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어김없이 한 해를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기록을 해보려 한다. 총 141권의 책을 읽었더라(낱권으로 계산, 원서 제외). 펼쳐 보면 다양하게 읽었다는 생각을 했으나 좋았던 책을 꼽아보니 역시나 분야가 치우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올해는 무엇보다 굵직한 시리즈 두 개를 끝냈다는 기쁨이 있었다. <토지>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돌아보니 왜 굳이 두 시리즈를 한꺼번에 도전하려 했는지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꾸준히 읽어서 완독을 해냈다. 



<토지>는 역시 대작이며 명작임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토지는 서사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캐릭터의 힘이 좋았다. 또한 문장도 훌륭하다고 느꼈다. 물론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한계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생생한 캐릭터에 근사한 문장으로 채워넣은 역사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 덕분에 문화와 탈식민주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오리엔탈리즘>과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문화의 해석> 등 사회학, 인류학과 관련된 책을 읽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내게 애증으로 기억될 만한 소설이다. 솔직히 프루스트와 나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기가 막힌 묘사 능력과 아름다운 문장은 인정하지만 19세기의 배경을 전반적으로 다뤘다기에는 무리가 있다 느껴졌고 저자의 왜곡된 시선이라던지 인종/성 차별적 행동은 소설이라 해도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네"라고 답하겠다. 초독은 했으나 사실 소설의 내용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세월이 더 지나서 재독을 해보는 것으로.



<한자의 풍경>은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이었고 2023년 통틀어도 이 책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책이었다. 한자의 기원을 이렇게나 명료하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책이 몇이나 될까. 무엇이든 기원이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 지점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 말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삽화나 자료들로 설명의 이해를 돕기 때문에 술술 잘 읽힌다. 한자를 알고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 



<오리엔탈리즘>은 보관함에 몇 년이고 묵혀두었던 책인데 이제 읽어야 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여 읽었다. 이 책을 통해서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이란 것이 얼마나 이미지화되고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의 요새>에서 언급된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에서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근대화-근대성 담론의 원형은 ‘서구 중심의 근대성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근대 한국은 이 서구 근대성 담론과 오리엔탈리즘이 겹쳐지면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을 이해하는데도 오리엔탈리즘의 이해는 필수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였으나 남북 관계의 경색으로 '역시나... 또는 지금껏 해온 노력이 무슨 소용이야?'하는 말이 나올 법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느낀다. 이럴 때 <한국전쟁의 기원>과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가 차례로 발맞춰 나와주어 독자로서 참으로 감사했다. 

북한의 태도가 왜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은 내부적 시선에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밝히는데 1차적으로는 해방 후 5년 간 일어난 사건들에서, 2차적으로는 남한에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구조가 뿌리내린 것이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2권은 외부에서 한반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을 알아본다. 그 중 2-1, 2-2권은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 이후 미국을 둘러싼 세계와 미국의 외교적 변화를 살펴본다. 다만 미국과 북한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그 부분은 세밀한 반면 중국, 특히 소련에 대한 검토는 상대적으로 많이 약한데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이 앞선 책을 보충할 만한 균형 잡힌 책이다. 게다가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는 한국전쟁의 기원 뿐 아니라 전개 과정 대부분을 다루었다. 

기존에 나와 있던 박태균의 <한국전쟁>,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권에 더해서 읽는다면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베트남 전쟁>과 <조용한 미국인>을 읽었다. <조용한 미국인>은 엄밀히 말하면 베트남 전쟁이 아니라 그 전조를 엿보게 하는 책으로 정확히는 디엔비엔푸를 중심으로 벌어진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배경이다. 파울러와 파일, 후엉이라는 중심 인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된 국내외적 배경과 전개, 그 영향을 살펴본 역사서다. 대중 역사서로서 알기 쉽게 설명해놓아 입문자들도 부담없이 읽을 만한 책이다.




문화, 예술 쪽으로 읽었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와 <살롱 드 경성>은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업적과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었다.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가 북촌과 서촌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했던 한국인과 일본인 작가들과 그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라면 <살롱 드 경성>은 예술가를 둘러싼 관계에 주목하여 기술한 책이라는 게 눈에 띈다. 관계에 집중한 만큼 작가의 삶과 주변인들의 삶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관전 포인트를 가지고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책이다. 




