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부

홍 대장은 뒤늦게 모든 음모와 흉계를 알았다. 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저놈들 뒤에는 늙은 관리사 이범윤이 노회한 미소를 지으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수백명 바람잡이들이 박문길(朴文吉)의 집 앞에 몰려와서 대문을 발로 박차 부수고 거기 머물던 홍대장을 끌어내어 결박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왕거우의 유사장네 집 튼튼한 곳간으로 거칠게 끌고 가서 가두었다.
그날부터 홍 대장을 심하게 문초하기 시작했다.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패고 쇠꼬챙이로 찌르며 각목으로 주리를 틀었다. 왜적들에게도 안 받던 갖은 고통과 고문을 연해주 동포에게 당하고 말았다. 왜적이라면 차라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겠지만 동족에게 당하는 더러운 유린과 모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홍 대장의 두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찌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 P440

"이 땅에서 왜적을 말끔히 물리치는 날, 그날에 나는 비로소죽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들과 싸우고 또 싸우리라. 없던 힘을 새로 내어 이젠 의병대가 아니라 독립군대의 조직으로 새롭게 출발하리라. 용맹한 군대를 새로 짜서 식민지가 되어버린 신음하는 내 조국으로 진격하리라."
이로써 홍 대장은 독립군 조직과 국내 진출사업 구상에 모든 힘을 쏟았다. 열혈청년들을 불러 모아 조직의 힘도 확충하고 강화시켰다. 독립군 모집대가 사방으로 떠나갔다. - P448

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국정(林國植, 1894~1921),
한상호(韓相浩, 1899~1921), 윤준희(尹俊熙, 1892~1921), 이용맹한 애국청년들의 이름을 길이 기억하자. 그들은 죽기 전크게 한 마디 외쳤다.
"일제 강도 놈들이 우리의 작은 몸이야 죽일 수 있겠지만 조선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강해져만 갈 것이다. 들어라 일본아! 조선은곧 해방된다! 하지만 일본은 마침내 멸망하고야 말리라."
한편 최봉설은 뒤늦게 잡혀갔다가 놀랍게도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이름을 계림으로 바꾸었다. 최계립(崔桂立)은 과연 죽음터에서도 죽지 않는 놀라운 불사조였다. - P484

주린 범의 코앞에 서서 먹잇감 찾아준다는 못된 창귀(張鬼)처럼 밀정이란 것들은 자기를 버린다. 자기뿐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윗대 조상의 족보 따위도 썩은 짚단처럼 걷어차 버린다. 그의 창자는 일찍이 뒤집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환장자‘(換腸者)라고 부른다. 살아서 적의 꼭두각시 노릇이나하니 ‘괴뢰’(傀儡)요, 일제의 더러운 발톱이나 독한 송곳니 되는 일을 자청했기에 ‘조아‘ (UI)라고도 부른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책갈피에 몰래 숨어서 아, 지금도 기회 - P513

를 엿보고 있는 악질 밀때꾼의 무리여. 그들의 호시탐탐이여. - P514

"북로독군부 소속의 전체대원은 일본군 본대가 포위망에 들때까지 그곳에서 결코 자리를 뜨지 말고 철저히 매복하라! 나홍범도가 맨 먼저 권총을 발사하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 사격하라! 어떻게든 독 안에 들어온 왜적을 섬멸시키자!"
홍 장군 전술은 이번에도 『육도삼략』과 『손오병법』을 적절히응용하고 배합시킨 놀라운 활용이었다. 모든 부대가 산 높은곳에만 진을 치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다. 그래서 산 밑에 진을치면 적에게 포위되고 만다. 이때 음양을 두루 갖춘 조운(趙雲)의 진(陳)을 친다. 혹은 음(陰)의 지역 혹은 양(陽)의 지역에다산의 양쪽으로 두루 산병선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양에선 음을 방어하고 음에선 양의 방향을 지킨다. 진이 산의 왼쪽이면오른쪽을 방어하고 오른쪽 진이면 왼쪽을 방어한다. 적이 무리하게 몰려오면 아군이 일면 방어한다. 이때 급히 지름길을 - P534

