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상담을 하면 젊은 부부이든 나이든 부부이든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미주알고주알 결혼생활 내용을 듣게 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혼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수 있는 현상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작은 말, 작은 행동에서 서로 상처를 받고 신뢰를 잃어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있다. 서로 상대방으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주장만 하려고 할 뿐, 상대방의 느낌과 생각에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부부갈등 적은것에서 시작 그런데 부부사이에서 발생하는 작은 갈등은 서로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커질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갈등을 줄이는 대화방법으로 ‘나’(I) 전달법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나 전달법은 말하는 사람이 메시지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하는 말이다. 이는 상대방의 행동을 가치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나 전달법으로 말을 하면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보다 정확하고 덜 도전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반면 ‘너’(You) 전달법은 듣는 사람에 대한 판단, 즉 그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내포하게 된다. 이는 말하는 사람이 판단할 자격이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되어 아무리 그 판단이 옳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지게 한다.나 전달법은 상대방의 행동, 그 행동에 대한 나의 해석, 나의 느낌, 그리고 그 행동이 내게 미치는 결과를 구성요소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두가지 요소만으로도 나 전달법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나전달법과 너 전달법이 각각 어떻게 갈등을 달라지게 하는지 보자.토요일 오후, 아내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점심약속이 있다고 외출을 하였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어두워져서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남편은 현관에들어서는 아내에게 굳은 얼굴로 “당신 뭐하고 다니는 사람이야? 점심 한끼 먹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의 말이 못내 서운하고 속이 상한다. 살림 하느라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미리 약속사실을 알리고 남편이 집에 있으니 아이들 걱정할 일도 없어서 편한 마음으로 좀 늦었기로서니, 내 마음을 그렇게도 이해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만약 이때 남편이 나 전달법으로 “왜 이렇게 늦었어? 연락도 없이 늦게오니까(상대방의 행동) 걱정이 되잖아(나의 느낌). 아이들도 엄마만 찾아 힘들었단 말이야(결과)”라고 말했다면 갈등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늦게 와서 걱정했다는 자신의 마음도 전달하였고, 아이들로 인해 힘들었다는 자신의 어려움도 알렸다. 이런 남편의 말에 아내는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 것이다.

상대공격 대신 내 느낌 표현 나 전달법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표현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따라서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쉽다.또한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직하게 나타낼 수 있다. 아울러 상대방의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표현함으로써, 이것들을 생략하고 자신의 판단만을 말했을 때 듣는 사람이 하게 될 오해와 상상을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오해하기 쉽거나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을 때 나 전달법을사용한다면 갈등을 원만하게 줄이거나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행복은 작은 것에서 온다고 하지 않던가. 나 전달법으로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아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연말이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99.1.18.월
영국 특파원 장조림


자 이제 가자
우리 저기 먼 곳으로
더 이상 여기서
땀을
눈물을
흘리지 말자

땀박아지 노동으로 흘린만큼
받고자고 더 이상
돈없고 빽없고 힘없어도 살 수 있는
그곳을 만들자고 더 이상
날밤까며 얘기하며
그날이 올 것이라 더 이상

해가 떠도 우리 곁엔 널부러진 빈소주병
쓰린 속 그것처럼
너도
나도
여기도, 아무것도
변한건 없다 변하지 않는다

자 이제 가자
우리 저기 먼 곳으로
더 이상 여기서
땀을
눈물을
흘리지 말자

비행기를 타기 얼마 전 저는 이 글을 쓰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약 3년 전, 기명사미 대통령은 결국 명동 성당에 까지 공권력을 투입했고, 노동자 시위는 무산되었으며 한총련은 와해되었고, 그들의 쇠파이프를 손에 쥔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했죠.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살인도구다. '

정권이 바뀐 지금도 악습은 계속 됩니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경영하시던 아버지는 결국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부도를 냈으며 그날부터 김 사장님 아버지는 김 씨로 전락하며 노가다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워낙 성실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노가다를 하시면서도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건설 공부를 하셨습니다. 사업을 하시던 기질을 발휘해서 몇 년 뒤 부터는 조그마한 건설업체를 다시 설립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설날이나 추석에도 일터에 나가셨고 일년 중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아마도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던 얼마간의 기간이 몇 년 동안 유일하게 가진 휴식의 기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건설 붐으로 저희는 약 12년 만에 그 동안 진 빚을 모두 갚을 수가 있었고 빚쟁이들에 시달리던 악몽의 세월을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우리 부자는 함께 소주를 마셨는데 노가다를 다니실 때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보이셨죠. 이제 고통은 끝났다면서 버는 일만 남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큰 공사를 따낼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성실성을 높이 산 한 분이 무명의 중소 건설 업체에게 엄청난 금액의 빌딩 공사를 맡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두계약이 끝나고 공사 준비를 하던 중 한 건설 대기업이 그 사이로 들어와 건설비만 받고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건물주의 마음을 돌려 버렸습니다.