작년 말 정리 페이퍼를 쓰면서 올해 계획으로 세웠던 것이 있다. 중국사와 동남아시아사에 대한 이해다. 중국사는 고대사부터 원나라의 역사까지 읽었고 몽골사를 읽다 보니 유목제국사의 역사까지 자연스레 훓을 수 있었다. 시간상 동남아시아의 역사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얼마 전 현대 아시아의 역사를 다룬 책을 읽었고 며칠 전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빌려왔으니 이제부터 조금씩 읽어볼 요량이다. 


하버드 중국사는 각 시기를 주제별로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시간의 흐름에서만 나열하는 역사가 아니라 자연환경, 지리,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문화, 사회 등 파트별로 나누어 시기별로 특징을 담아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한나라 때 '친족의 재정의'라는 주제가 있다. 유력 가문이 자신들의 가문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 및 문학 활동을 추구했고 이런 활동이 새로운 관료 선발 방법에 녹아들며 국가의 중앙 집단을 재구성했다. 이들은 가족 묘지를 만들고 한식 때마다 차례를 지내고 족보도 작성하면서 친족 집단을 재구성했다는 사실이다. 원명 시기는 자연환경의 영향에 따라 '아홉 번의 늪'이라는 주제가 있었다. 제목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늪만큼 이 시기에 힘겨웠던 자연 재해가 계속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이야기로는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시리즈를 읽었다. 이제 시리즈 완독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중국사 마무리할 때쯤이면 완독할 수 있겠지. 특히나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협지를 읽고 싶어진다. 




당, 송의 역사서를 읽으면서 여름 무렵 읽었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이 정말 좋았다. 이백, 두보, 소동파, 유종원 등의 한시를 만나면서 직접 가서 한시를 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한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여행지를 떠올려보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화산을 비롯한 오악과 소주, 항주는 보는 것만으로 눈을 즐겁게 했다. 화산은 오악 중에서 서악으로 유명한데 오악은 수도를 중심으로 오방을 따져서 명명한 것이다. 소주, 항주는 중국인이 손에 꼽는 절경지이로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소주, 항주는 꼭 한번 가고 싶은데 코로나 이후 중국에 가기가 쉽지 않아졌고(비자 발급 필수) 옆지기도 중국은 이제 가기 싫다고 해서 아쉽게 되었다.


르네 그루쎄의 <유목 제국사>는 유목 제국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기 좋은 기본서이다. 1990년대의 내용으로 사료상 한계는 있어도 방대한 유목 제국의 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하고 있다. 비단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 뿐 아니라 서아시아, 러시아 이남에서 흥기했다 소멸한 유목 제국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흉노 유목제국사>와 <돌궐 유목제국사>는 유목제국사에서 그 시작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의 역사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이 있었던 국가들의 역사다. <돌궐 유목제국사>는 돌궐인 아사나 집단이 형성되고 소멸되기까지의 전 과정이 들어 있다. 돌궐은 이전 유목민들과 달리 6세기 후반 소그드인의 문자를 차용하고 680년 이후에는 고유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였다. 돌궐의 문자는 이후 위구르, 키르기스 등에서도 10세기까지 사용되었고 이후 거란, 서하, 여진, 몽골, 만주 등도 독자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내용의 구성과 책의 분량, 시간상의 제약으로 몽골 중심으로 전개된 부분만 다루어져 서돌궐의 범위까지는 담아내지 못했는데 한 권이 더 나왔더라도 해당 범위를 다루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흉노 유목제국사>는 저자가 쓴 고대 유목제국에 대한 연구서 중 앞선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책이다. 흉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는 앞서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이 가운데서 기존에 '제국'의 개념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서 '유목제국' 흉노의 사적 전개 과정을 정리하고, 그 성격을 재검토하였다. 두 권 모두 한문 텍스트의 기록만 참고하지 않아 좋았다.



몽골의 역사는 정사로 평가 받는 <집사>와 이를 보충하는 <몽골비사>를 기본 책으로 삼는 것이 좋다. 정사임에도 <집사>를 읽을 때 신비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칭기스칸의 가계를 설명하고 이를 신화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건조한 서술이 이어지고 전투사에 치중하지는 않는다. 잭 웨더포드의 책 두 권도 도움이 되었다. 먼저,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몽골비사>, <집사> 등을 참고해 20세기까지의 몽골의 역사를 담아낸 책이다. 거기에 몽골인들의 전투력에 대한 오해에 대한 내용부터 몽골이 펼친 정책이 아시아와 유럽에 미친 영향도 확인할 수 있다. 

