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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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게 모르게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이나 성추행에 노출되어 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안에서 고의로 더듬는 사람, 으슥한 골목길을 따라와 덮치는 사람, 직장 상사나 동료, 이웃 사람, 친척, 의붓아버지 등등……. 그런데 유아든 어른이든 성추행(폭행)을 당한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을 한 것 마냥 쉬쉬~ 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주위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알 수 없는 냉담함, 아이의 미래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가 무서워서이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죄를 지은 것 마냥 숨기고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암울하다. 그리고 비록 그 피해 사실을 주위에 숨긴다 하더라도 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가슴에서 그 사실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는 힘들 것이며,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그 일을 어떻게 여기는지, 당사자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진과 유진>은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학생이 어릴 때 유치원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각기 다른 기억을 지니게 되기까지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사건이 있었던 무렵의 일을 큰 유진은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때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작은 유진에게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은 목욕수건에 아프다고 울다가 엄마에게 뺨을 맞고, 사람들에게 측은한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눈길을 받은 기억만 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왜 때려야 했던 것일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몰랐던,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책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내가 제대로 보호를 하지 못해서 자식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런 심정이 아니겠는가 싶다. 속상한 마음에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다그치고 화를 전가시키는 것이 오히려 그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그런데 한 사람, 큰 유진은 가족들의 사랑으로 큰 고통 없이 극복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아예 그 사건을 기억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큰 유진과의 만남을 통해 작은 유진도 점차 기억 속에 묻어버렸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은 유진이 그 일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를 강요한 것은 엄마였다. 때리면서, 살갗이 벗겨지도록 아프게 때밀이 수건으로 씻기면서, 잊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고 협박하면서 작은 유진에게 잊을 것을 강요한 것은 엄마였고, 냉대의 시전으로 대한 것은 주위 가족들이었다. 작은 유진 곁에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티에리 르냉이라는 작가가 쓴 <운하의 소녀>라는 작품에서 '사라'라는 여자아이가 지닌 인형에 대해 나온다. 벌거벗겨져 있고, 배에 라이터로 지진 흉터가 있으면 머리카락이 흉하게 잘려져 있는 인형의 모습이야 말로 바로 감추어져 있던 사라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작은 유진이 인형 목을 자르고 다리를 찢은 것도, 유진이 인터넷으로 찾아 낸 사례에서 나오는 아이가 인형에게 한 행동도 인형을 통해 상처 입은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인 것을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하고 무조건 덮어서 가리려고만 하는 것일까.

 비록 부모가 사랑으로 아이를 다독거려 주었더라도 주위에는 ‘그런 일을 겪은 아이는 문제가 있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이 나서서 성추행 문제를 해결했으면서 큰 유진을 자신의 아들과 거리를 두게 하려는 견우의 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지만 이로 인해 큰 유진은 또 한번의 커다란 상처를 입었지 않은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 아이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인데...

 요즘도 간간히 유아들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곤 한다. 딸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기사를 접할 때면 분노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늘 불안해한다. 기사나 보도를 접하는 날에는 특히나 더 아이들에게 누가 몸에 손을 대게 하지 말라는 당부를 곱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제발 아이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아닌 주위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 평생을 지고 갈 커다란 상처와 그림자를 안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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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3-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정말 아쉬운 책이었어요. 우연의 남발도...
그런데도 좋은 책이었지요. 어른들이 많이 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딧불,, 2005-03-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근소근)별언냐는 그냥 서점에서^^;;

바람구두 2005-03-0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좋은 책에 좋은 서평이네요. 추천추천,,,,
 
