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2

합리성과 등가성, 좋은 말이지만 사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많이 주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제일 기가 막히는 건, 그걸 뻔히 알면서도 주는 걸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피곤하다. 평범한 게임 <에스트폴리스 전기 2>를 지금도 기억하는 건 사랑의 피곤함 때문이다.

이 게임은 운명의 계시를 받은 영웅들이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초월적 존재와 맞서 싸운다는 정말 흔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도 아닌 캐릭터 한 명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티아'는 주인공 '막심'이 사는 마을의 무기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다. 몬스터 퇴치로 먹고사는 막심을 남몰래 사랑하고 있으며, 그가 위험한 생활을 접고 자기와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평범한 여자다. 하지만 그녀의 희망과는 달리 막심은 운명의 계시를 받고 길을 떠나게 된다. 티아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어렴풋이 막심의 운명을 느낀 티아는 그가 갈 길로 먼저 갔다. 따라가겠다면 안된다고 할 게 뻔하니 먼저 그 앞에 가서 그를 기다린 것이다. 사랑을 위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사랑이 합리적이라면 말이다.

'운명의 계시를 받은 전사' 막심이 가는 길을 평범한 티아가 쫓아가기는 너무 힘들다. 위험한 던전, 무시무시한 몬스터, 끝없이 이어지는 파괴와 죽음. 티아는 이를 악물고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뛰어넘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생각지도 못했던 위험과 공포의 벽을 부숴 나간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억지로 장애물을 넘어본 사람은 안다. 넘으면 넘을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언제 끝이 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건 지금 힘든 게 아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날, 아니면 뛰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나는 여기서 멈춰야겠어.' 몰래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이 비참한 대사를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티아 앞에 한 나라의 군대를 이끄는 마법검사 '세레나'가 나타난다. 그녀는 티아가 죽을힘을 다해 넘는 장애물을 언제나 가볍게 뛰어넘는다. 자신과는 달리 막심의 힘이 되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으리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녀 역시 그 빌어먹을 '운명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다.

'나, 울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더 흘릴 눈물이 없으니까.' 티아는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무기점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세계를 구한 '운명의 연인'들, 막심과 세레나는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한다. 늘 모험을 하고, 늘 함께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진다. 막심과 세레나는 진정한 최후의 일전을 위해,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남겨두고 떠난다. 운명의 전사들이 세계를 위해 싸우는 동안, 평범한 티아는 고향 마을 무기점에서 어제와 꼭 같은 오늘, 오늘과 꼭 같은 내일을 보낸다. 막심과 세레나는 함께 죽음을 맞고, 티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떨기 시작한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 그리고 세상은 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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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1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때로는 뜨겁고 격렬하게, 또 때로는 느리고 꾸준하게, 사랑은 사람들을 농락한다. 연인이 없으면 혼자 괴로워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감을 잃고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회의까지 느낀다. 소설과 시와 그림과 영화와 음악과 만화, 그리고 게임에서 사랑은 정말 다양한 색깔로 펼쳐진다.

<화이트 앨범>은 일본 리프사의 18금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하고, 또 하고, 급기야 백 시간 이상 플레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게임을 할 때는 모른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게임 내내 자기를 사로잡은 감정의 실체에 대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연애 게임이니 사랑을 다룬 건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 특이하다.

다른 연애 게임과 달리 <화이트 앨범>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유키'는 대학도 일부러 같은 학교를 들어간 사이다. 하지만 유키가 어린 시절부터의 꿈인 가수로 데뷔를 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유명인이 되었다고 옛날 연인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바쁜 스케쥴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점점 인기가 높아지는 유키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성공을 빌면서도 자기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두렵다.

다른 게임에서는 그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연인이 되려고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는 건 처음의 연인과 헤어지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새로 만날 수 있는 건 유키의 소꿉친구, 고등학교 때 제일 좋아하던 선배 등 모두 유키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는 과정은 유키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괜찮을까? 마지막 콘서트를 마치고 다가온 유키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돼버린 거지?'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도 좋을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까? <화이트 앨범>은 이런 물음을 지겨울 정도로 던진다.

이거 삼류 드라마에서 매일 보는 이야기 아냐? 그렇지 않다. <화이트 앨범>은 누가 누구를 배신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던 두 사람이 헤어지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열심히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엇갈리고 지치고 조금씩 믿음을 잃어간다.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유키를 탓할 수는 없다. 반대로, 언제 날 지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고, 간신히 만나도 불과 십 분도 같이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쳐가는 걸 책망할 수도 없다. 그녀가 없는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고, 두 사람의 거리는 천천히 멀어진다.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그 때가 바로 그런 경과점이었다고 느낄 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미 지나온 지점들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악의 없는 삶의 과정에서 엇갈림이 생기고, 사랑은 생명을 다한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마음만 아파하면 된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건 바로 나다. 나의 선택에 의해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 사랑은 그렇다. 사랑하는 상대,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상처를 입힌다. 나의 선택이란 건, 상처입힐 대상을 갈아치우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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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9-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이 쓰신 거 맞죠? 이 게임 재미있나요?

sayonara 2004-09-0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제가 쓴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전 게임을 안해서리.. 그냥 사랑의 안타까움을 너무도 섬세하게 쓴 글이라서 퍼왔습니다. ^_^

sayonara 2004-09-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관적인 글이지요. 사실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은 없지만 섬세한 표현과 간결한 글솜씨가 마음에 들어서 퍼왔습니다.
 

