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오랜만에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꺼내 읽었다. 여러 번 읽어도 여전히 좋은 작품. 다시 읽고 싶어진 까닭은 최근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눈사태>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은 ‘불륜’을 소재로 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현실의 나는 불륜을 극도로 혐오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면 서로 배신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윤리를 지녔다면 그래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결혼 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숨겨서는 안 된다고, 배우자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헤어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인생, 그리고 그와 얽힌 다른 이들의 인생도 거짓이 되고 만다. 이런 까닭에 현실의 나는 그 어떤 불륜 커플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떤 소설, 아니 몇몇 소설에서 그려지는 불륜의 사랑이야기에는 그처럼 단호할 수가 없다. 때로는 마음이 흔들린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그런 작품 중 단연 압도적이다. 매우 짧은 단편인데도 어쩌면 그토록 흡인력 있게 써내려갔는지 그 둘의 사랑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구로프’와 ‘안나’의 사랑이 깨지지 않기를, 그들의 작은 호텔 방이 산산조각 나지 않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그런 작품 중에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그 시절의 연인들’도 있다. 이 작품도 어떤 면에서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불륜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애잔하고 쓸쓸한, 윤리에 어긋나는데도 왠지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간절함까지 닮았다. 그 사랑이 그들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을지, 앞으로 또 어떤 의미로 남을지 짐작할 수 있기에 책을 덮은 후에도 그들이 그 사랑을 온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기를 바라게 된다.

<눈사태>는 이 두 작품의 계보를 잇게 될 것 같다. 나만의 계보랄까.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눈사태’처럼 밀어닥친 불륜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구로프와 안나처럼 여기에는 ‘이고리’와 ‘률랴’가 있다. 이고리는 어느덧 쉰 줄에 들어선 사내로, 제법 성공한 피아니스트이다. 고르바초프의 개방, 개혁 정책 덕분에 유럽 곳곳으로 투어를 다니며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유럽에서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내와 딸, 아들에게 주려고 정성껏 고른 값비싼 선물을 여러 개의 가방에 담아서 갖고 올 만큼 가정적이기도 하다. ‘구료프’가 마흔이 아직 되지 않은 나이에 열두 살 난 딸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둔 것과 조금 차이가 있다. ‘이고리’나 ‘구료프’나 모두 아내와 일찍 결혼했다. 자신의 아내를 천박하고  촌스럽다고 여기면서 집에 있기를 꺼리는 구료프와 달리, 이고리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에게 아내는 늘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눈사태’는 벌어진다. 어느 날, 홀로 휴양지로 떠난 이고리는 그곳에서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 앞에 서 있게 된다. 그런데 전화기 부스 안에서 통화 중이던 한 여인이 이고리를 돌아보며 눈물 가득한 눈으로 동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이고리는 자기가 쓸 동전 밖에 없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동전을 건넨다. 그녀가 바로 ‘률랴’이다. 구료프와 안나가 휴양지에서 만나는 장면과 닮은 듯 다른 지점이다. 구료프는 휴양지에서 흰 스피츠를 산책시키는 안나를 멀리서 흥미롭게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여자가 남편이나 친구와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애초부터 관찰하면서 마음속으로 약간의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고리는 률랴를 관찰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동전을 빼앗기고 만다.
 
구료프는 내내 흰 개를 산책시키는 안나를 지켜보면서 휴양지에서 하룻밤 정도 상대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안나와 그런 사이가 된다. 이고리와 률랴는 동전을 주고받은 그 첫날부터 불꽃이 튄다. 아니 불꽃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순간의 일탈이라고 해야 하리라. 전화를 마친 률랴가 굳이 동전을 갚겠다며 이고리에게 말을 건네고 그들은 어쩌다 보니 그날 술을 함께 마시게 된다. 그러고는 무려 야외, ‘눈’ 밭에서 서로 몸을 탐한다. 하얗게 내린 눈 위에서 광폭하게 정사를 나눈 뒤 그들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률랴의 외투는 얼룩과 물기로 망가진 상태다. 그 얼룩처럼 두 사람의 섹스는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 <눈사태>에서는 이렇듯 ‘눈’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후 이고리는 이상하게도 률랴를 잊지 못하고, 계속 그녀를 찾는다. 휴양지에서의 하룻밤 일탈로 생각한 사이였는데 현실로 돌아와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구료프와 안나, 그리고 이고리와 률라. 그들은 모두 둘 만의 비밀스러운 생활을 위태롭게 유지해 간다. 이고리와 률라, 구로프와 안나에게는 두 사람만이 은밀히 만나는 작은 호텔 방이, 그 호텔에서의 짧은 시간이 차츰 진짜 삶이 되어 버린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만큼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눈사태가 속도를 내게 되면, 그 앞의 모든 것들을 몽땅 휩쓸어버린다. 집들도, 나무들도, 전신주들도, 눈사태 직전엔 특히 고요해진다고 한다. 아마 자연은 행동하기 전에 숨 고르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 눈사태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 길은 아무도 모른다. 눈사태 스스로도. (<눈사태>, 66~68)


