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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을에 한번 와 볼라요? - 제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9
고재은 지음, 양상용 그림 / 문학동네 / 2004년 7월
평점 :
이 책은 강마을에 살고 있는 한 아줌마가 들려주는 형식의 이야기로 광주의 사투리가 질펀하게 묻어나오는 동화책이다. 전라도 사투리라 경상도에서 자란 내가 들어 왔던 사투리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만 이질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종종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사투리를 섞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읽어주는 것을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한다. 특정 지방에서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쓰이는 말들이지만 평소에는 표준말만 듣다 보니 사투리 자체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엄니, 오늘 핵교서 용의 검사를 헌다 안 허요. 그래 어제 손톱도 자르고, 목도 씻겄소."
"오메, 손톱만 자르믄 뭣 허냐? 때가 덩얼더얼하구먼. 빤스나 갈아 입고 가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디, ~제, ~냐, ~거여, ~능가, ~당게 같은 어미로 끝나는 문장이 나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동감 있는 입말이 주는 현실감과 재미에 푹 빠져 들었다. 더구나 책을 읽고 나니 생각에도 말에도 사투리가 절로 툭툭~ 튀어나오려고 하지 뭔가. ^^ 다만 아이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읽어주어 보니 늘상 듣던 말투와 단어가 아니어서인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어려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재미없어 하는 것은 아니고, 자기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투리가 나오면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곤 한다. 큰 아이는 학교를 핵교로 발음하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다고 하였다.
등장 인물들인 강마을 주민(어른, 아이, 그리고 개, 닭까지~)들의 개성과 특징도 이야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마음 좋은 탓에 빈 집 문 닫아주러 갔다가 졸지에 도둑으로 몰렸는데도 암 말로 못하던 독바우 어매, 그리고 어매만큼이나 마음 좋고 순해서 남 안되는 것을 못보고 지나쳐서는 결국 자기만 손해 본 꼴이 되어버리는 독바우... 독바우가 "정월 초하룻날 닭장 밖에 있는 닭을 보면 일년 내내 재수가 없다(강마을의 격언~)'고 돌아다니는 닭을 마을 사람 눈에 안 띄게 쫓으려 하루종일 후닥닥 거렸다니, 참 우직하고 마음 좋은 동무구나 싶었다.
이야기의 시대적인 배경이 6,70년대인데 이 시기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때였다. 그래서인지 동네 이장이 순사 모자보다 더 무섭다는 '새마을 모자'를 쓴 광필 아배의 기세는 대단하다. 그런데 어찌나 인심 사납고 밉살스럽게 구는지 나도 강마을 주민들만큼이나 광필 아배가 싫어졌다. 아들이 입바른 말 했다가 친구에게 얻어맞자 그 아이네 집에 찾아와서느 새마을 지도소에 보고한다고 하다니, 밴댕이 소갈머리를 지닌 사람이 아니던가... <암소는 안다>편에서 광분한 암소가 도망가는 광필 아배를 쫓아 그 집 논에 들어가 겅중거리는 바람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가 바로 광필 아배네 암소지 뭔가! 어찌나 고소하던지... ^^;
현대로 접어들면서 도서, 신문, TV 등의 미디어의 발달 및 교육을 통해 표준어가 광범위하게 전파되면서 사투리가 점차 우리 생활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긴 해도 아직까지는 한 지방에서 십여년 넘게 살다 보면 그 지방의 특색이 살아 있는 사투리가 저절로 입에 익히게 된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서 다른 지역에 가거나 타인과 말을 나눌 때는 표준말을 쓰다가도 고향에 가거나 가족나 이웃, 한 동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무의식 중에 사투리를 사용하게 된다. 나 역시 표준말을 구사하지만 친정 식구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사투리가 저절로 튀어나와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버린 고향 사투리는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불쑥 자신의 존재를 알려 오지 않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