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은 왜 인류의 고전이 되었나 - <구약 읽기>_크리스틴 헤이스


종교학자인 크리스틴 헤이스가 쓴 <구약 읽기>는 유대 민족 역사서이자 서양 종교 원형이 된 성경의 안내서이다.

성서학자 예헤즈켈 카우프만(1889~1963)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유일신교는 당시 근동 지방의 다신교와 벌인 투쟁의 산물이라 보았다. 헤이스는 이 설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투쟁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벌어졌음을 강조한다. <구약 성서>는 성격이 다른 수많은 자료로 구성돼 있다. 두 가지 판본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전승돼 오던 여러 텍스트를 가져와 편집하여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반영웅의 구약 성서읽기 - <처음 만나는 구약성서>_장 루이 스카


이 책은 20세기 문학사가 에리히 아우어바흐가 대표작 <미메시스>에서 보여준 <구약성서> 해석에 주목한다. 아우어바흐는 <미메시스> 첫 장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9장의 오디세우스 이야기와 <구약 성서> <창세기>의 아브라함-이삭 이야기를 비교한다. 호메로스의 서술이 "구체적인 묘사, 균등한 조명, 중단 없는 연관, 거침없는 표현, 모든 사건의 전경 배치, 의심의 여지 없는 의미의 전시" 따위를 특징으로 한다면, <구약 성서>의 서술은 "어떤 특정한 부분을 강력히 조명하고 다른 것은 어둠 속에 버려 두는 수법, 갑작스러운 당돌함, 표현돼 있지 않은 것의 암시력" 따위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또 다른 차이는 인물의 성격과 문체의 특성에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귀족 계급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숭고한 문체로 묘사하는 데 반해, <구약 성서>의 이야기는 영웅적이지 못한 인물들을 민중적 산문체로 간명하게 서술한다. 


다시 쓰는 세계철학사 - <세계철학사 1>_이정우


저자는 2000년 철학연구공동체인 철학아카데미를 세운 뒤 줄곧 철학사 강의를 해 왔는데, 그 강의록이 이 저작의 바탕이 됐다.

현재 3권까지 나온 이 책은 4권이 시리즈 완간인데 4권 출간 알림을 해둔 상태다. 시리즈 완간이 되었을 때 읽어보고자 생각하고 있는 셈!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철학 전공자이자 전문가가 쓴 책이고 또 국내 저자가 쓴 세계철학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철학사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국내 저작은 없어서 아쉬웠었다. 게다가 서양 철학사에만 국한되 있거나 있다 해도 비중이 극히 약했던 전례를 깨고 인도와 동아시아 철학을 포함한 '아시아 철학'을 시리즈 2권에 담았다. 

첫 권도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에서 시작해 서구 중세 철학으로 이어지는 통상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와 오리엔트 지역을 아우르는 서술 방식을 택해 궁금증을 일으킨다. 


'암흑의 유럽' 깨운 이슬람 스페인 - <스페인의 역사>_브라이언 캐틀러스


이 책은 중세 스페인을 새로운 관점으로 서술한 역사서다. 전통적 중세 스페인사 서술은 '레콩키스타'를 중심에 두어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싸움 끝에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을 몰아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가 함께 공존하며 융합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관점의 서술이다. 두 관점 모두 역사를 온전하게 담아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캐틀러스가 내놓은 관점은 "중세 스페인은 인종과 종교가 다른 공동체들이 편의에 따라 함께 모여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충돌이나 관용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랐다.'이다. 

중세 스페인 역사는 '근대 세계'를 만든 유럽 문명의 문이다. 전통적인 유럽사 서술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가 중세에 재발견되어 근대 유럽을 낳았다'라고 말하지만 어떤 경로로 고대 그리스 로마가 재발견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는데 그 답을 주는 것이 중세 스페인 문화라는 것이다. 전통적 서술의 중세 스페인 역사만 알고 있어서인지 이 관점이 새롭게 느껴진다. 



