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뜸의 거리
코노 후미요 지음, 홍성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어젯밤, 책을 받아들고 나서 솔직히 얇은 두께에 적잖이 실망하였다.

"뭐야, 정가가 7천 원인데 이렇게 가볍고 얇아도 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볼멘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나흘 전, 메일을 체크하던 중 이 만화를 발견한 나는 제목에 사정없이 끌려 검색하고,
표지와 줄거리를 확인하고 난 후  2분도 망설이지 않고 주문장을 접수했다.
보관함에 책을 넣어놓고 한두 달을 대기해야 겨우 장바구니로 이동할까 말까 하는 처지의 
많은 책들이 볼 땐 억울하기도 하고 아니꼽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간에 책이 예쁘긴 하지만 이렇게 얇다니!

하지만 첫눈에 끌린 이성처럼 이 책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취침 전 나의 책으로 또다시 간택이 되었으니까.
(리뷰보다 사설이 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로부터 10년,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랑했던 도시 전체가,
사람들 모두가 생각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날로 질질 끌려간다.
네가 살 세계는 여기가 아니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25쪽)

그날이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던 1945년 어느 여름날을 말한다.
작은 건축연구소의 사무원인 미나미는 원폭으로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고 어머니와 살아남았는데
구두가 닳는 것이 아까워 동네에 들어서면 맨발로 걷고, 사무실 맞은편 양장점 윈도우에 걸린
원피스를 제법 비슷하게 바느질하여 만들 줄도 아는 손끝이 야무진 소녀이다.

같은 사무소의 우치코시와의 사이엔 바야흐로 이상한 감정의 기류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10년 전 넋이 나간 것 같았던 어머니도 많이 회복되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가요 게임'을 빨리 가서 들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꽤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개천이 흐르는 동네 초입에만 들어서면 그녀의 입에선 알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죽은 줄 알았어요, 오토미상... 살아 있었다고는 부처님이라도 몰랐을 걸요, 오토미상?

그녀는 그 개울에 자신도 잘 아는 수많은 얼굴이 시체로 둥둥 떠있던 그날의 참혹한 정경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1945년이나, 미나미의 일상을 그리는 그로부터 10년 후나, 또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난 후
그녀의 조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세 편의 이 연작 만화에는 전쟁이나 원폭에 대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언급이나 묘사는 없다.
 맡은 일을 하며 순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맑고 연한 된장국이 끓을 때
나는 냄새와 훈김으로 맡아질 뿐이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개인의 선택과는 무관한 어떤 일로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이 만화는 정말 섬뜩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운좋게 100년을 살아봐도  인생에는 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집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맑고 연한 된장국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방송 프로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그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이 만화는 말하는 듯하다.

 


일상의 소중함!  진부한 말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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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12-0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단 보관함에.
지금 잠깐 살펴보는데 글이 가로쓰기, 세로쓰기 섞여있어서 첨엔 엉뚱하게 글을 읽었어요. 그림땜에 글자가 그리 된걸까요?

로드무비 2005-12-0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 봅니다. 치카님!^^

chika 2005-12-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 새 그림이 올라왔네요? 저 그림 맘에 들어요... (흐음~ 새삼 퍼갈까, 라는 생각이...? ^^)

mong 2005-12-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미리보기로 책을 살펴 보면서...
'두께는 너무 얇구만'과
'그림과 분위기는 좋은데?'사이에서 갈등했답니다 ㅎㅎ
보관함에 있어요 ^^

서연사랑 2005-12-0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였군요.
로드무비님은 특별한 만화들을 잘 골라내는 재주를 지니신 듯^^

깍두기 2005-12-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운좋게 100년을 살아봐도 인생에는 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집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맑고 연한 된장국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방송 프로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그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이 만화는 말하는 듯하다.
====로드무비님은 가끔 절 안심하게 해 주신다니까요!! 안타까우면서도 묘하게 안심되는 말이었어요. 님의 이런 글이 너무 좋아요!!!

뚜유 2005-12-0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는 꼭 소장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답니다. 3일만 참으면 이 손에..
리뷰도 정말 멋져요!

blowup 2005-12-0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김 같은 리뷰. 킁킁거리고 있어요.

