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 프라이vocal fry'는 탁하고 낮은 음색의 목소리로 문장 끝에서 말소리가 잦아들 때 많이 나타난다. 화자들이 성대를 누르고 공기의 흐름을 줄이게 되면 후두부의 진동이 일어나면서 목소리가 갈라지게 된다. 여성들, 특히 십 대, 이십 대 여성들이 많이 한다는 이 현상은 나이 들고 현명한 남성들만큼 우아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젊은 여성의 무능력을 뜻하는 대중적인 상징이 되었다. 


세계의 많은 언어에서 보컬 프라이는 그저 무작위로 등장하는 이상한 현상이 아니며, 언어의 음운체계 안에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서, 아메리카 선주민 언어 가운데 '날'을 의미하는 '콰콸라'라는 단어는 보컬 프라이를 쓰지 않고는 발음할 수 없다('날'에서 리을을 발음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영어권 화자의 보컬 프라이가 흥미로운 지점은 초기 연구에서 이 특징이 주로 남성들에게서 나타난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 P143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미국인 여성이 보컬 프라이를 쓰는 비중이 높아지고, 남자들에게서는 그렇지 않다는데 주목했다. 여성들은 더 낮은 음역을 썼고, 지배적인 태도와 지루함을 더 많이 드러냈으며, 이 두가지는 중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이었다. 



맥락을 해친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라이크like'는 무척 유용하고 다재다능하다. '라이크'는 여섯 가지 두드러진 기능을 한다. 

영어에서 가장 오래된 유형은 형용사 '라이크(같다)'와 동사 '라이크(좋다하다)'가 있다. 오늘날 이 두 '라이크'는 완전히 똑같이 들리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두 단어가 별개의 역사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동음이의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선 동사 '라이크'가 고대 영어 '리시안lician'에서 왔고, 형용사 '라이크'는 고대 영어 '리치lich'에서 왔다고 한다. 두 가지가 지난 800년간 어떤 지점에서 합류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지게 되었다. 

또 하나는 인용 어법으로서의 '라이크'가 있다. "나는, 그니까, '나 슈퍼우먼 보고 싶어'I was like, 'I want to see Superwoman'"에서 들을 수 있는 용법이다. 

또 다른 '라이크'는 담화 표지로서 "그러니까, 이 정장은 새 것도 아니었어"와 같은 문맥에서 나타난다. '필러filler' 단어로도 불리는 담화 표지는 사람이 자신의 발화를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연결하거나 조직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번 '라이크'는 부사적 용법으로 "이걸 대략 5년 전에 샀어Like, this suit isn't even new"와 같은 문장에서 쓸 수 있다. '라이크'는 일상 대화에서 about의 자리를 대체했다.

마지막 용법은 회화체 보조어로서 '라이크'다. "이 수트가 그니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인 거 같아I think this suit is like my favorite posession"와 같이 쓰인다. 



업토크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십 대 소녀의 말하기의 또 다른 특징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꽤나 실용적이다. 업토크는 호주 방언에서 왔다고 한다. "구다이, 마이트?"라고 잘 알려진 문장이 사실상 질문이 아니라는 걸 잊은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업토크를 자주 쓰며 업토크가 늘 불안정을 표현한다는 착각은 여성들이 '있지, 그니까, 알잖아'를 통해 헤징을 하는 이유에 관한 신화와도 관계가 있다. 언어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이 거의 비슷한 빈도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만, 여성들은 적극적인 '자신감'을 드러내기 위해 이 말을 쓴다는 걸 알아냈다. 



세 가지 유형 중 '라이크'는 대화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고 딱딱한 문장을 탈피하게 해주어서 자주 사용한다. '라이크'의 동사, 형용사 어원이 다르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라이크'만큼 다양한 용법이 또 있을까. '라이크'는 정말 똑똑한 단어다.



사람들은 남성이 그렇게 말하는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저 여성이 말할 때 신경을 긁는 일이 된다. 우리 문화가 보컬 프라이, 업토크, '라이크'에 대해서 드러내는 억하심정은 사실 그 발화 특질과 그리 관련이 없다. 현대에 여성들이 그 특질들을 먼저 사용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 P154