강아지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뛰어와 꼬리를 흔든다. 마음만 먹으면 목을 부러뜨릴 수 있는 억센 손에 안겨서도 완전한 신뢰만을 보여준다. 개들은 보통 아무 일도 안 하고 먹이만 축낸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유용한 것들보다 의미가 있다. 눈물을 흘리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얼굴을 핥고, 주인을 위협하는 적을 조그만 몸뚱아리로 가로막는다.

롤플레잉 게임 <폴아웃>에서 '독밋(dogmeat)', 그러니까 개고기란 희한한 이름의 개를 만났다. 이 녀석의 삶이 참 기구하다. 독밋의 주인은 뭐 하나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핵전쟁 후 폐허가 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정크 타운'에 도착했다. 이 곳을 주름잡는 인간 쓰레기 기즈모 일당은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빌딩에서 집어던져 버렸다. 혼자 남은 독밋은 주인이 묵었던 집 앞을 지키며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정크 타운에서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독밋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집주인의 의뢰를 받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독밋의 주인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밋은 검은 재킷을 입은 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이것으로 한 건 해결, 하지만 녀석은 계속 나를 따라왔다. 내가 주인이 아니란 걸 몰랐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개는 먹이와 물, 그리고 사랑을 먹고 산다. 독밋은 믿고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간 길은 무척 험했다. 하지만 녀석은 기꺼이 나를 쫓았다. 독밋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돌연변이들과 맞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맨 몸에 이빨만 가지고도 나를 돕겠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약했다. 때로는 짜증이 나고, 때로는 안타까웠다. 가만히 숨어 있거나 뒤에서 싸우기만 해도 좋을텐데, 무조건 제일 앞으로 뛰어나오는 녀석을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적의 총 앞에서 독밋이 쓰러질 때마다 게임을 다시 로드했다. 다치지 않고 끝낼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싸웠다.

하지만 우려했던 날이 왔다. 마지막 전투를 위해 적의 기지로 가야 했다. 레이저 방어막을 뚫기에는 독밋의 체력이 너무 약했다. 다른 동료들은 다 돌려보냈다. 하지만 독밋만은 떠나보낼 방법이 없었다. 독밋은 내가 가는 한 계속 따라 왔다. 방어막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독밋은 약해졌고, 결국 쓰러졌다. 나는 게임을 계속 했고, 보스를 물리치고 엔딩을 보았다. 독밋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냥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 녀석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난 이런 식으로 보답했다. 애초에 독밋을 거둔다고 나선 게 잘못이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다.

어느 수의사에게서, 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버려진 개들을 보지 않는 날이 없다. 사람을 보면 떨며 도망가는 녀석도 있고, 무조건 따라오며 애처롭게 쳐다보는 개도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 인간이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빼앗기라도 하는 것처럼 치를 떤다. 하지만 지구는 모든 생명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마운 생명의 원천을 망치는 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생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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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choo.com 의 홍유민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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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있어 지나친 내셔널리즘의 개입은 마땅히 지양해야 하겠지만 유독일본이란 국가에 대해서는 그것이 쉽지않은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한일 양국간의맞대결에 있어서 국민들이 쏟는 관심과 승리에 대한 열망, 선수들이 느낄 부담감과 필승의 의지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전쟁을 방불케 했던 축구의 韓日전이 그랬고, 십여 년 전 하종화와 나까가이치로대표되던 배구 라이벌전이 그랬으며 심지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있는 한일 양국선수들의 성적에 대해서도 언론과 팬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데뷔 첫해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고 연일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야구천재 이치로와, 초반의 부진에서 벗어나 최고명문 양키스의 중심타자 자리를 꿰찬 마쓰이의 활약에 대단하다 박수를 치면서도 가슴속 한켠에 생기는 미묘한 질투심과함께 최희섭과 서재응을 비롯한 우리 선수들이 더욱 분발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드는 건 비단 저 뿐만의 감정은 아닐겁니다.

