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인의 키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승주연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뜻하지 않은 일로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을 수도 있고 자기의 의지가 발현되지 않았음에도 어쩌다 보니 휩쓸려 그렇게 되기도 한다. 궤적의 크기가 매우 커서 또렷하게 알 수 있을 때도 있고 너무나 미미해 곧 그 흔적이 사라지고 기억에서 쉬이 잊히기도 한다. 때로는 기억 속에 남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자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몹시 사소할지언정 조금이라도 삶의 궤적을 바꿔놓았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지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안톤 체호프. 이 미치광이 같은 남자는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그 뜻하지 않은 일, 그 미미한 균열을 포착해 묘사하는 데 가히 천재와도 같은 솜씨를 발휘한다. 체호프를 나는 이제 미치광이 같은 남자라고 서슴지 않고 부르겠다. 이 세계에서 단편 소설 좀 쓴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작가로 꼽으며 흠모하고 사랑하다 못해 그를 뛰어넘어보고자 애 쓰지만 결국 그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끝내 체호프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를 외치며 그에게 바치는 듯한 무수한 단편을 남기고 죽어가는 그 심경을 나는 새삼 또 절감했다. 스물 또는 서른 그즈음에는 느낄 수 없던 그 무엇을 느끼며. 그만큼 내가 인생을 더 살았기 때문인지, 이제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살아온 시절들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인간의 생에 불쑥 끼어드는 그 뜻하지 않은 일의 ‘위력’을-때로는 미미할지라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인지 이 검은 단편집 <낯선 여인의 키스>는 한없이 강렬하게 남는다.

키스 이야기부터 해보자. 표제작인 ‘낯선 여인의 키스’는 체호프 마니아를 자처하며, 그의 (국내에 번역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노라 자부하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 때문에 그의 단편집을 다시 읽었고(‘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벌써 몇 번째인가!), 그로 인해 체호프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다시, 그것도 이 나이에 읽을 수 있었음을 행운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다시 키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간에게는 누구나(는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나이길 바란다) 첫 키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생애 최초의 키스이기도 하고(이것은 말 그대로 첫 키스이다), 어떤 대상과의 첫 키스이기도 하다(이것은 대상이 달라질 때마다 매번 그 또는 그녀와의 첫 키스로 갱신된다). 그런데 이 첫 키스를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관계에서도 그렇다. 눈에 두드러진 변화가 있기도 하지만 몹시 사소해 제 자신도 모를....(수가 있나? 싶지만 아무튼 둔한 사람도 있으니 그렇다 치자)만 한 변화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떻든 대부분의 이들에게 첫 키스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으리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 이런 구절이 그래서 널리 애송되는 것이 아닐까.

<낯선 여인의 키스>에도 그런 이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라보비치’- 너무나 평범하고 애매하게 생겨 도무지 누군가의 애정은커녕 관심도 주목도 받지 못하는 이 남자는 우연히 초대받은 무도회에서 한 여인의 열정적인 키스를 받게 된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받은 키스라면 더 없이 좋을 텐데, 하필이면 어두운 장소에서 급박하게 이뤄진 짧은 입맞춤- 단언컨대 그에게 입을 맞추고 사라진 여인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도리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퍼붓고 사라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어쩌면 좋으랴, 이 남자는 분명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흠모해 남몰래 입을 맞추고 사라진 것이라 믿고 그날부터 꿈꾸듯 몽상에 잠긴다. 삶이 새롭다. 무료하기 짝이 없던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누구일까 공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누군가 그를 다정하게 대했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어리석지만 특별한,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 그는 꿈속에서도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p.183) 못한다.

그런 데다가 자신감까지 생겨난다. 그 흔한 로맨스는커녕 부대에서 동료들에게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 소심한 남자는 낯선 여인의 단 한순간 뜨거운 입맞춤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들, 그러나 어쩐지 자기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본질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 자기도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의 평범한 인생 그 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얻는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며 언젠가는 모두가 겪는 일을 겪게 될 거야"(p.189). 자신이 평범하며 자기 삶 또한 평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쁘고 힘이 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라보비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이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간직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그 기쁨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심지어 라보비치처럼 원하던 대상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첫 키스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녀가 누구일까, 과연 나를 사랑하고 흠모해서 일어난 일일까, 나의 로맨스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홀로 상상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한 순간 일어난 농담 같은 운명의 기적은 곧 사그라지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게 된 지금, 입맞춤과 관련된 일화, 자신의 조바심, 불확실한 희망과 실망이 또렷하게 교차’하면서 삶은 다시 지리멸렬하고 보잘것없으며 무료하며 초라한 그것으로 남기 마련이다. ‘온 세상과 그의 삶이 이해할 수 없고 목적도 없는 농담’(p.195) 같기만 하다.

