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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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집에 앨범 갖고 있는 분? 예뻐서, 자랑하려고 집안 곳곳에 둔 액자에 있는 사진도 그렇고요. 하지만 너무 오래 갖고 있으면 색이 변하거나 바스라집니다. 빛 바랜 사진이란 표현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졌다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어떻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일까요? 더 오래된 중세 그림은 또 어떻고요. 1년에 관객이 몇십만, 몇백만씩 드나든다는 해외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은 사람들 숨결만으로도 100년 못가 망가질 것 같지 않나요?

그렇게 망가지고 사라져가는 미술품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존가 또는 복원가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물감을 재현해야 하는 화학자면서, 캔버스나 액자를 먹어치우는 세균 곰팡이 벌레를 막아내는 방역전문가이기도 하면서, 예술품 복원에 들어가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행정가이자, 예술품 복원의 의미를 찾아내는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는 미술품 복원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책을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보존과학입니다.

미술품을 복원한다는 건 어떤 활동일까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작품이 만들어졌던 그 당시의 물리적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물리적 상태가 어떤지 아는 게 불가능하고요, 같은 색으로 칠한다고 해도 즉시 만들어진 물감 색깔과 시간이 지난 뒤 물감 색깔은 시간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이 만들어진 지 오래됐다면 그림에 쓰인 물감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수도 있고, 설상가상으로 옛날 화가들은 여러 원료를 섞어 직접 물감을 만들어 썼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무시하고 복원하려다가는 며칠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땜질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버리고 말죠.

먼지가 쌓이고 이물질이 묻으면 그림도 청소를 해야할 텐데, 그림 청소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집청소하며 바닥 닦는 것마냥 물걸레질을 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납니다. 대충 했다가는 먼지와 이물질이 그림에 그대로 들러붙어 그림이 영원히 변형되고 말 것이고요. 그렇다고 청소하지 않고 그대로 두자니 그림의 색감이 변하거나 어두워져 원래 모습을 잃고 맙니다. 먼지와 이물질만 문제인가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빛마저도 그림한텐 문제입니다. 사진이 변색되는 것처럼, 빛을 받으면 그림 색도 변하니까요. 여기에 하나 더. 먼지나 이물질이 묻고 쌓이는 게 작가의 의도라면, 복원가는 뭘 해야 할까요? 미술평론가들이 ‘세월의 흔적이 중요하다’고 우긴다면, 보존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존가 복원가는 미술에 대한 식견뿐 아니라 과학 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잘 청소할 수 있을지, 색의 성분은 무엇인지,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변화했고 원본과 가능한 한 비슷하게 복원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어떻게 보관해야 그림에 손상이 덜 가는지 등 기술적인 부분은 모조리 다 과학입니다. 그림 일부를 떼어낸 뒤 방사성동위원소를 측정해 캔버스가 생산된 연도를 알아내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그림의 정체를 밝혀내고, 온갖 첨단 건축기술을 이용해 그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는 일 모두가 과학의 힘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책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화가의 딱 보면 모두 ‘아’하는 그 유명한 여러 그림의 뒷면에 숨겨진 과학을 이야기해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이 영화를 두고 예술품 복원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을 제공해주는 영화라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지만, 예술품 복원을 다룬 콘텐츠로 이만큼 잘 알려진 영화도 없죠. 엄정화와 김래원이 주연을 맡았고, 조선 최고의 화가 안견의 말로만 전해지던 그림 진품을 복제하려는 범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 주요 이야기입니다. 명작 반열에 올라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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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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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씨는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 글을 고치는 사람입니다. 교정·교열한다고 흔히 표현하죠. 쓸모없는 표현은 줄이고, 모자란 표현은 덧대고, 맞춤법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글자를 고쳐서 보기 편한 글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여느때처럼 원고를 교정하고 출판사에 보낸 어느날, ‘당신의 교정 방식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담은 메일을 받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그가 이전에 원고를 교정·교열했던 적이 있는 작가 함인주씨였습니다.