우포늪엔 공룡 똥구멍이 있다 작은도서관 5
손호경 글 그림 / 푸른책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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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포늪에 있는 구멍이 공룡의 똥구멍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 속에 늪지대의 생태와 환경과 관련된 문제들을 적절히 배합시켜 놓고 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푸름이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아이로 우포늪과 친구 마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푸름이와 마루는 우포늪에 있는 공룡 똥구멍이 언젠가는 방귀를 낄 것이라는, 그리고 잠꾸러기 공룡이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 기대를 품고 있다. 그리고 호박이 누렇게 익을 무렵이면 돌아오신다며 막노동을 하러 떠난 아버지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라도 호박이 빨리 열리라고 자신의 오줌을 비료삼아 주곤 한다. 작가는 푸름이 아버지를 통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농, 어촌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환경 문제는 농약문제, 가축농장의 인분 처리문제, 밀렵꾼 등에 관한 것으로 새로 이사 온, 동물 병원의 의사이신 선호 아버지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솔직히 나 같아도 외지에서 온 사람이 갑자기 환경을 걱정해야 한다며 이 일 저 일 간섭한다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우포 마을 사람들처럼 그다지 좋게만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 깨끗함을 보존하는 일이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사전을 찾아봐야 아는 선호아버지보다는 우포늪에 대해 더 잘 아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푸름이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그 일에 앞장선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환경을 걱정하고 사람들을 계몽하려 애쓰는 선호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포늪은 예전부터 공룡 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이 지명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 강변 근처에서는 살아봤지만 늪지대는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떤 생태를 간직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지라 이 책의 글과 그림에서 보이는 풍경을 통해서나마 짐작해 본다. 우리 아이들은 포함하여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이런 자연의 모습을 일상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우포늪에 살고 있는 식물이나 동물의 세밀화들로, 도감에서나 보던 것들을 동화책에서 보니 색다른 맛이 느껴지고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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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05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점 정리가 명징한 서평을 올리셨군요. 오늘 님 서재에서 마음을 다독거리고 갑니다.^^

아영엄마 2005-03-05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파란여우님의 평이 더 멋집니다. '명징'!
 
늑대왕 핫산 낮은산 어린이 4
백승남 지음, 유진희 그림 / 낮은산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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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자 눈에 들어오는, 막 퇴근해서 문간에 들어서는 아빠.  그 표정이 너무나 지쳐있고 기운이 빠진 모습이다.  무척 피곤한가보다, 얼른 누워서 쉬고 싶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아빠를 기다리던 산하와 강산이는 그저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이 좋은 모양인지 매달리며 늑대가 된 아빠의 등에 타고 노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기어 다니며 늑대 울음소리도 그럴듯하게 낼 줄 아는 진짜 늑대왕 아빠이니 얼마나 실감나고 신이 나겠는가! 문득 '함박웃음을 머금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피곤한 아빠도 그 순간만큼은 기운이 나고 신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본 큰 아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부러운 모양이다. 애들 아빠는 한 달에 쉬는 날이 하루나 이틀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대개 밤 12시나 되서야 퇴근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 시간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요일에는 산하 아빠처럼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오늘은 회사가지 말고 우리랑 놀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두고 또 출근을 한다. 피곤에 절은 남편을 보면 안쓰럽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가족과 함께 구경도 다니고 놀아주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이제 내가 발목에 앉히고 쿵덕쿵덕 방아 찧어주거나 비행기를 태워주기에는 너무 버겁다. 두 아이 다 서로 해달라고 달려들 때면 '아이 아빠가 있으면 사이좋게 두 딸 아이를 한꺼번에 즐겁게 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특히나 더 들곤 하는 것이다.  

 

 '과로사'로 쓰러져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등진 아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작별인사도 못한 채 남편을 보내고 졸지에 미망인이 된 아이 엄마의 심정은 또 어떨까! 산하의 눈물 젖은 얼굴과 강산이를 보니 우리 아이들 또래라 이 책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아빠 몫까지 해야 하는 엄마,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 또한 많이 고단해 보인다. 그리곤 집에선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고 안 계신 집에 들어가는 것은 참 쓸쓸하고 허전한 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내내 직장을 다녀서 자주 텅 빈 집에 들어서곤 했던 날이 많았던지라 이 아이들의 외로움을 알 것 같다.

