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뛰어와 꼬리를 흔든다. 마음만 먹으면 목을 부러뜨릴 수 있는 억센 손에 안겨서도 완전한 신뢰만을 보여준다. 개들은 보통 아무 일도 안 하고 먹이만 축낸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유용한 것들보다 의미가 있다. 눈물을 흘리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얼굴을 핥고, 주인을 위협하는 적을 조그만 몸뚱아리로 가로막는다.

롤플레잉 게임 <폴아웃>에서 '독밋(dogmeat)', 그러니까 개고기란 희한한 이름의 개를 만났다. 이 녀석의 삶이 참 기구하다. 독밋의 주인은 뭐 하나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핵전쟁 후 폐허가 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정크 타운'에 도착했다. 이 곳을 주름잡는 인간 쓰레기 기즈모 일당은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빌딩에서 집어던져 버렸다. 혼자 남은 독밋은 주인이 묵었던 집 앞을 지키며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정크 타운에서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독밋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집주인의 의뢰를 받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독밋의 주인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밋은 검은 재킷을 입은 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이것으로 한 건 해결, 하지만 녀석은 계속 나를 따라왔다. 내가 주인이 아니란 걸 몰랐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개는 먹이와 물, 그리고 사랑을 먹고 산다. 독밋은 믿고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간 길은 무척 험했다. 하지만 녀석은 기꺼이 나를 쫓았다. 독밋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돌연변이들과 맞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맨 몸에 이빨만 가지고도 나를 돕겠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약했다. 때로는 짜증이 나고, 때로는 안타까웠다. 가만히 숨어 있거나 뒤에서 싸우기만 해도 좋을텐데, 무조건 제일 앞으로 뛰어나오는 녀석을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적의 총 앞에서 독밋이 쓰러질 때마다 게임을 다시 로드했다. 다치지 않고 끝낼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싸웠다.

하지만 우려했던 날이 왔다. 마지막 전투를 위해 적의 기지로 가야 했다. 레이저 방어막을 뚫기에는 독밋의 체력이 너무 약했다. 다른 동료들은 다 돌려보냈다. 하지만 독밋만은 떠나보낼 방법이 없었다. 독밋은 내가 가는 한 계속 따라 왔다. 방어막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독밋은 약해졌고, 결국 쓰러졌다. 나는 게임을 계속 했고, 보스를 물리치고 엔딩을 보았다. 독밋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냥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 녀석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난 이런 식으로 보답했다. 애초에 독밋을 거둔다고 나선 게 잘못이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다.

어느 수의사에게서, 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버려진 개들을 보지 않는 날이 없다. 사람을 보면 떨며 도망가는 녀석도 있고, 무조건 따라오며 애처롭게 쳐다보는 개도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 인간이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빼앗기라도 하는 것처럼 치를 떤다. 하지만 지구는 모든 생명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마운 생명의 원천을 망치는 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생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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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choo.com 의 홍유민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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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있어 지나친 내셔널리즘의 개입은 마땅히 지양해야 하겠지만 유독일본이란 국가에 대해서는 그것이 쉽지않은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한일 양국간의맞대결에 있어서 국민들이 쏟는 관심과 승리에 대한 열망, 선수들이 느낄 부담감과 필승의 의지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전쟁을 방불케 했던 축구의 韓日전이 그랬고, 십여 년 전 하종화와 나까가이치로대표되던 배구 라이벌전이 그랬으며 심지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있는 한일 양국선수들의 성적에 대해서도 언론과 팬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데뷔 첫해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고 연일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야구천재 이치로와, 초반의 부진에서 벗어나 최고명문 양키스의 중심타자 자리를 꿰찬 마쓰이의 활약에 대단하다 박수를 치면서도 가슴속 한켠에 생기는 미묘한 질투심과함께 최희섭과 서재응을 비롯한 우리 선수들이 더욱 분발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드는 건 비단 저 뿐만의 감정은 아닐겁니다.

요즘에야 한일양국의 많은 선수들의 진출해서 기량을 과시하는 메이저리그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이곳의 두터운 벽을 처음으로 허문 선수가 있으니 바로 노모히데오입니다.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포크 볼을 앞세워 빅리그의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승승장구 하던 데뷔초기의 노모 히데오는 정말로 센세이셔널했습니다. ‘토네이도'라고 불리우며 전 미국을 들썩이게 했고 올스타전 선발출장에 이어 당해신인왕 타이틀까지 가져가며 박찬호에 앞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 노모는 우리에겐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96년 빅리그 첫 승이 9시 뉴스탑으로 나오고 10승도 불가능할거라는 비관론이 대두되었던걸 기억해보면 당시의메이저리그에 대한 우리의 체감장
벽은 굉장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승격으로 LA다저스는 순식간에 국민구단이 되었고 찬호와 노모의 어색한 동거는 시작되었죠. 많은 국내 팬들은 다저스를 응원하면서도 노모의 부진을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곤 했습니다. 97년 나란히 14승을 올렸지만 승률에서 박찬호가 앞섰었기에 "박찬호 판정승!"이란 당황스런 기사가나오기도 했으니까요. 그만큼 당시의 노모는 같은 팀메이트임을 떠나 적어도 우리에겐 박찬호가 누르고 올라가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팬들과 언론의 두 선수간의 라이벌구도화는 예상외로 싱겁게 끝이납니다. 빠른 강속구를 앞세워 욱일승천하던 찬호에 반비례해 노모는 일본에서의 수년여간의 살인적인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어깨가 고장 난 것입니다. 결국 다저스에서 방출된 노모는 투수로서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며 뉴욕, 시카고,밀워키, 디트로이트를 전전하는 처량한 저니맨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주위에서는 구차하게 선수생활을 연장하느니 명예롭게 은퇴하기를 권고했고 그나마 일본 팬들과 매스컴의 관심도 이치로와 사사키의 미국진출에 발맞춰 시애틀로 온통 집중됩니다. NHK에서조차 노모의 선발등판경기를 포기하고 시애틀의 경기만을 편성했었다는 것은 당시 노모의 처지를 잘 대변해주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전일본은 이치로에 열광했고 방송 중계진과 기자들은 온통 시애틀 원정경기를 따라다녔죠. 그렇게 노모는 잊혀져 갔습니다.

"나는 단지 마운드 위에 서길 원할 뿐..."

일본에서 자국으로 돌아와 명예롭게 은퇴하라며 거액의 돈으로 유혹할 때 노모가 남긴 말입니다.
당시의 노모는 이미 좋은 하드웨어를 잃어 버린 지 오래 였습니다. 팔꿈치 수술의 여파로 직구의 위력은 현저히 감소했고 일본시절, 9일만에 503개의 공을 던졌다는 불가사의한 어깨와 연투능력도 나이가 들며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오랜 메이저리그 경험을 통해 익힌 두뇌 피칭과 그래도 근근히 위력이 살아있던 포크 볼 정도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투수로서 가장 치명적이라는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이후로도 수 차례 어깨부상에 시달렸으며 받아주는 구단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떠돌 수 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은 일본 최고투수로 불리우며 빅리그에서도 영광의 길을 걸어온 그로서는 분명 감당하기 힘들 시련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건 야구선수로서의 투혼과 근성, 그리고 마운드에 서있겠다는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수십만 불에 불과한 연봉을 감수하고도 디트로이트라는 리그꼴찌팀을 선택했던 건 그곳에서는 그가 마운드에 설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잊혀져갈때쯤 노모는 거짓말처럼 보스턴에서 양대리그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펼칩니다. 부상은 그에게 빠른속구와 강한 어깨를 빼앗아갔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과 투수로서의 자긍심까지 앗아가진 못했던 것입니다.

이 일본인 사무라이는 올 시즌 믿어지지 않는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압도적으로 타자를 농락하던 '토네이도'의 모습은 아니지만 선수생활이 끝날뻔한 위기에서 다시 살아돌아온 이 '오뚜기'의 연이은 호투에 요즘 다져 스타디움의팬들은 진심으로 존경어린 박수를 보내줍니다. 마치 만화속 주인공의 스토리처럼그의 영광이 시작되었던 다저스에서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는것이죠.

