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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로 - 서돌 어린이문학 01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지음, 이강 그림, 국지수 옮김 / 서돌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열 한 살의 사내 아이, 쏘다니기를 좋아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은 쏴 보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마틴은 여느 때처럼 가장 좋아하는 산책 장소를 걸어가다가 한 마리의 개를 발견한다. 그 개가 평범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손만 내밀어도 기겁을 해서 움츠러들고 짖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이 개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주인에게 학대받고,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개...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겁을 내고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개는 마틴의 휘파람 소리에 반응하여 갑작스레 아이에게 다가와 애정을 표현하는데,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이런 훈련을 받았던 모양이다. 마틴과 후에 '샤일로'라는 이름을 지어 준 개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개의 주인은 아이가 매우 싫어하는 '져드'라는 이웃 아저씨로 작은 동물을 사냥하려는 목적으로 개를 키우지만 애정을 가지고 대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다며 필요할 때는 휘파람을 불거나 발로 차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그에게는 그 개가 사냥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할 뿐인 것이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도 할 줄 안다는 말이 있다. 네 살 때부터 허리띠로 맞고 자란 사람에게서 동정과 연민, 사랑 같은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샤일로를 거칠게 대하는 져드가 밉기 하지만 마틴처럼 왠지 그가 안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샤일로가 두 번째로 아이의 집 근처로 온 날, 마틴은 샤일로를 돌려보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숨겨야 하고 필연적으로 이런 저런 거짓말을 하게 된다.
-순 거짓말.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삶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아이도 거짓말을 시작하면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겪으면서도 부모에게조차 사실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 샤일로를 져드로부터 구해내려는 결심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샤일로를 안 날부터 마틴은 안타까움, 슬픔, 갈등, 심적인 고통 등의 다양한 심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허기를 참거나 병을 주우러 다니는 등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을 겪지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통해 아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야에 다른 집 개에게 공격 당한 샤일로를 병원으로 데려다 놓고 오던 날, 아버지는 아이가 옳은 일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아이는 옳은 일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과연 그 상황에서 옳은 일 무엇일까? 자기집 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개가 주인의 발에 차여 죽거나 말거나 그냥 두는 것일까? 아버지는 "법"을 이야기하신다. 물론 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규범이므로 지켜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나 가끔은 법이 너무 멀리 있어서 보호해 줄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샤일로를 져드씨로부터 구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급하기만 한데 아버지는 아이에게 일침을 가한다.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동안 다른 집 마당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개를 몇 번이나 봤니? 손잡이처럼 옆구리의 갈비뼈가 툭 튀어나온 걸 보고서 그 개들이 행복한지 아닌지 몇 번이나 생각해 봤냐구? 넌 그저 갑자기 마음을 끄는 개가 눈앞에 나타나니까 당장 마음이 바뀐 것뿐이야."
마틴은 뭐든 처음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지금껏 여러 개를 보아 왔겠지만 샤일로처럼 눈을 맞추고, 보다듬어주고, 그의 애정과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 개는 지금껏 없었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사냥을 눈감아주고 노동으로 댓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샤일로에 대한 값을 치르기로 한 마틴이 져드씨의 비웃음과 증폭되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을 해낸 것은 샤일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틴에게는 "그 갠 이제 네 개다"라는 져드씨의 말이 천금을 얻은 것만큼이나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었을 게다....
-동물들을 먹이고, 아파도 수의사에게 데려갈 돈이 없다면 동물들을 집에서 키울 자격도 없는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거야 사실 지당한 말이 아닌가.-
나는 이 말에 절대 공감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키울 자격도 없는 사람들-신체적인 학대를 하거나 굶주리게 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게 대하는 등-이 개를 키우거나, 키우다 귀찮다고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전에 <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보림>라는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지만, 동물들도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으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른지 벌써 몇 년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집은 개를 키운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개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아니, 예전엔 오히려 사람보다 개를 더 위한다고 주위 사람의 눈총과 타박을 받았을 정도로 개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 내가 아이들이 조르는데도 불구하고 키우려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개를 키울 여건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몇 걸음 뛰어다닐만한 공간도 없는 협소한 우리 집에서 키우는 것은 오히려 동물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아이들을 단념시키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이 이젠 개를 잘 돌봐주고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된 지금, 나에게는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날마다 개를 산책시키고, 씻기고,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주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접종도 시키는 등 예전에 동물에게 기울였던 그런 애정을 기울일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내가 다시 개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날이 언젠가는 다시 오리라 나 자신이 기대를 품고 있다.
뒷 편에 실린 <샤일로의 숨은 이야기>를 읽고 나니 문득 초등학생 시절 놀이터에서 놀고 돌아오는 우리 형제들을 졸졸 따라 온, 그래서 한 식구가 되었던 강아지 '몽몽'이 생각난다. 계단을 오르내릴 줄도 몰랐던 그 녀석을 훈련이랍시고 층계를 오가는 훈련을 시키고는 날렵하게 오르내리는 모습을 얼마나 대견하게 보았던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서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찾고서야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그 녀석의 몸뚱이는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층계를 오르내리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화근을 불러들인 것이라 여겨져 내내 그 녀석에게 미안하고 속이 상해서 몇 날 며칠을 울었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귀여워했던 몽몽... 지금도 그 녀석은 내 기억 속에 자그마하고 하얀 털복숭이 강아지로, 나를 반기듯 연신 꼬리를 흔들어 대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