<칭기스칸, 신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는 몽골 제국의 역사를 전투로만 설명하려 하지 않고 종교에 의한 합치로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와 거란에 얽힌 전쟁사이지만 전쟁의 한 축이었던 거란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입문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학교에서 배울 때도 그렇고 일반인들에게는 서희의 담판 외교와 강감찬의 귀주 대첩이라는 사건에만 치중해서 역사를 단편적으로 바라보기 쉬운데 이 책은 강조, 양규, 김숙흥, 조원, 김종현 등 많은 장수들이 거란군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분투했음을 탄탄한 스토리와 장면 묘사로 소개하면서 전쟁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에 확장해서 관련 역사를 보고 싶다면 거란의 정사인 <국역 요사>와 중국의 역사서인 <자치통감>, <속자치통감>, 온라인에서 <고려사>, <고려사절요>, <중국정사외국전> 중 '송사' 등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시아 1945-1990>는 현대 아시아의 역사를 잘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아시아는 같은 기간 평화적인 냉전이었던 다른 지역에 비해 열전을 넘어선 혈전이 끊임없이 이어진 곳으로 저자는 그 역사를 시기별로 3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아시아는 제국주의와의 민족해방, 이념, 인종과 종교의 갈등으로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역이다. 양쪽으로 나뉘어진 한반도도 그렇고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진 전쟁도 그렇지 않나. 개인적으로 오늘날의 아시아를 읽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많은 독자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추가)


내년에는 집에 묵혀둔 책들을 읽을 예정이다. 아래는 시리즈!


- 문명 이야기 시리즈(by 윌듀런트)

-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 고문진보 전집/후집

- 한국산문선 전집

- 클라이브 폰팅 세계사


그밖에 야금야금 사둔 낱권의 책들도 읽어야겠지만 많아서 중간 중간 끼워넣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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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28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하십니다!!

거리의화가 2023-12-28 16: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23-12-2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12-28 16: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굵직굵직한 책 많이 읽으신! 보람찬 한해였군요.
그런데 제가 전부터 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화가 님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역사책에 흥미가 생기셨나요?!

건수하 2023-12-28 16:51   좋아요 1 | URL
오 저도 궁금했습니다!

잠자냥 2023-12-28 16:57   좋아요 2 | URL
초롱초롱 🥹

거리의화가 2023-12-28 16:59   좋아요 4 | URL
음... 어릴 때부터 좋아하기는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20대 후반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물어보길래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게 ‘역사‘였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먹고 사느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이후에 한국사검정시험 등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차츰 시작해나갔던 것 같습니다^^ 막상 공부해보니 정말 재밌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점점...ㅎㅎㅎ

페넬로페 2023-12-28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는~~
제가 전부터 궁금한 것은요,
거리의화가 님의 시간은 하루 36시간 인가요?

거리의화가 2023-12-29 11:10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럴리가요. 36시간이면 더 좋긴 하겠지만! 전에도 댓글로 비슷한 늬앙스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저는 취미가 전시 보러 가거나 음악회 가는 것, 여행 가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는데 보냅니다^^ 남편과 노는 시간 빼고요!ㅎㅎㅎ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은하수 2023-12-2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감탄사 절로 납니다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시니 넘 멋져 보입니다.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거리의화가 2023-12-29 11:11   좋아요 0 | URL
저는 목표를 세워야 더 동력을 갖고 나아가는 유형이라서요^^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3-12-29 0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알차게 독서생활을 즐기셨네요. 멋집니다.

거리의화가 2023-12-29 11: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3-12-29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두 개, 정말 대단하고 축하드려요.
내년에 시작할(?) 시리즈도 있겠지요?
<고려거란전쟁>은 괜히 더 반갑고요!!

거리의화가 2023-12-29 11:13   좋아요 0 | URL
시리즈 두 개, 지금 생각해보니 과도한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ㅠㅠ 그러고 보니 내년 계획을 적지를 못했네요. 추신 달면서 글을 수정해보겠습니다.
<고려거란전쟁>은 자목련님 덕분에 읽게 되었고 덕분에 관련 책들도 읽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자목련님 잘 부탁드립니다^^

다락방 2023-12-29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토지 하나만 완독했어도 보람찬 한해였을텐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저 일전에 은행 가서 직원과 이야기 나누는데 그 직원이 자기 불문과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다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자기는 아직도 못읽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하하. 그런데 거리의화가 님이 해내셨습니다. 만세!!

