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품은 할아버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1
웬디 앤더슨 홀퍼린 지음, 조국현 옮김 / 봄봄출판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기 드 모파상'이 쓴 이야기를 <슬픔을 치료해 주는 비밀 책>에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을 그린 웬디 앤더슨 홀퍼린-가 새롭게 엮였다. 아내의 닦달에 침대에서 달걀을 품게 된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성격이나 외모 면에서 대비되는 부부에게 벌어지는 일상이 웃음을 짓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부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 닮는다고들 하는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부는 전혀 그렇질 못하다. 두 사람의 성격은 외모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인다. 바싹 마른 몸매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할머니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머쓱해지기도 한다. ^^*

 작은 찻집 주인인 뚱뚱한 앙트완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좋아하여 친구들이 많다. 할아버지는 딱 한 사람을 빼고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는데 그 한 사람이 바로 부인인 장작개비처럼 마른 콜레트 할머니다. 사나운 성질을 가진 할머니에게도 달걀을 사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말 한마디에도 정이 오가는 법인데 이웃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않으니 할아버지처럼 친구가 많질 않은 것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일을 도와달라며 게으름뱅이라고 타박을 하곤 하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침대에 누워 있게 되자 할머니의 구박은 더욱 심해진다. 

- 그런 할아버지가 안쓰럽게 여겨지기 하는데, 아이들 책 보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을 두루 살피고 어울리길 좋아하는 이는 사람 좋다는 평은 듣겠지만 반면 가족들에게는 그만큼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 -.-

  그런데 문병 온 이웃 사람의 달걀을 품고 있게 하면 어떻겠냐는 말에 할머니는 옳타쿠나 싶어, 할아버지에게 진짜 달걀을 품으라고 한다. 에디슨처럼 알을 품으면 병아리가 나올지 궁금한 것도 아니고, 깃털 하나 없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을 품는담~. 할아버지는 "닭들에게 이빨이 나면 모를까, 내가 어떻게 달걀을 품어?"하면서 펄쩍 뛴다. 우리가 불가능한 일을 일컬을 때 "토끼 머리에 뿔 날 때"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원작의 제목이기도 한"When the chickens grow teeth (닭들에게 이빨이 날 때)"도 그런 의미로 사용한 표현인가 보다. 어쩔 수 없이 열 개의 달걀을 품게 된 할아버지, 과연 달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본 그림 둘레에 일상의 일들을 담은 소소한 작은 그림들을 배치해 놓아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솔솔~ 하다. 어른 여섯 명이 겨우 할아버지를 들어 옮기는 풍경, 할머니가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를 돌보며 잔소리를 하는 모습, 이웃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나오는 장면 등등... 품는 정성을 들여 깨어난 병아리들을 내 자식처럼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씨가 따뜻하게 여겨진다. 무엇보다 병아리가 많이 깨어난 덕분에 할머니도 행복해졌다니 이제 할아버지를 덜 타박하겠구나 싶어서 할아버지의 환한 웃음에 함께 기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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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마을의 초승달 빵집 한림 고학년문고 4
모이치 구미코 지음, 김나은 옮김, 나카무라 에쓰코 그림 / 한림출판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빵을 좋아하는 취향 덕분인지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은 소망을 가진 빵집 아가씨의 이야기가 담긴 이 동화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는 달콤하고, 어떤 이야기는 고소하고, 정적이 내려 앉고 속도 살포시 꺼진 밤에 읽었던 지라 내내 입안에 군침이 돌고 꿀맛 같은 이야기에 가슴이 녹아 내렸다. ^^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아이는 말하는 동물, 요정, 둔갑술을 쓴 여우 등이 나와서 재미있다고 하였는데 이처럼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요소들과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빵 이야기가 동심을 사로잡는다.