고 다른 기습 부대는 적의 교통을 차단한다.
대장기를 높이 올리고 전군을 경계하며 왜적이 우리의 정보를 쉽게 알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을 옛 중국의 전법에서는 산성(山城)이라 일컫는다. - P535

그날 밤 홍 장군의 방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호랑이 같은 지휘관이었지만 만상이 잠들어자 앉은 깊은 밤, 장군의 눈은 서러운 물기에 젖었다.
"이 아비는 항일투쟁에 바친 몸. 네가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생활도 해보았으련만…" 교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고 측은한 심정이 치밀어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심장은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듯했다. 급기야 아픈가슴을 쓸어안고 신음하며 엎드리니 온몸의 피란 피가 거꾸로솟는 것 같았다.
"에구 불쌍한 것, 애처로운 것..." - P556

연길 주재 중국군 대장 맹부덕(德)은 곧바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일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론 일본군 요청을 수락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대한국민회와 연락을 가졌다. 대한독립군을 자신의 경계 지역에 주둔시키다가 봉천에서 쫓기면 길림으로, 길림에서 수색이 시작되면 다시 봉천으로 이렇게 왕래하라는 자세한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민족은 달라도 그는 항일투쟁의 대열에서 둘도 없는 동지였다. 맹부덕의 중국 군대는 모든 독립군 부대가 자신의 근거지로 이동하도록 은근히 도왔다. 이로써 북간도 일대의 모든독립군 부대 근거지 대이동은 일사불란하게 단행되었다.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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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 무엇이고 고고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This man is doing history-even though he doesn‘t haveany written letters or other documents. He is discovering theof the people of the village from the things that they leftbehind them. This kind of history is called archaeology. Histo-rians who dig objects out of the ground and learn from themare called archaeologists.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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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부

두만강 너머 하산, 그곳 동포들이 키우는 소는 하루에 세나라를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고 했다. 사냥꾼이 아침에 두만강을 넘어가면 저녁엔 그날 잡은 들새를 들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만큼 세 나라 국경은 바로 지척에 머리 맞대고 있었다. 조선과 중국과 러시아가 바로 한곳에 서서 휘둘러보이는 곳. 동포들은 여기에 터 닦고 농사짓고 사냥했다. - P42

그로부터 한인들의 노령 이주행렬은 늘어만 갔다. 1910년대에만 10만 명, 1920년대엔 20만 명. 이들이 건너가서 황폐한연해주 일대를 모두 개척했다. 신한촌(新韓村) 개척리, 수창 석인동 등지에는 제법 큼직한 한인마을이 생겨났다. 개척리(開拓里)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변두리에 있던 한인마을이다. 수창은 수찬으로 불리던 지금의 파르티잔스크의 한국식 명칭이다. 당시 러시아 지명 카레이스카야 스라보카를 현지 동포들이일컫던 지명이다. 그곳으로 수많은 의병과 망명자들, 새 삶을찾아 떠나온 한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 P43

딱 벌어진 가슴, 다부진 체격, 짙고 숱 많은 눈썹은활처럼 굽었고, 두 눈은 슬픈 코끼리를 닮았다. 턱수염이 점차돋아나고 굳게 꽉 다물린 입, 어느 틈에 소년은 차분하고 사려깊은 청년의 꼴을 갖추고 있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불의엔 냉정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다감한 청년이었다. 오랜 머슴살이의 고달픔은 범동이에게 땀과 슬기와 신의를 가르쳤다. 범동이는 미투리 삼다가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오봉산 위의 저녁놀을 보았다. 노을은 이글이글 불타듯 한순간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더니 곧 가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잠기어 갔다. - P60

"나는 그동안 내 몸의 힘만 믿고 살아왔구나. 맑고 깨끗한 마음, 어질고 부드럽고 살뜰한 마음.… 이런 마음이 나에겐 너무나 부족했구나. 맑은 산골 물아. 너는 내 가슴으로 흘러라. 흐르고 흘러서 마음속 오물과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다오."
범동은 수계를 받고 지담 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스님이 새법명을 지어주었다. 등불 등(燈), 밝을 명(明). 어두운 세상의밝은 등불이 되라는 뜻이다. 새 이름도 지어주었다. 광막한 세상에서 백성들에게 널리 도움을 주는 큰 그릇이란 뜻이 담겼다. 우주의 이치가 낱낱이 들어 있다는 홍범(洪範)의 그림과 구주(九縣)를 생각하다 문득 얻은 이름 홍범도!
‘아! 홍범도!‘ - P85