요즘에야 한일양국의 많은 선수들의 진출해서 기량을 과시하는 메이저리그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이곳의 두터운 벽을 처음으로 허문 선수가 있으니 바로 노모히데오입니다.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포크 볼을 앞세워 빅리그의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승승장구 하던 데뷔초기의 노모 히데오는 정말로 센세이셔널했습니다. ‘토네이도'라고 불리우며 전 미국을 들썩이게 했고 올스타전 선발출장에 이어 당해신인왕 타이틀까지 가져가며 박찬호에 앞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 노모는 우리에겐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96년 빅리그 첫 승이 9시 뉴스탑으로 나오고 10승도 불가능할거라는 비관론이 대두되었던걸 기억해보면 당시의메이저리그에 대한 우리의 체감장
벽은 굉장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승격으로 LA다저스는 순식간에 국민구단이 되었고 찬호와 노모의 어색한 동거는 시작되었죠. 많은 국내 팬들은 다저스를 응원하면서도 노모의 부진을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곤 했습니다. 97년 나란히 14승을 올렸지만 승률에서 박찬호가 앞섰었기에 "박찬호 판정승!"이란 당황스런 기사가나오기도 했으니까요. 그만큼 당시의 노모는 같은 팀메이트임을 떠나 적어도 우리에겐 박찬호가 누르고 올라가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팬들과 언론의 두 선수간의 라이벌구도화는 예상외로 싱겁게 끝이납니다. 빠른 강속구를 앞세워 욱일승천하던 찬호에 반비례해 노모는 일본에서의 수년여간의 살인적인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어깨가 고장 난 것입니다. 결국 다저스에서 방출된 노모는 투수로서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며 뉴욕, 시카고,밀워키, 디트로이트를 전전하는 처량한 저니맨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주위에서는 구차하게 선수생활을 연장하느니 명예롭게 은퇴하기를 권고했고 그나마 일본 팬들과 매스컴의 관심도 이치로와 사사키의 미국진출에 발맞춰 시애틀로 온통 집중됩니다. NHK에서조차 노모의 선발등판경기를 포기하고 시애틀의 경기만을 편성했었다는 것은 당시 노모의 처지를 잘 대변해주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전일본은 이치로에 열광했고 방송 중계진과 기자들은 온통 시애틀 원정경기를 따라다녔죠. 그렇게 노모는 잊혀져 갔습니다.

"나는 단지 마운드 위에 서길 원할 뿐..."

일본에서 자국으로 돌아와 명예롭게 은퇴하라며 거액의 돈으로 유혹할 때 노모가 남긴 말입니다.
당시의 노모는 이미 좋은 하드웨어를 잃어 버린 지 오래 였습니다. 팔꿈치 수술의 여파로 직구의 위력은 현저히 감소했고 일본시절, 9일만에 503개의 공을 던졌다는 불가사의한 어깨와 연투능력도 나이가 들며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오랜 메이저리그 경험을 통해 익힌 두뇌 피칭과 그래도 근근히 위력이 살아있던 포크 볼 정도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투수로서 가장 치명적이라는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이후로도 수 차례 어깨부상에 시달렸으며 받아주는 구단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떠돌 수 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은 일본 최고투수로 불리우며 빅리그에서도 영광의 길을 걸어온 그로서는 분명 감당하기 힘들 시련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건 야구선수로서의 투혼과 근성, 그리고 마운드에 서있겠다는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수십만 불에 불과한 연봉을 감수하고도 디트로이트라는 리그꼴찌팀을 선택했던 건 그곳에서는 그가 마운드에 설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잊혀져갈때쯤 노모는 거짓말처럼 보스턴에서 양대리그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펼칩니다. 부상은 그에게 빠른속구와 강한 어깨를 빼앗아갔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과 투수로서의 자긍심까지 앗아가진 못했던 것입니다.

이 일본인 사무라이는 올 시즌 믿어지지 않는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압도적으로 타자를 농락하던 '토네이도'의 모습은 아니지만 선수생활이 끝날뻔한 위기에서 다시 살아돌아온 이 '오뚜기'의 연이은 호투에 요즘 다져 스타디움의팬들은 진심으로 존경어린 박수를 보내줍니다. 마치 만화속 주인공의 스토리처럼그의 영광이 시작되었던 다저스에서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는것이죠.

그 광경을 지켜보며 예전 노모를 제치고 다저스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던, 그리고 완봉승을 하고 기립박수를 받던 박찬호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인생사새옹지마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요즘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고있는 박찬호를 지켜보며 그보다 훨씬 힘들었던 여건 가운데서도 극적인 부활에성공한 노모와 같은 드라마를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노모만큼의 야구에 대한 애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않을 노력이라는 무기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모가 데뷔이후 계속 정상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는 여전히 저에게 있어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노익장에 박수를 쳐줄지언정 아마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긴 힘들었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야구선수로서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리면서도 온갖 굴욕과 낙담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노모의 모습에 이제는 진심어린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절망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 자신의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냉정함, 그리고 꿈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등은 비단 스포츠 선수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에게 역시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1968년 생의 노모의 야구인생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이 지나도 노모 히데오라는 야구선수는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많이 등장할지언정 노모만큼 꿈과 열정을 가지고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한 선수를 찾기는 쉽지않을 것입니다..

"메이저리그는 모든 야구 선수들의 꿈이다.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이며 그 외에 내가 선택할 건 아무것도 없다.” - 노모 히데오(野茂英雄)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큰 행복입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삶, 그 자체로 이미 멋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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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9-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노모 히데오는 나의 '영웅(히데오)'이다!!!