  제빵사인 구루미는 가게를 차릴 여건이 안되어 농가의 부엌에서 빵을 구워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빵집을 하는데, 이름도 참 예쁜 '초승달 빵집'이다. 손님이 없어 "누구라도 좋으니 빵을 주문하러 왔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지나가던 산들바람이 산 쪽으로 전해준 후 주문이 들어온다. 빵을 만들 때 음악을 틀어달라는 편지와 함께 문 앞에 놓인 축음기와 작은 단지. 자연의 소리가 실린 레코드를 틀어가며 만든 빵을 가지러 온 손님은 놀랍게도 커다란 곰이다! 어린 잎의 향기를 풍기는 민들레꿀을 넣은 빵은 겨울잠을 자러 가는 곰에게는 봄 햇살 같이 아주 근사한 기분을 안겨주리라~.

  이 달콤한 빵 내음이 마을에 퍼진 덕분인지 빵 주문이 늘기 시작한다. 그 후 구루미는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여우네 집에 가서 나무열매 향기가 나는 도토리 빵을 먹어보기도 하고, 호숫가에 있는 호텔에 초승달 빵을 배달하러 가기도 한다. 초승달 빵은 겨울에 별을 닦는 북풍 총각도 반해서 눈깜짝할 사이에 먹어버릴 정도로 맛난 빵이다. 고양이가 좋아할 멸치와 가다랑어포를 넣은 팥빵도 만드는 등 비록 돈이 되는 일들은 아니지만 구루미는 주문을 받을 때면 늘 정성을 다해 빵을 만든다. 구루미가 만들진 않았지만 꽃눈을 되찾는 마법의 빵의 효능은 놀랍기만 하다. 꽃눈을 따먹어버린 새들이 그 빵을 먹고 휘휘~ 우니 가지마다 꽃이 피지 뭔가~. 

 나도 구루미양에게 주문하고 싶은 빵이 있다. 예전에 엄마가 종종 사다 주신 건포도를 넣은 촉촉한 옥수수 식빵... 아, 갓 구운 빵은 얼마나 고소한 향기를 풍길까! 오븐에서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썰지 않고 구운 모양 그대로의 빵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그 맛이라니~~. 이 책을 보고 나서 아이들과 가장 좋아하는 빵은 어떤 종류인지, 어떤 빵을 먹어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 (오븐이 있다면 함께 빵을 만들어 봐도 좋겠고) 언젠가 역 앞에 자신의 가게를 하나 내서 좀 더 많은 손님들에게 주고 싶은 구루미의 간절한 소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어릴 때 내가 미래의 직업으로 꿈 꾸었던-현실과 이상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가 서점 주인과 빵집 주인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실컷 보거나 맛있는 빵들을 실컷 먹을 수 있을 거란 단순한 생각 아래 가졌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제빵사까지 되지는 않아도 나나 가족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빵 정도는 집에서 구워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다만 반죽할 일이 좀 걱정.) 나나 아이들은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는데 안타깝지만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사랑 받을만한 식습관은 아니다. -.-;

* 분류에 고학년(5,6학년)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3,4학년 정도가 적당할 듯 하며, 작은 아이도 재미있게 읽는 걸로 봐선 2학년도 대상이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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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0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루미...라굽쇼..??

아영엄마 2006-11-0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구루미가 어디 다른 곳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인가요??

해리포터7 2006-11-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핫..메피스토님께서 달려오실줄 알았어요..ㅋㅋㅋ
이책 담아갈께요.아영엄마님..울딸이 느무 좋아하겠어요.

물만두 2006-11-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어쩜 좋아요^^ㅋㅋㅋ

아영엄마 2006-11-0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7님/꼭 성 구분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것이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에요. ^^
물만두님/혹시 메피님이 이미지로 쓰시는 저 이미지 속의 주인공 이름이 구루미인가요??

Mephistopheles 2006-11-0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구우사마..투니버스판에선 구루미.로 통합니다요...^^
 










방금 감칠맛 나는 동화책 한 권을 읽었다.
아, 빵 이야기~ 내가 무지 무지 좋아하는 빵이 등장하는 동화다! *^^*
한 제빵사 아가씨가 가게를 차릴 여건이 안되어 농가의 부엌에서 빵을 구워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빵집을 여는데, 이름도 예쁜 '초승달 빵집'이다.

