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인의 키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승주연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뜻하지 않은 일로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을 수도 있고 자기의 의지가 발현되지 않았음에도 어쩌다 보니 휩쓸려 그렇게 되기도 한다. 궤적의 크기가 매우 커서 또렷하게 알 수 있을 때도 있고 너무나 미미해 곧 그 흔적이 사라지고 기억에서 쉬이 잊히기도 한다. 때로는 기억 속에 남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자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몹시 사소할지언정 조금이라도 삶의 궤적을 바꿔놓았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지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안톤 체호프. 이 미치광이 같은 남자는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그 뜻하지 않은 일, 그 미미한 균열을 포착해 묘사하는 데 가히 천재와도 같은 솜씨를 발휘한다. 체호프를 나는 이제 미치광이 같은 남자라고 서슴지 않고 부르겠다. 이 세계에서 단편 소설 좀 쓴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작가로 꼽으며 흠모하고 사랑하다 못해 그를 뛰어넘어보고자 애 쓰지만 결국 그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끝내 체호프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를 외치며 그에게 바치는 듯한 무수한 단편을 남기고 죽어가는 그 심경을 나는 새삼 또 절감했다. 스물 또는 서른 그즈음에는 느낄 수 없던 그 무엇을 느끼며. 그만큼 내가 인생을 더 살았기 때문인지, 이제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살아온 시절들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인간의 생에 불쑥 끼어드는 그 뜻하지 않은 일의 ‘위력’을-때로는 미미할지라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인지 이 검은 단편집 <낯선 여인의 키스>는 한없이 강렬하게 남는다.

키스 이야기부터 해보자. 표제작인 ‘낯선 여인의 키스’는 체호프 마니아를 자처하며, 그의 (국내에 번역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노라 자부하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 때문에 그의 단편집을 다시 읽었고(‘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벌써 몇 번째인가!), 그로 인해 체호프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다시, 그것도 이 나이에 읽을 수 있었음을 행운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다시 키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간에게는 누구나(는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나이길 바란다) 첫 키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생애 최초의 키스이기도 하고(이것은 말 그대로 첫 키스이다), 어떤 대상과의 첫 키스이기도 하다(이것은 대상이 달라질 때마다 매번 그 또는 그녀와의 첫 키스로 갱신된다). 그런데 이 첫 키스를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관계에서도 그렇다. 눈에 두드러진 변화가 있기도 하지만 몹시 사소해 제 자신도 모를....(수가 있나? 싶지만 아무튼 둔한 사람도 있으니 그렇다 치자)만 한 변화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떻든 대부분의 이들에게 첫 키스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으리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 이런 구절이 그래서 널리 애송되는 것이 아닐까.

<낯선 여인의 키스>에도 그런 이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라보비치’- 너무나 평범하고 애매하게 생겨 도무지 누군가의 애정은커녕 관심도 주목도 받지 못하는 이 남자는 우연히 초대받은 무도회에서 한 여인의 열정적인 키스를 받게 된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받은 키스라면 더 없이 좋을 텐데, 하필이면 어두운 장소에서 급박하게 이뤄진 짧은 입맞춤- 단언컨대 그에게 입을 맞추고 사라진 여인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도리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퍼붓고 사라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어쩌면 좋으랴, 이 남자는 분명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흠모해 남몰래 입을 맞추고 사라진 것이라 믿고 그날부터 꿈꾸듯 몽상에 잠긴다. 삶이 새롭다. 무료하기 짝이 없던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누구일까 공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누군가 그를 다정하게 대했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어리석지만 특별한,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 그는 꿈속에서도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p.183) 못한다.

그런 데다가 자신감까지 생겨난다. 그 흔한 로맨스는커녕 부대에서 동료들에게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 소심한 남자는 낯선 여인의 단 한순간 뜨거운 입맞춤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들, 그러나 어쩐지 자기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본질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 자기도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의 평범한 인생 그 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얻는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며 언젠가는 모두가 겪는 일을 겪게 될 거야"(p.189). 자신이 평범하며 자기 삶 또한 평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쁘고 힘이 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라보비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이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간직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그 기쁨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심지어 라보비치처럼 원하던 대상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첫 키스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녀가 누구일까, 과연 나를 사랑하고 흠모해서 일어난 일일까, 나의 로맨스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홀로 상상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한 순간 일어난 농담 같은 운명의 기적은 곧 사그라지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게 된 지금, 입맞춤과 관련된 일화, 자신의 조바심, 불확실한 희망과 실망이 또렷하게 교차’하면서 삶은 다시 지리멸렬하고 보잘것없으며 무료하며 초라한 그것으로 남기 마련이다. ‘온 세상과 그의 삶이 이해할 수 없고 목적도 없는 농담’(p.195) 같기만 하다.

리보비치의 삶만 그러하지는 않다. 매일 썰매를 타러 가서 썰매를 탄 채 아래로 내려갈 때만 작은 목소리로 "당신을 사랑해요, 나쟈!"라고 외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 고백을 들으며 바람이 들려준 소리인지 등 뒤의 남자가 고백한 소리인지 또렷하게 알 수 없음에도 그 소리에 포도주나 모르핀에 중독되듯 중독되는 ‘나’와 ‘나젠카’(<농담>), 그들은 이제 이 말을 하지 않고 듣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썰매로 산비탈을 내려오는 건 무섭지만, 공포와 위험은 수수께끼로 남아 나젠카 그녀를 괴롭히는 그 말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한다. ‘나’와 바람 중 누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제 나젠카는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떤 잔에 술을 따라 마시든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p.19)

약속어음을 받으러 찾아간 여자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진창’같은 일에 얽매이는 두 남자(<진창>)도 있다. 그들은 돈을 받아내기는커녕 여자에게 홀린 듯 마음까지 빼앗겨 버린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구로프’와 ‘안나’는 또 어떠한가! 우연히 만난 바닷가에서 나눈 몇 차례의 대화가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녀 또한 다른 여성들과 똑같이 기억에서 잊히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 한겨울이 되어도 기억 속 그녀는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또렷하고 오히려 기억은 점점 더 생생해진다. 벽난로 속에서 눈보라 소리가 들릴 때면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일이 떠오른다. 그 짧은 추억은 이루고 싶은 꿈이 되고, 상상은 어느덧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마치 낯선 여인의 키스를 받은 라보비치가 꿈꾸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구로프와 안나에게도 그 꿈같은 날이 부서지는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고 나면 여전히 단조롭고 느리며 근심 없는 나날이 이어지리라......



