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두려움과 분노에 대한 고찰

행위와 행위자 구분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延壽는 관리 노릇 할 때에를 숭상하고 옛날의 교화를 좋아하였으며, 낮은 관리들을 접대할 때에 은혜를 베풀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약속을분명히 하였다. 혹 자신을 속이거나 배신하는 자가 있으면 延壽는 통렬히자책하면서 말하기를 "아마도 내가 그를 저버렸는가보다.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니, 이 말을 들은 관리들이 스스로 서글퍼하고 후회하여 스스로 칼로 찌르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기까지 하였다. 東郡에 부임한 지 3년에 명령이 행해지고 금하는 것이 그쳐지며 옥사를 결단하는 것이크게 줄어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들어와 左馮翊이 되었다. -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제1편

보르지킨은 ‘회색빛 눈‘이라는 뜻을 지녔다. 사실 이수게이 바하두르에게서 태어난 자식들과 오늘날까지 태어나는 그 일족의 자식들의 대부분은 회색빛 눈에황색 피부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알란 코아가 회임할 때 "사람의 모습을 한 빛이 밤에 내 눈 앞에 나타났다가 가버리는데, 그의 피부는황색이고 눈은 회색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소급된다. 그녀의 8대손인 이수게이 바하두르에게서 그 같은 징표가 다시 나타나자, 그들은 자기 자 - P78

식들이 군주의 징표를 지녔다고 한 알란 코아의 말이 바로 이것이라고했고,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말이 옳다는 증거이며 그런 일이 조만간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 P79

둘째 아들은 주치카사르(Jochi Qasar)였다. 주치는 이름이고, ‘카사르는 맹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 거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의 어깨와 가슴이 어찌나 넓고 허리는 얼마나 잘록했는지, 옆으로 누워서 잘 때는 한 마리의 개가 그의 허리 밑으로 빠져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힘은 얼마나 센지 사람 하나를 두 손으로 잡아서 그 허리를 마치 나무로 만든 화살처럼 부러뜨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 자기 형인 칭기스 칸과 연합했으며, 한마음이었다. 비록 옹 칸과 전투할 때 그와 떨어지기도 했고,
여러 차례 그가 잘못을 범했다는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칭기스 칸은 나이만의 군주 타양 칸과 벌인 커다란 전투에서 카사르에게중군을 지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그 전투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런 까닭으로 칭기스칸은 그에게 은사를 내렸다. (칭기스칸은 여러 형제들과 조카들 중에서도 특히 그와 그의 자식들에게 형제와 왕자의 지위에 걸맞는 직책과 자리를 정해 주었다. 그래서 칭기스칸의 일족에 속하는 모든 숙부와 사촌들 가운데 오로지 주치 카사르의 일족만이 왕자들의 반열에 앉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로 되어 있다. - P84

옷치 노안은 몽골인들 중에서도 건물 짓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가는 곳마다 궁전(sari)과 전각(koshek)과 정원을 건설했다. 칭기스칸은 다른 형제들보다 특히 그를 더 아껴서 그 형들보다더 높은 자리에 앉혔고, 지금도 그의 자식들은 다른 두 형제의 자식들보다 더 높은 곳에 앉는다. 칭기스칸이 자식들에게 군대를 분배할 때 그에게 5천 명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 2천 명은 킬키누트 종족에 속하는 오로나르 종족에서 충원되었고, 1천 명은 베스트 종족에게서, 그리고 2천 명은 여러 종족들에게서 소집되었다. 그에게는 자식들이 많았지만 후계자는 타가차르 노안이었고, 그가 울루스와 많은 군대를 관할했다. 세대가흐르면서 이 5천 명은 더 많은 수의 중요한 군대가 되었다. 그가 있는 지방과 목지는 동북방으로 몽골리아의 가장 변두리에 있어 그 너머에는어떠한 몽골 종족도 살지 않았다. 그는 쿠빌라이 카안 휘하에서 항상 쿠릴타이에 참석하여 중대한 국사를 [60] 논의함으로써 매우 존경을 받았고 중요한 인물이었다. 아릭 부케와 쿠빌라이 카안이 대립할 때 쿠빌라이 카안은 그를 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보냈고, 그는 아릭 부케의 군대를 격파했다. 그 뒤 그는 쿠빌라이 카안의 칙령에 따라 항상 원정에 나섰고, 훌륭한 삶을 살다가 천수를 다했다. - P91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치른 전투의 대부분은 타타르 종족과 벌인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투르크 종족들 가운데 가장 유명했고, 다른 종족에 비해 더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카불 칸 부인의 형제였던 사인테킨이 사망하고 그의 일족이 타타르의 무당 차라칼을 살해한 사건이있은 뒤부터 카불 칸의 자식들과 타타르 종족 사이에 끊임없이 분란이 일어나 항상 서로 전투를 벌이며 싸웠다. 마침내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그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패배시켰다. 그 뒤 칭기스칸이 그 종족전체와 일부 다른 종족들을 자신의 예속민과 포로로 삼았다. 이는 오늘날 투르크 종족들 전부가 칭기스칸 일족의 속민이자 군대가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P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장