당시 대다수 포수들은 머리를 삼베로 감아 맨 노랑포수였다.
백두산 밀림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쳐가며 달리는 그들은 한번나가면 몇날 며칠 머리를 못 감았다. 옷자락이 가시덤불에 걸리는 것보다 상투가 나무에 걸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이 때문에 상투는 진작 잘라버리고 대신 삼베노끈으로 망을 떠서 썼는데 그 땀에 절은 노란 빛깔 때문에 노랑포수라 했다. 포수들의 복장을 살펴보자. 미투리에 감발하고 바짓가랑이엔 끈으로행전(行纏)을 묶었다. 함경도식 긴 저고리는 허리띠로 동여매고 어깨에는 화승총을 메었다. 단도는 가죽집에 넣어서 허리에찼다. - P134

아무르강 어느 외진 숲 그 사방에 널브러진 어느 유망민(民) 일가의 백골을 생각한다. 낯선 타관을 정처 없이 떠돌다함박눈 내리던 날, 해저문 숲 계곡 틈에 쓰러진 채 고향 하늘그리며 숨져간 그들의 마지막 웅얼거림을 생각한다.
‘어머니‘라고 불렀을까.
사랑하는 애인의 이름을 불렀을까.
찬바람 맞으며 돌아가는 귀향 길 홍범도는 연추에서 훈춘으로 훈춘에서 밀강(密江)으로 한 바퀴 휘돌아 온성마을이 안개속에 묵묵히 바라다 보이는 국경 어구에서 두만강을 넘었다.
그토록 삼엄하던월강봉금령(越江封禁令)도 풀리어 이제는많은 이주민들이 일본군 국경수비대 분견소(分遣所) 앞을 길게장사진 이루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서 있다. 한 사람이 넘어온 두만강을 그들은 새삼스레 건너가려 하는구나.
범도는 이번에 러시아 땅 곳곳을 다녀와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언제나 겨레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그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 P202

일본군 토벌대는 말로는 폭도를 잡는다며 나섰으나 속으로는 홍범도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혹시라도 접전하게 되면겁을 먹고 먼저 꽁무니 빼기가 일쑤였다. 혜산진 남쪽 30리 고거리 습격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수비대 진영을 기습하니일본군 병사들은 황급히 총을 버리고 숲으로 달아났다. 용맹하다는 제국군대의 꼬락서니는 이렇듯 가관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적들의 보고서는 자신의 허점을 감추기에급급했다.
마을주민들은 원래 성품이 간악하여 폭도를 동정하는 자가 많고, 폭도를 위해 원조적 행위로 나가는 자가 있다. 이런 정황으로 금일에 이르러서는 설유(說) 및 기타 어떤 방어수단도 그 효과가 없고 형세는 날을 따라 나쁘다. - P274

"김원홍! 네 이놈! 네가 수년을 진위대의 참령(參領)으로 나랏돈을 수만 원씩 받아먹다가 나라 망하게 되면 벼슬자리 마땅히 내어놓고 시골로 들어가 감자농사나 지어 먹고 지내는 것이백성의 도리가 아닌가. 저 왜놈들 정미칠조약에 적극 참가해서인민의 반역자를 자청하니 너같은 놈은 열 번을 죽어도 시원치 않다."
홍 대장이 이어서 외친다.
"임재덕! 들어라! 네놈은 이놈보다 훨씬 악독한 도적놈이니내 너와 무슨 긴말을 나누겠는가. 그동안 네놈에게 억울히 당하여 목숨을 잃었던 백성의 이름으로 너희 두 놈을 즉각 사형에 처하노라! 다른 앞잡이 놈들도 내 말 똑똑히 들어라! 너희나내나 다 같은 동포로서 무슨 원한 그리도 많아 저런 천하 역적놈과 공모하여 나를 해치려 했느냐. 저 왜적 높은 남의 강토를제 땅으로 만들자 하니 그럴 수 있다 치자. 너희 놈들은 이 강토의 백성으로 태어나서 어찌 동족을 해치는 독사가 되었는가.
네 아비 네 어미 다 너와 같이 세상에서 아주 씨를 말려야겠다." - P303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구국사업에 기꺼이 온몸을 내던진 겨레의 별들.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잡혀간 부하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홍대장의 범 같은 눈에선 푸른 불꽃이튀었다.
그대들 원수를 내 기어이 갚아주리라. - P335

