눈 검은 머리>
요즘 아니 에르노 책도,  뒤라스 책도 꾸준히, 자주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두 작가 모두 처절할 정도로 솔직한 자기 고백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또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소설에 대해  뒤라스 스스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글로 쓰게 되었던 사랑, 그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끔찍한 한 사랑 이야기다.” 아아, 이 단 두 줄 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증폭하지 않는가? 아니라고? 아님 말고. 난 그렇거든.

에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입센의 희곡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와 제목이 똑같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헨리크 입센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남성 예술가이자 사상가가―우리가 아는 대로―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작품 속에 여성들을 이용하고, 한 여성이 자신의 삶이 이용당했음을 서서히 깨닫고 투쟁하는 서사에 대한 희곡이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 인권 및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해 여성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세계를 담고 있다. 몇 꼭지만 읽었는데도 이미 별 다섯을 예감하는 책.

옥타비아 버틀러, <킨>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여태 <킨>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참에 리커버 에디션이 나와서 드디어 구매. 이미 많은 이들이 읽어서 내가  더 소개할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혹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그리고 여성. SF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작가이자,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머쥔 작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킨>은 그의 대표작이자 최고 성공작이라고 한다. 이 책 읽고 나서는 최근에 새로 나온 <쇼리>도 볼 예정.

중고


문윤성, <완전 사회>
표지가 좀 색다르다. 이 책은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인데, 얼마 전 알라딘에서 2021년 문윤성 SF문학상 공모전을 한다는 광고를 봤다. 공모전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문윤성이라는 사람이 누구기에 이런 공모전을 하나 궁금해서 클릭했다가 알게 됐다. 아니, 이 사람이 우리나라 최초 장편 SF <완전사회>를 쓴 작가란다. 이 작품은 1965년 <주간한국> 추리소설 공모전 당선작이라고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다시 번영하기 시작한 인류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타임캡슐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UN은 타임캡슐의 궁극적인 형태로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했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알라딘 중고에 올라왔기에 구매.

조르주 페렉, <생각하기 / 분류하기>
페렉 선집을 야금야금 모으고 있다. 그런 중 새것 같은 중고가 나타나서 망설임 없이 구매. 이 책은 1982년 3월 조르주 페렉이 죽고 난 후에 묶어 펴낸 첫 산문집으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 열세 편을 묶었다. ‘내 작업대에 있는 물건들에 관한 노트’, ‘ 책을 정리하는 기술과 방법에 대한 간략 노트’, ‘열두 개의 삐딱한 시선’, ‘초보자를 위한 여든한 개의 요리 카드’, ‘이상 도시를 상상하는 데 있어 존재하는 난관에 대하여’ 등 목차만 봐도 벌써 궁금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그렇지 않은가?

제럴드 그로스, <편집의 정석>
궁금했던 책인데, 책값이 비싸서 선뜻 사지는 못했던 책. 중고로 나타나서 덥석 구매. ‘글로 쓰인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기까지 편집 과정의 불변의 진리를 보여주는 고전이라고. <편집의 정석(Editors on Editing)>(1962, 1985, 1993)은 1962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래 현재까지 편집자, 편집자 지망생, 특히 출판 과정을 알고자 하는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지침서가 되어온 책이라고 한다. 발행인, 편집자, 작가, 에이전트라면 본인을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권하는 책이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블로그 이웃분이 최근 이 책이 무척 좋았다고 추천해서 한 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꽤 좋아하는데, 산문이나 에세이는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이웃분이 발췌해서 올린 글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움직이더라. 그런데 왠지 새 책은 사기 좀 아깝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자니 대출 중이고. 그러던 참에 중고에서 보여서 구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의 또 다른 에세이인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도 읽을 예정.

I.A.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1,2
내가 계속 추천하는 책. 이러다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마니아 될라. 그래도 좋다. 이 책 정말 좋습니다요. 그런데 왜 책을 중고로 사느냐고요? 예전에 이 문학과지성사의 이 책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때는 이 작가에 대한 확신이 없던 터라 덜컥 사기 뭐해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좋잖아? 그 뒤로 책 사야지 했는데, 책 1,2권 값 다 합하면 좀 비싸서 차일피일 미루던 참에... 요즘 이 책이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지더라. 그런데 떡하니, 중고로 올라옴. 재빨리 구매했다. 조만간 다시 읽고 리뷰 쓰고 싶다. 예전에는 리뷰를 쓰지 않아서 이 책의 위대함을 널리 전파 못했네.