리보비치의 삶만 그러하지는 않다. 매일 썰매를 타러 가서 썰매를 탄 채 아래로 내려갈 때만 작은 목소리로 "당신을 사랑해요, 나쟈!"라고 외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 고백을 들으며 바람이 들려준 소리인지 등 뒤의 남자가 고백한 소리인지 또렷하게 알 수 없음에도 그 소리에 포도주나 모르핀에 중독되듯 중독되는 ‘나’와 ‘나젠카’(<농담>), 그들은 이제 이 말을 하지 않고 듣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썰매로 산비탈을 내려오는 건 무섭지만, 공포와 위험은 수수께끼로 남아 나젠카 그녀를 괴롭히는 그 말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한다. ‘나’와 바람 중 누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제 나젠카는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떤 잔에 술을 따라 마시든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p.19)

약속어음을 받으러 찾아간 여자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진창’같은 일에 얽매이는 두 남자(<진창>)도 있다. 그들은 돈을 받아내기는커녕 여자에게 홀린 듯 마음까지 빼앗겨 버린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구로프’와 ‘안나’는 또 어떠한가! 우연히 만난 바닷가에서 나눈 몇 차례의 대화가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녀 또한 다른 여성들과 똑같이 기억에서 잊히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 한겨울이 되어도 기억 속 그녀는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또렷하고 오히려 기억은 점점 더 생생해진다. 벽난로 속에서 눈보라 소리가 들릴 때면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일이 떠오른다. 그 짧은 추억은 이루고 싶은 꿈이 되고, 상상은 어느덧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마치 낯선 여인의 키스를 받은 라보비치가 꿈꾸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구로프와 안나에게도 그 꿈같은 날이 부서지는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고 나면 여전히 단조롭고 느리며 근심 없는 나날이 이어지리라......



구름 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바람이 슬픈 듯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연도 울음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인간의 단조로운 일상을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수산나나 약속어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양심에 찔려서 이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대신 그들은 그때 일을 회상하고 그녀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들의 삶에 우연히 발생한 우스꽝스러운 농담처럼 그 일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노년에 떠올리면 기분 좋을 법한 일화인 것처럼....(p.80)



“우리는 우리의 평생을 정원에 쏟았지 내 꿈에는 사과나무와 배나무만 나올 정도야. 물론 이건 좋은 일이고,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가끔은 단조로운 삶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어.” (p.118) <검은 수사>의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도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체호프가 자신의 작품에서 말하듯이 인생은 ‘하찮거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의 대가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게다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p.162)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평범한 학자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15년을 공부하고 밤낮으로 연구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불행한 결혼을 견디고 온갖 종류의 바보 같은 짓과 잊고 싶은 부당한 일을’(p.162) 저지른 후에야 자신이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 아닌가. 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출구도 없는 덫에 걸려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그의 의지와 달리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게 되는데도 도무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면 대답을 듣지 못하거나 그가 알고 싶은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을 듣게‘(p.226)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체호프는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그렇기에 때로 “운명이 뜻하지 않게 낯선 여인의 얼굴로 그를 다정하게” 대한다는 것, 바로 우리를 다정하게 대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이 있음으로 인간은 이 생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체호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여름날의 꿈과 장면들을 떠올리며 비록 자신의 삶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그 꿈에 기대어 또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 안을 서성이며 추억을 더듬고 미소를” 지으며 “추억은 이루고 싶은 꿈이 되고, 상상은 어느덧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p.39) 변하면서 그렇게 세월이, 생이 흘러간다는 것을.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8-3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사야겠다.

잠자냥 2024-09-02 10:01   좋아요 1 | URL
다락방이 젤 잘하는 말....

은하수 2024-08-31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 받았습니다~~ 땡투도 보냈는데 받으셨나요~~~?
리뷰 읽고 나니 얼른 읽고 싶네요.
제가 모으는 흔치 않은 시리즈인데
이렇게 검은색으로 나와서 아닌 줄 알았잖아요.

