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19세기 중반 과학자들 사회에서 과학의 엄격한 보편성, 무조건적 필요성, 절대적인 진리성을 버리고 지식의 자성적 특징, 유효조건, 상호주관성, 독립성을 강조하는 과학의 새로운 개념이 확산되었다. - P2080

중국에는 언어훈련을 받은 인재가 전혀 없었고, 이것이 중국과 서방의 불균형한 관계에서 중국 측 열세의 한 요소였다. 황실은 오랫동안 왕조의 전통을 지키느라 ‘오랑캐’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을 강력히 막아왔다. - P2088

메이지 시기에 보다 집약적으로 서방 지식의 수입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방의 전문가를 초빙했을 뿐 아니라 번역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제도가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 P2089

유럽 각 민족은 언어공동체로 간주되고 또 그렇게 선전되었다. 고상한 문어는 모든 민족의 핵심적인 성취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여러 지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는 그 지역의 풍속과 강고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P2093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진보 가운데 하나는 문해력의 대규모 확산이었다. 대중적인 문해력의 보급은 하나의 과정이었다. - P2095

엘리트들이 문해력 보급에 대해 보인 반응은 이율배반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성적인 읽기와 모범적인 문화생활을 통해 ‘보통사람’을 계몽시켜 미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읽고 쓰는 능력의 대중화는 일반적으로 명예와 권력의 등급질서의 변혁을 유발하거나 현존질서를 건드릴 수 있었다. - P2099

현대 이전 사회에서 기타 국가와 비교할 때 중국의 읽고 쓰기 교육은 높은 수준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읽고 쓰기 교육은 거의 정체되었다. - P2104

국가가 청년의 공식교육을 독점적으로 통제한다는 구상은 19세기의 혁명적인 혁신이었다. - P2109

몇몇 국가에서는 대학생들의 정치적 행동이 관심을 불러일으킬 때라야 대학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대학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19세기 초가 되자 ‘대학생-청년-저항’이란 연상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 P2117

19세기 말이 되자 새로운 연구기관 이 생겨났지만 독일 개혁가들의 기본 구상은 연구 기능을 연구기관으로부터 대학으로 옮기고 독립적인 연구기관을 대학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 P2125

1880년부터 미국의 부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학을 설립하여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후세에 알리려는 부호들이 속출했다. - P2130

일본인들은 독일 역사학파가 제시한 사료비판과 실증주의를 흡수했으나 독일 역사학의 철학적 방법론과 문학적 서술 기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 P2132

개별적인 지식의 이동성은 차이가 많았다. 어떤 지식은 다른 지식보다 쉽고 빠르게 움직였다. 유럽 지식은 내재적 우월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오래된 관념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평가였다. 이런 평가는 지식의 접촉과 전파 과정이 일어난 특수한 문화적 정치적 상황을 무시한다. - P2136

언어의 관점에서 번역은 거대한 도전이었다. - P2138

일본의 회화는 유럽의 아방가르드가 당면하고 있던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선봉에 서 있던 유럽 예술가들은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의 예술작품에서 자신들의 노력과 일맥상통하는 방향을 발견했다. 바로 이 시기에 유럽의 일본예술에 대한 열광과 일본의 유럽예술에 대한 열광이 동시에 정점에 도달했다. - P2141

서방의 조성음악이 이국의 성소를 흡수하여 불안정해진 곳에서 아시아 음악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 P2142

아무런 구분 없이 구원종교의 발생지로 인식되던 ‘아시아’는 비이성주의의 상징이 되어 서방의 이성주의와 논쟁적으로 맞서게 되었다. - P2143

과학의 제도적 확장은 자연과학과 의학 영역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일어났다. 이런 개념은 19세기 말에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있어왔지만 이 시기에 과학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P2145

유럽에서만 동방학이 형성되었을 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서방학의 싹이 나왔다. - P2151

당시에 문자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자위능력을 갖춘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도시생활이 극히 일부이거나 아예 없는 유럽 이외 지역의 사회에 대해서는 동방학의 어문학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연구할 수가 없었다. 이른바 ‘미개민족’ 또는 독일어로 ‘원시민족’에 대해서는 19세기 6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과학인 민족학이 주도하여 연구했다. - P2153