막심 고리키, <마부>
이 출판사에서 ‘러시아 고전산책’ 시리즈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 관심 갖고 지켜보는 중.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엔 투르게네프 <파우스트>와 이 막심 고리키 <마부>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막심 고리키의 초기 단편들 10편을 묶어놓은 책으로, ‘이제르길 노파’ 외에 9편은 모두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작품들이라고. 문학동네에서 나온 고리키의 <은둔자>와 거의 겹치지 않는 목록.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5
책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도전해보겠다는 로망을 품고 있으리라.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내가 이런 장편 읽기에 좀 약해서(중간에 자꾸 다른 책 읽고 싶어짐) 섣불리 도전은 못하고 있는데, 죽기 전에는 꼭 읽을 생각이다. 그런데 민음사, 이 책을 몇 권으로 조각조각내서 내고 있는지! 제값주고 사자니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중고로 모으고 있는데, 최근 3권에서 5권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래서 냉큼 구매. 이제 1권부터 5권까지 중고로 다 모아 놨다. 그런데 거의 새것 같음. 어차피 민음사도 아직 다 완역하지는 못했으니, 나도 이렇게 중고로 차근차근 모아서 언젠가는 다 읽어야지.

전자책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미시시피 씨의 결혼>
뒤렌마트 전작 읽기 도전 중이라, 이 책도 구매. 종이책을 사고 싶지는 않고(생김새가 영 사고 싶지 않은;;) 그런 참에 전자책으로 저렴하게 나와 있어서 구매. 내용은 전혀 모른다. 출판사 책 소개도 부실하다. ‘뒤렌마트는 기발한 착상과 현란한 대사, 날카로운 비평의식에 있어 발군한 재능을 보인 극작가로, 이 책에 소개된 <미시시피 씨의 결혼> 역시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가 전부. 그럼에도 믿고 사는 뒤렌마트.



루쉰, <방황>
출퇴근길에 읽으려고 구매.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인 <방황>은 11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하여 1926년에 출판되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1924년에서 1925년에 이르는 기간에 집필된 것으로 5.4운동 퇴조기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쓰였다. 중국 근대화 과정의 격변하는 사회 현실과 민중의식을 가식 없이 반영하고 있으며 근대화를 위한 계몽사상의 고취로 점철되어 있다고 한다. 계몽사상 고취! 살짝 예상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루쉰이니까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선은 전자책으로 저렴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90일 대여는 2250원. 매일 100원씩 주는 쿠폰 모으면 공짜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책도 90일 대여로 구매.

선물한 책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1,2
도스토예프스키 좋아하는 친구가 콕 찝어서 이 책을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해서 구매. 기프티북으로 보냈다. 친구도 나도 이미 도선생의 <죄와 벌>은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지만 이번에 새로 나온 문학동네 버전은 어떨지 궁금. 번역이 괜찮다는 말도 있고 해서 나도 이 문학동네 버전으로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터라 이렇게 나이 든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샬롯 브론테, <빌레뜨>1,2
다락방 님께 생일 선물 겸 위로의 선물로 기프티북 보냄. 아니 이 사람, 100자평 리뷰 대회에 4개 응모하고 4개 다 될 줄 알았다고, 15*4=60해서 60만원어치 책 살 꿈에 부풀었던 그녀는..... 한 개도 당첨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름에 잠긴 기나긴 포스팅을 했는데, 그 포스팅이 왜 이렇게 재미나던지 실컷 깔깔거리고 웃었는데(그러면서 나는 당첨됐다고 얄미운 자랑질까지 함 ㅋㅋㅋ), 웃고 나니 뭔가 미안한? 그런 것이다. 그런 데다가 그즈음 다락방님 생일이라 이 책을 조공. 이 책은 ‘창비우롱상자’ 사태 때 다락방 님이 ‘빌레뜨’가 나온 줄 모르고 너무나 재빨리 ‘주군의 여인’을 보내달라고 한 바람에, 안타깝게도 다락방 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다락방 님은 이 책을 돈 주고 사보기에는 왠지 억울한 심정이었다고. 영원히 다락방 님 위시리스트에만 있을 거 같아서 내가 구원해주기로 결정.