봄내음을 풍기는 민들레 꿀을 넣은 빵
나무열매 향기가 나는 도토리 빵
북풍 총각도 반해버린 초승달 빵
멸치와 가다랑어포를 넣은 팥빵~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 그다지 안 땡기지만...^^;)
꽃눈을 되찾는 마법의 빵~~
꽃눈을 따먹어버린 새들이 그 빵을 먹고 휘휘~ 우니 가지마다 꽃이 핀다.

아, 갓 구운 빵은 얼마나 고소한 향기를 풍길까!
음.. 암튼 이 야밤에 또 군침돌게 만드는 동화책이다.
이야기는 또 얼마나 이쁘고 재미난지...
나보다 먼저 책을 본 아영이는 말하는 동물, 요정, 둔갑술을 쓴 여우 등이 나와서 재미있단다.

책+책 이벤트는 끝났지만 방금 본 동화책이랑 궁합이 딱 맞는 그림책 한 권이 생각난다.^^
<까마귀네 빵집>에도 맛난 빵들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아기 까마귀들의 이름도 특이하고- 초콜릿, 토마토, 레몬, 흰떡이~~-
그림책의 특성답게 이 그림책에서는 눈으로 별별 빵들을 볼 수 있다.
(음.. 근데 이 그림책 리뷰를 내가 안 썼구나...-.-;;)

이 빵도 먹고 싶고,
저 빵도 먹고 싶고...
아, 빵순이는 이런 책들을 볼 때면 가슴이 녹아 내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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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비 2006-11-0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감기 때문에 밥맛도 없는데.. 괜히 빵이 먹고 싶네요.^^

하늘바람 2006-11-0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참 아기자기해 보여요

2006-11-04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6-11-0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ㅈ님/아하하.. 그런 이벤트는 글 잘 쓰시는 분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속삭이신ㄸ님/빵빵빵순입니당..세끼 모두를 빵만 먹을 수도 있어욤. ^^
실비님/따근한 빵과 우유 한 잔으로 원기를 북돋우시길~
하늘바람님/아니! 안즉 안 주무시면 어쩐대요!!
속삭이신ㅅ님/앗, 들켰당! 어제 꽈배기 사온 거 남은게 있어서 좀 있다 먹을라고 하는디...^^;;

비로그인 2006-11-0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도 빵빵하니까 제 몸이 빵빵해지는 기분이에요.
금방 밥먹어서 배도 빵빵한데...

또또유스또 2006-11-0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흑!!!!!!!!!!!!1
아 님.. 조금전에 저 까마귀 질렀는데 땡투를 안했다는...
이것뿐만이 아니라 오늘 지른것 다 안했어용..흑흑흑
4만원 넘기느라 무쟈게 애썼는데.. 아우...
그런데 저 까마귀네빵집 넘 재미있을것 같아요.. 제가 읽고 싶네용
근데 좀전에 주문 넣는데 왜 취소가 안될까요?
책은 7일에나 온다고 나왔던데..칫..그져?

아영엄마 2006-11-04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아하하.. 뽕뽕순이라고 적을 걸 그랬나요? 그랬음 방귀가 뽕뽕~ ^^;;
또또유스또님/오모, 저런.. 아깝습니다~~(저에게 안해서가 아니라 땡스투는 님께도 1%가 돌아가는 거잖아요.) 바로 출고작업 들어가서 취소가 안되나 봅ㄴ다. 알라딘이 배송은 빠른 편이잖아요.

또또유스또 2006-11-0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르니간요.. 제게 들어오는 그1%라도 어디랍니까..ㅎㅎㅎ
제가 명색이 아줌마인데..ㅋㅋㅋ
담번엔 절대 이런일이 읎어야 할텐데요...
점심은 드셧나요? 빵으루?
음ㅁ...치즈케잌이 갑자기 먹고 싶네여..

2006-11-04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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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라... 한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조선조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네 그려. 세월의 뒤안길로 영 사라진 줄 알았던 기생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의 기생들의 이야기다. 이름하여, <신기생뎐>이다. 군산에 터를 잡은 부용각 기방에서는 화투짝 내리치는 소리며 "쓰리 고"를 외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거나 노래방 기계음과 유행가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미스 민이 기방의 전통에 따라 화초머리를 올릴 적에도 밤무대 의상을 입은 밴드가 풍물잡이와 함께 들어서는 것을 보면 전통도 세월의 흐름을 꽁꽁 묶어두지는 못하는 모양이구나 싶어진다.  