유인석은 이국 땅 호롱불 밑에서 평소 구상해오던‘의병규칙’(義兵規則)을 드디어 완성했다.
의병은 어떻게 만드는가.
의병은 어떻게 이끌어가는가.
의병은 어떻게 싸우는가.
이 세 가지 방법이 가장 중요한 골격이었다. - P348

현재 그대의 형세를 보건대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다만 몽매함이며,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이제 일을 이루려 - P405

면 한두 사람의 지략이나 용기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여러 사람의 지혜와 용기를 합해서만 가능합니다. 나는 우리의 홍여천이 의도하는 바를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병사를 거느리고 가벼이 나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비록 용감하다고 하나 어찌 옛날의 명장을 따를 수 있으리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병서(兵書)의 상식이라 모든 사람이 늘 외우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병사를 거느리고 여전히가벼이 나아갈 뜻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지피지기가 아닙니다. 그대는 이 점을 깊이 헤아려서 마음에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고 나서 홍 대장은 밤을 꼬박 새우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악조건과 궁지에서 당장 벗어날 방책과 앞으로의투쟁방향을 헤아렸다. - P406

관일약이란 민중의 마음을 관통하여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매우 필요한 약속이란 뜻이다. 구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관일약이었다. 약(約)이란 엽전을 꿰는 일과 같으니 비록 만금(金)이 있다 하여도 그것이 낙엽처럼 흩어져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마음으로관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관일, 한 사람을 얻어서 관일, 열사람을 얻어서 관일, 백천만 명을 얻어서 관일, 한 나라의 모든 - P411

백성이 오직 관일을 실천한다면 국권회복의 길은 뜻밖에도 수월히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유인석은 이 관일약 사상을 알리려고 사방으로 편지를 보내어 공지했다.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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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04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계시군요
저도 사서 읽으려구요
도서관에도 희망도서 신청했어요

거리의화가 2023-09-04 11:00   좋아요 1 | URL
네 분량은 제법 되는데 마치 문학처럼 쑥쑥 읽히는 마법 같은 책이네요. 그레이스님께도 좋은 독서가 되시리란 생각이 듭니다^^
 

나의 이야기는 나의 역사가 된다.

People who read letters, journals, other documents, and monuments to find out what happened in the past are called historians. And the story they write about the past is called history.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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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내를 둘러싼(싸고) 여러 사태를 보고 있다 보면 분노와 짜증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싶어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부릅뜨며 이성을 차린다.


눈이 절로 가는 일들이 있다. 기사를 보더라도 주목하게 되는 기사들이 있는 것처럼. 이는 내가 관심을 거기에 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923년 9월 1일 꼭 100년 전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은 중부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서 국내 여론을 의식하여 구실이 필요했고 이에 일본 내각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으니 경계하라"는 전문을 전국에 보냈다. 이 때 그곳에 발을 붙이고 살던 조선인 구학영은 경찰서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자경단이 경찰서에 난입하는 바람에 그는 죽창에 60여차례 찔린 후 ‘벌 일본 무죄(罰 日本 無罪)’라는 글을 바닥에 쓰고 눈을 감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3109490002450


일본 군경과 자경단은 조선인 6600여명을 무참히 학살했다(그 때 조선인이 잘 하지 못하는 일본어를 발음하게 해서 학살 대상자를 골라냈다는 사실은 이제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사실 저 통계가 믿을만한지는 모르겠다(더 많지 않을까). 심지어 당시 일본 내무성과 조선총독부는 사상자 규모를 축소하였고 현재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전문가들의 의견일 뿐 일본 정부 견해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조선인 폭동을 일으켰다'가 유언비어라는 것이 드러나자 일본 정부는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시신은 불태워지고 강에 버려졌다). 그리고 매년 일본 우익은 학살을 부정하는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올해는 추모비 바로 앞에서 감행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제대로 된 해명 조차 요구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게 만든다.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는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와 민병래 작가가 함께 쓴 책으로 지난 수십 년간 간토대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년 동안의 증언>은 일본의 시인 쓰보이 시게지(1898~1975)의 장시 '15엔 50전'이 최초로 번역돼 실렸다. '15엔 50전'은 일본어로 발음했을 때 '쥬우고엔 고쥬센'으로 읽히는데, 학살 당시 탁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조선인을 분별하는 데 쓰였던 어구였다. 