구름 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바람이 슬픈 듯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연도 울음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인간의 단조로운 일상을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수산나나 약속어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양심에 찔려서 이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대신 그들은 그때 일을 회상하고 그녀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들의 삶에 우연히 발생한 우스꽝스러운 농담처럼 그 일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노년에 떠올리면 기분 좋을 법한 일화인 것처럼....(p.80)



“우리는 우리의 평생을 정원에 쏟았지 내 꿈에는 사과나무와 배나무만 나올 정도야. 물론 이건 좋은 일이고,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가끔은 단조로운 삶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어.” (p.118) <검은 수사>의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도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체호프가 자신의 작품에서 말하듯이 인생은 ‘하찮거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의 대가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게다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p.162)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평범한 학자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15년을 공부하고 밤낮으로 연구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불행한 결혼을 견디고 온갖 종류의 바보 같은 짓과 잊고 싶은 부당한 일을’(p.162) 저지른 후에야 자신이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 아닌가. 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출구도 없는 덫에 걸려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그의 의지와 달리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게 되는데도 도무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면 대답을 듣지 못하거나 그가 알고 싶은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을 듣게‘(p.226)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체호프는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그렇기에 때로 “운명이 뜻하지 않게 낯선 여인의 얼굴로 그를 다정하게” 대한다는 것, 바로 우리를 다정하게 대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이 있음으로 인간은 이 생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체호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여름날의 꿈과 장면들을 떠올리며 비록 자신의 삶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그 꿈에 기대어 또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 안을 서성이며 추억을 더듬고 미소를” 지으며 “추억은 이루고 싶은 꿈이 되고, 상상은 어느덧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p.39) 변하면서 그렇게 세월이, 생이 흘러간다는 것을.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8-3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사야겠다.

잠자냥 2024-09-02 10:01   좋아요 1 | URL
다락방이 젤 잘하는 말....

은하수 2024-08-31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 받았습니다~~ 땡투도 보냈는데 받으셨나요~~~?
리뷰 읽고 나니 얼른 읽고 싶네요.
제가 모으는 흔치 않은 시리즈인데
이렇게 검은색으로 나와서 아닌 줄 알았잖아요.

리뷰도 재밌게 잘 읽었어요!

잠자냥 2024-09-02 10:02   좋아요 1 | URL
녹색광선 이 시리즈 예스24에서는 종종 다른 표지로 나오는 거 알고 계세요...? (응?)

그레이스 2024-09-02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2탄 이네요
지난번에 여러 출판사 번역책 소개하신거 보고 이번에는 체호프다 했는데...^^
그래서 이 책 샀습니다.^^*
10월에는 체호프의 희곡과 단편을 읽을 계획이예요 ^^

잠자냥 2024-09-02 10:02   좋아요 1 | URL
가을...이라(오늘 날씨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체호프 작품이 왠지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재미나게 읽으세요!

공쟝쟝 2024-09-0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느 여자가 그 순진한 군인의 입술을 촵촵초ㅡㅠ릅리ㅡ흐르릅 했길래 (더러움 뎨송)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잠자냥에게 잊지못할 첫 키쓰를 쓰게 하는가 ㅋㅋㅋㅋ
체호프 바보!

잠자냥 2024-09-03 09:47   좋아요 1 | URL
아니 설마 그렇게 ˝촵촵초ㅡㅠ릅리ㅡ흐르릅˝하게 했을 리가....
그리고 이거 키스에 관한 글 아니라니까.....

공쟝쟝 2024-09-03 10:06   좋아요 0 | URL
ㅇㄹㅁㄱ 가 끼어가지고 뎨송함다 ㅋㅋㅋㅋ 키쓰해주세용 앞니빨이 쏙 빠지도록 ~ㅋㅋㅋ (ㅋㅋ 쟝쟝 mz맞냐고 댓글 달거죠?)

잠자냥 2024-09-03 11:07   좋아요 1 | URL
아닝...
요즘 사랑에 빠진 분들과 가까이 지내더니.......... *먼산*

공쟝쟝 2024-09-03 19:2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사랑 좋은 거자냥! 하믄 좋은 거다!!!

독서괭 2024-09-0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제야 이 글을 읽었는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할 정도예요? (체호프 안 읽은 사람)
잠자냥님이 전달해준 내용이랑 인용문만 봐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런 극찬이라니.
그래서, 잠자냥의 첫키스는 몇살?

잠자냥 2024-09-06 09:55   좋아요 0 | URL
체호프 이제 한번 읽어보셈~

안 알랴줌.... ㅋㅋㅋㅋㅋ 알고 싶소?
18
 
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상실과 발견>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나조차도 돌아보면 잃어버린 것들이 떠오른다. 지갑이나 그 지갑 안에 담겨 있던 신분증이기도 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이런 물건들이 지금까지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잃어버렸을 그 순간의 당혹감이나 잃어버린 물건의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들 말고도 나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자잘한 물건들을 잃어버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상실과 발견>에 따르면 우리가 60세가 될 즈음이면 평균 20만 개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숫자이다.

어디 물건들만 그러할까, 때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그것을 잃어버림으로써 다른 것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그런 것들-어떤 존재일 수도 있다. 나만의 기록이리라 굳게 믿었으나 그 믿음이 깨져버려 다시는 쓰지 않게 된 일기장, 남다른 추억이 있어 절대 버리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 날 사라져버린 낡은 티셔츠,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서기를 즐겼던, 그러나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재래시장, 누군가가 가져가 버린 게 틀림없을 빨간 자전거,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강아지… 특별한 기억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과 존재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섣불리 글자 몇 자로 끼적일 수 없는,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인연이 더는 닿지 않아서 또는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어서 나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이들이 있다. 그런 상실은 잃어버린 물건이나 추억이 안겨준 슬픔보다 몇 배는 더 깊고 진하게 생에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은 살아가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끌어안고, 더는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그 존재를, 대상을 그리워하면서 애달파만 하기에는 인생에는 또 다른 것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지갑 대신 새로운 지갑을, 핸드폰을 살 수도 있고 그것들이 전에 쓰던 것들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일도 종종 겪는다. 물건은 그 안에 담긴 추억을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새로 사는 것들이 더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렇지만 존재, 생명을 지닌 대상은 어떠할까? 어떤 대상과 대상을 서로 견준다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종종 이런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때로는 견주는 대상 자체가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일수도 있다. <상실과 발견>의 저자 캐스린 슐츠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얼마 전, 결혼하게 될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절대적인 사랑을 잃어버릴 즈음, 또 하나의 절대적인 사랑이 나타난 것이다. 이 두 존재-아버지와 반려자는 결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큰 사랑이 나를 떠나려는 순간에, 또 다른 종류의 커다란 사랑이 다가온다는 것은, 그리하여 어쩌면 생의 비극을, 슬픔을 그나마 잊을 수 있게, 그것이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은 이 지난한 인생을 그래도 버티며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위로는 아닐까.

