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결코 비슷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내뱉는 말은 물처럼 흘러내리고 변화한다. 또 속인다. 거기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녀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주체’를 침범하는 이 목소리에 대한 저항들이 거기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이 주체는 쏟아져 내리는 목소리를 마비시킬 때까지 자신의 범주 안에 꼼짝 않고 굳어 있을 것이다. "자 남성 여러분, 당신의 딸들이 벙어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언어 활동은 항상 딸들을 그녀들이 여러분에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는 것, 이미 여러분에게 털어놓았던 것으로부터 더 먼 곳으로 추방한다. 단지 여러분의 귀가 그렇게 많은 것을 아는 상태가 아니라면, 수많은 의미로 꽉 차 있지 않다면, 당신들의 귀가 어떤 식으로든 전에 들었던 것을 따라하지 않는 자가 누구인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담화 안에서 분절된 의미 작용에 의해 이미 그 경계가 그어진 장소 바깥에서 여자, 굶주린 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침묵 지대이다. - P149

자연에는 분명 에너지가 존재하지만, 이 자연은 ‘자기 안에’ 원동력을 소유할 수가, 자신의 전체적 형태 안에 이 원동력을 가둘 수가 없다. 그리하여 액체는 단위와의 관계에서 항상 넘쳐나거나 모자란다. 이것은 ‘너는 저것이다’는 것에서 벗어난다. 말하자면 완전히 정지된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액체가 유기체에 속하기 때문에, 거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를테면 성에 대해서 말이다. 거울 속 이미지를 구성하는 여러 결과들 속에서 여자아이의 성이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또한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눈에 보이는 이 세계의 문턱처럼 나타난다"라고 말하는 것이 여성이라는 성이 이 세계에서 제외되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남성이란 성을 가진 육체 혹은 중성적인 육체가 사회 질서 내 주체의 개입으로/개입이란 축소할 수 없는 자궁, 즉 게슈탈트의 특징들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바를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반사적인 나를 사회적인 나로 변화시키는 편집증적 소외"가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이 변화는 이미 ‘거울의 단계’에 새겨져 있다. - P155

역사적 결정에 대한 불충분한 의문 제기는 분명 정치와 물질의 역사와 같은 체계를 이룬다. 정신분석이 소유 체제의 어떤 유형, 담화의 유형—서둘러 말해서, 형이상학의 유형—종교적 신화의 어떤 유형 안에 자신이 포섭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자신은 여성의 성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사실 여성의 성욕은 정신분석 이론과 실천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국부적인 문제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역에 감춰진 문화적 토대와 일반적 체계의 해석을 요구한다. - P166

복잡한 것, 그것은 여성이 만들어내는 ‘여성의 담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말해서 어쨌든 실제적으로 정치적 실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에 의해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여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려면, 사고 방식과 정치 태도의 극단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 P168

물론 여자들은 상당 부분 여성 해방 운동에 힘입어 피임과 낙태의 자유 등과 같은 것들을 획득해 왔다. 그리하여 여성의 사회적 지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다른 식으로 제기된다—특히 여성의 기능을 모성적-재생산자라는 단순한 기능과 분리시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물들은 또한 항상 여자들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주제에 관해서 우리는 아직도 구체적인 여성 정책이 아니라 단지 이를 위한 가능성 있는 몇 가지 조건들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첫번째 조건은 여자들이 당하는 착취에 대한 침묵을 깨는 것이었다. ‘침묵’에 대한 거부는 여성 해방 운동에 의해 체계적으로 실천되었다. - P169

문체와 의미, 이 두 가지는 서로 동일한 것도 아니면서 일치한다. 문체는 결과의 차원에 있다. 여성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문체는 그것의 한 결과이다. 의미는 오히려 무의식, 즉 여성 무의식의 문제를 지칭한다. - P172