그 광경을 지켜보며 예전 노모를 제치고 다저스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던, 그리고 완봉승을 하고 기립박수를 받던 박찬호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인생사새옹지마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요즘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고있는 박찬호를 지켜보며 그보다 훨씬 힘들었던 여건 가운데서도 극적인 부활에성공한 노모와 같은 드라마를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노모만큼의 야구에 대한 애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않을 노력이라는 무기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모가 데뷔이후 계속 정상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는 여전히 저에게 있어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노익장에 박수를 쳐줄지언정 아마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긴 힘들었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야구선수로서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리면서도 온갖 굴욕과 낙담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노모의 모습에 이제는 진심어린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절망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 자신의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냉정함, 그리고 꿈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등은 비단 스포츠 선수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에게 역시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1968년 생의 노모의 야구인생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이 지나도 노모 히데오라는 야구선수는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많이 등장할지언정 노모만큼 꿈과 열정을 가지고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한 선수를 찾기는 쉽지않을 것입니다..

"메이저리그는 모든 야구 선수들의 꿈이다.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이며 그 외에 내가 선택할 건 아무것도 없다.” - 노모 히데오(野茂英雄)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큰 행복입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삶, 그 자체로 이미 멋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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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9-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노모 히데오는 나의 '영웅(히데오)'이다!!!

물만두 2004-09-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호도 노모만큼 잘해주면 좋을텐데요...

sayonara 2004-09-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호의 노력을 믿습니다.
박찬호는 대학야구시절에 꼭 전화로 조성민, 임선동 등 수퍼스타 동기생들이 놀러나간 것을 확인하고 연습장으로 향했다더라구요. 그만큼 지독한 노력파니까...
 

은하철도 999.. 9대 미스테리
송락현(Gazzet) - 96.11.17. ( 출처: Hitel Animation 동호회 )

독자 여러분들께서 과연 몇 개의 답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한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부담 없이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특히 아무것도 아닌 듯 싶었던 999의 스쳐지나간 대사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 독자라면 의외로 쉬울지도 모르겠다.

Q1. 999의 첫번째 미스테리는 왜 메텔이 철이에게 그비싼 999호의 승차권을 공짜로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약간 의역하자면 왜 메텔은 철이를 그 머나먼 안드로메 다까지 데리고 가야만 했냐는 것이다(항상 슬픈 눈을 한 채 ...).

☞ 그런데 메텔과 철이 일행이 혹성 헤비멜다에 도착했을 당시, 한 노파가 메텔을 알아보며 이런 말을 한다. "옆에 있는 그 젊은이는 지난번에 함께 왔던 친구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난번에 메텔이 데리고 왔었다는 그 남자는 ??

Q2. 지구를 떠난지 얼마 되지않아 999호는 혹성 타이탄에 정차하게 된다. 이곳에서 철이는 하록의 친구인 토치로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망토와 모자, 그리고 전 우주에 단 4자루밖에 없다는 우주 전사의 총(코스모 드래곤)을 선물 받는다. 그런데 999 전편을 통해 이 전사의 총을 가진 인물은 3명밖에 소개가되지 않는 다. 하록 선장, 에메랄더스, 철이. 그렇다면 대체 마지막 한 자루는 누가 가지 고 있는 것일까 ??

Q3. 999의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 중에 자칫 간과해 버릴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생김새 불명의 인물 차장이다. 999의 한 에피소드를 찾아보면 차장 의 옛 연인인 마빌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차장의 고향은 '추 억의 얼굴'이라는 이름의 별이며 그곳에서 마빌러스와 맹세한 약속 등이 공개 된다. 그런데 '메텔의 여행'편을 보면 기계 생명체로부터 신체 검사를 받을 당 시, 그만 철이가 차장의 알몸을 보고 만다.

그때의 철이의 반응.."나는 봤다~ 나는 봤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철이가 이토록 차장을 약올렸을까 ??

Q4. '시간성의 해적'편에서 메텔은 가짜 하록에게 이런 대사를 분노 어린 어조로 내뱉는다. "당신 해적 나으리께서는 내가 왜 이런 옷을 입고 있는지, 그이유를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러자 가짜 하록은.. "물론 잘 알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 자.. 999에서 메텔의 의상에 대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 도대체 무 엇이 그렇게 가짜 하록의 심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메텔과 이 가짜 하록과의 관계는 ??

Q5. 이번 미스테리는 아마도 999 최대의 미스테리이자 999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 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메텔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간일까? 아니면, 기계인간 일까? 대체 무엇일까??

☞ 메텔의 정체에 대한 논쟁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본 9대 미스테 리 에서는 그동안 크게 대두된 바 있는 한가지 가능성을 제외시켜 두고자 한다.
그것은 '메텔이 게이(여장 남자)일 것이다'에 대한 가능성이다. 이것은 철이의 승차권을 갈취했던 아지랭이 별의 도사가 메텔이 펼쳐 보인 코트 속을 보고는 기겁을 했던 장면과 '4차원 공간의 엘리베이터'편에서 루나 라는 제비족(?)이 메텔을 겁탈하지 못했던 점들로 미루어볼때 꽤나 설득력 있는 가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메텔이 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해설이 안되는 부분들이 999의 스토리 도처에 깔려 있다. 도대체 메텔의 본래 정체는 무엇일까??

Q6. 메텔의 정체가 너무 어려운가? 그러나 이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그렇다 면 과연 철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무수한 빈민가의 999호 승차권을 갈망해 하는 소년들 가운데 메텔은 하필 왜 철이를 선택했던 것일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Q7. 999 첫회에서 기계백작들은 메가로 폴리스로 향하는 철이 모자의 행로를 추적 해와서 철이의 어머니를 사살하고 그 시체를 가져가 박제를해서 전시해 놓는다 (유독, 철이의 어머니만 박제를 했음). 6번 미스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철이가 무언가 특별한 소년 이었다면 그 어머니 역시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과연 철이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수수께끼는 무엇일까??

Q8. 999 TV판 마지막회를 보게되면 잊을 수 없는 철이와 메텔의 이별 장면이 필름 처럼 스쳐 지나간다. 철이 혼자 탄 999호와 메텔이 탄 777호가 한순간 교차 되 면서 울부짖는 철이의 모습.. 그리고 멀어져가는 메텔의 희미한 그림자.. 앗! 그런데 잠깐, 이장면을 유심히 관찰했던 독자라면 정말정말 의아스러운 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메텔이 타고 있는 777호의 객차 안에 메텔 이외에 또한명의 인물이 있 었기 때문이다. 바로 777호를 탄 메텔의 옆에는 좀 더 나이를 먹은 철이 모습 을 연상시키는 한 소년이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들어낸채 철이가 탄 999호와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Q9. 999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 999>를 보게되면 드디어 999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철이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철이의 아버지는 999의 미스테리 에 대한 답은 주지 않은 채 오히려 더 큰 수수께끼만을 남기고 죽는다. 그렇다 면 철이 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이며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과의 상관관계는? 또한 그 누구 보다 이 모든 비밀의 전모를 알고 있는 하록은, 나중에 철이에게 아버지의 팬단트를 주게 될까... (♣)
 

그 밖의 이야기들.

① <은하철도 999>의 모든 미스테리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비밀의 여인 메텔은 원작자 마쓰모토가 그린 여러 미녀들의 집대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철이에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연상의 이성이자, 한편으론 이상하리 만큼 침착 하며 뭐든지 알고 있는 듯한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의 까만 코트 안은 비키니 차림 이었다.)

② 마쓰모토 레이지의 대표작들.. <우주전함 야마토>, <1000년 여왕>, <우주해적 캡틴 하록>. 그리고 최근 작 <코크피트>.

③ 999의 당시 인기를 입증해 주고 있는 격월간 신문 '은철 NEWS'. 한마디로 은하 철도 999 라는 가상의 세계를 실제화 시키고 있는 이 신문은, 1면에  은하철도 관리국 보수 공사 실태에 대한 보도를 하는가 하면 사회면에는 하록의 지명 수 배 광고가 나와있고 스포츠면에는 은하계 올림픽 소식, 그리고 일기예보 코너 에는 태양계에서 안드로메다 까지의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④ 기계인간들을 싫어하는 대도적 안타레스에 의해 메텔은 X 레이 촬영을 하게 된 다. 과연 메텔은 사진에 나온대로 정상적인 인간 이었을까 ??