사랑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꼭 이렇게 가족을 또 다른 가족으로 대체하는 형태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에서 잃어버린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그 공허가 외로움이 채워진다. 친구든 연인이든 잃어버리거나 떠난 사랑의 자리는 새로운 사람이 그 빈 공간을 매워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때는 바로 이 사람이다, 라는 확신, 이 사람이라면 어떨까 싶은 ‘발견’의 시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즉 “사랑이 우리에게 처음 제기하는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며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한없이 경이로운”(p.233)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발견에서 “절망이 아닌 경이”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애도의 이야기 구조가 상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듯, 사랑 이야기는 모두 발견의 연대기이며 특별한 발견의 개인적 역사”(p.112)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에 이어서는 사랑에 빠지는 상태, 즉 그 대상에 대한 정보를 갈망하는 상태가 된다. 사랑하는 상대를 알고 싶은 갈급함은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져 “사랑에 대한 갈망은, 그것이 육체적이건 감정적이건 지적이건 실존적이건, 언제나 ‘더 많이’ 요구”(p.162)하게 되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발견의 경이로움, 기쁨과 충만함을 던져주던 대상이, 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죽을 것만 같던 대상이 어느 날 너무나 익숙해지고 더는 발견의 기쁨을 던져주지 못해 그 대상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궁금하지도 않은 상태 또한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한 존재를 잃어버리기를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잃어버림과 찾음, 상실과 발견이 따르기 마련인 사랑이 제기하는 문제는 삶이 꾸준히 인간에게 던져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잃어버리고, 발견하고 다시 또 잃어버리고…. 그렇게 인간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지만 또 잃어버린다. 게다가 “상실은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빈번하게, 더욱 파괴적인 내밀함으로 충격”(p.290)을 던져준다.


상실이 더욱 많아지는 인생, 그 쓸쓸한 생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사랑뿐만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모든 것들을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생의 법칙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이듦이 아닐까, 제 나름의 성숙은 아닐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화한 존재가 아버지임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슐츠처럼 아버지를 사랑한 적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었음에도 이제는 꽤 나이가 들었을,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면 이제는 조금 애도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일렁거렸다. 평안히 살고 계시기를, 세상 떠나는 그날에는 가까이에서 깊은 애도를 보낼 이들이 그래도 많기를…. 이 모든 생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슐츠의 글이 주는 힘이었을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4-08-21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물건에 대한 건가 20만개라니?? 했는데 사람에 관한 이야기군요.
상실이 더 많아지는 인생에 최근 두명의 친구를 발견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ㅎㅎ 발견의 경이로움! 뭐 얼굴 본 게 최근일 뿐이긴 하지만요..
암튼 5별이군요. 흠.

잠자냥 2024-08-22 09:41   좋아요 1 | URL
물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새로운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아버지는 가고, 연인은 오고 그리고...!
엥 제가 발견한 건가요? ㅋㅋㅋ 다락방은 발견인 것 같기는한데.... 은곰탱이는 제가 발견당한 거 같음. ㅋㅋㅋㅋ

다락방 2024-08-21 2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잠자냥 님의 이 리뷰를 읽는데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독서괭 2024-08-21 20:27   좋아요 4 | URL
크~ 이 인용문을 읽으니 이 인용문을 재인용한 명저가 떠오르는군요. <잘 지내나요?> 라고 아실랑가…

다락방 2024-08-21 21:18   좋아요 6 | URL
독서괭 님 지구에서 제일 똑똑하고 매력적이라고 제가 말했던가요?? 💕

잠자냥 2024-08-22 09:42   좋아요 2 | URL
반스의 그 책에 저런 구절이 있었군요?! 다락방 님이 옮겨주시니까 정말 절묘합니다. 왜 저런 구절을 적어두지 않았을까...? 아무튼 소설 천재 다락방!!

Falstaff 2024-08-22 07: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소설 쪽은 안 읽으셔요? 기다리다 지쳐서....

잠자냥 2024-08-22 08:57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ㅋ 곧 읽고 올리겠습니다요.

단발머리 2024-08-23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죽음이 아니어도 매일, 매순간 겪게되는 이별의 순간이 있겠지요. 그래서 다시는 못 보는 사람이 있고요. 요즘 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 ‘잃어버린 사람....‘ 뭐, 이런 주제였거든요. 잠자냥님 글 읽다보니 그걸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더 많이 알고 싶어지네요. 새로운 ‘발견‘이 그 다음에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저는 그 과정에도 관심이 많고요.

이 책도 읽고 싶어요. 저는 처음 듣는 작가거든요. 일단 넣어둡니다. 캐스린 슐츠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8-23 15:55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머릿속에 가득한 잃어버린 사람.... 누구일까요? ㅎㅎ 그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새로운 발견을 어떻게 연결해 갈 것인지 그것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죠?
저도 처음 듣는 작가였는데, 에세이가 나오면 또 읽어볼 것 같아요. ㅎㅎ
 
읽지 못하는 사람들 - 우리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읽기와 뇌과학의 세계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잔다, 먹는다, 싼다, 읽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의 꾸준히 하고 있는 행위이다. 이 가운데 ‘읽는다’는 자고 먹고 싸는 일에 비해 조금 뒤늦게 시작했다.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글을 빨리 익힌 편은 아니라서 읽기도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씨를 알고 난 후부터는 늘 읽었다. 말없이 얌전히 책만 읽는 아이-내 유년 시절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또래와 노는 일보다 책 읽기가 더 좋았고 그런 성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기보다, 그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간보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이 좋다.

