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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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은 과학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인슈타인? 파인만? 이상한 공식들? 어쩌면 대부분은 책상머리에 가만히 앉아서 수학 문제를 푸는 너무 지루한 과목이라는 너무 나쁜 기억 같은 것이 먼저 생각날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넓은 범위의 과학자들 대부분은 실험을 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과학적 활동’의 80% 이상은 실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이미지들은, 실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지, 과학에서 실험을 너무 간과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거의 주방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중세 유럽 연금술사들의 실험실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다루며 온갖 연구와 발명품이 쏟아져 대학과 기업에 부설된 실험실로 바뀌기까지, 실험실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확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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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실험실입니다.

우선 실험실의 어원부터 설명해야겠네요. 실험실은 영어로 laboratory입니다. 라틴어 laboratorium에서 온 말이고요. 앞에 labor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일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과학 실험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았죠. 이 단어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1592년에 쓰인 것이라고 하는데, 이 때는 우리가 아는 이른바 근대과학이 아직 성립하기도 전이기 때문에 ‘과학 실험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을 아예 띨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16세기, 17세기의 실험실은 어떤 공간이었을까요? 연금술사들의 개인 공간이었다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금속을 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보니 금속을 다룰 열을 내는 화덕과 금속에 첨가할 화학약품을 다루는 증류기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고, 금을 만드는 ‘비법’을 들키면 안 되니까 연금술사의 집안 깊은 곳에 몰래 마련해놓는 게 보통이었다고 하네요. 뉴턴이나 보일 같은 우리가 아는 유명한 근대과학자들도 이런 실험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시설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최후의 연금술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하네요.

실험실을 ‘과학적 연구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던 데는 철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자연을 연구해야 하는데, 실험실의 환경은 사람의 손길이 미친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서 ‘자연’이 아니라는 사고방식도 실험실과 과학이 연결되는 데 걸림돌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오히려 실험실 속 실험이야말로 변인을 통제함으로써 자연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게 우리가 교과서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 아닌가요?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금술사들은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화학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 방식을 모사하고 있기 때문에 실험실도 또 하나의 자연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것 조금 웃기지 않나요?

이런 실험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변화합니다.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바뀌고, 실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공개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실험실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는 주체도 연금술사 개인에서 과학에 관심이 많은 귀족 후원자로, 여기서 다시 대학과 국가와 기업으로 바뀝니다.

이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서, 과학철학자 브루노 라투르가 프랑스의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인용하면서 ‘세계 전체를 실험실화’한다는 다소 문학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소개합니다. 약간 무리해서 단순하게 얘기하면, 과학자 본인의 명성을 드높이거나 또는 국가나 기업처럼 과학적 연구를 하는 기관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자연상태로 놓여 있던 여러 사물을 마치 실험실에 있는 도구들처럼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라투르에 따르면 파스퇴르는 세균과 백신에 대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병에 걸리지 않고 멀쩡한 소와 닭에게 병균을 주사하거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사람에게 투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를 잘 내놓게 만들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파스퇴르를 지원하고 대변해주기도 하고요.

이밖에도 이 책은 실험실을 둘러싼 여러 과학사적, 사회학적, 철학적 쟁점들을 우리에게 부드러운 문체로 소개합니다. 저자 홍성욱 교수 또한 시민을 위한 글쓰기나 강좌와 학술적 연구논문을 넘나들며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오랫동안 들려줘 온 이야기꾼인 만큼, 책의 재미만큼은 보장드릴 수 있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함께 추천드리는 책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입니다. 베이컨은 수능 윤리와 사상에서도 항상 문제로 나오는 단골 철학자인데, 책에서 소개된 것처럼 실험을 ‘과학’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하기도 했습니다. 실험의 철학적 기초를 놓았다고나 할까요?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그의 대표작이고,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 입각해 구상한 이상 사회의 모습을 그려놓은 책입니다. 실험실의 진화 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실험 조직에 대한 구상 부분을 소개했는데, 그 부분이 아니더라도 책 자체가 이상향을 그리는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히니 읽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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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밖에서 듣는 바이오메디컬공학 - 한양대 공대 교수들이 말하는 미래 의공학 기술
임창환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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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자주 가는 게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병원에 가면 우리 몸을 진단하는 각종 신비한 장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가볍게는 엑스레이부터 시작해서 심전도니 MRI니 하는 것들요. 예전엔 병원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이었는데 요새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차고 있는 이 스마트워치, 이런 제품군에서 가장 저렴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X사 모델인데 기본적으로 심박수 측정을 해주고, 그에 기반해 수면의 질 체크도 해줍니다.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이렇게 인간의 치료와 기능적 향상을 위한 도구를 만드는 분야를 바이오메디컬공학이라고 합니다. 우리 삶의 질과 직결된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인데도, 이름은 다소 생소하죠? 저도 그렇습니다.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양대 교수진들이 각 기술의 역사와 현황, 미래를 소개하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의 미래의 삶의 질과 아이들의 직장 취업 문제를 동시에 책임질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교실 밖에서 듣는 바이오메디컬공학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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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바이오메디컬공학입니다.