전화상으로 계약 취소를 알리는 전화를 받으시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시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죠. 결국 그 회사가 건물을 완공하고 얼마 후에 부도로 문을 닫더군요. 그런데 워낙 부실공사를 해서 건물 입주 단 한달 만에 여기저기 물이 새고 난리 였죠. 그 건물주는 다시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는 화가 나긴 하셨지만 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수공사를 하셨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씀에 물러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신 아버지께서는 얼마 후 다른 공사를 시작을 하셨는데 또 말썽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조그만 관급 공사였는데 감독하던 감독관 몇 명이 돈봉투를 요구했던 겁니다. 아버지는 당시 50대 중반이셨고 그 감독관들은 이제 삼십도 안 된 사람들이었죠.

공사장에는 관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얼마간의 돈봉투가 오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거나하게 저녁을 접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아버지는 술을 사셨죠. 오십이 넘은 분이 이제 이십대 후반의 그들에게 감독님, 감독님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요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봉투 주는 게 어렵다면 함께 현장에 가서 고스톱이나 치자는 것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계속 잃기만 해라. 그러면 결국 봉투를 준 게 아니라 놀이에서 돈을 잃은 것이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결국 격분한 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던 다른 50대 아저씨는 참지를 못하고 20대, 30대의 감독관 서너 명과 말 다툼 끝에 편싸움을 벌이셨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가보니 가건물인 현장 사무소는 난장판이 되어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유리는 깨어지고 집기는 부숴져 있고... 그날 아버지와 소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난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한 만큼 얻을 수 없는 이 나라가 이젠 싫다. 너는 이런 곳에서 살지 마라.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일한 만큼 누릴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떠나라....이곳은 젊은이들이 살만한 그런 곳이 아니다. 그리곤 다시는 돌아 올 생각을 하지 말거라.. "

대충 이런 말씀을 하시곤 아버지는 다시 우셨습니다. 내 나이 오십에 당신 자식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과 싸움박질이나 하는 자신이 정말 부끄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중퇴하고 영국으로 왔습니다. 거의 3년 전 입니다.

저는 이 곳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불법으로 일하다가 경찰이 가게로 들어와 뒷문으로 도망친 적도 있고, LA특파원처럼 손님이 남기고 간 음식물을 주인 몰래 봉투에 넣어서 집에 와 행여 한집에 사는 사람들이 볼까 봐 방문을 잠그고 깨끗한 부분을 골라내 먹기도 했었습니다.

한번은 너무 배가 고파 식당에서 버리는 음식을 먹다가 그걸 본 주인이 나중에는 저를 위해 따로 음식을 해주곤 했습니다. 제가 국가 망신을 시켰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여기서 어떻게든 일해서 자리잡고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일부 유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대부분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지만 소수의 유학생들은 수영장이 딸린 아파트에 고급 승용차를 몰면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우연히 그들 중 꽤 유명한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한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구조조정에 관한 문제였는데 학자들이 하는 말의 복사판 이었습니다. 일단 회사를 살려야 나중에 다시 고용인원을 재창출 할 수 있으니 짤린 사람들은 억울하겠지만 나중을 위해 그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도 쉽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귀국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사회 지도층 인사'란 말을 들을 수가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명문대 석사 출신에 다시 영국의 명문대에서 학위를 공부하고, 게다가 재력있는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이천 오백 파운드 (그 사람과 만났을 당시는 우리 돈으로 사백만원이었고 지금은 약 칠백만원입니다)가 생활비인 그를 생각하고, 대학 중퇴인 저를 생각했습니다.

미래에 사회지도층 인사가 될 그를 생각하고 그 아래서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을 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런 사람 밑에서 당하고 살 수만은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무리인 줄 알지만 작년부터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정말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 결국엔 좋은 성적을 받고도 학비가 없어 다음 학기를 등록하지 못해 귀국한 형님도 계셨고 끝까지 버텨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그들,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대해 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저의 개인사를 올린 것은 결코 내세울 것도 없는 제가 잘났다거나 아버지의 삶을 과장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힘없는 우리 모두 아버지들의 모습이며 제가 살아오고 선택한 길 또한 여러분 모두의 삶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아마도 '그렇다. 내 아버지의 모습, 나의 모습이다.' 라고 공감을 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술에 취해 떠들고 한탄을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도 이번 IMF 시대에 약자의 설움 속에서 많은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력함 속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술에서 깨어나고 낙심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다가올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는 사람들도 다 함께 잘 사는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자 이처럼 긴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과 또한 우리가 흘리는 그 눈물을 후손들에게는 그대로 안겨주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들 스스로가 그 눈물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영국 특파원 장조림 ( k2001@hanimail.com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AYLA 2004-08-0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엔 장조림이란 이름에 장난글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군요..;;
가슴이 저리네요.