물만두 2004-09-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호도 노모만큼 잘해주면 좋을텐데요...

sayonara 2004-09-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호의 노력을 믿습니다.
박찬호는 대학야구시절에 꼭 전화로 조성민, 임선동 등 수퍼스타 동기생들이 놀러나간 것을 확인하고 연습장으로 향했다더라구요. 그만큼 지독한 노력파니까...
 

은하철도 999.. 9대 미스테리
송락현(Gazzet) - 96.11.17. ( 출처: Hitel Animation 동호회 )

독자 여러분들께서 과연 몇 개의 답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한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부담 없이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특히 아무것도 아닌 듯 싶었던 999의 스쳐지나간 대사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 독자라면 의외로 쉬울지도 모르겠다.

Q1. 999의 첫번째 미스테리는 왜 메텔이 철이에게 그비싼 999호의 승차권을 공짜로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약간 의역하자면 왜 메텔은 철이를 그 머나먼 안드로메 다까지 데리고 가야만 했냐는 것이다(항상 슬픈 눈을 한 채 ...).

☞ 그런데 메텔과 철이 일행이 혹성 헤비멜다에 도착했을 당시, 한 노파가 메텔을 알아보며 이런 말을 한다. "옆에 있는 그 젊은이는 지난번에 함께 왔던 친구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난번에 메텔이 데리고 왔었다는 그 남자는 ??

Q2. 지구를 떠난지 얼마 되지않아 999호는 혹성 타이탄에 정차하게 된다. 이곳에서 철이는 하록의 친구인 토치로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망토와 모자, 그리고 전 우주에 단 4자루밖에 없다는 우주 전사의 총(코스모 드래곤)을 선물 받는다. 그런데 999 전편을 통해 이 전사의 총을 가진 인물은 3명밖에 소개가되지 않는 다. 하록 선장, 에메랄더스, 철이. 그렇다면 대체 마지막 한 자루는 누가 가지 고 있는 것일까 ??

Q3. 999의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 중에 자칫 간과해 버릴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생김새 불명의 인물 차장이다. 999의 한 에피소드를 찾아보면 차장 의 옛 연인인 마빌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차장의 고향은 '추 억의 얼굴'이라는 이름의 별이며 그곳에서 마빌러스와 맹세한 약속 등이 공개 된다. 그런데 '메텔의 여행'편을 보면 기계 생명체로부터 신체 검사를 받을 당 시, 그만 철이가 차장의 알몸을 보고 만다.

그때의 철이의 반응.."나는 봤다~ 나는 봤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철이가 이토록 차장을 약올렸을까 ??

Q4. '시간성의 해적'편에서 메텔은 가짜 하록에게 이런 대사를 분노 어린 어조로 내뱉는다. "당신 해적 나으리께서는 내가 왜 이런 옷을 입고 있는지, 그이유를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러자 가짜 하록은.. "물론 잘 알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 자.. 999에서 메텔의 의상에 대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 도대체 무 엇이 그렇게 가짜 하록의 심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메텔과 이 가짜 하록과의 관계는 ??

Q5. 이번 미스테리는 아마도 999 최대의 미스테리이자 999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 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메텔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간일까? 아니면, 기계인간 일까? 대체 무엇일까??

☞ 메텔의 정체에 대한 논쟁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본 9대 미스테 리 에서는 그동안 크게 대두된 바 있는 한가지 가능성을 제외시켜 두고자 한다.
그것은 '메텔이 게이(여장 남자)일 것이다'에 대한 가능성이다. 이것은 철이의 승차권을 갈취했던 아지랭이 별의 도사가 메텔이 펼쳐 보인 코트 속을 보고는 기겁을 했던 장면과 '4차원 공간의 엘리베이터'편에서 루나 라는 제비족(?)이 메텔을 겁탈하지 못했던 점들로 미루어볼때 꽤나 설득력 있는 가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메텔이 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해설이 안되는 부분들이 999의 스토리 도처에 깔려 있다. 도대체 메텔의 본래 정체는 무엇일까??

Q6. 메텔의 정체가 너무 어려운가? 그러나 이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그렇다 면 과연 철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무수한 빈민가의 999호 승차권을 갈망해 하는 소년들 가운데 메텔은 하필 왜 철이를 선택했던 것일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Q7. 999 첫회에서 기계백작들은 메가로 폴리스로 향하는 철이 모자의 행로를 추적 해와서 철이의 어머니를 사살하고 그 시체를 가져가 박제를해서 전시해 놓는다 (유독, 철이의 어머니만 박제를 했음). 6번 미스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철이가 무언가 특별한 소년 이었다면 그 어머니 역시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과연 철이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수수께끼는 무엇일까??