19세기 서방의 타자 연구의 학문적 발전은 그 속의 불쾌한 교만에도 불구하고 비유럽 문화의 역동적인 학문 활동에 대한 제국주의의 파괴적인 침입이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의 세계화된 인문학의 기초를 놓은 동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 P2156

모든 학과 가운데 지리학은 서방의 제국주의적 확장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 P2157

미슐레와 릴은 같은 시기에 현재와 과거의 사회 저층의 생활을 묘사했다. 그들의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사회 저층에 대한 동정심과 극히 사실적인 기술 방식은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릴은 독일에서 ‘민속학’이라 불렀던 학문분야를 창시했다. - P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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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제도

그 시대의 대부분의 이론은 ‘유럽 중심적’이었지만 최소한 메인, 뒤르켐, 베버의 이론에는 비유럽 지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원칙적으로 비유럽 문명세계의 후발민족은 피부색과 신앙에 관계없이 사회진보의 보편적 모형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 P1991

초기의 상황이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등급에서 계급으로’의 모형은 유럽사회의 변화를 불완전하게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19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등급’은 모든 유럽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주요 구분원칙은 아니었다. 1800년 무렵 ‘등급사회’는 세계 기타 지역에서는 흔치 않았다. - P1993

족내혼, 기생계층, 정결금기를 기반으로 한 힌두교 카스트제도는 전 현대사회의 인도에서의 등급 구분에서 유럽의 전통적 계층사회와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규칙을 식민주의가 자기목적에 맞게 강화했다. - P1994

19세기의 세계사회사는 대부분 이민사와 중복되며 디아스포라와 그 결과로서 형성된 새로운 프런티어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1995

가톨릭 고위 성직자나 유대인 거물 금융가를 제외한다면 19세기의 귀족은 유럽사회에서 가장 국제화된 집단이었다. 그들은 서로 알고 있었고, 서로의 등급을 평가할 수 있었다. 행동규범과 문화적 이상을 공유하고 있었고, 필요할 때는 프랑스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또한, 국제 혼인시장에 참여했다. 등급이 높을수록 재산이 많았고 국제적인 교제 네트워크에 접촉하는 면도 넓었다. - P1999

빅토리아시대에 궁정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몇몇 사회영역에서 지도자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반대급부로서 사람들의 감사와 복종을 누렸다. - P2003

벵골과 인도의 기타 지역에서 20세기 초에 농촌의 주도 계층이 된 집단은 자민다르가 아니라 토지를 소유한 중간 규모의 농민이었다. - P2007

1869년 이후 일본은 단계적으로 사무라이 신분을 폐지했다. 가장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은 연봉제도의 폐지였고 가장 심각한 신분적 굴욕은 1876년에 시행된 칼을 찰 수 있는 특권의 폐지였다. 이제 사무라이는 개별적으로 활로를 찾아나서야 했다. - P2009

신사는 통치자와의 접근성, 국가를 유지하는 역할, 고전에 통달한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귀족과 유사했다. 이 밖에도 두 가지 공통요소는 토지에 대한 통제권과 육체노동으로부터의 이탈이었다. 여러 면에서 신사의 기능은 유럽 귀족과 대응했다. - P2014

‘부르주아계층’이란 개념의 기만성은 부르주아계층의 생활방식에서 나왔다. 부르주아는 (계층)’상승’을 추구하면서 그 반대의 경우를 가장 두려워한다. 귀족은 몰락해도 귀족이지만 몰락한 부르주아는 사회적 지위를 완전히 상실한 낙오자일 뿐이다. - P2018

프티 부르주아는 19세기에 예외적으로 지역화된 존재였다. 그들의 경제활동 반경은 상시 접촉하는 이웃의 범위를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 P2022

진정한 부르주아는 프티 부르주아보다 사고의 지평이 넓고 자본을 소유하고 있으며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 P2024

농업과 전원생활과 정통문화보다는 상업이나 비정통적 지식과 관련된, 나아가 시야가 ‘교회의 첨탑’을 넘어서는 직업과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지난 어떤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중요해졌다. 이런 직업, 생활방식, 사고방식의 주체는 흔히 전통을 버린 새로운 형태의 사회세력, 준 부르주아였다. - P2029

