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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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붉은 색조와 기묘한 비례의 신체를 가진 한 인물이 한 쪽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야시>.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섬뜩하게 얼어붙는 호러의 느낌보다는 현실과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 주는 아련한 공포와 환상적인 느낌이 담백하게 결합되어 있는 작품이다. 

  "바람의 도시"와 "야시"는 연계된 작품이 아니지만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둘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자는 선택 받은 대상에게만 허용되는 '고도'가, 후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야시'가 존재한다. 두 곳 다 현실의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선택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관조하는 다른 세상, 다른 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과연 살갗에 소름이 돋게하는 은근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이 '호러'라는 장르의 상을 수상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길을 잃고 낯선 곳을 헤매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불안감과 공포의 감정을 두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친구들과 정신 없이 뛰어 놀다 처음 보는 골목 풍경을 접하고 당황했거나 낯선 곳에서 부모의 손을 놓치고 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야시>는 우리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이런 경험적인 공포의 감정을 일깨우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작품이다.

 "바람의 도시"는 한 소년이 어린 시절 길을 잃었을 때 우연하게 가본 길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한나절의 모험 삼아 친구와 함께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고도'라 불리는 그 이상한 길은 마치 4차원의 세계처럼 특정한 장소에만 현실세계를 향한 문이 열려 있는,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은 공간이다. 주인공은 예기치 않게 죽음을 맞이한 친구를 살리기 위해 고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렌과 여행길에 오른다. 

 나는 내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면 종종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떠올리곤 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한 쪽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살아가는 동안 종종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생각하며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을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말미를 장식하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란 문구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야시"는 일단 발을 들이면 뭔가를 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시장과 그 곳에서 길을 잃은 한 형제의 슬픈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야시가 선다는 소식을 접한 유지는 친구인 이즈미와 시장이 서는 곳을 찾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뭐든지 팔며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시장. 뭐든지 베는 검, 노화를 늦추는 약, 키 크는 약, 생물, 재능, 젊음, 지식까지도 파는 그 곳에서 형은 한가지 재능을 사기 위해 동생을 판다. 언제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며, 어떤 사람이든 단 세 번밖에 갈 수 없는 그 곳에서 형은 동생을, 동생은 자유를 찾으려 한다.

  만약 내가 야시에 들어가 무엇이든 사야 하고, 돈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사고 어떤 것을 내놓게 될까? 작품을 읽다 보면 내 모든 것을 내놓고서라도 사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늘 다른 세상을 꿈꾸는 나에게 다른 공간을 엿보게 준 이 작품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이미지와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은 간결함으로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쉽다. 작품 자체는 충실하게 마무리되었으나 이런 류의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그러나 작가의 발걸음이 이 두 작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갓 시작이지 않은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또 다른 발걸음을 기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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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2-12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시시한 리뷰군요 호홋. 농담이구요 야시가 야시장인가봐요. 새벽에 이렇게 깨있는 분을 뵈니 반갑습니다앗. 참고로 전 가지않은 길에 대해선 거의 생각을 안해봐요.... 임상을 했으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놀랍게도 없다니깐요. 그게 생각없이 사는 사람의 특징이죠^^

똘이맘, 또또맘 2006-12-1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의 말씀대로 야시에서 돈대신 다른무엇을 내놓아야 한다면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요???? 리뷰를 읽다보니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찼습니다.... 에구 머리아퍼... 생각을 많이 하게하는 리뷰네요 ㅠ.ㅠ

짱꿀라 2006-12-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내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면 종종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떠올리곤 한다."라는 문장 중에 가지 않는 길이란 곳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가지 않은 길이 사람에게는 존재할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도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속에는 꼭 한두가지는 있는 것 같은데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웃음가득한 날이 되시기를 바라며......

아영엄마 2006-12-1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님께선 자신에게 딱~ 맞는 길을 찾으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
똘이맘, 또또맘님/이런 시장이 있다면 하찮게 여긴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산타님/님의 댓글 또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시는군요. 늘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신기한 스쿨버스 - 전10권 세트 신기한 스쿨버스 1
조애너 콜 글, 브루스 디건 그림, 이연수 외 옮김 / 비룡소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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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즐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사람 몸 속으로, 우주로, 과거로 견학을 가서 과학과 관련된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는 내용의 <신기한 스쿨버스>! 1986년 처음 미국에서 발행되었을 때 1,500만부가 팔렸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출간된 후 70만부가 넘게 팔린 어린이 과학분야 베스트 셀러이다. 내가 이 시리즈 내용을 처음 접한 것은 TV를 통해서였다. 과학은 아이들이 어렵다고 여길 수 있는 분야인지라 자칫 딱딱하게 여겨지기가 쉽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일방적으로 지식만 전달하는 교양도서가 아니라 과학 지식을 독특한 설정과 재미를 결합하여 아이들이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스쿨버스가 견학 가는 곳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것도 신기하고,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프리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개성이 뚜렷한 반 아이들의 반응도 재미를 높여주고 있으며 본문 외에 그림에 나오는 말풍선 속의 대사를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리고 본문마다 노트에 쓰여진 메모로 전달하는 정보를 쉽게 알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총 10권의 도서에 생물, 고생물(공룡), 기상, 천문, 지구과학 등의 열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주 대상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로, 유아들이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 연령의 아이들은 이 시리즈를 좀 더 쉽게 풀어놓은 키즈 시리즈를 접해주면 좋을 듯 하다.

