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 아줌마의 속시원~한 수다]

얼마전 일어난 미국 테러사건의 피해자들이 죽음 직전 가족과 친구에게 남긴 말은 한결같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라는 것. 평소 우리는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량한 자존심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이 다음에 해야지’ 하는 게으름 때문에. 그러다보면 그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 수도 있다. 오늘이라도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관심을 표현해 보자. 당장 내일 죽지 않는다 해도 아쉬울 건 없지 않은가.

한 명상가가 수련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생명이 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그 1개월 동안 당신이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사람들은 진지하고도 고통스럽게,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의 마지막 소망을 종이에 적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노모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다 생을 마감하겠다는 중년의 남자. 늘 자기를 나무라는 권위적인 상사에게 눈을 부라려보겠다는 소심한 샐러리맨,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해 카리브해 호화유람선을 타보겠다는 20대 처녀.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겠다는 주부.

명상가가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망을 왜 지금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겁니까?”

물론 이 이야기는 왜 지금 당장 할 수도 있는 일을 나중에, 이 다음에, 늙은 다음에, 죽기 전에로 미루며 자유의지대로 살지 못하는가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우리에게 남은 생명이, 한달 아니 불과 몇분뿐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은행 통장을 정리하는 걸까, 아님 배부르게 잔뜩 먹는 걸까, 아니면 평소 미워했던 이들을 찾아가 따귀라도 때려주는 걸까.

얼마전 일어난 미국의 테러사건을 보면서 난 미국과 테러범들과의 관계나 정치적 문제, 혹은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기보다 그 사건으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과 그 가족들이 안쓰러워 가슴이 아팠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그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1백층 이상의 고층빌딩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비행기 납치범에 의해 인간폭탄 재료가 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인종도, 나이도, 직업과 성격도 모두 다른 이들이지만 그들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나 핸드폰으로 남긴 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더 살고 싶다는 애원이나 복수를 해달라는 저주가 아니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한결같았다.

“내가 당신을(엄마를, 아빠를, 언니를, 친구를) 사랑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가까우면 너무 가까워서, 거리가 좀 멀면 멀어서 우린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알량한 자존심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이 다음에 해야지’ 하는 게으름 때문에.

얼마전에도 그랬다. 우리 부에 아르바이트 학생이 들어왔다. 20세, 만으로는 18세라고 하는데 노랑머리에 야한 옷차림, 그리고 눈빛도 약간 불안했다. 일도 별로 성의있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전형적인 요즘 아이구나’ 하고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이가 얼굴빛이 달라져서 조퇴를 했다. 물어보니 가족 사이에 문제가 좀 많은 것 같았다. 고등학생인 동생은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부모도 그렇고. 그 불안한 눈빛의 이유를 알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가정환경이 어려워도 가출도 안하고, 원조교제도 안하고 착실하게 사무실에 일하러 나왔다는 것만으로 그 아이를 돕고 싶었다. 조용히 불러내서 집안 이야기도 듣고 도와줄 일이 없는지도 알아보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해외출장을 다녀와보니 그 아이는 이미 회사를 그만둔 후였다. 연락도 잘 안된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진작 조금만 더 빨리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뭔가 같이 고민했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이 다음에’하며 말을 아끼는 사이에 그 아이는 이젠 나와 인연이 없어져버렸다.

 ‘다음에’라고 미룬 사이 관심을 보여줄 기회는 사라지고 말아

또 얼마전에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국내 명문의대 교수가 된 걸 알았다. 후배의 아기가 수술을 할 예정이어서 무심히 그 이야기를 하는데 담당 주치의가 그 동창생이었다. 그 친구가 의대에 들어간 후 만난 적은 있지만 20여 년을 소식을 전하지 않은 사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친구를 처음 본 후 난 혼자 끙끙거리며 짝사랑을 했고 마음속에서 그 아이를 어린 왕자로 곱게 키웠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만났을 때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제 40대 막가파 아줌마가 되었고 나름대로 이미 다 정리된 ‘과거 완료형’의 감정이었기에 교수명단에서 그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메일을 보냈다. 나를 기억하냐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널 무지무지 짝사랑했다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답장이 왔다. 다른 내용은 없고 “네가 날 좋아했었다니 굉장히 충격적이다”라는 말,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뿐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섭섭하고 부끄러웠다. 20여 년 만에 친구가 편지를 보냈는데 예의로라도 “언제 한 번 만나 차나 마시자” 하고 제안할 줄 알았는데 “놀랐다”는 말만 반복하고 건강하라고 기원만 하다니. 하지만 그에게 좋아했었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때가 늦긴 했어도 그 애를 좋아했었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뒤늦게라도 누군가 자기를 좋아했다고 하면 불쾌하거나 억울하지는 않을 테니까.