유럽과의 상업적 접촉이 시작되면서부터 비유럽 준 부르주아는 중간에서 거래를 알선해주는 ‘매판’의 기능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현지 교역 네트워크와 접촉하는 경험을 넓히고 이 네트워크를 세계경제와 연결시켰다. - P2032

세계 어디에서나 ‘중산계급’은 현대적이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19세기 말에 드러난 현대성은 아시아의 준 부르주아 계급 엘리트에게는 양날의 칼과 같은 선물이었다. 현대성은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문화 중립적이고 초국가적이어야 했다. - P2036

캐나다와 뉴질랜드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유럽사회는 식민지에서 파편화되고 균열된 상태로 복제되었다. - P2041

19세기의 새로운 사건은 새로운 코스모폴리탄 부르주아계급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방의 부유한 국가에서 원거리 자본이익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실패한 유토피아가 등장했다. - P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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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빅터 프랭클 지음, 박상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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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 속을 두드린 것은 두 가지 질문이었다.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버라이어티할 수가 있지?'

'대체 무엇이 그의 삶을 지탱하게 했을까?'


이 책은 빅터 프랭클의 일대기가 오롯이 담긴 자서전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집필한 책이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주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동안 그가 말하지 않았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있다.


빅터 프랭클은 부모님을 참 많이 사랑했구나 생각했다.

인자한 어머니, 엄격하지만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했던 아버지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 정말 행복한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를 잘 만들어냈다고 한다. 

나는 아이디어가 정말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쾌감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는데 부러웠다. 

또 재치 있는 말과 유머로 사람을 웃겨서 강연 때 청중들을 모조리 내 편으로 만든다고 한다. 

나는 말도 재미 없게 하고 글도 딱딱한 편이라 정말 부러웠다. 그런 재주를 가졌다면 문화해설사를 도전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정한 원칙에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화가 나기도 하고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는 면은 나와 정말 비슷했다.

지금은 좀 내려놓으려고 하는 편인데 예전엔 무자르듯 기준이 칼 같아서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했다.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도 똑같다. 나는 카페인을 복용하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 해도 그는 천재가 분명하다.

남을 치료해주는 능력도 가지고 있고 강연도 하고 암벽 등반을 80세 때까지 했고 작곡도 즐기고. 이리도 많은 재주를 가졌다니~ 


세살 때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청소년 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철학자로 살고 싶었다고 한다.

의사는 결국 이루었고 소설가는 아니지만 글을 써서 집필했고 로고테라피로 심리 이론을 세우고 평생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며 살았으니 철학자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난 집 건너편엔 아들러가 살고 있었다고 하고 의과대학생 시절 프로이트를 만나기도 했다.

아들러가 만든 국제 개인심리학회지에 프랭클의 논문이 실리기도 했지만 아들러가 개인심리학회 탈퇴를 요구하여 탈퇴하게 된다. 거기서 나와 의료심리학회를 창립하고 본인의 이론인 로고테라피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37년 정신병원을 개업했지만 1년 뒤 3월 히틀러 군대가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수용소에 가서 그와 마주한 가족의 이야기는 슬프다고 하기에도 그 크기가 너무 큰 그런 것이었다.


미국으로 가는 입국 비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부모님을 남겨두고 가지 못하고 결국 그곳에 남는 결정을 했을 때.

수용소에 가기 전 아내를 만났고 결혼했지만 그것이 결국 나치가 허가하는 마지막 유대인 커플이 되었을 때.

그마저도 짧은 9개월의 결혼 생활 중 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 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아내가 따라왔을 때. 그마저도 며칠 있다가 프랭클이 카우페링 제3수용소로 가게 되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마지막 수용소로 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호흡곤란이 찾아와서 죽음을 각오하고 막사를 탈출했을 때.

시간이 지나 1945년 4월 27일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아내가 죽고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에서 모두 숨을 거둔 걸 알게 되엇을 때.