  조선조 선비들이 기녀들이 시와 풍류를 알아듣는다 하여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라 불렀다던가...  <신기생뎐>에서는 기생의 길을 받아들이고 피를 쏟아가며 얻은 소리로 인정 받았지만 점차 빛을 잃어가는 한 떨기 해어화를 만날 수 있다. 각 인물을 중심으로 연작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구성진 가락과 질펀한 사투리로 기생의 애환과 슬픔, 기방의 삶과 죽음을 담아 내고 있다. 

  부용각은 반백 년의 세월을 기방 부엌에서 보냈다는 타박네가 여자 장사가 아닌 기방의 전통을 고수해왔다는 자부심으로 지켜 온 곳이다. 타박네의 손길, 눈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부용각에는 손맛을 잃지 않기 위해, 이 곳을 지키기 위해 한 순간도 마음 편하게 쉬어보지 못한 부엌 어멈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다. 일흔 아홉 살이란 나이를 잊게 만드는 강단을 지닌 타박네의 강팍한 사투리는 이야기 자락 자락에 끼어들어 매콤한 양념 역할을 해주는지라 부용각 뿐 아니라 이 이야기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바싹 마른 두 다리를 새가슴에 붙이고 앉아 있곤 하는 타박네의 손맛이 변함이 없었던 비결에 어쩔 수 없이 눈매가 젖어온다. 

   기생의 제복인 색 고운 화사한 한복과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미모와 웃음, 소리와 춤으로 사내들을 녹이고 홀리는 이들이 못내 미울 법도 하다. 헌데 화려한 삶의 밑자락에 허망함과 슬픔을 채우며 사라져갈 운명이 자못 안타까워진다. 손님이 아내에게 주기 위해 사 들고 온 작은 화분을 보며 한숨을 쉬는 이들은 사랑에 패배할 운명을 지니고 여인들이다. 한없이 추켜 올려졌다가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내팽개쳐지는 처지가 되는 것이 이들이다. 미모나 재능이 뛰어나 이름이라도 알려지면 사내들은 한 번이라도 품어보고 싶은 욕망에 애간장을 태워가며 줄을 선다. 그러나 어쩌다 제 맘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틀어지면 "기생 주제에...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그네들의 슬픈 운명인 것이다.  

  타박네와 함께 부용각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이는 소리기생 오 마담이다. 속없이 있는 거 없는 거 다 펴주다 사랑에 속고, 사랑에 울면서도 또 그 놈의 사랑에 목을 매는 오 마담의 속절없는 목마름은 기생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 밖에 없는 삶의 빈자리 때문일까. 오 마담에게 들러붙어 등골을 빼먹는 기둥서방 김사장의 이야기도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가 꾼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살짝 가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읊어대는 여성에 대한 견해를 듣고 있자니 부애가 나서 양푼이에서 밥을 떠먹던 숟가락으로 '얌통머리 없는 놈'의 뒤통수를 한 대 딱~ 때려주고 싶은 심통이 불쑥 쏟아 오른다. 반면 능소화에 홀렸는가, 소리에 취했는가, 어쩌다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내의 한결같은 사랑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마루에 인두로 지진 것 마냥 동그란 대접 밑테 자국을 남길 만큼 지극하다. 

  기생의 눈물은 누구도 닦아주질 못하니 그저 마르거나 시들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기생의 일생에 남는 건 고작해야 몇 가지 삶의 흔적과 한 장의 손수건 뿐이라고....