 첫 번째로 구매한 목록....


두 번째로 구매한 목록...



모두 중고로 사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거의 새 책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0-08-17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고로 ‘잃어버린 시간들‘ 사고 있는데 언제 읽게 될는지요 ㅎㅎ~~
상금 15만원은 대단한데요^^
축하해요^^

잠자냥 2020-08-17 13:14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 님도 중고로 잃어버린 시간들을 모으고 계시다니! 저의 경쟁자?! ㅎㅎㅎ 언젠가는 읽게 되겠죠?
실은.... <빈옷장>까지 2개 당첨되어서 30만원 받았어요..... ㅎㅎㅎ 덕분에 한동안 책값 굳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8-1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히히 여기 저 나왔네요. 역시 사람은 글을 재미있게 쓰고 볼 일이야. 책이 막 생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사해요, 잠자냥 님. 부지런히 읽고 재미있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뽜샤!!!

잠자냥 2020-08-17 16:2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이에요. 얼마나 재미나게 쓰셨는지, 요즘 다락방 님 선물 받으신 책이 몇 권이더라!! ㅎㅎ
앞으로도 많이 읽고 많이 쓰세요~
 
불타는 세계 SF... F.. C.
마거릿 캐번디시 지음, 권진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황후와 공작 부인이 다스리는 세계라니, 어쩌면 허랜드보다 앞선 그녀들의 유토피아. 기존의 관습적 담론을 완전히 허물어 뜨리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그런데 문제는 너무 지루하다는 거! 140쪽이 1400쪽처럼 느껴진다. 의미 있는 책이지만 작품보다는 작가가 더 흥미롭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8-1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백자평 앞부분에 오오 읽고 싶었는데 지루하다는 단어에 다시 뒤로 물러섭니다...

잠자냥 2020-08-15 17:5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지루해요..... 재미있다고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10여 년 전, 테니스라켓을 처음 잡았다. 신세계였다. 내가 왜 이걸 여태 배우지 않았을까 후회도 됐다. 운동 신경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서 포핸드, 백핸드, 발리 등등 금세 익혔다. 30도가 넘는 여름에도,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에도 레슨 받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실내 코트가 많지 않아서 한 겨울에도 실외에서 테니스를 배웠다. 몹시 추운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레슨을 빠지는데,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코치가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면 공이 제대로 튕기지 않으니까 나오지 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가니까 코치가 헛웃음을 웃었지.

그렇게 2년쯤 배우니까 제법 상대와 랠리도 되고, 같은 코트에서 레슨 받던 어르신들이 게임에도 끼워주더라(우리나라 테니스 코트에는 젊은이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 더 많다). 그 무렵에 다니던 회사가 쫄딱 망했다. 몇 년 치 퇴직금은 물론 몇 개월이나 밀린 월급까지 받지 못했다. 그것만 해도 몇 천만 원..... 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월급 밀릴 때 생활하느라 적금도 깨버린 상태였고, 설상가상 빚까지 있었다. 한 번에 해결해주겠다던 사장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그때 내 직업은 카피라이터. 그 전에 다니던 회사도 망해서 이직했던 참인데, 또 망한 것이다. 같은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요즘 승승장구하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말하기를 말하기>의 김하나 씨도 있는데,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내가 카피라이터로 재직했던 회사는 지금도 건재한 첫 번째 회사 빼고는 다 망했다. 놀기 좋아한 나 때문인가? -_-?

아무튼 그렇게 거리로 나앉.....지는 않았고, 못 받은 돈에 빚까지 졌던 나는 실업급여를 받아서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갔다. 회사 다닐 때는 퇴근 후 한 시간쯤 레슨을 받거나, 가끔 주말에 테니스를 칠 수 있었는데 백수가 되니 남는 게 시간인지라, 아침 여덟시부터 코트에 나가 점심때까지 있었다. 오는 사람마다 상대해주며 마치 무림의 고수(?)라도 되는 듯이 랠리를 해주곤 했다. 물론 진짜 고수 앞에서는 깨갱. 주로 초보인 사람들을 상대했는데(코치가 시킴), 남자들은 (초보 주제에도) 좀 비웃는 듯한(?) 태도로 도전했다가 내 공을 받으면서 당황하곤 했다. 코트에 눈이 녹기 시작한 그 봄부터 한낮의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른 여름까지 쭉, 거의 아침 8시부터 점심까지 코트에 있었으니, 그때 내 얼굴과 몸은 농사꾼처럼 시커멨다. 다시 직장을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백수 딸이 시커먼 얼굴로 테니스만 치고 다니니 그때 엄마 속은 내 얼굴보다 더 시커멨을 것이다.

