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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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이죠. 지난주 예고에서 오늘 다룰 책이 조선일보 선정 올해의 책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지난해 마지막 주 동안 각종 언론사에서 한꺼번에 리스트를 발표해서 다시 정리를 해보니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주간지 시사인까지 포함해 무려 언론사 네 군데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더라고요.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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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캐시 박 홍은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2세 여성입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자신의 인종을 작품에서 지워버린 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의 시도가 백인들이 세워놓은 정상성을 강화하는 효과만 낳는 것이 아닌가 고민합니다. 그래서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실험적인 작품을 구상하며 고민합니다.

일상에서는 여전히 만연한 인종 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겪는 인종차별의 양상은 다소 복잡합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받는 인종차별만큼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습니다. 몇몇 성공한 아시아인들이 모델이 돼 ‘아시아인들처럼 근면하면 인종차별을 겪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른바 모범적 소수자 담론의 주역이 되기도 합니다. 몇몇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이 담론에 적극 편승해 흑인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상에 만연한, 아프리카계에 대한 차별과는 또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설명할 단어를 찾아내지 못해 헤맵니다. 그 결과 수치심이나 우울처럼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해 생기는 감정, ‘마이너 필링’들을 안고 살아가죠.

이 ‘마이너 필링’을 시인의 손끝으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책,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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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모범적 소수자입니다.

모범적 소수자란 미국의 인종차별 양상을 가리킬 때 주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많이 쓰이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마약 강도 총기사고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이민자들에 비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적은 임금과 궂은일도 감내하며, 자식들의 교육에 온 힘을 쏟아 2대나 3대 자손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좋은 회사에 취직시켜 사회의 주류로 진출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죠. 이른바 ‘아시아적 문화’가 이런 노력을 공동체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언뜻 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캐시 박 홍도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이 모범적 소수자 이미지가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이미지가 보여주는 성취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아시아계 가족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문제를 감춰버립니다. 게다가 이 이미지는 아시아계의 성취를 인정하기보단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등 다른 인종을 차별할 때 훨씬 더 자주 동원됩니다. 우리나라의 ‘엄친아’ 담론과 비슷한 거죠. 이것은 이 이미지가 백인을 기준으로 설정됐다는 걸 보여줍니다. ‘모범적’이란 말은 ‘백인의 마음에 드는’이라는 말과 동의어일 뿐입니다. 겉으로만 칭찬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사회 주류가 ‘정상’으로 설정한 인종차별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모범적 소수자와 험한 소수자를 나누고 여기에 인종적 특징을 부여하는 그 권력은 스스로에게 ‘기준’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특성으로서의 의미를 지워버립니다. 그 많은 소수자들이 보기엔 백인 - 유럽계 미국인이라는 것도 분명히 어떤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범적 소수자 담론 때문에 아시아계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설명할 언어고, 얻은 것은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지 못할 때 생기는 감정인 ‘마이너 필링’입니다. 이른바 백인성을 내면화해 자신들에게 가해진 차별을 이제껏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설명할 필요를 못 느껴 생긴 상황인 것입니다. 이 책 전체가 바로 그 언어를 찾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지은이와 함께 그 과정을 함께 모색해보면서, 내 감정을 설명할 언어도 얻어가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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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콘텐츠는 스테프 차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입니다. 제가 오늘 꼽은 모범적 소수자라는 개념이나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사건으로 1992년 LA 폭동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해진 가운데 여러 이유로 시위대가 코리아 타운을 습격하고 미주 한인들이 여기에 대항해 싸웠던 사건이죠. 다만 이 사건 직전에 한인 마트 운영자가 근거 없이 손님으로 들어왔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를 총으로 쏴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습니다. 이 총격 사건과 LA 폭동을 모티프로 삼아 구성된 소설이라, 미국에서 소수 인종 간의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며 같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도 지난해 출간된 나름 따끈따끈한 신간이고요,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책 목록에 포함돼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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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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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4주, 한 달 동안은 2021년 한 해를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는데요. 그 첫번째 책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독자 투표로 선정된 올해의 책,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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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책을 만들다가 초등학교 중고학년을 대상으로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말하고 쓰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접합니다. 틀린 표현을 바꿔주며, 글을 함께 익히며, 동생과의 사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피아노를 배우는 입장이 돼 자신에게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기도 하며 아이들과 세계를 공유합니다.