<눈사태>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가장 다른 지점은 이 뜻밖의 눈사태, 이고리와 률랴의 격정적인 사랑이 빚어내는 뜻하지 않은 여파가 주변 인물들, 그러니까 이고리의 가정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과정까지 내밀히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고리는 률랴에 대한 사랑을 숨길 수 없어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아내에게 털어놓게 되고, 그 폭풍은 뜻하지 않은 결과로 흐른다.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 눈사태처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와 달리 구료프와 안나 커플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견딜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는다. 조금만 더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테고, 그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되리라 생각하면서 둘만의 은밀한 만남을 이어나간다. 그렇듯 불안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남들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며 호텔 방 안에서의 ‘진짜’ 삶을 지켜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 지나갈 걸세.” 장모는 침착하게 약속했다.
 “만일 이게 지나간다면, 당치도 않은 거죠….”
 이고리의 눈에 진짜 두려움이 서렸다.
 “자네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세. 하지만 조심하게.”
 “무슨 뜻이죠?” 이고리가 눈을 들었다. 장모가 마주 쳐다보았다.
 “자네를 짓밟을 걸세.”
 “누가요?”
 “삶이.”  (<눈사태>, 110쪽)


떨어져 내린 눈사태는 언젠가는 속력을 잃고 결국은 멈추기 마련이다. 그런 후에는 ‘무사히 살아남은 자들은 질서를 향해서 신의 세상으로 기어나갈’(<눈사태>, 93쪽) 것이다. 구로프와 안나의 ‘눈사태’는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끝이 나고, <눈사태>는 눈사태가 마침내 멈춰버린 지점,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고리의 장모가 경고했듯이 그 모든 눈사태가 지나간 뒤에 그에게 남은 것은 폐허뿐이다. 눈사태를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몰려오는 눈사태가 위험함을 알아차리고 피했다면, 그날 그 새하얀 눈 위에 그 여자의 몸 위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이고리의 삶에 그런 폐허는 생기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이고리는 률랴에게로, 그 새하얀 눈 위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행복을 맛보았다. 외투에 생긴 얼룩쯤은 지우면 그만이었다.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면 새 외투를 사주면 그만이었다. ‘정말 의미 없는 매일 밤이고, 흥미도 가치도 없는 나날들이다! 미친 듯한 카드놀이, 폭식, 폭음, 끝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들. 쓸데없는 일과 시시한 대화로 좋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날개도 잘린 삶. 실없는 농담뿐이다. 정신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듯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266쪽) 외치던 구로프의 삶이 안나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의미를 찾았듯이…….

꼭 불륜이 아니더라도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둘만의 세계가 존재할 때 다른 모든 것은 의미를 잃고, 자신들만의 삶이 진짜라고 여기게 된다. 다른 것들은 중요성을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깊이 헤아리지 않고, 아니 그럴 틈도 없이 그 사랑에 몸을 던지는 것이리라. <눈사태>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눈사태처럼 갑자기 닥친 사랑과 그 불가항력적인 운명 앞에 나약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저마다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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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03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참... 제가 잠자냥 님의 서재를 끊어내야지 이거 원 책 사는데 전재산 탕진하겠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예전부터 보관함에 넣어두고 있던 책인데 비로소 구매해야 겠습니다. 눈사태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요.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별하는지, 그 후에는 어떤 삶을 사는지요. 좋은 글 감사해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0-09-03 09:58   좋아요 1 | URL
아니, 탕진하면 아니되옵니다.... 그치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꼭 읽으세요. 사세요~ ㅎㅎ
<눈사태>는 책값이 비싸서.. 참 뭐라 사라고 말씀드리기 뭣합니다요. ㅠ_ㅠ 200쪽도 안 되는데 책값이... ㅠㅠ
암튼 저는 토카레바 작품이 좋아서 걍 샀습니다만, 다락방 님은 지난번에 산 토카레바 단편집 먼저 읽으시고 그 작가 느낌이 괜찮으면 그때 생각해보세요.ㅎㅎㅎ