헤이스는 신이 역사를 통해 인간들에게 도덕적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야말로<구약 성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도덕 명령을 대행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선지자라고 해서 모두 신의 뜻을 대행하는 자들인 건 아니다. <구약 성서》는 유다와 이스 - P199

라엘의 왕들이 예언자들을 고용해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써먹었음을
알려준다. 후대의 성서 편집자들은 궁정 예언자들의 거짓에 맞서 신의뜻을 바르게 전하는 참된 선지자들을 부각했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문제를 신앙의 본질과 연결한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가 인류의 고전으로남은 이유라고 이 책은 말한다. - P200

장 루이 스카는 성서를 일종의 교향곡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음표 하나하나는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지만 그것들이모두 모여 교향곡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빚어내듯이, 성서도 그렇게 전체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있는 것이아니라 전체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헤겔의 말은 《구약 성서》에도 들어맞는다. 텍스트의 한 면을 절대화하는 것이야말로 독서를 위험에 빠뜨린다. 그 위험을 피하려면 전체를 보아야 한다. 스카는 거듭 말한다. "구약 성서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던지는 모든 물음에 완전히 답하는 경우는 없다." 이야기들은 물음을 통해 독자에게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 뿐이다. - P205

이정우는 초국적 기업 중심의 비인간적 세계화를 넘어 보편성을 지닌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 과제를 해결할 비전을 찾아내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역으로 음미한 뒤 현재로 돌아오는 거시적인 지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세계철학사집필은 과거를 경유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 P210

왜 중세 스페인 역사가 오늘날 관심의 대상이 되는가? 한마디로 줄여, 중세 스페인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근대 세계‘를 만든럽 문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유럽사 서술은 ‘중세 후기에 고대 그리스·로마가 재발견됐고 그 재발견이 르네상스를 이끌었 - P236

으며 근대 유럽을 낳았다‘고 뭉뚱그렸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고대 그리스-로마가 재발견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물음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알 안달루스‘ 곧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의 지식문화다. 이 스페인 이슬람 문화가 옛 영광을 잃어버리고 ‘암흑‘ 속에 잠자던 중세 유럽을 흔들어 깨웠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억해 둘 것은 중세 스페인의 이슬람 문화가 더 보편적인 아랍 · 페르시아 이슬람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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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7~11장의 내용은 공감이 잘 안 가서인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7장의 '욕'은 뜬금이 없었다. 갑자기 왜 욕이 등장할까? 나는 욕을 혼자 내뱉는 것은 상관없지만 대화를 할 때 써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욕을 쓰면 일단 대화의 격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불평이나 분노를 해야 할 상황에 꼭 욕만이 답은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욕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굳이 그런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자신의 힘을 이상하게 과시하는 등의 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고 막 뱉어내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8~9장: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


목소리의 특질 중에서 음정은 독특한 성격을 띤다. 음량, 톤, 심지어 개인의 모국어와도 달리, 유일하게 생리학에 의해서 좌우된다. 평균적으로 남성의 성대는 여성 성대보다 조금 더 길다. 언어학자들은 낮은 음정이 더 큰 몸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낮은 음정은 지배나 역량과 관련 있었다. - P257


2015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셰릴 샌드버그는 "여성으로서 말하는 일의 이중 억압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은 간단하다고 적었다. 여성 상사를 더 많이 뽑는 것이다. - P268

여성이 이끌고 남성이 따라가는 일이 정상화될수록, 여성이 '새된' 소리나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고 말할 일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여성과 종속적인 태도가 자동적으로 연합될 일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젠더가 어떻게 들려야 하고 권력이 어떻게 들려야 하느니에 대해서 서로 잘못 연결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 P269


어릴 적 나는 목소리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합창단의 구성으로 따지면 '알토'와 '메조 소프라노'에 어중간하게 걸린 낮은 음성이었는데 누가 내 목소리를 들을 때 남자 목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오해를 많이 받았었다. 맑고 높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갖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걸걸하고 낮고 탁한 목소리를 가졌을 뿐이라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 낮아졌다. 