바이오메디컬공학이란 의료활동에 필요한 도구를 개발 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공학의 한 분야입니다. 의료활동이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고, 때로는 치료 기술을 이용해 질병에 걸리지 않았거나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신체 기능을 향상할 수도 있죠.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연구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여러모로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작은 발견이나 소소한 진보만으로도 우리 삶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입니다. 지난 2~300년 동안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인간의 신체 자체가 워낙 미지의 세계이다 보니 앞으로도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꽤 먼 미래에도 일자리가 보장될 분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기술을 한번 쭉 말씀드려볼 테니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X레이, CT, MRI, 초음파, 근육-전기 인터페이스, 인공와우, 인공망막, 생체에너지채집, 인공근육, 뇌자극술, 신경전달물질측정, 뇌신호측정, 뇌-기계 인터페이스, 원격진료, 웨어러블 헬스케어, 빅데이터 의학, 맞춤 의학, 나노 제조기술, 세포막 수용체 분석, 면역치료제, DNA 진단기술, 소포체 진단기술, 뇌신경 모델링, 뇌모방 인공지능, 뇌신경계 시뮬레이션, 신경코드 해독, 전자약, 이식형 의료기기, 인공후각, 캡슐형 내시경, 스마트 의료기기, 광유전학. 이 많은 분야를 각 분야에 관해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10페이지 내외로 간략하게 전해줍니다.

목록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께는 이미 익숙한 물건들도 있고, 뭔가 미래 첨단기술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도 있는가 하면, 뇌자극술이나 뇌-기계 인터페이스 같은 건 잘 쓰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다소 섬뜩한 느낌도 주긴 하죠. 이 모든 분야가 지금보다 더 발달해서 우리 의료현장에서 쓰인다면, 이런 기술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우리 아이들의 삶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각자 그런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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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유튜브의 OCW-HYU 채널입니다.

채널 이름이 무슨 영어인가 생각하실 텐데, 한양대 오픈코스 채널입니다. 오픈코스란 대학 내에서 학생들이나 동료들의 평가가 좋은 교수들의 강의를 녹화한 뒤 공개해 시민들도 무료로 대학 강의를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 과정을 말하죠. 이 책은 한양대학교 교수들이 함께 쓴 책입니다. 이 책의 기반이 되거나 이 책의 내용을 포함한 이 교수들의 수업과 강의가 유튜브에 공개돼 있습니다. 책 속 몇몇 페이지에 있는 큐알코드를 카메라 앱으로 찍으면 이 채널에 있는 관련 강의 영상으로 바로 들어가실 수 있어요. 또는 관심 가는 부분을 쓴 교수의 이름으로 검색하셔도 책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생생한 대학 강의의 형식으로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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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능력주의 -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박권일 지음 / 이데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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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아마 광고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배달의 민족’이 가장 많이 떠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들으면 공감하실 어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시험의 민족입니다. 우리 방송도 기본적으로는 학습 입시 정보 전문 방송이고, 이 방송을 보는 청취자 대부분은 시험 당사자인 적이 있거나 시험 당사자일 겁니다. 초중고등학교의 학업 성취 평가, 토익 토플, 입사 시험, 그 이후에도 끝없는 시험 시험 시험. 한국인은 왜 이렇게 시험에 매달릴까요?

크게 나눴을 때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알려진 저술가이자, 아마도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다들 아실 책 ‘88만원 세대’를 쓴 박권일 작가가 이 문제에 주목합니다. 시험이란 한국식 능력주의, 한국의 능력주의가 집약된 제도입니다. 그가 볼 때 시험이라는 제도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해 한국이 그럭저럭 살 만한 건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문제인 만큼 역사는 뿌리 깊고, 인식은 사회 전반에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다른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더라도 대안조차 마땅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험제도에 기반한 한국식 능력주의에 대해 성찰해보지 않으면, 우리 사회 속에서 마음과 몸이 힘든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식 능력주의 잣대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 책의 문제의식에 귀 기울여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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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한국의 능력주의입니다.

박권일 작가가 보기에 한국은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능력주의란 업적의 지배,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대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한 차등적 우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능력주의와 구별되는 독특한 몇 가지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 합니다. 아마도 외국의 다른 능력주의, 더 정확히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개척자적 능력주의 라고 부를만한 것과는 또 다른 무엇입니다. 그 차이점의 중심에 바로 ‘시험’이 있죠.