다락방 2020-09-03 10:05   좋아요 0 | URL
제가 토카레바 단편집을 샀나요? 검색해보고 올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3 10:06   좋아요 0 | URL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6월달에 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딨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아- 점심 먹을 자격도 없네요, 저는... 하아-

잠자냥 2020-09-03 10:11   좋아요 0 | URL
크하하하하하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쳐 이 사람아! <티끌 같은 나> 그것도 제 리뷰 보고 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ㅋㅋㅋㅋㅋ 다락방 님 머릿속에서 기억력 눈사태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9-03 10:14   좋아요 0 | URL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도 산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3 10:16   좋아요 0 | URL
티끌 같은 나 표지 보고 생각났어요. 잠자냥 님 리뷰 보고 땡투하고 샀다는게요. 지금은 어딨는지 모르겠지만...지가 어딘가엔 있겠죠.

잠자냥 님 댓글 보고 헉! 하고 구매리스트 가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검색해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없네요. 이건 안산게 맞는가봐요. 휴... ㅠㅠ

케이 2020-09-0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오랜만이예요. 엄마 때문에 정신이 없다가 오랜만에 아는 책 나와서 댓글 드려요. 전 안톤 체호프 선생이 쓴 불륜 소설 중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보다 ‘사랑에 관하여‘ 가 더 좋았어요. 나중에 두 남녀가 기차에서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만 하염없이 쏟을 때 저도 카페에서 그 책 읽으며 눈물을 질질 짰답니다. 여자가 남자한테 일부러 고약하게 구는 것도 좀 공감갔고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대학교 때 읽었는데, 유부남인 주제에 심심풀이처럼 가벼운 불륜을 일삼아온 남자 주인공이 마음에 안들었어요. 나중에 서른 넘어 읽어보니 남자가 이제서야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단 말에 그 둘의 사랑이 조금은 수긍이 가더군요. 그 둘은 어찌 되었을까요? 결국 시간이 지난 뒤 그 호텔에서 이별을 고하지 않았을까요. 삭막한 시기지만 즐겁게 지내시길 기도해요.

잠자냥 2020-09-03 14:16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에요. ㅎㅎ 안 그래도 엄마가 많이 안 좋아지셨나 조금 걱정했습니다. ㅎㅎ 별일 없으시길 바라고요.
‘사랑에 관하여‘도 분명 읽었을 텐데 생각이 안 나네요; ㅎㅎㅎ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자꾸 오타나서 ‘게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으로 쓰게 되는데, ㅐ ㅔ 차이 하나로 참 느낌 달라지네요. ㅋㅋㅋㅋㅋ 암튼)에서 그 두 사람도 결국에는 이별을 고하게 되겠지요. <눈사태>는 그런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케이 님도 건강하시고, 가족 모두 평안하길 바랄게요.

Alex 2020-09-0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보는 좋은 독후감이었는데... 마지막 설명이 몰입감을 떨어뜨립니다.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체호프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눈사태˝.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0-09-07 21:07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책 만나시길 기원합니다.

2020-10-15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복의 소녀 쏜살 문고
크리스타 빈슬로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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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의 소녀>를 한두 페이지 넘기면 지은이 크리스타 빈슬로의 사진이 실려 있다. 까만 머리에 조용한 눈, 잔잔하지만 어쩐지 슬퍼 보이는 미소. 표정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복장이다. 그녀는 셔츠와 넥타이에 트위드 재킷을 입고 있다. 1888년에 태어나 1944년에 세상을 떠난 그녀이기에 그 당시 이런 차림새는 틀림없이 파격이었을 것이다. 크리스타 빈슬로는 20세기 초, 연극과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며, 레즈비언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준 선구적 작가로 꼽힌다. 그런데도 나는 그이의 작품을 이제야 처음 읽는다.

