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이 여성의 일과 관련된 요건으로 제도화되었다.

아름다움이란 요건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외모에 대한 이중잣대를 강화했고, 여성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빈곤하게 만들었고, 여성을 피로로 인해 지치게 만들었다. 또 젊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만들고, 연대를 어렵게 만들며, 여성의 몸을 이용해 경제적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움을토대로 한 차별이 필요해진 것은 여성이 일을 잘하지 못할 거라는 인식 때문이 아니라 지금처럼 두 배나 더 잘할 거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올드보이 네트워크(학연, 지연 등 여러 연줄로 얽혀 강고한 기득권층을 이루는 남성 집단 옮긴이)‘는 이 집단에서 다른 소수 집단에서는 보지못한 훨씬 큰 괴물을 본다. 여성은 소수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은 전체 인구의 52.4퍼센트로 다수 집단이다. - P49

갈수록 "아름다움"이 원래 자신을 전시하는 직업과 거리가 먼 직업들에서도 미국 성차별 금지법에서는 BFOQa bona fide occupational qualification라고 부르고 영국에서는GOQ a genuine occupational qualification 라고 부르는 것으로, 유모에게 여성인 것과 정자 기증자에게 남성인 것과 같은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BFOQ나 GOQ나 ‘진정으로 직업에 필요한 자격 조건‘ 이라는 뜻이다 옮긴이).
성 평등법에서는 BFOQ나 GOQ를 직업 자체가 특정한 성별을 요구해 고용에서 성차별이 공정한 예외적인 경우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기회 평등법의 원칙에 대한 의식적 예외로서 그 적용 범위를 아주 좁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를 보면, BFOQ를 서툴게 모방한 것(나는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PBQ professional beauty qualification, 즉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이라고 부르겠다)이 여성의 고용과 승진의 조건으로 아주 널리 제도화되고 있다. - P57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직장 여성이라는 이 새로운 존재는 어떻게 보여야 할까?
TV 저널리즘은 그 대답을 명확히 제시했다. 삼촌 같은 남성 앵커에한참 어리고 직업적 미인 수준으로 예쁜 여성 뉴스캐스터를 붙여서.
이 한 쌍의 이미지, 주름 있고 기품 있는 나이 든 남성 옆에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성이 진하게 화장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직장에서 남성과 여성 관계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 P66

스티븐스 판사의 판결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성차별이 아니라 시장 논리라는 근거로 정당화했다. 앵커가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일을 잘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여성에 적용하면 여기에 숨은 메시지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거나 판매고를 올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크래프트 사건이 모든 곳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남긴 유산이 되었다. - P71

그래서 여성이 사무적이면서도 여성스럽게 옷을 입지만 끊임없이바뀌는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도, 성희롱을 당하면 대부분이 그것을 자기 탓으로, 자신의 외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으로돌린다. 그렇다면 여성이 직장에서 외모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까? 없다. - P80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은 최근에 기회평등법으로 위협받게 된 착취의 근거를 다시 고용 관계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여러 영역에서 여성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쳐고용주들에게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 P87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여성은 결정권과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가르친다. 아름다움의 신화 속 여성의 이미지는 환원적이고 정형화되어 있다. 언제나 "아름답다"라고 볼 수 있는 얼굴의수는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여성은 자신에 대한 그런 제한된 인식을 통해 자신의 선택 방안도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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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감정구조에 대하여

노무현 죽음 이후 한국 정치는 감정의 과잉으로 양 극단을 달리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정치와 거리를 두라고 했다는데 그는 오히려 죽음으로써 정치에 끊임없이 이용되고 소환되는 아이러니가 발생되었다.

노무현은 어떤 큰 상징이었고, 노사모‘로 표현되는 대중의 지지 행동은 한국 대중민주주의사에서 새로운 문화이자 계기점임에 분명했다. 그는 한국 정치문화의 많은 것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있는 듯했다.
또 그의 승리는 그 자체로 대단한 변화이자 ‘역사의 진보‘처럼보였다. 당선되던 날 그가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부둥켜안을 때, 모순 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렀다던가…. 비주류의 승리, 민주화운동의 승리, 1980년대의 승리처럼 보였다. - P152

정치는 실로 감정과 정동의 영역이다. 노무현의 숙음 이후에 형성된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s)와 그에 따른 증상은2000년대 한국인의 정치감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보인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 아니라,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정치사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거대한 추모의 물결로 시작되었다. 죽음은 대중의 마음에 일대 반전을 가져왔다. - P154

막스 베버는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
이기에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고단언했다. 정치 자체가 폭력이나 악과 관계하는 일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58