Q8. 999 TV판 마지막회를 보게되면 잊을 수 없는 철이와 메텔의 이별 장면이 필름 처럼 스쳐 지나간다. 철이 혼자 탄 999호와 메텔이 탄 777호가 한순간 교차 되 면서 울부짖는 철이의 모습.. 그리고 멀어져가는 메텔의 희미한 그림자.. 앗! 그런데 잠깐, 이장면을 유심히 관찰했던 독자라면 정말정말 의아스러운 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메텔이 타고 있는 777호의 객차 안에 메텔 이외에 또한명의 인물이 있 었기 때문이다. 바로 777호를 탄 메텔의 옆에는 좀 더 나이를 먹은 철이 모습 을 연상시키는 한 소년이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들어낸채 철이가 탄 999호와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Q9. 999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 999>를 보게되면 드디어 999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철이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철이의 아버지는 999의 미스테리 에 대한 답은 주지 않은 채 오히려 더 큰 수수께끼만을 남기고 죽는다. 그렇다 면 철이 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이며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과의 상관관계는? 또한 그 누구 보다 이 모든 비밀의 전모를 알고 있는 하록은, 나중에 철이에게 아버지의 팬단트를 주게 될까... (♣)
 

그 밖의 이야기들.

① <은하철도 999>의 모든 미스테리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비밀의 여인 메텔은 원작자 마쓰모토가 그린 여러 미녀들의 집대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철이에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연상의 이성이자, 한편으론 이상하리 만큼 침착 하며 뭐든지 알고 있는 듯한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의 까만 코트 안은 비키니 차림 이었다.)

② 마쓰모토 레이지의 대표작들.. <우주전함 야마토>, <1000년 여왕>, <우주해적 캡틴 하록>. 그리고 최근 작 <코크피트>.

③ 999의 당시 인기를 입증해 주고 있는 격월간 신문 '은철 NEWS'. 한마디로 은하 철도 999 라는 가상의 세계를 실제화 시키고 있는 이 신문은, 1면에  은하철도 관리국 보수 공사 실태에 대한 보도를 하는가 하면 사회면에는 하록의 지명 수 배 광고가 나와있고 스포츠면에는 은하계 올림픽 소식, 그리고 일기예보 코너 에는 태양계에서 안드로메다 까지의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④ 기계인간들을 싫어하는 대도적 안타레스에 의해 메텔은 X 레이 촬영을 하게 된 다. 과연 메텔은 사진에 나온대로 정상적인 인간 이었을까 ??

⑤ 메텔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과 평생을 살고 싶다는 아지랭이 별의 도사에게 메텔 은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 보여 주겠다며 코트를 펼쳐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할말을 잊은 도사는 메텔 일행이 떠난 뒤에 악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사가 본것은 혹시... ^^;

⑥ 기계인간들의 본래 인간 껍질이 안치되어 있는 명왕성의 얼음 묘지 위에서 메텔 은 누군가의 시체를 바라보며 흐느껴 운다. 대체 누구의 시체였을까 ??

⑦ 전 우주에 단 4자루 밖에 없다는 전사의 총을 소지하고 있는 인물들. 하록,에메랄더스,철이.그렇다면 마직막 한자루는 대체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⑧ 개중에는 만화에서의 사이드스토리 개념 도입이 나가이 고(마징가Z의 원작자)에 의해서 실제화 되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마쓰모토에 의해서 구체적인 세계관 이 정립 되었다고 본다. 하록과 에메랄더스는 별도의 작품이 나와 있지만 이들 은 이따금씩 999의 세계에 등장하여 각 작품의 연결 고리에 대한 단서를 남긴다.

⑨ 999에는 9대 미스테리 이외에 밝혀지지 않은 또하나의 미스테리가 있다. 그것은 왜 999에는 그렇게도 라면이 많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특히 '2.25평 혹성의 환상'편을 보게 되면, 라면을 우주 최고의 환상적인 음식 이라고 극찬해 놓고 있다. 특별한 사연 이라도 있는 것일까??

⑩ 철이가 탄 999호와 메텔이 탄 777호가 멀어지는 <은하철도 999>의 마지막 장면 철이와 메텔은 왜 헤어져야만 했던 것을까 .. .. .. 
 

이 글(윙크96.6.1)은 저자 송락현님의 동의하에 이곳에 옮긴 것이며, 이 글의 저작권은 송락현님께 있습니다.

 

은하철도999 9대 미스테리 해답편

송락현(Gazzet) - 96.11.17.

'우주 저편에 있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에 가면 공짜로 기계의 몸을 얻을수 있다' 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은하초특급 999호를 타야만 한다.
왜냐하면 엄마가 기 계백작의 총에 의해 사살 되었기 때문에 철이는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엄마 의 몫 까지 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철이에게 정체 불명의 수수께끼 여인 메텔이 나타나 단지 자신과 함께 여 행을 해달라는 조건으로 철이에게 그 비싼 999호의 승차권을 준다.
그때까지 부랑 아 처럼 생활하던 철이는 매혹적인 연상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의 바다를 건너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된다.

이과정에서 철이는 보통 여러해에 걸쳐 경험하는 소년기의 꿈을 그 짧은 기간 동 안 단번에 겪게 된다. 고향과의 이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 가슴 설레이는 모 험, 하록과 에메랄더스와 같은 영웅들과의 만남... 하지만 철이가 그토록 동경했던 미모의 여인 메텔이 기계화 제국의 여왕 프로메슘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TV판 마지막회에 공개 된다.