리뷰도 재밌게 잘 읽었어요!

잠자냥 2024-09-02 10:02   좋아요 1 | URL
녹색광선 이 시리즈 예스24에서는 종종 다른 표지로 나오는 거 알고 계세요...? (응?)

그레이스 2024-09-02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2탄 이네요
지난번에 여러 출판사 번역책 소개하신거 보고 이번에는 체호프다 했는데...^^
그래서 이 책 샀습니다.^^*
10월에는 체호프의 희곡과 단편을 읽을 계획이예요 ^^

잠자냥 2024-09-02 10:02   좋아요 1 | URL
가을...이라(오늘 날씨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체호프 작품이 왠지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재미나게 읽으세요!

공쟝쟝 2024-09-0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느 여자가 그 순진한 군인의 입술을 촵촵초ㅡㅠ릅리ㅡ흐르릅 했길래 (더러움 뎨송)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잠자냥에게 잊지못할 첫 키쓰를 쓰게 하는가 ㅋㅋㅋㅋ
체호프 바보!

잠자냥 2024-09-03 09:47   좋아요 1 | URL
아니 설마 그렇게 ˝촵촵초ㅡㅠ릅리ㅡ흐르릅˝하게 했을 리가....
그리고 이거 키스에 관한 글 아니라니까.....

공쟝쟝 2024-09-03 10:06   좋아요 0 | URL
ㅇㄹㅁㄱ 가 끼어가지고 뎨송함다 ㅋㅋㅋㅋ 키쓰해주세용 앞니빨이 쏙 빠지도록 ~ㅋㅋㅋ (ㅋㅋ 쟝쟝 mz맞냐고 댓글 달거죠?)

잠자냥 2024-09-03 11:07   좋아요 1 | URL
아닝...
요즘 사랑에 빠진 분들과 가까이 지내더니.......... *먼산*

공쟝쟝 2024-09-03 19:2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사랑 좋은 거자냥! 하믄 좋은 거다!!!

독서괭 2024-09-0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제야 이 글을 읽었는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할 정도예요? (체호프 안 읽은 사람)
잠자냥님이 전달해준 내용이랑 인용문만 봐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런 극찬이라니.
그래서, 잠자냥의 첫키스는 몇살?

잠자냥 2024-09-06 09:55   좋아요 0 | URL
체호프 이제 한번 읽어보셈~

안 알랴줌.... ㅋㅋㅋㅋㅋ 알고 싶소?
18

코기러브 2024-09-08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은 처음이네요..항상 잠자냥님 글을 정독했다가 책도 찾아보고 사서 읽기도 했는데 이 글 읽고 울고 말았네요..ㅠ즐거운 댓글들 많은데 민망하지만..; ㅎㅎ 이번 체호프도 꼭 읽어야겠네요 !

잠자냥 2024-09-09 06:56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이 큰 힘이 되는 거 아시죠? 감사합니다. 이 책도 꼭 읽어보세요!
 
아무튼, 헌책 -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 아무튼 시리즈 65
오경철 지음 / 제철소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잊힌 책들의 묘지 헌책방, 그곳에서 자기만의 보물을 찾아헤매는 이의 간절한 마음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책쟁이라면 공감하며 읽을 부분이 무척 많다(사고 싶어지는 책도!) 오랜만에 국문학 관련 깨알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휴..난 헌책까지 사모으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4-09-0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 ㅋㅋㅋ
곧 그 세계로 걸어가실 것 같사오며

잠자냥 2024-09-03 09:48   좋아요 1 | URL
난 아님.. 초판본 이런 거에 관심 없음~!! 헌책도 지저분해서 별로 안 좋아함..;

공쟝쟝 2024-09-03 10:07   좋아요 0 | URL
깔끔 수집벽 자냥님은 그러실지도 😀 저는 제가 절판된 책 사 읽을 줄 몰라가지고 ㅋㅋㅋㅋ 모든 가능성은 열어둬야 흔다!!!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 / 황제의 흉상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진일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몰락한 자,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기에 떠돌 수밖에 없는 인간.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요제프 로트의 따뜻한 시선. 그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기에 더 진솔하게 다가온다. 로트는 이야기꾼이면서도 문장은 담백하고 애수가 담겨 있다. 이런 작가의 작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4-08-30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술꾼의 전설에는 삽화가 들어 있나요?