여성과 다른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이 언어를 통해서 힘을 얻는 방식은 연결되어 있다. 주변화된 집단이 언어를 창의적으로 사용하여 스스로를 일으킨 역사는 길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무척 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멋진 새 은어, 발음, 억양에 대해 누구에게 공을 돌릴지 알든 모르든, 세계 나머지 지역도 예외 없이 그들에게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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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13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진도 많이 나가셨네요? 저는 이제 3장 들어갑니다. 워드슬럿 한국 버젼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거리의화가 2023-09-13 15:27   좋아요 1 | URL
읽고 있는 책들이 많아서 조금씩 읽어야 끝내겠더라구요!ㅎㅎㅎ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저는 지난번에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읽을 때도 그 생각했어요. 한국 버전이 넘 부족한 듯합니다. 연구자들이 더 많아져서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보라" -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_이승종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을 전공(나중에 데리다, 하이데거도 연구)하여 주로 서양 철학을 연구하였다. 만약 이 책이 서양 철학을 담고 있었다면 읽으려는 생각을 안했을텐데 이 책은 국내 학자 지식인들과 대화한 기록을 담고 있단다. 국내 철학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고(김진영, 강유원 정도) 그마저도 대부분 서양 철학을 전공하므로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동양 철학 하면 중국의 철학, 이를 후대에 계승한 조선, 일본의 철학자들만 떠오를 뿐이라는 현실이 안타깝고.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호기심과 궁금증이 인다.

무엇보다 70페이지의 문장이 참 좋았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맥락이 닿아 있어서다.



이승종은 이 책에서 ‘우리’를 특별히 강조하는데, 우선은 이 책의 내용이 국내 학자 지식인 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철학계가 그동안 서양 철학 따라 배우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국내 철학 연구자들의 학문적 성취를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에는 소홀했다는 반성적 인식에 있다. - P67

이승종은 철학이 얻고자 하는 진리 혹은 도는 철학적 사유 자체로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의 실천 속에서 길을 닦아 나가는 가운데서만 체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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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 ]
그 시기에는 경서를 읽어 과거 시험을 보는 것이 바른 길이었다. 말하자면 서양식 공부란 사회에서 갈 길 없는 따위의 사람들이나 어쩔 수 없이 서양도깨비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로 여겨져, 곱절의 비웃음과 배척을 당했기 때문이다...
-> 난징으로 가 서양 학문을 배운 이유

강의가 일단락된 뒤에도 시간이 남으면 교수님은 풍경이나 시사에 관한 그림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면서 남은 시간을 때우곤 했다. 당시는 마침 러일전쟁 시기라 자연히 전쟁에 관한 화면이 비교적 많았다. 나는 이런 교실에서 언제나 내 동급생들의 박수와 갈채에 기꺼이 장단을 맞추어야만 했다. 한번은 화면에서 문득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은 묶여서 가운데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좌우에 서 있는데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으나 무감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설에 의하면, 묶여 있는 사람은 러시아를 위해 군사 기밀을 정탐하였기 때문에 바로 일본군이 참수하여 본보기를 보이려고 하는 중이었다. 둘러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본보기의 성대한 행사를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2 학년이 종강하기 전에 나는 도쿄로 나와 버렸다. 왜냐하면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의학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무릇 우매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멀쩡하고 건장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이 될 수밖에 없으며, 병으로 죽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하다고 여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첫 번째 중요한 일은 그들의 정신을 고치는 데 있다. 당시 나는 정신을 고치는 데 있어 최선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리하여 문예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다....
-> 일본에 유학가서 의학을 그만두고 문예 운동을 하게 된 이유

나 자신으로서는 지금 절박한 처지에 몰려 있다고는 하나 결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어쩌면 당시 나 자신의 적막한 비애를 아직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몇 마디 함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또 얼마간은 그런 적막함 속에서 내닫는 용감한 전사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데 거리낌이 없게 해주고자 함일 것이다. 나의 함성이 용맹한 것인지, 혹은 슬픈 것인지, 증오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 어떻든 그런 것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러나 고함인 이상 당연히 지휘관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 처음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 품은 생각. 이로써 최초의 작품 광인일기가 탄생한다.


[ 광인일기 ]
모든 일이란 연구해 보아야만 비로소 명확히 알 수 있다. 옛날에는 늘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니다. 역사책을 펼쳐보니 역사책에는 연대가 없고 비뚤비뚤 페이지마다 온통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는 몇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아 한 밤중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비로소 글자들 사이에서 글자를 찾아냈으니, 책 전체가 온통 ‘식인(食人)‘이라는 두 글자 뿐이었다.
책에 쓰여진 그 수많은 글자들, 소작인이 한 그 많은 이야기들, 그 모두 히죽히죽 웃으며 괴상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본다.
나도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 피해망상증인 화자.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 잡히고 급기야 ‘식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옛날부터 그래 왔다고 해서 옳은 거요?˝
->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습관들 중 분명 악습이 있음에도 여전히 계속됨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라 보임.