요즘은 매일 밤 엄마를 씻겨드리고 재워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오늘도 살아계셔 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엄마가 치매에 걸리기 전, 건강하고 무슨 말이건 다 들어주셨을 때는 엄마에게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을 잘 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뭐 해달라, 섭섭하다 등등만 강조했다. 엄마가 건강하셨을 때 더 많이 안아 드리고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게 참 미안하다.

내 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 딸이니까 사랑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그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표현못할 때가 많다. 그 아이의 미소가 얼마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지, 그 아이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해지는지를 알려줘야겠다. 내 사랑을 알면 딸아이는 절대로 가출도 안 할거고 나쁜 유혹에도 빠지지 못할 것이다. 당장 내일 죽지 않는다 해도 지금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 손해볼 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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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9-09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즉각즉각 표현하기도 참 쑥쓰럽죠.
"엄마 잘할께요"하는 박카스 CF도 왜 그리 어색한지.. ^_^;;;
 

[세계일보 2004-02-04 09:48]

다국적기업들에서 일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대해 도덕적 의분을 토하는 인사들은 그 노동자들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사용자인 다국적기업들이 그들에게 과거보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그 도덕적 십자군들 중에 비교적 합리적인 일부 인사는 다국적기업들이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나은 보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유한 다국적기업들이 어째서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선진국 노동자들과 좀더 비슷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이유이다. 경제적 이유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시간당 산출량, 즉 생산성이 미국과 같은 서방 선진국 노동자 생산성의 몇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산성을 무시한 보수 인상은 비록 그것이 제3세계에 대한 ‘착취’를 중단하는 것이든 미국 노동자들에게 ‘생활급’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든 사실상의 실직보장서일 따름이다.

현대의 대다수 선진국에는 최저임금법이 있다. 그러나 고액 최저임금제나 추가적인 노동자 수당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들은 실업률이 높은 나라들인 경향이 있다. 예컨대 독일은 정부가 의무화하는 가장 많은 노동자 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이 수당 가운데 퇴직수당은 너무나 높아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은 비경제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이 같은 수당 비용은 미국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수당의 약 두 배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노동자들이나 다른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높은 노동비용과 해고의 어려움은 심지어 경기가 좋을 때에도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미국인들은 실업률이 6%에 이르면 경악하지만, 독일에서는 두자릿수의 실업률이 통례이다.

과거 한때 스위스나 홍콩에는 최저임금법이 없었다. 지난해 영국 시사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스위스의 실업률이 2월에 5년 만의 최고 기록인 3.9%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최저임금법이 있는 대다수 국가의 경우 실업률 3.9%는 비록 전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아마 5년 만의 최저 기록이 될 것이다.

과거 홍콩이 영국 식민지 하에서 임금 수준이 수요와 공급 원칙에 의해 결정될 때 월스트리트 저널은 홍콩의 실업률이 2% 이하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을 인수하고 각종 노동자 수당을 의무화함으로써 노동비용과 임금 수준이 상승하게 되자 홍콩의 실업률은 8%를 넘어섰다.

이러한 실업률은 유럽 기준으로는 높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유례없는 일이다.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

그런데 부유한 다국적기업들은 어째서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생산성보다 더 많은 보수를 지불하는 데 따른 비용을 스스로 흡수할 수 없는가. 다국적기업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매출액 수십억달러의 다국적기업들은 억만장자들의 소유인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 다국적기업들은 대개 수백만명은 아닐지라도 수천명의 주주들의 소유이며, 이 주주들 대다수는 억만장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 주주들 가운데 일부는 다국적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하는 연금기금에 투자함으로써 직·간접으로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교사와 간호사, 기계공, 사무원, 여타 유사 계층의 사람들일 수 있다.

실제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주식투자자들의 평균 소득은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보수를 지불하는 데 따른 비용을 다국적기업들이 흡수해 주기를 바라는 지식인들과 정치인 및 여타 인사들의 평균 소득 수준보다 전혀 더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교사들과 간호사, 기계공, 사무원들이 정년퇴직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것을 수락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뉴욕 타임스의 기자나 일류 대학 교수들, 영화배우 혹은 도덕적으로 의분을 토하는 다른 인사들은 어째서 제3세계에 대해 그들과 유사한 기부금을 내놓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도덕적으로 의분을 토하는 인사들에게 있어서 제3세계를 지원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용을 내도록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자신들이 비용을 내야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워싱턴 타임스

정리=권화섭 한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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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의 경제노트, 2004.8.31)

해외 언론은 한민족의 혈맥 속에 활 쏘는 민족의 DNA가 존재한다고 믿기도 함.
하지만 한국 여자 궁사들의 성공은 결코 타고난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치밀한 전략과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물이었음.

