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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앵무새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56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요즘 사람들은 당신과 전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당신의 일부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 당신이 무모하게 책 한 권을 쓰게 되면, 그 일로 인하여 당신의 예금 계좌, 건강 진단서, 결혼 생활
모습 등 당신의 일부는 돌이킬 수 없이 대중의 몫이 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p.106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네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진실’일까 ‘진실’ 혹은 ‘진짜’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이런 질문을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우리에게 남긴다.
제목만 보고 혹은 간단한 서평만 보고 이 책을
‘플로베르’에 관한 전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플로베르 전기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전기’와는 전혀 다르다. ‘전기’지만 ‘전기’라고 할 수 없는… 사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플로베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스의 작품을
읽기 위해 [마담 보바리]도 읽고 ‘플로베르’에 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런 식으로 ‘플로베르’에 대해
알게(?) 된 것, 그리고 반스의 이 작품을 읽은 것 등등 모든 것이 즐거웠다.
이 작품은 ‘플로베르’에 미친 한
의사가(이제는 늙어서 은퇴한) ‘플로베르’의 진짜 앵무새(플로베르가 글을 쓸 때 옆에 두고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박제된 앵무새)를 찾아 ‘플로베르’의 고향 루앙을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서로가 진짜임을 주장하는 박제된 앵무새 두
마리가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일까? 의사는 그것을 밝히기 위해 ‘플로베르’의 삶을 추적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플로베르’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작품들… 그러나 이 책 속에 드러나는 ‘플로베르’의 삶과 ‘플로베르’라는 인물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보다 보면 과연 ‘플로베르’라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일까 갈수록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2장 ‘연보’ 부분을 보면 플로베르의 ‘연보’가 3가지 버전으로 소개된다. 하나는 일반적인 버전의 연보(그의 성공과 사회적
명성 그래서 행복한 부분들이 기술된 연보), 또 다른 하나는 첫 번째 버전의 연보와는 다른 성공의 이면에 감춰진 슬픔과 불행 등이
기록된 연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플로베르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록들로 이뤄진 연보(이 연보를 보면 ‘플로베르’라는 사람이
무척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두 번째 장이 이 책의 주제를 잘 집약한 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일반적으로 플로베르의 삶을 설명한 첫 번째 ‘연보’(즉 객관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기초하여)와 같은 방식에서 입수한 정보로 ‘그’ 또는 ‘그녀’를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 ‘그’ 또는
‘그녀’의 삶에는 플로베르의 첫 번째 연보와는 다른 두 번째, 세 번째 연보가 존재하듯이 ‘그들’만의 또 다른 연보가 존재할
것인데,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아는 ‘그’ 혹은 ‘그녀’가 ‘진짜’ 그 사람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이 작품은 우리에게 던진다. ‘정말 당신이 그 사람 혹은 그 사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진짜요?’ 하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앵무새의 존재 역시 이러한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줄리언 반스 특유의 비꼬는 듯한
문장과 영어와 불어 사이의 언어 유희, 신화과 고전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맛보며 예술과 삶, 비평가와 작가, 작가와 작품
사이의 거리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무척 좋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플로베르’라는 한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는 즐거움이 대단했다. 물론 이 책에 그려진 ‘플로베르’가 온전히 ‘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 인용된 플로베르의 ‘말’ ‘말’ ‘말’들만 봐도 플로베르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내 마음은 언제나 눈물 속을 헤엄치고 있다.’라니!!!
행복은 천연두와 같다. 너무 빨리 걸리면 그것은 너의 몸을 망쳐 놓는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고귀함의 방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는 그곳에 담을 쌓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했다.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내 마음은 언제나 눈물 속을 헤엄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썩어 가기 시작한다.
삶은 왜 이렇게 끔찍하단 말인가?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수프와 같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수프를 마셔야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다.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 언급된 ‘플로베르’의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