로드무비 2005-12-0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꽤 향긋하죠?^^

칼슘두유님, 사흘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깍두기님, 안타까우면서도 묘하게 안심된다는 님의 댓글도
무지 마음에 드는군요.^^

서연사랑님, 제가 생각해도 냄시 하나는 잘 맡는 것 같습니다. 호호.^^

mong님, 제게 이런 책은 소장 1순위예요.
뭣보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치카님, 이 책 님도 좋아하실 듯.^^

그로밋 2005-12-0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님의 리뷰를 애써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님의 리뷰를 읽으면 너무 읽고 싶어서, 갖고 싶어서 며칠을 끙끙대는 절 발견하거든요. 지금도 손가락이 자꾸 꼬물락거려서 미치겠네요. 요번엔 무슨 핑계로 조것들을 손에 쥘까나..... 아~ 안달나 죽겠네요. -_-;;;;
(귓속말 : 왜 추천은 한 번밖에 못하는 거죠????)

로드무비 2005-12-0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밋님, 그냥 지르세요.ㅎㅎ
땡스투 꼭 누르시고요.
(아유 참, 추천 한 번도 감사한데, 두 개면 더 좋겠지만서도.
너무 좋아해 주시니 부끄럽사옵니다.호호~)

싸이런스 2005-12-0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지 부끄러워지네요.

비로그인 2005-12-0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운이 좋아 백년을 살아도
그 일상의 소중함은 잘 모르고 늘 어딘가를 바라보다
늙어죽을거 같아 슬프네요

로드무비 2005-12-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그것도 운명이라면 뭐...=3=3=3
(괜한 말씀이신 거 다 앱니다.)

싸이런스님, 뭐가요?
아참, '왠지'라고 앞에 쓰셨지!^^


히피드림~ 2005-12-0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로드무비 2005-12-0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검둥개 2005-12-04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늉하신 리뷰에 저렇게 멋진 그림까지!!! ;)
저두 오늘 된장국을 끓이렵니다! ^^ =3=3=3

로드무비 2005-12-04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저 그림 정말 마음에 들어요.
입에 고무줄을 물고 머리를 묶어주는 소녀나, 머리를 맡기고 있는
아이의 장난스러운 표정, 세밀한 방 풍경 모두!
훈늉한 리뷰라 해주시니 기분이 좋아 헤벌쭉.^^

플레져 2005-12-0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과 이 책의 제목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일상의 소중함...잊지 않을게요 ^^

로드무비 2005-12-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제 허름한 밥상이 생각나는 제목이죠?^^

날개 2005-12-0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담에 저 빌려주세요..^^

로드무비 2005-12-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첩에 기록해 두세요.^^
 


이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과거가 없는 남자>

워낙 불경기다 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임금 체불 소식이 유난히 귀에 자주 들어온다.
정규직,  비정규직,  일용노무직... 요즘은 이렇게 노동자의 계급도 3개로 나뉜다고
어제 아침  모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한 패널이 말했다.
일을 시켜먹었으면 약속한 돈을 줘야지, 자기는 고대광실에 호의호식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며 애간장만 태우다가 결국 그 알량한 임금을 떼먹는 악덕 사장들이 많다.

영화 <과거가 없는 남자>에는 여러 가지 기막힌 사정으로 경영하던 건설회사가 망하고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에게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주기 위해서 은행강도가 되는
늙은 사장이 나온다.
아리랑치기에게 호되게 당하여 자신의 과거를 몽땅 잃어버린 주인공이 통장이라도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 하여 은행에 갔다가 강도로 돌변한 이 노인과 마주치는데......

그렇게 은행에서 강탈한 돈을 들고 주인공을 찾아와 일을 의뢰하는데 그 일이란 게
새로운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을 한 명씩 만나 밀린 임금을 주고 오라는 것.
스틸컷 오른쪽의  돈봉투를 수북히 들고 있는 노인이 바로 그이다.
주인공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스런 모습으로 여기저기 새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만나 무사히 돈봉투를 전달한다.

사장님은 그 후 권총으로 목숨을 스스로 끊는데......진작에 죽고 싶었는데 직원들에게 주지 못한
밀린 임금 때문에 차마 죽지도 못했던 것이다.

영화 <과거가 없는 남자>에는 어딘가 한 군데씩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과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가슴 한쪽에 묵직한 동통이 느껴진다.

방송에서 임금 체불 소식이 들릴라치면 어김없이 이 영화 속 사장님이 떠오른다.
그 가슴 철렁하던 총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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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12-0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로드무비님의 운명의 영화가 이 영화였었구나. 전 그걸 '용서받지 못한 자'로 착각하고 있었어요. 우하하.

sudan 2005-12-0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올리시자 마자 냅다 와서 후다닥 읽고 추천했는데, 저보다 빠른 분이 계시네요?
정말 읽지도 않고 추천하시는가부다.