각 권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1권 <물방울이 되어 정수장에 갇히다> - 프리즐 선생님께 수업을 받게 된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 떨어져 내린다! 정수장을 거쳐 수도관으로 나오는 등 물의 생성 과정과 정수 과정을 알 수 있는 책.
2권 <땅밑 세계로 들어가다 >- 스쿨버스를 타고 지구 표면을 뚫고 땅 밑으로 들어가서 돌의 종류와 지구에 대해 배우게 된다는 내용.
3권 <아널드 버스를 삼키다> - 작아진 스쿨버스를 타고 아널드의 입으로 들어가 인체를 탐험한다는 내용으로 우리 몸 속의 장기-위장, 심장, 허파, 뇌- 각 신체의 기능을 알 수 있다.
4권 <태양계에서 길을 잃다> - 우주로 나가 밤낮이 생기는 이유와 중력, 그리고 수성을 비롯한 태양계 행성에 차례로 들려 각 행성의 특징들을 살핀다.
5권 : <바닷속으로 들어가다> -잠수함으로 변한 스쿨버스를 타고 바다 속을 돌아다니며 그 곳에 사는 물고기, 식물, 산호초 등의 생물을 살펴본다.

6권 <공룡시대로 가다> -우리 아이들이 공룡에 한참 흥미를 가질 때 자주 보던 책으로 스쿨버스를 타고 과거로 가서 공룡과 식물들을 관찰한다. 본문 뒤에 실린 독자들이 반응을 담은 부분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
7권 <허리케인에 휘말리다> - 허리케인에 휘말린 스쿨버스를 타고 날씨 여행을 하는 내용으로 비, 눈, 태양, 바람에 대해 배울 수 있다.
8권 <꿀벌이 되다> - 프리즐 선생님 반아이들이 꿀벌로 변한다는 설정으로 꿀벌이 하는 일이나 생애 등을 알 수 있다.
9권 <전깃줄 속으로 들어가다> - 스쿨버스를 타고 발전소부터 집까지 전깃줄 속을 지나면서 전기의 원리를 배운다.
10권 <눈, 귀, 코, 혀, 피부 속을 탐험하다> -장기 이외의 신체의 감각과 관련된 부분-눈, 귀, 코, 혀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배우려고 하는 곳에 실제로 가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큰 아이는 이 시리즈 10권을 보고는 일학년 때 귀에 소리만 듣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균형 기능에도 관련이 있다는 답을 하여 선생님께 칭찬을 받기도 했다. 책을 통해 재미도 얻고 지식도 얻는 일석이조의 이 시리즈는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필히 추천하고 싶은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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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니 참 재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교육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구요. 제 동생이 이 책세트 작년에 빼앗아 갔답니다. 지금 아영엄마님의 리뷰를 보고 생각을 떠올려보네요.

아영엄마 2006-12-15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저는 아이가 좀 컸어도 이 시리즈 책 어디 못 주겠던데...^^;; 아이들도 가끔씩 꺼내 보거든요.
 
큰고니의 하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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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든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하는 큰고니 가족 이야기 속에 계절에 따라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철새의 생태가 담겨 있는 그림책. 큰 고니의 가족애와 아픈 탓에 함께 북쪽나라로 떠나지 못하는 새끼를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큰고니들이 호수에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나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 등을 표현한 판화 그림이 인상적으로, 화려한 색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백색의 큰고니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해주며 판화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그림책이다.

 표지에서부터 판화의 굵은 선으로도 자연의 풍광과 새들의 모습을 잘 묘사해 놓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의 느낌을 풍기는 옅은 푸른색, 황혼으로 물든 주황색 하늘, 밤이 깃든 호수의 물결에 일렁이는 노란 달빛 등 색감도 적절하게 사용하여 본문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학교에서 판화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 큰 아이는 조각칼로 선 하나하나를 파내야 하는 어려움을 직접 경험해 봐서인지 이 책의 그림이 판화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 섬세함에 놀라워하였다. 