또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칼 슈미트가 말한 ‘정치적인 것‘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슈미트는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친 책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란 결국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적대를 창출하는 행위라 주장했다. ‘적‘의 타자성과 이질성,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우리‘의 동질성과 동지-됨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행위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우리‘를 형성하고 존재케 하기 위한작용이다. 칼 슈미트는 그래서 "동지와 적이라는 특수한 대립을다른 구별들로부터 분리시켜 독립적인 것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 이미 정치적인 것의 존재로서의 사실성과 독립성이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 P162

한국이나 미국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단지 행정부의 수반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이며, 문화정치의 핵심이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서 통치성의 중대한 구성요소이며 가부장-국가의 중심 기표다. - P164

이에 더하여 유교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 대통령은 ‘주군‘
이나 ‘임금‘ 같은 봉건 군주의 표상으로 재현되고 또 실제로 그와 유사한 존재로 여겨진다. 흥미롭게도 이런 표상은 권위주의시대(1960-1980년대)와 김영삼·김대중 양 김의 보스정치 시대를지나며 오히려 더 강화된 면이 있다. - P166

원래 죽음 뒤의 뒤늦은 상실감과 고인에 대한 재발견은 모든 애도 과정의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타자의 죽음에 대한 나-주체‘의 대응으로서, 대개 인륜성과 ’선‘이 작용한다. - P170

노무현의 죽음은 그와 그 가족이 뇌물과 비리에 연루되어서가아니라 ‘정치보복‘에 의한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또한 그죽음은 노무현이 정권의 실패와 부패 혐의라는 불명예를 다 씻어버리고 그들의 마음에 완연히, 그리고 강하게, 친근하고 선하며 더 없이 훌륭한 ‘노짱‘과 ‘국민 대통령‘의 자리에 다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폐족‘이었던 ‘친노‘는 정치적으로 부활하고 다시 뭉쳐 재기했다. 여기서 그들의 죄책감과 원한감정 (복수심)이 매개가 되었다. 장례 기간 동안 그 집합적 정동은 이미 응결되었다. - P173

윤리적 자살은 인간-동물의 자기보존의 원리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성찰‘ 정도로 표상되는 상징계의 차원도 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초-상징계적 행위와 결부된 진리는 언어적 성찰이나 법에 의한 단죄보다 강하다. 그래서 자살은 상징계에 남을 수밖에 없는 산 자들에게 언제나 큰 충격을 야기한다.
자살한 이가 생전에 어떤 윤리적 존재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자살행동은 (결과적으로) 그에 관련된 유력한 증거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자살‘들이 갖는 힘이자 진리성이다. - P176

죽음으로 인해 노무현은 비극 영웅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그러나 일부의 과도한 죄의식과 일방적인 긍정적 평가에 보통의 사람들은 공감하기 쉽지 않다. ‘친노‘ 정치세력은 노무현(의죽음)에 대한 죄의식, 이명박·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분노·증오따위의 감정을 노무현 우상화를 통해 역(逆)승화하려 하거나, 현실정치에서의 ‘세력‘으로 운용해왔다. - P187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적폐 청산‘과 검찰 등의 권력기관 개혁을 제1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일면 그것은 촛불항쟁의 명령을 이행하는 듯했으나 진정한 사회개혁과 연결되지 못했다. 칼끝은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 몇몇으로만향했을 뿐이었다. 일련의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한계가 많으며 ‘적폐‘ 세력과 결정적인 차이가 없는지를 반복해서보여주었다. - P190

약속했던 개혁의 실패와 함께 오히려 다시 스스로 증오의 정치와 진영 논리(감정)의 악순환의 굴로 들어갔다.
이 감정의 ‘악무한(惡無限)‘은 한편으론 극렬 지지자들을방패로 삼고, 다른 한편으론 ‘민주 대 반민주‘라든가 ‘친일 대 극일‘이라는 포장에 기댄다. 착각과 달리 진영정치는 ‘진보‘나 ‘보수의 이념에 제대로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장으로 한감정정치이며 비뚤어진 도덕정치다. 그것은 다른 진영에 속한자들과 그들의 당파가 가진 합리성과 공동체에 대한 진정성을인식 자체에서 배제하려 한다. (중략) 이 악무한은 진보적 제3지대나 중도, 그리고 ‘정책정당‘의 여지도 없애왔다. 양당 정치의 비루함과 악무한에 지친 사람은 너무나 많으나 대안은 아직 왜소하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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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는 읽고 싶은 책들이 별로 눈에 안 띄었는데 이번 주 몇 권의 책들이 눈에 띄었다.

여성에 관한 책. 아랍의 역사, 사회와 정치에 관한 책이다.


1) 더 파이브


더 파이브는 잭 리퍼라는 살인자에 의해 희생된 다섯 명의 여성들의 삶과 죽음을 그려낸 책이다.

왜 살인자에게 주목하고 희생자들에겐 주목하지 않는가. 그들이 여성이어서인가? 

