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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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있다보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렵다.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에 한편 한편씩 읽어내려가다보니 이제서야 다 읽게 되었다. 천천히 읽어내려가면서 요즘 참 행복했다. 내가 처음 김영하(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만났을때, 혹은 박민규(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만났을때의 그 느낌처럼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80년생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물론 그의 재치나 위트는 70년대나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겁지도 그러나 결코 가볍다고 치부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게다가 그는 걸걸한 입담을 가진 여자라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더한 호기심과 더불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좋았으나 특히나 맘에 끌렸던 것이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노크하지 않는 집>이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주인공은 간단한 생필품을 편의점에서 구입한다. 갈적마다 친한척 인사를 건네는 편의점 주인이 부담스러워 가깝지만 다른 편의점을 이용하기도 하고 콘돔을 구입할때 신분증을 요구해 사람을 무안하게 했다는 이유로 정확하게 계산만 하는 편의점으로 옮긴다. 하지만 주인공은 한번도 친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하지 않는 그가 실은 자신을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는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물건만을 팔았던 것이다.

  "저......아시죠?"/ 그는 도시락을 쥔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이 근처 사는......항상 제주 삼다수랑, 디스플러스랑 사갔었는데......"/ 청년이 계속 모를 듯한 표정을 짓자, 나는 조바심이 났다./ "깨끗한 나라 화장지랑, 쓰레기봉투는 꼭 10리터짜리만 사가고, 햇반은 흑미밥만 샀는데......모르시겠어요?"/ 그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취중에 함께 하룻밤을 보낸 여자를 기억해내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삼다수나 디스는 어느 분이나 사가시는데요."(p.50~51)

<노크하지 않는 집>에는 다섯명의 여자들이 살고 있다. 주인공은 처음 이사를 들어 올때 다른방 사람들과 공동생활에 대한 협의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섯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길 바라는듯 행동한다. 화장실이 아무리 급해도 전 사람이 자신의 방으로 완전히 들어간 것을 확인해야만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속옷과 신발이 없어지고 다른 방에 대한 호기심으로 열쇠공을 시켜 열어 본 방은 자신의 방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열쇠까지 똑같은 다섯개의 방. 도시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저물어가는 2005년에 신선함을 선사해주는 작품과 작가를 만나서 여간 즐거운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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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보고싶어서 찜해놓고만 있는데 재밌을 것 같네요. 일단 보관함에 넣어놓고 다시 소설이 보고싶어지면 봐야겠습니다. ^^

꿈꾸는섬 2006-01-0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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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다. 근 5년만에 발표했다고 한다. 그동안 글쓰기가 버거웠다고 한다. 여자는 전업작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아내와 엄마의 생활을 함께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에서 보낸 1년동안의 생활이 이 소설 안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소설이니 허구이다. 하지만 그저 주변의 잡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였다.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이방인-한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연작소설집이다.