외국 선수들은 하루 100발 정도로 연습, 소속팀이 없는 선수나 일정한 직업이 있는 선수의 경우 일주일에 하루 연습하는 수준이나 한국 선수들은 하루 300~500발 이상을 연습하고, 올림픽 때는 1000발씩 연습함.

야간에 서치라이트까지 켜놓고 훈련을 하기도 하며, 어떤 선수는 밤에 공동묘지에서 혼자 촛불을 켜놓고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음.

이장균의 '한국 여자양궁 신화와 기업 경영 전략' 중에서 (현대경제연구원, 2004.8.30)


1984년 LA올림픽 이후 이번 아테네올림픽까지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석권한 한국 여자양궁 선수들.

한 경제연구소는 이 여자 양궁선수들의 경쟁력을 분석, 기업경영에 주는 시사점을 다음 7가지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1.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
2. 시장을 지배하고 표준을 선도하라
3.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위협받지 않는 핵심역량을 갖춰라
4. 핵심인재 그룹을 형성하고,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라
5. 차세대 리더를 키우고 세대교체에 성공하라
6. 조직내 학습 및 R&D에 역량을 집중하라
7. 내부의 적을 관리하라

연구소의 지적대로, 이들의 성공은 결코 타고난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치밀한 전략과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수백발의 활을, 시합을 앞두고는 1000발의 활을 쏘며 연습했습니다.
보통 100발을 쏜다는 외국 선수들에 비하면, 살인적인 연습량입니다.

그들을 또 상대가 잘못 쏘기를 기대하게 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되어 오히려 자신의 점수가 나빠진다고 생각, 경쟁자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활쏘기에 집중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 자신을 이기겠다는 자세로 매일 1000발의 활을 쏜 그들.
진정한 '인생의 금메달리스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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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9-0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광 뒤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있습니다.
1000발이라... 역시 한계를 넘는 노력이 필요하긴 한가 봅니다.
마지막 구절, 저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적의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Jim Abbott. 밀워키 브루워즈)가 10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금세기 최고의 인간 승리로 신체장애인들의 빛나는 희망이었던 그는 오른쪽 손이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정상인들도 도전하기 힘든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위대한 성적을 낳은 장본인. 10년간 87승 방어율 4.25를 기록했고, 93년 뉴욕 양키즈 시절에는 이름있는 실력파 투수도 평생에 한번 할까말까한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른손이 없어도 야구가 좋았던 소년

본명이 Abbott James Anthony인 애보트는 1967년 9월19일 미시간주의 플린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오른손이 없었던 그에게 발을 사용하는 축구를 가르치며 밝게 자라주길 기원했다. 그러나 애보트는 야구에 더 재미를 느껴 6살 때 의수를 풀어 버리고 혼자서 공던지기를 즐겼다. 리틀리그에 들어간 11살 때는 팀의 투수로 활약했다.

전미(全美)대표팀의 에이스

애보트가 공을 뿌린뒤 지금처럼 재빨리 글러브를 왼손에 끼우기 시작한 건 고교시절부터다. 상대 타자들이 연속적으로 번트를 대는데 자극받아 맹렬히 수비 연습을 한 것. 고교 졸업을 앞두고 프로팀 가운데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그에게 입단을 제의했다. 1985년 당시 Free-Agent Draft에서 토론토는 36라운드에 애보트를 지명하고 계약금 5만달러를 제시한 것. 그러나 "지금 프로에 가면 단순히 구경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내 능력을 평가받고 싶다. 왼팔로 돈을 벌고 싶지, 오른팔로 돈벌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며 동향의 미시간대에 진학했다. 미시간대에서 애보트는 145Km의 강속구를 자랑하며 통산 26승 8패 방어율 3.03를 기록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애보트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전미대표팀의 일원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부터다. 시범경기로 치러진 이 대회에서 그는 흡사 묘기대행진과도 같은 투구모습을 선보이며 미국팀을 당당히 우승으로 이끌었다.
 
묘기와도 같은 투구 동작

포수가 던져주는 공을 왼손으로 받아 조막손인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옮겨 끼고 다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그의 동작은 너무 자연스럽고 빠르다.
먼저 공이 담긴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쳐 놓고 왼손으로 공을 빼내 투구한 후 그는 왼손으로 글러브를 끼고 수비 자세를 취한다. 글러브로 공을 받아선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치고 왼손으로 공을 빼내 던지고자 하는 곳으로 투구 또는 송구를 한다. 이런 자세로 그는 145Km대의 강속구를 뿌렸다.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꿈의 MLB 직행 그리고 노히트노런