크리스타 빈슬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은 채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나치 독일의 폭정이 거세지자 조국을 등진 채 미국, 프랑스 등 해외를 떠돌게 된다. 긴 망명 생활 탓에 작가로서의 입지는 물론 모국어를 잃게 된 빈슬로는 비참하게도 더는 작품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빈슬로는 2차 세계 대전 동안 레지스탕스로 활약했으나 전쟁 막바지에 나치 스파이로 오인을 받고, 반려자와 함께 남프랑스 숲속에서 살해당한다. 이런 까닭에 그동안 그녀의 작품은 거의 잊히고 만다.

<제복의 소녀>에는 그런 작가의 삶과 정체성이 투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는데, 1부에서는 빈슬로의 자전적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마누엘라’의 탄생과 유년 시절, 가족들 이야기가 펼쳐지고, 2부에서는 그녀가 억압적인 기숙사 학교에 들어간 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1958년 <제복의 처녀>라는 영화로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유럽, 미국은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흥행했다고 하는데, 여성 제자와 여성 교사의 ‘동성애’ 코드가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며 지금까지도 ‘여자 기숙사 학교’를 소재로 한 영화에 일종의 클리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단다.

영화는 원작의 1부에 속하는 마누엘라의 탄생과 유년 시절 이야기는 생략된 채, 2부에 속하는 기숙학교 입학 장면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마누엘라의 성장 과정은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잘 나가던 군인 아버지와 다정하고 따뜻한 어머니, 그리고 두 오빠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마누엘라는 아낌없는 사랑과 보호 속에 행복하게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 시기 마누엘라에게 큰 고민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종종 마누엘라는 여느 소녀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과 인디언 놀이를 할 때, 마누엘라는 남자 아이들처럼 바지를 입고 허리에 무기를 차고 싸우러 나가고 싶다. 그런데 마누엘라는 여자이기 때문에 치마를 입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 마누엘라에게 허락된 진정한 자유는 고작 체조를 할 때뿐이다. 그때만 바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누엘라가 처음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채)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은 오빠의 부탁에서 시작된다. 오빠 ‘베르티’는 마누엘라가 다니는 학교의 ‘에바’에게 관심이 많다. 어느 날 오빠는 마누엘라에게 에바에게 가서 자기 이야기 좀 해보라고 넌지시 부탁한다. 그때부터 에바를 관심 있게 지켜본 마누엘라는, 자기도 모르게 에바를 좋아하게 되고, 어느덧 오빠의 부탁은 안중에도 없어지고 만다. 에바 앞에 나서자니, 어쩐지 형편없이 초라한 기분이 들어 몇 날 며칠 몰래 에바 뒤를 밟기만 한다. 그럴 때도 자기 옷차림에 불만을 느낀다. 원피스는 싫다. 오빠처럼 바지를 입고 싶다. 그런 모습으로 에바 앞에 서고 싶다! 왠지 모르지만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다는 엄마의 말도 어린 마누엘라의 마음에 걸린다. 하느님은 가톨릭교회에만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두 번째 정체성 혼란은 가깝게 지내던 소년 ‘프리츠’의 엄마 때문에 찾아온다. 프리츠와 서로 좋아하면서 다정하게 지내던 마누엘라는 우연히 프리츠의 엄마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로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 쏠리기 시작한다. 프리츠네 집에 자주 놀러가는 것도 어쩐지 그 애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프리츠 엄마를 향한 애정으로 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크리스타 빈슬로가 묘사하는 마누엘라의 애정과 열정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런 줄도 모르고 마누엘라의 아버지 ‘마인하르디스’는 어린 딸이 벌써부터 남자 아이와 가깝게 지내는 게 못마땅해서 프린츠와 떼어놓으려는 생각에 딸을 엄격하기 짝이 없는 기숙학교에 보내버린다. 그리고 자기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마누엘라의 성 정체성을 위와 같은 장면들을 통해 짐작하고도 남게 된다. 여자를 좋아하는 마누엘라가 소녀들만 모인 기숙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어떨지 조금은 예상 가능하기도 하다. 같은 학교에 머무는 다른 소녀와 열렬한 사랑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싶은데, 뜻밖에도 그 대상은 모든 아이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이다. 프리츠의 엄마를 좋아했고, 기숙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이 아닌 선생님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되는 마누엘라. 마누엘라는 왜 또래가 아닌 훨씬 나이 많은 여성을 향한 애정을 품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일찌감치 잃어버린 엄마를 대체할 대상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크리스타 빈슬로는 소녀의 그 고독감과 외로움 위에 선명하게 ‘정체성’ 문제를 덧입힌다.