그가 보낸 메일 제목은 ‘제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였습니다. 정선씨는 문장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독자에게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교정·교열 원칙으로 삼고 있는 여러 규칙을 함인주씨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 규칙이 담긴 책, 제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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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퇴고입니다.

이 책은 퇴고하면서 반드시 점검하고 지나가야 할 부분인 표현 형식을 단정하게 만드는 방법을 담은 책입니다. 쓸모없으니 지워야 하는 표현, 습관처럼 쓰지만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표현, 우리말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표현, 서로 어울리는 글자와 들어맞지 않는 글자 같은 것을 알아보고 고치는 방법을 소설 형식으로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생각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글의 내용을 생각하고 형식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고서 아니면 아무렇게나 말해놓고선 ‘왜 내 진심을 몰라줘’라고 서운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글이 공통의 기호를 사용해 의사소통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라면, 잘 의사소통하기 위해 공통의 기호를 사용하는 방법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죠.

그런데 이런 부분은 글을 막 써내려가고 있을 땐 잘 알아볼 수 없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 형식적 부분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면 좋은 발상을 놓쳐버리기도 하고요. 게다가 일필휘지로 착착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과정이 퇴고입니다. 스스로를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위치에 놓고 내 글에서 고쳐야 할 부분을 찾아보는 활동이죠. 읽는 사람으로서 글을 대하는 것이니까, 내 눈에 틀린 것이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더 잘 띄지 않을까요?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아마 다른 사람의 눈에도 잘 들어오는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글을 쓸 때마다 퇴고를 한 번 꼭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이 책의 저자인 김정선의 다른 책들입니다. 김정선은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 교정·교열하는 일을 20년 동안 해왔다고 합니다. 일종의 글 고치기 전문가인 셈이죠. 최근 4~5년 동안 글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냈는데, 문장과 글을 쓰는 데 도움을 많이 주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제목은 동사의 맛, 끝내주는 맞춤법, 열 문장 쓰는 법 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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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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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에리봉은 프랑스의 현대 철학 사회학자 연구와 성소수자 문화 연구로 잘 알려져있는 사회학자입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서 공업이 흥했다가 몰락하던 도시에서 자라났습니다. 성인이 될 무렵 ‘지긋지긋하다’고 느꼈던 그 도시를 떠나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 정착하며 살아갔고, 좋은 책 몇 권을 출판해 학계로부터 인정받아 대학 교수가 됐습니다. 가족과는 연락을 거의 하지 않은 채로요.

그러던 어느 해 마지막날 밤, 간간이 연락하던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걸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들 정도로 소원하던 관계였기에, 망설이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내가 자라온, 나의 행동과 습관과 사고방식을 만들어낸, 하지만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그 장소로 다시 갑니다. 그 길에서, 내가 어른이 된 뒤에 배웠던 내용과 연구에 사용한 방법으로 나 스스로를 분석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사회는 나에게 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여러 사회적 개념들이 엇갈리는 거미줄 위에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나는 어떤 존재가 됐고 어떤 존재인가.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엄마와 가족들에게 물어보며, 내가 살았던 시기 그 지역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이 모든 결과를 내가 공부한 이론과 겹쳐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하나의 대답이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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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아비투스입니다.

이 책의 저자 디디에 에리봉이 자신의 삶을 분석하면서 염두에 두는 사회학적 개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아비투스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사회학자가 ‘구별짓기’라는 책에서 제시한 것인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행동양식입니다. 공동체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소속된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를 구별하는 표지가 됩니다. 사용하는 언어습관이나 밥상 예절에서 시작해 선거 때 투표 행태와 정부의 공공정책에 대한 반응에 이르기까지, 아비투스는 매우 폭넓은 행동양식을 포괄합니다.