‘지상의 다락방’- 알라딘의 내 서재 이름이다(다락방 생각해서 지은 거 아님). 홀로 책 읽기 좋았던 어린 날의 그 다락을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 속의 한 구절,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와도 일맥상통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못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게 아니라, 마음에 가시가 돋는다.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날은 괴롭다. 고통스럽다. 에이, 거짓말! 반문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런데 정말이지 나는 그렇다. 그게 무엇이든 한 글자라도-아니 이건 너무 부족하다- 몇 쪽이라도 읽다 잠들지 않는 날은 잘못 산 기분이다. 술에 취한 날도 무조건 읽다 자야 한다. 읽지 못할 것 같은 날에는 아침이든 점심이든 그 어느 때라도, 어디서라도, 틈을 내서라도 조금이라도 읽어야 한다.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강유원, <책과 세계>)라는 말도 있는데 이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읽지 못하면 우울하다. 나는 책 읽기를 왜 이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책을 펼치면 그곳이 어디든, 누구와 함께 있든 혼자만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하고는 크게 공감한다. 혹시 나도 이랬던 것은 아닐까? “예부터 세상 속에 섞여 살기가 버거운 사람들은 책 속으로 도피해왔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사람보다 책과 함께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아스퍼거증후군 초기 사례연구에는 책에 파묻혀 병동 구석에 앉아 있던 여덟 살 소년이 등장한다. (...) 인간의 행동은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책은 언제나 한결같다. 이 소년이 학교 친구들보다 책을 더 편안하게 느낀 이유도 비슷하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 p.149) 공교롭게도 내 오래된 일기 속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한다. ‘인간과 책_ 인간은 너무 가변적이다.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수밖에 없다. 책은, 그것도 오래된 책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어쩌면 책을 읽는 이유(2017년 11월 6일)’   

그런데 이토록 내게 절대적인 책을 못 읽게 된다면, 아니 읽을 수 없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그 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한 번도 읽지 못하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읽지 못하게 될까 봐, 눈을 다칠까 봐 조심하고, 시력이 떨어질까 봐 눈에 좋은 영양제만큼은 열심히 챙겨 먹으면서도 단 한 번도 읽지 못하게 될 내 인생을 상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읽고 나서 ‘읽지 못하는 삶’을 심각하게 떠올려보고는 그것이 아주 잠깐의 가정(假定)에 속했을지라도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신도 언제든지 문해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읽기 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실독증’이라는 덫에 걸릴 수 있다고 위협한다. 경고한다.

실독증? 난독증은 들어봤는데 실독증은 또 뭐람?! 이 책에 따르면 실독증은 “더 이상 손글씨나 인쇄된 언어를 읽을 수 없지만 보거나 말하는 등의 다른 일은 계속할 수 있는 신경학적 증후군”을 뜻한다. 읽기능력 상실은 보통 뇌졸중, 종양, 머리손상,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뇌손상 때문에 일어난다. 어린이가 읽기를 배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난독증과는 달리 실독증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성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평생 책을 읽어온 사람이 갑자기 읽은 것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후천적 문맹이라고도 한다. 갑자기 읽을 수 없게 된 사람을 설명할 용어가 마땅치 않으므로 이 책에서는 이런 환자를 ‘문해력 상실인’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보통의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들, 그러니까 난독증처럼 글씨를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부터 살펴본다. 그러나 난독증을 다룬 1장은 나와는 관련이 없는 듯해 관망하듯이 읽었다. 그런데 실독증, 문해력 상실인을 다룬 3장은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서 제아무리 지금 잘 읽고, 읽은 것을 잘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 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라고 새삼 깨달으며 몰입해 읽었다. 이 장에서는 읽기능력을 상실한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의 사례가 여럿 소개된다. 저자에 따르면 작가나 학자, 편집자처럼 읽기가 거의 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던 사람들일수록 문해력 상실인이 된 이후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신경의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좌골신경통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자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나는 읽어야 한다. 내 삶의 대부분은 읽기다”라고 말했던 그였기에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는 게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갑자기 읽기능력을 잃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읽기능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학습 기술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것에 가깝다. 읽기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더는 자신을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독증을 겪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이런 사람들은 더는 읽을 수 없는 상황이 사형선고처럼 느껴진다. “읽기와 문해력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 문화, 경제적 혜택”을 비롯해 “현대 사회에서 읽기는 의사소통, 오락, 지식의 원천으로 널리 인식되며 많은 이가 읽기를 의미 있는 삶에 필수적인 지혜의 원천”(p.170)이라는 것을 체득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실독증 사례에서 보듯이(물론 난독증이나 과독증과 같은 자폐아들의 읽기, 공감각, 환각, 치매 등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단지 눈만이 아니라 뇌로도 본다는 사실을 곧잘 잊곤 한다. 읽지 못하는 날이 올까봐 그저 눈 영양제나 챙겨먹고 시력이 나빠질까, 눈이 다칠까 조심하는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읽기는 ‘수많은 감정적‧인지적‧지각적‧생리적 과정을 동기화하며 일어나는 복잡한 행위’이다. 때문에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읽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도리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경이롭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면에서 실독증은 읽기가 지적 활동일 뿐 아니라 생리적 활동이며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수많은 신체 교환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체화된 행동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읽기장벽은 누구나의 삶에 끼어들 수 있으며 문해력 상실인은 매끄럽게 이뤄지던 읽기가 시각 인식부터 해독, 의미 생성까지 다양한 신경 활동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합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낸다. 또한 이런 활동이 언제든 오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읽기’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눈으로 글자를 좇아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이 읽기일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어떤 사람은 뇌졸중으로 인해 단어의 첫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는 사라진 글자를 손으로 따라 쓰는 등 다른 방법을 이용하면 계속 정확하게 읽을 수 있지만 도무지 이런 기술을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런 방법은 정상적인 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대안적인 문해가 문맹보다 나쁘다고 판단하고는 이런 읽기 방식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정상적인 읽기일까? 이 책은 온갖 읽기장벽에 부닥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읽기 과정이 순조로이 작동할 때는 감춰졌던 읽기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면서 읽기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성찰한다.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개탄하는 시대이다. 한 인지신경과학자의 “문해는 문화가 발명한 것”이라는 말도 곰곰 생각해볼 만하다. 읽기는 말하기와 달리 인간의 뇌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읽기가 지위, 특권, 권력을 나타내는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이자 의미 있는 삶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오늘날, 읽기차이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이제는 읽기가 단순히 언어기호를 해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에서 그치는 과정이라고 보는 좁은 관점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인지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신경 다양성 운동의 핵심 통찰을 바탕으로 병적이거나 비정상적이거나 ‘읽기가 아닌 것’으로 치부된 활자와의 상호작용 방식에 주목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p.335)는 이 책의 말처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읽기’만이 아닌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세계, 아울러 읽을 수 없는 삶의 고통 또는 읽을 수 있음의 축복까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수 2024-06-27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안적인 문해가 문맹보다 나쁘다고 (판단했다고)요?! 읽기 장벽이 무너지는 것만 생각해봤지 반대의 경유는 생각 못해봤거든요. 읽을 수 있는 곳으로 넘어간다고.. 그게 비가역적이리라고 생각해왔던 나를 발견함…진짜 흥미롭네요. 이 서평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이 책을 빌려온다음에 고대로 갖다 준 “읽지 못한 사람”으로서.. 너무 재밌게 읽고 갑니다.