자, 내년에도 성실히, 열심히 가봅시다.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성실하게 쌓아온 것만이 결과를 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화이팅!!

거리의화가 2023-12-29 11:14   좋아요 0 | URL
불문과!ㅋㅋ 잃시찾은 시리즈 몇 권 읽다 포기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중간에 위기가 몇 차례 있었거든요ㅠㅠ

다락방님만큼 성실한 분이 서재에 없을 것 같아요. 늘 에너지를 서재에 불어넣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살자고요. 화이팅!

은오 2023-12-29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ㅁㅊ너무멋있어요ㅠ

거리의화가 2023-12-29 17:33   좋아요 1 | URL
격한 애정의 표현 감사합니다^^ 은오님 만나서 더욱 즐거웠던 2023년이었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희선 2023-12-30 0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할 거 읽을 거 먼저 생각하고 해 나가시는군요 2023년엔 시리즈를 두 가지나 읽으시다니 대단합니다 2024년에도 읽으려는 책 즐겁게 만나고 공부도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2-31 07:13   좋아요 0 | URL
계획을 세우면 저는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더라고요. 즉흥적으로 하기에는 제가 불안한 게 커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님 한해동안 감사했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파랑 2023-12-30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141권도 놀라운데 읽은 책 목록들이 완전 고급져 보입니다~!!!

역시 꾸준한 화가님~!! 대박!

거리의화가 2023-12-31 07:14   좋아요 1 | URL
ㅎㅎ 새파랑님 언제나 응원의 글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좀 덜 바빠서 서재에 자주 얼굴 비춰주시면 좋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독서괭 2023-12-31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 독서기록 엄청나네요!!^^ 그중 토지를 함께했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으쓱~ㅎㅎ
시엄니 책장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보고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화가님 서재에서 봤던 모양입니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거리의화가 2024-01-01 10:06   좋아요 2 | URL
괭님 토지 읽기 마구 자랑하셔도 됩니다! 결코 쉬운 일 아니잖아요ㅎㅎ
시어머니 책장에 <오리엔탈리즘>이? 멋지시네요!^^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건강하시고 하는 일 모두 잘 이루어지시길!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4-01-06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지> 완독하고 그 사실을 20연간 자랑하고 사는데 말이지요ㅎㅎㅎㅎ 거리의화가님은 올 한 해에(작년이군욬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우아!! 정말 너무 멋지십니다.
역사 관련해 찾아볼 거 있으면 거리의화가님 서재에서 찾아보면 되겠어요. 올 한 해도 거리의화가님의 멋진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서재에서 자주 뵈어요^^

거리의화가 2024-01-07 06:5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자랑할 만한 책입니다^^ ‘잃시찾‘은 초독을 하긴 했는데 덜 읽은 느낌이라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재독해보려고 합니다.
올해는 읽는 것도 하지만 쓰는 것을 좀 더 해보려고요. 단발머리님도 올 한해 즐독하시고 그 소감들 널리 알려주세요^^ 응원합니다!

그레이스 2024-01-06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사서 꽂아 놨습니다.
이런거 좋아하는 남편이 흐믓해했어요^^

요즘 ‘토지‘ 리커버해서 다시 출펀하더라구요.
저도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투표에 한 표 던젔는데, 제가 선택한 표지로 나오네요.
보는 눈은 다 비슷한듯요.
토지는 두 질이나 있는데, 또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 불치병!

거리의화가 2024-01-07 06:53   좋아요 0 | URL
남편분이 좋아하신다니 저도 좋네요^^

네. 저는 구 버전을 갖고 있는데 구입한지 불과 2~3년 밖에 안 되어서 다시 사기에는 그렇더라구요. 그레이스님이 선택한 표지가 당첨되었다니 멋집니다.