디디에 에리봉이 이 책에서 시도하는 작업은 바로 스스로의 아비투스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 내 행동, 내 습관, 내가 걸어온 삶의 궤적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사회의 흔적을 발굴해냅니다. 나치와 연관된 출생의 어두운 비밀을 갖고 있는 할머니쪽의 가족력이라든지, 정부가 마련한 저소득자용 임대주택에서 살며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라든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여기면서도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아버지, 자신을 키우기 위해 가부장적 체제에서 시달리던 어머니, 하층민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너무 앞세웠던 나머지 한때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했던 자신, 이 모든 것 때문에 평생 얻을 수 없어 열망해온 ‘부르주아 계급’의 아비투스까지. 그 열망이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디디에 에리봉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시면 디디에 에리봉의 삶을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밟고 있는 길을 따라서 청취자 여러분의 삶도 한 번 분석해보시면 어떨까요?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소설가 아니 에르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책에서 부르디외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프랑스 소설가입니다. 디디에 에리봉은 에르노의 소설을 이 작품의 조상 전범으로 삼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사회 환경이나 사건과 접목하는 ‘자전적 소설’로 유명합니다. 2016년에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이 받았던 맨부커상에 2019년 최종후보로까지 오르기도 했고, 한국에도 이미 열 권 넘게 번역된, 프랑스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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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지음, 노승영 옮김, 곽재식 해제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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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른바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지금도 이 질문에는 선뜻 긍정적으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계는 생각이 아니라 계산을 한다느니, 정해진 것만 하는 기계에게 생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없다느니, 과연 기계가 창의성을 지닐 수 있냐느니 등등 아주 고전적이고 직관적인 반론이 여기에 따라붙습니다. 오히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소수입니다.

20세기 중반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이런 반론에 답하기 위해 논문을 썼습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인간 노릇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아닌지 묻지 말고, 인간이 기계인지 아닌지 물어보면 어떨까? 인간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물학적 특성 일부가 기계적이라면, 인간도 일종의 기계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인간도 기계다’라고 답한 이 논문, 모두 이해하려면 어렵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떼어놓고 보면 그 아이디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인공지능의 기원으로 대우받는 현대의 고전을 한 번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요. 앨런 튜링의 지능에 관하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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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기계학습, 머신러닝입니다.

이 책에는 논문 세 편과 강연록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 학술지인 ‘마인드’에 실린 ‘지능을 가진 기계’와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 체스 두는 인공지능 코드를 실은 ‘체스’가 논문이고요. 앞에 두 논문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대학/방송 강연록 각각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책은 매우 얇지만, 컴퓨터과학과 심리철학 분야의 전문적인 논의를 담고 있기에 읽기에 수월하지만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차근차근 읽어나가보죠.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글은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대한 답변입니다. 튜링은 이런 사고방식의 대부분이 비합리적이고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거부감이라고 주장하고, 당시 과학이 밝혀낸 신경세포의 전기 작동을 논리 회로 그러니까 전기 회로로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는 덧붙입니다. 이런 전기 회로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겠지만, 그에 드는 비용이나 물질의 양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인간의 두뇌를 기계로 재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이죠.

계산기계와 지능이라는 글은 인공지능을 다루면서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는 그 개념인 ‘이미테이션 게임’, 흉내 게임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신체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채팅만으로 메시지를 교환하는 사람과 기계가 있을 때, 인간 입장에서 누가 기계이고 누가 사람인지 가려낼 수 없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기계를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어차피 다른 사람이 마치 ‘나처럼’ 정말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생각을 하는지, 사람인지 알아내는 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그러면 사람처럼 보이면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튜링의 핵심 주장입니다.

그런 기계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학습’입니다. 모든 인간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외치면서 세상에 튀어나오자마자 인간 구실을 하지 않듯, 기계 또한 자신의 작동방식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난다면 수많은 자료를 자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고유한 반응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튜링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 일대일대응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에게 기억이 있다면 기계에겐 입력과 저장이 있고, 인간에게 반응이 있다면 기계에겐 출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실수가 있다면 기계에겐 무작위/임의성이 있죠. 이렇게 ‘배우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또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기계에게 ‘생각한다’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는 게 튜링이 이 논문에서 내리는 결론입니다.

