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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범벅 장수 ㅣ 옛날옛적에 4
한병호 그림, 이상교 글 / 국민서관 / 2005년 5월
평점 :
도깨비가 등장하는 몇 권의 그림책들을 접하면서 어느 사이에 '도깨비' 하면 한병호라는 그림 작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깨비 방망이>, <꼬꼬댁 꼬꼬는 무서워!>를 비롯하여 <야광귀신>, <황소와 도깨비> 등등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일구어 낸 도깨비의 모습은 무서운 듯하면서도 어수룩한 면을 지닌 우리나라 도깨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라니 아이들은 일단 시선 집중으로 엄마가 재미있게 읽어주길-이왕이면 사투리도 섞어가면서- 기대하며 눈을 빛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주려던 시도는 제목을 읽어줄 때부터 난관에 부딪혔는데, 우리 아이들이 '범벅'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지라 일단 이것부터 설명하고 들어가야 했다. 아이들이 '호박범벅'이라는 이름으로 그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그래도 본 적은 있는 '호박죽'과 비슷한 음식이라는 설명으로 대신할 수밖에....
엄마는 음식을 팔러 온 장수답게 호탕한 목소리로 "혀에 살살 녹는 호박범벅이요~"라고 외치는데 아이 둘이서 '호박죽이 맛이 없더라~.'는 둥 '나는 호박죽 안 먹을 거야.' 같은 이야기를 수군거리고 있다. 음... 범벅 장수가 호박범벅을 못 판 이유가 그걸까? ^^;; 장에 가서는 못 팔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넘다 졸지에 도깨비라는 단골이 생겨버린 범벅장수는 다행히도 매우 양심적인 도깨비들을 만난 것 같다. 범벅 한 항아리에 금돈, 은돈 한 항아리라니, 이런 수지맞는 장사를 두고 범벅 장수가 한 번 만에 끝낼 수가 있으랴~ 다음번에는 더 큰 항아리를, 그리고 점점 더 큰 항아리를 지고 도깨비들을 찾아가는데 아이들이 항아리 크기를 보고 한마디 한다. "이렇게 큰 항아리를 사람이 지고 갈수 있어요? 혹시 도깨비가 힘이 세지게 도와준 거 아니에요?"(<황소와 도깨비>에서 산도깨비가 황소의 힘을 세지게 해준 것을 거론하며...)
온동네 도깨비들이 범벅 맛에 푹 빠진 마당에 어느 날 범벅 장수는 황금을 끌어 모으는 거래에서 손을 털어 버린다.(마냥 욕심을 부린다면 그러지 쉽지 않을텐데...) 아니, 어쩌라고~~!! 이제 범벅 장수야 부자가 되서 논과 밭을 갈며 여유로운 삶을 살겠지만 도깨비들은? 호박범벅은? 한창 호박범벅 맛에 길이 들어 날이면 날마다 먹고 싶어 애간장이 타는데, 추운 겨울에 거적데기 덮어쓰고라도 기다려 봐도 님은, 아니 범벅 장수는 올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범벅 장수네 밭에 돌멩이 무더기를 떨구어 놓은 도깨비를 범벅 장수가 말 한마디로 속여 개똥을 떨어뜨리게 하는 부분을 읽어줄 때는 둘 다 그런 내용을 어디서 본 적이 있노라고 아는 척을 한다. 에헤여, 하늘에서 철벅철벅, 투둑투둑~ 떨어지는 똥 무더기들이여!! 도깨비들은 참 착하기도 하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순진함이라니...
아이들은 똥 이야기가 나오니 낄낄~거리며 넘어간다 -다만 <똥벼락>에서 온갖 똥이 떨어지던 것이 재미났던지, 범벅 장수네 밭에 개똥만 떨어지는 것이 좀 아쉬운가 보다.- 이 부분에서 엄마는 입으로 한참동안 똥을 떨어뜨려 주어야 할 것 같다. 철부덕~, 터덕터덕~ ^^ 도깨비들의 또 다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내내 범벅 타령만 하게 되고 말았는데 좋아하는 호박범벅을 더 이상 못 먹게 된 도깨비들이 안 되어 보인다. 눈 오는데 거적 데기 덮어쓰고 빈 주걱 들고 서 있는, 속표지에 그려진 도깨비와 호랑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듯..
이 책은 실제로 보니 기존의 그림책과 비교할 때 안팎으로 많이 다른 형태인데 종이질감이 느껴지는 겉표지(양장본 아님)에, 세로로 기다란 판형의 책으로 책장을 왼쪽으로 넘기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책장을 오른쪽으로 넘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이유가 뒤쪽 책표지 안쪽에 적혀 있는데, 세로쓰기를 도입한 방식으로 조판을 해서 한글의 독특함을 맛보게 해주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세로쓰기로 된 책을 참으로 오랜만에 접해 본다. 가로쓰기로 된 글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세로쓰기로 된 책을 접해주어 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
사족-도깨비가 범벅장수에게 "잠깐 정지~"하는 장면의 알록달록한 산의 풍경을 보면서 갑자기 <산에 가자>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는데 찾아보니 그 책도 한병호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다. 이 글에 언급한 책 외에도 집에, 도깨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병호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 제법 되는데, 이제 아이도 화풍이나 이 작가분의 성함이 눈에 익은지 아는체를 한다. ^^