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마을에 서커스가 왔어요 ㅣ 미래그림책 37
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가을이 오자 온통 누런빛으로 물든 파구만 마을의 전경은 논에 벼가 다 익어 여기저기에서 추수를 하느라 바쁜 농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남정네들은 밭에서 밀을 추수하고 머리에 두건을 쓴 아낙네들은 다리 밑에서 빨래를 하거나 집에서 빵반죽을 만드는 등 분주한 일상에서 전쟁의 그늘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특히 서커스가 와서 신이 난 탓에 아이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어려 있다. 얼마나 평화로운 전경인가.... 그러나 그 밝은 모습의 뒷 켠에는 전쟁에 나간 뒤 소식이 없어 슬픔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전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에서 야모의 형이 전쟁터로 나간 것이 언급된다면 이 책에서는 밀라드의 아빠가 전쟁에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글이 나온다. 사람이 죽고, 건물이 파괴되는 등 전쟁이 몰고오는 고통은 무수히 많다. 전장에서 전투를 벌이는 당사자도 고통을 겪지만,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사랑하는 사람들 전쟁터로 떠나보내고 뒤에 남겨진 사람 또한 많은 고통을 겪는다. 그렇기에 야모도, 밀라드도 전쟁이 낳은 피해자인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밀을 베고 고구마를 캐며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커스 공연을 기다린다. 빙빙 돌면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회전 열차와 회전 그네..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 있는 최신식 놀이기구에 비교하면 엉성하고 초라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이를 타고 신나고 즐거운 아이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수수께끼의 철인과 불을 뿜는 공포의 사나이도 나온다니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요금은 손님 마음대로!! 오호~
볼거리가 변변치 않던 시절, 우리네도 마을에 서커스단이 도착하는 날이면 커다란 잔치라도 벌어진 것 마냥 마을이 떠들썩해지곤 했다고 한다. 막대기 하나만 들고 위태위태하게 외줄을 타는 사람, 공중그네 묘기, 막간을 이용한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연기 등.. 이 책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쌀과자, 쿠키, 초콜릿 같이 맛있는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 장난감 기차, 바람개비 등을 파는 장난감 가게와 야모와 밀라드가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오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마냥 즐거워하는 야모와 밀라드처럼 서커스를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다들 웃음이 어려 있다. 그러나.. 다음해의 풍년을 약속하는 눈이 내리던 그 해 겨울, 파구만 마을은 파괴되고, 마을은 텅빈 채 사람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토록 평화롭고 활기차던 마을이 사라진 것은 짧은 순간이다. 그림책 전반에 걸쳐 마을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 후 마지막 한 장면을 통해 전쟁이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점은 잔인하면서도 순간적인 전쟁의 파괴력을 느낄 수 있는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전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을 본 경우에는 그 갑작스런 반전이 가져다주는 충격의 강도가 낮을 수도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