⑤ 메텔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과 평생을 살고 싶다는 아지랭이 별의 도사에게 메텔 은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 보여 주겠다며 코트를 펼쳐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할말을 잊은 도사는 메텔 일행이 떠난 뒤에 악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사가 본것은 혹시... ^^;

⑥ 기계인간들의 본래 인간 껍질이 안치되어 있는 명왕성의 얼음 묘지 위에서 메텔 은 누군가의 시체를 바라보며 흐느껴 운다. 대체 누구의 시체였을까 ??

⑦ 전 우주에 단 4자루 밖에 없다는 전사의 총을 소지하고 있는 인물들. 하록,에메랄더스,철이.그렇다면 마직막 한자루는 대체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⑧ 개중에는 만화에서의 사이드스토리 개념 도입이 나가이 고(마징가Z의 원작자)에 의해서 실제화 되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마쓰모토에 의해서 구체적인 세계관 이 정립 되었다고 본다. 하록과 에메랄더스는 별도의 작품이 나와 있지만 이들 은 이따금씩 999의 세계에 등장하여 각 작품의 연결 고리에 대한 단서를 남긴다.

⑨ 999에는 9대 미스테리 이외에 밝혀지지 않은 또하나의 미스테리가 있다. 그것은 왜 999에는 그렇게도 라면이 많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특히 '2.25평 혹성의 환상'편을 보게 되면, 라면을 우주 최고의 환상적인 음식 이라고 극찬해 놓고 있다. 특별한 사연 이라도 있는 것일까??

⑩ 철이가 탄 999호와 메텔이 탄 777호가 멀어지는 <은하철도 999>의 마지막 장면 철이와 메텔은 왜 헤어져야만 했던 것을까 .. .. .. 
 

이 글(윙크96.6.1)은 저자 송락현님의 동의하에 이곳에 옮긴 것이며, 이 글의 저작권은 송락현님께 있습니다.

 

은하철도999 9대 미스테리 해답편

송락현(Gazzet) - 96.11.17.

'우주 저편에 있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에 가면 공짜로 기계의 몸을 얻을수 있다' 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은하초특급 999호를 타야만 한다.
왜냐하면 엄마가 기 계백작의 총에 의해 사살 되었기 때문에 철이는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엄마 의 몫 까지 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철이에게 정체 불명의 수수께끼 여인 메텔이 나타나 단지 자신과 함께 여 행을 해달라는 조건으로 철이에게 그 비싼 999호의 승차권을 준다.
그때까지 부랑 아 처럼 생활하던 철이는 매혹적인 연상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의 바다를 건너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된다.

이과정에서 철이는 보통 여러해에 걸쳐 경험하는 소년기의 꿈을 그 짧은 기간 동 안 단번에 겪게 된다. 고향과의 이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 가슴 설레이는 모 험, 하록과 에메랄더스와 같은 영웅들과의 만남... 하지만 철이가 그토록 동경했던 미모의 여인 메텔이 기계화 제국의 여왕 프로메슘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TV판 마지막회에 공개 된다.

기나긴 여정을 통해 기계 인간들에 대한 허와 실을 깨닫게된 철이는, 자신을 기계 인간으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프로메슘의 제안을 거절하고 비록 끝이 있지만 꿈을 품고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으로 남기를 결심한다.

허상으로 가득찬 기계화 제국을 멸망 시키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999호에 몸을 실은 철이. 하지만 철이에게 있어서 영원한 동반자라고 믿고 싶었던 메텔은 777호 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1만 더하면 1,000이 되는 숫자 999. 즉,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것을 상징한 철이의 999 여행은 끝났지만, 메텔의 여행 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이와 메텔은 정말 맺어질 수 없는 사이 였을까 ?! '

G A L A X Y E X P R E S S 999 ...

<은하철도 999>의 9대 미스테리는 그 엄청난 스케일에 반해 막상 정답은 몇몇의 주인공 인물들이 대부분 쥐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메텔의 정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메텔의 정체는 무엇일까?

메텔은 인간 같기도 하지만 웬지 기계인간 같기도 한 이중성을 유포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인간도 아니고 기계인간도 아니라는 명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인간도 기계인간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어쩌면 대단히 싱거운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메텔의 본래 정체는 외계인(?)이라 는 답에 도달하는 것이다. 메텔의 영어식 표기는 'METAL'이다.
그리고 <1,000년 여 왕>에서 지구와 충돌할 궤도로 다가오는 혜성의 이름은 'LA-METAL'이다.

바로 메텔은 라메탈성의 공주였던 것이다.

Ф 영원한 수수께끼의 여인 메텔.. 그 정체는 ??

과학 기술 문명이 거의 극한에 다다랐던 라메탈의 천재 과학자 프로메슘은 남편인 닥터 반과 함께 인간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기계화 제국 건설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 달리 사회구조가 물질 만능주의로 도색당하는 현실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하록, 에메랄더스, 토치로 등의 인물들 이었다.

이들은 모두 한계가 있는 생명의 멋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고 여기에는 기계 제국 건설에 대한 회의을 느낀 닥터 반도 뜻을 같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철이의 아버지인 흑기사 파우스트는 프로메슘이 건설한 기계 제국만이 이상의 세계라고 믿고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난날의 동지였던 하록과 갈라섰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 철이의 엄마를 사모해왔던 닥터 반은 이들마저 파우스트처럼 기계화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몰래 철이와 철이 엄마를 지구로 피신시키게 된다. 그 러자 뒤늦게 이사실을 알고 분노한 프로메슘은 닥터 반을 처형하고 지구의 기계 백 작들에게 현상 수배를 하여 철이의 엄마를 사살하고 그 증거로 철이 엄마를 박제하 여 보내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 철이의 아버지인 흑기사 파우스트는 프로메슘에게 기계 제국 건설에 있어서 철이와 같은 젊은 용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철이는 죽이지 말고 데려 올 것을 간청하게된다(영화 '스타워즈'에서의 다쓰 베이더와 그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와 비슷한 설정).

그러자 프로메슘은 자신의 딸인 메텔을 주요 성분이 인간과 같은 단백질로 구성된 기계 인간으로 개조하여 철이를 붙잡아 오라고 시키게 되는데, 이때 프로메슘은 고 의적으로 메텔을 철이 엄마의 복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즉 클론(복제) 기술로 만든 철이 엄마의 복제 육체에 메텔의 정신을 바꿔 넣어 철이를 유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철이를 안드로메다까지 데리고와야만 하는 메텔의 지루하고도 슬픈 여행 이 시작된다. 정확히 파우스트의 아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메텔은 철이와 유 사한 모습의 소년들을 한 명씩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데려가고 데려가고 또 데려 간다. 물론 그들은 기계제국의 용사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만, 일단 기계 인간이 되어버리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나게 되는 것임을 메텔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메텔이 파우스트의 아들인 줄 알고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데려간 소년들 은 대부분 안드로메다에 도착한 다음 메텔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왜 냐하면 프로메슘의 흉괴를 알게 되었고 그와함께 자신이 메텔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메텔에게 이용당한 첫 번째 희생양이 가짜 하 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짜 하록 역시 본래는 철이처럼 그 무엇인가의 신념과 꿈을 가지고 있었 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우스트를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믿은 나머지 자신의 영웅이었던 하록을 뒤로 하고 파우스트의 편에 서게 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영 웅이었지만 이제는 적일 수 밖에 없는 하록에 대한 반발심을 주입 받은 채 기계 제 국의용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얼마 후 메텔이 또 다른 파우스트의 아들을 데려옴에 따라 가짜 하록은 메텔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는 메텔을 증오하게 된다.