공적인 자리에서 목소리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서 임팩트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굳이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성이 누구나 인정하는 리더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주는 목소리에만 집중할까? 결국 그 사람의 능력과 내용이 주는 것이 큰 것이 아닐까.  

 


10장


기쁨을 위한 섹스에 대한 담론, 즐거움을 생식과 분리하는 담론, 여성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며 성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하며 발기한 페니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기존의 권력 구조에 도전하고 이에 직면할 수 있다. 상호적인 탐색, 소통, 발견, 서로를 기쁘게 해 주는 새로운 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삽입은 다가 아니라, 에로틱한 기쁨을 찾는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이다. - P317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성애 중심의 성과 섹스의 용어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힘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겠다. 결국 이를 위한 해결 방법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 구조에 의한 폭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성애가 다가 아니라는 기본 전제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11장: 여성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까?


"저는 늘 '여성의 인식을 표현한다'는 언어에 담긴 생각에 회의적입니다. 그게 어떤 인식이고, 어떤 여성에게 속하게 되는 걸까요?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인식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집단적 자매애를 느끼는 건 좋지만, 여성의 경험은 복잡한 스펙트럼을 구성하고, '자매애'는 하나만 의미하지 않는다. - P330


"언어는 페미니즘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지가 있을 때 (1970년대처럼) 더욱 페미니즘적인 방향으로 갔어요." 캐머런은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침묵을 거부하고, 페미니즘을 확산하도록 싸우는 것이겠지요."


인용문처럼 나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과연 될까 싶은 생각도 있지만 현재의 페미니즘이 더 진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라야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목소리로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 P275

게이 남성들이 여성처럼 말한다는 문화적 스테레오 타입은 모든 여성이 업토크를 한다거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에 사람들에 대한 가십을 즐긴다는 것만큼이나 취약하다. - P283

화자의 이데올로기를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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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9-18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도 나오는군요?
며칠 전 만두 님 서재에서도 얼핏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어에 영혼이 깃든다고 어떻게 말을 쓰느냐에 따라 권력의 우선권을 가진다는 건 참 뭐라 형용할 수가 없네요.

거리의화가 2023-09-19 09:07   좋아요 1 | URL
네. 제가 평소 욕과 친하지 않기도 하고 저자가 가진 욕에 대한 생각이 저와 맞지 않음을 느꼈어요.
저도 언어가 가진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위에 따라서 그 힘이 부여되는 만큼 더 잘 사용해야겠죠.

희선 2023-09-19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목소리보다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목소리로 사기 치는 사람이 있기도 하네요 그런 데 속으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이 속을지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19 09:0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희선님 생각과 비슷해요! 목소리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로 사기치기!ㅋㅋ 그러네요. 번지르르한 목소리에 속아넘어가면 안되겠지요. 역시 내용이 중요^^
 

[ 단오절 ]
중국어에 ‘그게 그것(差不多)’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이 말을 쓰는 경우는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정도의 말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 팡쉬엔춰는 이 말을 요즘 입버릇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그가 이 말을 사용할 때가 대부분 이 말과는 관련 없거나 적당하지 않은 상황인 경우가 많다. 곤란하거나 불평이나 분노해야 할 상황을 애매하게 넘어가기 위해서 이 말을 쓰는 것이다.

팡쉬엔춰는 교원의 월급이 반 년 밀려 다른 교원들과 동맹휴업을 결행한다. 수업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교원이 돈을 요구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하다는 말로 위안한다. 아내가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도 반찬 투정은 하면서도 돈을 받아내는 것은 왜 어려워하는건가?

내가 만약 wife 입장이라면 같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은데 말이다.