기나긴 여정을 통해 기계 인간들에 대한 허와 실을 깨닫게된 철이는, 자신을 기계 인간으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프로메슘의 제안을 거절하고 비록 끝이 있지만 꿈을 품고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으로 남기를 결심한다.

허상으로 가득찬 기계화 제국을 멸망 시키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999호에 몸을 실은 철이. 하지만 철이에게 있어서 영원한 동반자라고 믿고 싶었던 메텔은 777호 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1만 더하면 1,000이 되는 숫자 999. 즉,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것을 상징한 철이의 999 여행은 끝났지만, 메텔의 여행 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이와 메텔은 정말 맺어질 수 없는 사이 였을까 ?! '

G A L A X Y E X P R E S S 999 ...

<은하철도 999>의 9대 미스테리는 그 엄청난 스케일에 반해 막상 정답은 몇몇의 주인공 인물들이 대부분 쥐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메텔의 정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메텔의 정체는 무엇일까?

메텔은 인간 같기도 하지만 웬지 기계인간 같기도 한 이중성을 유포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인간도 아니고 기계인간도 아니라는 명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인간도 기계인간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어쩌면 대단히 싱거운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메텔의 본래 정체는 외계인(?)이라 는 답에 도달하는 것이다. 메텔의 영어식 표기는 'METAL'이다.
그리고 <1,000년 여 왕>에서 지구와 충돌할 궤도로 다가오는 혜성의 이름은 'LA-METAL'이다.

바로 메텔은 라메탈성의 공주였던 것이다.

Ф 영원한 수수께끼의 여인 메텔.. 그 정체는 ??

과학 기술 문명이 거의 극한에 다다랐던 라메탈의 천재 과학자 프로메슘은 남편인 닥터 반과 함께 인간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기계화 제국 건설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 달리 사회구조가 물질 만능주의로 도색당하는 현실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하록, 에메랄더스, 토치로 등의 인물들 이었다.

이들은 모두 한계가 있는 생명의 멋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고 여기에는 기계 제국 건설에 대한 회의을 느낀 닥터 반도 뜻을 같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철이의 아버지인 흑기사 파우스트는 프로메슘이 건설한 기계 제국만이 이상의 세계라고 믿고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난날의 동지였던 하록과 갈라섰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 철이의 엄마를 사모해왔던 닥터 반은 이들마저 파우스트처럼 기계화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몰래 철이와 철이 엄마를 지구로 피신시키게 된다. 그 러자 뒤늦게 이사실을 알고 분노한 프로메슘은 닥터 반을 처형하고 지구의 기계 백 작들에게 현상 수배를 하여 철이의 엄마를 사살하고 그 증거로 철이 엄마를 박제하 여 보내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 철이의 아버지인 흑기사 파우스트는 프로메슘에게 기계 제국 건설에 있어서 철이와 같은 젊은 용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철이는 죽이지 말고 데려 올 것을 간청하게된다(영화 '스타워즈'에서의 다쓰 베이더와 그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와 비슷한 설정).

그러자 프로메슘은 자신의 딸인 메텔을 주요 성분이 인간과 같은 단백질로 구성된 기계 인간으로 개조하여 철이를 붙잡아 오라고 시키게 되는데, 이때 프로메슘은 고 의적으로 메텔을 철이 엄마의 복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즉 클론(복제) 기술로 만든 철이 엄마의 복제 육체에 메텔의 정신을 바꿔 넣어 철이를 유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철이를 안드로메다까지 데리고와야만 하는 메텔의 지루하고도 슬픈 여행 이 시작된다. 정확히 파우스트의 아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메텔은 철이와 유 사한 모습의 소년들을 한 명씩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데려가고 데려가고 또 데려 간다. 물론 그들은 기계제국의 용사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만, 일단 기계 인간이 되어버리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나게 되는 것임을 메텔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메텔이 파우스트의 아들인 줄 알고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데려간 소년들 은 대부분 안드로메다에 도착한 다음 메텔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왜 냐하면 프로메슘의 흉괴를 알게 되었고 그와함께 자신이 메텔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메텔에게 이용당한 첫 번째 희생양이 가짜 하 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짜 하록 역시 본래는 철이처럼 그 무엇인가의 신념과 꿈을 가지고 있었 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우스트를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믿은 나머지 자신의 영웅이었던 하록을 뒤로 하고 파우스트의 편에 서게 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영 웅이었지만 이제는 적일 수 밖에 없는 하록에 대한 반발심을 주입 받은 채 기계 제 국의용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얼마 후 메텔이 또 다른 파우스트의 아들을 데려옴에 따라 가짜 하록은 메텔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는 메텔을 증오하게 된다.