자신이 사람을 잡아먹고 싶어 하면서 또 남에게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서, 모두가 지극히 의심이 깊은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살핀다...
그런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안심하고 일을 하고, 길을 걸어다니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을 테니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이는 단지 문지방이요, 문턱일 뿐이다. 그들은 정녕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스승과 원수 관계이며, 또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까지도 모두가 한 패거리가 되어 서로 이끌어주거나 서로 견제하면서, 죽어도 이 한 걸음을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 먹고 먹히는 관계. 자본주의 사회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 국제 관계를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 내일 ]
루진의 ‘함형 주점‘은 한밤 중이 되어도 잠들지 않는 곳 중의 한 집이다. 다른 한 집은 산쓰 아주머니네 집이다. 과부인 산쓰 아주머니에게 하나 뿐인 아들 빠오가 시름시름 앓더니 사망했다. 마지막엔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관을 장만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산쓰는 꿈에서라도 아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꿈이 현실이길 바라는 마음이던가.

많은 나쁜 일들은 물론 요행이 있음으로 해서 좋아지기도 하나, 많은 좋은 일들은 도리어 그것 때문에 그르치기도 한다.


[ 작은 사건 ]
인력거를 불러 가던 길에 한 노파와 부딪혔는데 인력거꾼이 가까운 파출소에 그 노파를 그곳에 데려다줄 때 인력거 위에 있던 이는 감동을 받았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뒷모습이 일순간 몹시 커지더니, 한걸음씩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그것은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우러러보아야만 보일 만큼 커졌다. 또한 그는 내게 점차로 일종의 위압에 가까운 것으로 변하여, 심지어는 내 가죽털옷 속에 숨겨져 있는 ‘작은 것‘을 눌러 짜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의 기력은 이때 거의 응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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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와 아이러니스트 -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_리처드 도티


’우리가 아는 어떤 것도 불변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철학의 출발 지점이 좋았다. ‘자유주의’란 명칭 자체가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신자유주의’란 뜻으로 인식되어버려서 안타까울 때가 있지만(나조차도 회의적이 되었다) 어쨌듯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자유주의는 정의로운 사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아이러니스트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건강한 자유주의 사회는 수용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것이 있다.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 넣어본다.



로티는 창조적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개인을 아이러니스트(ironist)라고 부르고,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의 초점을 두는 사람을 자유주의자(liberal)라고 부른다. 서로 섞이기 어려운 이 두 인간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혹은 왜 조화를 이뤄야만 하는지를 설득해 가는 것이 이 책이다. - P32

로티는 이상적인 자유주의 사회라면 누구나가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스트일 것이라고, 다시 말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liberal ironist)’일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새로운 어휘와 언어를 창안함으로써 자기창조에 몰두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 세계에서 고통과 굴욕이 사라질 날을 희망하며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노력을 할 때 필요한 것이 공감적 상상력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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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오토 예스페르센Otto Jesperen 교수는 『언어language』라는 책을 냈다. 당시 62세였던 예스페르센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언어학자로 구문론, 문장구조, 초기 언어 발달 전공자였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 우리 발화가 인식되는 방식이 어떤 성별과 연결되는지, 젠더 역할이 인식되는 방식에 대해 처음으로 썼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문장을 덜 끝내는 경향이 있다..." 혹은 "여성의 어휘는 남성의 것보다 덜 확장적이다." ...


'걸 토크'에 대한 생각은 문화 전반에 걸친 가정, 즉 여성들이 더 감정적이고,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이 적으며, 립글로스나 카다시안 일가같이 소위 경박한 주제에 자연적으로 끌리기 마련이라는 가정에 의한 것이다. '걸 토크'는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뇌가 비어 있다고 가정한다. - P104


립글로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가 어때서?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성들끼리 대화할 때 연예인, 미용 등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성적이면 뭐 어때서?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이 좋은가? 꼭 거창한 주제만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가? 남성들은 늘 그런 대화만 할까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감성적인 것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 아닐까. 이런 기준 자체가 이성이라는 것이 합리적이고 감정이라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시 한번 느꼈다(고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여성들은 여성만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까? '걸 토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학자는 영국 로햄턴대학교 언어학자인 제니퍼 코츠Jennifer Coates다. 그와 동료들은 여성끼리만, 남성끼리만 이루어진 발화 스타일의 양상을 나이별, 인종별, 문화별, 섹슈얼리티 정체성, 사회경제적 계급별로 분석한 결과 ('젠더어genderlects') 남성의 발화 스타일은 '경쟁적'인데 반해, 여성은 '협력적'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남성들은 수직적 구조로 대화하는 반면 여성들은 보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언어학자 데버라 캐머런은 가십의 목적이 다음과 같다고 말했다. 1)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정보를 순환하기 2) 다른 사람들과 내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유대감을 유지하기 3) 특정 가치 혹은 규범에 대한 집단의 헌신을 공고히 하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여성만이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 P108