잠자냥 2024-08-30 11:09   좋아요 2 | URL
아니요, 이 책에는 삽화는 전혀 없고요. 맨 앞장에 요제프 로트가 술 마시는 사진이 한 장 있거든요? 그것만 봐도 술땡깁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8-30 13: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후후훗

잠자냥 2024-08-30 13:57   좋아요 2 | URL
😻😻😻
 
우리가 동물을 사랑할 때
엘렌 식수 지음, 김모 옮김 / 이숲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사랑과 자유, 고통, 죽음,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 여러 문제를 다룬다. 엘렌 식수의 글이라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어른이 읽기에는 조금 너무 쉽고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듯한.... 독자 대상을 좀 더 명확히 해주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8-28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렌 식수 인데도 어른이 읽기에 조금 쉬워요? 엘렌 식수.. 어려울 것 같은데.............

잠자냥 2024-08-28 15:57   좋아요 1 | URL
내 말 한번 믿어봐~ ㅋㅋ <메두사> 읽은 사람들한테는 완전 껌이야.......

잠자냥 2024-08-28 16:00   좋아요 1 | URL
이 책이 속한 시리즈가 애초부터 ˝청소년과 어른을 대상으로 언어, 이미지, 전쟁,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이를 여러 권 소책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요...
 
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상실과 발견>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나조차도 돌아보면 잃어버린 것들이 떠오른다. 지갑이나 그 지갑 안에 담겨 있던 신분증이기도 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이런 물건들이 지금까지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잃어버렸을 그 순간의 당혹감이나 잃어버린 물건의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들 말고도 나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자잘한 물건들을 잃어버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상실과 발견>에 따르면 우리가 60세가 될 즈음이면 평균 20만 개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숫자이다.

어디 물건들만 그러할까, 때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그것을 잃어버림으로써 다른 것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그런 것들-어떤 존재일 수도 있다. 나만의 기록이리라 굳게 믿었으나 그 믿음이 깨져버려 다시는 쓰지 않게 된 일기장, 남다른 추억이 있어 절대 버리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 날 사라져버린 낡은 티셔츠,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서기를 즐겼던, 그러나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재래시장, 누군가가 가져가 버린 게 틀림없을 빨간 자전거,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강아지… 특별한 기억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과 존재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섣불리 글자 몇 자로 끼적일 수 없는,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인연이 더는 닿지 않아서 또는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어서 나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이들이 있다. 그런 상실은 잃어버린 물건이나 추억이 안겨준 슬픔보다 몇 배는 더 깊고 진하게 생에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은 살아가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끌어안고, 더는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그 존재를, 대상을 그리워하면서 애달파만 하기에는 인생에는 또 다른 것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지갑 대신 새로운 지갑을, 핸드폰을 살 수도 있고 그것들이 전에 쓰던 것들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일도 종종 겪는다. 물건은 그 안에 담긴 추억을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새로 사는 것들이 더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렇지만 존재, 생명을 지닌 대상은 어떠할까? 어떤 대상과 대상을 서로 견준다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종종 이런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때로는 견주는 대상 자체가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일수도 있다. <상실과 발견>의 저자 캐스린 슐츠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얼마 전, 결혼하게 될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절대적인 사랑을 잃어버릴 즈음, 또 하나의 절대적인 사랑이 나타난 것이다. 이 두 존재-아버지와 반려자는 결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큰 사랑이 나를 떠나려는 순간에, 또 다른 종류의 커다란 사랑이 다가온다는 것은, 그리하여 어쩌면 생의 비극을, 슬픔을 그나마 잊을 수 있게, 그것이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은 이 지난한 인생을 그래도 버티며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위로는 아닐까.