검둥개 2005-12-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의 그 감독이네요!
아아 가슴이 찢어집니다. 저런 사장도 있다니.

물만두 2005-12-0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도 있군요. 저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를 읽고 님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 책은 실직자의 입장에서 쓴거지만요...

로드무비 2005-12-0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스틸컷 한 장에도 제가 말하는 느낌이 전달되죠?
정말 저런 사장님이 있다면......

수단님, 그 날의 운명의 영화!^^
제가 보는 영화는 모두 운명의 영화예요.
(어느 고마우신 분이?!)

mong 2005-12-0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러면서도 웃게 만드는 영화일것 같은데요...
보고 싶어지는 영화 또 한편~

로드무비 2005-12-0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께 강력추천!^^

물만두님. <도끼>라고요?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로자 2005-12-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눈시울이 뜨거워져요. 저도 보고 싶어요.
댓글 잘 남기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만 해놓고 어디에 얼굴을 들어야 할지 몰라 저는 사라집니다. 휘리릭~

2005-12-0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12-0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이 영화 비디오가게 가면 있나요?
아님 개봉중인 영화인가.....?

2005-12-01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5-12-0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좋은 영화를 소개해 주셨네요.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5-12-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나중에 님 방에 가서 좀 속삭일게요.^^

깍두기님, 영화는 끝났고 곧 비디오나 DVD로 나오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차하면 어둠의 경로로 보시지요?^^

과일&추리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 처음 듣는 얘기예요.
그 딸도 아빠도 안됐다!^^;;

속삭이신 님, 우와 제가 알기로 님이 누군가를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 아닌가요?
제가 다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어떠셨는지 이야기 해주셔야 해요.^^

로자님, 뭐 저도 그 댓글을 그리 믿지는 않았습니다.ㅎㅎ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잘 지내시죠?^^

로드무비 2005-12-0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꼭 구해서 보세요.^^

2005-12-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0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2-0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칭 알라딘에서 최고로 이쁜 이모님, 다행이에요.
뭔지는 아시죠?
차분히 마무리 잘하세요.^^

날개 2005-12-0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기억했다가 챙겨서 봐야겠군요...

로드무비 2005-12-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꼭 보세요!^^

DJ뽀스 2006-05-0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ogs have no hell (텐미니츠 트럼펫 중)



'과거가 없는 남자'의 에필로그 격인 단편입니다.
이걸 보고 '과거가 없는 남자'를 봐서 이 단편의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네요.
저 두 남녀가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밖엔요.

 
두 친구 이야기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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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자기 전에 읽을 책으로 무심코 이 책을 골라들었다.
그런데 몇 장 읽지도 못하고 후다닥 책을 덮어야 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폭발하여 아이를 죽도록 패는 엄마의 얼굴처럼 무서운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우리가 지겹도록 보는, 술에 취하여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텔레비전 시사 프로 속의
아빠들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지만,  유디트의 엄마는 더욱 비정하고 악랄한 데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더욱 무서웠던 건 어린 소녀 유디트의 공포, 그녀의 슬픔이었다.
유디트는 항상 엄마의 눈치를 보고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꼭 실수를 하게 된다.
어린 동생 데니스가 새 운동화를 욕조 속에 빠트려도 모두 유디트의 잘못이 된다.
비명이 새어나가는 걸 막고 본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엄마는 유디트를 다락방에
질질 끌고 간다.
소녀는 내일 학교에 갈 일이 걱정 되어 제발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세상에 이토록 참혹한 광경이 또 있을까.

"너를 때리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게 나보다 강해. 나 자신을 멈출 수가 없어."

진공청소기의 금속파이프로 아이를 때려 거의 기절시키고 난 후 엄마가 하는 말이다.
이 정도면 악령에 사로잡힌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어젯밤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책을 펼쳤다.
읽으며 계속 가슴을 졸인 건 지금 이 순간도 어느 모진 부모들에 의해서 그런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었지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나도 그 중의 1인이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그대로, 혹은 몇 배로 돌려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슬기롭게 조절할 줄 모르는 이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를 유폐시켜버린 이들......
그에 비하면 이 책의 주인공 유디트와 미하일은 어떤가!

"유디트를 보면 자꾸만...... 그애한테 내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요."(177쪽)

유디트에게 늦게나마 미하일이라는 좋은 친구가 생겨 얼마나 기쁘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빠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소년 미하일과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는
외톨이 소녀 유디트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었다.