역자도 말미에 이야기하는데 눈물 없인 이 이야기를 옮기기가 참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나도 그랬을 것 같다. 아무리 메마른 사람이라도 억장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수용소만 생각하면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집필 의지가 있었고 삶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졌기에 그는 끝내 살아남았고 많은 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의지를 전해주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초월의 가치가 선한 영향력이 된 경우가 아닐까.


그리고 두 번째 아내를 만난 것도 그의 안정감에 한 버팀목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남은 생이 더 즐겁고 편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한다.

나의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이는 나 밖에 없고 글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3년 동안 나는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트, 제3카우페링 수용소, 튀르크하임 수용소, 네 군데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 P122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 탈출했어야 해. 미국으로 망명했더라면 내 평생의 과업을 다 이룰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 강제수용소는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시험대였다는 것을. 내가 자주 강조하듯이 자기 초월과 자기 상대화에 있어서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제수용소에서 확인했죠. - P125

나는 연대책임에 반대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불행의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 P131

"9,000달러로 살 수 없는 게 시간이에요. 저에게 사고 싶은 게 있는지 묻는다면 시간입니다.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요. 9,000달러를 줘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주어도 제 시간을 팔고 싶지 않아요." - P153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책임감! 우리는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로고테라피 치료의 원칙은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이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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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04 2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빅터 프랭클 인간적으로 너무 멋진 사람, 세기의 천재 , 진정으로 환자를 위해 쉼 없이 연구하고 진료 했던 의사
전 이분이 쓴 로고테라피 읽고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도 받고 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ㅎㅎ

재치 있는 말과 유머로 사람을 웃겨서 만나면 모두 내편으로 만들지만
전, 차마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습니다....

화가님의 자서전 쓰기
응원 합니다 ^ㅅ^

거리의화가 2022-02-05 06:55   좋아요 2 | URL
빅터 프랭클 인간적으로 참 멋진 사람이다 생각했어요.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게 살아남은 그의 이야기가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주변에 그를 아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한몫 한 것 같구요.
저는 자서전 쓰려면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니 자서전 글감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다만 어떻게 잘 풀어내는지가 문제일 것 같네요.

mini74 2022-02-04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제로 낙태 수술 하는 내용 너무 슬펐어요 ㅠㅠ 유대인들의 힘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잊지않고 여유로움울 가지는 거란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대단한 분 !

거리의화가 2022-02-05 06:57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저도 그 부분 펑펑 울었어요. 차마 못할 짓입니다. 이분이야말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비관하지 말고 좀 더 밝게 보자 라는 생각도 했구요.
 

존재의 허무함이 존재의 의미를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시간과 경험은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안전하게 보관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무엇도 그것을 훼손하거나 없앨 수 없습니다. - P18

철학적인 사색보다 환경이 중요하죠. 다섯 살 무렵, 피서지 하인펠트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해요. 눈부신 아침이었는데, 햇살이 눈꺼풀을 간질거릴 때 나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나를 행복하고 안전하게 감싸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미소 띤 얼굴로 잠든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 P19

수용소에서는 틈만 나면 한 줄이라도 책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니까요. 일분일초를 아껴서 의미 있게 쓰는 법을 그 시절에 몸에 익혔습니다. - P24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낙천적이고 삶을 즐기는 기질을 타고 난 것 같기도 해요. - P27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의미 있게 기억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P28

나는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로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고통도 가치 있는 업적으로 바꾸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로고테라피는 바로 이런 확신의 토대 위에서 체계화된 이론입니다. - P53

사람들이 ‘비정상이다, 미쳤다, 바보다’라고 규정하는 그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진실인 경우가 많아요. 나는 이것을 ‘로고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로고테라피는 모든 것을 병리학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과 맞서서 환자의 편에 설 것을 선포합니다. - P84

내가 그 상황에 처해 있지 않으면서 쉽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 P9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 순간 나는 결심했습니다. 이 땅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겠다고. - P100

프랭클의 아내로서 잘할 것 같은 여자가 아니라, ‘틸리’라는 존재 자체가 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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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는 왜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그래도 많이 읽고 놀았다고 위안을 삼아본다.


주말엔 개인 시간을 보냈고

월요일에는 시댁 사촌동생이 집에 놀러와서 점심을 먹었다.