여성을 다섯 명이나 죽여놓고도 시대의 아이콘이 된 잭 리퍼와는 반대로 그녀들은 죽었지만 자극적인 기사들 속에 소비되고 삶은 묻혔다.

영국 역사 저술가이자 방송인인 저자는 19세기 런던 화이트채플 살인 사건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졌던 사회적 맥락과 차별의 문제를 파헤친다.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희생양이 된 그녀들.

저자는 그녀들의 삶을 복기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자료를 검토했다고 한다.

이제라도 그녀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책을 통해 천천히 곱씹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2) 아랍


개정판이 나왔다. 나는 구판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구판을 읽어도 되나 해서 확인해봤는데

어차피 책값도 얼마 차이가 안나고 해서 이번에 나온 책을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랍의 역사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너무 문외한이라 이야깃거리가 없다보니 정말 알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어서 올해는 아랍과 중동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오스만에서 아랍 혁명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여러 전문가들이 아랍의 역사에 대한 입문서로 추천하는 책이라고 해서 기대가 된다.


3) 우리 안의 파시즘 2.0


1999년 우리 안의 파시즘 첫 버전이 나오고 이번에 2.0 버전이 나왔다. 두 번째 버전인 셈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건만 파시즘은 더 요란스러워진 것 같다.

내 편이 옳고 상대방은 모두 배척하는 증오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도 서로 제살 깎아먹기에 혈안이 되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넌덜머리가 나지만 지금같이 흘러간다면 더 나빠지기만 할 뿐 답은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 지성인들이 사회 곳곳에 스며든 파시즘의 현실을 여러 개념을 통해 친절하게 전달해준다.

우리는 맛있게 잘 받아먹고 시야를 확장시켜 조만간 있을 대선. 그리고 이후 지방 대선. 5년의 시간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겠다.


4) 변신하는 여자들


부제가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이다.

한국 근대, 그리고 여성, 지식인. 내가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책.

하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리스트에는 모윤숙, 김활란의 이름이 보인다.

이 밖에도 모르는 이름들이 있어 친일인명사전에 찾아보니 최정희, 박인덕이 포함되어 있다.

근대 남성 지식인들 중 친일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많은데 여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이 쓴 글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은 없다.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학도병에 내보내는 연설을 했다거나 그런 내용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이 쓴 글이 때론 변명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2

시사인에서 2019년 20대 남자에 대한 조사를 하고 책이 나온 데 이어

작년 20대 여자에 대한 조사 후 어김없이 책이 나왔다. 

텀블벅으로 진행을 하길래 일반에 풀리기 전 먼저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신청을 해 둔 책이 도착했다.



20대 남성와 여성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요즘이다.

이들의 생각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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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1 21: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잭 리퍼가 아닌 희생자들에 주목한 서사라니 더 파이브 관심갑니다 ~

거리의화가 2022-02-11 22:33   좋아요 4 | URL
미니님 말씀처럼 희생자에 주목한 책이라 저도 관심과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미미 2022-02-11 2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투력 상승중인 20대 여성들의 생각 저도 궁금해요!!

거리의화가 2022-02-11 22:35   좋아요 5 | URL
20대 여성들이 지치지 말고 전투력 계속 상승해주면 좋겠어요^^ 조만간 서점에도 풀릴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안의 파시즘 좋았는데 2번째 버전도 기대되어서 장바구니 넣어두고 이번 달 말에 구입할 예정입니다. (책은 한달에 한번만 사는걸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ㅎㅎ) 변신하는 여자들은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두었는데 아마 3주는 지나야 볼 수 있을 듯....
다른 책들도 다 관심이 가는 책이라 담아갑니다. 좋은 책들은 계속 나오고 제가 못읽더라도 역시 좋은 일이겠죠. ㅠ.ㅠ

거리의화가 2022-02-12 08:01   좋아요 2 | URL
저도 이번달 꾸역꾸역 참고 있습니다. 좋은 책들은 미리 사두면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요. 우리안의 파시즘 좋으셨다니 저도 기대가 되요.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scott 2022-02-12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셀렉트 하신 책들 담아가여😍

거리의화가 2022-02-12 13:45   좋아요 1 | URL
스콧님 어떤 책 담아가셨을지 궁금하네요ㅎㅎ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지면 고민되지만 즐거운 고민이지요^^ 즐거운 주말 되십쇼!
 

이명박 정권 출범 후에도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 되었다.