모든 청취자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 시험은 형식적 공정성을 담보하는 꽤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그와 동시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불평등을 가리고, 실질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실질적 불공정함을 정당화하죠. 게다가 여러 영역에서 형식적 공정성을 내세워 인력 채용에 들어가는 자원을 최소화하려는 여러 조직의 무분별한 시험 채용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이 시험에 지배당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들을 통과했는지 여부가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동하는, 일종의 전도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책은 한국의 능력주의 맥락에서 시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지대추구 경향을 꼽습니다. 지대추구란 생산성의 향상이나 효용 없이 개인이 이득을 가져가는 성향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인데요. 박권일 작가는 시험이 능력을 검증하는 수단이 아니라 합격이라는 자격을 통해 시험과 무관한 영역에서 이득을 얻어가는 수단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합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고등학교 입시나 대입 입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변시 사시 공시 외시 등 각종 시험들이 많든 적든 이런 성격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입 시험을 잘 봤다고 해서 아무 회사에서나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대입 시험에서의 성과가 취업 시장에서 꽤 중요한 잣대로 작동한다는 것 또한 한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드리기 위해 우리 방송 또한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런 문화에 대한 박권일 작가의 진단이 모든 면에서 옳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학부모 청취자라면 이 책의 진단을 한 번 참고해보실 수는 있겠죠. 또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인문 사회 영역으로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사회를 진지하게 비평하는 글은 이런 형식이나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구나 라는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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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당연히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입니다. 샌델은 미국의 맥락에서 능력주의를 논합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샌델은 하버드 대학 교수이고, 그곳에 오는 입학생들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수준의 능력주의의 최정점에 있는 친구들이고요.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토론하는 가운데 샌델이 생각하고 느낀 점은 무엇인지, 우리나라를 벗어난 다른 맥락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이해되고 비판받는지 알기 위해선 이 책이 가장 좋은 참고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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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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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이죠. 각종 일간지 선정 ‘올해의 책’ 최다 선정작에 빛나는 책, 경향신문 문화일보 시사인 한겨레 한국일보 5개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책, SF적 상상력은 있지만 SF는 전혀 아닌 아주 진지한 사회비평 에세이, 김초엽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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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결합된 인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나이대가 조금 있는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아마 어렸을 때 봤던 로보캅의 이미지가 선명할 것 같고, 학생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마블 시리즈의 아이언맨이나 윈터솔저같은 캐릭터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탈착이 가능하든 아니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든, 이렇게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존재를 사이보그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정말 말 그대로 기계와 유기체가 결합한 존재가 사이보그라면, 우리 주변에 사이보그는 이미 정말 많이 존재합니다. 바로 각종 보조기구를 사용해 세상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이 사이보그들은, 사이보그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계에서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물리적 불편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음성지원을 하지 않는 키오스크에서부터 경사로가 없는 건물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죠. 현실의 사이보그들에게, 비장애인들이 그려내는 사이보그의 이미지는 어쩌면 환상이나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사이보그들과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관점을 바꿔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김초엽과 김원영이 같이 쓴 이 책이 여러분에게 그 길잡이가 돼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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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향상과 전환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사이보그가 되다 지만 실제로 다루는 내용은 최근 여러 학문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는 장애학의 연구 성과입니다. 인문 사회 과학 등 여러 분야를 장애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보는, 최근 부각된 학문분야인데요. 장애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관점을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죠. 이 책의 저자인 김원영은 1급 지체장애인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깊게 연구해 온 변호사입니다. 우리 수요독서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소설가 김초엽은, 더 이상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소개할 때 말씀드리지 않았던 정보를 하나 덧붙이자면, 김초엽 작가도 청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장애학은 관점, 이른바 비장애인중심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보니 다루는 분야의 폭이 매우 넓고, 이 책도 그 모든 분야를 망라하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제 눈에 띈 관점은 향상과 전환이라는 문제의식인데요. 비장애인중심주의에서 장애인을 바라볼 때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죠. 그 장애인의 상태를 비장애인과 비교해보고, 뒤떨어지는 부분을 집어내 그걸 정상의 수준으로 올려놓으려 기능을 향상하려는 노력, 이게 바로 치료죠. 여기엔 대단히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달성하기도 어려운 목표고,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어려운 과정을 소화하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정상인의 상태로 ‘향상’되는 것이 지금 현재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얼마큼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당사자인 김원영과 김초엽 모두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합니다. 대신 정상인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신체기관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부분을 지원해주는 것이 지금 당장의 삶을 개선하는 데 훨씬 낫다는 취지죠. 또 이런 기술은, 꼭 장애인을 돕기 위한 용도로 쓰이지 않고 있더라도, 이미 우리가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김초엽 작가는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니 아리송한데,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초엽 작가가 대학에 다닐 때 음성을 진행되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게 매우 힘들었고, 비싼 보청기로도 그다지 많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학교 측에 지원을 요청했더니 속기사를 붙여주는 서비스가 있는 걸 알게 됐다고 하네요. 그래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속기사를 이용했는데, 속기사는 현재 있는 직업이고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기술일 뿐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도 보청기보다 훨씬 저렴했다고 해요. 이렇게 속기사라는 기술을 통해, 청각장애인인 김초엽 작가는 음성 언어를 시각으로 전환하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렇게 전환을 통해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결국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입법 사법 행정부에 더 많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요구가 반영된다면,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을 소화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에서 그런 통찰을 얻어가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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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책은 이 책의 저자인 김원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수자군에 속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비장애인중심적으로 구성돼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2018년 출간된 이래 많은 독서인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책이니, 한 번쯤 눈여겨보고 학부모 청취자와 학생 청취자 모두 간단한 독서록을 만들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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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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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올해의 책 특집,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세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다룰 책은 우리 역사의 큰 상처인 1948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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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대학 강사인 경하는 사진작가이자 영상감독인 인선과 20년 지기입니다. 최근엔 연락이 뜸해도 인선은 언제나 경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그런 친구죠. 영상 작업을 정리하고 목공일을 하겠다며 제주로 거처를 옮긴 뒤엔 연락이 더 뜸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자가 왔습니다. XX병원에 있는데 신분증 들고 와줄 수 있겠냐고. 인선은 목공일을 하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려 접합 수술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인선은 제주 집에 있는 반려 새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며 경하에게 부탁합니다. 경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인선의 요청에 제주도로 향합니다. 길에서 하염없이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인선이 옛날에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되짚어보며 인선의 어머니와 그 가족들이 제주에서 겪었던 기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방공간에서 우리 역사에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제주 4.3 사건을 여러 문학적 장치와 함께 제시하는 소설, 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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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제주 4.3 사건입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사건인 제주 4.3 사건은 이념적 저항, 국가 폭력, 사적 폭력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있어 정확하게 이런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평가하기에 무척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여러 사건들이 공식적으로 그 의미가 격상되는 와중에도, 이 사건만큼은 아직 공식적으로 제주 4.3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사건 전개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1948년 한반도 남쪽만 단독으로 총선거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됐죠. 여기에 여러 정치세력들이 저항했고, 공산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던 남쪽의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전면적인 선거 거부를 선언하고 시위와 봉기, 무장투쟁에 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당시 한반도 남쪽을 통치하던 미 군정과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경찰은 제주도에 인력을 급파하고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비공식적 조직인 서북청년단까지 가세합니다. 남로당의 지지세가 거셌던 만큼 진압과정에서 남로당원과 민간인을 구별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이를 구실 삼아 미 군정과 군인 경찰 서북청년단 단원들은 제주도민들을 무차별 진압 학살했습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 14000여명이 죽었고, 진압하려 온 세력 쪽에서도 1000명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도민 사망자 14000명 중 민간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영유아 청소년 노인이 2000명에 달하는 것을 봤을 때, 남로당 토벌을 빙자한 국가 폭력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성격이 뚜렷하다는 게 이 시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합의한 내용입니다.