단순히 귀엽다고만 할 수는 없는, 같은 세상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 세계를 존중하기도 하고 때로는 넘나들면서 지켜주려고 하는 한 어른의 이야기,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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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어린이입니다.

이 책은 작가 김소영 선생님이 겪고 생각한 일을 짤막하게 적은 에세이를 묶은 책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읽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고, 대형 서점에서도 통근 시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건과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여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고,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죠. 특히 나름 작가와 같은 업계 종사자인 저로서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떠오르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가벼운 문제만 짚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는 어른들과 같은 세상을 공유하기에, 어린이는 우리 사회가 겪는 다양한 문제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나쁜 어른들은 어린이가 약자라서 어린이를 노립니다. 판결로, 노키즈존으로, 어른만을 위한 디자인으로, 어른들은 우리 사회가 너희를 보호해주지 않을 거라는 신호를 자꾸만 보냅니다. 어린이는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먼저 배워야 살아남습니다. 그걸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가르치기엔, 좀 서글프지 않나요?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 우리는 어린이들이 세계를 넓히도록 도와야지 어른의 세상에 맞추라고 강요하거나 세계를 바꿔버리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이게 어린이라는 세계를 보호하는 바람직한 방식인 거죠. 때로는 무조건적인 선의로, 때로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로, 우리 모두가 이 세계를 보호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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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함께 하면 좋을 콘텐츠는 따로 없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책 취지에 걸맞게, 어른과 어린이, 부모님과 아이들이 앉아 같이 고요함 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시끄러울 수 없는 연말을 보내는 의식처럼 말이죠. 같은 책을 읽고서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고, 서로 다른 책을 읽으면서 각자 느낀 점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2021년이 정말 가네요. 이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각자 올해를 나름의 방식으로 견디거나 즐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 속에 제가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 전해드린 말씀이 적으나마 도움이 됐다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교육진담 수요독서 코너와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2022년에도 항상 열심히 뛰는 책배달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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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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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니저 스크루지는 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이지만, 마음씨가 곱지 않고 야박하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스크루지도 그 점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멍청하고 세상을 제대로 살 줄 모른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파티를 하자고 찾아오겠다는 조카의 제안도 거절하고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것에 몰두하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쏘아붙이며 잠에 듭니다.

그날 밤, 스크루지의 방으로 먼저 죽은 동업자 말리가 찾아옵니다. 죽은 말리가 찾아오다니 스크루지는 깜짝 놀라고 말죠. 온몸에 쇠사슬을 친친 감은 말리는 ‘너는 지금 죽어도 나보다 더 많은 쇠사슬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두려움에 떨던 스크루지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말리는 내가 떠나고 난 뒤 세 영혼이 찾아올 것이라고 안내하고는 스르륵 사라집니다.

세 영혼은 각각 스크루지의 과거, 스크루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 스크루지가 죽은 뒤에 펼쳐질 미래를 보여줍니다. 구두쇠가 아니었으며 착하고 행복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했던 에브니저, 빈부와 지위를 가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신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따뜻한 한때를 보내는 스크루지의 이웃들, 스크루지가 죽은 뒤에 구두쇠 영감 가게를 터니 신나는군 하면서 가게를 도둑질하는 범죄자들까지. 에브니저 스크루지는 이들을 보며 구두쇠 같은 태도를 버리고 베푸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면서 펑펑 웁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성탄절 아침이었고요.

우리가 아는 그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최초로 선사한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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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크리스마스의 세속화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연구자들이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만들어진 원인으로 찰스 디킨스를 주목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인데요.