sayonara 2004-08-0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리나라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공무원의 실수(또는 음모)로 10억빌딩을 날린 노부부, 겨우 3번밖에 만난적 없는 의붓아들이 이라크에서 죽었다고 수십억을 요구하는 부모, 학생을 개패듯이 패고서도 멀쩡히 교사생활 하고있는 선생...
답답한 일들이 많지요.
 

▲이민 가려다 달러 폭등으로 재산 2배=1997년 김태공씨는 미국으로 이민가기로 작정했다. 당시 37세. ‘한국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미국으로 이민 가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에 있는 친지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소액투자이민을 소개해줬다. 당시에도 3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둘 재산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장만했던 아파트도 팔았고,별 재미를 못 봤던 주식도 처분했다. 장롱도 팔고,가재도구도 거의 다 팔다 못해 친지들에게 마구 나눠줬다. 마지막으로 차까지 중고차시장에 내다 팔고 나니 통장에 들어온 돈은 3억5,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모두 달러로 바꿨다. ‘가서 슈퍼마켓이나 세탁소에서라도 일하자’는 생각으로 비자수속을 밟고 있을 때였다.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국가가 외환대출을 받는다는 뉴스가 귀에 들어왔다. 97년 11월의 일이었다. 나라가 무슨 전쟁 나는 기분처럼 불안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도 외환위기는 계속됐고,급기야 대 달러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민을 가려던 입장이었던 김씨로서는 환율에 민감했다. 달러 급등세는 멈추지 않았고,1달러당 830원에 매입했던 달러는 이듬해 1,400∼1,500원을 넘어서더니 마침내 1,800원대마저 올라섰다.

이쯤 되자 김씨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 이거 봐라. 내 재산이 두 배로 늘었네. 내가 왜 이민을 가. 여기서 잘 살 수 있겠네”라며 다시 눌러앉기로 하고 모든 달러를 내다 팔았다. 좀더 오르지 않겠냐는 가족의 얘기에도 “됐다. 이 정도면 복받았다”라며 모든 달러를 정확히 1,900원에 팔았다. 거의 8억원에 가까운 현금이 손에 들어왔다.

▲직장에서 가까운 아파트 샀더니 또 2배=편안하게 한국에 눌러 살기로 마음 고쳐먹고 나니 살 집과 직장을 골라야 했다. 살 집은 돈이 있으니 고르면 되는데 직장이 문제였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도 하루 아침에 부도나서 문을 닫는 형국이었다. 운이 좋은 걸까. 아는 선배가 하는 병원에 취직됐다. “평소 인간성이 좋구 봐야 돼”라며 자만에도 빠졌다. 어쨌든 생각보다 쉽게 직장을 구했으니 그동안 얹혀 살던 동생 집에서 나와야 했다.

집은 당연히 직장과 가까운 아파트를 선택했다. 오래 된 아파트이긴 했지만 경제위기가 겹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앞다퉈 집을 내다 팔았고,그 때문에 집값도 반토막난 게 수두룩했다. 급매물로 나온 서울 강남구 소재 34평 아파트를 2억원이 조금 안 되는 값에 샀다. 그때는 나오는 물건마다 대부분 ‘급매물’이었다. 그런데 그럭저럭 3년여가 지나자 아파트값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경제가 호전되기도 했지만 재건축 얘기가 나오며 급등했다. 김씨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노래가 절로 나왔다. 10억원 자산에 도달한 김씨의 그때 나이는 41세. 지금 그 아파트의 가격은 7억5,000만원이 넘는다.

▲안정적인 금 투자로 꾸준한 수익=김씨는 그 이후 하루 일이 끝나면 낚시터를 즐겨 찾는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낚시에 푹 빠져 산다. 다만 라디오를 통해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 듣는다. 그는 ‘불경기’라든가 ‘시국 불안정’이란 뉴스에 귀가 쫑긋한다. 뭔가 불안정하면 금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김씨는 역시 친구의 권유로 금을 사고 판다. 정확히 말하면 ‘골드바’(Gold Bullion Bar)다. 그렇다고 골드바,즉 금괴를 갖고 왔다갔다 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의 사설금고에 골드바 몇 개를 넣어두고 시중에서 증서만으로 거래한다. 김씨가 거래하는 골드바는 보통 500돈짜리. 1돈에 3.75g이니까 약 1.875㎏ 정도가 된다. 1돈에 요즘 5만5,000원(소매가 6만8,000원) 정도 하니까 보통 골드바 하나면 약 3,000만원이 된다.