남다른 정체성으로 고통 받는 마누엘라의 삶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제복’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 제복은 마누엘라가 기숙학교에 입학하면서 입게 되는 ‘교복’, 그 푸르죽죽한 남색의 촌스럽고도 억압적인 제복을 뜻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여성’과 ‘이성애’라는,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강요된 젠더 규범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성이라는 성 역할과 이성애 규범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억압적인 제복에 비하면 낡은 남색 교복은 그나마 구속력이 조금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 교복은 학교를 떠나고 벗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성애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성애자만이 정상이라는 그 ‘제복’은 평생 마누엘라를 따라다니며 얽어맬 것이다. 이 제복은 벗고 싶어도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강력한 규범이다.

심지어 이 제복은 아름답고 젊고, 재산도 있고, 매력 있고, 총명한 데다가 심지어 귀족 출신인,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모든 걸 다 갖춘 ‘엄친딸’ 같은 선생님이 대체 결혼도 마다하고, 왜 이 무덤 같은 기독교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썩어 가고’ 있는 것일까? 동료 교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의아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선생님에게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크리스타 빈슬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또한 어떤 의미로는 ‘마누엘라’와 비슷한 처지임을 작품 곳곳에서 은연중 드러낸다.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이 동료 교사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결정적이다.


“이곳에 너무 빠지지 않는 게 좋아요. 선생님도 언젠가는 지칠 거예요. 학생들은 계속 들어오고 나가지만, 결국 곁을 스쳐 갈 뿐입니다.”
“그래요. 내 곁을 스쳐 갈 뿐이죠.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적어도 두 세 명은. 마드무아젤, 정말이에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자신감 넘치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렸다.
“그래도 몇 명은 나를 잊지 않겠죠.” (<제복의 소녀>, 208쪽)


약혼자와 파혼하고 기숙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베른부르크 선생처럼, 마누엘라 또한 결혼에 부정적이다. 장교의 부인이 되기를 꿈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마누엘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의견을 밝히면서 “남자가 싫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만난 거야."라는 친구의 말을 부정하면서 프리츠를 떠올리기도 한다. 틀림없이 프리츠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마누엘라가 생각하기에 결혼은 좋아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누엘라의 아버지, 이제는 퇴역한, 능력도 없고, 방탕하기만한 이 아버지는 예쁜 딸을 앞세워 한몫 잡아볼 꿈에 부풀어 있다. 딸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멋진 장인이 되어 북독일 어디에 있는 훌륭한 소유지의 넓은 뜰을 거닐거나, 사냥 친구들에게 붉은 포도주와 고급 시가를 대접하는 자신의 모습을 즐겨 상상한다. 딸내미가 부자 남자를 잡아서 집안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도 마누엘라도 모두 이런 가부장제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들은 이성애자가 아니므로, 이 ‘딸’이라는 성 역할에 주어진 ‘제복’의 굴레는 얼마나 더 버거울까.


“저는 남자 아이가 되고 싶어요. 여자인 것이 정말 싫어요. 이런 머리 모양, 이런 치마가 싫어요. 집에서는 오빠하고 체조할 때 바지를 입었어요. 전 항상 바지를 입고 싶어요. (......) 저는 여자가 싫어요. 남자가 되어서 폰 페른부르크 선생님을 위해 살고 싶어요.” (<제복의 소녀>, 189쪽)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남자가 되어서 좋아하는 사람 앞에 당당히 서고 싶었던 마누엘라.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살고 싶었던 마누엘라. 연극 때문에 처음 남성 옷차림을 하고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자유롭고 홀가분한 기분에 잔뜩 젖어드는 마누엘라. 이 여성이라는, 이성애 중심의 ‘제복’ 안에 갇힌 소녀의 꿈과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마누엘라를 괴롭힌 그 ‘제복’의 억압적인 규범들은 여전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결말은 여러 의미로 쓸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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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빅토리야 토카레바 지음, 김서연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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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태처럼 갑자기 닥쳐온 사랑 앞에 무너져 가는 한 남자와 그 가족 이야기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펼쳐진다. 흔한 불륜 이야기인데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역시 토카레바의 시선과 문장 때문인 듯.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닮은 듯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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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의 소녀 쏜살 문고
크리스타 빈슬로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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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제복 안에 갇힌 소녀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수작. 다 읽고 나면 책 맨 앞을 장식한, 넥타이와 남성 정장 차림의 크리스타 빈슬로 사진이 어쩐지 쓸쓸하게 다가온다. <제복의 처녀>(1958) 영화도 궁금하다. 특히 베른부르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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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형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3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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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만으로도 홀딱 반해버린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두 번째로 읽은 작품은 <판사와 형리>이다. 제목만 보면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는다. 왠지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작품 중 첫 번째인 ‘판사와 형리’는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첫 페이지부터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죽은 사람은 스위스 베른 시의 유능한 형사인 슈미트 경위.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자신의 푸른 메르세데스 안에서 발견된다. 그 유능한 부하직원을 잃은 베르라하 경감이 사건을 맡게 되고, 동료인 찬츠와 함께 수사를 진행한다. 이윽고 슈미트의 시체가 발견된 차 옆 길가에서 총알 하나를 줍는다. 베르라하는 죽은 슈미트의 집에도 찾아가고, 그의 일기에서 ‘G.’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한 글자를 발견한다. 이 두 가지 단서로 베르라하는  살인자를 쫓기 시작한다.