그런데 어쩌지?
지금도 쥐도새도 모르게 부모라는 얼빠진 인간들에게서 영문 모를  매를 맞고 있는
수많은 우리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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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2-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부녀는 영화나 티브이를 볼때 잘 우는 편인데 우는 장면이 달라요
아빠는 가족이 다시 만날때나 누가 떠날때 울고
저는 아이들이나 동물이 학대 당할때 울거든요
그러다가 서로 울보라고 놀려요~지금은 아빠가 훨씬 울보랍니다~
간달프가 다리에서 떨어져도 우니까요 ^^
리뷰를 읽다가 슬퍼졌는데 어떻게 댓글로라도 분위기를 환기 시켜보려고 ;;

비로그인 2005-12-0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드무비님
저도 어제 다른 책이지만 이 비슷한 생각에 책을 읽는 네시간 반동안 내내 울고 저녁에 술을 마시고 또 울고 리뷰를 써야하는데하며 자판을 두드리다 울고 그랬는데..
오늘 여기서 이 글을 보니 참 기분이 묘하네요.
저도 그 폭력의 희생자였고 누구엄마는 부지깽이로 때린다더라 라는 끔찍한 말에 위로를 받아야했던..
그리고 상처라는 것에 대해 단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신랑과 얘기를 하며 연민과 공감하려는 노력외에는 그 상처자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남자랑 사는 구나 다시 한 번 절망했더랍니다.
전 이 책은 읽으면 안되겠네요
저도 리뷰를 쓰긴 써야하는데..

비로그인 2005-12-0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몽님과 저는 여기만 쳐다보고 사나봐요..ㅎㅎ 나도 분위기 좀 환기시켜보려고 이런 글을 또..^^

로드무비 2005-12-0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올리셨던 님의 어느 글이 생각나는군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이상하게 나이들어 갈수록 겁쟁이가 되네요.

그런데 사람이 꼭 경험을 해봐야만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다르겠지요. 다를 수밖에...어떻게 같은 강도로 느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아무튼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그것이 특히 부모자식 간일 때는 너무 무서워서 뒷걸음치게 돼요.
님은 어제 어떤 책을 읽으시고 그 난리를 치셨을까? 궁금합니다.

mong님, 간달프가 다리에서 떨어져도 우신다니 괜히 나도 그 대목에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리뷰 쓰기로 하고 받은 책이라 읽기를 마칠 수 있었어요.
얼마 전에 떼먹은 책도 있고 하여!^^;;;;

검둥개 2005-12-0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맨날 맞았어요. 물론 금속 파이프로는 아니지만. 그런데 외국영화를 보면 맞은 게 차라리 났다, 성희롱을 당하는 것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요. 세상은 요지경이에요...

hanicare 2005-12-0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그대로, 혹은 몇 배로 돌려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그것도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그러는 작자는 재활용도 안되는 오염쓰레기입니다.영원히 분리수거해버려야 할....
*P.S.그런데 자신의 욕망을 슬기롭게 조절할 줄 모르는 이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를 유폐시켜버린 이들-에서는 가슴이 뜨끔하네요. 나도 그 대열에서 결코 빠지지 않을 듯.

blowup 2005-12-0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게 읽으셨군요. 그런 공포가 치유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엄마는 그저 비정하고 악랄하여 그런 건가요? 이런 책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집어던지고 싶을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5-12-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 여사, 저야말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유디트 엄마 정말 너무나 미운 여자예요.
진공청소기 막대기 빼앗아서 몇 대 때려주고 싶어 혼났어요.^^;;;

검둥개님, 아이고. 맞으셨다고요? 아이고.
인간들의 지붕 밑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무시무시합니다.
어떤 때는 알고 싶지도 않아요.
안 그래도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데......

로드무비 2005-12-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유디트의 엄마에게는 물론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지요.
아주 끔찍한.
뭐에 씌인다고 하잖아요. 딱 그 상태예요.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mong 2005-12-0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얼마전에 떼먹으신 책 뭔지 저 알아요!
(별걸 다 자랑스러워 하는 몽~)
그거 리뷰쓰시면 읽어보고 살까 생각하던 책이에요 ^^

sudan 2005-12-0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책은 절대 못 읽을 것 같은게, 이 리뷰를 읽는 것도 좀 힘들었어요.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는데' 부분에서 한번 포기하고(그래도 추천은 했답니다. 헤헷) 이제서야 용기를 내서 다시 읽어요. 생각해보니, 유디트 엄마의 마음의 상처도 마음 아파요.