그렇기에 이 논문이, 현대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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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앨런 튜링의 전기인 앤드류 호지스의 ‘앨런 튜링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로서, 당대의 지적 흐름 속에서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건 튜링을 깊게 이해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지스의 전기는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상세하고 풍부하게 쓰인 튜링의 전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소 두꺼운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튜링이 쓴 논문보다는 읽기가 수월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또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함께 감상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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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 주류 경제학이 나아갈 길에 관하여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장진영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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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떤 학문일까요? 경제를 알면 돈을 번다고 하지만,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한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의 관점은 그것보다 더 넓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어떤 동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환하는지, 그런 교환이 쌓이면 사회 전체에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그 효과가 부정적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없애거나 줄여나가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는 일종의 종합적 학문이 경제학입니다.

적어도 스키델스키의 관점은 그렇습니다. 이 시각에서 그는 신고전파라고 불리는 현재의 주류 경제학이 경제학의 이념에서 매우 이탈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현재 경제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의 처방이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도록 사람들의 행동을 교정하고 세계 자체를 경제학적으로 바꿔버리도록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의 단계로까지 변질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연과학의 지위에 오르려는 욕심을 버리고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거기에 윤리학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경제학 자체를 역사화, 상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저같은 일개 유튜버가 아닌 전 세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저술가이자 연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입을 빌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들어보지 않을 수 없겠죠.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다원주의 경제학입니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1년 만에 번역된 셈이니 우리나라에도 거의 동시에 들어온 셈이죠. 저자인 스키델스키는 2019년 시점으로 그 때까지 매우 자주 인용되고 또 쓰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유명한 연구와 그 때문에 생겨난 경제학 학파들의 학문적 특징과 강점, 단점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우리가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경제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해줍니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를 이것저것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진 않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경제학이 과학이 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20세기 경제학의 역사는 과학이 되려는 노력으로 점철돼있다고 비판합니다. 마치 인간 사회도 자연과학처럼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원인을 일정정도 또는 거의 모두 통제한 상황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부분만을 관찰할 수 있는 통제실험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는 근거없는 자신의 직관이나 편견을 연구의 대전제로 삼고, 연역적 논리체계를 도입해 순환논증을 제시하고, 수학을 동원해 마치 정말로 과학인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회 속 개인은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로부터, 그리고 절대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 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생물학적 도덕적 성향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연 실험에서처럼 원하는 부분만을 보는 실험은 인간에게선 불가능하므로, 경제학은 애초에 자연과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학문이 아닌 걸까요? 스키델스키는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합니다. 통제실험이 가능하고 연역적 논리체계를 도입해 수학으로 표현돼야만이 학문은 아닌 것이죠. 앞에서 말씀드린 시간적, 공간적, 생물학적, 도덕적 자장 아래 놓여있는 인간을 고려하는 다른 학문, 역사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윤리학의 도움을 받아 여러 주장이 꽃피는 ‘다원주의 경제학’이 돼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학을 처음 창시했던 애덤 스미스가 추구했던 경제학의 목표, 즉 사람들이 더 나은 부를 향유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본연의 모습,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한때 경제공부 입문용 동영상 1순위로 꼽혔던 다큐멘터리인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4부 ‘세상을 바꾼 철학’5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우리 책과 관련해서 추천드리는데요. 우리 책이 경제학의 역사와 경제학 학파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책인 만큼, 이 책과 비슷한 정보를 영상으로 보면서 한 번 되새기시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에 관해 완전히 상반된 두 견해를 대표하는 짝,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입장을 서로 비교해가며 경제에 관한 교양을 이 기회에 쌓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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