<1923 관동대학살>은 다큐 시집으로 관동 대학살의 참상을 표현한 시를 모은 것이다. 200여 명 자료와 생존자의 실화와 증언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하였기 때문에 시지만 참상이 드러나 읽는 것이 무척 참담할 것으로 생각된다.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은 하버드대학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2019에 발표한 논문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에서 ‘관동대지진’의 혼란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은 기능부전의 사회가 만들어낸 경찰 민영화의 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이는 정당한 방위 행위였다고 강변했다. 저자는 그의 ‘학살 부정론’을 검증하기 위해 책으로 펴냈다.





토지 10권에도 관동대지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는 현실을 무시해도 되는가에 대해서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비롯해서 관동대지진(책에서는 '관동대진재'로 자주 표현됨)은 다른 권에서도 인물들의 대화 속에 수시로 튀어나오는 걸 보면 이것이 조선인들의 기억 속에 뿌리 박힌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떼죽음을 당했는데 어찌 참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침 8월 1일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간토대학살 관련 전시를 진행 중이다.

https://youtu.be/sIle_nh1eTs?si=XDlvcfWadhuKpimm



'기억해야 한다'라는 말이 '지겹다'라는 말로 변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건을 잊기는 너무나 쉽고 일본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더불어 홍범도 장군 관련해서도 책을 읽어볼 참이다. 집에 평전이 있었는데 그것을 읽을지 올해 한길사에서 새로 나온 책을 읽어볼지 고민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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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9-01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예 보고 싶지도 않게, 외면
하게 만드는 게 그들의 전략
이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평전을 이미 보유 중이시군요.
전 오늘 아침에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1 18:00   좋아요 3 | URL
가면 갈수록 국민을 분노의 시험대로 몰고 가는 것인가 싶습니다.

홍범도 평전은 집에 가서 책 확인하고 새로 구입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은 상호대차로 신청해놓은 상태입니다. 매냐님이 나눠주실 소감이 기대가 되네요. 이렇게 우리는 계속 읽고 공부하며 투지를 불태워야할 것 같습니다^^

미미 2023-09-01 15: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램지어 교수 친일 망언 전문가네요? 분노의 에너지를 모아모아 더 읽고 공부해야겠습니다! ^^

2023-09-01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3-09-01 16: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아야 할 일, 알고 싶은 일들이 참 많네요!
<주전장>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가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미국 내 우익의 자금이나 활동에 상당히 관여한 정황을 이야기해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 조작은 국내외로 꽤나 조직적인 듯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1 18:04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애써 찾지 않으면 가려진 진실을 발견하기 쉽지 않지요. 일본의 정치, 외교, 언론 플레이는 예나 지금이나 혀를 내두를만합니다. 우리는 그에 비해 너무 허술한 것 같고요.
초란공님 덕분에 알라딘 서재 내에 홍범도 장군의 관련 책 읽기에 불이 붙을 것 같습니다. 저도 참여하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려요^^

희선 2023-09-02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토대학살이 100년이 됐군요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니... 지진이 일어난 걸 기회로 조선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그때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그걸 숨기려 했다니... 일본이 숨기려는 건 그것만이 아니겠습니다 기억해야 할 일을 지겹다고 하면 안 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03 07:58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보호를 받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떠나신 만큼 지속적으로 일본에 사과 및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해야하겠습니다. 희선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호시우행 2023-09-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참살,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팩트이자 일본 극우 세력의 조작과 선동정치였음을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요. 조작과 선동정치는 정말 악귀들이나 하는 잣이지요.ㅠㅠ

거리의화가 2023-09-03 08:01   좋아요 0 | URL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그들의 행태 때문이라도 우리의 논리적인 대응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