때문에 가짜 하록은 999호가 필연적으로 정차하게 되어있는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대분기점인 혹성 헤비멜다에 시간성이라는 자신의 요새를 만들어 놓고는, 자신의 영웅이었던 하록의 이름을 팔아 먹으며 메텔이 새로운 소년을 데려 올 때마다 그 소년을 시간의 흐름 속에 영원히 가둬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메텔이 입고 다니는 까만 코트. 이 옷은 서양에서 여자들이 장례식 때 입는 문상복 이다. 다시말해 메텔은 자신 때문에 기계 제국의 이슬로 사라져간 무고한 소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그런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고, 이렇듯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소년을 데려가는 메텔의 행동이 가짜 하록의 눈에는 더없이 괘씸하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데려가는 철이라는 소년은 파우스트의 아들임이 분명했다. 왜냐하 면 이따금씩 메텔 품에 안겼던 철이가 '마치 엄마 품속 같아' 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모성애에 대한 보상 심리 차원이 아닌 철이가 메텔을 자신 의 친어머니로 착각할 정도로 확실 명료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철이 엄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던 메텔을 엄마로 느꼈다는 것은 철이가 바로 파우스트의 친아들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헤비멜다에 정차하기 직전 메텔은 철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없 더라도 철이 혼자서 여행할 자신 있지?" 이번에야 말로 파우스트의 친아들을 데려 가는 메텔은 그 어느때 보다도 위험 부담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물론, 메텔은 가짜 하록과 대결해서 이길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메텔의 의상에서 풍기고 있듯히 메텔은 자신이 지은 잘못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자신 때 문에 기구한 운명을 맞이 하게된 가짜 하록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응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텔에게 있어서 친아들과도 같은 존재인 철이를 가짜 하록이 영영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가두어 버리자, 드디어 메텔의 철이에 대한 모성 본능이 폭발한다. " 우주 역사에 마녀라고 기록되어도 좋아. 철이를 위해서.. 나는 절대로 당신을 그냥 둘 수 없어!" 그만큼 메텔에게 있어서 철이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동경하는 철이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 는 메텔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험스러운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철이의 희망은 메 텔과 결혼하여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었으나 메텔의 육체가 자신의 어머니의 육 체인 이상 둘은 결코 맺어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 청춘의 환상.. 은하철도 999

메텔은 철이와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대사이다.

"나는 너의 추억 속의 여자일 뿐..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마음 속에 있는 청춘의 환영..."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되지 않을까? 메텔은 '소년 시대'의 동경 그 자체라는 추상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원래 그녀는 살아있는 인간한테는 너무도 이상적이었 다. 사람이 사람을 동경할 때는 항상 이상적인 인간을 머릿속에 그리듯, <은하철도 999>의 작품 세계가 소년의 꿈을 그대로 펼친 환상의 세계 그 자체라면 철이가 상 상한 이상형이 결정되어 메텔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텔에게 많은 수수께끼가 간직되어 있었던 것은, 그녀 가 계속 철이의 이상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여인에게는 반드시 그 무엇인가의 비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이에게는 '소년 시대'가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여행한 날들 이었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에서 철이와 메텔이 헤어지는것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여성과 이별하는 것임과 동시에 '소년 시대'와 결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그때까지 철이를 지배하던 모성(母性)으로 부터의 이탈이기도 하다.

메텔과 헤어지는 철이의 울부짓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고도 슬펐던 것은 철이가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소년시대'를 마감한 철이는 이제 어른의 세계를 향해 걷기 시작할 것이다. 메텔은 어디까지나 추억 속의 여인 이었을 따름 이니까.. .. (♣)

'소년 시절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추억만큼..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들 한다. 이제. 메텔은 철이의 가슴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추억을 남기고 어디론가 말없이 떠나 버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메텔은 청춘의 환상.. 소년 시절의 추억속을 여행했던 여자라고 ...

안녕~ 메텔...

지금. 수많은 추억을 안고 기적이 운다.

안녕 메텔,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 소년의 하루 .. .. ..

GE 999 ...

⒧ 마쓰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 999>를 구상해 내는데에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있는 <은하철도의 밤>. 이 작품은 요절한 일본의 인기작가 미야쟈와 겐지가 쓴 동화로서 85년도에 별도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⑵ 1,000년에 한번 봄이 오는 혜성 '라메탈'이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지구 와 충돌할 궤도로 태양계에 진입한다는 지구의 종말에 대한 종교적 신비주의를 그리고있는 <1,000년 여왕>. 그런데 이 라메탈은 태양계와 안드로메다계의 중간 에 위치해 있는 혹성 헤비멜다를 중심으로 1,000년 주기의 공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텔의 고향 별은 바로 라메탈 이었다.

⑶ 기계화 제국의 지배자이자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 여왕.

⑷ 메텔이 명왕성의 얼음 묘지 위에서 흐느끼며 바라본 것은 바로 복제 인간이 되 기 이전의 자기 자신의 시체 였다. 하지만 한가지 의혹으로 남는 것은 복제 되 기 이전의 메텔은 혹시 남성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왕 프로메슘이 메텔을 철이 엄마의 복제 인간으로 만든 이유 중에는 남성인 메텔을 여성 으로 만들어 왕위를 계승 시키고자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메텔의 정확한 성별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⑸ 프로메슘의 질투 때문에 처형당한 닥터 반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생명을 초에너지화 시켜서 메텔의 팬던트 안에 응축해 넣었는데, 이 팬던트는 기계 제국을 멸 망 시킬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기폭 장치 였다. 결국 메텔은 자 신의 아버지가 들어있는 이 팬단트를동력로에 집어 던진다. (극장판에서는 철이가 집어 던짐)