때문에 가짜 하록은 999호가 필연적으로 정차하게 되어있는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대분기점인 혹성 헤비멜다에 시간성이라는 자신의 요새를 만들어 놓고는, 자신의 영웅이었던 하록의 이름을 팔아 먹으며 메텔이 새로운 소년을 데려 올 때마다 그 소년을 시간의 흐름 속에 영원히 가둬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메텔이 입고 다니는 까만 코트. 이 옷은 서양에서 여자들이 장례식 때 입는 문상복 이다. 다시말해 메텔은 자신 때문에 기계 제국의 이슬로 사라져간 무고한 소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그런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고, 이렇듯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소년을 데려가는 메텔의 행동이 가짜 하록의 눈에는 더없이 괘씸하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데려가는 철이라는 소년은 파우스트의 아들임이 분명했다. 왜냐하 면 이따금씩 메텔 품에 안겼던 철이가 '마치 엄마 품속 같아' 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모성애에 대한 보상 심리 차원이 아닌 철이가 메텔을 자신 의 친어머니로 착각할 정도로 확실 명료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철이 엄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던 메텔을 엄마로 느꼈다는 것은 철이가 바로 파우스트의 친아들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헤비멜다에 정차하기 직전 메텔은 철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없 더라도 철이 혼자서 여행할 자신 있지?" 이번에야 말로 파우스트의 친아들을 데려 가는 메텔은 그 어느때 보다도 위험 부담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물론, 메텔은 가짜 하록과 대결해서 이길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메텔의 의상에서 풍기고 있듯히 메텔은 자신이 지은 잘못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자신 때 문에 기구한 운명을 맞이 하게된 가짜 하록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응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텔에게 있어서 친아들과도 같은 존재인 철이를 가짜 하록이 영영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가두어 버리자, 드디어 메텔의 철이에 대한 모성 본능이 폭발한다. " 우주 역사에 마녀라고 기록되어도 좋아. 철이를 위해서.. 나는 절대로 당신을 그냥 둘 수 없어!" 그만큼 메텔에게 있어서 철이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동경하는 철이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 는 메텔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험스러운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철이의 희망은 메 텔과 결혼하여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었으나 메텔의 육체가 자신의 어머니의 육 체인 이상 둘은 결코 맺어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 청춘의 환상.. 은하철도 999

메텔은 철이와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대사이다.

"나는 너의 추억 속의 여자일 뿐..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마음 속에 있는 청춘의 환영..."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되지 않을까? 메텔은 '소년 시대'의 동경 그 자체라는 추상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원래 그녀는 살아있는 인간한테는 너무도 이상적이었 다. 사람이 사람을 동경할 때는 항상 이상적인 인간을 머릿속에 그리듯, <은하철도 999>의 작품 세계가 소년의 꿈을 그대로 펼친 환상의 세계 그 자체라면 철이가 상 상한 이상형이 결정되어 메텔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텔에게 많은 수수께끼가 간직되어 있었던 것은, 그녀 가 계속 철이의 이상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여인에게는 반드시 그 무엇인가의 비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이에게는 '소년 시대'가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여행한 날들 이었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에서 철이와 메텔이 헤어지는것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여성과 이별하는 것임과 동시에 '소년 시대'와 결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그때까지 철이를 지배하던 모성(母性)으로 부터의 이탈이기도 하다.

메텔과 헤어지는 철이의 울부짓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고도 슬펐던 것은 철이가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소년시대'를 마감한 철이는 이제 어른의 세계를 향해 걷기 시작할 것이다. 메텔은 어디까지나 추억 속의 여인 이었을 따름 이니까.. .. (♣)

'소년 시절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추억만큼..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들 한다. 이제. 메텔은 철이의 가슴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추억을 남기고 어디론가 말없이 떠나 버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메텔은 청춘의 환상.. 소년 시절의 추억속을 여행했던 여자라고 ...

안녕~ 메텔...

지금. 수많은 추억을 안고 기적이 운다.

안녕 메텔,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 소년의 하루 .. .. ..

GE 999 ...

⒧ 마쓰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 999>를 구상해 내는데에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있는 <은하철도의 밤>. 이 작품은 요절한 일본의 인기작가 미야쟈와 겐지가 쓴 동화로서 85년도에 별도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⑵ 1,000년에 한번 봄이 오는 혜성 '라메탈'이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지구 와 충돌할 궤도로 태양계에 진입한다는 지구의 종말에 대한 종교적 신비주의를 그리고있는 <1,000년 여왕>. 그런데 이 라메탈은 태양계와 안드로메다계의 중간 에 위치해 있는 혹성 헤비멜다를 중심으로 1,000년 주기의 공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텔의 고향 별은 바로 라메탈 이었다.

⑶ 기계화 제국의 지배자이자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 여왕.

⑷ 메텔이 명왕성의 얼음 묘지 위에서 흐느끼며 바라본 것은 바로 복제 인간이 되 기 이전의 자기 자신의 시체 였다. 하지만 한가지 의혹으로 남는 것은 복제 되 기 이전의 메텔은 혹시 남성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왕 프로메슘이 메텔을 철이 엄마의 복제 인간으로 만든 이유 중에는 남성인 메텔을 여성 으로 만들어 왕위를 계승 시키고자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메텔의 정확한 성별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⑸ 프로메슘의 질투 때문에 처형당한 닥터 반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생명을 초에너지화 시켜서 메텔의 팬던트 안에 응축해 넣었는데, 이 팬던트는 기계 제국을 멸 망 시킬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기폭 장치 였다. 결국 메텔은 자 신의 아버지가 들어있는 이 팬단트를동력로에 집어 던진다. (극장판에서는 철이가 집어 던짐)

⑹ 철이의 아버지는 기계화 제국 이야말로 지상 낙원 이라고 신봉하고 프로메슘에 게 혼을 팔아 파우스트 라는 이름이 붙었다. ( 흑기사가 철이의 아 버지인 파우스트 )

⑺ 어쩌면 메텔이 종종 철이를 껴안았던 것은 파우스트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시험 해 보기 위한 확인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⑻ 그런데 철이 엄마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던 메텔은 은연 중에 정말로 철이(파우 스트의 친아들)에게 모성애 비슷한 아가폐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메텔은 안드로메다에 도착하기 직전 철이에게 '기계인간이 되지 말아죠'라고 말할 정도 로 철이를 아끼고 있었으니까.. 즉 철이 만큼은 프로메슘의 기계 용사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메텔은 철이가 파우스트의 친아들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철이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엉뚱한 소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담보로 안드로메다 까지 유인해 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⑼ 우주 전사의 총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인물은 다름아닌 토치로 였다. 토치로 는 평소 무슨 물건이든 2개씩을 만들어 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전사의 총 뿐만이 아니라 망토와 모자 까지도 철이와 똑같은 것을 착용 하고 있었다. (하록의 우주전함 아르카디어호에 토치로의 뇌세포를 이식시켜 준것 은 바로 철이였다).

⑽ 메텔 만큼이나 정체가 궁금한 인물인 차장의 정체는 '아무것도 없다'가 정답이 다. 왜냐하면 그는 속 보이는 투명 인간 이었으니까...

⑾ 999의 마지막 미스테리 였던 라면과 999의 상관 관계는 정말 황당함의 극치를 이루는 부분 이라고 할 수 있다. 999에 그토록 라면이 많이 등장했던 이유는, 마쓰모토 레이지가 일본의 3대 라면 메이커 중에 하나인 이토쓰 라면의 대주주 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PPL(작품내 간접 상품 광고) 이 응용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배고픈 자의 별' 편에서는 아예 작 가인 마쓰모토가 라면 가게 주인으로 직접 등장할 정도였다.

⑿ '메텔의 여행'편을 보면 999호가 120% 가속 궤도에 들어가자 엇갈린 시간 속에 존재하는 2명의 메텔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도 또 한명의 메텔은 레드릴이 라는 소년을 안드로메다로 데려가고 있었다. 즉 메텔은 과거(그리고 미래에도) 에도 철이와 비슷한 소년들을 계속해서 안드로메다로 데려 갔던 것이다.

⒀ 프로메슘에 의해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고통을 함께 가지게 된 비운의 여인 메 텔은 모든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다른 소년을 미래로 데리고 가기 위해 777호를 타고 철이 곁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메텔이라는 이름은 철이가 간직한 소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참조>

케이분샤 대백과[40] 은하철도 대백과
케이분샤 대백과[46] 은하철도 대백과.2 영화판
케이분샤 대백과[65] 松本零士 대백과
케이분샤 대백과[89] 은하철도 대백과 - TV판 완결편
은철 뉴스, ANIMEDIA, THE ANIME,
능력개발 미니 컬러 대백과[20] 은하철도 999
능력개발 미니 컬러 대백과[27] 은하철도 999 - TV판
키네마 준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포스터사.

하지만 여태까지 밝혀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메텔과 에메랄더스와의 관계 입니다.