잠자냥 2024-06-27 16:13   좋아요 1 | URL
네 저 사람은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저라면 대안적인 문해가 문맹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읽지 못하는 곳통! 으아아. 그렇지 않나요? 정상적인 읽기 행위에 매몰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요. 이 책 제 리뷰보다 당연히 더 좋은데 ㅎㅎㅎ 나중에 다시 읽어보세요! 제가 쓰지 않은 내용 중에 흥미로운 내용 정말 많아요- 책 읽으면 글자가 다양한 색깔로 보이거나 책을 읽으면서 맛이나 냄새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요...우리의 나보코프는....!

바람돌이 2024-06-27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독증이란것도 있다구요? 아 진짜 그건 죽음이에요. 사람들은 저한테 퇴직하면 뭐할거냐고 심심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저는 몇년 안 남은 퇴직이 너무 너무 기다려지거든요. 그건 순전히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 때문인데 실독증도 있다니... ㅠㅠ 😭

잠자냥 2024-06-28 10:19   좋아요 0 | URL
그쵸? 상상만 해도 죽음이죠?! 으아 정말 상상하기 싫습니다.... ㅠㅠ
대부분 실독증은 사고로 인한 뇌손상이나 건강 문제로 발생하는 거 같아요. 건강해요... 우리... 잘 읽기 위해서!

독서괭 2024-06-27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독증이라구요...??? 헉.. 너무 무서운데요?? 저는 잠자냥님만큼 책을 읽지 않으면 괴로운 정도는 아니지만, 읽는 대상이 책 뿐은 아니니까요. 와,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잠자냥 2024-06-28 10:20   좋아요 1 | URL
˝와, 너무 힘들 것 같은데˝에서 진심 느껴짐ㅋㅋㅋㅋㅋ 건강 관리 잘해요!
실독증은 대부분 (사고로 인한) 뇌손상이나 뇌졸중, 치매 등으로 오는 거 같아요.. 으아.

다락방 2024-06-28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기를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읽기는 또 저랑 가장 오래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막연히 그랬지요. 그런데 몇 해전, 핸드폰을 보다가 초점이 안맞아 눈에서 좀 떨어뜨리면서 갑자기 너무 놀랐어요. 이게 뭐지? 왜 잘 안보였지? 왜 뒤로 핸드폰을 밀어야 했지? 근무중이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보쓰에게로 가 ‘병원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부랴부랴 그 길로 안과를 갔어요. ‘내가 읽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두려움이 찾아와서였어요. 그건 ‘보이지 않는‘데에서 시작했죠. 이대로 안보여서 못읽게 되면 어떡하지? 읽기를 못할 수도 있다는 건 너무 큰 공포였어요. 아 안돼 어떡하지, 읽지 못하면 대체 뭘 하라는 거야. 너무 두려웠어요. 침착하자, 오디오북도 나오고 있으니까 다른 식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거야. 그렇지만 그건 그게 아닌데...
병원에서는 저에게 노안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너무 안타까워서 ‘선생님,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루테인 먹을까요?‘ 했는데, 이미 노안이 온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받아들이다가 돋보기를 쓰는 것 뿐이라고... 여전히 읽기는 할 수 있지만, 그런데 예전보다 좀 힘들긴 해요. 이건 보이지 않아 읽을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것인데, 그렇죠, 읽기는 눈만이 하는게 아니죠. 보이더라도 읽을 수 없기도 하는거네요. 그럴 때는 오디오북도 소용이 없는 거겠죠? 그건.. 너무 무섭네요 ㅠㅠ 그러면 어떡해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 책 무섭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4-06-28 12:59   좋아요 1 | URL
엥? 그냥 페이퍼를 써 이 사람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길이 좀 봐! ㅋㅋㅋㅋㅋ
다들 실독증에 충격 ㅋㅋㅋㅋ 계속 읽기 위해서는 눈만 관리할 게아니라 뇌 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뇌가 참 뜻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는 하죠.... -_-;;
뇌의 영역이 고장나면 오디오북도 소용이 없기는 합니다..... 뇌의 서사를 구성하는 영역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치매 환자들의 경우) 계속 읽고 또 읽고..... 같은 페이지에서 머물기도 한답니다;;;

구단씨 2024-06-28 14: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 번째 단락 소개해주신 인용구.
시기와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책에게 향하는 마음은 비슷한 시작인 것 같아요.
책이 도피처가 될 수는 없지만, 도피처가 되어버리고 마는 순간도 있는 듯 하고요.
활자잔혹극 다시 읽다가 실독증, 문맹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리뷰 보니까 더 깊어지는 주제가 되어버렸어요. ^^

잠자냥 2024-06-28 14:38   좋아요 1 | URL
책이 도피처가 되니까 책에 파묻히는 사람들 사례도 나오는데, 책이 도피처가 되기에는 그럴 만한 상태여야 한다는 내용에도 공감했어요. 너무 우울하거나 생활에서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면 책으로 도피할 수조차 없는 거죠(<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의 이야기도 잠깐이지만 나오거든요) .
오잉? 활자잔혹극에도 실독증 이야기가 나오는가보군요? 그 책도 재미나 보여요.

희선 2024-06-29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만 괜찮으면 오래 책을 볼 수 있겠지 했는데... 책을 죽 읽으면 뇌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군요 뇌를 다치거나 뇌가 아프면 책을 못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는데... 뇌를 건강하게 하려면 운동도 조금 해야겠군요 조금이라니...


희선

잠자냥 2024-07-02 10:30   좋아요 1 | URL
네, 보통은 책을 본다고 하니까 눈만 소중하게 생각하기 십상인데 뇌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어요. 뇌를 건강하게 하려면.. 저는 일단 술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ㅎㅎㅎㅎ

관찰자 2024-07-01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오래 읽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시던 어느 어르신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가만히 앉아서 읽는 일인데, 그 일을 위해서 하루에 몇시간씩 달려야하다니.. 나는 너무 힘들어서 싫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줘야 평생 건강하게 읽을 수 있는 걸까요.ㅠㅠ 실독증, 정말 무섭네요.