사실 내 속은 더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때까지 광고일로 밥 벌어 먹고 살아왔지만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네버,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화려하지만 속빈 강정 같은 업계에 신물이 났던 참에 회사가 망했던 것이니 역시 내 탓인가? -_-?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무작정 테니스만 쳤다. 공을 쫓는 눈,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탕탕 울리는 그 상쾌한 소리. 공을 따라다니느라 땀에 흠뻑 젖어서 모든 걸 잊을 수밖에 없던 그때- 그렇게 몇 시간을 내리 테니스만 치다가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에 코트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한낮의 평온한 하늘은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돌아간 뒤는 아니었다. 그때 그 벤치에 늘 함께 앉아 있던 사람이 애인이 되어서 지금도 여전히 곁에 있다...... 음, 테니스가 선물한 내게 가장 고마운 것 중 하나랄까. 백수라 시간이 남으니 그즈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방영해주지 않는 온갖 테니스 중계도 인터넷으로 새벽 내내 찾아보곤 했다. 밤에는 테니스를 보고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테니스를 하고. 그게 그 시절 내 일과였다. 어느 날은 코치가 “잠자냥 씨는 테니스에 미친 사람 같아”라고 했지.

테니스는 그때 내 마음속 절망을 잊게 해준 존재였다. 그렇게 일 년을 넘게 보내고, 그 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테니스 코트에 머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직업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밥벌이를 다시 하는 행운도 찾아왔다. 이것도 테니스 덕분일까? 가끔은 그때 한낮의 빈 코트에서 애인과 함께 나란히 앉아 보던 하늘이 그립기도 하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을 읽는 내내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또한 테니스에 미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는 친구와 함께 미치광이처럼 테니스에 몰두했던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아스팔트에서 최면에 걸린 듯 행군하는 둔주 상태, 밋밋하면서도 무성하고 멍하면서도 격렬하게 느껴지는 정신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젊었고 언제 그만둬야 할지 알지 못했다. 몸뚱이가 지긋지긋해서 다치게, 닳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52쪽)라고. 나 또한 어쩌면 그 시절에 그런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우울증이 심해서 몸뚱이를 다치게 하고 싶은 그런 상태.


테니스는 가만있지 않는 공을 가지고 하는 당구요, 생각할 시간이 없는 체스다. 미식축구를 보병과 소모전에 비유한다면 테니스는 포병과 공습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끈이론>, 30쪽)


이 책은 ‘끈이론’이라는 제목보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라는 부제가 더 매력적이다. ‘끈이론’이라는 제목은 뭐랄까 내가 미치도록 싫어하는 수학이나 과학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테니스에 수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각도까지 헤아리면서 샷을 날린 모양인데, 사실 난 그런 거 절대 모르고 동물적 감각으로 공을 두들겼을 뿐이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약간 강박적인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저 백수 시절 얼마나 우울했던가! 백수라서가 아니라,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음울한 어린(?) 양은 테니스에서 빛을 찾았다. 더욱이 테니스는 스포츠이면서도 상대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경기 중 코트를 바꿀 때에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경기 시작 전, 후로 나누는 포옹과 악수 정도가 전부랄까. 타고나기를 무리 지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스포츠의 거리두기는 정말 완벽에 가깝게 취향에 맞았다. 물론 이 좁은 땅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아마추어로서는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대부분 복식 경기를 하자고 주장해서 ‘고독한’ 경기를 지향하는 나를 진저리 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애인은 오직 둘이서만 테니스를 친다. 동호회에 들어오라는 말도, 같이 복식을 치자는 낯모르는 이들의 제안도 모두 거절한다. 코트에는 저 너머 애인과 나 둘 뿐이다. 서로 상대를 너무 잘 알아서 우리 실력은 더 늘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둘이서만 칠 것 같다.