자신이사회악과 싸울 용기가 없기 때문에 양심을 저버리고 고의로 도피할 길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이건 혹시 ‘시비(是非)를 가리는마음이 없는 것‘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고치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도리어그의 머릿속에서만 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 ‘그게 그것‘을 최초로 공표한 것은 베이징의 서우산학교(北京首善學校)의 강당에서였다. 그때 아마 역사상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별로 다르지 않다古今相遠는 것을 말하고,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일지라도 "성격은 비슷하다"고 말하는 데까지 이르더니, 끝내는 학생과 관료의 신상에까지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일대 열변을 토한 것이다.
"현재 사회에서의 유행이 관료를 욕하는 것인데 학생들이 더욱심하게 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료라고 결코 타고난 특별한종족이 아니라 바로 평민이 변해서 된 것입니다. 지금 학생 출신의 관료도 적지 않은데, 그들이 나이 든 관료와 무슨 다른 점이있습니까? ‘자리를 바꾸면 다 그런 것(易地則皆然] 이니, 사상, 언론,행동, 풍채에 무슨 커다란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 단체가 새로 하고 있는 많은 사업도 폐해를 면치못하거니와, 대부분은 연기나 불같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않았습니까? 그게 그것입니다. 중국의 장래 걱정거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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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중세 말, 대부분의 중부 및 서유럽에서 그러했듯 독일에서도 쫓겨나기에 이른다. 그런 그들에게 폴란드는 마치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고, 이에 따라 폴란드는 이후 유럽 유대인 정착의 중심지가 되었다. 1939년 폴란드 전체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유대인이었으며, 대다수는 유대교 전통 복장과 관습을 지켜오고 있었다.

스기하라는 폴란드 장교들의 도움에 힘입어 리투아니아에 있던 수천 명의 유대인이 무사히 탈출길에 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먼저 기차를 타고 드넓은 소련 땅을 오랜 기간 가로지른 뒤 배를 통해 일본에 들어갔고, 거기서 다시 팔레스타인이나 미국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이 일련의 과정은 바로 수십 년 동안 조용히, 하지만 굳건하게 이뤄진 폴란드-일본 정보 협력의 결과물이었다.

1940년과 1941년, 바르샤바 게토를 비롯한 여러 게토는 이내 급조된 형태의 노동수용소이자 유대인들을 가둬두는 장소가 되었다. 독일은 이곳에 흔히 전쟁 전 지역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 중 일부로 구성된 유대인 위원회 혹은 평의회를 구성했다. 독일은 유대인 경찰도 만들었는데,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게토의 질서 유지, 유대인들의 탈출 방지, 독일의 탄압 정책 수행 등이었다.

동방 총독부 여러 지역에서 이뤄진 AB 악치온(‘특별 평정 조치‘)은 그 살해 흔적들에서 볼 수 있듯 범위나 방식에 있어 제각각이었다. 크라쿠프에 있던 수감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간단한 평결문을 읽었다. 물론 거기에 이들을 무슨 형벌에 처한다 따위의 내용은 있지 않았다. 평결문에 적힌 죄목은 반역죄 곧 사형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모순적이게도 전원이 도망치다 사살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독일이 1941년 6월 22일의 기습 공격을 통해 소련을 침공해 들어오자, 폴란드와 소련의 관계는 어제의 적에서 오늘의 동맹으로 변했다. 그들은 이제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꽤나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이었다. 앞선 2년 동안 소련은 50만에 달하는 폴란드인을 탄압한 자들이었다.

"동유럽 종합 계획"이라는 제목하에, 동부 식민지에 관한 일련의 기획안 초안이 작성됐다. 첫 기획안은 1940년 1월, 두 번째는 7월, 세 번째는 1941년 말, 그리고 네 번째는 1942년 5월에 완성되었다. 기획안들의 한결같은 부분은 바로 독일인들이 점령 지역 사람들을 강제추방, 살해, 동화하거나 혹은 노예로 삼는 것,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새로 개척한 변경 지역에 질서와 번영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굶주림 계획에 따르면, 독일군은 모든 집단농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곳곳의 수확을 감시하며, 단 한 톨의 식량도 빼돌려지거나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독일 국방군은 나치 친위대 및 각 지역의 협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집단농장을 관리하고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과거 소련이 했던 수준의 효율성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 독일인들은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곳의 작황 및 농작물을 빼돌릴 만한 장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또한 그들은 공포감을 조성할 수는 있었으나, 공포와 함께 신념을 불러일으켰던 공산당과 같은 존재가 없었다는 점에서 소련만큼 체계적이지 못했다. 도시 지역을 시골 지역으로부터 봉쇄할 만한 인적 자원 역시 없었다.