첫째, 크리스마스는 분명히 종교적 의미를 띤 기념일인데도, 그 위에 비종교적인 이미지도 함께 입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신자도 아닌 사람들도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합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기독교 전통을 강하게 이어온 나라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걸까요? 디킨스가 성공한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요. 실제로 디킨스가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19세기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세속화가 진행됐을 때니까요. 하지만 디킨스는 이 소설 안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날, 행복을 공유하는 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의 이미지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세속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선 크리스마스가 지닌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이어가기도 합니다. 바로 기부와 선행이라는 부분이죠. 스크루지는 다른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지도 않고, 돈을 쓰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도 매우 인색하게 굽니다.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은, 특정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종교적 지침에 가깝습니다. 이전 예수 탄생 기념일에 종교인들이 그런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종교의 권능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됐을 때, 여전히 사람들이 선행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킨스가 이 소설에서 쓰는 이야기 구성 방식은, 영혼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차용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반성입니다. 나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인가 직시하게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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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다룬 에세이와 소설들입니다. 디킨스는 작가 생활을 하는 시기 거의 매해 크리스마스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보시는 이 책에 그 가운데서 유명하고 의미 있는 글이 실려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길고 대표적인 것은 스크루지 이야기인 크리스마스 캐럴이고 대체로 비슷한 주제가 변주된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의 ‘세속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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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 죽음으로 완성하는 단 한 번의 삶을 위하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윤영호 지음 / 안타레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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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잘 사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합니다. 하지만 삶에 골몰하다 예기치 않는 상황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고 고단해 병원에 갔다가 당신의 육체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기도 하죠. 이 책에 따르면 이런 통보를 받은 뒤엔 대부분 6개월 안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잘 사는 삶에 골몰하던 사람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봐야 6개월이라는 뜻도 됩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짧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책의 저자인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 기간이 너무나 짧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죽음은, 죽음이라는 사태를 상상할 수 있는 그 순간부터 서서히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사태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지만 언젠가 들이닥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위해 점검해야 하는 체크리스트엔 무엇이 있을까요? 죽음을 준비하는 다른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요? 호스피스 의료 전문가가 전해주는 자세한 설명을 이 책에서 함께 확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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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웰다잉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윤영호 교수는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사이자 학자입니다. 그는 좋은 삶과 잘 준비된 죽음 즉 웰다잉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방법은 좋은 삶을 사는 것이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추상적인 이 말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표현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삶, 웰다잉을 성취하려면 크게 두 가지 부문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는 정신적 웰빙입니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계속해야 할 일이 꼭 거창하거나 위대한 일일 필요는 없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미뤄왔던 일을 하는 것, 그거야 말로 정신적 웰빙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윤영호 교수의 연구와 생각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분위기 상 보통 이 ‘가치 있는 일’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일을 잘해나가면, 죽은 뒤에 사회 전체에서 명예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이걸 ‘개인적 전설’이라고 표현하던데,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웰빙 못지않게 신체적 웰빙 또한 웰다잉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 정확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는 삶을 뒷받침할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윤영호 교수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신체적 웰빙 보장은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주장합니다. 육체적 생명을 늘리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건 분명히 법적인 문제입니다.

이 법적인 문제엔 여러 쟁점이 포함됩니다. 좁게 보면 연명치료를 중지하는 존엄사 문제가 들어갑니다. 더 넓게 보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간의 생명연장 가능성을 위해 환자에게 고통을 초래하는 치료법을 이용할지 결정할 권리를 환자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라든가, 이런 고가의 치료법을 이용할 때 비용 때문에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고통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살기 위해서 극심하게 아파야만 하거나, 살고 싶은데도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것 양쪽 모두 다 ‘좋은 죽음’과 거리가 먼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특히 최근에 간병 과정에서 발생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여버린 ‘간병 살인’ 사건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죠. 꼭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회 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죠. 아버지도, 아들도, 그런 끝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생각해보고 그 모습을 잘 반영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바라면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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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몇 년 전에 욜로 열풍이 불면서, 버킷리스트 만드는 유행이 잠깐 불었던 적이 있죠. 죽기 전에 해볼 것 목록, 이런 뜻인 것도 잘 아실 겁니다. 이 책은 버킷리스트 대신, 죽기 전에 꼭 결정해야 할 10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해보고, 미리 자신의 의사를 남겨놓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게 오늘 아이랑 투게더 시간에 추천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이 책 130페이지에 나오는 목록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내 장례식이나 시신 처리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기

- 내 죽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편지 써보기

- 죽기 전에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 명단 만들기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기

- 재산 정리하고 유언장 쓰기

- 유산 기부 계획 만들기

- 꼭 하고 싶었던 것 생각하고 해 보기

- 가족과 여행 가기

-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 내가 기뻤던 순간과 내 활동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던 기억 정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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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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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파시스트 군부 세력과 공화주의 정부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공화주의 정부를 지원하기 아나키스트 의용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합니다. 멋진 전투와 뜨거운 승리로 파시스트들의 기를 눌러버리겠다는 결심은 최전선에 배치되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총과 총알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추위와 더위에 고생하는 열악한 상황, 교착된 전선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대치는 후방에 알려진 전쟁의 낭만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틈틈이 벌어지는 전투에서 의미 없이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대치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나’는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쉬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공화주의 정부와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아 무력시위가 발생하기에 이릅니다. 파시스트 군부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더 정확히는 아나키스트들을 믿지 못해 무장해제시키려는 공화주의 정부와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질린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아나키스트 의용군 소속이었던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입니다. ‘나’는 그 뒤에 어떻게 될까요?