‘여성적 말투’의 문제는 욕망의 제스처, 혹은 욕망의 개인 언어—실제로 이것들은 여러 가지 병적 증세들과 병리학의 형태로만 파악될 수 있다—와 구어 체계를 포함한 언어 활동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지속성을 발견하는 것에 불과할 터이다. 여기에서 여전히 우리는 정신분석이 히스테리 증상에 하나의 코드를, 육체로 표출되는 현상 속에, 또 침묵 속에 고정된 욕망과 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해석 체계를 지나치게 강요해 온 것은 아닌가를 알아내야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은 남성 사회에 더 잘 적응시키게 하는 암시들을 늘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유하는가?"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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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은 진실에 대한 담화를 여성의 성욕을 근거로 유지한다. 담화란 진실의 진정한 논리를 보여 준다. 즉 여성적인 것은 남성 주체들에 의해 강요된 모델들과 법칙들 내부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위한 진실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두 개의 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성의 유일한 실천과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여성의 역사로 말하자면, 여성이란 성은 그 필요성, 그 이면, 그것이 결핍하고 있는 것들, 그것의 부정적인 요소/요소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 P113

그러나 정신분석이 담화 자체를 자신들의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여성 성욕에 대한 이 참된 사실은 아직까지 매우 엄격하게 진술된다. 거기에서 더 많은 해부학이 두 성 사이의 실제적 차이를 입증하는 증거-구실로 아주 조금이라도 이용될 것이다. 이 두 성은 언어 활동 속의, 언어 활동을 통한 그들의 결정으로 명시된다. 이 언어 활동의 법칙이 수 세기 전부터 남성 주체들에 의해 미리 규정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 P114

쾌락의 중요성 때문에 이해의 시기가 망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가능하다면. 당신들이 이 시기를 뛰어넘는다면, 당신들의 무지함은 이 논리에/그의 논리에 더 많은 쾌락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지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면 쾌락은 최소가 된다. 그래도 당신들이 누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는 누린다. 재빨리 유혹하고, 더 빨리 만족하는(?) 당신들은 최고 가치의 공범자이고, 이 최고 가치에 대한 그의 말은 당신들의 육체를 수동적으로 만들라고 부추긴다. 이때 쾌락을 더 많이 누린다는 것은 육체—타자의—와 관련 있다. 말하는 존재인 줓체에게 있어서, 그것은 쾌락을 일으키는 자를 더 많이 누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랑스런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그녀가 알지 못하는 언어 활동의 기능을 사람들이 그녀로 하여금 견디게 한다는 사실이다. - P122

한 여성으로부터 쾌락을 누리는 것, 한 여성의 정신을 분석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남성에게는 그가 그녀에게 빌려 준 무의식을 다시 소유하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대가를 치른다. 아직까지, 육체로. - P123

타자의 육체에 대한 담화가 갖는 결점은 이따금씩 이 모든 여자들 속에서 변형된다. 발설될 수 있는 언어 활동과 관계 있는 타자의 환희—물론 이것은 여전히 쾌락 향유의 원인으로 존속해야만 한다—는 절제되고, 측정되고,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통제된다. - P129

타자의, 타자에 의한, 타자 안에서의, 타자를 통한 타자와의 관계는 불가능하다. 즉 "타자의 타자는 없다." - P133

당신들에게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담화가 있다면 "이를 일으키는 것은 여성이 어머니로서만 겨진다는 매우 분석적인 담화이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성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여성이 ‘어머니로서만 여겨진다’는 사실은 철학적 전통 전체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 조건이기도 하다. 또 여성적 토대의 필요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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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유형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프로이트가 끼어든 덕택에 그의 이론 내부에는 몇 가지 모순이 일어난다. 남성의 욕망에 일치하기 위해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와 동일시되어야만 한다. - P91

프로이트는 페니스가 번식 기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도 확신한다. 그러나 여성의 생식 기관들이 동일한 자기 중심적 혜택을 끌어내지 못하지만 그만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번식에 있어서 훨씬 필수적이기도 하다. - P92

무의식의 체계와 두 성 차이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절은 그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다. 더 이상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어떤 문화에서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에게 어떠한 일이 생기는가를 아는 것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여성의 ‘특수한’ 성욕에 대한 인정은 남성에 의한 가치 독점을, 결국 아버지에 의한 이익 독점을 재검토한다. - P94