전 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아 신자유주의 정책을 잇고 법을 강조하며 노사관계의 갈등엔 손을 놓았다.
이는 노동운동을 더욱 위기로 몰고 갔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이며 활동가였던 윤주형 씨는 2013년 1월 28일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택했다. 박근혜 당선 이후 여섯 번째 노동자 죽음이었다.
그는 회사 측의 간교한 탄압 때문에 억울한 해고를 당했고, 다른 해고자들이 복직될 때에도 끝내 복직이 되지 않은 채 생활고에 시달렸다. - P137

윤주형 씨는 단순한 개인주의자나 운동 이탈자가 아니다. 그는 형제들의 단잠과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을 걱정하는 섬세한 존재다. 또한 여전히 탄압과 굴욕에 대해 "우리"의 회복을 생각하는 상처받은 자다. 하지만 그것조차 우선 외롭고 지친 자기 자신의 회복을 통해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가능하리라는 것이었다. - P141

유서 작성자는 "열사의 칭호"를 거부하고 다만 잊히고 싶다고 명시했다. 이는 어떤 관습적인 ‘열사’로서의 호명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타자들의 의미화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열사들이 의식한 방향과 반대의 길을 갔다. 개별자로의 소멸 또는 회귀의 의지로 집합적 주체성과 ‘순교’를 거부한 것이다. - P142

과거에는 노동자-열사의 정치학이 ‘주체의 구성’(또는 ‘계급의 형성’) 과정과 연동 촉진된 작용이었다면, ‘지금-여기’의 노동자들의 죽음은 ‘주체의 해체’ 또는 ‘주체 구성의 불가능성’과 더 깊이 연관된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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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가치도 권력관계의 표현이라는 것에 동감했다.
웬디 브라운이 말했던 구절이 떠올랐는데 서구 정치는 남성 권력의 지배 체제 안에서 굴러온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이거나 변함없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아름다움에 목을 맨다.

과거 여성들이 집안 살림에서 벗어나 사회로 걸어나왔지만 그 대신 얼굴과 몸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나오미 울프의 마지막 말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과 권력과 기회를 누리고 법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는데, 신체적으로는 해방되지 않았던 우리 할머니 세대보다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 P30

"아름다움"은 금본위제 같은 통화 체계다. 모든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다. 문화적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은 그동안 남성이 전용해온 자원을 놓고 싸워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 P34

아름다움의 신화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오늘날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권력구조와 경제, 문화가 여성에게 반격을 가할 필요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보다 숭고한 목적에서 온 것이 아니다. - P35

제약과 금기, 억압적인 법의 처벌, 종교적 명령, 임신과 출산의 노예화가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대신 그것이 해방된 여성의 얼굴과 몸에 그 모든 것을 가했다. - P39

원래 철의 여인은 중세 독일의 고문 도구였다. 인체 형상의 관에 미소 짓는 젊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팔다리와 이목구비가 그려진 것인데, 불운한 희생자를 넣고 천천히 뚜껑을 닫으면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굶어죽거나 그 안에 박힌 쇠못에 찔려 죽었다. 여성을 가두거나 여성 스스로 갇히는 현대의 환각도 똑같이 엄격하고 무자비하며, 완곡하게 채색되어 있다. 오늘날 문화는 철의 여인의 이미지에 관심을 돌리면서 현실에 있는 여성의 얼굴과 몸을 검열한다. - P41

철의 여인이라는 환각과 나란히 또 다른 환각도 일어났다. 못생긴 페미니스트라는 캐리커처가 부활해 여성운동을 졸졸 따라다녔다. 이러한 캐리커처는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19세기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 P42

한 세기 전에는 노라가 인형의 집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고, 한 세대 전에는 여성이 온갖 기기로 가득 찬 소비자 천국인 고립된 가정에 등을 돌렸는데, 오늘날에는 여성이 갇혀 있어도 박차고 나올 문이 없다. 오늘날 맹위를 떨치는 아름다움의 반격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파괴하고 심리적으로 고갈시킨다.
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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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철의 여인. 사진으로 봤는데 넘 끔찍했어요. 마녀 관련 책에서 다양한 도구들을 보면서 저 시대 성직자나 법률가들이 사이코나 변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2-10 11:43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보고 이런 고문도구가 있다는 걸 찾아봤는데요 마녀사냥을 이렇게 잔혹하게 할 수 있구나 싶더군요 고문도구가 최근 들어서까지도 여전히 사용되었잖아요 예전 남영동 대공분실도 그렇고 일제의 잔혹 고문기구들도 동시 떠올랐네요ㅡㅡ

scott 2022-02-11 1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문 도구 라뇨 ㅠ.ㅠ

美의 가치가 이런식의 학대와 차별로 이어졌다니 ㅠ.ㅠ

거리의화가 2022-02-11 12:44   좋아요 3 | URL
철의 여인 도구 사진으로 보니 사람 형상으로 하고 안에는 사방에 못들이ㅜㅜ 그 안에 들어갔을 사람 생각하니 너무 잔혹하고 끔찍하더라구요. 저렇게까지 해서 마녀사냥으로 몰고 가려는 그들의 몰염치함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