<빈 들의 속삭임> <네게 강 같은 평화> <귓가에 남은 음성> <섬> <열쇠> <별들의 들판>에서 베를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게 강 같은 평화>에서 영명이 열어본 수명의 일기-가혹했던 이념에 대한 고문, 그로 인해 고국을 떠나 비참하게 살아야만 했던-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 남은 음성>에서 힌츠페터 기자의 비디오를 통해 1980년대의 시대상황을 보여주었고 거기에서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열쇠>에서는 독일의 방문은 밖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열쇠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을 소재로 자신들의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재미있었다. 가장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은 것을 아무래도 <별들의 들판>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을 통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 나선 수연, 그래서 가게 된 베를린, 그곳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난했던 시절 인력수출을 통해 경제 성장을 꾀하던 국가 정책에 따라 간호사로 광부로 독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빈 들의 속삭임> <섬>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빈 들의 속삭임>에서는 남편과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딸을 버리게 된 엄마가 자살 후유증으로 실어증을 앓고 있는 딸에게 처음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에 공감했다. <섬>은 주변 사람의 죽음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얘기한다. 힘겹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살아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지영 소설이 통속적이고 감성적이라 비판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재미없는 작품은 없었던 듯 싶다. 이번 소설책도 마찬가지로 재미가 있다. 게다가 내가 살았던 그 시절 그때의 어른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몰랐다. 뉴스에서 나오는 대학생들의 데모장면을 보며 혀를 끌끌차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가 크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전쟁을 겪었던 아버지 세대에게는 빨갱이라면 반대해야하는 존재가 틀림없었고 우리 사회가 언론이 그들을 그렇게 매도했던 것이 사실이기에 사실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386세대라고 하는 그때의 그 사람들이 지금은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돌아올 고국이 정말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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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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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받아들기 전 읽었던 심사평을 통해 무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궁금중을 해소하게 되었다. 임철우 선생님은 이 소설을 특별하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은희경 소설가는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관을 벗어나 있다고 했고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이 소설의 경계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고 했다. 아니 소설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었다고 했다. 내가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이들의 심사평 그대로이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읽어왔던 다른 소설들과 분명히 다르다. 기존의 틀을 깰 수 있는 것,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술자의 능수능란한 말솜씨는 변사가 심파극을 이끌어가는 듯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내용을 소설 속에 담아 놓기라도 한듯 중간중간 서술자의 입심이 느껴졌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아마도 특이한 등장인물의 구성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한다. 덩치가 엄청나게 커서 여자라고 보기에 힘든 춘희, 얼굴이 못생겨 시집도 가보지 못한 추레한 노파, 거시기만 엄청나게 큰 반편이, 벌을 몰고 다니며 백발이 성성한 애꾸, 서커스단에 있었다는 쌍둥이 자매, 그들이 키우는 점보 코끼리, 부둣가 최고의 역사 걱정,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인 칼자국, 독한 비린내를 죽어서도 풍기는 생선장수, 냄새없는 냄새를 풍기며 남자를 사로잡았던 금복(게다가 나중엔 남자가 되어버리는) 등등 이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거나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결국에 얘기하려고 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생긴다. 추레한 노파의 세상에 대한 복수극이라고 해서 평대마을이 모두 불에 타고 극장에서 천여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게 되지만 그것이 왜 노파의 복수라고 하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니 남자들로부터 소외받은 한 여자가 세상 남자들로부터 유혹당하고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한 금복에 대한 복수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평생 모아 온 돈을 한푼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게 된 원한에서 자신의 돈으로 사업에 성공하는 금복에 대한 복수인 것인가? 그 해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이 소설은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는 않는다. 당혹스럽고 토할 것 같은 교도소 생활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교도관의 얼굴을 물어 뜯어 괴물의 모습을 만들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좁은 감방에 돼지처럼 사육하는 교도관 등 상상만해도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것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닐까 한다.

금복이 산골마을을 떠나 바닷가로 갔을 때 처음 보게 된 '고래'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한 것처럼 이 소설의 기이함이나 괴기스러움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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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 in Paris 파리의 스노우캣
권윤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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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들었다.

'파리'하면 왠지 낭만적이다. 그 이름부터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은 이미 파리로 떠났다. 지하철을 타고 거기에서 만난 악사들의 연주에 흠뻑 취해 보고 싶고 퐁피두 광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보고 싶다. 그리고 스노우캣이 들렀던 멋지고 예쁜 카페에 앉아 차도 마셔보고 싶다. 또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아름답게 기억될 파리의 거리를 누비며 걸어 보고 싶다. 그 거리에서 인베이터 그래픽 타일 조각을 숨은 그림 찾듯이 찾아 보고 싶다. 퐁데자르를 보며 한가하게 산책도 해보고 싶다.

에펠탑과 노틀담과 루브르박물관, 몽마르트, 세느강......정말 가고 싶은 곳이 많은 곳이다. 책으로 그림으로만 보던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다. 피카소의 그림 앞에 누워 볼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세잔, 르누와르, 마네, 모네, 드가, 고갱, 고흐......이들을 만나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스노우캣의 뒤를 쫓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가끔 사는게 힘들고 지칠때 꺼내보면 좋을 것 같다. 마음 한편에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서 너무 반갑고 기쁘다. 당장 파리로 떠날 수는 없지만 여유롭게 파리를 느껴 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편안한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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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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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화제작은 단연 <다빈치 코드>가 아닐까한다.<다빈치 코드>를 재미있게 읽고 추리소설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단테클럽>이었다. 그런데 술술 잘 읽혀 나가길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달리 책을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자꾸만 놓고 싶어졌다. 도입부분에 많은 장치들을 놓아두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뜸을 들였던 것일 수도 있다.


영미문학을 주름잡았던 롱펠로, 로웰, 홈스, 필즈, 그린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을 모태로 한 살인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는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중반쯤 가서 두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점차 인물들의 사고와 활동이 구체적으로 서술되면서 흥미진진해졌다. 그냥 그대로 책을 덮었다면 아마도 더 후회했을 것이다.


게다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정말 의외의 인물이였으나 그에게는 정말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명분있는 전쟁이였으나 전시중에 그 명분은 사라졌다. 전쟁으로 파괴된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구성이 별로고 재미도 없고 베스트셀러에서 밀려났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보았을 때는 구성도 탄탄했고 작가의 지적 역량도 풍부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호흡이 너무 길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그리고 번역이 엉망이라기 보다는 오탈자가 많았다. 교정 보는게 조금 지루했는가 보다.


여하튼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본다면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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