프로이트가 성욕을 자기 담화의 주제로,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담화가 담화 자체의 성적 변화에, 특히 자기 담화의 성적 변화에 속해 있다는 해석을 끌어내지 않았다. 이것은 여성의 성욕에 대한 전적으로 ‘남성적인‘ 그의 시각과 다른 곳에서 여성 분석자들의 이론 산물들을 향한 매우 부분적인 그의 관심이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담화 생산의 편견을 성적 차이와 연관지어 분석하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말해서, 프로이트의 실천과 이론이 재현 무대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이 무대의 성 결정에 관한 문제까지 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연결의 결여로, 프로이트의 업적은 일면 선험적 형이상학에 머무르는 셈이 된다. - P95

오늘날 여성들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그들의 쾌락을 말하려는 시도이다. - P99

우리는 여성 착취에 대한 분석과 소유 방식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사실 남자는 공식적인 교환에 실제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로부터 결코 단순한 번식 기능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여자는 사유 재산의 장소인 ‘집’ 안에 은거한다는 사실로부터 어머니 이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산 회로에 들어설 뿐 아니라 피임과 낙태의 보편화로 인해 여성에게 여성이라는 역할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피임이나 낙태를 사람들이 여전히 아주 자주 출생률을 조절하고 더 나아가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원하는 때에’ 어머니가 되는 수단이라고만 이야기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관계의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낸다는 것은 회피할 수는 없다. - P106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 의해, 남성들을 위해 결정된다. 상호성은 ‘사실’이 아니다.소비와 교환의 대상으로 억지로 실어증 환자가 된 여자들이 ‘말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면, 이 사회와 그것을 조정하는 상징적 기능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 P108

분명 남성적인, 더 정확히 말해서 남근 중심적 ‘모델’에 따르지는 않는다. 이것은 다른 성, 다른 사람, 즉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이 존재한다는 견지에서 오늘날 법을 제정하고, 성의 차이를 포하한 모든 것에 대한 규칙을 제정하는 담화에 대해 틀림없이 의문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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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성의 성욕 발달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썼던 간에, 그것이 그에게는 매우 난해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는 여성 성욕 발달에 관한 어떠한 질문도 다 파헤쳤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적 규정들은 종종 여성의 공격적인 본능을 억압하고, 욕망의 대상들을 선택하는 일을 방해하는 등 여성을 수동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실제로 리비도는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성의 경우 ‘수동적 목적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리비도가 전적으로 남성적이라는 믿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 P63

이것은 리비도가 틀림없이 여성의 성 체계에서 더 많이 억압받으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신중하라는 충고, 이전 발표들의 수정 작업이 프로이트가 여성의 성적 진화를 규정하기도 하는 사회-경제적 문화적 규졍의 분석을 간과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또 ‘여성으로의 변화’에 관해 그의 학설과 그의 몇몇 제자들의 학설을 더욱더 요구하는 전적으로 남성적인 시각에 반기를 들면서 일어나는 분석자들의 연구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마지막 저작들에서 그는 여성의 성욕에 대해 남성적 변수를 덜 포함시키고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덜 지배적이라는 가설들을 완성시키려는 여러 시도에 대해 비호의적이었다. 아마도 그는 거기에서 자기 제자들에게 비난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쾌감과 더불어 자신이 규정했던 여성의 거세 콤플렉스가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보았을 것이다. - P65

어린 여자아이가 질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기 성기에 관한 인식이 그 시기에 성립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로 입증될 것이다. (…) 카디너, 마가렛 미드, 루스 베니딕트와 같은 미국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적 견해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그 대신 신경증의 병인에 대해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적’ 성욕의 완성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견해들을 비판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이 정신분석학적 견해들을 대치하거나 그것들과 결합한다. - P66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녀에게 성기가 나타나기 이전 충동의 체계에서, 특히 구강 충동 체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따뜻한 품’에서 떨어짐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어린 소녀의 적개심이 생길 뿐 아니라 어머니와의 갈등 관계는 어머니가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구강적 만족을 금지시킨다는 사실에 의해, 즉 아버지의 페니스를 흡수하는 것에 반대하는 어머니로 인해 더 악화된다. 여자아이의 오이디푸스적 성향은 자기에게 없는 성기를 아버지에게서 받기를 여자아이가 몹시 갈구하는 ‘거세 콤플렉스’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의 성적 욕망이 나타나는 초기 때부터 관계 있을 것이다. - P69