가시장미 2005-12-0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어제 사당역을 지나가다가 아동학대 사진을 보고 경악을 해야만 했는데 이런 글을 보니 또 생각이 나네요. 아동학대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은 또 뭘까요? 정말 사람의 심리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로드무비 2005-12-0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리뷰 읽는 게 힘들었다니, 이 책은 아예 꿈도 꾸지 마셔요.
상처고 나발이고 저 유디트 엄마는 계속 그냥 미워할래요.
추천은 너무 고맙고...^^

mong님, 그래서 그 책은 플레져님께 드리기로 약조했답니다.
읽고 리뷰 쓰시면 출판사에서도 용서해 주겠죠.
아님 말고!(배째라!ㅎㅎ)

로드무비 2005-12-0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 사진꺼정 내걸었어요?
무서워라.
무서워하지만 말고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행동을 해얄 텐데.
그래도 역시나 뒷걸음질.;;

플레져 2005-12-0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잔혹극이 따로 없네요. 거리에서, 쇼핑몰에서 자신의 아이를 구타하는 엄마들...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울며불며 쫓아오게 만들면서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짓거나 처연하게 옷을 고르더라구요...
그...책 리뷰를... 제가 써서 용서가 된다면! 기꺼이!!! ^^;;;
과연? =3 =3

아영엄마 2005-12-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울 남편도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는데 시아버님이 종종 자신의 화를 억누르지 못해 꼬투리가 잡혔다 싶으면 많이 때렸다고 하더군요. 남편 자신은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체 말여요.. -시아버님도 이제는 가끔 젊었을 때 자기가 왜 그렇게 때렸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아무튼 그게 그렇게 싫었을텐데 지금은 남편이 아이가 말을 정 안들으면 '패야 한다, 결국은 그래서 잘못된게 뭐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물론 맘이 약해서 실제로 아이들을 때리지는 못하고 저보고 그러라는...^^;;(당연히 저는 반대!!)

비로그인 2005-12-0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자녀를 하나의 존중해야 할, 독립된 존재로 본다는 것이 힘든 일은 일인가봐요..어른들도 사회적인 억압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약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은 것두 같고요..폭력은 행사하지 않겠지만.. 건강한 의식이나 자격을 갖출 수 있을지..솔직히 자신이 없구만요..

반딧불,, 2005-12-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언젠가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성금 모금을 부탁하는 전단을 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저도 해당이 되는 듯 하더이다. 꺼떡하면 방치하고 꺼떡하면 소리지르고 때리기도 하구요ㅠㅠ 그래도 최소한 스스로가 어떻다는 것을 느끼고 조절하려
노력하는 것만도 다행이다 하고 생각할 적도 있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럴러면 스스로 얼마나 더 노력해야할지....

어쨌든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멍이 들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때릴 수가 있는 것인지...이해가 안되요. 정말이지.

Phantomlady 2005-12-0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듀나가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에 대해서 학창시절 그런 경험(?)을 조금이라도 당한 사람은 저 영화가 너무 무서워서 차마 못 볼 거라는 말을 한 게 생각이 나요..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폭력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감정이입이 너무 심하게 되서 '두 친구 이야기'는 도저히 못 읽을 거 같아요..

우리보다 약자인 아이는 절대 때려서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기에는 부모도 참 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플레져님이 말한 것처럼 쇼핑몰에서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때리거나 무시하는 엄마들..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의 표정은 마치 넋이 나간 듯 해서 보고 있기 너무 슬퍼요 때로는 사랑스런 내 아이가 괴물처럼 악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테죠..

하지만 이유없이 때리는 부모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인간들은 똑같이 갚아서 때려줘야 해요..

로드무비 2005-12-0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악! 제 비명 들리세요?
거의 페이퍼 하나에 육박하는 긴 댓글, 누르기 전에 다운되어 날려먹었습니다.
기운이 없어서 다시 일일이 못 달겠어요.
나중에 다시 쓸게요. 양해 바라며......

숨은아이 2005-12-0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리는 부모들은 아마 어렸을 때 똑같이 맞았을 겁니다. 아동학대가 무서운 건 대물림되기 때문이래요. 매맞는 아이들이 커서 똑같이 때리는 부모가 되는 거지요.

로드무비 2005-12-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그게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사실이냐고요.
지옥이 따로 없지요.

서연사랑 2005-12-0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제나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지라 아이를 채근하고 윽박지를 때도 많은데, 순간 제 안에 숨어있는 그런 공포스러운 기질이 느껴질 때 앗!하고 놀라는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번도 서연이를 때려 보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저 책, 손에 잡으면 가슴이 내려 앉아버릴 것 같으네요...