아무튼 테니스는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을 보라. 그는 서브를 넣을 때 항상 하는 강박적인 버릇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말을 한껏 순화해서 서브 넣기 전 나달이 엉덩이를 ‘꼬집는다’고 표현했는데, 꼬집는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나달의 경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그는 똥꼬가 팬티를 먹은 것처럼 서브를 넣기 전에 늘 똥꼬에서 팬티를 뺀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똥꼬 언저리를 오간 그 손가락을 이용해 귀 뒤로 (이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정성껏 넘기고 상대를 쏘아보다가 서브를 날린다. 나달은 또 본인이 마시는 물병 세 개를 딱 나란히 정렬해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물론 이런 강박증은 그 완벽해 보이는 페더러에게도 있다. 다만 페더러는 나달처럼 볼썽사납거나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조용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파란 끈으로 묶은 라켓을 몇 번째에는 꼭 바꾸는 등등 그만의 강박이 있다.


단언컨대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 테니스는 신체 통제, 손과 눈의 협응, 재빠름, 최고의 속도, 지구력, 그리고 조심과 (우리가 용기라고 부르는) 놓아버림의 기묘한 조합을 필요로 한다. 두뇌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경기의 한 포인트에서의 한 번의 공방에서의 단 하나의 샷은 역학적 변수의 관점에서 악몽과 같다. 네트의 (가운데) 높이가 91.4센티미터이고 두 선수의 위치가 (비현실적이게도) 고정되었다고 가정하면 샷 하나의 위력을 결정하는 것은 각도, 깊이, 속도, 스핀이다. 이 요인들은 각각 또 다른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끈이론>, 117쪽)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테니스는 정말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무척 힘들다. 내가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다친 적은 거의 없는데, 테니스 때문에 다리에 깁스를 두 번이나 했다. 왼쪽,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찢어져서 저마다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근육이 찢어질 때의 그 고통은................. 음. 종아리를 누가 총알로 쏘는(실제로 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으으) 듯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테니스를 포기하지 못하니, 확실히 이 스포츠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는 일정 수준 이상의 테니스는 일종의 기예라고 말한다. 진짜 최상급 선수들은 우리 앞에서 기예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예를 펼치는 선수들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얼마나 잘 묘사하는지, 그 적절한 비유에 배꼽이 빠질 만큼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는 안드레 애거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렇게 말한다. ‘애거시는 깡말랐고 계집애처럼 생겼으며 밀어버린 머리와 베레모스러운 모자와 검은 신발과 양말과 듬성듬성한 염소수염 덕분에 소년원에서 갓 출소한 사람 같다’(141쪽). 마이클 창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얼기설기 꿰맨 모습’이라고 하며, ‘머리통은 버섯 모양이고 머리카락은 칠흑 같으며 표정에는 심각한 난치성 불행이 묻어난다.’고 말한다. ‘대학원 글쓰기 강좌를 제외하면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불행해 보이는 얼굴’이라나. 테니스 역사상 미남으로 따지면 상위권에 들고도 남을 선수인 마크 필리포시스를 스파르타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피트 샘프러스와 경기하는 그를 ‘크고 느린 기계와 같은 베이스라이너로 눈에는 싸늘한 적의가 감돈다’고 표현한다. 그에 비해 샘프러스는 ‘허약하고 지적이고 (슬기롭고 슬픈) 시인처럼 보이며 민주주의만이 그렇게 지칠 수 있는 듯한 방식으로 지쳐보인다’(158쪽)고 말하는데,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 너무 웃겨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2008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의 테니스계는 지켜보지 못했는데, 그 후로 크게 활약한 노박 조코비치나 앤디 머레이 같은 선수들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완벽한 비유를 하고도 남았으리라.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라는 글만 봐도 그가 얼마나 테니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과 특징을 잘 알고 있는지, 또 그리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페더러를 좋아하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를 거의 숭배하는 관점에서 묘사한다(그런데 테니스를 즐겨 보는 이가 페더러를 숭배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그는 ‘아름다움은 경기 스포츠의 목표가 아니지만 높은 수준의 스포츠는 인간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최상의 분야’(194쪽)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최상급 운동선수의 아름다움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환기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줄곧 페더러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페더러의 포핸드는 거대한 액체 채찍이요, 백핸드는 한 손으로도 플랫 드라이브를 날리거나 톱스핀을 먹이거나 슬라이스를 깎을 수 있다.’(200쪽) ‘페더러는 나이키에서 올해(2006년) 윔블던에서 입도록 한 버터밀크색 스포츠 코트 차림이다. 페더러는 어쩌면 오직 그만이 스포츠코트를 반바지와 운동화에 받쳐 입어도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다.’(198쪽), ‘고전적 스토아주의와 강한 정신력과 훌륭한 스포츠맨 정신과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는 품위와 신중함과 아낌없는 자선’ 등등의 아낌없는 찬사에 이어 페더러의 경기를 보면 ‘지독하게도 종교에 가까운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겪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까지 찬양한다. 이 모든 주장에 104% 동의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내 감동으로 복받쳐 올랐다.