그에 따르면 몸 ‘안에’ 페니스를 간직하고, 그것을 아이로 변화시키기 위해 페니스를 흡수하고 삽입하고 싶은 여자아이의 욕망이 중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교의 순간에 페니스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에는 남성의 성기를 음핵의 위치에, 음핵 대신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중요해질 수 있다.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의 조직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후의 단계에서 여자아이에게 나타나는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페니스를 누리려는 매우 특수한 여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부차적이고, 종종 방어적이라는 결론이 유도된다. - P73

끊임없이 발생하는 욕망의 요구와 만족 사이의 충돌은 남근의 작용을 마치 결핍의 기표인 양 유지한다. 이 결핍의 기표는 매우 성적인 애정과 만족을 추구하는 이중 층위에서 리비도의 교환 체계를 보장하고 규정한다. - P78

왜 여자는 남성이 지니는 혈통에 대한 욕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야만-‘증오’ 해야만-하고, 집을 버리고, 가정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버려야만 하는가? 왜 여자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들이 꼭 ‘남성적’ 욕망이라는 용어로, 동성애라는 용어로 사유되는가? - P82

이는 유일한 리비도의 우월성을 확신시키기 위함으로, 여자아이 자신은 자기의 초기 충동과 초기 집착이 강제로 억압당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녀의 리비도인가? 출산에서 남성과 여성의 각각의 역할들을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비도는 여전히 남성-여성의 차이—거기서 심리적 색채를 끌어내게 된다—를 표시한다. 어떠한 관계 때문에 계속 이 수동성이 가학적 항문의 충동들, 남자에게는 허용되고 여자에게는 금지된 이 충동들에게 유지되는가? 그때부터 남성은 아이와 여성, 그리고 성기에 대한 유일한 소유자로 확인된다. 수태가 일어나게 되는 강간, 게다가 몇몇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여성적 쾌락의 충족으로 제시된 강간은 이러한 성관계의 유형이 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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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욕은 늘 남성적 기준들을 출발전으로 삼아 고려되어 왔다. 그리하여 ‘남성’ 음핵의 능동성/‘여성’ 질의 수동성의 대립, 프로이트-그리고 많은 이들-가 성적인 측면에서 ‘정상 여성으로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여러 단계들이나 대안들로 이야기하는 이 수동성의 대립은, 남성적 욕구의 실현에 의해 좀 지나치게 요구되는 것 같다. … 여성의 성감대는 중요한 남근과 비교될 수 없는 성기-음핵이거나 성교시 니스 주변을 감싸고 문지르는 구멍-덮개가 될 뿐이다. 즉 이것은 성기가 아니거나, 혹은 자기 성애를 위해 성기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남자의 성기일 뿐이다. - P31

여자의 욕망은 남자와 동일한 언어로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 시대 이후 서구를 지배하는 논리에 의해서 다시 감춰졌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시선의 우월성, 형태 구별과 형태 개별화의 우월성은 특히 여성적 에로티시즘에 생소하다. 여성은 시선보다는 접촉을 더 즐기고, 그녀를 매우 시각적인 체계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여전히 그녀를 수동성으로 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녀는 바라보기에 좋은 대상이 된다. 만일 그녀의 육체가 ‘주체’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출과 정숙한 위축이라는 이중의 움직임으로 인해 그토록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유혹적이라면, 여성의 성기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두려움을 나타낸다. - P34