‘추리소설’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던 터라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데, 이 작품은 어쩐지 좀 특이하다. 대개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탐정이나 수사관, 형사 등이 기막히게 잘 돌아가는 머리를 굴려 꽁꽁 숨겨진 단서를 발견하고, 그 단서를 교묘하게 엮어서 아주 썩 훌륭한 결과를 도출해낸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 단서와, 단서를 엮어서 빚어낸 과정이 정교하면 할수록 그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판사와 형리’ 및 뒤에 실린 ‘혐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놀랍도록 잘 짜인 이야기구조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꽉 막힌 사건에 답답해 하다가 어느 순간(주로 끝 부분에 이르러) 와! 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추리(탐정)소설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이 늙은 수사관인 베르라하가 첫 번째 단서를 발견해내는 과정도 매우 싱겁다. 죽은 슈미트의 메르세데스 근처를 조사하다가 그냥 ‘우연히’ 총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우연’이라는 키워드는 <판사와 형리>에 실린 두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한다. 뒤렌마트가 보기에 이 세계는 계획보다는 ‘우연’의 지배를 받고 있다. 때문에 ‘판사와 형리’, ‘혐의’ 두 작품에서 범죄를 추적하는 노수사관 베르라하 역시 우연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사관은 대충 이리저리 쏘다니는데, 우연히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싱거운 이야기인가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에서 말하는 ‘우연’은 그런 작은 우연-그러니까 뜻밖에 총알을 발견하는-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되는 우연을 의미한다. 베르라하는 인간이 타인의 행동 방식을 자신 있게 예견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나아가 만사에 개입해 작용하는 ‘우연’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범죄는 폭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이 노수사관과 40여 년 전에 불꽃 튀는 토론을 벌인 남자, ‘가스트만’은 ‘인간관계의 뒤얽힌 상태야말로 인식조차 되지 못할 완전범죄’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매우 많은 범죄가 처벌되지 않은 상태로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데, 그때 가스트만은 베르라하에게 호언장담한다. 자네 코앞에서 범죄를 저지를 것이며, 자신의 범죄를 절대로 입증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자, 여기서 눈치 빠른 사람은 ‘가스트만’의 이름에서 문제의 이니셜 ‘G’ 추측해낼 수 있을 것이다. 40여 년 전 터키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나눈 인간 본성과 범죄 심리에 관한 두 사람의 토론이 오랜 세월이 지나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한 스위스 형사의 목숨을 앗아간 것일까?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우연은 두 번째 사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혐의’에서 베르라하는 ‘우연히’ 펼쳐 든 <라이프>지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어떤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이 늙은 수사관에게는 사실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런 설정도 흥미롭다. 죽음을 앞둔 수사관이라!). 전편인 ‘판사와 형리’에서 이 사실이 언급되어 그는 급하게 수술을 받게 되는데,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던 중 한 잡지에 실린 사진을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훙거토벨이 주의 깊게 바라보는 모습을 베르라하는 놓치지 않는다. 훙거토벨의 얼굴에 스쳐가는 온갖 미묘한 표정을 감지한 베르라하는 수사관 특유의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질문한다. 무슨 이유로 그 한 장의 사진에 그토록 집착하느냐고. 훙거토벨은 사진 속 인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과 집시를 가둔 수용소 안에서 마취 없는 수술을 집행했던 고문광 넬레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넬레는 어쩐지 현재 취리히에서 버젓이 고급 병원을 운영하는 어느 의사와 동일 인물인 것 같다. 이 막연한 ‘혐의’만으로 베르라하는 그 의사의 뒷조사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범죄 현장도, 살인도, 살인자도 없다. 단지 혐의만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혐의만으로도 어떤 범죄(자)를 쫓는 일은 정당한 것일까? 이런 의문은 베르라하도 품고 있다.
 