실제 스페인 내전에 공화주의 정부 진영에 자원입대해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기보단 보고서에 가까운 작품, 르포르타주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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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스페인 내전입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쟁을 가리킵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일으킨 군사반란에서 시작돼, 공화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토지와 소유 재분배 등 진보적인 개혁을 실시하던 당시 스페인 제2공화정을 무너뜨린 사건이죠.

프랑코의 반란군은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아 개혁에 대한 찬반으로 혼란에 빠진 스페인 전역을 단숨에 점령해나갑니다. 반면 공화주의 정부는 스페인에서 자생한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소비에트 연방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공산당, 그리고 국제적 연대를 맺고 있는 아나키스트 의용군들 사이의 분쟁으로 인해 자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웰이 묘사한 바르셀로나 시가전도 그 자멸의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이고요.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최전선에 파견된 ‘내’가 ‘전선의 지리멸렬함’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이곳에는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습니다. 물자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명령체계도 엉망이며, 병사들은 줄을 맞춰서 걷는 정도만 훈련받은 뒤에 바로 전투에 투입될 정도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전투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영국에서 태어나 제식훈련을 강하게 받은 영국인으로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그가 바라보는 단 하나의 희망이자 동력은 ‘평등’입니다. 그런 지리멸렬함을 모두 덮고도 남을 에너지가 바로 평등에서 나온다는 점을 ‘나’는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고 나눠 차별하려 드는 파시스트 세력을 향해 대항한다는 그 명분 하나만큼은 사람들이 부여잡고 있기에, 전선의 지리멸렬함을 그나마 버티면서 심지어 소소하나마 전투에서 성과를 올리기까지 하는 것이죠.

뒷부분은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오면서 그 희망이 산산이 깨지는 부분입니다. 전선에는 물자가 부족해 총마저 돌려쓰는 처지이지만 무정부주의자를 탄압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정부 측 치안대는 한 명이 소총과 권총을 모두 사용하는 행태, 코민테른 더 정확히는 스탈린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게 분명한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세력을 ‘혁명의 적’이라며 ‘트로츠키주의자’ ‘파시스트’라고 매도하고 내부투쟁에 골몰하는 꼬락서니, 이런 이들을 믿지 못해 최전선이 아닌 곳에서조차 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저항하는 아나키스트들까지.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공화주의 정부와 공산주의자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수십 페이지에 걸쳐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이 뒷부분을 관통하는 감정은 ‘환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계를 파시스트로부터 구하겠다,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이 아무리 공상 같고 낭만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의 변화를 이끄는 희망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모습, 공화주의 정부 내부의 분열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누가 다수 세력이 돼서 정권을 잡고 누구를 내쫓느냐만 결정하는 무의미한 다툼일 뿐이죠.

이런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와 공화주의자의 대립이라는 점과 각 진영 안에서 세부 세력들 사이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대와 대립과 반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듯한 생생함을 이 소설에서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이와 관련된 문화콘텐츠는 정말 많습니다. 다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중에 청취자 여러분 모두에게 교양이 될 만한 작품만 콕 집어 선정해도 4개 정도가 떠오르네요.

분야별로 꼽아보자면, 그림으로는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스페인 내전 당사자 중 한 명인 피카소가 그린 그림 ‘게르니카’가 있네요.

문학작품으로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있습니다. 같은 배경을 다룬 두 소설가의 작품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활동도 매우 가치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영화로는 영국을 대표하는 좌파 영화감독인 켄 로치의 1995년 영화 <랜드 앤 프리덤>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가 있겠습니다. <랜드 앤 프리덤>은 내전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데 충실한 다큐멘터리같은 작품이라면, <판의 미로>는 주인공 소녀의 꿈같은 동화세계가 현실의 참극과 만나 벌어지는 기괴한 모습을 묘사한 판타지 작품이죠.

예술작품 외에,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단행본 중에 가장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도서입니다.

이 모든 작품이, 스페인 내전과 관련해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한번은 꼭 눈여겨봐둘 만한 작품의 목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보시면서,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에 대한 여러 관점의 풍부한 정보를 얻어가신다면, 매우 좋은 독서 활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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