TV판 제 22화 '해적선 에메랄더스'편을 보게 되면.. 우연히 철이가 에메랄더스 의 방에서 사진을 한장 발견 하는데.. 다정한 포즈로 함께 앉아 있는.. 메텔과 에메랄더스의 사진 이지요. 때문에 당시에는 자매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증거 불충분 이더군요. 어쨋든 정말 궁금할 따름 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토치로가 어떻게 에메랄더스를 꼬실 수 있었냐는 것이죠? 후후..

옛날에는 하록과 메텔의 염문설이 퍼지기도 하고.. 정말 999에 대한 화제거리가 풍족해서 좋았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구세대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군요. (일본에서 999가 TV방영되던 당시에는, 삐죽한 턱에 쓺어진 눈이 최고 미인형 으로 각광 받기도 했었습니다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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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읽으면서도 뭔 내용인지 자꾸 헷가려요..^^;;

sayonara 2004-09-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좀 복잡한 만화죠.
제가 999 왕팬이라 테입도 소장하고 끊임없이 자료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은 책으로도 한권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죠.
너무 애착이 가는 만화입니다. 훈련소 입소할 때 동생한테 녹화를 부탁할 정도였죠.
'매니아'의 이런 맘을 아실런지.. ^_^;

물만두 2004-09-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도시 가물가물하여서리...

sayonara 2004-09-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매니아가 아니라면 맥가이버나 하록선장만큼이나 추억속의 만화겠지요.. ^_^

아영엄마 2004-09-1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철도 999도 미래소년 코난도 가끔 접하게 되면 보곤 하죠. ^^
 

 < 아래의 글은10월 8일 회계법인 KPMG뉴욕본사에 초청되어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 있는 이만수코치입니다.

남의 나라인 미국 땅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분들을 뵈니 더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들 앞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젊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애리조나에 있는 유학생이 저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극구 사양했지만 내가 벌써 그런 부탁 받을 나이가 되었나?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자리도 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과연 여기 계신 분들께 분야도 너무 다른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고민 많이 했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못올 것 같다고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팀이 2위를 하는 통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습니까???

제가 유명해서였거나 성공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명해서 라고 하기에는 저는 참 오래전 선수입니다. 요즈음 저보다 더 유명한 선수 너무 많지요.

그러면 성공해서 입니까?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저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먼 사람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도착한 이곳 미국에서 아직도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 때문에 힘든 점이 많고 지도자로서도 초보단계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 도달하기에는 앞이 깜깜할 때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 자리에 초대받았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이 나이까지 30년 넘도록 야구밖에 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긴 시간을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고 치고받으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3번 바뀔 만큼 긴 시간을 야구를 해오면서 느끼고 얻은 것 중에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저도 여러분도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공감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는 프로선수로 16년간 선수생활을 했고 이곳에서도 프로팀에서 6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82년도 삼성라이온즈 창단 멤버로 입단했을 때 구단주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저를 불러 “ 프로란 무엇이냐? “고 개인적으로 물어보셨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프로팀이 처음으로 생긴 때여서 프로가 되니 돈 많이 준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지 못하던 초창기시절이라 우물쭈물 하며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선수시절 내내 나에게 따라다닌 귀중한 질문이었습니다.


프로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교육이나 트레이닝이 요구되는 직업이나 경력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저 사람은 프로다” 할때는 그 일을 잘 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자주 씁니다.

저 사람은 노래솜씨가 프로야 , 축구실력이 프로야 , 심지어 고스톱도 프로야 할 때 쓰게 되지요.

이와 반대로 그 일에 숙달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할 때 “ 저는 아직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 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돈이 생기냐 안생기냐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는 그 일에 익숙하고 그 일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재능도 필요하고 , 성실도 필요하고 , 인내도 필요하고 등등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할껍니다.

저는 제 프로야구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여러가지 조건 중에 가장 기본으로 꼽고 싶은 것이 있다면 < 고집과 섬세함 >이라고 하겠습니다.

고집이라고 하면 독불장군이나 내 것만 맞는다고 우기는 것이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내가 말하는 고집은 <기본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겁니다.


요즈음은 팔방미인이 환영받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야구선수는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고 정치가는 정치를 열심히 해야 하고 음악가는 음악을 열심히 해야 하는 그런 < 고집 >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은 이렇게 해야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하니까 나도 슬그머니 저렇게 해 버리는 경험을 사회생활 속에서 하게 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왕따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생기고 전통을 깬다는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아서 기본을 져버리고 대세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때로는 주변 사람들한테 “고집쟁이”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프로선수 생활을 하다보면 야구보다 야구외적인 일 때문에 에너지가 낭비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언제나 기본인 야구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는 < 고집 >을 가지고 16년간 선수생활을 해왔습니다.

프로 초창기에는 프로의식이 없는 선수들이 밤새워 술 마시고 다음날 경기에 술냄새 무지하게 풍기며 비몽사몽간에 경기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문을 보니 프로야구 역사가 20년이 넘어가는 요즈음에도 심심찮게 선수들이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걸리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많습니다.


운동선수의 기본은 뭡니까?

건강한 신체 , 건전한 정신이 경기력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의 경우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현역선수 시절동안 운동에 방해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예를 들면 술 , 담배 , 잡기 등입니다.

“ 새나라의 어린이 “ 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에 신경을 썼습니다.

부상의 위험이 있는 어떤 스포츠종목도 취미로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즌이 끝나 겨울이 되어서 가족들과 스키장에 해마다 가도 한번도 발목 부상의 위험이 있는 스키화를 신어보지 않았습니다.

운동선수의 < 기본을 지키고 싶은 고집 >입니다.

그런데 미국 메이저리그에 와보니 이미 선진야구에서는 모터 싸이클이나 스카이다이빙 등 부상의 위험이 있는 여가 활동은 문서로도 금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선수들까지도 몸값이 끝 간 데 없이 올라가서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금쪽같은 몸을 보호한다고 BMW , 벤츠는 타면서 운동선수가 지켜야할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뭔가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본에 대한 고집 >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유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학한 중학교에는 유도부가 없어서 운동을 좋아하던 나를 아버지께서 야구부에 밀어 넣으셨습니다.

국민학교때부터 야구를 하던 친구들 틈에 끼어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물주전자 심부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체격에 성실한 훈련 태도 덕분에 경기출장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자 코피를 흘려가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따라다니는 많은 별명 가운데 “ 연습 벌레 “ “ 독종 “ 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11년간을 거의 4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도 칭찬 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이곳에서 메이저리그 지도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선수들의 단점을 고쳐주기보다는 장점을 개발하고 격려해서 단점을 묻히게 하는 지도 스타일입니다.

나는 현역시절 단점을 고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습하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효과적이지 못한 때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 지금 와서의 생각입니다.

우리 팀에 카를로스 리라는 파나마 선수가 있습니다.

야구인인 내가 보기에도 수비솜씨가 너무 엉망이라 저 선수 메이저리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리 선수에게는 뛰어난 방망이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엉성한 수비를 탓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 반쪽선수 “ 라는 불명예가 달릴 법 한데 이곳에서는 그 선수의 방망이 솜씨를 계속 믿어주고 밀어주니 메이저 5년차인 지금은 가끔이지만 그림같은 수비를 펼치기도 하며 약점이었던 수비솜씨가 날로 좋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칭찬받고 자라지 못했던 제 기억을 생각하며 제 아이들에게는 구체적인 칭찬을 자주 해주며 키웠습니다.

대학교 2학년 ,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아들들은 아직도 아빠에게 뽀뽀하고 ,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자세히 상담하는 착한 아이들로 자랐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해주는 말은 “ 아빠는 너를 믿는다 “

“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 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힘든 사춘기를 말썽한번 부리지 않고 건강하고 명랑하게 커 주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 기본에 대한 고집 >외에 제가 < 섬세함 >을 중요한 부분으로 들었는데요.

우락부락한 운동선수에게 무슨 < 섬세함 >이 필요한지 뜻밖이라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는 < 섬세함 >의 반대가 대강대강 , 대충대충 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고 대충대충하면 삼풍백화점이 되고 성수대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분야의 사람은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스포츠로 정상에 선 사람들을 보면 섬세함이 필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축구의 차범근 감독 , 탁구의 양영자 선수 , 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박찬호나 김병현 선수도 대단히 섬세한 친구들입니다.

박찬호 선수나 김병현 선수는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는데 화려한 것 같아 보이는 박찬호 선수나 괴짜 같아 보이는 김병현 선수가 야구에 관해서 만큼은 대충대충이 없는 꼼꼼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겠습니까?