 홋까이도오 호수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멀고 먼 북쪽나라에서 날아온 큰고니 무리들. 봄이 가까워지자 산에 쌓인 눈도 반짝반짝 빛이 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날아 오른 큰고니들의 하얀 날개도 반짝거린다. 오래 전 철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지켜본 적이 있다. 힘찬 날갯짓으로 물을 차오르며 비상하는 모습. 나름의 질서에 따라 열을 지어 나는 무리들이 일사 분란하게 방향을 틀어 이쪽저쪽으로 비행하는 모습은 자연에서나 볼 수 있는 장엄한 아름다움이었다. 

 겨울을 난 철새들은 때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귀향길은 머나먼 항로이기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가 병이 나서 날 수가 없는 탓에 아직 출발하지 못한 큰고니 식구가 있다. 아이가 건강을 찾을 때까지 북쪽으로 가는 것을 미루지만 점점 나빠져만 가는 아이... 결국 아빠는 병든 아이를 두고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한 마리쯤은 남아서 아픈 아이를 돌볼 법도 한데 그리하지 않는다. 냉정한 결정이지만 다른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왜 꼭 떠나야 하는 건지, 그럼 혼자 남은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어떤 말로 큰고니 가족의 이별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줄 지 난감해진다. 나 또한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선택에 순응하는 가족이 야속하고 슬픈 것을... 그러나 인간의 기준으로 그들을 잔인하다 매도할 수 없지 않겠는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는 숨을 거둔다. 회복하여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없이 슬펐으나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은 죽음이었음에 위안을 얻는다. 애도하듯이 고개를 숙인 큰고니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수의 달빛처럼 슬픔도 잔잔하게 잦아든다. 

 다음날부터 밤낮없이 쉬지 않고 날아간 큰고니 가족은 마침내 북쪽 나라에 도착한다. 함께 오지 못한 아이는 그 곳에서 광활한 북극 하늘을 가득 메운 오로라처럼, 따뜻한 봄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별도, 죽음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처럼 자연은 한 생명을 자신의 품 안으로 되돌리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시키며 말없이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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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왕들의 비밀 동화 보물창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이현숙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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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팀을 이루어 뉴욕 주 퀴즈 대회 결승전에 진출한 네 명의 아이들의 내면의 심리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성장 동화. 지역 예선전에서조차 우승한 적이 없던 중학교 학생, 그것도 6학년임에도 불구하고(8학년까지 있음) 퀴즈 대회 결승전에 오르는 파란을 몰고 온 팀인 '영혼들'에 관한 이야기다. 관계가 서로 맞물려 있는 네 명의 아이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각각 들려주고 있는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흩어져 있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 네 명의 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게 된다. 퀴즈 대회를 앞두고 올린스키 선생님은 반 아이들 중에서 출전할 학생 네 명을 뽑아 한 팀을 이루게 되는데 이들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쉽지만은 않다.

 흔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표현을 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저런 난관에 부딪히거나 좌절을 겪는 등 나름대로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가족을 떠나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하고, 가족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변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몸도 마음도 조금씩 자라나게 된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삶의 지혜와 지식들은 이후 퀴즈 대회에서 빛을 발한다. 

 노아는 여름 방학 때 조부모가 계신 마을에서 마을의 노인들이 주도하는 결혼식 준비에 동참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다. 반면 부모의 이혼으로 한차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디아는 할아버지의 재혼 상대인 마가렛 할머니와 그녀의 손자를 만나면서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에탄은 뛰어난 형과 비교되며 지내온 탓에 말 수가 적은 아이로 실링턴 저택으로 이사 온 줄리안을 도와주면서 다과회 초대를 받게 된다.

 에탄이 줄리안에게 선물한 퍼즐처럼, 퍼즐은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줄리안이 바로 그 한 조각으로 퀴즈 대회에 나갈 팀에 합류하면서 '영혼들'이 비로소 완성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상처를 우정, 친절, 가족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치유해 간다. 한편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가진 올린스키 선생님도 이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한다. 6학년인 노아, 나디아, 에탄, 줄리안이 한 팀이 되어 계속 우승하자 팀원을 어떻게 뽑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선생님 역시 완전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실링턴 저택의 다과회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얽혀 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 가는 느낌이 든다. 실링턴 저택에 모인 아이들이 생각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하고,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던 자아를 펼쳐 보이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 다과회에 초대받아 보았으면 싶어진다. 원제 "The view from Saturday"인 이 책의 저자 코닉스버그는 뉴베리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제목이 풍기는-흥미진진한 모험 같은-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퀴즈 왕들의 비밀>은 '영혼들'이 대회에 참석하여 상대 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며 그 과정에서 역사, 자연 등 여러 분야의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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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근데 퀴즈라는 것이 재미 있기도 하지만 저는 왠지 경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아서...... 그래도 흥미로운 책 같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또또유스또 2006-12-1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 가서 함 봐야겠어용 아 궁금해라..