 2006년 윔블던 결승 이후. 보라, 페더러는 운동화에 반바지에 버터밀크색 스포츠 코트를 입어도 이토록 아름답다!


페더러는 천재, 돌연변이, 화신이라고 불릴 만한 유형이다. 그는 서두르거나 균형을 잃는 법이 없다. 그에게 날아오는 공은 실제로 그래야 하는 것보다 몇 분의 1초 오래 머물러 있다. 그의 동작은 운동의 동작보다는 무용의 동작에 가깝다. 페더러는 살과 빛의 몸을 입은 존재다. (<끈이론>, 208쪽)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는 2006년, 그러니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쓰인 글이다. 그의 또 다른 에세이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도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페더러는 스물다섯 나이로 현재 살아 있는 테니스 선수 중에서 최고다. 영영 최고일지도 모르겠다.’(193쪽) 말하는데,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20년인 지금도 페더러는 최고다. 물론 이 최고가 1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페더는 랭킹 4위이다. 그런데 그는 1981년생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마흔이다! 마흔의 나이에 여전히 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는 정말이지 살과 빛의 몸을 입은 존재이자, 천재이자, 영영 최고의 테니스 선수일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살아있었다면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페더러의 경기를 보면서 종교적인 고양까지 느끼며 행복해 했을 텐데……. 같은 페더러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지난 1월에 열렸던 호주오픈을 제외하고는 모든 투어 경기가 열리지 않고 있다. 페더러의 경기도 올해는 그때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 페더러가 더 나이 들기 전에 그 우아한 경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 코로나가 어서 끝나야 할 텐데……. <끈이론>은 테니스와 관련해서는 가장 우아한 에세이임에 틀림없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처럼 말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8-14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테니스를 전혀 모르고 흥미도 없지만 이 글이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겠어요. 잠자냥 님이 테니스를 배우고 열중해 주어서, 그래서 결국 이런 글을 써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가 항상 요가 3년 했는데 왜이렇게 다 못하는거야, 라고 얘기하지만 이 글을 보니 알겠네요. 저는 요가를 매일 하지도 않고 한다고 해도 삼십분이 전부이니..이래가지고 뭐가 되겠어요? 뭔가 이거다 싶은 결과물을 내놓으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많이 들여야 할텐데 말입니다. 저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 결과만 가져가기를 바랐네요.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잠자냥 님. 그 시절 잠자냥 님께 테니스가 있어서 너무 좋네요. 그리고 잠자냥 님이 사랑하는 스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고요.
애인이라는 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겹치는 것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이지만, 그러나 겹치는 게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축복입니까.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다니, 잠자냥 님 복 받으신 분.....

잠자냥 2020-08-14 10:26   좋아요 0 | URL
테니스 정말 아무리 오래 배워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은 다다르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순간 정말 1cm 정도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테니스 배우면서 글쓰기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진짜 꾸준히 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데,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조금 늘어난 걸 발견하는 기분. 그러다 또 슬럼프 오고.... 요가를 전 잘 모르지만,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스포츠나 글쓰기나 정말 꾸준히 하다 보면 아주 쪼오금 상승한 게 보이는. 그렇지만 정말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거. ㅎㅎ 다락방 님은 글쓰기와 책읽기는 정말 꾸준히 하는 분이니까 요가도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날 살짜쿵 실력 향상이 된 걸 느끼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테니스는 파트너가 있어야만 가능한 운동인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 너머 코트에 있으니 참 행운이죠. ㅎㅎ 그러니 다락방 님도 요가장에서 파트너를.........? 응(?) ㅋㅋㅋㅋ

Falstaff 2020-08-14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 잠자냥 님이 테니스 (아마추어로는) 고수시군요! 스매싱 하듯 휘두르는 손바닥으로 귀싸대기 한 대 맞으면 참으로 볼만 하겠습니다. 후다닥.....