생긴 것은 동네아저씨처럼 털털하게 생겼지만 제 일에 관해서는 보기와는 다르게 무척 섬세한 편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한 야구일지는 30년이 다된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날의 경기상황 , 느낀 점 , 보완해야 할 점 기록하고 경기 외에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낀 감정들도 자세히 적습니다.

인터뷰 시간이나 경기장 도착시간 , 야구 장비나 도구의 준비 , 어웨이 경기시 준비물 등 야구에 관련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희가족은 여행을 자주 가는데 아내가 짐을 챙기면 여행지에 가서 잊어버리고 온 것이 한두 개는 꼭 있지만 제가 챙기는 날은 100% 라고 늘 아내가 탄복을 합니다.

내 직업인 야구를 하면서 얻게 된 꼼꼼함이 이럴 때 빛을 내기도 합니다.


야구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스포츠입니다.

점과 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필요하고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0.03초만에 타자 앞에 도달하기 때문에 순발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전의 재미가 큰 경기입니다.

세계적으로 축구만큼 널리 퍼져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중국이나 유럽 쪽에서 붐을 일으킨다면 지금보다 더 활성화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메이저리그를 접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에 하나가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차이점이 뭐냐는 겁니다.

양쪽 나라의 야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국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관리야구 체제이며 미국은 자율야구입니다.

한국에서 한동안 자율야구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꽉 짜여진 스케줄을 느슨하게 풀고 선수들에게 자유를 많이 주는 것으로는 자율야구를 정착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늘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관리야구 체제에서는 복종만이 살길이라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고 또 주어진 자유 뒤에 숨어있는 엄청난 책임감을 선수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2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야구는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교육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구단에서 선수단 운영을 할 때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줍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시즌과 비시즌이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제가 현역선수 시절에는 성적이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가을 마무리 훈련이라는 명목아래 페넌트레이스 내내 쌓인 피로를 풀 사이도 없이 운동장에 불려 나옵니다.

몇 주 쉬고나면 동계훈련이 기다립니다.

추운 한국에서 동계 훈련이 끝나면 따뜻한 곳으로 전지훈련을 한달에서 두달가량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마치면 바로 그날로 바이 바이 하고 손 흔들고 각자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그런 후 4달이 넘는 동안 철저한 자유가 보장됩니다.

그 다음해 2월 중순에 만나게 되면 비시즌 동안 시즌을 위한 체력준비가 완전히 다 된 것으로 간주하고 바로 실전에 들어갑니다.

두달 가까운 전지훈련 동안 쉬는 날이 딱 하루밖에 없는 강행군이지만 탈락되는 선수가 없습니다.

4달간의 자유 속에서 각자 알아서 체력관리를 한 결과일겁니다.

제가 현역일 때는 12월 한달 쉬는 동안에도 헬스클럽에 출석부를 만들어 놓고 매일 도장 찍어가며 감시 아닌 감시를 당했지만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힘들어하는 선수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을 줄로 알지만 구단에서 선수들을 믿고 자율적인 휴가를 충분히 줄 수 있도록 선수들이 먼저 프로의식을 가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리나라는 비싼 외화를 들여 해외전지훈련에 오면 3일 내지 4일 훈련 하루 휴식의 일정으로 스케줄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스프링 트레이닝 두달 중에 단 하루밖에 휴식이 없고 34게임 시범경기를 치러내는 강인한 체력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메이저리거들의 당연한 책임입니다.

운동장 밖으로 나가면 일체의 개인사생활이 자유스럽게 보장되지만 내가 겪어본 메이저리거들은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도에 넘치는 음주나 외박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또 가족들이 언제든지 어웨이 경기를 따라올 수 있도록 구단에서 배려해 주기 때문에 아내나 애인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초창기에 어웨이 경기 갔을 때 밤마다 점호를 하고 코치들이 로비에서 12시까지 못 나가도록 보초를 서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메이저리거들은 평생 쓸 부와 엄청난 명예를 쥘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누가 뭐라고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관리합니다.

구단에서 관리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하거던요.

우리나라도 이제 몸값이 많이 올라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좋은 기회 앞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 자기 일에 대한 고집과 꼼꼼함 >으로 자신을 관리 한다면 더 이상 구단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장점은 뭘까요?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르다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듣습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팀에 최대한 협조 합니다.

이곳에서는 야구보다 가족들 일이 우선일 때가 허다해서 제가 깜짝 놀란 때가 많았습니다.

삭스팀 제리 감독은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식 한다고 중요한 상황에서 3일간 빠지고 어떤 선수는 아내가 4번째 아이 출산한다고 2일씩 빠지고 외삼촌 돌아 가셨다고 3일 빠지고 외할머니 돌아 가셨다고 3일 빠지는 등등…………

부모 임종도 못보고 검은 리본으로 슬픔을 대신하며 경기에 나서는 한국선수들을 보면서 운동을 한 나에게는 황당한 이유로 밖에 안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20년이 넘는 야구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야구인으로써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활성화되는 길을 생각해봅니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여주는 것 외에도 야구장 시설로, 팬서비스로 , 이벤트로 , 심지어는 먹거리로도 관중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고 있는 이곳 메이저 리그의 야구가 국민들의 건전한 여가 선용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을 보면 부러움을 느낍니다.

이제는 우리도 구장이 크든 작든 , 구장에 뚜껑이 있든 없든 팬과 선수가 함께 즐거울 수 있고, 그리고 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야구단을 통하여 자신들이 추구하는 기업이미지를 잘 홍보할 수 있는 ( 우승만이 기업이미지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마인드가 있어야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야구는 야구단운영만으로 이익을 만드는 진정한 프로스포츠단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에 미국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실정에 맞는 좋은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프로야구 1세대들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구단만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고 선수만 잘 해서 되는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나가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출발이 지역 연고 출신선수로 시작되다니 야구의 내용이나 특징보다는 내 지역선수에 대한 애착이 앞섰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야구단이 발전하고 팬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크게는 구단을 응원하고 작게는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떤 구단이 어느 지역선수와 코칭스텝으로 구성하든지 간에 그 구단이 지향하는 목표나 팀 색깔이 팬들의 마음에 든다면 그 구단자체를 응원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어느 팀에서 뛰든지 그 선수의 팬이 되어서 그 선수가 속한 구단을 응원 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나라 보다 야구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의 분위기입니다.

( 미국과 우리나라 야구는 출발도 다르고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른 점이 많아서 꼭 어느 쪽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저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선수말년에 고생 좀 했습니다.

새로 바뀐 감독이 수십년을 해오던 나의 포지션이던 포수자리에서 1루수로 바꾸며 출장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야구를 하면서 팬들에게 , 내 자신에게 한 약속이 현역선수 40세까지였습니다.

무조건 오래하고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로 현상이 판치는 한국 야구계에서 선수 정년을 높이고 선수도 직업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선수 수명이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아까 말씀드렸던대로 야구선수로서 야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열심히 하는 < 기본에 대한 고집 >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 섬세한 부분 >까지 꼼꼼히 챙겨서 뒤에 야구를 하게 될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열심히 내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래도 3관왕 , 홈런왕이 무색할 만큼 한 경기에서 한타석 정도의 차례가 돌아오는 벤치 생활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관중들이 이만수 이만수를 부르면 경기에 승패가 걸려있지도 않는 중요하지 않는 순간에 마지못해 대타로 내보내주면 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갈 때의 심정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은퇴 3년전쯤 우리 팀의 단장이 나를 불러서 2년동안 미국야구연수를 권했는데 사람들은 너무 좋은 기회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30살만 넘으면 노장소리 듣고 35살 되면 완전히 퇴물취급 당하는 이런 풍토는 계속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야구를 참 좋아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다는 고집으로 나머지 3년을 벤치에서 잘 보냈습니다.

그 덕분에 스타선수가 절대로 알 수없는 후보선수들의 고충도 알았고 경기를 지켜보면서 직접 시합하는 것과는 다른 경기의 흐름을 읽는 것도 배웠습니다.

우스운 이야기는 내가 한참 시합 뛸 때 공수 교대 하면서 벤치에 들어와 시원한 음료수를 찾으면 없을 때가 자주 있어서 의아 했는데 내가 벤치에 앉아 있어보니 후보선수들이 할일은 벤치에서 음료수 먹는 것뿐입디다.