여성혐오적인 언사의 목적은 일종의 유대를 만드는 의례인 것이다. 캐머런이 말했던 것처럼 "비밀을 공유하고, 공격적이거나 위반적인 단어를 공유하는 것은 일종의 친밀감을 형성한다. (···) 이 행위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는 너를 신뢰해. 난 이 말을 모두가 듣기를 원하지는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상호호혜적인 반응을 요한다. - P111



1970년대 UC버클리의 로빈 레이코프 교수는 헤지(있지just, 그치you know, 음well, 그래서so, 내 말은I mean, 그런 거 같아I feel like' 등 언어 교환에 쓰는 암묵적인 기술)가 자신감이 없고 주저하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레이코프는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넣는 행위는 여성의 전반적인 위치에 도움을 주지 않으므로 이런 문장으로 끝맺기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이 헤지가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하고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남성들도 여성들만큼이나 헤지를 사용하며 여성들이 이 말을 사용할 때는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너무 민감할 때 등의 많은 상황에서 말을 부드럽고 수월하게 들리게 하여) 신뢰와 공감을 형성하고자 함이다. 



언어학자들이 '최소 반응minimal response'라고 부르는 것도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할 때 '흠, 음, 맞아, 어'와 같이 반응하는 짧은 말들이다. 

그러니까 reaction, 맞장구의 말인데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와중에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제스처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긴 말이 아니기 때문에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는 안심하고 다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대화를 연결해나가는 전략 중 하나는 질문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제니퍼 코츠의 연구가 보여주길, 여성만 있는 공간에서 질문은 새로운 주제, 다른 화자의 관점 확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협력적이고 편리한 기능을 한다. 또한 여성들은 대화의 장이 모든 참여자들에게 동시에 열려 있어 대화가 겹치거나, 누구나 반복적으로 말하거나, 각자의 말을 다시 하는 등 차례를 번갈아 맡는 음악에서의 잼 세션 구조 방식을 이용한다.


코츠는 남성들이 서로에게 질문을 할 때, 그 기능은 정보를 묻고 답을 찾는 것이지만, 여성들에게 질문은 다른 기능을 한다는 걸 발견했다. 여성들은 다른 대화 참여자를 대화의 장에 올려 주고 흐름이 계속되도록 한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대화에서의 이 섬세한 수평성은 누구도 주제에 대해서 독점적인 권한을 갖지 않도록 하고, 이때 질문이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 P118~119

코츠는 남성의 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위계 구조의 유지를 돕는 특징으로 번갈아 하는 독백을 꼽았다. 혹은 한 명이 어떤 끼어들기, 최소한의 반응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혼자서 긴 시간 발화를 독점하는 현상이다. 이는 '전문가 흉내 내기' 혹은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의 지식을 전시하는 방식이다. - P120


모임에 나갔을 때 한 명이 독점적으로 얘기하려고 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대부분 그 사람(남자)은 다른 누군가가 자기 말을 가로채려고 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하며 '왜 자기 말을 가로채냐' 하는 늬앙스를 풍기곤 했다. 나는 '자기가 이 모임의 시간을 전세낸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모임은 여러 사람이 함께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인데 본인이 독점하면 그게 무슨 모임이 되나. 그런 것은 세미나, 학회의 발표로서의 성격이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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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9-12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부분 재밌었어요!!^^

거리의화가 2023-09-13 09:12   좋아요 1 | URL
저도 재밌었어요^^ 근데 중간중간 울화통이!ㅋㅋ

은오 2023-09-12 2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여자들과의 대화가 너무 좋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13 09:13   좋아요 1 | URL
남자들은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거구나 이해했네요. 끼어드는 것 무척 싫어하더라고요!ㅎㅎㅎ

다락방 2023-09-12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여자들이 립글로스 애기하는 동안 지들은 뭐 세계 평화 얘기하고 환경 보호 얘기하나요? 성매매 후기나 나누는 주제들이 ㅋㅋㅋㅋ 어이없네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9-13 09:1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제말이요. 너무 어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기후, 환경 이슈는 여자들이 더 관심 갖고 있지 않나요?ㅎㅎ

은하수 2023-09-1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단원 재밌고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 기뻐서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바로 뒤에 또 재밌는게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
역시 리액션을 너무 잘하는 여자들이죠!~~~ 그러니 대화가 신나죠.

거리의화가 2023-09-13 09:15   좋아요 0 | URL
오! 뒤에 더 재밌는 게 나오는군요^^
모임에서 리액션 없으면 너무 적막감이!ㅋㅋ 정보 전달은 세미나에서 하는 걸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