원칙상 수용소들은 세 종류, 즉 굴라크(임시 수용소), 스탈라크(사병 및 부사관 대상의 기본 수용소), 소규모의 오플라크(장교 대상)로 나뉘었다. 하지만 세 종류의 수용소 모두 실제로는 대부분 가시철조망에 둘러싸인 벌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폴란드 동부에 일종의 유대인 보호구역을 마련한다는 ‘루블린 계획’은 동방 총독부가 독일 본토와 너무 가깝고 복잡한 관계로 1939년 11월에 포기되었다. 그 다음으로 소련과의 합의를 통해 유대인들을 소련 땅으로 보내려 했던 ’대소련 합의 계획‘은 스탈린이 유대인을 받아들이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안았기에 1940년 2월 폐기되었다. 그다음 유대인들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것을 골자로 한 마다가스카르 계획 역시 처음에는 폴란드가, 뒤이어 영국이 독일과 협력하기는커녕 싸우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1940년 8월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자신들이 소련을 무너뜨리는 데도 실패함에 따라, 굴복한 소련 땅을 유대인 문제 해결의 장으로 활용하려던 ’대소련 강제 이주 계획‘마저 1941년 11월에 포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소련 침공은 독일에게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한 반면, 유대인 문제는 확실히 악화시켰다.

심리적 나치화는 너무나 명백했던 소련의 잔혹 행위들이 없었다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집단학살은 소비에트가 갓 들어와 그들의 시스템을 최근까지 안착시켰던 곳, 지난 몇 달동안 소련의 강압적 기관들이 체포와 처형 및 강제이주를 집행했던 지역에서 벌어졌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소비에트와 나치의 공동 작품, 즉 소비에트 텍스트의 나치 버전이었다.

‘태풍 작전’은 최종 승리를 일궈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됐든 독일은 독일인 유대인들을 동쪽으로 추방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이는 일종의 연쇄반응을 불러왔다. 좁은 게토에 유대인 수용 공간을 더 마련해야 했던 상황은 특정 대량 학살 방법(리가, 독일이 점령한 라트비아)을 공식화했고, 또한 또 다른 방법(우치, 독일 치하의 폴란드)이 고안되는 것을 촉진시켰다.

일본이 움직이던 때는 독일이 모스크바에서 꽁무니를 빼던 바로 그 시점이었기에 진주만 공격은 독일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을 의미했다. 영국을 위협하는 동시에 자력으로 미국에 맞설 준비에 들어갈 대륙 제국으로서의 독일은 커녕, 하나같이 약한 동맹국들(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혹은 결정적이랄 수 있는 동유럽 전선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맹국들(일본, 불가리아)을 이끌고 소련, 영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유일한 유럽 국가가 된 것이었다.

전쟁의 주도권이 스탈린에게로 넘어가자 히틀러는 목표를 다시 써내려가기에 이른다. 소련을 파괴하겠다던 계획은 이제 유대인을 없앤다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소련 파괴가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유대인의 완전한 말살이 곧 전시 정책이 되었다.

유럽의 유대인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히틀러의 결정은 유대인과 빨치산 사이의 관련성을 과장하여 일종의 추상적인 관념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곧 유대인들은 독일의 적을 지원하는 자들로서, 우선적으로 몰살해야 할 대상이었다.

1942년 중반부터 그 이후 독일의 주요 작전은 이른바 "거대 작전"이라 불린 것으로, 그것은 실제로 벨라루스 유대인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민간인들까지 학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독일인들은 빨치산을 물리칠 수 없게 되자, 빨치산들의 전투를 지원할지도 모를 민간인을 살해했다.