얄라알라 2024-01-26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4-01-27 20:56   좋아요 0 | URL
알라님 감사합니다^^
 

호메이니와 추종자들은 그들의 혁명을 더 넓은 이슬람 세계로 확산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인접한 이라크와 그 시아파 다수 국민(국민의 약 3분의 2)이 테헤란의명부 최상위에 올라가 있었다.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의 선봉에 섰던 반면 사담 후세인은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 혁명의 리더십 도전자였다. - P724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치러진 전쟁으로 곤혹스러워진 유일한 행위자가 아니었다. 시리아의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는 작은 인접국에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고, 다마스쿠스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레바논의 혼란이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슬그머니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76년 레바논에 개입했다. 하지만 몇 년간 전투가 벌어졌으나, 이 목표 중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했다. 시리아의 개입은 국가의 재정을 상당히 고갈시켰다. 게다가 폭력과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피난민들이 계속 시리아로 유입되었고, 이는 시리아의 침체한 경제를 더욱힘들게 했다. 아사드는 또 레바논에서 노선을 완전히 바꿔 보수적인마론파와의 곤혹스러운 동맹을 그만두고 무슬림 및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의 관계를 미봉책으로나마 개선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라파트는 완강한 독자 세력으로 남았고, 다마스쿠스의 의지를 따르지 않으려 했다. 개입으로 인한 긴장 때문에 시리아에서는 국내 분규도 더욱 격화했다. - P746

1985년 1월에 케이시는 뉴욕의 정책들에게 워싱턴은 "공산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자유의 전사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에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의회와 국민에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니카라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에서 소련이 지원하는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 - P776

을 각오하는 사람들과의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몇달 뒤 보수적 칼럼니스트인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이 정책을 ‘레이건독트린‘이라고 불렀다. - P777

"테러리스트" 절멸이라는 샤론의 논리로부터 사브라와 샤틸라의학살에 대한 팔랑헤당 당원들의 정당화로 나아가는 데는 거대한 인식적 비약이 필요 없었다. 한 민병대원은 학살을 목격한 어느 이스라엘 방위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신한 여성들은 테러리스트를 낳을것이고, 아이들은 자라면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오." 미국 정부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베이루트에서 소개하는 하비브 계획의 일부로 피난민보호를 보장했고,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베이루트에 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브라와 샤틸라의 전쟁범죄는 예견되었지만 막지 못했다. - P785

1982년 9월 말 미 해병 1200명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평화유지군, 그리고 소규모의 영국 평화유지군 분견대와함께, ‘다국적군‘에 참가했다.
서류상으로 다국적군은 엄격하게 중립적이었으나 현장의 현실은좀 더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시르 제마엘이 암살되고 그의 형아민 피에르 제마엘이 대통령직에 올랐다. 바시르처럼 아민은 팔랑헤 소수파를 대표했고, 레바논 정치에서 중립적 인물로 여겨질 수없었다. 레이건 행정부 내의 최고 관리들이 이해하지 못한 듯한 이러한 현실은 미 해병들과 다국적군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레바논 정부를 지원하는 책무를 진 다국적군은 레바논 내전으로 끌려들어갔다. - P788

적어도 이란과의 전쟁은 사담 후세인에게 이라크 국가에대한 통제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확신시켰다. 반란의 잠재적인 원천은 분쇄되어야 한다. 사담 후세인의 최우선 의제는 북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었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이란, 시리아, 튀르키예의 변경 지대에 흩어져 있는 고대 주민들이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이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제국 이후의 지도를 그렸을 때, 쿠르드족은 국가 없는 민족 중 하나가 되었다. 그 후로 쿠르드족의 민족적 야망과 종족 정치는 바그다드, 테헤란, 다마스쿠스, 앙카라의 중앙정부들에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1961~1970년,
1974~1975년, 1983~1985년 세 차례에 걸쳐 바트당 정권을 상대로반란을 일으켰다. 이란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은 이라크 변경 지대에서 취약한 지점으로 드러났다. 이란과의 교전이 끝나자, 사담 후세인은 전투로 단련된 병사들에게 새로운 임무를부여할 기회가 왔음을 알았다. 이라크군은 쿠르드족에 맞서 야만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그 결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만 명의 사람이 살해당할 것이었다. - P833

12월에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에게 늦어도 향후 12개월 안에 모든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이 과정은 국민 화합 및 연립정부의 구성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라고 언급했다. 고르바초프는 크렘린이 안정되고 중립적인 아프가니스탄을 보기를 원할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레이건에게 모스크바는아프가니스탄 영토에 기지를 설치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장담했다.
철군을 촉진하기 위해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에게 무자헤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레이건은 이 요청을 회피했다. - P850