나는 40살까지의 현역선수 생활이란 약속을 이루고 미국으로 선진야구를 배우러 왔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 이 나이에 공부하러 오는 것이 맞나? 하는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길로 가라는 가족과 팬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현역 선수는 아니지만 지도자로서의 훈련도 역시 < 기본에 대한 고집과 섬세함 >이 필요하더군요.

나에게 주어진 일은 야구이고 야구에서 만큼은 기본을 철저히 지키고 대충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누구보다 제일먼저 야구장에 도착해서 개인체력 훈련과 훈련일기를 쓴 것이 벌써 4년째가 되다보니 팀전체가 만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라고 말해줍니다.

4년간의 홈경기중 작년에 단 하루 박찬호선수와 점심을 같이하고 오던중 길을 잃어버려 찬호도 나도 지각을 했는데 팀에서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늦게 올 사람이 절대 아니라며 걱정을 하고 이곳저곳으로 연락을 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메이저 일정 162경기는 미국 전역을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해야 하기 때문에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고 빡빡합니다.

짧은 영어로 이 스케줄을 놓치지 않고 따라 하려면 꼼꼼함은 필수입니다.


미국생활은 정말 멘 땅에 헤딩하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도 말년의 벤치생활 보다는 낫습디다.

아들뻘인 새파란 선수가 뒤통수를 건드리며 내 이름을 부를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고 , 팀 내에 고약한 코치 한명이 마늘냄새 난다고 노골적으로 놀리면 보따리를 싸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내나라가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을 다 잡으며 한해 한해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보고 배운 것들은 훗날 지도자가 되면 쓰이게 될 귀중한 자료기 때문에 열심히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이곳에 더 남아있게 될지 한국에 돌아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느 곳에 있던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고집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와는 무척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지만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께 주어진 일에 대해 < 기본에 대한 고집과 섬세함 >으로 여러분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속해있는 분야가 한단계 UP GRADE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이만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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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헬퍼 2004-09-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만수 제가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무작정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가져가서 읽고 싶어서요. 인사도 없이 무례하지만 이해해 주시길...다음에 정식으로...고맙습니다. 추천 먼저 누르고...

sayonara 2004-09-0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력과 기본의 중요성, 다 아는 내용이지만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하죠.
저는 메이저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가, 몇년동안 부진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며 여러 팀들을 전전하다 최근에 다시 부활한 노모 히데오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가 동양인 메이저리거 첫선수죠.
 

[연재] 레인이의 중국이야기 13
- 눈물의 오징어볶음

2003.09.25.목요일
딴지관광청

나는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 아니, 만드는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내가 만드는 요리가 제법 그럴싸한 맛을 낸다는 거다. 난 나의 음식을 먹어 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시장을 보고, '한 그릇 더!' 라고 말 할 사람들을 떠 올리며 밥을 짓고, '정말 맛있었어.' 라고 부른 배를 기분 좋게 두드릴 사람들을 상상하며 요리하니까...

그러니까... 내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거다.

중국에서 난 꽤 자주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초대했다. 타국 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거겠지만 한국과는 다른 야채와 양념들로 우리 입에 맞는 맛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특히 혼자 먹는 밥. 이게 정말 고역이라 멸치볶음, 김치찌개 하나를 하더래도 이사람 저사람 불러모아 함께 먹는 게 습관처럼 된 거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혼자서 밥을 먹고 있노라면 맛은 커녕 지금 내가 밥을 먹는 건지, 죽지 않을려고 무의식적으로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넣는 건지... 밥을 먹는 게 일종의 살아가기 위한 행위 정도 밖에는 의미를 갖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처량해질 때가 많은데 여럿이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면 맛도 맛이지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우리 집엔 꽤 많은 한국 양념들과 이곳 저곳에서 구한 야채, 그리고 조선족 식당에서 공수한 각종 먹거리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순대라던가 떡볶이 떡이라던가 깻잎, 어묵 같은 것들...

순대는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 아바이순대라는 식당에서 살 수 있었는데 조리하지 않은 순대는 팔 수 없다는 주인 아저씨를 꽤 귀찮게 군 덕에 어렵게 구할 수 있었고 떡볶이 떡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방앗간에서, 깻잎은 한국을 갔다오는 사람들이 사다주거나 가끔 한인 교회에서 파는 것을 샀다. 지금은 지천에 널린 게 한국 슈퍼들이고 그렇게 구하기 어렵던 깻잎이며 어묵이며 떡볶이며...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당시엔 구하기 쉽지 않은 정말 귀한 것(?)들이었다.

난 가끔씩 그 귀한 재료들을 풀어내어 잔치를 벌였다. 냉동실에서 또아리를 튼 채 꽁꽁 얼어 있는 순대를 조금 풀어내어 쫄면과 깻잎, 양배추와 양파, 마늘을 충분히 넣은 후 갖은 양념을 하고 얼큰하게 볶아내어 훌륭한 순대 볶음을 만들었고 빨갛고 매콤한 양념과 오뎅, 라면사리를 넣어 떡볶이를 만들었다. 돈이 좀 넉넉한 날엔 해물시장에 들러 낙지도 사고, 조개도 사고, 새우, 꽃게도 사서 해물탕을 끓이기도 했다.

그런 다음 친구들을 불러내어 함께 먹는 거다. 그러면 난 금새 그들의 천사가 되고, 엄마가 되고, 베스트 프랜이 된다.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난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들러 가방을 내려 놓고 시장갈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하지만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고 편한 신발과 가방을 하나 준비하는 거다. 질퍽한 시장 바닥을 헤집고 다닐려면 슬리퍼보다는 운동화가 편하고, 세상에서 제일 얇은 비닐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중국의 부실한 비닐 봉지는 가끔씩 날 중국 시장에 쪼그리고 앉게 만드는 데다가 떨어진 물건 위로 사람들이나 자전거 바퀴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도 해서 튼튼한 가방을 챙겨야 했다.

오랜만에 해산물 시장을 가기로 하고 집 앞에서 인력거를 잡아 탔다(시장이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는 건 시장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꽃 시장 때문이다. 장을 다 본 후에 꽃 시장에 들러 꽃을 한아름 사 들고 인력거를 타면 인력거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꽃 향기가 살짝 묻어나서 나를 기분좋게 간지럽혀주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해산물 시장에 갈 땐 꼭 인력거를 탔다).

물론 타기 전에는 흥정을 잊지 않는다. 난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나만의 규칙으로 정하고 있었다. 시장이 있는 거리를 말하고 일단 3 원에 가자고 한다. 5 원을 넘지 않는 한도내에서 흥정을 하고 그 이상을 부르면 난 깨끗이 돌아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력거 아저씨들은 내가 다른 인력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커이커이(可以 keyi, 알았어.그래)' 하며 인력거 머리를 돌린다.

난 그 날도 어김없이 운동화를 신고 가방을 메고 3 원 짜리 인력거를 타고 시장엘 갔다. 먼저 한 바퀴를 쭉 둘러봤다. 이건 엄마한테 배운 건데 일단 시장을 다 둘러본 후에 어디에 뭐가 물이 좋고 싼지 파악해뒀다가 나중에 사야 절약도 하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댔다.