제주는, 이 시기 동안 국가가 행사한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서,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그들이 폭력을 행사할 시간에 내가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아주 우연한 요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라진 그런 지역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감상에 따르면 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소재로 이 소설에서 눈이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제주는 한반도 본토보다 남쪽에 있지만, 해안에서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가 있는 화산섬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습하고 중산간지역은 춥기 때문에 눈이 많이 내립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눈과 닿으면 눈을 녹여서 물로 만들어버리지만, 생명이 없는 존재는 눈이 쌓이는 채로 내버려 둡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인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 어머니의 가족들이 국가 폭력을 경험하는 순간도 눈이 녹지 않는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이 표지도, 이야기의 어둡고 밝음 이런 것과 관계없이 이렇게 돼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밖에 소설이 보여주는 이런저런 비유와 표현과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지,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하면 좋을 콘텐츠는 현기영의 순이 삼촌지상에 숟가락 하나 입니다. 현기영은 제주 출신 작가이며 제주에 4.3 사건이 벌어질 때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두 작품은 그 기록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수능 문학을 공부하고 있을 고등학생 청취자는 한 번쯤 문제로 풀어본 경험이 있을 거라고 제가 장담할 수 정도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죠.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께도 익숙할 텐데, 그 기억 속 저편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바로 그 프로그램에서 2003년에 캠페인 도서로 선정하기도 했었죠. 사실상 국가가 폭력적으로 자행한 민간인 학살 현장을 상상해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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