 

 아이들이 그린 늑대 그림. 애초에 아빠를 그리려 했던 그림이라서 일까, 아니면 진짜 늑대왕 같았던 아빠가 아이들이 못내 그리워 다시 찾아 온 것일까?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의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빠가 아이들을 등에 태워 기어 다닌 것 마냥 아이들을 자신의 등에 태우고는 밤하늘을 날아 엄마가 계신 공장으로 향한다. 아빠의 뼛가루를 뿌린 곳에도 가본다. 두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밤 시간이 늑대왕 핫산 덕분에  덜 힘들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강산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 보챌 때 산하는 아빠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아빠의 뼛가루를 날려 보낸 바람이 늑대왕 핫산도 데려가 버린 날, 산하는 또 한 번의 이별을 한다. 아빠도 늑대왕도 하늘나라에서 이 두 아이를 오래 오래 지켜봐 줄까? 책을 덮으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뜨거운 용광로 근처에서 날마다 야근, 철야를 해가며 고생하느라 곳곳에 화상자국을 달고 다니시던 아버지. 한 번 편히 쉬어보지 못하시고 과로로 얻은 병으로 힘겨운 일 년을 보내시다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끔 '가족을 염려하던 아버지가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계실까?'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아버지, 엄마가 힘든데 하늘에서라도 좀 도와주세요.'하고 혼자 속삭여보기도 한다.

 

 아버지는 한 가족의 기둥이라는 말,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더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지금 나와 두 딸아이의 기둥은 우리 남편이다. 애들 아빠도 가족들을 위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자기 몸 생각도 해가면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하 아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만 남겨두고 가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을 본 아이는 우리 아빠가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단다. 오래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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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03-0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슬픈 현실입니다~ 아영엄마님 힘내세요~
 
그리고 네가 태어났단다 꼬마야 꼬마야 9
레이첼 이사도라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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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럴드 맥더멋의 작품인 <하늘과 땅을 만든 이야기>이라는 그림책도 세상이 만들어진 천지창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책은 같은 내용이되 좀 더 연령층이 낮은 영아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다. 몇 페이지는 단어(빛, 하늘, 땅과 바다, 태양 등) 위주로 나오고, 대부분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어주는 책이 아니라 엄마가 영유아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보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처음부터 '아기'의 모습이 등장하고 아기들의 모습들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 천국과 먼지만 존재하던 시기에 존재하는 아기들의 모습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 어둠 속에서 아기들은 부유하듯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형상이다(솔직히 조금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아기들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예비되어 있다는 뜻일까?

 앞서 언급한 책이 창조의 과정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 과정을 그림에 담고 있다면 이 그림책은 세상이 창조되는 것이나 '아기'의 존재가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하늘이, 그리고 땅이 생겨 난 것만큼이나 아기 한 명 한명의 존재가치가 큰 의미,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아기를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살펴보면 빛이 생겨난 것을 보여주듯 아기를 눈부시도록 환히 비추고, 하늘의 구름 위에 아기(흑인)가 앉아 있다. 땅과 바다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아기들이 바닷가에서 무리지어 놀거나 헤엄치고 있다. 날아오르는 한 장의 나뭇잎을 잡으려는 아기, 금빛 태양을 받은 아기, 세 명의 아기가 각각 달과 별이 자리 잡은 하늘 위와 다양한 생명이 존재하는 바다에서 노닐고 있다. 어디론가 뛰어가는 동물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아기 등등.. 본문에서 아기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은 아기를 밴 엄마와 아빠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장면이다.

  다양한 인종의 아기들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흑인 아기도 등장하긴 하는데 솔직히 백인 아기들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후반부에 나오는 부부도 그렇고, 태어난 아기를 어르는 엄마도,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도 모두 금갈색의 머리색을 지닌 백인인지라 그 점은 좀 불만스럽다. 아기의 소중함과 함께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부모가 함께 해주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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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2-2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을 읽으면서 대하게 되는 것들이고 고민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정말로 백인지상주의구나.
실상 황인족도 다 백인처럼 그려진 것이 현실이잖아요.
가끔 생각합니다. 살색이라는 것이 없어졌다곤 하지만 아이들도 이미
백인의 색에 대한 컴플렉스에 익숙하다구요. 제 피부가 통상 말하는 검은 빛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참 하얀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생각이요.

