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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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공교롭게도 매우 상반되는 두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하나는 찰스 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이며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 <말의 정의>이다. 먼저 읽기 시작한 것은 오에 겐자부로 쪽인데 더 빨리 읽어치운 것은 부코스키 에세이다. 부코스키 에세이는 그만큼 읽어가기 수월하다. 이웃집에 사는 삐딱이 노인이 사람들 사는 모습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태도랄까.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속하겠지만 어쩐지 읽다 보면 속이 후련하다. 그래서 이 작가 책이 그렇게 사람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이다. 사람들은 찰스 부코스키의 이른바 ‘안티 히어로’적인 모습에 열광하며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이 사는 모습, 삶의 태도는 그가 작품에서 말하는 바와 정반대로 부와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는 완전히 속물적인 모습이 아닌가? 아,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사 읽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아닐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의 삶은 그런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찰스 부코스키 같은 사람이 해주는 입담을 들으면서 대리만족이라도 느끼려는 것일까? 나 또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에 겐자부로 <말의 정의>는 참 바르다. 올곧은 소리로 가득하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며 느끼는 작가의 이런 저런 생각들이 담겨 있지만 큰 기둥은 환경을 생각하는 삶, 평화를 생각하는 삶, 차별이나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삶에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끊임없이 상기해 준다.

 

그와 달리 부코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작가 자신이 평생 ‘바르게’ 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누군가에게 바르게 살자고 제안하는 게 아니라(부코스키가 타인에게 그렇게 설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인간다움을 잃고 오로지 돈과 명예 권력 등을 쫓으며 사는 인생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개인의 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유로운 인간, 제대로 생각하며 사는 인간으로서의 삶이랄까. 난 이렇게 살 테니까, 나더러 너희들처럼 속물적으로 살라고 하지마! 그리고 너희들도 머리가 있다면 좀 생각해봐, 이런 느낌이다.

 

물론 난 두 작가의 생각에 모두 공감하고 두 에세이 모두 나름 좋았다. 다만 찰스 부코스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매력(부코스키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우체국> <여자들> <팩토텀>을 읽었을 때는 그 주인공 ‘헨리 차나스키’의 아웃사이더 기질에 공감은 하면서도 마초적인 모습은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크게 좋아할만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에세이집을 읽으니 찰스 부코스키라는 작가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오로지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로 구원받았으며 명성이 따른 뒤에도 그 명성을 좇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며 거기서 멀리 떨어진 채 술, 여자, 경마, 글쓰기로 이뤄진 삶을 보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했으며 밤은 술과 컴퓨터(글쓰기)를 위해 비워두었다. 문단이라든지, 비평가라든지 작가라든지 이런 집단과 어울리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던 작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 작은 성공에 우쭐하고 문단이나 평론가 집단이 부추겨주니 진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결국 그들과 돈 앞에 설설 기면서도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문학 권력자입네 행세하면서 스스로 ‘아웃사이더’ 운운하는 한국의 치졸한 몇몇 작가들이 떠올라서 실소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읽었을 때와도 조금 비슷한 느낌인데, 찰스 부코스키 에세이 쪽이 좀 더 편안하고 유연하며 자유로운 느낌이다. 마루야마 겐지, 찰스 부코스키, 오에 겐자부로 모두 그들이 에세이를 통해 하는 말들은 진실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에세이에 쓴 그 삶 그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이런 작가들을 이 땅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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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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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었다. 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 자꾸만 그 이름을 되풀이하게 된다. 좋은 작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 꽤 괜찮다. 앞으로 또 어떤 작가들 단편집이 나올지 기대된다. 지난 해 열권 세트를 사고 그 뒤에 출간된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을 샀다. 그리고 최근에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까지 모두 열 두 권이 책꽂이에 꽂혀있다. 그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책은 딱 두 권이다. 하나는 ‘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선, 그리고 이번에 산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

다른 단편모음집은 작가별로 읽고 싶을 때 하나 둘 꺼내 읽는다. 다른 책을 보다가 읽기도 하고.... 아무튼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선은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계속 읽었다. 그녀의 작품은 굉장한 흡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히치콕 감독이 그녀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서 영화를 만들었을 법하다고 느꼈다.