  풍물잡이의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듯, 가녀린 손 끝으로 만들어내는 춤사위를 지켜보듯, 꽃살문에 손 구멍을 폭폭 찔러 안을 들여다 보듯, 그렇게 기생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이 작품을 읽었다.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가는 기생의 비감하면서도 허허로운 삶의 한 자락이 가슴 한 구석에 꽃잎 하나를 떨구고 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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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0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게 춤을 추고 가야금을 뜯고 소리를 하는데, 막상 발 뒤꿈치는 저려 금세 주저앉을 것 같고, 손끝은 갈라지고 목소리를 빼앗길 듯한, 그래도 마지막까지 꼿꼿하게 앉아 `나는 나 자신만 섬깁니다'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씩씩하니 2006-11-0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기가막힌 삶의 주인공인거 같애요,,기생이...
기생이라는 단어 속에 웅크리고 있는 기구한 삶의 애환이 가득한 책 같애요...
황진이를 문득 떠올렸는데...

비로그인 2006-11-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MT나 개강파티,종강파티를 하면 늘 타박네가 빠지지 않았어요.
가사가 너무 슬프고 화나서 뭐 이런 인생이 다 있나 해서 저는 입을 꼭 다물고 안 불렀는데 선배들은 이 노래를 무지 좋아하더라구요.
결혼하고 나서 보니 지금 여성들의 삶도 실상은 그 이야기에서 그리 멀리 진화된것 같지는 않아요.

아영엄마 2006-11-0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력!! 처음 쓴 리뷰가 너무 길어서 좀 줄여서 올렸어요..^^;;

실비 2006-11-0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구절이 인상깊네요.. 허허로운 삶의 한 자락이 가슴 한 구석에 꽃잎 하나를 떨구고 간 작품.. 예전에 읽은 황진이 생각나네요... 황진이도 그랬는데.ㅠ
 
우리들의 인권 선언 인권 그림책 4
기타 아키토 지음, 김선숙 옮김, 기하라 치하루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인권 그림책 시리즈 네 번째 권인 <우리들의 인권 선언>은 세 명의 어린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실제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햄스터 다울이의 한마디' 코너에서 다울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아이들이 말한 부분을 인권에 관한 부분과 연계하여 우리 어린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알려주고 있다.

 사실 첫 장을 볼 때부터 뜨끔했다. 부모님과의 대화의 시간에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저한테 화를 자주 내세요. 화풀이하듯...", "저한테는 언제나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등의 말을 한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본 우리 집 아이들이 종종 이 책을 꺼내 본 것은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이들에게 "엄마 말 들어서 틀린 거 있어?" 하면서 강압적으로 내 말을 들을 것을 강요한 적이 많은 터라 반성을 하곤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반성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인권을 지키는 길인데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면서 아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의지가 자랄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인지...

 이 책은 친구, 시위, 퇴직, 왕따 등의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각 주제를 담은 이야기를 통해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고민, 불만, 부당하게 여겨지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현주, 승범, 석진, 초등학생인 이 세 아이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접하는 인권 문제(교육, 왕따, 선생님의 편애, 교복 착용 등)나 사회, 국가적인 문제(사형, 에이즈, 퇴직, 시위 등)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나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본 주제들로 그리 낯선 것들이 아니다. 어른들도 책을 보며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볼만하다. 

  책장의 다른 면에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연계하여 '유엔 아동 권리 협약'에 나오는 의견을 말할 권리와 놀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생명권'과 '노동권', 성평등 교육과 여성에게 보장되어야 할 인권 등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 실려 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의무와 권리에 대해 언급한 부분으로, 우리가 교육받기로는 권리를 앞세우기 전에 의무를 지키라고 배워왔는데 이 책에서는 의무보다 권리가 먼저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요 부분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지라 좀 고민스럽다. -.- ) 그러나 의무가 먼저이냐, 권리가 먼저이냐를 굳이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마음가짐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나 자신의 인권도 보장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어린이 임원을 투표로 뽑고, 선거를 할 수 있는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이며,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학교 및 지역사회 정책에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창구도 많아지고 있다. 사고가 굳어지고 대화가 단절된 어른들로 인해 '닫힌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대에 우리 어린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알고 행한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선 나부터 우리 아이들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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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2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그라미 2006-11-0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볼려고 했는데, 아영엄마님께서 올리신 리뷰를 보며 더더욱 보고 싶어지네요. 책을 읽으며 반성해야 할 것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