잠자냥 2024-07-02 10:31   좋아요 0 | URL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공간이라 그런지 다들 실독증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시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꾸준히 오래 하기 위해선 역시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쟝쟝 2024-07-01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솔찬히 읽는 것이 좋아지긴 했지만, 세상에는 읽는 것보다 재밌는게 너무 많아요!! 잠쟈냥님의 읽기를 포함한 ’세상 읽기‘를 응원합니다. 가끔은 책을 딱 덮어버리고 영화도 집어치우고 하늘을 감상하셔요~!!

잠자냥 2024-07-02 10:32   좋아요 1 | URL
ㅋㅋ 솔찬히 읽는 것이 좋아졌으면서 아직 읽기보다 더 재미닌 게 많은 공쟝쟝, 어쩌면 그대가 삶을 더 잘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독서괭 2024-08-04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 책 다 읽고 리뷰까지 쓰고 다시 잠자냥님 리뷰를 보니 얼마나 잘 쓰셨는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잠자냥 2024-08-05 07:18   좋아요 1 | URL
잠사모 회장다운 발언🤣🤣🤣
 
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김새나 체형 등 외적인 면이 먼저 떠오른다. 성격이나 취향, 가치관이나 생각 등 그 사람의 내면이 마음에 들거나 자신과 잘 맞아서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능력? 지위? 재산이나 배경 등 그가 가진 것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일도 있을 것이다. <루시 게이하트>의 ‘루시’- 이 소녀, 아니 스물한 살의 이 여자. 그녀가 사랑에 빠져버린 그 대상으로부터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이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웠을 그런 감정은 아니었을까. 그녀가 서배스천으로부터 보았던 그 빛…. 책을 덮고 거리로 나섰는데 볕이 뜨거운 여름이다. 그럼에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두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루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루시 게이하트>가 이토록 내 마음을 뒤흔든 이유는 무엇일까.

플랫강 유역의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 사는 루시- 춤을 추고 스케이트를 타고 앞만 바라보며 발 빠르게 걸어가는 루시- 집은 부유하지 않지만 총명하고 재능 있는 루시가 이 마을에서만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얼음을 지치는 루시 곁에 해리가 나타났을 때는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생각하듯이 루시와 해리, 이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선남선녀 커플이로구나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해리는 루시를 자기의 여자로 점찍는다. 루시에 비해,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진 것이 많은 해리, 집안의 재력은 물론 젊고 튼튼하고 잘생긴 자신의 매력을 잘 알아 자기가 원하면 루시가 아닌 다른 여자와도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걸 잘 아는 이 남자 해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에게 깊은 짜릿함을 선사하는 여자는 항상 보는 루시, 교회 쥐처럼 가난하며 좀처럼 자기를 칭찬하지 않는 데다가 종종 비웃기까지 하는 루시뿐이다. 그녀와 함께할 때면 삶이 사뭇 달라진다. 해리는 루시를 갖고 싶다.

루시도 물론 해리를 좋아한다. 해리가 가진 싱그러운 매력을 잘 안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해리의 고백에 일순간 우쭐하기도 하지만 루시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그의 아내가 되어 그의 여자로 살아갈 생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인생이, 운명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따라 그렇게 살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나 루시는 생의 흐름 자체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아니다. ‘무언가를 지향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루시에게 그 무언가는 피아노, 그러니까 음악이었다. 음악을 공부하러 시카고로 떠나는 루시. 재능은 있으나 무사태평해서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는 소녀, ‘경력’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던, 음악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던 평범한 소녀 루시. 그런 그녀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서배스천이라는 이름과 함께. 서배스천의 공연을 본 순간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해리와 함께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워하던 천진난만한 소녀가 아니라 한 예술가의 목소리에 감응하고 생의 진실을 깨닫는 여자가 된다.

이 표현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루시는 서배스천의 목소리를 듣기 전부터 그의 매력에 감응했기 때문이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그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서배스천은 젊고 잘생긴 해리와는 전혀 정반대의 사람이다. 결코 젊지 않은 중년의 남자, 표정도 어둡고 심각하면서 커다란 눈은 지쳐 보이고. 키가 크고 퉁퉁한, 덩치가 아주 큰 사람. 루시는 그를 보자마자 중얼거린다. “그래, 위대한 예술가라면 저런 모습이어야 해.” 서배스천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로는 그 무엇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전에는 결코 겪어본 적 없던 감정 때문이다. 루시는 서배스천이라는 한 존재가 내뿜는 새로운 매력에 빠지면서 그 이상의 것을 그때 깨닫는다.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임을 깨닫는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고 온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다. 이 강렬한 감정을, 해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비교할 수 있다면, 견줄 수 있었다면 루시에게 서배스천을 운명이라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 처음에는 동경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니스트가 반해버린 성악가- 음악으로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음악으로 이어진 그들. 그러니까 분명 동경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루시의 마음은 아무래도 그것이 아닌 듯하다. 한 사람의 많은 것을 파괴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단지 동경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서배스천은 루시의 많은 것을 파괴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이다. 서배스천이 루시에게 그렇다. 루시는 고민한다. 그 사람이 나의 미숙하고 무지하고 그다지 총명하지 못한 면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그의 다정함 역시 꿈은 아닐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면 세상과 단절된 채 안개로 둘러싸인 산속의 외딴 언덕에 단둘이 있는 것만 같다. 그의 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속 깊은 종을 두드리는 듯해서 듣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와 보낸 몇 주가 그전까지 살아온 21년보다 더 풍요롭다고 느낀다. 처음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그 전까지 자기의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은 전부 하찮고 허무맹랑하다고 느낀다. 루시는 서배스천에게 장미를 보낼 권리가 있는 미지의 여자를 질투하고 심지어는 서배스천의 집사 주세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내가 주세페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서배스천 또한 이 작고 어린 루시에게 자신의 마음을 끝끝내 숨기지는 못한다. 루시의 빨간색 깃털이 길 위로 동동 떠내려 오는 모습을 보면 설레고, 그 깃털이 보이지 않으면 낙담하고. 루시가 한 시간만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그토록 울적하지는 않을 텐데, 지루하고 숨 막히던 시카고의 아침이 루시 덕분에 감미롭기만 하다. 루시가 문을 두드리면 꼭 봄이 찾아온 것만 같다. 루시의 마음은 그가 지금껏 마주쳤던 수많은 위장된 감정들과는 사뭇 달라서 그 자체로 완전해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취할 필요가 없는 감정라고 믿는다. 때문에 그가 루시에게 너는 정말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단지 자라나는 과정이며,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또한 나는 젊음의 싱그러움에 빠진 것일 뿐이라고 둘러대도 그의 마음이 사랑임을 모두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짧은 포옹이 너무나 애틋하고 격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루시도 서배스천도 이것이 영원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이것이 한평생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아름다운 것은 오래가지 않는 법. 서배스천이 사라진 후 루시의 마음은 얼어버리고, 세상도 부서져 버린다. 기억으로 되살린 예전의 그 세상에서만 숨 쉴 수 있다. 그런 루시에게 생은 짧다고, 살아가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봄에 힘든 일이 있을지언정 낙담하면 안 된다고, 너의 앞에는 긴 여름이 찾아 올 것이므로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잎을 그러모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충고한다 하더라도 그 말들이 그녀의 가슴속에 다가와 박힐 리가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어쩌면 루시에게는 여름이 펼쳐지지 않았어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이미 인생의 장미 꽃잎을 한 번에 다 가졌었기 때문에. 온 마음을 바쳐 가질 수 있었던 그 장미 꽃잎을 다 가졌으므로.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6-21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ㅑ ~ 이미 인생의 장미 꽃잎을 한 번에 다 가졌었다는 표현이 정말 딱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히 읽고 갑니다.

