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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골에 이사 왔어요 ㅣ 신나는 책읽기 12
양혜원 지음, 최정인 그림 / 창비 / 2006년 8월
평점 :
<여우골에 이사왔어요>는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 온 한 가족이 보낸 한 해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이다. 귀농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생활하며 겪는 일들을 때묻지 않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야기에 따라 채운이(초등 4)가 화자가 되기도 하고 찬이(초등 2)가 화자가 되어 들려주기도 한다. 계절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자연이 선사하는 사계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신나는 책읽기’ 시리즈의 한 권으로 우리집 초등 2학년 작은 아이도 재미있게 읽은 저학년 동화.
제목-'여우골'이라니 마을 이름도 재미있지 않은가-부터 눈길을 끄는 이 책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울진 통도산 골짜기로 삶의 터전을 옮긴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손수 땀 흘려 농사를 짓는 것이 꿈인 아빠를 따라 여우내로 이사 온 채운이와 찬이. 산골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이에게는 부러움을,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어릴적 기억들을 하나 둘 일깨워 줄 것이다. 무엇보다 "~ 필통이 덜그럭덜그럭 장단을 맞추었지요.", "~ 엄마한테 건네며 낑낑댔어요.", "휘적휘적 참깨밭을 나왔어요." 등, 리듬과 생동감이 있는 문장들이 독자에게 읽는 재미, 상상해 보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똥탑>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준 이야기이라 더 인상 깊다. 아이도 직접 경험해 본 일은 아니지만 똥이 조금씩 쌓여가는 재래식 화장실을 실감나게 묘사한 이 이야기를 무척이나 재미나게 읽었다. 어릴 적 기억에 화장실은 이래저래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공간이었다. 혹시라도 그 속에 빠지지는 않을까, 변이 튀지는 않을까, 거기다 밤에는 그 어둠의 공간에서 손이 쑥~ 올라와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 무서움에 달음박질 쳐 다녀오곤 했다. 이 책을 보고 있자니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손잡이만 누르면 물이 내려와서 오물을 말끔하게 씻어 내리는 수세식 변기만 사용해 본 아이들과 이런 기억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호미 할매>는 개울 근처에 밭이 있는 호미 할매와 엄마간의 갈등을 담은 작품이다. 여름이라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신나게 여름을 만끽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엄마는 자식 교육을 들먹이는 호미 할매에게 화가 나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다. 아이들은 개울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호미 할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이웃 아줌마와 수다를 떨며 오해를 푼 엄마와 무뚝뚝한 호미 할매가 화해하는 모습을 통해 조금씩 이웃과 어우러져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
아빠와 찬이가 밭을 지키려다 무서운 산돼지를 만나 줄행랑을 친다는 이야기가 담긴 <얘들아 조금만 먹어!>에서는 농사를 짓는 분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농작물을 해친다고 올가미나 덫을 놓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채운이의 아빠는 자연의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려고 애쓴다. <산지기 아빠>편에서는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올가미에 걸린 오소리를 구해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 아빠가 <눈 무덤>에서는 죽은 동물보다는 산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아이들을 슬프게 만든다. 노루가 죽었어도 불쌍하다며 땅에 묻자고 하는 채운이와 대비되는 아빠의 모습이 조금 씁쓸하면서도 그게 현실적인 모습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의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시골(농촌)에 가서 사는 것도 참 좋겠다 싶지만 실제로는 감당해야 할 어려움과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안다. 논이나 밭에 난 잡초를 뽑거나 계절에 맞춰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비료도 주어야 하고 태풍이나 장마, 또는 동물이나 벌레들에 의한 피해를 감수하기도 해야 한다. 한 해 내내 들인 정성과 노동에 비해 돌아오는 대가는 적지만 한여름 뙤악볕에 물을 줘가며 자식처럼 돌보는 농작물이 쑥쑥 커가고 익어가는 즐거움... 그것이 그분들의 수고로움과 시름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