아영엄마 2006-12-12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이 책에서는 퀴즈가 주가 되지는 않아요. ^^
유스또님~ 그림책 아니고 5학년 이상 대상의 동화책입니당~

행복희망꿈 2006-12-12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몰랐던 상식도 같이 배울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아영엄마 2006-12-15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희망꿈님~ 저도 아이들 책 보면서 많이 배운답니다. ^^
 
아씨방 일곱 동무 비룡소 전래동화 3
이영경 글.그림 / 비룡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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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중칠우쟁론기'라는 고전체 소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걸맞게 각색한 그림책. 옷감을 마름질할 때, 바느질 할 때, 마무리할 때 쓰이는 일곱가지 물건들을 의인화하여 서로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나아가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빨강 두건을 쓰고 바느질을 즐겨하는 아씨가 잠이 든 사이에 바느질에 쓰이는 일곱 동무들이 나타나서는 서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뽐낸다. 먼저 '자부인'이 길고 짧음과 좁고 넓음을 재어주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선다. 그러자 자르기를 하는 '가위색시', 이솔 저솔 꿰매는 '바늘 가식'와 '한땀 한땀 떠가는 요조숙녀 '홍실각시'도 지지않고 자신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빨강두건 아씨의 손부리를 다치지 않게 시중드는 '골무할미'와 뾰죽뾰죽 다듬어 옷의 제모양을 잡아주는 일을 하는 가장 어린 '인두낭자'까지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마침내 수줍음 타는 '다리미 소저'까지 나서서 구겨지고 접혀진 곳 말끔히 펴주어 옷의 맵시를 살려주는 자신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들기에 이른다.  이들의 다툼을 지켜 본 빨강두건 아씨는 자신의 몸이 제일이라며 화를 내버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일곱동무는 자신들이 보잘 것 없고 소중하지 않고 없어져도 좋을 물건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 매우 슬퍼한다.  결국 아씨는 잘못을 사과하고 누구 하나 없으면 일이 안된다고 말하며 서로 수줍게 웃으며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말미에 일곱 동무의 쓰임이 잘 표현된 글은 흥이 실린 노랫가락으로 불러도 좋을 듯 하다. 마지막 장에 실린 한복과 장신구 그림도 참 어여쁘고 정감이 간다.

  대목 대목이 참 아기자기 한 맛을 지닌 의 꾸밈 글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이라 읽는 재미도, 듣는 재미도 살가운 그림책이다. 특히 아씨며, 부인, 색시, 각시, 낭자, 소저 등 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고전의 미가 배여있는, 여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문구들이 매우 이색적으로 들린다. 아이는 반짇고리 같은 단어도 생소했던지 무엇이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이 책에 나오는 바느질 도구 외에도 무슨 일을 할 때 사용되는 도구들은 다 제각각의 쓰임이 있기 마련이다. 도구의 사용횟수나 시간에 따라 중요도를 따질 것이 아니며 각 도구마다 필요에 따라, 쓰임에 따라 그 용도가 다 있으니 하나라도 없으면 불편하거나 일을 진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잘난 사람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아니다.  규중에서 쓰이던 바느질 도구들을 의인화해서 들려주는 이 그림책은 누구나 다 소중한 존재임을 우리 아이들이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 되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커서  '규중칠우쟁론기'이란 고전을 접하였을 때 이 그림책을 떠올리며 즐겁게 배워나갔으면 좋겠다.

- 2002/8/31에 썼던 리뷰 수정하여 새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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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고전이란 책은 꼭 어른들이 봐야 할 책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이 책과 같이 어린이 눈높이 맞추어 나온 책이라면 그 자체로 맛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한주 되시기를..........

반딧불,, 2006-12-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봐요.
개인적으로는 그림 중에서 옷고름 부분이 참 맘에 안들었어요.ㅎㅎㅎ

아영엄마 2006-12-1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고전을 색다른 맛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이라 참 좋으네요(화풍이 좀 더 섬세했으면 싶기도 하고.. ^^)
반딧불님/ 그림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저도 들었더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