잠자냥 2024-06-21 16:29   좋아요 1 | URL
다락방은 주말의 장미 꽃잎(=편육/잠봉) 다 가진 자이므로 주말을 아름답게 보내십시오~

자목련 2024-06-21 16: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 👍
저도 이런 리뷰 쓸 수 있었음 좋겠어요~

잠자냥 2024-06-21 17:36   좋아요 0 | URL
자목련 님은 왜 100자평만 쓰셨죠… 훌쩍😭

2024-06-21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21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06-21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뭐예요? 이 아름다운 리뷰 뭐예요? 다들 극찬하시는 루시 게이하트 뭐예요? 그래서, 잠자냥님은 장미꽃잎을 다 가져보았습니까?(마이크)

건수하 2024-06-21 22:03   좋아요 2 | URL
그래서 그 마음을 아는 것 같습니다 🙂

잠자냥 2024-06-22 10:32   좋아요 1 | URL
루시 이 책 알라딘 소설마니아들의 5별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능…

장미꽃잎? 안 알랴줌!!😛

건수하 2024-06-21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마구 읽고 싶어지는 리뷰를 만났네요. ❤️

잠자냥 2024-06-22 10:32   좋아요 2 | URL
헐 건수하의 하트라니!!❤️

희선 2024-06-22 0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해준 책이네요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그 방송 오늘 재방송 하는군요 스치듯 또 들을 것 같습니다


희선

잠자냥 2024-06-22 10:33   좋아요 1 | URL
오! 라디오 방송에도 나왔군요?! 좋은 작품입니다. 희선 님도 꼭 읽어보세요!

은오 2024-06-24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막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서배스천을 향한 루시의 사랑보다 잠자냥님을 향한 제 사랑이 더더더 큰 거 같읍니다~!!

잠자냥 2024-06-24 17:20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나타나서 여전히 영역표시 곰탱이!
문학에 좀처럼 감응하지 않는 곰탱이도 5별 준 루시 게이하트!! ㅋㅋㅋㅋㅋㅋ

막냉이 오늘도 뽀뽀받을 예정인데….😛

호시우행 2024-06-30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독서생활에 유익한 자극을 주네요.
 
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헤어지자, 그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다 약속-참으로 기묘한 약속을 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이 여행이 끝나고, 이 여름이 끝나고 나면 너는 너대로의 삶을 나는 나대로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때- 그렇기에 그 여행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어서는 더 안 되었다. 그저 눈이 부시게 투명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기다란 튜브 위에 누워 수영장 위를 둥실 떠다니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아침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를 바라보면서 이게 마지막이지, 더는 저 사람하고 이런 곳에 오지 않는다는 거지,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고 다독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우리 저거 한번 타볼까? 다른 곳이었다면, 다른 때였다면 절대로 시도해보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쩌면 그 바다가 태평양이었기 때문에, 모험하듯이 제트스키에 몸을 실었다. 이 바다에 빠져버리면 죽는 것일까? 공포와 스릴, 알 수 없는 해방감 속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다 신이 나서 웃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면 우리는 헤어진다. 더는 우리는, 우리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 나는 나로 돌아간다…

사강의 <어떤 미소>를 읽고 나니 문득 이십 대의 나, 그때 그 여름의 바닷가가 떠올랐다. 이십 대의 ‘도미니크’는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뤽과 사랑에 빠지고 그로부터 일주일간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이니 뭐 망설일 게 있을까 싶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뤽은 도미니크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은 40대의, 게다가 유부남이다. 심지어 도미니크가 사귀고 있는 베르트랑의 외삼촌이고 도미니크는 뤽의 아내인 프랑수아즈와도 안면을 튼 사이이다. 하필이면 프랑수아즈는 도미니크에게 여러 가지로 호의를 베풀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런 사이의 뤽이 도미니크에게 속삭인다, “우리” 둘이서만 함께 일주일간 여행을 가자고. 연인 사이를 비롯해 호감을 느끼는 두 존재가 어딘가로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어떤 새로운 곳을 너와 함께 보고 싶다기보다는 그 새로운 곳에서, 너를, 당신을 나의 눈으로 발견하고 싶다는, 그 기간 동안만큼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너를, 당신을 독점하고 싶다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거나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자고 속삭이는 게 아닐까.

그런데 도미니크처럼 명백하게 위험한 제안-그러니까 일주일간 한 유부남의 애인, 정부(情婦)로서의 자리를 제안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이 스무 살의 어린 여대생에게 정신 차리라면서 훈계를 늘어놓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어른인 뤽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할 것이다. 유부남 주제에 어린 여자를 꾀어서 일주일간 실컷 즐기고 차버릴 심산이라니, 저런 썩을 놈이 다 있나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도미니크, 제정신이야! 저 남자가 원하는 것은 너의 젊음, 너의 육체뿐이다 그러니까 거절해! 달아나! 도미니크도 안다. 이 제안의 위험성, 이 관계의 위태로움, 이 짧은 사랑의 덧없음, 그 후 남겨질 자신의 고통…. 아무리 일주일간 서로에게 충실하더라도 그 기간이 지나면 그는, 뤽은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떠날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도미니크는 뤽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누구도, 그 자신도 열망을 막을 수가 없다. 모든 도덕적 비난과 현실적인 제한을 헤아리기에는 그것들보다도 더 크게 그를 사랑하니까, 원하니까.