산사춘 2005-12-0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무이한테 엄청 맞고 컸는데 나중에 사과하시더라구요. 내가 맞고 커서 너를 더 때린 것 같다고, 너는 니 자식 때리지 말라고. 마지막에 그래도 때려서 니가 사람꼴이 된거다라는 말만 없어도 참 완벽했을텐데... 요건 좀 아쉬버. 제가 워낙 사고를 심하게 치긴 했지만 어려서 왜 맞는지 영문도 모르고 맞을 때는 정말 별 끔찍한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그래도 사랑도 많이 받고 크고 난 뒤 어무이에 대해서 동의는 못해도 이해는 했지만, 다 커서도 그 상처가 좀 갔어요. '용기를 내어' 다시 펼쳤다는 무비님의 심정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로드무비 2005-12-0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빗자루몽댕이로 맞은 것 말씀하시는 거죠?
매도 사랑의 매가 있고 자기분노폭발의 매가 있는데
산사춘님 어무이의 그것은 사랑의 매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아이가 공포를 느낄 정도의 매는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엉덩이와 등짝을 후려치는데 자중해야겠습니다.^^

서연사랑님, 그런 순간 기분은 누구나 느끼는 건가봐요.
전 저만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자신의 아이가 하나 있고 보니 슬픔과 공포도 이렇게 구체적입니다.
동의하시죠?^^

kleinsusun 2005-12-0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이 책 읽으면서 영화 <오로라 공주>가 생각났어요.
거기서 젊은 계모가 어린 애를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발로 차고 머리를 박고 막 때리거든요. 정말 끔찍했어요.
<거짓의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이런 사람들은 정말 악한게 아닐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해야... 이런 부모와 살고 있는 애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로드무비 2005-12-0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엄정화가 그 역할을 잘 소화했나요?
사람들 몰래 때리는 것이 더 무섭고 악랄하게 느껴졌어요.
거짓의 사람들도 읽으셨구나.
무시무시한 사람들 많이 나오죠?
정말 어떻게 해야 매맞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 될지 저도 답답합니다.

호밀밭의파수꾼 2005-12-0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슬프게 추워집니다.

로드무비 2005-12-0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님, 내년 여름에 읽으세요. 더울 때!^^

날개 2005-12-0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런 책 못읽을것 같아요.. ㅠ.ㅠ
가슴이 짓눌린듯해서 너무너무 싫어요..
 
만화 한국 신화 1 - 천지왕, 하늘과 땅을 열다
구명서 지음, (주)미디어러쉬 그림 / 작은박물관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하늘이 열리고 해가 솟으면서 세상이 기지개를 켭니다.
푸른 하늘과 기름진 땅, 그리고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생명체들......

<만화 한국신화> 1권은 천지왕이 하늘과 땅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학습만화 최초로 흩어져 있던 한국신화를 체계화한 것'이라는 작가의 호언장담과 함께
제 2권 소별왕의 귀환(가제)부터 제 10권 단군 시대(가제)까지 대서사시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아무 의문도 없이 <그리스 로마 신화>만 읽어대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창세 신화를 직접 찾아나섰다는 작가의 말이 믿음직합니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천지왕 본풀이'와 함경남도 함흥의 '창세가'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고
거기에다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었다나요?
옥황상제 천지왕과 그의 아내가 되는 총명아기, 이 부부의 쌍둥이 아들 대별과 소별,
인류최초의 악당인 털북숭이 수명장자,  번개의 신 번개장군, 바람과 구름의 신 풍우도사,
하늘의 문을 지키는 도수문장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가 다소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천둥장군, 번개장군, 풍우도사라니,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책도 아니고 말이죠.
어린이들은 그 복잡한 서양의 신들 이름뿐만 아니라  티라노사우루스니 스테고사우루스니
길고 생소한 공룡 이름도 줄줄이 외우는 아지 못할 능력의 소유자인데 말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해와 달을 만들고 육신을 뿌려 땅을 가꾼 천지왕은 맑고 신비한 기운에 휩싸여
하늘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창조한 옥황상제 천지왕이 되었습니다.(55쪽)

해와 달이 두 개씩이라 낮은 너무 뜨겁고 밤은 너무 차가워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다니,
거기다 수명장자라는 악당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천지왕이 이를 벌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의 시작과 전개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왜 천지왕은 해와 달을 두 개씩이나 만들어 사람들을 가뭄과 추위에 시달리게 했을까요?
뭐니뭐니 해도 제 1권의 하이라이트는 천지왕과 총명 아기의 만남(제법 가슴이 두근거립니다)과
대별이와 소별이, 쌍둥이의 출생 장면이지요.
너무도 성격이 판이한 두 형제는  얼핏 구약의 카인과 아벨을 떠올리게 합니다.