히틀러의 총통부는 바르테란트 내 폴란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스 실험 뒤, 독일 국민을 학살하기 위한 비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 프로그램은 의사, 간호사,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핵심 기획자는 히틀러의 주치의였다. 희생자들은 표면상 의료적 실험 및 치료라는 미명하에 시설로 오게 되는데, 실제로는 가스통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로 질식하게 될 "샤워장"으로 인도된다. 금니를 한 희생자들은 미리 등 뒤에 분필로 표식을 해두었는데, 이는 그들이 죽은 뒤 금니를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첫 희생양이었고, 부모들에게는 이들이 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적은 가짜 소견서가 전달되었다. 이 "안락사" 프로그램의 희생자 대다수는 비유대 독일인이었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있던 독일 유대인들은 아무런 검사조차 없이 곧바로 살해당하기 일쑤였다.

독일 경제는 유대인들을 아무런 안전망 없이 자기 위를 맨발로, 또 눈가리개를 한 채 걷게 만들었던 날선 곡예줄과 같았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과 그들의 죽음 사이에 있었던 것이자, 피비린내 나는 기만의 체제였으며, 종국에는 그들의 소멸을 가져왔던 것임에 틀림없다.

선발은 서류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아주 중대한 사회적 분열을 만들어냈고, 사적인 안전 확보에 대한 집착을 일반화시켰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만은 제대로 된 일이나 관련 증명서를 확보한 채 게토 안에 남겨질 거라 믿곤 했다. 이 같은 희망의 개별화, 그리고 사사화는 그들 집단에게 사형 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남은 힘은 저항을 조직하기보다는 노동 관련 서류 뭉치를 뺏고 빼앗는 데 쓰였다. 그 누구도 독일인과 유대 경찰들이 게토 내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비틀어 보려 하지 않았다. 독일은 소수의 인력만으로도 이를 관리 감독하는 데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았다.

바르샤바 봉기 기간 중 1944년 8월에서 9월에만 폴란드인 비전투원 약 15만 명이 독일인들 손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비슷한 숫자의 바르샤바 비유대 폴란드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게토 내부 처형지에서, 혹은 전투 과정에서 독일인들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목숨을 빼앗긴 유대인들의 숫자는 절대 수에서 이미 높았고, 사망률은 훨씬 더 높았다. 바르샤바 유대인의 사망률은 90퍼센트 이상으로, 약 30퍼센트인 비유대인의 사망률을 한참 넘어서는 수치였다.

베를린의 진군 도중, 붉은 군대는 제3제국의 동부 영토, 다시 말해서 폴란드 영토가 될 예정이던 땅에서 소름 끼치도록 단순한 행동을 반복했다. 소련군 병사들은 독일 여성을 강간하고, 남성은 (그리고 일부 여성도) 강제 노동을 시켰다. 그런 행동은 병사들이 독일 영토로 남게될 땅에, 그리고 마침내 베를린에 닿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945년 초에서 1947년 말까지 이뤄진 피란과 추방 과정에서, 본래 독일 땅이었다가 폴란드에 병합된 땅에서 약 40만 명의 독일인이 숨졌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소련과 폴란드의 수용소에서 죽었고, 그 다음으로는 군대에 당했거나 바다에 수장되었다.

본래는 ‘동방 작전’으로 불렸던 비스와 작전은 전적으로 폴란드군이 수행했으며, 폴란드 주둔 소련군의 도움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기획에는 소련 인사가 적잖이 관여되어 있었고, 따라서 모스크바와 연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근 소련 영토에서의 다수의 소련 작전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중 가장 연관성이 높았던 소련 작전은 ‘서부 작전’으로 소련령 우크라이나의 폴란드 접경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비스와 작전이 끝날 무렵, 소련은 우크라이나인들을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도록 했다.