칸의 어느 호텔에서의 일주일은 훌쩍 지나간다. 도미니크와 뤽은 함께 수영하고 바닷가를 거닐고 햇볕에 그을리고 위스키를 마시고 방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함께 잠든다. 키스를 하다 잠든 새벽 내내 키스를 하고 싶다. 잠들 때도 그가 옆에 있고 눈을 떴을 때도 그가 옆에 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열망과 욕망의 대상이 일주일, 168시간 가까이 온전히 내 소유인 셈이다. 내가 정말로 열망하는 사람이 이런 제안을 해온다면 그 제안을 뿌리칠 수 있을까.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헤어지는 것이다, 헤어질 것이다, 다시 만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해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쉽사리 하지 않는 뤽은 그 일주일이 지나간 후에는 일주일만 더 같이 있지 않을래? 망설이듯 입을 연다. 도미니크보다 연애 경험도 많고 사랑에 냉소적인 그이지만 그 자신조차도 이 사랑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이 주일간의 완벽한 둘만의 시간. 사랑으로 가득한 이 시간이 인생에서 존재했다면 이 사랑을 잃고 나서도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그 기억만큼은 어떻게든 행복하게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권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로운 삶에서 그토록 열망했던 대상, 그 사람과 보내는 며칠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일 것이다. 그러기에 도미니크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더 많이 사랑하고, 아무 일 없는 것보다는 더 행복했다가 더 불행해질 거”(p.82)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그 시간이 아무리 짧았다 한들, 한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여름 바다 위에서 웃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는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듯이.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4-05-3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께서 생각보다 사강의 책 많이 읽으시네요.
일주일이라 그런거 같은데요. 시간 지나면 다 똑같아 질 것 같습니다.
근데 잠자냥님은 그때 바로 헤어졌나요? ㅎㅎ

잠자냥 2024-05-30 19:00   좋아요 2 | URL
사강 책 국내 번역작은 거의 읽은 거 같아요. ㅋㅋㅋㅋ 사강, 뒤라스 저는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다락방과는 달리?! ㅋㅋㅋㅋㅋ
네 그 사람하고는 그해 가을에 헤어졌습니다.

다락방 2024-05-31 23:02   좋아요 2 | URL
어쩐지 그 분에게서 과메기 향이 나는듯 합니다....

독서괭 2024-05-30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헤어질 걸 알면서 떠나는 여행이라니.. 어떤 마음일지.. 여행지에서의 장면 하나하나가 남다르게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잠자냥님 최근 글 못 쓰셨는데 어제부터 연달아 두 편~ 이제 읽고 쓰실 여유가 좀 생기신 걸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예요!

잠자냥 2024-05-31 10:20   좋아요 1 | URL
괭 어제 댓글 두 개 다 ˝오˝로 시작함 ㅋㅋㅋㅋㅋ
여행지에서의 장면 하나하나 지금은 몇몇 장면만 기억에 남고 다 잊혔습니다요- ㅎㅎ
근데 그 여행지는 또 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여유라기보다는 안 쓰니까 더 답답한 기분이라서 쓰고 있어요!

달자 2024-05-3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여행이라는 걸 알고 떠나는 여행을 저도 전애인과 해본 적이 있는데, 잊고 있던 기억이 잠자냥님 글을 읽고 되살아났어요. 뭔가 저도 잠자냥님과 비슷한, 먹먹한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흠 그리고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제가 만약 도미니크였다면, 뤽이 20살 연상이라는 설정만 빼면 (저랑 동갑이거나 연하라면) 저도 기꺼이 일주일살이 불나방이 되어...불 속에 제 몸을 던졌을 것 같네요

잠자냥 2024-05-31 10:22   좋아요 1 | URL
먹먹하죠... 그 먹먹함을 잊을 수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시간이 흐르면 다 잊히더라고요! ㅎㅎㅎㅎ 인생... ㅋㅋㅋㅋㅋ 일주일살이. ㅋㅋㅋ 저 두사람은 결국 일주일 더 있자고 해서 이주일살이했어요. 사실 사랑하는 사람하고라면 이주일도 후딱 갈 거 같아요.

자목련 2024-05-31 1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사강 좋아하는 걸까요?
그나저나 이별로 이어지는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마지막 욕망>과 <어떤 미소>까지, 대체 사랑이 뭔지.

잠자냥 2024-05-31 10:2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사강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계속 읽고, 이 작품은 사실 구판으로 예전에 읽기는 했던 건데 또 읽은 걸 보면 좋아하는 건가? 막장드라마 같은 소재도 사강이 쓰면 막장드라마 같지 않아서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잘 쓴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사랑에 빠진 사람들 심리 묘사도 잘하는 것 같고요.

은오 2024-06-05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아름다워요...ㅠㅠ

잠자냥 2024-06-05 14:5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살아 있었네 곰탱이?

2024-06-05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5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5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6-05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차오르는 결혼욕구
결혼욕구 잠재우려면 잠자냥님 글을 읽지 말아야 함.. 아니 잠자냥님이 안써야 함..

잠자냥 2024-06-05 14:54   좋아요 1 | URL
곰탱이도 글좀 써보세요. 언니들이 기다릴 텐데....
책만 무쟈게 읽고 있네.....

은오 2024-06-05 15:02   좋아요 1 | URL
전...요즘
머릿속에 잠자냥님밖에없어서..
연애편지가아니면 글이라는걸 도무지 쓸수없는 상태입니다..

잠자냥 2024-06-05 15:06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럼 모든 리뷰를 연애편지 형식으로 써 보든가....
맞춤법 연재 예문처럼!!!! 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6-05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뤽은 진짜 개새끼다!!
도미니크의 선택은 이해할 만하지만...
애초에 그런 제안한 뤽이 너무 개새끼...-_-

잠자냥 2024-06-05 14:56   좋아요 1 | URL
뤽 너무 개새끼라고 욕하면서 읽었어요? ㅋㅋㅋㅋㅋ
은오는 도미니크처럼 뤽 같은 아재 따라가면 안 됩니다~!! 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6-05 15:04   좋아요 0 | URL
네 ㅋㅋㅋㅋㅋㅋ 도미니크 힘들어할때 진짜 욕나옴 ㅠㅠ
못따라가게 잠자냥님이 결혼으로 막아주십시오~!!

잠자냥 2024-06-05 15: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한국 이대녀 프랑스 이대녀에게 극공감 ㅋㅋㅋ
도미니크 그 개새끼 프남충 따라가지 마!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