집은 어제 가려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건너뛰고 낮에 해떴길래 다녀왔다.

쉬는 동안 많이 먹어서 며칠은 좀 덜 먹고 움직여야겠다 생각했다.



1월 북 결산을 올려본다.


총 9권을 읽었다.

대체적으로 읽은 책들이 좋았어서 기분이 좋다.


1. 그 중 가장 재미났던 책은?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버치 중위를 통해 해방 후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미군정의 또 다른 시선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도움이 된 책은? 남성됨과 정치

어려웠지만 얼마 남지 않은 대선 때문인지 시의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길 바란다.

















이번 달은 대변혁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대한계년사 7권과

지난 달에 구매해둔 책들을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p.s) 

민음사 일력을 샀는데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서 공유해본다.

늘 슬픔을 참았던 경우가 많았어서 지나칠 수 없는 문구였다.


슬픈데도 슬퍼할 줄 모르면서

능히 도모하고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없다.


정인보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픈 시」



그리고 검정치마의 Everything. 멜로디도 분위기도 좋아서 가끔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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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02 21: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이 읽으신 책들은 다 어려워 보이지만 재미있을거 같아요~!! 책들이 좋아서 기분이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검정치마 저도 완전 좋아하는데, 전 Hollywood를 젤 좋아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2-03 08:11   좋아요 3 | URL
네 다 좋았던 책이에요. 책을 고를 때 여러 번 읽어도 괜찮을 책들을 사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가볍게 읽을 용도는 이북으로 읽구요.
검정치마 노래들이 다 좋아요. 저도 할리우드 좋아합니다^^

얄라알라 2022-02-03 0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력이 지난지 4~5일 되는 경우가 자주있는 저로서는, 이렇게 일력의 문구까지 공유해주시는 부지런함에 리스펙트를~~. 거리의 화가님, 1월에 읽으신 9권 중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은 책은 없어보이는데 1월에 무려 9권이라니 독서 스타트가 좋으시네요^^

거리의화가 2022-02-03 08:42   좋아요 3 | URL
ㅎㅎ 일력 사놓고 1월 중 쌓인 경우가 많아요ㅠ 그래서 공유하는 겸 저도 챙겨보자 생각해서 올렸답니다.
소프트아이스크림. 찰떡 비유에 빙그레 미소가~ㅎㅎ 1월은 제가 생각해도 많이 읽은 달입니다. 제 기준에서 4~5권 정도 읽어야 정상인데 부지런히 읽고 쓴 것 같습니다. 이달은 짧은 달이라 어떨지 걱정이 되네요. 계획한 책들 읽으려면 헛둘헛둘해야할 것 같습니다. 북사랑님도 2월 독서 화이팅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2-03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차에서 검정치마 투데이즈 찾아 들으려다가 에브리씽 들었어요^^
오호~~음악적 교감이 하나 통했습니다ㅋㅋ
2월의 읽을 책들도 심오하군요!
암튼 화이팅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2-03 13:02   좋아요 3 | URL
ㅎㅎ 검정치마 좋아하시는 분이 많네요.
저는 음색하고 독특하고 묘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좋아서 종종 듣곤 합니다.
투데이즈는 몰랐던 곡인데 들어보겠습니다^^ㅎㅎ
읽을 책이 좀 딱딱한 게 많지요. 그래도 이번달은 제 기준에선 말랑말랑한 책들을 넣는다고 넣었지만...ㅋㅋ
나무님이야말로 아이들 밥 해먹이고 교육시키고 쉬운 게 아니잖아요. 시간 쪼개서 책을 읽으시는건데 정말 대단하신거죠! 2월도 힘내서. 화이팅!

mini74 2022-02-03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거리의 화가님 리뷰 재미있게 봤어요. 좀 참았다 사야합니다 ㅎㅎㅎ 남성됨과 정치도 다들 평이 좋으신데 어려울 거 같아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2-03 22:16   좋아요 1 | URL
ㅎㅎ 북플에는 책사랑 지기님들이 많아서 구매력들이 다들 월등하시죠. 저도 지난달 너무 많은 구매로 이번달은 아직 자제중입니다…ㅋㅋ 남성됨과 정치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그동안 배제된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실 기회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