윌 리엄 트레버 단편집 <그 시절의 연인들>은 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집 <지금 쳐다보지 마>이후 현대문학 단편선 시리즈 가운데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나간 책이다. 아일랜드출신 작가는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노벨문학상에도 꽤 자주 거론되는 작가라는데, 나도 이 단편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 같다. ‘안톤 체호프와 제임스 조이스를 계승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고도 하고 <뉴요커>는 트레버를 “영어로 단편소설을 쓰는,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고도 한다.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잘 쓴다. 정말. 게다가 그냥 기술적으로 잘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단편들을 읽고 나면 앞서 말했듯이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 시절의 연인들’을 가장 처음 읽었는데 이 작품 하나만을 읽고 나서도 뭐랄까, 바로 ‘아, 이 작가 대단하다’ 싶어졌다. 게다가 그 작품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이 사람의 작품은 볼 수 있는 한 모조리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 시절의 연인들’은 어느 면에서는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떠오른다. 불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불륜임에도 왠지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간절함 이런 것까지 닮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들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을지, 앞으로도 또 어떤 의미일지 짐작할 수 있기에 작품을 다 읽은 뒤에도 그 사랑을 그들이 온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기를 바라게 된다.

단편집은 한꺼번에 몰아 읽으면 나중에 어떤 작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가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있다.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물론 지금은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시절의 연인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듯하다. 이 작품 말고도 ‘산 피에트로의 안개 나무’ 이 단편도 무척 인상 깊었다. 이 단편은 읽고 난 뒤 눈물이 조금 맺혔다. 그렇게 슬프거나 사람을 울리는 내용이 아님에도 작품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산피에트로의 안개 나무’는 십대 소년이 화자이다. 소년은 몸이 약해 곧 죽을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고, 요양차 어머니와 정기적으로 이탈리아 산피에트로 알 마레에 있는 호텔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이예’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알게 된다. 어머니와 파이예 씨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소년의 눈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려진다. 한국 단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린 소녀의 시선처럼, 이 작품에서는 소년이 어머니와 한 남자의 사이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시선은 애잔하면서도 쓸쓸하고 서정적이다. 그리고 또 어느 면에서는 아름답기도 하다.

이 두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삶에서는 뜻하지 않게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사람들 인생은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변한다. 이 두 작품에서는 주로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 사람을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이 조금 달라진다. 그렇지만 ‘그 어떤 사람’과의 인생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또한 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겠다고 의지를 부릴 수도 있지만 그 또는 그녀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여건이 절대로 그런 행복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고, 스스로 나약해서 포기하고 말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어떤 한 사람’을 만나서 삶이 변화되는 그 순간에는 진정으로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그로 인해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되었다. 비록 그 뒤에는 ‘그 어떤 이’와 함께 하는 삶이 쭉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던 순간이 있었음으로 그 나머지 삶을 또 그럭저럭 살아가게 된다. 인생에서 뜻대로 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잠시나마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두 작품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윌리엄 트레버는 단편소설을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슬쩍 들여다보는 눈길”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바라보는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는 애잔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주로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 노인, 결혼하지 않은 중년 여인 혹은 독신 남자 등 고독하거나 외롭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이들의 삶에 머무른다. 그들을 연민을 잃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작품 하나하나마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공감이 되고, 큰 위로가 된다.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했단다. 그녀 정도의 작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선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장편이 아닌, 단편소설의 아름다움, 치밀함, 정교함, 깔끔함, 그러면서도 강렬하고 깊은 여운을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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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19-08-06 1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덕분에 저도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을 읽게 되었어요. 어떤 작품이 제일 좋았는지 딱 하나만 고르기 참 어렵지만 저는 ‘로맨스 무도장‘ 이 참 좋았어요. ‘이스파한에서‘ 도 좋았고요.
같은 아일랜드 사람이고 단편집이어서 그런지 ‘더블린 사람들‘도 좀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는 ‘이블린‘ 이라는 단편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로맨스 무도장‘ 의 주인공과 이블린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더라고요.
아마도 잠자냥님께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을 생각하며 ‘그 시절의 연인들‘ 을 좋아하신 거랑 같은 이유로 ‘로맨스 무도장‘ 에 끌렸던 것 같아요.
정말 한편 한편 주옥같고, 여운도 길고 다른 소설도 꼭 한번 읽어보기로 다짐했답니다.
더운데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9-08-07 09: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더블린 사람들‘ 좀 생각나죠? 저도 ‘이블린‘은 좋아하는 단편이에요. ㅎㅎ
이 책도 벌써 몇 년 전에 읽은 거라, 몇몇 단편을 제외하고는 기억의 희미하네요. 하하하하.
생각난 김에 ‘로맨스무도장‘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윌리엄 트레버 참 좋죠? 다른 작품도 아마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ㅎㅎ
케이 님도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3기니
버지니아 울프 지음, 태혜숙 옮김 / 이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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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로 우뚝 선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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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9.10 - no.002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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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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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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