⑹ 철이의 아버지는 기계화 제국 이야말로 지상 낙원 이라고 신봉하고 프로메슘에 게 혼을 팔아 파우스트 라는 이름이 붙었다. ( 흑기사가 철이의 아 버지인 파우스트 )

⑺ 어쩌면 메텔이 종종 철이를 껴안았던 것은 파우스트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시험 해 보기 위한 확인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⑻ 그런데 철이 엄마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던 메텔은 은연 중에 정말로 철이(파우 스트의 친아들)에게 모성애 비슷한 아가폐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메텔은 안드로메다에 도착하기 직전 철이에게 '기계인간이 되지 말아죠'라고 말할 정도 로 철이를 아끼고 있었으니까.. 즉 철이 만큼은 프로메슘의 기계 용사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메텔은 철이가 파우스트의 친아들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철이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엉뚱한 소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담보로 안드로메다 까지 유인해 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⑼ 우주 전사의 총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인물은 다름아닌 토치로 였다. 토치로 는 평소 무슨 물건이든 2개씩을 만들어 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전사의 총 뿐만이 아니라 망토와 모자 까지도 철이와 똑같은 것을 착용 하고 있었다. (하록의 우주전함 아르카디어호에 토치로의 뇌세포를 이식시켜 준것 은 바로 철이였다).

⑽ 메텔 만큼이나 정체가 궁금한 인물인 차장의 정체는 '아무것도 없다'가 정답이 다. 왜냐하면 그는 속 보이는 투명 인간 이었으니까...

⑾ 999의 마지막 미스테리 였던 라면과 999의 상관 관계는 정말 황당함의 극치를 이루는 부분 이라고 할 수 있다. 999에 그토록 라면이 많이 등장했던 이유는, 마쓰모토 레이지가 일본의 3대 라면 메이커 중에 하나인 이토쓰 라면의 대주주 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PPL(작품내 간접 상품 광고) 이 응용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배고픈 자의 별' 편에서는 아예 작 가인 마쓰모토가 라면 가게 주인으로 직접 등장할 정도였다.

⑿ '메텔의 여행'편을 보면 999호가 120% 가속 궤도에 들어가자 엇갈린 시간 속에 존재하는 2명의 메텔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도 또 한명의 메텔은 레드릴이 라는 소년을 안드로메다로 데려가고 있었다. 즉 메텔은 과거(그리고 미래에도) 에도 철이와 비슷한 소년들을 계속해서 안드로메다로 데려 갔던 것이다.

⒀ 프로메슘에 의해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고통을 함께 가지게 된 비운의 여인 메 텔은 모든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다른 소년을 미래로 데리고 가기 위해 777호를 타고 철이 곁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메텔이라는 이름은 철이가 간직한 소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참조>

케이분샤 대백과[40] 은하철도 대백과
케이분샤 대백과[46] 은하철도 대백과.2 영화판
케이분샤 대백과[65] 松本零士 대백과
케이분샤 대백과[89] 은하철도 대백과 - TV판 완결편
은철 뉴스, ANIMEDIA, THE ANIME,
능력개발 미니 컬러 대백과[20] 은하철도 999
능력개발 미니 컬러 대백과[27] 은하철도 999 - TV판
키네마 준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포스터사.

하지만 여태까지 밝혀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메텔과 에메랄더스와의 관계 입니다.

TV판 제 22화 '해적선 에메랄더스'편을 보게 되면.. 우연히 철이가 에메랄더스 의 방에서 사진을 한장 발견 하는데.. 다정한 포즈로 함께 앉아 있는.. 메텔과 에메랄더스의 사진 이지요. 때문에 당시에는 자매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증거 불충분 이더군요. 어쨋든 정말 궁금할 따름 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토치로가 어떻게 에메랄더스를 꼬실 수 있었냐는 것이죠? 후후..

옛날에는 하록과 메텔의 염문설이 퍼지기도 하고.. 정말 999에 대한 화제거리가 풍족해서 좋았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구세대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군요. (일본에서 999가 TV방영되던 당시에는, 삐죽한 턱에 쓺어진 눈이 최고 미인형 으로 각광 받기도 했었습니다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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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읽으면서도 뭔 내용인지 자꾸 헷가려요..^^;;

sayonara 2004-09-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좀 복잡한 만화죠.
제가 999 왕팬이라 테입도 소장하고 끊임없이 자료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은 책으로도 한권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죠.
너무 애착이 가는 만화입니다. 훈련소 입소할 때 동생한테 녹화를 부탁할 정도였죠.
'매니아'의 이런 맘을 아실런지.. ^_^;

물만두 2004-09-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도시 가물가물하여서리...

sayonara 2004-09-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매니아가 아니라면 맥가이버나 하록선장만큼이나 추억속의 만화겠지요.. ^_^

아영엄마 2004-09-1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철도 999도 미래소년 코난도 가끔 접하게 되면 보곤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