사랑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꼭 이렇게 가족을 또 다른 가족으로 대체하는 형태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에서 잃어버린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그 공허가 외로움이 채워진다. 친구든 연인이든 잃어버리거나 떠난 사랑의 자리는 새로운 사람이 그 빈 공간을 매워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때는 바로 이 사람이다, 라는 확신, 이 사람이라면 어떨까 싶은 ‘발견’의 시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즉 “사랑이 우리에게 처음 제기하는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며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한없이 경이로운”(p.233)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발견에서 “절망이 아닌 경이”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애도의 이야기 구조가 상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듯, 사랑 이야기는 모두 발견의 연대기이며 특별한 발견의 개인적 역사”(p.112)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에 이어서는 사랑에 빠지는 상태, 즉 그 대상에 대한 정보를 갈망하는 상태가 된다. 사랑하는 상대를 알고 싶은 갈급함은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져 “사랑에 대한 갈망은, 그것이 육체적이건 감정적이건 지적이건 실존적이건, 언제나 ‘더 많이’ 요구”(p.162)하게 되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발견의 경이로움, 기쁨과 충만함을 던져주던 대상이, 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죽을 것만 같던 대상이 어느 날 너무나 익숙해지고 더는 발견의 기쁨을 던져주지 못해 그 대상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궁금하지도 않은 상태 또한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한 존재를 잃어버리기를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잃어버림과 찾음, 상실과 발견이 따르기 마련인 사랑이 제기하는 문제는 삶이 꾸준히 인간에게 던져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잃어버리고, 발견하고 다시 또 잃어버리고…. 그렇게 인간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지만 또 잃어버린다. 게다가 “상실은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빈번하게, 더욱 파괴적인 내밀함으로 충격”(p.290)을 던져준다.


상실이 더욱 많아지는 인생, 그 쓸쓸한 생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사랑뿐만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모든 것들을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생의 법칙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이듦이 아닐까, 제 나름의 성숙은 아닐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화한 존재가 아버지임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슐츠처럼 아버지를 사랑한 적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었음에도 이제는 꽤 나이가 들었을,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면 이제는 조금 애도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일렁거렸다. 평안히 살고 계시기를, 세상 떠나는 그날에는 가까이에서 깊은 애도를 보낼 이들이 그래도 많기를…. 이 모든 생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슐츠의 글이 주는 힘이었을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4-08-21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물건에 대한 건가 20만개라니?? 했는데 사람에 관한 이야기군요.
상실이 더 많아지는 인생에 최근 두명의 친구를 발견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ㅎㅎ 발견의 경이로움! 뭐 얼굴 본 게 최근일 뿐이긴 하지만요..
암튼 5별이군요. 흠.

잠자냥 2024-08-22 09:41   좋아요 1 | URL
물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새로운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아버지는 가고, 연인은 오고 그리고...!
엥 제가 발견한 건가요? ㅋㅋㅋ 다락방은 발견인 것 같기는한데.... 은곰탱이는 제가 발견당한 거 같음. ㅋㅋㅋㅋ

다락방 2024-08-21 2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잠자냥 님의 이 리뷰를 읽는데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독서괭 2024-08-21 20:27   좋아요 4 | URL
크~ 이 인용문을 읽으니 이 인용문을 재인용한 명저가 떠오르는군요. <잘 지내나요?> 라고 아실랑가…

다락방 2024-08-21 21:18   좋아요 6 | URL
독서괭 님 지구에서 제일 똑똑하고 매력적이라고 제가 말했던가요?? 💕

잠자냥 2024-08-22 09:42   좋아요 2 | URL
반스의 그 책에 저런 구절이 있었군요?! 다락방 님이 옮겨주시니까 정말 절묘합니다. 왜 저런 구절을 적어두지 않았을까...? 아무튼 소설 천재 다락방!!

Falstaff 2024-08-22 07: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소설 쪽은 안 읽으셔요? 기다리다 지쳐서....

잠자냥 2024-08-22 08:57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ㅋ 곧 읽고 올리겠습니다요.

단발머리 2024-08-23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죽음이 아니어도 매일, 매순간 겪게되는 이별의 순간이 있겠지요. 그래서 다시는 못 보는 사람이 있고요. 요즘 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 ‘잃어버린 사람....‘ 뭐, 이런 주제였거든요. 잠자냥님 글 읽다보니 그걸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더 많이 알고 싶어지네요. 새로운 ‘발견‘이 그 다음에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저는 그 과정에도 관심이 많고요.

이 책도 읽고 싶어요. 저는 처음 듣는 작가거든요. 일단 넣어둡니다. 캐스린 슐츠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8-23 15:55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머릿속에 가득한 잃어버린 사람.... 누구일까요? ㅎㅎ 그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새로운 발견을 어떻게 연결해 갈 것인지 그것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죠?
저도 처음 듣는 작가였는데, 에세이가 나오면 또 읽어볼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