애보트는 88년 그해의 가장 훌륭한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되는 설리반상을 받고 프로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엔젤스(현 애너하임 엔젤스)에 1차로 지명되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로빈 벤츄라, 볼티모어 오리올즈의 그렉 올슨, 텍사스 레인저스의 몬티 파리스 등이 1차 지명 동기들이다. 그는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해 4월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첫 게임서 패한 그는 4월28일 볼티모어 오리올즈에게 첫 승을 신고한후 첫해 12승12패 방어율 3.92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이듬해에도 10승(14패)을 올려 그의 실력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한 그는 3년차때인 91년 18승11패 방어율 2.89의 성적으로 로저 클레멘스(볼티모어.18승10패 방 2.41), 케빈 타파니(미네소타.16승9패 방 2.99)등과 사이영상을 다투기도 했다.
애보트는 92년말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을까? 93시즌 애보트는 9월4일 양키스타디움서 벌어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서 대망의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그해 4월7일 양키즈 유니폼을 입고 첫 출격했을 때 패배의 수모를 안겨준 바로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한 완승이었기에 더욱 값진 기억으로 남았다.

이제 기적은 막을 내리고...

올시즌 2승8패 방어율 6.91.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에 차지 않는 성적을 남긴 애보트는 밀워키로부터 방출 통고를 받자 이렇게 말했다. 그의 나이 32세. 애보트는 은퇴를 결심했다. 96년 캘리포니아 엔젤스에서 2승18패로 무너진뒤 마이너리그를 거쳐 98년 5승을 올리며 재기하는 듯 했으나 40만달러를 받고 밀워키로 옮겨온 올시즌 다시 부진에 빠지자 은퇴를 공식 발표한 것. 지난 10년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 팔만으로 100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10년간 통산 87승108패 방어율 4.25를 남긴 그는 아마야구 최고의 좌완 투수와 올림픽 금메달, MLB 노히트노런 등 야구선수로서 누릴수 있는 영예는 어쩌면 다 누린 셈인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6월15일 시카고 커브스전에선 4회에 한손으로 안타를 치며 타점까지 올리는 진기록을 남겼다.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회상에서 이제 기적은 막을 내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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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부터

아래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도 안내됐지만 우리 사이트와 제가 운영하는 또 다른 까페 `권영설의 모든 직장인은 경영자다`(cafe.daum.net/bizandlife)에서 MT를 떠납니다.이름도 거창합니다.`나를 찾아 떠나는 기차여행`.실제로 기차를 탑니다.인원 제한이 있으니 참고하셔서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휴가 중에 책을 몇권 샀습니다.대부분 실망스러웠지만 그 중 비교적 괜찮았고 읽을 거리가 많은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미네르바 성냥갑`이었습니다.지금도 읽고 있습니다.신문인가에 연재된 칼럼이라 제가 전혀 알 길없는(물론 주는 달려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름이 마구 나올 때는 짜증도 났습니다.그중에 눈에 띄는 글이 `글을 잘쓰는 방법`이란 칼럼입니다.본문은 에코가 장난기를 발동해 지나치게 반어법으로 썼기 때문에 제가 다시 인용할 때는 제 식으로 권유체로 바꾸었습니다.많은 분들이 까페나 블로그에 스스로들 글을 쓰고 계시기 때문에 참조가 될까해서 올립니다.물론 정답은 절대 아닙니다.제 생각과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그저 참고하세요.(권영설)

글을 잘 쓰는 방법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상업적 기호나 약자를 사용하지 마라.

괄호는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말없음표(...)의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가능한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일반화하지 마라.

외국어는 멋진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인용을 줄여라.

과잉 설명을 하지 말라.

저속한 말을 사용하지 말라.

언제나 구체적이도록 하라.

단 하나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말라.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를 조심하라.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간략하게 하라.

과장하지 마라.

외국어 이름은 정확하게 쓰라.

언급하는 저자나 등장인물은 완곡하게 표현하지 말고 직접 지명하도록 하라.

글의 첫머리에 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라.

철자를 자세하게 확인하라.

반어법은 지겹다.

너무 자주 문단을 바꾸지 마라.

`우리는`이라는 권위적인 1인칭 복수를 (주어로) 절대 쓰지 말라.

원인과 결? 倖?혼동하지 마라.

논리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도출되지 않는 글을 쓰지 마라.

옛날 표현이나 이례적인 어휘를 너무 많이 사용말라.

너무 장황하지 않도록 하라.

미완성 문장은 피하라.

(1997년에 쓴 칼럼인데 인터넷식 글쓰기가 범하는 오류들을 비교적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쓰면 지금 보다는 훨씬 품위있고 발전가능성 많은 문장쓰기를 버릇들일수 있다는 생각입니다.그러나 저 자신은 `글 잘 쓰는 법`이란 칼럼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에코 나이 정도는 돼야 가능할까요? 에코?3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일흔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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