1948년 5월에 실시된 ‘춘계 작전’에서 리투아니아계 주민이 강제이주되었다. 이듬해 3월에, ‘프리보이 작전’으로 리투아니아계 주민이 추가로 이주되고, 라트비아계, 에스토니아계도 이주되었다. 모두 따져보면, 1941년에서 1949년 사이 스탈린은 20만 명가량의 인구를 발트 삼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전쟁 중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이 전쟁이 유대인 해방전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적인 합의를 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소련, 미국, 영국의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고통은 기껏해야 독일 점령의 사악함의 한 측면으로 여겨져야지, 그 자체로 주목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스탈린주의적 반유대주의는 스탈린이 죽은 한참 뒤에도 동유럽을 떠돌았다. 그것이 중요한 통치 수단이 되는 일은 드물었으나, 언제나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면 불거지곤 했다. 반유대주의는 각국의 지도자가 전시 고난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게 해주고(오직 슬라브족들만 고통받았다는 식으로), 스탈린주의의 역사 역시 그렇게 할 수 있게 했다(왜곡을 거쳐 유대인들이 공산주의를 훼방 놓은 식으로). 새로운 종류의 반유대주의를 세상에 선보이면서, 스탈린은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축소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적인 집단 기억이 1970년과 1980년대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독일과 서유럽 유대인들의 경험에 중점을 두었고, 희생자 가운데 소규모 집단들, 아우슈비츠(학살된 유대인 중 6명에 1명 정도와 관련 있던)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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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9-17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2년 전, 이 책 리뷰 대회 덕분에 쟁쟁한 분들의 글들로 간접 접했었네요. 거리의 화가님 몰입 독서 중이시네요.
이렇게 역사책, 특히 유럽어가 많이 등장하는 외서는 번역가님이 무척 고생하셨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하게 되네요.
˝리가˝와 ˝우치˝는 고유 명사인걸까요?^^ 와...어려워요

거리의화가 2023-09-17 15:20   좋아요 1 | URL
ㅎㅎ 맞습니다. 저는 뒷북으로 읽게 되었네요^^; 이미 올라온 리뷰들이 훌륭하기 때문에 저는 읽는데 의의를 두었어요.
사실 인물이나 지명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많습니다. 다 신경쓰면 머리 공간이 터져서 곤란하니까요ㅎㅎㅎ 이 중 핵심 키워드만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보 봅니다. 이런 책은 정말 번역이 중요한 듯 싶어요.
 



Shamshi-Adad, King of the Whole World


메소포타미아 북부에는 또 다른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자 Shamshi-Adad가 있었다. 그는 티그리스 강 근처의 Asssur라고 하는 도시에 살았다. Assur의 왕이 된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신(바람과 태풍)이 모셔진 거대한 사원을 지었다. 그는 온 세계의 왕이 될 것이라 소리쳤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정복을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두 아들로 하여금 자신 곁을 따르게 했다. Assyrian army는 얼마 있지 않아 메소포타미아 근방의 모든 도시를 다 정복하게 된다. 그는 독재자였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죽였으며 말을 듣지 않는 리더들은 자르곤 화형대에 그들을 던져버렸다. 마을은 불타고 군대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shamshi-Adad와 Assyrian army의 소문을 들은 주변국들은 싸우지 않고 항복하게 되었다. 그의 제국인 Assyria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영역을 모두 아우르게 되었다. 그는 죽을 때 한 아들에게는 제국 통치 완수 사업을 맡기고 다른 아들에게는 Assyria에서 가장 큰 도시인 Mari를 맡기며 두 아들이 협력하여 제국을 강성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형제들은 서로 다투었고 이 때 Hammurabi가 Mari를 무너뜨렸다. Hammurabi는 다행히 Assyria의 지도자와 주민들의 자치를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Assyrians들은 언젠가는 자신들은 자유로워질 것이며 또 한 번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꿈을 간직했다.