오징어가 싱싱했다. 거무틱틱한 껍데기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이 아주 건강해 보였다. 소쿠리에 다정하게 올라있는 다섯 마리를 다 사 버렸다. 한 번 해 먹기엔 많은 양이지만 모자라서 아쉬운 것보다는 남는 게 낫다. 이래서 난 항상 손이 크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지만 이런 음식 사치(?)는 중국이 아니면 감히 어디서 해보겠냐는 생각에 난 항상 음식을 넉넉하게 했다. 그리고 많은 것 같아 보여도 막상 먹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고 어쩌다 음식이 남아도 서로 싸 가겠다고 해서 마음의 짐도 덜어주니 음식의 양으로 야뱍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오늘의 메뉴는 오징어볶음으로 정하고 야채를 사러 돌아다녔다. 한국의 것보다 적어도 5 배는 클 것 같은 중국의 고추를 1 근 사고, 구불구불 미로같은 단면이 드러난 양배추 하나와 양파와 당근 파, 마늘 등등의 갖은 야채를 샀다. 그리고 늘 그렇듯 시장 끝에 연결된 꽃 시장에 들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스티블루와 카라를 한 단씩 사 들고 인력거에 앉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먼저 야채를 씻어 다듬었다. 양배추와 당근은 채 썰고 고추와 파는 어슷 썰어 놓는다. 마늘도 다진다. 오징어를 다듬기 위해 동그란 나무 도마를 꺼내고 네모난 중국식 칼을 부엌 벽 타일에 갈았다. 한국에 있을 땐 물컹한 느낌이 너무 싫어서 날 오징어는 손도 못 댔는데 이젠 혼자서 배로 가르고 내장도 손질한다(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은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데다가 익숙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주황색 비닐 봉투에 담긴 오징어를 하얀색 싱크대에 쏟아 놓으니 세모난 머리 다섯 개와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오징어 다리들이 제 멋대로 엉켜있다. 한 마리를 잡고 미끈거리는 배를 갈랐다. 그 다음 빨판이 징그럽게 달려 있는 다리를 잡고 한번에 내장까지 전부떼어낸다. 몸통은 얇은 뼈까지 깨끗히 제거하고 다리는 속에 감춰진 눈과 내장을 다 잘라내고 다듬는다. 그렇게 두어 마리쯤 손질을 했나보다. 오징어가 워낙 미끄러워서 조심한다고 했는데, 칼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왼쪽 검지 손가락을 조금 잘라놨다. 손톱과 그 안쪽에 붙어 있는 살이 조금 떨어져 나가고 그다지 빨갛지 않은 속살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피가 뚝뚝 흘렀다. 아픈 것보다는 도마위를 흥건히 적셔놓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의 흐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순서대로라면 이쯤에서 난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러면 엄마나 친구들이 달려와서 휴지로 피를 닦아 주고, 약을 발라줘야 한다. 그들의 걱정스런 말투에 나는 더욱 더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오징어 볶음은 엄마가 마무리를 해야하는 거다.

그런데, 난 혼자였다. 손도 못대던 징그러운 오징어를 씩씩하게 다듬다가 손이 베었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호소할 엄마도, 친구도.. 아무도 없었다.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데 난 부엌에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하얗던 오징어가 빨갛게 물이 들도록...

갑자기 혼자라는 느낌이 무섭게 엄습했다. 그리고 이내 서글퍼졌다. 반창고를 갖고 달려와 줄 엄마 생각이 나는 듯 하다가 사라지고, 괜찮냐고 달려와서 피를 닦아줄 친구들 생각이 나는 듯 하다가 사라지고,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인 나만 덩그러니 부엌에 남아 있었다.

오징어를 손질 하다가 손을 베인 작은 사건은 어이없게도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또렷하고 선명하게 각인시켜주었다. 네모나고 무식하고 무거운 중국 칼은 내 검지 손가락의 손톱과 살 뿐만 아니라 내 가슴 속의 그리움마저 도려냈다.

결국엔 울었다. 부엌 바닥에 주저 앉아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어가며 펑펑 울어댔다. 아파서 운 게 아니였다. 혼자인 사실이 너무나도 서러워서... 그리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어렸을 땐 피가 나면 조금이라도 더 나오게 일부러 짜내서 엄마한테 달려갔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어..' 라며 보여줬다. 그러면 엄마는 '어머 우리 딸, 피가 왜 이렇게 많이 났어?' 하는 표정으로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는데 난 그런 엄마의 얼굴이 좋았다. 상처를 살피느라 이마 가운데 살짝 찌푸려진 주름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고 호오~ 하며 약을 발라줄 때 오므라진 엄마의 입술은 그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뿌듯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난 다쳐서 약을 바르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사랑받고 보호받는 행복한 아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혼자다. 이렇게 피가 많이 흘렀는데... 엄마의 동정심을 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고 날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횐데 말이다.

꽤 많은 양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양파를 잘랐던 칼에 베어서 그런지 손이 점점 화끈거려왔다. 난 얼른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풀고 다친 부위를 물로 씻어내고 약을 발랐다. 반창고를 붙여도 계속 새어나는 피 때문에 다시 붕대를 칭칭 감고 왼쪽 손에 고무 장갑을 꼈다. 칼 반대편에 붙어있는 내 조그마한 살점을 떼어내고 다시 오징어를 손질했다. 손이 아려왔지만 그보다 내 요리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 얼굴이 더 아른거렸다.

피로 빨갛게 물들은 오징어를 버릴까 하다 물로 씻어보니 깨끗해지길래 그냥 넣고(사람의 피가 배인 거라 더 맛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손질해 둔 야채와 갖은 양념으로 매콤하게 오징어볶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레인 : 야야!! 오늘은 오징어볶음이야. 열라 맛있으니까 얼릉 와..
                   니가 다른 얘들한테 전화 하구...

         친구 : 응.. 와아~~~~! 콜라 사 가꾸 갈께.

십 분도 안되서 친구들이 몰려왔다. 큰 접시에 오징어볶음을 한 가득 담아내고 커다란 공기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식탁에 올려놨다. 늘 그렇지만 별다른 반찬은 없다. 우린 항상 일품요리였다.

나까지 총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오징어 다섯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여전히 '맛있네, 맛있어.' 를 연발해 주는 친구들 덕에 난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맛있게 먹은 것 같다.

그런데, 한 친구가 상을 치우다가 붕대를 감고 있는 내 검지손가락을 발견했다.

         친구 : 야~ 너 손 왜 그래? 다쳤어?

         레인 : 아하하. 응. 이 바보들..

         친구 : 왜? 왜 그랬어?

         레인 : 오징어볶음 맛있었어?

         친구 : 왜 다쳤냐구 물으니까.. 그건 왜 물어? 왜 그랬냐니까?!

         레인 : 맛있었냐구!!! 대답이나 햇!

         친구 : 응. 맛있었어. 왜?

         레인 : 푸하하하.. 너네 그게 왜 맛있는 줄 알어?
                   내 피에 물들은 오징어를 넣어서 그래. 아하하하.. 웃기다.

         친구 : 너 손 다쳤구나?

         레인 : 응... 오징어 손질하다가 베었어.

         친구 : 어디바바.. 많이 다쳤어? 아직도 피가 베어나오네...

         레인 : 아이씨~ 괜찮어.

         친구 : 어디 풀러바.

         레인 : 괜찮대두. 아.. 그만해. 우리 후식이나 먹자. 콜라 가져 와!

         친구 : 많이 다친 거면 병원 가자. 응?

         레인 : 너네 자꾸 왜 그래..? 흐흑....

결국 또 한 번 울었다. 사실은 너무나 아팠다고... 그런데 아무도 없어서 그게 더 맘 아팠다고... 상을 치우다 만채 바닥에 주저 앉아 붕대에 칭칭 감긴 검지 손가락을 펴 들고 울어 버렸다. 오징어볶음을 맛있게 먹은 친구들은 이 어이없는 눈물 앞에서 잠시 당황해하는 듯 하더니 금새 같이 눈물을 떨구었다. 모두들 오징어만큼 만한 아니, 잘려진 손톱만큼 만한 그리움을 참아내고 있었나보다.

그날 저녁 우린 오징어볶음 먹고 터져 버린 매운 눈물 주머니 덕분에 보고 싶은 엄마, 아빠 얘기에서 맨날 싸우던 언니, 오빠, 동생 얘기, 한국에 두고 온 여자친구, 남자친구, 중국 올 때 헤어진 애인, 집에 있는 강아지 얘기와 한국의 그리운 것들에 대한 얘기로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에서 붕대를 다 풀어낼 때까지 친구들은 나 대신 밥도 해 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가끔은 세수까지 시켜줬다.

우린 그 일을 '오징어눈물대사건' 이라 칭하고 가끔 웃었다. 사실은 그때 배가 너무 불러서 눈물이 난 거라고... 네가 울길래 따라 운 것 뿐이라고... 오징어볶음이 너무 매워서 눈이 빨개진 거였다고...

배불리 오징어볶음을 먹고 난 네 명의 여자애들이 하나의 검지손가락 때문에 바닥에 퍼질러 앉아 통곡한 일은 사실 슬프다기보단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검지 손톱 끝자락에 조그맣게 흉터를 남기고 자라지 않는 손톱을 볼 때마다 그날의 허전함이 떠 오른다.

그래서 난 오징어를 보면 가끔 외로워진다. 그리고 아주 가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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