물론 ‘급’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고급 골드바인 스위스은행의 금괴는 1개에 11만5,000∼13만달러니까 한화로 환산하면 1개당 1억3,800만∼1억8,000만원에 이른다. 이른바 벽돌 모양의 골드바다. 김씨의 투자기준은 대략 1돈에 도매가 기준으로 5만원에 사서 6만원선에 파는 거다.

금은 안정적인 투자수단의 대명사. 가격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때가 되면 알아서 올라준다. 금 주화,금메달 유사품 등 금 관련 제품들의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금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양도소득세 등이 없다는 점이다. 또 매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금 투자의 장점이다. 김씨는 올 초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평소보다 많이 벌었다. 최대 20%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금은 한 방에 크게 버는 일은 없지만 꾸준한 수익을 올려주는 투자상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야기 1. 피터 드러커의 한 마디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이 일을 시작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조건 예스가 아니라면, 당장 그 일을 중단하던가 아니면 비중을 대폭 줄여라.

언젠가 나는 Why라는 질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왜 그 일을 하는가?’, ‘왜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그 일을 처리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조직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꼬마 아이에게 <휴지를 버리지마!>와 같이 다그치는 것보다는 왜 휴지를 버리면 안 되는지를 차분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엄마, 아빠의 역할이다. <공부해!>와 같이 다그치기보다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자녀와 공감하는 것이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왜?’라는 질문은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당신에게도 질문 해보라.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런데, 어떤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 분의 말을 요약하면, why라는 질문은 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앞의 피터 드러커의 말을 나에게 전해줬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분이 나에게 준 피드백을 소개한다.

--------
사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동기유발이 약합니다. 현재 직종에서 "왜 이 일을 하지?"라는 질문에 "돈 벌어야 되니까" ,"그냥",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혹은 "전공이어서"라는 식의 대답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형편의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적은 수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모든 경영자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합니다. 박종하님의 "왜"와 일맥상통하나 더 단순한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이면서도 보다 강한 동기유발을 가진 질문으로, 사실 우리 모두 던져도 좋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사업)을 만약 하지 않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그 일(사업)을 시작하겠는가?"

잭 웰치는 이 질문을 책에서 읽고, GE의 사업부분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만일 잭 웰치가 "자신이 하는 일에 항상 `왜`라고 묻고 답하세요"라는 문구를 읽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의문입니다.
---------

피터 드러커의 질문은 분명 <왜>라는 단순한 질문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이 없다. <왜>라는 질문은 우리를 냉정하게 이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는 그 일을 좀더 잘 되게 하겠다는 의지만이 있을 뿐, 그 일에 대한 근본적인 냉정한 평가는 어려운 것 같다. 피터 드러커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일을 되돌아보게 한다.
피터 드러커의 효과적인 질문을 당신의 삶 속에서도 적용해보라. 당신에게 질문 해보라.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이 일을 시작할까?>

당신도 피터 드러커의 현명한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잭 웰치처럼 말이다. 선택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의 순간, 주저하는 이유는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해서다. 구차스런 미련 때문에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해서 일을 더 망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얻지 못한다.

피터 드러커의 질문을 당신 삶의 여러 곳에 적용해보라. 약간씩 변형하여 적용하는 것도 때로는 효과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적당하지 않은 변형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령, 이 질문을 결혼한 사람에게
<현재 내가 결혼한 여자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결혼하겠나?>
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질문의 대답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은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가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아직 사귀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사귈 것인가?>
만약, 이 질문에 무조건 예스(yes)가 아니라면, 당신은 그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피터 드러커의 결론을 따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 상담에 대해 기억 나는 인상적인 대화 하나를 소개한다.
어떤 여자가 자신이 새로 사귀는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카운셀러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 그리고 고민거리들을 한참동안 이야기했다. 한 시간 가까이 혼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그녀에게 카운셀러는 단 한마디를 했다.
<아직도 고민이 남았다면, 결혼하지 마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게으름은 곧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 - 오래 살려면 게으름을 피워라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난 조울증 같애. 지금은 울증이 우세야. 아 우울해. 할 일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 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냐 하면 또 아니다. 누구 못지 않은 일처리 능력을 과시하며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농담 삼아 이야기한 거라고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분명한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아무런 근거 없이 괜히 그런게 아니다. 《오래 살려면 게으름을 피워라》(이영희 옮김, 나무생각)를 읽어보면 그러한 상태가 내 몸이 보내는 구조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배터리? - 주어진 에너지만큼만 살다 간다
   알다시피 삶은 유한하다. 저자 잉에 호프만은 삶의 유한성이야말로 인간 육체에 주어진 에너지의 양이 정해 있다는데 대한 좋은 보기라고 파악한다. 삶이 유한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에너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며 에너지의 소비 속도에 비례해 인간 수명과 건강은 결정 난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체중 1그램당 2,500킬로줄(Joule, 에너지 측정단위)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이 절대 에너지를 다 쓰면 충전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생명은 끝난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경우를 예외로 하면 심장이 몇 번 뛰고, 호흡을 몇 번 하고 나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바닥이 난다는 것이다.