초등 1학년생인 우리집 아이는 이 책을 펼치자마자 재밌다며 단숨에 읽어치웠습니다.
한 시간쯤 걸렸을까요?
아이가 재밌다니 다행입니다만 그런데 제 눈에는 그림이 아무래도 좀 거슬립니다.
선도 너무 투박하고 거칠고, 인물들의 표정도 섬세하지 않으니 감정 이입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린이들이 읽는 최초의 한국 신화'에 무게중심을 두더라도 말입니다.
다른 어린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볼지 정말 궁금하네요.




등장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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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3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도가 계속되어지고 더 나은 결과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로드무비 2005-11-3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그러게요.
의욕을 높이 사고 싶어요.^^

서연사랑 2005-11-3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예쁜데요?(실제로 보지 않아서 그런가?...)
그리고 저렇게 등장인물을 그림으로 소개해 주는 거, 좋아요^^

하늘바람 2005-11-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릭터들이 아이들 좋아하게 생겼네요. ^^

로드무비 2005-11-3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아이는 이 책 그림도 마음에 든다니 제 눈이 이상한 건지
몹시 헷갈려요.^^;;

서연사랑님, 리뷰를 잘 못 써서 저 그림이라도 서비스로 넣은 거랍니다.^^

2005-11-30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5-12-0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로마신화> 가 완결되었다고, 애들이 다른 책을 사달라고 하던데... 저걸 시작해 볼까요? ^^
 

내가 딱 서른 살일 때,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여겼고 실제로 나는 기운이 없었다.

오래도록 애인이 없는 것(더 자세히 말하면 내가 매력이 없어서 남자들이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것)도
열등감 중의 하나였고, 세상을 사는 일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할 자신이 없는 것도 내겐 공포였다.
(항상 그랬다는 건 아니다. 어느 날은 또 아지못할 자신감이 넘치기도 했다.)

어느 날 일 때문에 알게 된 어느 작가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아갔을 때, 
내 맞은편에는 중년의 한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미혼이고 시인이라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는 오십이 다 되어 보이는데 퍼머기 없는 단발에 검정색 스웨터, 골덴바지를 고수(!)하고 계셨다.
그이 옆에는 대조적으로  탤런트 같은 화려한 화장과 복장의 60대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서예가라고 했다.
여성스러움과 아름다움에 굉장히 집착하는 것이 느껴지는 그 서예가는 빨간 매니큐어 바른 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미장원에서 정성껏 올린 그 헤어스타일은 오로지 그를 위한 것으로 여겨질만큼 잘 어울렸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무슨 선물인가를 자랑했고,  미녀이고 멋쟁이인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나의 시선은  어쩌면 나의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를 그 시인에게 자주 갔다.
그는 말이 별로 없었고 술과 음식을 아주 맛나게 먹었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따끈하게 데운 정종 주전자가 열 번쯤 테이블을 돌았을 때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로드무비는 참 좋겠다. 여기 이렇게 있는 걸 알면 그 누군가 얼마나 기뻐할까!"

 맞은편에  말없이 앉아 술만 납작납작 받아마시는 내게서  오래 전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나는 그렇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나는 어느 책에서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
박목월 시인의 추천사는 그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젊은 날, 데뷔 시들은 정말이지 멋졌다.
나는 그의 시들을 읽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화려한 여인 옆에서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해 보였던 그이는 사실은 그렇게
멋진 청춘을 구가하고  멋진 시를 쓰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아침" 이라는 그의 詩句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는 정말  양귀비가 부럽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튼, 나도 언젠가 젊은 날의 나를 빼닮은 인간을 만나면 그이가 그날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알라딘 서재에서 이미 두어 명을 만났다.)

"xx이 여기 있는 걸 알면 그 누군가 얼마나 기뻐할까!"

 

-----------

이 페이퍼를 올리고 시인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출생연도가 1941년.
그가 부디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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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11-2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또 로드무비님이 맛난 걸 먹고 사진 올렸는 줄 알았어요^^

mong 2005-11-2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가슴이 따땃해지는 아침입니다
서른살때의 로드무비님이 이해가 되는건
제가 서른을 넘겼기 때문일까요? ^^

하루(春) 2005-11-2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요?