모성은 위축된 여성 성욕의 결핍을 메우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아이가 드러내는 그들 사이의 중재가 없다면 서로를 더 애무하지 않게 되는가? 특히 남자아이일 경우에 그렇다. 또 여자는 남성 신체의 한 부분, 즉 자기 아이-페니스-음핵에 장난치면서 자꾸 접촉한다. - P36

사실, 여성의 쾌락은 음핵의 능동성과 질의 수동성 같은 것 가운데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다. 질을 애무함으로써 생기는 쾌락은 음핵을 애무함으로써 생기는 쾌락으로 도치될 수 없다. 여러 가지들 가운데 가슴을 애무하는 것, 외음부를 만지는 것, 음순 사이를 벌리는 것, 질 뒤쪽의 막으로 압력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 자궁 경부를 스치는 것 등등이 있다. 이는 여성의 가장 특별한 몇 가 - P37

지 쾌락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 여성에게는 도처에 조금씩 성감대가 있다. 그녀는 도처에서 약간의 쾌락을 누린다. 신체 전체가 히스테릭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여성 쾌락의 분포는 매우 다양하고, 저마다의 차이 속에서 그 수도 많으며, 복잡하고 예민하여, 사람들이 동일한 것에 좀 지나치게 집중하는 상상계에서는 생각도 못할 정도이다.

그녀들을 여러분 자신들에 대해서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들에게는 당신들이 지니고 있는, 당신들이 그녀들에게도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내재성이 없다. 이것은 그녀들이 자기들끼리, 조용한, 다수의, 확산된 촉각인 친한 사람들 속에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들이 갈구하는 것은 정확하게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다. 이것은 종종 일종의 채울 수 없는 허기, 당신들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어 버릴 탐욕 같은 것으로 해석되고, 의심의 대상이 된다. - P39

여성은 항상 다수로 있게 될 것이지만 분산의 상태로 있다. 타자가 이미 그녀 안에 있고, 이 타자가 자기 색정이란 측면에서 그녀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이 타자를 가로챈다는, 그가 이 타자를 자기 수중에 넣는다는 뜻은 아니다.너무나 가까워서 동질성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소유의 형태를 띤다. 여성은 너무나 가까워서 그것을 가질 수도, 자신이 소유될 수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쾌락을 누린다. 그녀는 끊임없이 타자와 자기 자신을 교환한다. 서로를 동일시하지 않은채로 말이다. 이것이 현재의 체계에 의문이 든다. 여성의 쾌락은 치유될 수 없이 이 체계의 계산 속에서 궁지에 몰린다. 즉 이 쾌락은 타자 안으로/타자를 통한 이동을 끊없이 확대하고 있었다. - P41

그녀들이 자기들을 경쟁 상품으로 여기는 남자들의 강압적인 선택을 피해 다른 여자들에 대한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 어쩔 수 없이 깨닫게 해주는 사회적 위상을 그녀들 스스로 형성한다는 것, 그녀들이 매춘부라는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생계를 꾸려 간다는 것 등은 분명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 노동자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단계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히 단순히 사물들의 질서를 전복하는 것을 겨냥한다면 역사는 결국 - P43

동일한 상태로 되돌아올 것이다. 남근 우월주의로 말이다. 그들의 성기도, 그들의 상상계도, 그들의 언어 활동도 여성들의 발생을 (재)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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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려울 줄 알았지만 어렵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1-11-08 08:5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요ㅠㅠ 특히 거울 챕터는 정말 모르겠더라구요ㅜㅜ 다시 읽어봤는데도 똑같아요. 저자가 정신분석학 쪽 전공분야라 그런걸까요 철학적이고 난해하네요ㅜ 북플 회원님들께 도움 얻어서 겨우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들어요. 근데 아직 올리시는 분들이 안 보여서. 하나씩 올라오겠죠?

다락방 2021-11-08 10:03   좋아요 0 | URL
저도 거울 읽으면서 물음표 천개 되어서.. 이게 뭐여 강간당했다는 건가 싶고요 ㅠㅠ 네 아마도 천천히 올라올 듯 합니다. 제2의 성보다 분량 적어 다들 좀 늦게 시작하시나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