The Story of Gilgamesh


옛날 Gilgamesh라는 왕이 Uruk라는 도시를 다스렸다. 그는 지구상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젊고 건강했으며 돈도 권력도 모두 가졌다. 그러나 그는 잔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들의 백성을 밤낮으로 부리며 돈과 먹을 것을 착취했고 아이들은 노예로 삼는 등 자기만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Uruk 사람들은 Gilgamesh을 없애고 싶어 하늘의 신인 Anu를 불러내 도와달라 외쳤다. Anu는 살펴보더니 그를 주무를 적인 Enkidu라는 괴물(반인반수, 12마리의 사자의 힘을 가졌음)을 보내 Gilgamesh와 싸우도록 명했다. Gilgamesh는 도끼가 문에 보이는 꿈을 꿨는데 그의 어머니가 꿈을 해석하더니 한 남자가 널 죽이려고 오고 있다. 너는 그를 친구로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죽는다!” 그러나 정작 Enkidu는 오다가 사냥꾼의 아들을 만나 그의 집에서 한동안 지내게 되었다. Enkidu는 그 곳에서 말하는 법과 먹는 법, 옷 입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Enkidu가 친구들과 Uruk에 들어가서 결혼 피로연을 보게 되었다. Gilgamesh(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문득 자신이 신랑이 되고 싶어했고 신부 될 이를 훔쳐내 도망쳤다. Enkidu는 분노하여 “이 여자를 데려가려면 날 죽여야 한다.”하고 외쳤다. Gilgamesh는 Enkidu를 들어 올려 땅에 내리꽂으며 서로 피튀기게 싸움을 이어갔다. 싸움의 승자는 Gilgamesh였다. Gilgamesh는 이기기는 했지만 자신이 이전에 보지도 못한 힘을 가진 Enkidu에게 반했는지 친구를 청하고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도망쳐나온 신이 지상에 내려와 Gilgamesh 왕국을 지나가다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이고 만다. 그가 숨쉴 때마다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Gilgamesh와 Enkidu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Enkidu는 신을 죽이고 나라를 구해냈다. 그러나 신들은 Enkidu에게 앙심을 품고 재앙을 내려 12일 간 고통에 신음하다 죽는다. Gilgamesh는 친구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영원한 삶의 비밀을 찾고 죽음을 정복할 길을 찾으러 떠난다. 그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죽지 않는다는 Utnapishtim 집으로 찾아가 영원한 삶의 비밀을 묻고 6일 낮과 7일 밤을 깨어 있을 수 있다면 불멸할 수 있다는 답을 얻는다. Gilgamesh는 잠을 잤다가 7일 후 깨어나는 바람에 다른 방법을 묻고 바다 바닥 밑까지 수영하여 마법의 식물을 찾아내서 가져와 먹으면 다시 젊어질 것이라는 답을 얻는다. 우여곡절 끝에 식물을 얻은 Gilgamesh는 집에 가서 식물을 먹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Gilgamesh가 잠을 자는 동안 뱀이 다가와 식물을 찾아내 먹고 나이가 어려진다. 그는 Uruk로 갔고 원래대로 늙어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구전에 구전을 거듭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다고.


  • chasm

It was so powerful that whenever it breathed, huge holes and chasms opened up i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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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9-16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길가메시가 왕이었군요? 역사지식이 부족하여 이제사 알게 되네요.ㅋㅋ
근데 잔인한 왕이었네요.
그 시절엔 온화했다는 왕 이야기가 별로 없네요. 서로 전쟁을 치뤄 땅과 목숨을 지켜나가는 세상이라 그랬을까요?
근데 뱀이 어려지는 식물을 먹어버렸다면?
새끼뱀이 된 것인가? 상상해 봅니다. 이 와중에 몹쓸 상상!ㅋㅋㅋ

건수하 2023-09-16 10:26   좋아요 2 | URL
그래서 허물을 벗게 되었다 라고 나오더군요 ^^

거리의화가 2023-09-16 21:29   좋아요 1 | URL
공교롭게도 작년에 가부장제 창조 읽으면서 길가메시 이야기가 나오길래 관련 영상을 찾아본 게 있어서인지 이후 이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읽으니 훨씬 이야기가 익숙하네요^^ 뱀이 어려지는 식물을 먹어버린 결과는 수하님이 친절히 설명해주셨네요!ㅋㅋㅋ

독서괭 2023-09-16 1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7,8장 들었습니다. 따라잡긔!!ㅋㅋ

거리의화가 2023-09-16 21:29   좋아요 1 | URL
앗! 두 장 동시에 들으셨군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