“혐의란 끔찍스러운 것이며 악마한테서 나오지. 어떤 혐의를 품는 것처럼 사람을 고약하게 만드는 게 없다네. 그래서 내 직업을 곧잘 저주했네. 모름지기 우리는 혐의의 책동을 받아서는 안 되거든.” (‘혐의’, <판사와 형리>, 138쪽)


그럼에도 이 혐의는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현장을 오가는 늙은 수사관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판사와 형리’에서 ‘G’라는 이니셜과 40여 년 전, 완전 범죄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겠다는 한 미치광이의 선언, 나치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잔혹 행위를 저지른 자가 신분을 숨기고 승승장구하는 의사가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 등으로 은퇴를 앞둔 시한부 인생의 노수사관은 ‘즐기듯’ 범죄를 저지르는 미치광이들의 뒤를 기꺼이 쫓는 것이다. <판사와 형리>의 매력은 바로 이런 미치광이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동기를 파헤치는 것과 그 동기를 파헤치고 악을 처벌하기 위해서라면(비록 몇 십 년이 지났을지라도!) 기꺼이 자기 한 몸을 내던지는 정반대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해서 ‘기분이 내키면 멋대로 선(善)을 연습하고, 또 기분이 달라지면 악(惡)을 사랑하는 그런 인생’(77쪽)을 살아갈 수 있다. 가스트만이나 넬레처럼 악 그 자체를 즐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악을 평생 뒤쫓는 베르라하 같은 인간도 있는 것이다. 베르라하는 부와 명성 뒤에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냉혹한 범죄자 가스트만의 본질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 스스로 말하듯이 가스트만을 ‘심판할 유일한 판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으로 재미나게도 베르라하가 고른 형리는 ‘법’의 범위를 벗어난다. 결함 많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세상이기에 악을 심판하고 그것을 처단하는 형리가 때로는 ‘법’의 범위를 벗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또한 ‘우연’이 빚어낸 심판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악과 선을 넘나들 수 있다. 뒤렌마트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독일 땅에서 벌어졌던 일은 특정한 조건만 갖춰지면 어떤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조건들이야 다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인간, 어떤 민족도 예외가 아닙니다. (....) 인간 사이에는 오로지 한 가지 차이밖에 없다는 겁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차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유혹에 빠진 자와 그것을 모면한 자라는 구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혐의’, <판사와 형리>,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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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8-27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열광을 했는데요, 좀 지나서 <약속>을 읽고는 아예 뒤집어졌답니다. ㅋㅋㅋㅋ
세상에 그런 추리소설도 있는가 싶었습지요. <약속>도 놓치지 마세요.

잠자냥 2020-08-27 17:07   좋아요 1 | URL
예! <약속>도 찜 완료입니다!
이 사람 증말 천재입니다. 천재. ㅎㅎ

비연 2020-08-2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 이거 어제 받았는데.. 좀 이따 읽을까 했건만. 잠자냥님 페이퍼 덕분에 다음 책으로. ㅋㅋ

잠자냥 2020-08-28 12:35   좋아요 0 | URL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비연 님께 이 작품은 약간 뭔가 좀 허전한(?) 심심한(?) 그 무엇이 느껴질 법도 합니다만, 좀 색다른 추리소설로 읽힐 거예요.

coolcat329 2020-08-2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폴스타프님 글 읽고 이 책과 <약속> 찜해둔 책인데 이번엔 정말 구입해야겠습니다.

Falstaff 2020-08-28 12:40   좋아요 1 | URL
이것으로 쿨캣님도 대머리 뚱보 할아버지의 팬으로 들어서게 되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8-28 12:35   좋아요 1 | URL
쿨캣 님은 원래 대머리 뚱보 할아버지 팬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ㅋㅋㅋㅋ

coolcat329 2020-08-28 2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네! 맞습니다. 근데 잠자냥님의 팬이기도 하지요.☺☺☺

잠자냥 2020-08-28 22: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