플레져 2005-11-2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전까지 침대에서 뭉개고 있다가 훤한 창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아주 개운한 아침을 맞았던 그날의 느낌과 여운이 비슷하다고...
어떻게 이름을 붙일까 했는데,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아침으로 해야겠어요...^^

로드무비 2005-11-2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오랜만에 페이퍼 올리는 기분이에요.
서른 살, 참 좋은 나이인데 그것도 모르고...^^

로드무비 2005-11-2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해물파전 어제 특대로 구워먹고 사진 한 장 찍어놨는데 올릴까요?ㅎㅎ

플레져님,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아침'이 뭘 뜻하는지 아셔서 기뻐요.^^

하루님, 님도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아침을 매일 맞으시길!^^

blowup 2005-11-2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을 따끈하게 데우는 글이어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그런 말을 건넬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5-11-2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정종처럼 천천히 몸을 데우는 그런 말, 그런 글을 쓰시길.^^

새벽별님, 타인 속의 제일 예쁜 걸 끄집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시인처럼.

야클 2005-11-27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여기 있는 걸 알면 그 누군가 과연 기뻐할까!"를 생각하게 돼요.
아, 잠 너무 많이 자서 머리가 묵직한 일요일. 운동하러 가야지~~~ ^^

날개 2005-11-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간에 여기서 로드무비님 글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래요...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점심..(시간이 벌써....ㅎㅎ)

싸이런스 2005-11-2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말은 저에게 필요한것 같아요. 해주셈 앙!

로드무비 2005-11-27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싸이런스님이 이렇게 있다는 걸 알면 누군가 아주 기뻐할 텐데요.^^

날개님, 양귀비가 부럽지 않은 저녁, 이라고 했으면 저 삐졌을 거예요.
왜 이리 요즘은 늦게 오시나? 아예 안 오시기도 하고...^^

야클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ㅎㅎ=3=3=3
잠 많이 자서 묵직, 술마시느라 잠 못 자서 묵직.
님의 머리도 가벼울 때가 있어야 하는데...^^

검둥개 2005-11-2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스웨터, 골덴 바지, 단발, 이거 저 아닌가요? ^^ 용모는 다 갖췄으니 이제 화려한 젊음만 복구하면 되는데 음, 음음...

로드무비 2005-11-2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니 제가 지금 그 시인의 그때 허름한 모습과 흡사한 것 같아요.
청바지 대신 골덴바지만 꺼내 입으면...
검둥개님도?^^

검둥개 2005-11-2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요. 멋져요!!! 자, 이제 "핫바에서 풍겨오는 이 그윽한 인생의 냄새~~"를 시구로 제게 시 한 수만 지어주시면 바루 그 멋진 시인분의 반열에 오르실 수 있어요. ^^ =3=3=3

Phantomlady 2005-11-2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60대에도 남자친구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서예가가 넘 부러워요
아, 이러면 속물인가요? ㅎㅎ 저도 오래도록 애인이 없다는 열등감으로
내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이 되지만 아주 가끔은
이기지 못할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을 때도 있답니다. 다행이죠.
그런데 타인 속의 제일 예쁜 것을 꺼내는 즐거움도 좋지만 타인 속의 제일
미운 것을 꺼내 놀려주는 심술궂음도 좋더라고요. 마치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처럼 말이예요. ㅎㅎ
전 일요일 일하러 나와서 그런지 절세미녀 양귀비가 부러운 나른한 오후예요.

로드무비 2005-11-27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인 없는 별로 안 예쁘고 화사하지도 않은 시인이나 소설가보다
60대에도 연애와 자신에게 도취된 여인이 귀엽긴 하더군요.
스노드랍님, 일요일에도 일이라니, 에구.^^

검둥개님, 전 이미 그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걸요.=3=3=3

하늘바람 2005-11-2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뇽. 전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좋은 시는 시로만 만나야지 시인을 대면하면 서먹하고 그다지 마음이 와닿게 되지 않더라고요

sudan 2005-11-2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없이 추천만.

로드무비 2005-11-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반갑고 고맙고......^^

하늘바람님, 시인을 직접 만나보신 적이 있으시군요.
뭐 그런 면도 있겠죠?^^

urblue 2005-11-2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 그 말을 들려주고 싶으신 걸까요? ㅎㅎ

로드무비 2005-11-2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가 있다오.('' )

비로그인 2005-11-2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따라 말없이 추천..은 하고 가지만 약간 얼이 빠진 상태로 웃고 있삼!!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저니까요!! 음홧홧홧!!

로드무비 2005-11-2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아심시롱.^^*

2005-11-28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