  예전에 걷기 운동을 권장하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마라토너의 평균 수명을 조사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들의 평균 수명은 50대 쯤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도한 운동이 육체를 혹사시켜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게 만든다는 것이 요지였다. 마라토너가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이미 자신을 마모시키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완수하는 방법을 위한 ‘시간 경영’은 사실 부질없는 욕심이다는 것. 정해진 시간은 안에서 그것들을 하려면 삶은 빠른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그 속도에는 대가가 요구된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어떻게 쓰느냐이다.

  잉에 호프만의 말에 따르면 인간 활동의 사이클은 대개 90∼120분이며 이때 몸과 마음을 제어하는 전달물질, 즉 성호르몬, 에너지 요인, 스트레스 호르몬 등이 방출된다. 우리는 이 사이클이 끝나면 20분간 휴식을 취해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재생해야 한다. 하지만 쌍코피 터지게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사회에서, 이제 좀 쉬자는 몸의 신호를 수용하기가 그리 쉬운가. 이때 의도적인 게으름 피우기가 꼭 필요한 것이다. 잉에 호프만은 단순히 천천히 살자, 즐기며 살자는 의미에서 게으름을 선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게으르게 사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바이오 힌트’를 싣고 있다.

   잉어는 느릿느릿 게으르다. 때문에 잉어의 에너지는 70∼100년이 될 때까지 사용할 수가 있고 심해에 사는 철갑상어는 150년 동안이나 살 수 있다. 장수동물로 이름난 거북이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같은 종이라해도 겨울잠을 자느냐, 한대나 온대에서 사느냐에 따라 수명은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오래 사는 여성을 보자. 남성은 허파 용량도 여성보다 30%가 더 크고 피가 더 많고 산소 운반력도 더 크다. 신진대사도 여성보다 10%정도 빠르다. 이 차이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차이 때문인데 이 호르몬이 남성을 빨리 가열시킨다. 여성에게는 이 호르몬이 남성의 10분의 1밖에 없다. 여성은 남성보다 육체적 힘과 속력에 있어 뒤떨어지지만 덕분에 생체 에너지를 조금씩 천천히 씀으로써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게으름이 곧 절약? - 유한한 에너지를 아껴써라
  몽골에서는 자고 있는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깨우는 것을 금한다. 놀라서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제보니 ‘놀라서 미칠 수 있다’고 하는 몽골의 금기담이 독특한 것이 아니라 지당한 말씀이었나 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낮잠을 나태함, 허약함, 노인의 활동이라 평각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 우리는 시간이 부족할 때 잠부터 줄인다. 그러나 잠이야말로 우리 몸과 정신을 쉬게 해주는 최적의 처방이다. 생명 템포를 조정하는 잠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법이다. 이완되고 깊은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조절하고 또 일부는 쓰지 않고 몸을 통해 그냥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자세를 곧게 하고 야외에서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시며 가능하면 코로만 숨쉬고 잔기침과 재채기를 참지 말 것 등등. 일과를 마무리하고 신음을 내뱉는 연습을 하는 좋다고 한다.

  작년 여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카피가 유행을 일으켰다. 우리가 이 카피에 그토록 공감했던 것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놀러 간다는 꿈에 부풀어서가 아니라 ‘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이 부과하는 압력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으로 찌들어 늘 탈출을 꿈꾸게 만드는 현실에서 우리는 수명 연장만을 원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다는 것으로 꾸며진 휴식에 있다. 이처럼 잉에 호프만은 누구나 오래 사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자신도 게으름의 원칙에 따른 한 가지 부작용을 ‘세월을 얻는 것’이라고 하니. 짧고 굵게, 혹은 길고 가늘게 그 어느쪽을 원한다 할지라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는 빠질 수 없는 항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내 에너지를 아끼며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4-07-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전 무지 오래 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