자신이 느끼는 과도한 증오나 두려움에 대해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 온당한 사회라면 사회 제도를 설계해 집단적 증오를 최소화할 방법에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일반 교실에 편입시키는 간단한 정책만으로도 두려움과 공격성의 형태는 눈에띄게 변화한다. 다른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증오와 혐오를 유발하는 정책 대신 희망, 사랑, 협력을 장려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증오를 숨긴 채 행동 양식만 바꾸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 아동의 일반 교실 편입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느끼는 관점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중국과 호탄에서 얼마나 많은 나무 뿌리를 캐냈는가!
너 같은 미흐르기야(mihr-giya)>를 후라산으로 가져오기 위하여!
이 같은 전제에 따라, 믿을 만한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알란코아는 과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집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천막 틈새 (rawzan)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와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놀라 두려워진 그녀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얼마 뒤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산할 때가 가까워지자 남편의 형제와 친족들이 모여 말하기를, "남편도 없는 부인이 어떻게은밀히 남자를 구해서 임신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알란 코아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없는 내가 아이를 가졌으니 당신들의 상상도 확실히 무리는 아니고 의심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러나 분명코 ‘어떤 의심들은 죄악이로다. 내가 어떻게 창피를 당해야 마땅할그런 부정한 행동을 했겠는가? - P23

툼비나 칸은 칭기스칸의 4대조이며, 그것을 몽골어로는 ‘부다투‘
(Budata)"라고 부른다. 아홉 명의 총명하고 용감한 아들을 두었는데, 그각각에서 이름난 종족과 지파가 생겨 나왔다. 그래서 오늘날 그 종족민의 숫자는 2~3만 호이고, 남녀의 숫자를 헤아리면 10만 명에 이를 것이다. - P48

카불 칸은 칭기스칸의 증조부이며, 몽골인들은 증조부를 ‘엘린칙‘
(elinchik)이라고 부른다. 그에게서 수많은 부족과 지파가 생겨나 갈라졌으며, 그의 자식과 손자들을 ‘키야트‘ (Qiyat)라고 부른다. - P53

바하두르와 쿠툴라카안)이 도착하여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카단바하두르가 암말을 타고 그들을 쫓기 시작하여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거꾸러뜨리고 그의 말을 끌고 왔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들이 바야트 코룰라스 종족 출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종족인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부인들도 달려와 병사들과 맞서고,
양치기들도 머뭇거리지 않고 전투에 뛰어든다." 그는 사람들이 집합한뒤에 군대를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을 추격하여 달려온 한 부인에
"이 사람들은 어떤 종족인가?" 하고 물어보자, "우리는 우글라트(Uglat) 종족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놀라면서 "우글라트가 도대체어떤 종족이길래!"라고 말했다. - P59

"[이제] 우리가 취해야 할 방책은 이러하다. 우리의 말에게 그들의 신선한 목초를 먹이러내보내고,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고기를 먹이러 내보내자.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이곳으로 와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너희들은 재산과가족을 걱정하여 주저하고 망설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알다시피나의 아버지 함바카이 카안은 너희들을 나에게 맡기고 다스리도록 했다. 따라서 내가 말을 타고 적을 향해 달려갈 때 너희들은 뒤에 떨어지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 카단 타이시에게 얼마나 큰 화를 입히겠는가. 그것은 타이치우트 모든 종족에게미칠 화이기도 한다." - P65

카불 칸의 여섯 아들 가운데 쿠툴라 카안이 군주가 되어 얼마 동안 칸의 지위에 있었다. 비록 그의 형제들이 모두 용사들이었으나 힘과 용맹함에서 그가 그들보다 더 뛰어났다. 몽골의 시인들은 그를 칭송하는 시를 많이 지어, 그의 용기와 대담함을 묘사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그의 고함은 7개의 산을 넘어서 들릴 정도였고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와 비슷했다고 한다. 그의 손은 마치 곰의 손과도 같아서, 아무리 크고 힘센 사람이라도 그가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마치 나무로 만든 화살처럼 힘들이지도 않고 허리를 두 동강내곤 했다.
또한 겨울 밤에는 나무를 불에다 올려 놓고 그 옆에서 맨몸으로 잠이 들 - P67

곤 했는데, 활활 타는 불에서 불똥이 튀어 그의 몸에 떨어져 살을 태워도,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면 벼룩이 깨문 것정도로 생각하고, 살을 긁적거리고는 다시 잠에 빠져 들곤 했다. 그는 식사 때마다 세 살짜리 큰 양 한 마리와 큰 가죽 포대에 든 쿠미즈를 먹었지만, 여전히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다. - P68

쿠툴라 카안은 귀환하는 도중에 홀로 사냥(qúshlâmishi)을 하며 돌아왔는데, 두르벤 종족이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그 기회를 이용해 군대를 동원하여 그를 길에서 공격했다. 그의 병사와 누케르들은 흩어졌고,
그는 도망쳐서 거대한 진창이 있는 어떤 지점까지 왔다. 그가 그곳으로말을 달리자 말은 진창에 빠져버렸다. 그는 한 발을 안장 위에 올리고진창 옆으로 펄쩍 뛰었다. 그를 따르던 적들이 다가와 진창 건너편에 이르러서는 소리쳐 말하기를, "몽골 사람이 말에서 떨어져 무엇을 하겠단말이냐? 걱정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에 개의치않고 그들에게 몇 발의 화살을 쏘아 쫓아 버렸다. 그는 다시 진창 옆으로와서 말의 갈기를 잡고는 어렵지 않게 (말을) 진창에서 끌어내어 바닥에던졌다. 그리고는 말에 올라타 달려갔다. 적들은 진창 건너편에 머물러있었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