책읽는나무 2005-03-01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종얘기를 들으니 말인데요!
저도 오늘 문득 이상한점을 발견했어요!
아이와 함께 텔레비젼을 보는데 마침 예전에 보았던 <톰과 제리>만화영화가 방영되길래 신기해서 한참 보고 있었는데...그집주인 여자가 등장을 하더군요!
거의 발아래부분밖에 안나오던데...헌데 주인여자가 흑인이더라구요!
전 오늘 그걸 깨달았어요!
흑인이라는 그점이 제눈엔 좀 거시기하게 비치더군요!
웬만해선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데...생쥐가 들락거리는 집이라서 부러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고...만화가가 흑인이었나? 라고도 생각했지만..전 전자가 아닌가? 란 생각을 했어요!
책 이야기와 좀 거리가 멀지만..갑자기 생각이 나서..^^
 
음악을 사랑한 늑대 0100 갤러리 11
마샬 아리스만 그림, 크리스토프 갈라즈 글, 차미례 옮김 / 마루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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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외딴 숲 한 쪽에 위치한 농가에서 엄마, 아빠와 살고 있는 애니라는 소녀는 교수님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운다. 아이는 악보를 볼 줄 몰랐으나 바이올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좋아한다. 어느 날 이야기를 해달라는 애니에게 엄마는 늑대가 할머니와 소녀를 잡아먹었다는 '빨간 모자' 이야기책을 보여준다.

- 맨 마지막에, 엄마는 늑대가 책 속의 소녀를 잡아먹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를 잡아먹기 전에, 소녀의 할머니도 잡아먹었다고 했습니다. 애니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늑대는 사회성을 가진 영리한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편견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동물이다. 옛이야기 책에 묘사된 늑대의 모습은 대게 약자를 괴롭히고 잡아먹는 나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전에 늑대와 관련된 글을 찾아 본 적이 있는데 중세시대에 늑대가 마법사와 관련이 있는 동물이라는 미신, '늑대인간' 같은 속설들 때문에 나쁜 동물, 죽여야 할 동물로 인식되어 무수한 늑대들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편견으로 인해 희생된 한 예일 뿐이다.

빨간 모자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애니는 바이올린을 들고 들판을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어 숲 속으로 향한다. 산책을 하려고 했는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갔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처럼 '그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까? 어두워질 무렵 심심해진 애니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회색의 무언가가'를 보지만 지친 탓에 그 곳에서 잠이 든다. 자신을 찾으러 온 경찰관이 늑대를 보지 못했냐고 묻고서야 그것이 늑대인가 싶었을 테지만 애니는 그저 '늑대가 음악을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어른들에게는 늑대는 사냥해서 없애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총성이 들린 후 몰려 온 사람들이 죽어 있는 동물을 현관 바닥에 내던진다. 두 눈에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는, 슬퍼 보이는 동물을.... 애니는 자신의 곁을 서성였을 늑대보다 사람들이 사방을 비추어대며 헤집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작은 소녀가 아닌 애니는 여전히 농가에 살면서 매일 그 곳으로 산보를 간다. 그녀에게는 오래 전의 그 모습이 여전히 살아 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가 슬프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슬픔'보다 '잔인함'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할퀸다.

-애니는 그 발톱과 그 배, 등에 난 털과 그 머리가 눈에 선합니다. 두 눈에서 흘러 내리던 그 무엇까지. 그 잔인함, 그 슬픔, 그 감미로움, 그 외로움.

동물들은 감정이 없을까? 동물들은 음악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까? 동물들도 우울증에 걸리면 자살을 하고, 식물도 음악을 틀어주면 성장이 촉진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오직 인간만이 감정을 지닌 존재로 그러한 특권을 누릴 줄 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동물들도 고통을 느끼고, 슬퍼할 줄 아는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간은 그동안 너무나 모른 척하고 살아왔다.

'편견'으로 희생되는 것은 늑대 같은 동물들만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을 안고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고, 때로는 편견의 대상에게 어떤 해가 갈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새로운 편견을 만들어 내는데 동조하기도 한다. 아무런 편견을 지니지 않은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자라면서 부모, 친구, 사회, 활자 또는 영상 매체 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그릇된 정보나 사람들의 말속에 심어진 편견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이에게도 똑같은 편견을 가질 것을 강요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공정하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려면 우리 어른들부터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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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0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도 희생되는 동물중의 한 종이죠....슬픔보다는 잔인함이 더 먼저 생각난다는 글귀가 기억에 남습니다. 동화보다 더 멋지고 힘있는 서평이군요^^

아영엄마 2005-03-05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커서 아이들의 책을 읽고서야 늑대를 '나쁜 동물'로 규정지은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가끔 인간이 잔인한 종족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