거의 14년 동안 전쟁이 지속된 후 레바논의 전투원들은 탈진 상태에 다가섰다. 하지만 종파의 원한이 계속 곪아 터졌다. 1988년 9월에, 물러나는 대통령 아민제마엘은 재임 중인 총리 셀림 아흐메드호스를 해임하고 총리직이 수니파인 호스에게 넘어가기보다 마론파 기독교도가 레바논의 국가수반이 되도록 미셸 나임 아운 장군을 총리직에 임명했다. 아운은 군사 내각을 구성하고 새 정부의 수립을 발표했다. 호스는 해임을 거부하고 자신이 합법적인 레바논 총리임을 고집했다. 거의 15년 동안 이어진 내전 이후 레바논은 서로경쟁하는 두 개의 정부를 갖게 되었다. - P853

지금까지 어떤 연구자도 워싱턴과 빈 라덴, 마찬가지로 자르카위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증거의 대부분이 CIA와 미래의 알카에다, 그리고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동안 서로 소통하지않았음을 시사한다. 미국 관리들은 무자헤딘과의 직접적인 접촉을파키스탄 삼군통합정보부에 맡기는 경향이 있었고, 빈 라덴도 자르카위도 당시 워싱턴의 주의를 크게 끌 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을것이다. 그럼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소련이 수행한 작전들은냉전이 쇠퇴하던 시기에 지구적 지하디스트 운동이 대두하는 토대를 놓았다. 마찬가지로, 레이건 시대에 카터의 신속전개 합동 특수임무부대를 이어받은 중부사령부가 선봉에 섰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가 대두하는 조건을 창출했다. - P862

제3세계에서 냉전은 유럽 식민주의를 파멸시키면서 수십 개의 독립국가들을 창출하는 동시에 2000만명 이상을 죽이고 온건한 세속 민족주의의 힘을 파괴한 대량 폭력을 부채질하는 데 일조했다. 궁극적으 - P872

로 두 이야기는 냉전 시대와 21세기 국제 질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냉전의 킬링필드에서 저질러진 격렬한 폭력은 유럽의장기 평화 못지않게 현대 세계의 형성에 주요한 요소였다. - P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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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1960년대 초에 냉전 투쟁의 중심 무대가 거의 아니었지만, 크렘린의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열심히 강화했다. 1965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이 창당되자 소련 지도자들은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주의자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 - P654

려고 애썼다. 1973년에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은 모하마드 다우드칸 총리가 모하마드 자히르샤‘ 국왕에 맞서 무혈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을 도왔고, 이 쿠데타로 군주정이 폐지되고 아프가니스탄은 공화국이 되었다. 다음 5년간에 걸쳐 다우드는 이 다루기 힘든 나라를좀 더 강력한 근대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파키스탄 지도자들이 양국 간 낮은 수준의 갈등의 일부로서 아프가니스탄 내의 반란자 그룹을 지지하는 동안, 196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파르참파"와 할크파티 사이에 시작되었던 균열이 긴장의 원천 역할을지속했다. 아프가니스탄이 사회주의국가가 되려면 먼저 근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 파르참파는 점진적인 개혁을 옹호했다. 이와는대조적으로, 좀 더 급진적인 할크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즉각적이고, 필요하다면 폭력적인 사회주의혁명을 모색했다. - P655

1978년 7월부터 12월 사이에 정권은 광범위한 개혁을 개시했다. 토지개혁, 농업협동조합 창설, 농촌 융자를 위한 새법규 시행, 혼인법 개정 등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사회적·경제적 권력 네트워크를 무너뜨리고 그것을 국가 통제 메커니즘으로 대체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정권은 이러한 정치적 변화 노력과 함께 포괄적인 억압도 시행했다. 4월 쿠데타 때부터 수십 명의 이전 관리들을 투옥하거나 처형했다. 그런 다음 정권은 잠재적인 정치적 경쟁자로 여긴 이슬람교도, 마오쩌둥주의자, 파르참파를 겨냥했다. 학생, 교사, 군 장교, 소수자들이 그다음이었다. - P661

미국의 무자헤딘 원조는 카불의 정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을 넘어파키스탄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쪽으로도 작용했다. 이란에서 최근혁명이 발발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모스크바 쪽으로 움직이자, 이슬라마바드와 워싱턴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듯했다. 카터와 다른 미국 관리들에게 이제 파키스탄은 점차 미국 당국에 적대적으로 되어가는 지역에서 소수에 불과한 워싱턴의 동맹국 중 하나로 보였다. 백악관은 또 유럽 동맹국들과 베이징으로 하여금 서남아시아에서 소련 권력의 균형을 맞춰주는 수단으로 이슬라마바드와 제휴하도록고무했다. - P670

아랍 세계의 무슬림 그룹들이 소련 개입에 반대해 조직되기 시작하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은 소련 점령에 맞서 지구적인 지하드로 성장할 저항의 주요 발판을 제공했다. - P686

CIA-삼군통합정보부 프로그램은 아프가니스탄에무기를 쏟아붓는 것 말고도 군벌주의와 이슬람화, 분열을 부추기고,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파키스탄의 영향력을 끌어올렸다. - P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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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
승상 왕가가 상소한 내용.