잠자냥 2020-08-14 10:45   좋아요 0 | URL
무림(?)의 고수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무림의 고수 아줌마들 테니스 대회가 있는데(‘진달래부‘,‘국화부‘라고 합니다), 국화부 아줌마들 대회 동영상 보면 정말 장난 아니에요. ㅎㅎ 스매싱은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라 귀싸대기 잘못 날리다가는 제 어깨가 먼저 나갈 수도 있지요. ㅋㅋㅋㅋㅋ

박균호 2020-08-1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십년 테니스에 빠져 살았는데 테니스의 묘미는 단식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마이클 창 참 오랜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저는 고란 이바니세비치의 팬이었어요. 윔블던 결승전에서 우승한 순간이 아직 생생하네요. 그 양반이 사용한 헤드 프레스티지660도 생각나고...

잠자냥 2020-08-14 11:27   좋아요 2 | URL
단식이 짱이죠. 문제는 우리나라 코트 여건상 단식 치기 참 힘들다는 것이죠. ㅎㅎ 마이클 창 정말 오랜만인 이름이죠. 이 책에서는 아무래도 정말 오랜만인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이바니세비치 이야기도 나와요.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그가 잘생겼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냥 호락호락(?) 인정해주지는 않지요.ㅋㅋㅋㅋㅋ

박균호 2020-08-1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저도 테니스를 좋아해서 저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긴 했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읽다가 집어 던졌어요. 다시 테니스로 돌아갈려고 준비중인데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잠자냥 2020-08-14 11: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저자 말이 좀 현학적인 면은 있죠? ㅎㅎ 저도 다리 다친 뒤로 한 1년 테니스 쉬었는데, 이 책 읽고 나니 암튼 다시 코트에 나가야지! 불끈불끈하더군요. 테니스 즐겁게 치세요~!!

페넬로페 2020-08-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테니스경기 시청하는걸 참 많이 좋아했어요~~
경기를 볼 때마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었는데 운동만 하면 몸에 탈이 생기는 저에게는 무리이다 싶더라구요!
그나저나 잠자냥님의 훌륭한 필력의 출처를 알게 되었네요^^

잠자냥 2020-08-14 12:17   좋아요 1 | URL
테니스는 보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스포츠이지요.
몸에 탈이 나지 않는다면 한 번 직접 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싶은데 아쉽네요. ㅎㅎ
회사는 망했어도 필력은 챙긴 것일까요?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8-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께서도 테니스를 좋아하시는 군요. 겨울철에도 돌멩이 같은 테니스공을 치실 정도면,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시라고 여겨집니다. 저도 예전에는 테니스 경기도 즐겨보고 보리스 베커와 나달을 좋아했던 기억도 납니다. 한동안 테니스를 안 쳤는데, 조만간 딸아이와 함께 라켓을 잡을 날을 기다려 봅니다. 잠자냥님 덕분에 테니스에 대한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0-08-14 12:48   좋아요 2 | URL
와, 이 글이 알라딘의 숨은 테니스 팬들을 소환했군요. ㅎㅎ 겨울철의 돌멩이 같은 테니스공을 아시는 거 보니 겨울호랑이 님도 테니스를 꽤 좋아하셨나 봅니다. 딸과 함께 치는 테니스는 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꼭 연의랑 함께 테니스 치는 날이 오기를 바랄게요!
 
책 좀 빌려줄래? - 멈출 수 없는 책 읽기의 즐거움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가 너무 컸나? 조금 싱거운 느낌. 기발하거나 완전 재치 넘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반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 빙고’부터 키득키득 웃음 터지면서 조금씩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진다. 책읽기 만큼 글쓰기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읽기 환자들은 결국 쓰기로 나아가는 듯.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0-08-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그랬어요. 앞 절반은 뭐 이런걸, 싶었고요. 후반부에 피식 웃으면서 공감했어요.
(읽고 팔았습니다)

잠자냥 2020-08-22 14: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고 팔았습니다....) ㅋ

lotos 2021-04-12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마지막 문장이 저를 구원해주네요.

잠자냥 2021-04-13 09:3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저도 그렇습니다. ㅎㅎ
 
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군가는 죽어도 또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인생을 살아나가야 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사랑과 상실, 추억이 잔잔하고 섬세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그런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