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은 자신의 일기가 이렇게 온 세상에 공개될 것을 알았을까? 만약 알았다면 이토록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녀가 죽기 전 누군가가 손택에게 일기를 공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면 그녀는 허락을 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오를 정도로 손택의 일기 모음인 <다시 태어나다>는 ‘솔직’ ‘진솔’ 그 자체다. 그렇기에 수전 손택을 좋아하고 존경하던 팬의 입장으로 그녀의 내밀한 사적 기록을 훔쳐(?) 읽는 일은 은밀한 쾌감과 즐거움이 따른다. 그러나 작가 사후 작가의 ‘동의’ 없이 일기가 출간되는 것을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여전히 궁금하기는 하다.
손택의 일기를 읽으며 그녀에 대해 몰랐던 부분(물론 꼭 알아야 할 이유는 없는)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고, 어렴풋이 짐작으로 알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잘 알게 되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다: 1947~1963>는 그녀가 14세 때부터 30세까지 쓴 일기로 구성된다(손택은 2004년 죽기까지 백 여권의 일기를 썼으며 그녀의 일기는 앞으로 더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젊은 손택은 어떤 면에서는 예상대로이기도 했으며 또 어떤 점에서는 뜻밖이기도 했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17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들도 하나 두었던 그녀는 양성애자로 알려 졌지만 이 일기를 보면 스스로 자신이 동성애자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 그녀가 살았던 시대나 주변 분위기, 환경 등의 영향으로 ‘양성애자’로라도 살아 보려고 애썼던 듯하다. 동성애 성향에 대해 죄의식을 갖기도 했으며(‘내가 동성애자라는 죄책감이 얼마나 큰지 이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H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H 탓이라고, 그녀가 내 악의 근원이라고, 그녀만 없으면 난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고, 아니 적어도 대체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게 했다’ P. 286)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그토록 자유분방해 보이던 사람조차도 내면에서는 이런 고뇌를 안고 살았구나 싶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게다가 더 안쓰러운 것은 어쩐지 자존심도 세고 도도해 보이기만 하던 그녀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으나(‘H’나 ‘아이린’처럼 동성 연인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손택이라니! 그것도 자신을 막 대하는데!!) 그럼에도 만족할 만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어쩌면 관계를 맺고 잘 유지하는 법에 서툴렀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연인과의 관계에서 힘들어 했다. 역시 타인의 일기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또 하나 재미있던 부분은 손택은 말이 무척이나 많았다는 점이다.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매년 일기마다 ‘말을 적게 하자’는 결심을 적었을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단추 달기(입에 단추 채우기)’. 게다가 씻는 것도 무척이나 싫어했나 보다. 씻기를 결심하는 부분도 일기에 자주 그려진다. 이를 테면 이렇다. ‘매일 목욕하고 열흘에 한번씩 머리 감기’(헐 열흘에 한 번씩이라니!!!!). 그뿐만 아니라 책을 훔치다 서점에서 붙잡히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은 아마도 일기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지 않았을까?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아 낄낄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렇게 살아왔기에 오늘날의 ‘수전 손택’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없이 공부한 흔적이 일기에 담겨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영화, 오페라, 연극 등 문화적 자극에 대한 열의가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그녀. 수전 손택의 ‘지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그칠 줄을 몰랐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앎’에 대한 갈망으로 그녀의 삶 전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토록 뜨겁게 매 순간 읽고 보고 쓰고 생각하고 말하며 살았기에 오늘날의 그녀가 존재할 수 있었으리라.
수전 손택이 자신의 일기가 공개되기를 바랐는지 어땠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녀의 글과 날카로운 지성, 올곧게 살고자 노력했던 모습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아플 정도로 진솔한 일기가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을 감사할 것이라 여겨진다. 바로 내가 그런 것처럼…. 일기를 덮을 즈음엔 좀 더 인간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그녀의 날카로운 글들이 다시금 읽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