"孝文帝 때에는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혹 자손이 장성함에 이르러 관직을 - P159

氏로 삼았으니, 倉氏와 庫氏는 바로 창고 관리의 후손입니다. 二千石의 長吏(郡國의 守와 相)또한 관직을 편안히 여기고 즐거워하였으니, 그런 뒤에야 상하가 서로 기대하여 구차한 뜻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차츰 바뀌어서 公卿 이하가 혹 관직에 있은 지 수개월 만에 물러나니, 보통 재주는 구차히 용납하여 온전하기만을 구하고, 낮은 재주는 위태로운 마음을 품고 사사로운 일만을 돌아봅니다. 오직 폐하께서는 賢者를 가려 뽑는 일에 유념하시어 잘한 것은 기억하고 잘못한 것은 잊으소서. 이것이 지금의 급선무입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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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정치적으로 안정된 ‘섬‘이고 ‘오아시스‘이고 ‘기둥‘이었다.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같은 국가들이 소련으로기울고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 반면, 샤의 정권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아마도 훨씬더 중요한 것은 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주정과 함께 값싼 석유를세계시장에 어떤 일이 있어도 즉시 공급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은 샤의 군대에 세계에서 가장 앞선 군사기술을 일부 제공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워싱턴과 테헤란은 500억 달러로 추산되는 무기를 거래했다. - P617

샤는 여전히 권력을 강력하게 장악했으나, 변화의 흐름은 이란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1978년 1월 7일 오후에 테헤란 신문 《에텔라트>는 호메이니가 정 - P623

권에 맞서 영국 식민주의자들과 공모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기사를게재했다. 신문은 이 성직자가 샤의 근대화 계획을 훼손하는 데 여념이 없는 영국 석유업자들의 유급 첩자라고 규탄했다. 진부했지만 이기사는 콤에서 격분을 촉발했다.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호메이니는저술을 출간하고 설교를 녹음해 이란에 밀반입함으로써 추종 세력을 키웠다. 샤가 테헤란에서 지배를 유지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도호메이니의 영향력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신학생들은 호메이니에 대한 공격을 성직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좀 더 넓게는 이슬람에대한 공격으로 해석했다. 그들은 이 기사와 정권에 항의하는 일련의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다음 이틀 동안 긴장이 고조되었고, 돌과철봉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콤 거리를 광포하게 돌아다니며 상점을파괴하고 경찰서를 습격하는 폭동으로 비화했다. 경찰은 군중에 경고했지만 무시되자 발포를 개시했고, 적어도 다섯 명의 학생이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른바 콤 학살은 전국적으로 저항 세력을 결집하는계기가 되었다. - P624

미국인 인질들은 이제 이란 혁명 내의 권력투쟁에서 볼모가 되었다. 대사관 점거는 급진주의의 불길을 부채질했고, 호메이니주의자들에게 임시정부 내의 온건파 지도자들을 미국의 종이라고 매도할수 있게 해주었다.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없고 날로 거세지는 공격을 - P641

받은 바자르간 총리가 11월 6일에 사임했다. 포로 신세가 된 몇 개월동안 인질들은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말썽을 부리는 직원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수갑을 채웠으며, 때로는 독방에 구금했다. 고위 관리들과 테헤란 지부에 근무하던 소수의 CIA 관리들은 심문을 받았고, 처음에는 구타도 당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들의 구금은 이란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게 혹독한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훈련받은 사바크에 의해 감옥에 갇혔던 몇몇 인질범은 훨씬 나쁜 대우를견뎠다. 미국인 인질들로서는 자신들의 억류를 당연히 외교 규범의터무니없는 위반으로 보았다. 혁명이 급진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방향을 틀면서, "아야톨라의 손님들‘은 미국의 힘에 맞선 저항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 P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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